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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장성 신라 창고 건축물 : 꺾음 팔작지붕 추정 / 동대자 유적 약간의 업데이트 했습니다 -

 

 

 

 

 

서울 , 경기도에는

 

통일신라 황룡사 중금당만큼

 

 

엄청 거대한 삼국시대 신라 혹은,

 

통일신라 건축물터가 있습니다.

 

 

 

그 엄청나게 거대한

 

신라시대 단일 건축물 터가 발견된

 

장소는 바로 남한산성 행궁 입니다.

 

 

추정 신라 주장성 군창고 건축물 추정 재현복원도

 

 

이 건물터는 남한산성 행궁을

 

복원하던 도중에 발견되었고

 

 

발굴 당시에는 되게 떠들석하게

 

센세이션을 이르켰던 건물터 였는데요,

 

 

지금은 행궁이 복원 완료되었고 , 지금은

 

행궁자리 아래에 뭍혀있는 건물터 입니다

 

 

 

 

이 건물터는 2025년 현재까지

 

공식적으로는 , 우진각 지붕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아주 작게나마 꺾음 팔작지붕

 

건축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2008년 1월에 발굴 완료되었던

 

남한산성 발굴 , 신라시대 산성인 주장성

 

군창고 건물터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 서울 , 경기도에서 가장 거대한 삼국시대 / 통일신라 단일 건축물터 주장성 신라창고 유적 -

 

 

 

2008년 , 남한산성 행궁을

 

복원하기 위하여 발굴작업을

 

하던 도중,

 

 

 

조선시대 기와 하고는 차원이 다른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기와 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주장성 기와무지 출처 : 문화재청

 

 

 

남한산성 행궁터를 발굴하다가

 

발견된 기와들은, 그 크기가

 

엄청나게 거대했습니다.

 

 

남한산성 행궁내에서 발굴되었던 고식 기와무지들, 상인남성 상반신만한 크기다.

 

 

기와 한장의 크기가 성인의

 

상반신 정도의 크기 였습니다.

 

 

조선시대 기와의 정확히 2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기와들이

 

산더미처럼 발견되었던 것이죠...!!

 

 

남한산성 행궁내에서 발굴되었던 고식 기와무지들, 상인남성 상반신만한 크기다. 출처 : 문화재청

 

 

이때 발굴된 기와들은

 

크기와 제작방식을 보았을때,

 

 

고려 이전인

 

통일신라 or 삼국시대 기와로

 

판명 되었습다. 그래서...!!

 

 

 

당시 발굴하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엄청난 발견을 했다! 라는 생각과 함께

 

기와무지 일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와무지 근처를 발굴하던 도중

 

엄청나게 거대한 건물터를 발견했어요...!

 

 

 

남한산성 행궁내에서 발굴되었던 엄청난 크기의 건물터 출처 : 주류성 출판사 홍보PDF

 

 

 

기와무지 근처에서 발견되었던

 

건물터는 , 상상했던거 보다 훨씬

 

거대한 건물터 였습니다...!!

 

 

 

건물터 크기는 측정해보니

 

정면 53.5m 측면 17.5m 이었습니다.

 

 

 

남한산성 행궁에서 발견된 건물터가

 

경복궁 근정전보다 거대한 건물터 였습니다!

 

( 근정전 : 정면 30m 측면 21m )

 

 

남한산성 주장성 신라 창고건축물 실제 초석간 거리 측정 평면도 / 출처 : 토지주택박물관 남한산성 발굴 제7·8차 조사보고서

 

발견당시는 측면 18m라고 추정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측면 17.5m로 확인되었다.



 

너무나도 거대한 건물 크기 때문에

 

남한산성 조선 행궁에서,

 

 

 

삼국시대 행궁 혹은

 

통일신라 행궁이 발견된게 아니냐 라는...!

 

말들과 온갖 추측이 있었습니다만...!

 

 

중간에 ㄱ자 모양이 신라건물터 전체 권역이다 / 출처 : 토지주택박물관 남한산성 발굴 제7·8차 조사보고서

 

 

 

연구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현재 시점에서는,

 

 

핵심 군사시설 or

 

중요 물류창고 정도로 

 

사실상 비정되고 있습니다.

 

 

 

 

 

창고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핵심 물류창고로 추정하는데요,

 

그 이유는 대략 이렇습니다.

 

 

 

1 - 건물터가 발견된 곳은 산성 안이다.

 

2 - 남한산성은 신라 주장성으로 비정된다.

 

3 - 실제로 삼국시대 신라 성벽 흔적이 발견되었다.

 

 

남한산성내 삼국시대 성벽 흔적 - 사진출처 : 주류성 출판사 홍보PDF

 

 

 

그리고 이 건물터를 중요 물류창고로

 

추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겁니다...!

 

 

 

4 - 건물 장식이 하나도 발견된게 없다.

 

( 암막새 / 수막새 / 치미 / 가구식 기단 / 원형 초석 등등 )

 

 

 

 

5 - 건물을 구성하는 방식이

 

사람이 거주하기 적절한 형태가 아니다.

 

 

 

 

6 - 건물의 벽체를 성벽을 만들때 사용하는

 

판축공법 이라는, 토성벽 구성으로 만들었는데

 

일반적인 거주 건물에 사용하는 양식이 아니다.

 

 

 

라는 이유 때문에, 창고 건물로 비정되었습니다.

 

( 물론 아직도 궁궐 건물로 추정하기도 하긴 합니다... )

 

 

남한산성 행궁내 주장성 신라건물터는 아주 약간의 일부분만 남겨놓고 복토 후 , 그 위에 행궁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은 확인하기 힘든 상태이다.



 

그럼 이제부터 남한산성

 

행궁내에서 발굴되었던

 

 

 

추정 삼국시대  신라산성,

 

주장성 내부 물류창고 건물터에 대한

 

 

 

지금까지 연구된 각종 건축 양식및

 

추정가능한 자료들을, 최대한 쉽고

 

가볍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장성 건물터에서 출토된 자료들만으로 만들면 이런 모습의 건물이었을 것이다.

 

 

 

 

- 남한산성을 삼국시대 신라산성, 주장성으로 비정하는 이유 -

 

 

 

제가 웹페이지를 검색해봤는데

 

남한산성을, 신라 주장성으로

 

추정하는 내용이 이게...

 

 

보기 쉽게 정리한곳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최대한 짧고 보기쉽게

 

정리해보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신라 주장성으로 추정된다 / 출처 : 문화재청

 

 

 

 

일단 삼국시대 기록을 보면

 

주장성 672년 8월 한산주에

 

주장성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주장성의 둘레는 기록에 의거하면

 

4,360보라고 합니다. 4천번 넘게

 

걸어야 하는 둘레라네요.

 

 

 

 

여기서 1보의 길이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연구자 분들이

 

추정하신 내용들을 종합해 보자면...

 

 

 

보통 1보는 6척을 기준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합성해본 추정 주장성 신라 군사물류 창고

 

 

당시 사용된 척도가

 

송척( 宋尺 = 1척 = 31㎝ )

 

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672년 기록의 주장성 4,360보를

 

1보 = 6척 = 1척을 31cm

 

으로 계산하면,

 



주장성 전체 둘레는 대략

 

8,019.6m 라고 한답니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장악한 후

 

한산주(漢山州)라고 이름을 바꾸었는데

 



당시 한산주 ( 한강 근처 권역 )

 

이 방면에 남아있는 삼국시대 산성으로는

 

이런 산성들이 확인 되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 ( 원성만 둘레 7,545m )


이성산성 ( 둘레 1,653m )

 

대모산성 ( 둘레 567m )

 

설봉산성 ( 둘레 1,080m )

 

 

남한산성 전경 - 출처 : 문화재청

 

 

 

중요한게 바로 이겁니다!

 

 

지금의 남한산성 본체 원성 크기 = 7,545m

 

삼국시대 주장성 크기 4,360보 = 약 8m

 

 

실제 남한산성 크기하고 삼국시대

 

주장성 기록의 크기하고 거의 일치한다네요.

 

 

남한산성 전경 - 출처 : 문화재청

 

 

 

그니까 삼국시대 기록하고

 

실제 산성 크기가 거의 일치하며

 

 

한강 유역의 옛 한산주 근처에 있는

 

산성중에서 , 주장성 크기에 부합하는

 

산성은 남한산성이 유일하답니다.

 

 

남한산성내 삼국시대 성벽 흔적 - 사진출처 : 주류성 출판사 홍보PDF

 

 

 

또한 위에서 먼저 다루었던 내용!

 

남한산성 내부에서 삼국시대 성벽

 

흔적이 확인되었다고 했잖아요?

 

 

 

그때 발견되었던 성벽의 특성이...

 

 

 

안팎을 모두 돌로 쌓아 올려 만든

 

내외 협축인 전형적인 7세기

 

신라 성벽 이라고 한답니다.

 

 

 

전형적인 신라산성 공법으로

 

축성한게 남한산성 이라네요.

 

 

서울 / 인천 / 경기도 수도권 내에서 발견된 가장 큰 신라시대 건축물이 바로 주장성 군창고 건물유적이다.



 

- 주장성 53.5m 건물을 신라시대 건물로 추정하는 과학적인 이유 -

 

 

 

그니까 일단 산성 자체는

 

여러가지 자료들을 비교분석

 

했을떄, 삼국시대 산성이 맞다고 하네요.

 

 

 

그리고 53.5m 건물이 신라시대

 

건물인 이유가 나름 과학적인

 

방법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과학적인 방법은 바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이었습니다.

 

 



그 핵심 증거가 바로 목탄!

 

53.5m 건축물에서 실제로

 

나무 목탄 흔적들이 발견되었어요.

 

 

 

이 목탄들을 여러개로 나눠

 

방사성 탄소연대측정을 해본결과...!!

 

 

사진출처 : 토지주택박물관 남한산성 7 ~ 8차 발굴조사 보고서

 

 

 

대다수의 목탄 연대가

 

600년 ~ 900년대 발생한 ,

 

 

 

삼국 신라 ~ 통일신라 후기

 

목탄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인

 

실험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53.5m 건축물은

 

최소 삼국시대 후기 ~ 최대 통일신라 ~ 후삼국시대

 

건축물인게 ,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 입니다...!!

 

 

남한산성에서는 다양한 신라 토기와 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중요한거 두번째,

 

남한산성 내부에서는 실제로

 

각종 통일신라 유물이 출토되었어요.

 



특히 통일신라시대

 

인화문토기(印花紋土器)

 

조각이 다량 출토되었는데요,

 



인화문토기는 남한산성 근처

 

삼국시대 신라 산성으로 가장

 

유력한 하남시 이성산성에서 ...

 

 

 

거의 같은 특징을

 

특징을 보이는 토기들이 출토되어서

 

남한산성 토기도 신라시대 토기로 추정합니다.

 

 

왼쪽이 주장성 출토 수키와 , 오른쪽이 조선시대 기와 / 사진출처 : 문화재청




그리고 53.5m 건물터에서 출토되었던

 

기와들 또한 신라시절 기와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기와에 적혀있는

 

문자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글씨가 적혀있는 기와들이

 

몇가지 출토되었다고 하는데요,

 

 

 

 

출토되었던 기와들 중에서...

 

 


甲辰年 末村主 (갑진년 말촌주)

 

이런식으로, 신라시대 관직명을 새긴 기와가

 

다수 확인됐기 때문에 , 신라건물이 확실하다네요.

 

 

주장성 출토 명문 기와

 

 

이렇듯 기와에 적혀있는 관직명과

 

기와 제작방식의 특성이 통일신라 초기

 

7∼8세기 기와들로 보인다고 합니다.

 

 

반포자이 한강공원에 삼국시대 신라 군창고를 합성해보았다. 현대 건물하고 비교해봐도 엄청 거대해서 휴게소 같은걸로 활용하면 좋을듯하다.

 



남한산성 내부에서 발견되었던

 

도장으로 무늬를 찍은 토기,


파도 무늬 항아리 파편,

 

 

 

53.5m 건물에서 발견되었던

 

나무 목탄의 방사성 탄소연대 결과및

 

기와 제작 기법으로 볼 때

 

 

 

건물이 사용된 시기는 7세기 후반

 

혹은 10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 주장성 신라 건물터 각종 건축양식 알아보기 -

 

 

 

이번에는 주장성 53.5m

 

건축물에서 발견되었던

 

다양한 건축양식 ,

 

 

그리고 추정 가능한 모습들을

 

다양하게 알아보도록 할까요!?

 

 

 

 

 

 

 - 특징 첫번째 -

 

 

주장성 추정 군창고 건물은

 

꽤나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웬만한 건물들에 비하면,

 

배수로가 되게 넓습니다.

 

 

비가 와서 배수로에 물이 가득 들어가면, 석축이 물에잠겨 안보이고 , 배수로 너비가 1m 정도라서 작은 개울처럼 보일것이다!

 

 

 

여타 삼국시대 다른 건물터 또한

 

배수로가 보통 구비되어 있는데요,

 

 

 

주장성 건물은 단일 건축물인데

 

배수로 폭만 1m 정도 입니다.

 

 

 

근데 건물을 감싸고 있는 배수로만 1m 너비이며

 

물이 빠지는 하부 구간 너비는 2.6m 정도 입니다.

 

 

건물을 감싸는 배수로는 폭 1m지만, 배수가 모이는 지점은 폭 2.6m로 작은 개천 수준이다.



 

그리고 배수로 깊이는 약 20cm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단일건축물

 

배수로 중에서는 되게 넓은 배수로이며...

 

 

 

비 한번 오고나면 , 작은 개천 수준이자...

 

방어용 소형 해자가 만들어지는 수준의

 

꽤나 큰 배수로 입니다.

 

 

비 한번 내리면, 너비와 깊이 때문에 건물 주변에 작은 실개천 하나가 만들어지는 규모의 배수로다.

 



 

 

그리고 배수로에는

 

특이하고 재미난 특징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 특징 두번째 -

 

 

 

이 건물은 특별히 기단을

 

따로 구성하지 않았습니다.

 

 

주장성 건물은 기단이 특별히 없고, 다만 건물 주위를 폭 1m 깊이20cm의 배수로를 기단위치에 만들었다. 배수로 석축이 기단역할을 한 모양이다.

 

 

 

이게 기단이 아예 없는건 아니고

 

여타 건물들이랑 조금 다르게...

 

 

배수로 석축이 기단 역할을

 

대신 합니다. 산성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 입니다.

 

 

일반적인 거주 건물들은 보통

 

기단 따로, 배수로 석축 따로인데요,

 

 

신라 주장성 53.5m 건축물 초석 / 배수로 / 판축토벽 전경. 배수로 석축이 기단까지 겸하는 다용도 석축이다.

 

 

 

윗쪽 건물지 벽체와 초석렬 앞에

 

사진을 보시면 오른쪽 초석 앞에

 

넒은 배수로길과 석축이 보이죠?

 

 

 

저렇게 배수로 석축을 기단삼아

 

기단겸 배수로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반 거주지 보다는 산성용

 

숙영지나 산성내 창고 건물에서 간헐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양식이라 보시면 됩니다...!!

 

 

 

 

- 특징 세번째 -

 

 

 

이 건물의 벽체는 토성벽을

 

만들때 사용하는, 판축식 성벽을

 

사용하여 벽이 매우 두껍고 단단합니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인

 

판축식 벽체는  두께가

 

토성벽만 1.8m 이고,

 

 

성벽돌까지 합치면

 

총합 2m 입니다.

 

 

주장성 건물의 내부는 약 2m의 두꺼운 판축벽이 있다.

 

 


발해 궁궐 상경용천부에 있는

 

서부 침전터의 벽체 두께가

 

대략 52cm 정도 인데요, 

 

 

 

발해 궁궐의 왕족이 사용하던

 

침실 벽체보다 3배나 두껍습니다.

 

 

 

그리고 벽체 아래에 숯과 소금을

 

깔아서 벽을 쌓았습니다. 습도유지

 

기술이 적용되어있습니다.

 

 

건물 크기가늠을 위해 만든 2명의 신라 군인은 키 180cm / 어깨너비 55cm 이고, 신라 여성은 키 165cm / 어깨너비 41cm 이다.

 

 

 

일반 건물의 약 10배에 달하며

 

발해 궁궐 침실 건물보다 3배 두꺼운 벽체 두께,

 

습도유지용 기술 / 엄청나게 단단한 판축 벽체 등등,

 

 

 

벽체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면모에서 중요물자를 보관하던

 

중요 물류 창고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주 출입문 아래의 석축은 70cm 정도 높이의 다용도 축대다. 기단정도 높이인데 문지방 기능및 고막이석 역할및 기단역할까지 겸하는 다용도 석축이다.

 

 

- 특징 네번째 -

 

 

판축식 황토벽 아랫쪽에

 

약 70cm 높이로 석축이

 

있습니다.

 

 

이게 좀 특이한게 사각형으로

 

예쁘게 다듬은 돌부터 기왓장,

 

그냥 막돌까지 막 섞여있어요.

 

 

그리고 건물 내부, 외부에

 

전부 판축벽 아랫쪽에 석축을

 

구성했습니다.

 

외부 판축벽에는 70cm 높이의 석축이 있고, 내부는 한단 정도의 돌이나 기왓장으로 판축벽 아랫쪽에 석축을 구성했다.

 

 

 

이 석축은 내부 외부에 전부 있는데

 

약간 미스테리한 석축 입니다.

 

 

그냥 기단 역할로 만든건지

 

석축이 아니라, 건물 전체에

 

사용하던 벽체용 돌이었는지

 

 

 

아직까지는 자세하게 연구된게 없지만

 

발굴 초기 연구에서는 벽 전체에 사용한

 

돌로 추정을 한 듯 하네요.

 

 

발굴초기 연구에서는 이렇게 벽체 앞뒤로 전체 석벽을 구성한것으로 추정했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습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발굴 초기 연구에서는 판축성벽

 

전체를 성벽마냥 돌로 전부

 

막아놓은 모양으로...

 

 

추정을 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냥 황토벽이

 

들어나는 모습이고...

 

 

토축벽 아래에 석축이 있던

 

모습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황토벽이 드러나는 방식 아니었나 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요.

 

첫째로 판축벽 앞뒤에 있는 돌들이

 

꽤 일정한 높이로만 남아있다는 점

 

 

 

( 외부 약 70cm / 내부는 한단 ~ 두단 정도 )

 

 

 

둘째로는 만일 건물벽 전체적으로

 

돌로 덮었다면, 벽체용 성벽돌이 아주

 

많이 발견되어야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주장성 신라 군용창고 건물터 발굴사진 드론샷 / 사진을 보시면 , 건물 전체에 사용했을 만큼의 많은 돌들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사진을 보시면 , 판축벽체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돌들을 관찰해보면,

 

 

 

건물 전체에 사용했을 법한 수량이

 

아닌게 보입니다. 벽 근처에 있는

 

돌들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죠.

 

 

 

딱 석축이나 기단 정도로 사용했을법한

 

양만 발견되었기 떄문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황토벽이 들어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주장성 신라창고 건물은 석축이 기단정도 높이인데 계단지가 발견이 안되었다고 한다. 필자 개인적으론 목조계단을 사용하지 않았나 하고 추정한다.

 

 

 

- 특징 다섯번째 -

 

 

이 건물은 석축이 약

 

70cm 높이로 되어있는데,

 

 

 

신기하게도 계단이 하나도

 

발견된게 없습니다. 그니까

 

 

 

창고 건물로 추정되고,

 

석축이 꽤 높은데 계단이나

 

계단지가 없는 건물터 입니다.

 

통일신라 건물지 평면도인데, 가운데 4개가 문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위치다.

 

 

이 건물터는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위치가 4개 인데요,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위치를

 

보면, 그 아랫쪽에 70cm 석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추정 주장성 신라 군용창고 건물터 발굴사진 항공 / 드론샷 - 출입문 추정 위치까지 70cm 석축이 있다.

 

 

 

건물 특성상

 

물류창고 건물로 추정되는데,

 

 

 

출입문 아래에 70cm 석축이

 

있던걸로 추정되는 상황인데

 

계단지가 없는 상황 입니다...!

 

 

 

이러면 물건 들고

 

드나들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서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론

 

계단시설이 하나도 없는걸 보면

 

 

 

나무계단을 만들어서 사용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이건 철저히 필자 개인 추정이라

 

뭐 그럴수도 있겠네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특징 여섯번째 -

 

 

 

출토된 기와가 엄청 크고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모든면에서 조선시대 기와의

 

2배 크기를 보여주는 특대 기와 입니다!

 

 

왼쪽이 신라창고유적 기와세트 , 오른쪽인 일반 조선시대 기와세트인데 크기가 2배다.

 

 

암키와를 기준으로 크기및

 

무게는 약 64cm / 19kg 정도 입니다.

 

 

 

또한 두께는 조선기와는 평균 2cm인데

 

주장성 신라 기와는 두꼐마저 6cm 입니다!

 

 

 

기와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삼국시대 목조기술로 온전히

 

건물을 지탱하는게 힘들수도 있다네요.

 

 

 

그래서 판축벽을 그리 두껍게

 

구축한거 아니냐!? 라는 추정을 한다네요.

 

 

왼쪽이 행궁 발굴도중 발견한 신라 기와 , 오른쪽은 조선시대 일반 기와. 주장성 기와는 무게부터 크기 모든면에서 조선기와의 2배 크다! 출처 : 문화재청

 

 

 

- 건축양식 : 기와 적재 방식 -

 

 

 

남한산성에서 발견되었던

 

신라 주장성 추정 53.5m 건물은

 

 

기와 쌓기 조차도 고식 입니다.

 

조선시대 기와쌓기 방식하고 다릅니다!

 

 

주장성 출토 신라시대 고식 수키와 / 암키와 세트

 

 

수키와 뒷면을 포개듯이

 

쌓는데요, 이렇게 쌓으면

 

지붕이 이런 모습으로 보입니다.

 

 

 

주장성에서 출토되었던 신라 기와를 고증에 맞게 쌓아봤다.

 

 

 

뭔가 우둘투둘한게

 

확실히 조금 다르죠?

 

 

조선시대 기와쌓기랑 얼마나

 

다른지 사진으로 비교해볼까요?

 

 

성산여씨 하회댁 대문간채
고창읍성 작청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기와지붕은 이런 모습이죠!?

 

 

 

반듯하고 깔끔한 모양 입니다.

 

포개듯이 쌓지않고, 기와 뒤에

 

다음 기와를 직렬로 연결 합니다...!!

 



그런데 삼국시대 / 통일신라 시절은

 

기와지붕이 뭔가 우둘투둘 튀어나온게

 

60년대 시골집 기와지붕 같은 느낌이죠.

 

 

이런 기와쌓기는 현재,

 

한국에서 부르는 명칭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고식 수키와 쌓기

 

무단식 수키와 쌓기

 

라고 부르면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가장 괜찮은건 확 줄여서

 

무단쌓기 라고 부르는게 어떨까

 

라고 주장을 해봅니다...!!

 

 

주장성 출토 고식기와를 적용한 모습. 삼국시대 수키와 쌓기는 국내 정식명칭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무단식 수키와 쌓기 or 혹은 그냥 줄여서 무단쌓기로 부르면 어떨까 싶다.

 

 

 

 

* 참고사항 *

 

 

 

필자가 만든 건축물은 그냥 황토벽에

 

단청도 없는 단순한 건물 입니다만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습니다!

 



주장성 건물터는 수막새 / 암막새 / 치미부터

 

회칠벽 흔적 / 단청 흔적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막새 / 치미가 없는 단순한 지붕이었고

 

붉은색 단청을 칠하지 않았으며,

 

 

벽채도 그냥 황토벽이었을 가능성이

 

현재 가장 확률이 높으며, 고증에

 

가장 부합하는 상태 입니다.

 

 

 

- 건축 양식 : 초석 -

 

 

 

초석의 경우는 어느정도

 

모양만 갖춰 만든 초석입니다.

 

 

건물의 크기 대비, 초석의 모양새가

 

기둥 올릴 수 있을 정도만 적당히 구성되었고...

 

 

 

모양도 적당히 네모 비슷하게만

 

구성만 맞춘, 너무 단순한 외형 때문에,

 

 

 

이 건축물이..!!

 

 

 

궁궐용 건물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중에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 주장성 추정 창고 건축물 크기 비교해보기 -

 

 

 

 

이번에는 주장성 건물의

 

크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주장성 53.5m 건물은 신라시대 단일 건축물

 

중에서도 최상위권 사이즈의 건축물 입니다.

 

 

신라 단일 법당 건축물 중에서

 

가장 거대한 황룡사 중금당하고

 

맞먹는 크기의 건물 입니다.

 

 

 

7 ~ 9세기 신라 주장성 추정 군용 창고건축물

 

황룡사 중금당 삼국시대 584년 최초 창건모습 추정 상상 재현도

 

 

황룡사 중금당이 정면 52m / 측면 27.1m

 

주장성 창고 건축물이 정면 53.5m 측면 17.5m

 

 

 

두 건물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가로 길이가 주장성 건물이 약간

 

더 큰게 보이시죠!?

 

 

황룡사 중금당하고 1:1 크기로 측면을 비교해보면 대충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



 

측면은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는

 

않았지만, 기와 사이즈를 자세히 보시면

 

측면은 황룡사 중금당이 압도적 입니다.

 

 

 

약 10m 차이가 나기 때문에

 

측면은 황룡사 중금당이 훨씬 큽니다.

 

 

 

아무튼 주장성 신라 창고 건축물은

 

수도권내 신라 단일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큽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신라 건축물들하고 비교해도

 

최상위권 사이즈의 건물 이랍니다!

 

 

 

-  필자가 사용한 삼국시대 건축 양식  -

 

 

 



경주향교 신삼문. 앞뒤 퇴칸의 주심포에는 창방이라는 가로빔이 없다.

 

 

 

주장성 건축물 포작 시스템은

 

추정가능한 삼국시대 건축양식

 

하나를 적용했습니다.

 

 

 

경주 신삼문에서도 볼 수 있는

 

전후퇴칸 창방없는 주심포

 

 

 

라는 삼국시대 방식의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포작을 구성하였습니다.

 

 

경주향교 신삼문의 전후퇴칸 창방없는 주심포

 

 

 

창방이 없어서 좀 특이하죠?

 

창방없는 건축물 양식은 이게

 

 

전통건축에 관심있는 분들 아니면

 

거의 모르는 건축양식 인데요...!!

 

 

전형적인 조선시대 주심포 건축물이다. 창방이란건 저렇게 기둥 가장 윗쪽을 가로질러 엮는 빔자재를 뜻한다.

 

 

 

일반적인 조선시대및 우리나라

 

전통건축은 창방이라는 빔을

 

기둥위에 걸어서 사용합니다.

 

 

기둥이 흔들리고 회전하고

 

기울어지는걸 막아주는 등등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자재입니다.

 

 

 

 

그니까 건물이 흔들리고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이 여러이유로

 

회전하는걸 , 실처럼 엮어서 방지하는...

 

 

 

꽤나 중요한 건축 자재인데요,

 

 

 

삼국시대 각종 건축 자료들을 보면

 

이렇게 효율적인 창방이 없는 경우가

 

자주 확인됩니다.

 

 

고구려 무용총 모사도 - 창방이 없다.

 

 

 

창방 없는 주심포 건축양식은

 

무려 고구려 무용총 / 각저총 등등

 

고구려 고분에서부터 그 양식이 발견됩니다.

 

 

 

 

* 창방 : 기둥 맨윗쪽에 가로로 놓이는 목조 빔

 

 

 

고구려 각저총. 흰벽에 주토단청을 칠했으며 창방이 없다.

 

 

 

 

고구려 5 ~ 6세기 고분 내부에

 

건축 프레임을 그린 그림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창방이 없고 첨차위에

 

주심도리가 바로 올라가 있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는데요

 

 

고구려 각저총 / 무용총 내부의 흰벽과 붉은단청을 실제 건물에 적용하면 이런 모습이다.

 

 

 

이렇게 창방이 없는

 

단순한 건축양식은 삼국시대로 부터

 

전승되고있는 초근본 건축양식 입니다.

 

 

1330년 건설, 고려시대 가옥 ,맹씨행단 고택의 창방없는 주심포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

 

1330년 고려후기 건설, 맹씨행단 고택에서도

 

창방이 없는 건축양식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주장성 창고 건물이 7세기 건물이라는 가정하에 , 삼국시대 건축양식을 적용해서 창방없이 재현복원한 것이다.

 

 

 

창방이 없는 건물의 경우,

 

창방은 없지만 들보 같은걸로

 

일단 엮기도 하고...

 

 

지붕 무게의 하중으로 기둥이

 

회전하는걸 , 말그대로 무게로

 

눌러 버티는 양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사항 *

 

 

이 내용은 25년 11월 17까지

 

연구된 내용으로 작성했습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 얼마든지 변화 /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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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사 동승방지 출토 통일신라 치미에 대하여 -

 

 

 

미륵사지 동원 승방지 출토 , 통일신라 7 ~ 800년대 추정 치미

 

 

작년 이맘때 즈음... 미륵사 동승방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치미를 복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복원한 미륵사 치미는

미륵사 동승방지에서 출토되었습니다.

 

크기는 1m 45cm 입니다. 초등학생 6학년 키 만합니다!

 

 

 

 

미륵사 동승방지 치미를 통일신라 건축물에

1:1 사이즈로 설치하면 이런 모습 입니다.

 

 


이번에 복원한 미륵사지 동원 승방지


통일신라 치미는 , 적어도 남한내에서

황룡사 치미 다음으로 거대한 치미에요.

 


사실상 한국에서는 2번째로 거대한

넘버2 사이즈의 치미라고 한답니다...!!

 

 

사진출처 : 국립공주박물관

 

 

이 건축물은 윗쪽의

 

주장성 군창고 건축물 입니다.

 

 

 

주장성 군창고 건축물은

 

치미 / 수막새 / 단청 / 흰벽 등등...각종

 

건축 장식의 흔적이 하나도 발견된게 없어요.

 

 

 





제가 건축물에

 

주토단청 / 흰벽 / 치미 / 수막새를 적용한 이유는...

 

 

 

삼국시대 가장 보편적인 건축 채색법인

 

주토 + 흰색 벽을 적용하여, 미륵사지 동승방지 치미를...

 

 

 

가장 보편적인... 삼국시대 / 통일신라 건물 외형으로

 

확인해보고자 , 임의로 적용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주토 + 흰벽 건물도 만들었지만, 황토벽에 단청이 없고 수막새와 치미가 없는 이 모습이 고증에 맞는 모습이다.

 

 

 

주장성 창고 건축물은 실제로는

 

주토 / 흰벽 / 치미 / 수막새가

 

없는 모습이 고증에 맞습니다!

 

 

 

치미 / 수막새 / 주토단청 / 흰벽은 필자가 임의로 적용해서 고증은 아니다. 가장 보편적인 삼국시대 / 통일신라 건축물과 치미의 조합을 보기위해 만든것이다.



 

보편적인 삼국 / 통일신라 건물에

 

미륵사 동승방지 치미를 설치하여

 

 

 

보편적인 모습으로 보려고 임의로

 

적용한 것이니까 꼭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미륵사지 동원승방지 출토 통일신라 치미의 크기 : 1m 43cm

 


참고로 미륵사지 동원 승방지에서는


통일신라 시절 치미만 출토된게 아닙니다!

 


미륵사지 동원 승방지에서는

삼국시대 백제 치미도 발견됬습니다.

그 치미는 바로 이것 입니다.

 

꽤 오래전에 발굴했던, 미륵사 동원 승방지에서 출토된 백제시절 치미

 

 


윗쪽의 치미가... 꽤 예전에

미륵사지 동원 승방지에서

 

출토된 백제시절 치미 입니다.

 

 

 

이번에 복원한 통일신라 치미하고

같은 건물터에서 발견된 치미에요.


 

그니까 미륵사지 동승방지 건물터에서

 

백제 치미 + 통일신라 치미 2개가 발견

 

되었다는 뜻 입니다!!!

 

 

최근에 복원한 미륵사 동원승방지 출토 통일신라 치미, 1m43cm / 통일신라 시기 치미이지만, 백제계 치미의 특성이 많이 보이는 치미다.

 

 


한 장소에서 두가지 시대의 치미가

발견된게 꽤나 재미있는 일이네요!

 



이번에 복원된 미륵사 치미는

 

외형만 보면 백제치미의 특성이

 

많이 보이는 치미 입니다.

 

 

백제 왕흥사 치미 : 600년 준공 ~ 635년 완공및 창건

 



몇년전에 발굴된

 

왕흥사 치미하고 비교해보면....

 



확실히 백제 치미에 가깝습니다.

뭐.....미륵사가 백제 사찰이니까 당연한 거겠죠...?

 

 

 

 

 

그러나...

 

 

짧아진 몸통 하단쪽 기왓골,

 

좁은 전체 폭, 밋밋해진 몸통, 몸통과

 

날개 부분 접합 방식이 띠 한줄인거 등등...

 

 

 

통일신라 시기 치미의 특성도

 

뚜렷히 보이는게 사실 입니다.

 

 

삼국시대는 고구려 / 신라 / 백제 모두 엄청난 건물 크기를 자랑했다. 특히 흰벽에 붉은단청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높다고 한다.

 



 그래서 이 치미는 일단

 

통일신라 치미로 추정합니다만

 

최종 복원된 모습을 보다보면...

 



백제와 통일신라 치미를 섞은듯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실제 출토된 미륵사 동원 승방지 치미는 이런 모습의 한덩이와 수많은 파편들로 발견 되었다.

 

 

 

전체적인 외형에는

 

백제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고,

 

 

 

치미의 구성 요소에서는

 

통일신라적 특징이 발견되는...

 

 

 

백제 + 신라 문화가 융합된

 

미륵사만의 특별한 치미라고 생각되네요...!!

 

 

 

 

참고로 주장성 신라 창고건축물에

미륵사지 동승방지 통일신라 치미를

사용해서 다시 꾸며본 이유는 ...

 

 

 

주장성 신라 창고하고

 

미륵사지 동승방지하고

 

스펙이 비슷해서 입니다.

 

 

실제 미륵사지 동승방지 도면, 미륵사지 동승방지는 61.9m로 엄청나게 거대한 건물이다.

 

 

 

실제 미륵사지 동승방지는

 

정면 너비가 61.9m / 측면은 11.8m로

 

 

주장성 창고보다 측면은 작지만

 

정면은 8m 정도 더 큽니다.

 

 

또한 학계에서 예상하기를 우진각지붕

 

건축물로 추정하는게 미륵사지 동승방지 입니다.

 

 

 

 

주장성 신라 창고 건축물은

 

정면 53.5m 측면 17.5m  입니다.

 

약 8m 정도 길이 차이가 나긴 하는데...

 

 

 

동승방지 치미를, 주장성 건물에 사용하면

 

얼추 미륵사지 동승방지 하고 비슷한 모양이라

 

 

 

완전 같지는 않아도, 미륵사지 동승방지 외형을

 

약간이나마, 맛뵈기로 느낄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서 치미를 사용하고, 단청을 사용해서 꾸며 봤답니다.

 

 

소형 건물에 치미를 1:1 적용해봤다. 신라 여성은 키 165cm / 어깨너비 41cm 이다.

 

 

 

이번에는 좀 더 작은 건물에

 

143cm 치미를 1:1 비율 그대로

 

설치하면 어떤 모습인지 보겠습니다!

 

 



이 건물은 방 한개당 크기가 5.2m

 

입니다. 그래서 전체 길이는 대략

 

11m 좀 넘는 소형 건축물 입니다.

 

 

 

소형 건축물에 143cm 치미를 1:1 크기로

 

적용했는데 , 생각보다 꽤 잘 어울리죠!?

 

 

영축사지 동승방지 모티브 건축물 / 미륵사 동승방지 치미 /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 / 지우산 / 통일신라 양탄자를 적용해본 꽃놀이 풍경

 

 

 

참고로 이 건물은 통일신라 사찰

울산 영축사지 추정 동승방지를

 

모티브로 만든 건물 입니다.

 

 

 

말 그대로 영축사지 동승방지 건물터를

 

모티브로 만든 가구식 건축물 입니다.

 

 

 

왜냐면...

 

실제 영축사지 동승방지는

 

귀틀식 건축물로 추정하기 때문입니다.

 

 

울산 영축사지 - 우측 상단의 승방지가 추정 동승방지다 / 출처 : https://www.ujeil.com

 

 

울산 영축사는 통일신라 초기

 

683년에 창건한 사찰 입니다.

 

 

사진의 우측 상단이 바로

 

영축사지 동승방지 입니다.

 

 

그리고 추정 재현을 해보면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추정합니다..

 

영축사지 동승방지 추정재현 복원도 - 귀틀식 건축 추정안

 

 

 

영축사지 동승방지 건축물은

 

정측면 1칸 5.2 m라는 정사각형 구성,

 

 

 

그리고 초석 사이에, 줄기초라는

 

돌들을 일자로 깔아놓은 기초로

 

대지를 구성했다는 점 ,

 

 

 

비슷한 건물 사례등을 보았을때

 

귀틀식 or  조적식 건물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영축사지 동승방지 추정 재현도 - 4면 기둥 사이에 통나무를 올린 조적식 안
울산 영축사지 항공 / 드론샷 - 파랑색 네모칸이 추정 , 영축사지 동승방이다. 1동 2실이며 전면에 차양이 있던것으로 추정된다. 특이점이라면 줄기초가 확인된다.

 

 

 

영축사 동승방지는

 

한지붕 방두개 양식

 

( 지붕은 1개, 방은 2개로 스플릿 )

 

 

 

귀틀식 or 조적식

 

건물로 추정 됩니다.

 

 

( 보통 1동 2실 건물이라고 부름 )

 

 



그런데, 다양한 귀틀식 건물들하고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이 꽤 많아서

 

아마도...

 

 

 

조적식 보다는 귀틀식 ( 정간식 ) 건물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합니다.

 

 

영축사지 동승방지 - 흰줄 표시선 안쪽, 초석 사이에 돌을 일자정렬 깔아놨는데 저게 줄기초다 / 출처 : 문화재청

 

 

 

왜냐하면 초석용 기초 적심석

 

사이에 일렬로 줄기초를 사용한

 

건축물 중에서

 

 

대다수는 귀틀식 건물들이라

 

이렇게 추정할 수 있는 거랍니다...!!

 

 

울릉도 나리분지 전통가옥의 귀틀식 건물인데 모서리 초석 사이로 줄기초를 사용했다.

 

 

특히 울릉도 전통 가옥들이

 

줄기초 + 초석을 이용하여

 

귀틀집을 구성하며,

 

 

울릉도 전통 가옥은 이런

 

건물이 꽤 흔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귀틀식 건물이지만, 문 입구에

 

한정해서 기둥을 사용하고, 벽체에는

 

창문이 없는 건물이 아니었나 합니다.

 

 

함흥남도 장진 아득령 산골에 있는 귀틀집인데 문입구에 기둥을 사용했다. 영축사지 동승방 또한 이 건물처럼 문에 기둥이 있고, 나머지는 귀틀로 벽체를 만든 건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보통 이런 건물들은

 

보통 장식을 거의 하지않고

 

막 사용하는 건물들이 대부분이고...

 

 

강원도 동해 이기령 성황당

 

 

영축사 동승방지 에서는

 

신경써서 만든 원형 초석이

 

발견된게 없어서 아마도...

 

 

 

장식용 치미나 수막새 기와를

 

사용한 건물은 아니었던걸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축사지 동승방은

 

벽돌이나 통나무를 그냥 냅다 쌓아올리는

 

조적식 건물일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줄기초 사용 예시나 사례등을 참조하면

 

귀틀식 건축물이 고증에 가장 맞을겁니다.

 

* 참고 사항 : 귀틀식 = 정간식 똑같은 뜻 입니다!

 

 

 

그런데 이 주제는 치미에 대한

 

주제인데 뜬금없이 영축사지 동승방

 

고증을 하고 있을까요...!?

 

 

왜냐면 미륵사지 동승방지 치미가

 

말 그대로 동승방지 건물에 있었기

 

떄문입니당....

 

 

우측의 단청 건물은 영축사지 동승방지 건물을 모티브로 만든 건물이다.

 

 

 

미륵사지 동승방지 건물은 사정상


재현 / 복원할 시간이 없어서

 

못했습니당... 죄송합니당.......

 

 

 

그래서......!

 

 

 

기존에 만들어놨던 건물중에서...

 

가장 비슷한 시기 / 비슷한 용도의

삼국시대 ~ 통일신라 시대 사찰 건물인



울산 영축사지 추정 동승방지 건물에

미륵사 동승방지 치미를 적용한 것 입니다!

 

 

삼국시대 ~ 통일신라 시절에는, 지붕1개에 방을 2개로 나누어 구성한 독특한 건축 양식이 유행했다. 국내 명칭은 = 1동 2실 건축물 ( 한지붕 방두개 )

 

 

 

 

 

그래서 저는 영축사지 동승방지 건물의 크기및

 

각종 자료를 참조해서, 치미 사용을 위해

 

가구식 건축으로 만들었어요.

 

 

 

비록 모티브만 삼아서 만든 건물이지만

 

삼국시대 / 통일신라는 한지붕 두개방

 

건물들이 꽤 자주 발견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통일신라

 

혹은 삼국시대 건물 외형의 특징은

 

갖춘 건물로 만들었습니다...!!

 

 

1m43cm 치미를 적용하면 대략 이런 느낌이다. 치미가 거대해서 작은건물도 멋지게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영축사 추정 동승방지를 모티브로

 

만든 이 한지붕 방두개 건물은

 

크기가 이래요.

 

 

대략 가로길이 11m 정도이고

 

방은 정측면 모든칸 사이즈 5.2m 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몇번이고 말했던

 

미륵사지 동승방지 치미의 크기는

 

1m 43cm 입니다.

 

 

 



일단 우리나라 한국을 기준으로 보면

 

보통 11m 정도 크기의 건물에, 높이 1m를 훌쩍 넘는

 

치미를 설치하는일은 거의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치미가 너무 커서 작은건물에 어울릴까?

이상하지 않을까? 하고 지레짐작했는데...

 

 


오히려 치미가 크고 매끄럽게 생겨서

포인트가 엄청 확 사는 느낌이고 되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어쩌면 전통건축 조차도

선입견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튼 잘 어울립니다!

 

 

 

참고로 미륵사 동승방지 치미는 한국에서

 

2번째로 거대한 , 엄청 거대한 치미기와 입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1번째로 거대한

 

황룡사 중금당 치미하고 1 : 1 비율로

 

비교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두 치미를1:1 리얼사이즈로 비교하면 딱 이 느낌이다.

 

 

 

황룡사 치미하고 비교하면

실제론 이런 느낌일거에요.

 


의외로 체감되는 크기 차이가

엄청나지는 않고, 나름 비슷한

크기로 보일겁니다.

 

 


40cm 차이밖에 안나서 엄청

차이나게 보이지는 않다는 거죠!

 

 



크기 체감및 비교를 위햇

 

작은 전각에 치미를 설치했지만

 

의외로 잘 어울리는 모습 입니다.

 

 

 

하여튼 미륵사 치미라던가 황룡사 치미를

 

본 사이즈 그대로 사용하면 이런 느낌이 나야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붕장식이 대체적으로 작은데요,

이렇게 거대한 치미도 자주 사용했으면 좋겠네요.

 

 

황룡사지 강당근처 출토 , 한반도에서 사실상 가장 큰 황룡사지 치미




참고로 황룡사 치미는

 

높이가 1m 82cm / 너비가 1m 5cm 이랍니다.

 

 

 

한반도 내에서 발굴된 치미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삼국시대 치미 입니다.

 

 

 

황룡사 치미는 사이즈가 1m 82cm

 

성인 남성 키 만한 크기 입니다.

 

 

 

- 주장성 53.5m 건물을 창고로 추정하는 이유 : 천두식 건축물 ( 오늘안에 업데이트 완료중 ) -

 

 

 

 

2008년 1월에 발굴작업을 완료한 시점부터

 

2025년 현재까지 , 주장성 신라 창고 건물은

 

 

우진각 지붕 / 사각기둥 /

 

민도리 or 가벼운 주심포 양식

 

건축물 정도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2025년 지금까지 추정된 모습의 주장성 창고 건축물의 모습 - 우진각 지붕안

 

 

 

그래서 저도 이 게시물을 작성하던

 

11월 중순까지는 기존안에 따라

 

 

 

그냥 우진각 지붕에

 

사각기둥과 가벼운 주심포 건물로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장성 신라 창고건축물 천두식 + 꺾음 팔작지붕 버전

 

 

 

우연치 않게 발굴당시

 

사진 자료들을 확인하다보니

 

 

 

주장성 건축물은 2025년

 

현재까지 알려진거랑 다르게,

 

 

천두식 + 꺾음 팔작지붕 건축물

 

가능성이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장성 추정 신라창고 건축물은 , 높지는 않지만 천두식 + 꺾음팔작지붕 건축물이었을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있다.

 

 

 

천두식 + 꺾음 팔작지붕일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한 10%...? 정도로 사실

 

확율은 낮지만, 가능성이 분명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어째서 필자는

 

낮은 확율이지만, 천두식 + 꺾음지붕 건물로

 

건축물로 생각하는지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천두식 건축이란게 뭔지

 

아주 최대한 짧게 알아보겠습니다!

 

 

게시물이 너무 길어지니까 최대한

 

요약하여 천두식 건물을 정의하자면,

 

 

기둥에 구멍을 뚫어서 ㅡ 모양

 

목재 빔을 실처럼 엮는 건축술 입니다.

 

 

중국의 오리지널 천두식 건축물들. 기둥이 엄청많고, 어미기둥을 사용하며, 맞배지붕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천두식 건축물은

 

건물 측면 방향으로 기둥을 매우

 

많이, 촘촘하게 사용합니다.

 

 

 

답답할 정도로요.

 

 

 

또한 보통은 어미기둥 이라는 아주

 

길다란 중앙 기둥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게 바로

 

빽빽한 기둥들 / 중앙 어미기둥 /

 

서로 다른 내외부 기둥배치 방식

 

입니다.

 

 

주장성 신라 군용창고 건물터 발굴사진 드론샷 - 눈여겨 봐야할게 [ 건물내부 파랑색 동그라미 표시들 ] 이다. 이게 천두식을 추정케 하는 표시들이다.

 

 

 

이게 발굴당시 촬영한

 

남한산성 주장성 추정

 

신라건물터 사진 입니다.

 

 

 

이 사진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요,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게

 

[ 기둥 의심 자리 표시 ]

 

이겁니다.

 

 

사진속의 흰색 / 파랑색 / 하늘색 구분선이 대다수는 기둥흔적 의심자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을 보시면 파랑색 / 하늘색 / 흰색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놓은게 보입니다.

 

 

 

제가 이거 발굴 관련자는 아니기 때문에

 

저게 무슨 표시인지는 확실하게 확언을

 

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진을 보면 대략

 

이런 느낌입니다.

 

 

 

하얀색 - 기둥 자리 / 해당 역할이 확실한 경우 

 

파랑색 - 확실하지 않지만, 높은 확율로 기둥자리및 역할추정 수월함

 

하늘색 - 낮은 확율로 기둥자리 or 다른 뭔가 있던 자리인데, 추정 힘듬

 

 

 

 

하얀색 표시선은, 특히 주장성

 

건물터에서 실제 기둥용 초석이

 

있는 위치에 비례하는 적심석 위치만,,,

 

 

 

하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기둥자리가 확실한 곳을, 흰색으로 표시해서

 

역할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는 장소만

 

하얀색 표시선으로 그린거 같습니다.

 

 

 

여튼 기둥자리나 뭔가를 올려서

 

사용한 흔적에 원형 표시를

 

해놓은건데요,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게 바로

 

건물내부 파랑색 원형 표시 입니다.

 

 

 

거의 모든 파랑색 원형 표시는

 

기둥 위치 입니다 그래서 기둥 의심 흔적들이 맞으며

 

이 표시대로라면, 건물은 천두식에 가깝습니다.

 

 

 

항공 / 드론사진을 기반으로

 

제가 도면을 다시 구성해봤습니다.

 

 

 

비록 사진에 표시가 없는 곳도 있지만

 

일반적인 기둥 배치 방식 , 그리고...

 

 

 

초석이 남아있는 장소와 기둥위치

 

비례를 생각하면, 대략 제가 그린

 

도면처럼 기둥이 있었을 것 입니다.

 

 

 

하여튼 기둥의심 흔적들을

 

모두 기둥이 맞다는 판정이라면

 

전형적인 천두식 기둥 배치가 됩니다.

 

 

 

위에서 미리 알아본 천두식의 특징은 뭐다!?

 

기둥을 촘촘하고 답답할 정도로 사용한다!

 

 

 

 

그래서 주장성 건물터는

 

기둥 배치 방식이 굉장히

 

전형적인 천두식 입니다.

 

 

그럼 이제 2008년 도면하고

 

비교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8년 당시 발굴 조사 추정도면. 연구가 미진한 상태에서 매우 보수적으로 그린 도면인거 같다.

 



 

 

제가 그린 도면이랑

 

2008년 기존 도면이랑

 

기둥 배치가 전혀 다르죠??

 

 

 

그 이유는 이겁니다!

 

 

 

제가 그린 도면 = 기둥의심 흔적까지 포함

 

2008년 도면 = 기둥의심 흔적 대부분을 배제한 도면

 

 

2008년 주장성 건물터 초석배치 추정 평면도 - 2008년 버전은 기둥의심 흔적을 하나도 포함시키지 않은 도면이다.



 

항공 / 드론사진 하고

 

실제 연구원분이 그리셨던

 

초석 간격 도면을 보면

 

 

 

파랑색 표시선으로 체크해놓은

 

기둥의심 흔적을 전부 배제하지는 않았고,

 

 

 

* 벽체 외부에 실제로 있는 초석하고 *

 

정확히 일치하는 기둥흔적 의심자리 열만

 

적용하여 그린 도면인듯 합니다. 

 

 

2008년 당시 발굴 조사 추정도면. , 내부 기둥자리를 그렸으므로, 파랑색 기둥의심 흔적까지 적용한 도면이 맞긴하다.

 

 

 

 

그럼 여기서 의구심이 들죠???

 

 

 

분명 2008년 그린 도면도 분명히

 

내부에 기둥이 있다고 그렸습니다.

 

 

 

또한 도면을 그릴때, 2008년 드론샷에

 

등장한  파랑색 기둥의심 표시선까지

 

포함해서 그렸습니다만...

 

보고서에 누락된 기둥흔적 의심자리 = 2008년 내부초석 결실자리와 많은 수가 일치하고 있다. 이 말은, 기둥흔적 의심자리를 기둥자리로 봤다는 뜻이다.

 

 

어째서 초석열에 딱 맞는

 

파랑색 기둥의심 흔적만

 

기둥열에 포함시켜 그렸고,

 

 

 

나머지 초석 배열에 일치하지

 

않는 기둥의심 흔적들은 어째서

 

철저하게 배제한걸까요...!?

 

 

주장성 신라 건물터는 남한산성 행궁의 삼문 위치에서 발견되었다. 문제는 이거 발굴했을때 이미 행궁 복원과정에서 발굴된 것이다!

 

 

 

제 생각에는 파랑색 기둥의심 흔적

 

대부분을 배제한, 굉장히 보수적인

 

도면만 그린 이유는...

 

 

 

단순하게, 연구할 시간이 없는데

 

언론에 보도해야 되니까, 최대한

 

보수적인 시선으로 만든듯 합니다.

 

 

 

게다가 이미 남한산성 행궁 복원중인 상황이라

 

주장성 건물을 시간들여 연구 / 땅파서 추가발굴

 

이런건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파랑색 / 하늘색 기둥자리 의심 표시선들은 초석열 맞는 보수적인 위치를 제외하고 몽땅 배제되었는데, 현실적인 이유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니까 행궁 복원이 일단 우선이니까

 

심도있는 추가 연구를 못했으며,

 

 

 

연구 진행이 더 안되니까 추가로

 

땅파야할 이유도 없어서, 추가 발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파랑색으로 표시했던 기둥의심흔적

 

대부분은 그냥 뭍힌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주장성 기둥흔적 파랑색 표시선들은

 

잘 모르겠는데, 연구할 시간은 더 없고,

 

행궁 복원해야 하니까 걍 패스 한거같네요.

 

 

 

남한산성 행궁 한참 복원하던 중이라

 

뭐 어쩔수 없었을 거에요. 연구원 분들이

 

뭔 죄가 있겠읍니까!?

 

 

 

행궁 복원이 그 당시 훨씬 최우선 과제였고

 

연구원 분들은 빨리 보도자료 내놓으라는

 

의견에 따라서...

 

 

그냥 철저하게 보수적인 시선으로

 

도면을 작성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2008년 당시 발굴 조사 추정도면. , 내부 기둥자리를 그렸으므로, 파랑색 기둥의심 흔적까지 적용한 도면이 맞긴하다.

 

 

 

하여튼 제가 하고 싶은 이겁니다.

 

 

 

분명히 기둥 흔적 의심 자리가

 

되게 많고, 실제로 도면 그릴때

 

포함했습니다. 흔적 자리들을. 근데 .

 

 

 

 

초석 배열에 맞지 않은 기둥의심 자리들

 

절반 이상은 배제당해서 그냥 뭍혔을 거라는것,

 

 

 

그리고 이게 상황상 어쩔수 없이

 

연구할 시간 없어서 걍 그랬을 거라는거 입니다.

 

보고서에 누락된 기둥흔적 의심자리 = 2008년 내부초석 결실자리와 많은 수가 일치하고 있다. 이 말은, 기둥흔적 의심자리를 기둥자리로 봤다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파랑색 표시선의

 

기둥의심 흔적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 정말!

 

 

 

그 어디서도 상세하게 알려주는데가

 

아예 없으니까 이렇게 생각할수 밖에 없네여...

 

 

 

파랑색 / 하늘색 기둥자리 의심 표시선들은 초석열 맞는 보수적인 위치를 제외하고 몽땅 배제되었는데, 현실적인 이유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간에 주장성 창고 건물이

 

어째서 천두식 건축에 가까운지...

 

 

기둥 의심 자리가 맞다는 가정하에

 

다양하게 분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사항 *

 

 

 

주장성 건물터가

 

천두식 + 팔작 꺾음지붕이다!

 

 

 

라는 주장은 기둥흔적 의심 자리가

 

100% 기둥이 맞다는 가정하에 작성한 내용입니다.

 

 

 

2008년 발굴 마무리 이후로, 기둥흔적 의심 자리에

 

대한 해설 및 연구는 아무거도 없다고 보시면 됩니당...

 

 

주장성은 툇칸 + 기둥의심 흔적포함 8칸이며, 중앙 어미기둥을 내부까지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첫번째 이유는 기둥 배열입니다.

 

기둥 배열이 매우 전형적인

 

천두식 건축물 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기둥을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천두식은 기둥을 엄청 많이 빽빽하게

 

사용합니다. 기둥간 간격이 좁습니다.

 

 

 

( 모든 건물이 일정한 간격인건 아니지만 )

 

( 평균 한칸당 2m 근방 내외라고 생각하면 됌 )

 

 

기둥흔적 의심자리를 추정가능한 선에서 전부 기둥이 맞다고 본다면, 내부는 이렇게 기둥이 촘촘했을 것이다.

 

 

 

기둥의심 자리를 전부 기둥이라고

 

봤을때, 그대로 건물을 재현해보면

 

전형적인 천두식 기둥배치 입니다.

 

 

 

사람이 들어가서 맘껏 활동하기

 

불편할 정도로 기둥이 엄청나게

 

빽빽합니다.

 

일본 군마현 구무목가주택 - 천두식 건물은 이렇게 기둥을 엄청많이 사용한다.

 

 

일본 군마현에 있는 구무목가 주택이라는

 

약간 발전된 형태의 천두식 건축물을 보면

 

 

 

그냥 느낌이 팍! 하고 오시죠!?

 

기둥이 미칠듯이 빾빽하잖아요!?

 

 

주장성 창고추정 신라건물터 기둥의심흔적 자리까지 포함한 내부 모습. 기둥이너무 많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주장성 건물터 기둥의심흔적 자리까지

 

기둥으로 확정해서 재현한 모습하고

 

매우 비슷하지 않나요!?

 

 

 

기둥의심흔적 자리가 왜 중요하고

 

왜 천두식 건축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인지 이해가 딱 되죠!?

 

 

 

기둥 배열부터 갯수까지 전형적인

 

천두식 기둥 배치를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일반적인

 

전통 한옥에 사용하는, 가구식이랑

 

기둥 갯수부터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장성 건축 내부건 기둥배치및 건축양식 추정 모습. 건물 내부는 많이 심플한 양식이 반복되는 천두식 이었을 것이다.



 

천두식 건물로 추정하는 두번쨰 이유!

 

 

 

주장성 건물터는 어미기둥을

 

사용한 건물입니다. 어미기둥이

 

무엇이냐!!

 

 

 

건물 측면의 정 중아에 사용하는 기둥이며

 

기둥 중에서 가장 높은 기둥을 보통 말합니다.

 

 

봉정사 극락전 측면 정중앙 가장 길다란 기둥이 바로 어미기둥이다.

 

 

 

길다란 어미기둥을 사용하는

 

국내 건축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게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저렇게 한중간에 기둥을 사용하고

 

그래서 천두식은 측면 칸이 보통

 

짝수 입니다.

 

 

 

그런데 건물 측면 정 중앙에

 

사용하는 기둥으로 샛기둥 이라는

 

보조 기둥 역할 기둥이 있습니다.

 

 

봉정사 고금당 측면 샛기둥. 건물 측면 정중앙에 위치하며 보통 들보를 직접 받쳐준다.

 

 

 

그니까 봉정사 고금당 처럼

 

건물 중앙에 위치하며, 들보를

 

직접 받치는 기둥이 샛기둥 입니다.

 

 

 

이걸 보여드린 이유는!

 

 

 

건물 초석 배치만 봤을때

 

측면 정중앙 기둥자리가 무조건

 

어미기둥으로 해석할 순 없습니다.

 

 

2008년 당시 발굴 조사 추정도면 - 측면이 짝수이며 , 정중앙에 기둥이 놓이는 어미기둥이 사용되었던 건물은 확실하다.

 

 

 

 

그러나 주장성 신라 건축물에

 

사용한 중앙 기둥은, 샛기둥 보다는

 

천두식계 어미기둥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요.

 

 

 

이유는 앞서 보았듯이 , 주장성 건축물의

 

기둥 배치가 기본적으로 천두식 건물의

 

특징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둥의심흔적 자리가 기둥이 전부 맞다면

 

그냥 외형과 기둥간격, 기둥 갯수 등등

 

전형적인 천두식 건물인데

 

 

 

일반적으로 천두식 건축물은

 

측면 정중앙 기둥을 가장 높고 길다란

 

어미기둥으로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주장성 건물터의 어미기둥 라인과 기둥자리 추정 표식 - 내부에서 정중앙 기둥을 수평으로 연속적인 사용을 하므로, 어미기둥 특성에 부합한다.

 

 

 

주장성 건물터의 정중앙 기둥터를 보면

 

수평으로, 연속적으로 , 끊임없이 내부에서

 

 

 

정중앙 기둥을 사용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외부보다 많은 내부 기둥 + 연속적인 정중앙 기둥사용

 

이 두가지를 놓고만 봐도, 천두식계 어미기둥일 가능성이 높죠 !

 

 

주장성 창고 건축물의 기둥의심 흔적을 적용해본 3D 입체 모델

 

 

 

그래서 주장성 창고 건축물의

 

기둥의심 흔적들을 기둥으로 재현해 보면,

 

 

 

중앙에 어미기둥이 연속적으로 계속 나오는

 

엄청 빽빽하고 높다란 천두식 건축 형태가

 

돋보이는 내부 였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형태는 중국의 오리지널

 

천두식 건물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식이에요.

 

가장 전형적인 천두식 건축물 측면도. 기둥이 엄청많고 / 칸수는 짝수 / 정중앙 기둥이 가장 높은 어미기둥이다. 출처 : 구글

 

 

 

중국의 전형적인 전두식 그림을

 

보면 , 매우 많고 촘촘한 기둥과

 

중앙 어미기둥 사용 등등,

 

 

 

주장성 신라 건물터 기둥 배치하고

 

특성이 거의 같다는게 보입니다.

 

 

주장성 신라창고 건물터 기둥흔적 자리까지 포함한 측면도 / 외부까지 측면은 총 8칸으로 짝수이며, 기둥숫자까지 천두식에 부합한다 일단은.

 

 

 

그리고 건물 측면에 정중앙에

 

가장 높다란 길다란 어미기둥을

 

사용하며,

 

 

 

부분적이지만 천두식 건축물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신라 주장성 창고 건물터는

 

어미기둥을 사용한 천두식

 

건축물로 추정 가능한건데요,

 

 

 

그 건축물이 바로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어미기둥을 사용한, 실제 부분적 천두식 건축이다.

 

 

봉정사 극락전은

 

부분적 천두식 건축이며

 

 

주장성 신라 건물터하고

 

가장 비슷한 한국 건물 입니다.

 

 

 

 

 

제가 주장성 신라 건축물의

 

측면 정중앙 기둥을 샛기둥이

 

아니라...

 

 

 

어미 기둥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주장성 건물터는 기둥 배열 때문에

 

천두식 건물로 추정이 가능하며...!!

 

 

 

 

가장 비슷한 국내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 측면 칸수가 짝수이며,

 

 

 

어미 기둥에 구멍을 뚫어서 사용한

 

부분적 천두식 건물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장성 건축터는

 

기둥배치가 천두식 건물의

 

특징을 닮았고,

 

 

 

어미기둥을 사용한 측면 짝수 건물이며,

 

 

 

 

측면 정중앙 기둥을

 

구멍뚫어 천두식으로 사용한

 

실제 어미기둥이 확인되었으며,

 

 

 

부분적 이지만 국내 천두식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주장성 건물터하고

 

부분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각종 국내 자료로써도 천두식

 

건물로 충분히 추정 할 수 있는 상태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측면 벽체부분 가구 모식도

 

주장성 벽체도 측면4칸이다. 물론 벽체 외부만 한정해서다.

 

 

 

실제로 주장성 건물터 차양제외

 

벽체 부분 측면만 보면, 기둥 배치가

 

 

 

외부에 한정해서 4칸으로 봉정사

 

극락전하고 배치가 똑같습니다.

 

 

 

말 그대로 외부만 한정하고

 

차양칸을 제외했을때 입니다.

 

 

정중앙 어미기둥 배열을 3d 입체로 재현한 모습

 

 

 

주장성 건물터는 기둥 배열이

 

천두식에 가까운데 정중앙 기둥이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이므로

 

 

 

3d로 재현한 것 처럼, 천두식계 어미기둥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추정합니다.

 

 

 

 

주장성 창고 건물터로 추정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가장 큰 특징 3번째!

 

 

 

남한산성 발굴 , 신라 주장성 건물터는

 

외부와 내부 기둥 배치가 다릅니다.

 

 



 

그니까 쉽게 말하자면

 

 

 

내부는 천두식 건축이고

 

외부는 가구식 / 주심포 건물로써

 

외부 / 내부 기둥배치가 다릅니다.

 

 

주장성 건물터는 외부와 내부 기둥 갯수가 다르다. 외부 툇칸 or 차양칸하고 내부 건축양식이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그니까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외부 툇칸 / 벽체 외부는 기둥

 

간격 약  3.5m 정도 입니다.

 

 

 

외부 툇칸 / 벽체 외부는

 

일반적인 가구식 건축의

 

칸수 너비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내부 공간 / 벽체 내부 기둥은

 

일정하지는 않지만, 기둥이 가깝게 붙어있는

 

위치의 기둥간격 약 1.7 ~ 2m 사이 입니다.

 

 

 

내부 공간 / 벽체 내부는

 

천두식 건축에 가까운 기둥갯수

 

그리고 칸수와 너비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기둥흔적이

 

 

 

일정하기 않고 약간 중구난방인데요,

 

 

천두식 건축의 가장 큰 장점은 기둥배열이

 

 

매우 자유롭다는게 장점중에 하나 입니다.

 

 

 

 

주장성 창고 건물터 기둥 흔적의심 자리가

 

일정하지 않고 약간 중구난방인 이유가 바로

 

기둥 배열이 자유로운 천두식 건축일수도 있다는 것!

 

 

주장성 건물터 기둥흔적 자리포함 3D 입체 평면도. 외부 툇칸과 내부 기둥 비율을 관찰해보면, 내부기둥이 훨씬 많은게 보인다.



 

눈여겨 보아야 할 특징은 바로!

 

 

외부를 기준으로 봤을때,

 

외부 기둥 사이사이마다 ,

 

 

 

그 사이에 내부는 기둥 1개씩

 

더 설치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일정하지는 않고,

 

 

 

필요에 따라 2칸에 한번 혹은

 

1칸에 한번씩 약간 중구난방 입니다.

 

 

 

여튼간에 안과 밖의 기둥 배치가 다르며

 

안쪽이 기둥을 하나씩 더 설치한 모습이죠.

 

 

 

 

 

되게 재미있는 특징인데요!

 

2m 판축식 벽체를 기준으로

 

 

 

외부 기둥자리 간격은 일정하게 약 3.5m

 

내부 기둥자리 간격은 중구난방 약 1.7m ~ 3.5m

 

입니다.

 

 

 

결론은 내부 외부 기둥배치가

 

다르고, 내부 기둥이 훨씬 많으며

 

내부 기둥은 정말 지멋대로 자유롭습니다!

 

 

주장성 창고건물터 기둥흔적이 [ 전부 실제 기둥자리가 맞다면 ] - 내부는 천두식 / 외부는 주심포계로 안과 밖이 조금 다른 건축양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장성 건축물은

 

외부와 내부 건축양식이 의외로

 

서로다른 건축물 이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특징이

 

바로 판축벽을 기준으로

 

 

 

외부와 내부 기둥 갯수가

 

다르다는 점 이랍니다...!!

 

2008년 발굴당시 드론사진을 기준으로, 판축벽 내부 굴광홈이 기둥이 맞다면, 판축벽 바로앞에 이렇게 기둥들이 촘촘하게 있었을 것이다.

 

 

물론 판축벽 내부 둥그런

 

굴광홈은 기둥자리가 아니라

 

 

 

발굴하려고 땅파놓은 그냥

 

발굴 흔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든 설명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면 판축벽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판축벽 외부 초석칸이랑 , 내부 기둥추정 칸이랑 칸수가 다르다. 내부 칸수가 좀더 많다는게 눈에 보인다

 

 

 

 

판축벽 내부 굴광홈 뒤로

 

일자 정렬 , 오와 열을 맞춰

 

 

기둥 흔적의심 자리들이

 

일렬 종대로 정렬해 있습니다.

 

 



 

판축벽 내부의 굴광홈이

 

이상할 정도로 바로 뒤에 있는

 

기둥자리 의심흔적 파랑 표시들하고!

 

 


오와 열이 딱 맞습니다.

 

일렬종대로, 너무나도 체계적으로

 

오와 열이 딱 맞는게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주장성 건물터 판축벽 내부 굴광홈 바로뒤에 이어지는 기둥의심 자리들을 재현하면 이런모습이다. 판축벽부터 그 뒷부분까지 오와열이 딱 맞는다.

 

 

 

 

그냥 판축벽 내부 굴광홈이 따로 있었다면

 

그저 발굴현장 흔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뒤로 이어지는 기둥흔적 의심자리들 하고

 

오와 열이 맞기 떄문에, 기둥자리로 추정

 

가능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판축식 벽체를 기둥이 보조하는 형태가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판축벽을 구성할때 , 벽 뒷면에

 

기둥들을 촘촘하게 설치하여...

 

 

 

판축벽을 지탱해주는 이른바

 

바탕목 역할을 하던 기둥들 아닌가 합니다.

 

 

 

그니까 2025년 현재까지 이론과 좀 다르게

 

판축식 벽체를 구성할때, 벽 뒷면에 보조용

 

바탕목 기둥을 사용하여,

 

 

 

판축식 벽체를 지탱해주고 구역도

 

나누는 레이어 역할을 하는 기둥이

 

벽체 바로 뒤에 있었을 거라는 뜻 입니다...!

 

 

주장성 신라 창고유적은 , 기둥흔적 자리가 기둥이 전부 맞다면, 발 디딜틈 조차 부족할 정도로 기둥이 많은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복원한 주장성 건물이

 

황토벽이 들어나고, 석축이 그냥 기단마냥

 

아랫쪽에만 몇단 쌓은 모습으로 재현한 이유도!

 

 

 

내부 기둥이 판축벽을 지탱해주는 바탕목

 

역할을 하고, 간격 1.7m 정도로 촘촘하게

 

배치하여 판축벽을 지탱해주므로...

 

 

 

판축식 벽체 곁면에 굳이 성벽돌로 미장하여

 

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각 기둥이 아니라 원형 기둥으로

 

재현 복원한 이유는, 판축벽 굴광홈과 그 아래에...

 

 

 

석축이 약간  u 모양으로 들어가 있는데

 

이 모양 때문에 바탕목이 원형기둥이라

 

u모양으로 되어있지 않았나 해서 입니다.

 

 

왼쪽이 건물 내부 , 오른쪽이 건물 벽체및 외부인데 , 자세히 보면 내부에 초석이 하나도 없다. 내부는 굴립주식 아닌가 추정해본다.



 

특이한 점이라면, 건물 벽체를 기준으로

 

외부는 초석이 잔뜩 발견되었는데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초석이 단

 

한개도 발견이 안되었어요. 정말

 

건물 내부는 초석이 단 하나도 없어요!

 

 

건물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초석이 단 하나도 없다. 외부에는 초석이 많이 남아있어서 더 수상하다. 굴립주식 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내부는 굴립주식으로 만든 건물

 

아닌가하고 혼자 상상해 봅니당...

 

 

 

외부는 초석이 아주 많이 남아있는데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하나도 없어서

 

내부는 굴립주 일수도...!?

 

 

정면과 다르게, 건물 측면 기둥배열은 외부 기둥하고 크게 다르지 않고, 앞뒤로 딱 2개 더 있다.



 

그런데 건물의

 

측면은 조금 다릅니다.

 

 

건물 측면은, 외부 기둥열하고

 

내부 기둥열하고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측면은 내부에 기둥이 앞뒤로 1개씩

 

딱 2개만 더 많은 수준으로, 외부기둥

 

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건물 정면하고 비교해보면 그렇게

 

심하게 기둥 갯수가 차이나지는 않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천두식 건축물 측면도. 측면 기둥갯수가 주장성 건물터 측면 기둥이랑 갯수가 같다.

 

 

 

건축물 측면이 정면하고 비교했을때

 

기둥갯수가 외부 기둥이랑 2개밖에

 

차이가 안나는건 아무래도

 

 

측면이 훨씬 좁은 크기라서

 

그런거도 있긴 하겠지만...

 

 

 

중국쪽 천두식 건물들 중에서

 

측면 8칸인 경우가 꽤 발견되는데

 

 

 

주장성 건물터도 천두식 측면 8칸

 

법칙에 맞추려고 그런거 같기도 하네요.

 

물론 아닐수도 있습니당...

 

 

도면 기둥 배열을 3d 입체로 재현한 모습이다. 외부와 내부 기둥 배열이 다르므로, 외부와 내부 지붕 모양이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주장성 신라 창고 건축물을

 

내부에 기둥 흔적 의심자리를, 전부

 

기둥으로 맞다는 가정을 해서

 

 

 

기둥을 재현해보면, 외부와 내부

 

기둥 배열이 다릅니다. 그래서

 

 

 

외부와 내부는 지붕 모양이 달랐을

 

가능성이 높고, 지붕을 외부와 내부를

 

나눠서 따로 구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부 지붕과 , 내부 지붕을

 

따로 구성할 수 있는 양식으론

 

꺾음 팔작 지붕이 있습니다!

 

 

 

꺾음 팔작지붕은 지붕을 따로

 

구성하여 건물 하중을 나눌수 있어요.

 

 

주장성 건축물은 외부는 우진각 지붕 차양 / 내부는 맞배지븡으로 ... 지붕을 따로 구성한 꺾음 팔작지붕이었을 것이다.

 

 

 

주장성 신라 건축물터는 기둥 배치를 

 

봤을때, 외부는 전형적인 가구식으로

 

우진각 지붕이 형성되는 모양입니다.

 

 

 

내부는 천두식으로 맞배지붕 형태가

 

됩니다. 천두식 자체가 맞배지붕에

 

특화되어있는 건축양식 이기도 합니다!

 

 

주장성 창고 건축물 추정 재현복원도. 기존안과 다르게 외부는 차양칸, 내부는 맞배지붕으로 나뉘어 있는 꺾음팔작지붕 양식으로 추정가능하다.

 

 

 

그래서 개인적인 추정인데요,

 

외부 툇칸으로 알려져있는 부분이

 

사실 차양칸이 아니었나 합니다.

 

 

 

외부와 내부 지붕을 따로 구성할 수 있는

 

꺾음 팔작지붕이므로, 외부 지붕은

 

차양으로 자연스럽게 귀결 됩니다.

 

 

 

그러니까, 주장성 창고 건축물은

 

4면 차양칸인 부계주잡 건축물

 

아니었나 하고 추정해 봅니다.

 

 



근데 이거 보시는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 건물 외부와 내부가 건축술이 다르다고 ? ]

 

[ 이건 추정이라기엔 말이 안되는거 아님 ? ]

 

 

 

이라고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건축 양식은 의외로

 

삼국시대 즈음에 나름대로 실사용

 

되었던 건축 양식인 듯 합니다.

 

 

 

외부와 내부 건축술이 다른

 

삼국시대 건물터 예시를 한번 볼까요!?

 

 

고구려 동대자 유적 평면도. 건물 내부와 외부 기둥 배열이 다르다.

 



건물 외부와 내부 건축술이

 

전혀 다른 가장 유명하다고

 

그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건물터는

 

 

바로!

고구려 동대자 유적 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도면에 의거해서, 추정 상상재현으로 만들어본 - 고구려 동대자유적 건축물

 

 

 

 

동대자 유적 천두식 건축양식 추정은

 

서정호 국립공주대학교 문화재 보존과학과

 

교수님을 비롯하여,

 

 

 

 발굴 이래 수많은 박사님들과 교수님들이

 

꾸준히 삼국시대 천두식 건축물로 추정하는

 

발해 + 고구려 유적지 입니다.

 

 

 

고구려 동대자 유적도

 

주장성 신라 건물터와 비슷하게...

 

 

내부 방은 천두식, 외부는

 

차양을 두른, 일반 가구식

 

으로 추정하는 건물 입니다.

 

 

 

주장성 건축물하고 많이 다른거 같은데

 

외부 차양 / 내부 천두식이라는 공식이

 

이상하게 비슷하죠!!!

 

 

 

 

동대자 유적 중심 건물은

한지붕 방 두개 건물로 추정 가능해요.

 

 

지붕 하나에 방이 2개 있는 모양인데

그 중에 오른쪽 첫째방은 , 기둥 배열

그리고 벽체 형태 때문에...



천두식 or 귀틀식 건물로 추정하는데요,

필자는 개인적으로 천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알려진대로는

오른쪽 첫번쨰 방만 천두식이고

 



왼쪽 두번쨰 방은 걍 일반적인

건축물로 생각하는데요,



지금까지 공개된 도면을 기준으로

2025년 필자가 개인적으로 연구해보니

왼쪽방 또한, 천두식 건축으로 추정 가능하더라구요.

 

필자 개인적인 추정으로는, 동대자 유적은 한지붕 방두개 꺾음지붕 + 두개방 전부 천두식 + 부섭지붕 ( or 영지붕 ) 형태 건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발해시절 왼쪽방 또한 기둥열이

 

지멋대로 자유분방한 모양새 인데요,

 

 

이런 자유로운 기둥 배열이

 

천두식의 특징중에 하나 입니다.

 

 

 



천두식 건축물의 큰 특징중에 하나가

 

기둥 배치가 가구식 건축에 비해서

 

훨씬 자유로운게 특징입니다.

 



기둥배치가 자유로운 점이 천두식의 특징인데

 

고구려 동대자 유적에서, 이런 천두식 건축의

 

특징이 관찰이 된답니다...!!!

 

고구려 동대자 유적 왼쪽 두번쨰방은 발해시절 한번 수리했다고 하며, 오른쪽하고 약간 다른식의 천두식 건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거!



왼쪽방 도리열이 오른쪽방 도리열하고

거의 대부분 수평으로 연결되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두 방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기둥배치라서

둘다 같은 건축양식 이었을 가능성이 많이 높습니다.

 



그리고 외부 차양칸 기둥 배열이랑

방 두개 기둥배열 전부 서로 다른

매우 자유분방한 기둥 배치라서...



동대자 유적은, 한지붕 방두개 건물이며

꺾음 지붕 + 부섭지붕이 섞인 되게 특이한

건물로 개인적으로 추정합니다.

 

 

 

그래서 고구려 동대자 유적 건축물의

 

내부 기둥과 외부 기둥의 서로 다른 배치 형태가

 

주장성 창고 건물하고 비슷한 건축 양식이라는게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 입니다...!!

 

 

 

고구려 하고 신라하고 건축양식이 나름

 

교차검증되고 있다는 재미있는 사실 입니다!

 

북위 낙양궁 청수전 재현복원도. 1층 차양칸은 주심포 양식이고, 지붕 상단과 내부는 천두식으로 되어있으며 꺾음 팔작지붕 건축물이다.



두번째 삼국시대 시절

 

천두식 + 꺾음지붕 자료는

 

 

중국의 북쪽 위나라!

 

북위 낙양궁 궁궐 재현복원도 인데요,

북위 낙양궁 태극전 추정재현 복원도

 

 

 

사실 제가 이거 관련

 

자료를 찾으려고 했는데...

 

 

자세한 자료를 솔직하게 찾기가

 

어려워서..... 사진만 겨우 확보했습니당...

 

중국 북위 낙양궁 영운대 양풍각 재현복원도 - 건축물을 중국에서는 전부 꺾음지붕으로 판단한듯 하다

 

 

 

여튼 삼국시대 시절 북위 건물도 보시면

 

아랫층 건물 본체는 특이한 고대 주심포인데,

 

 

지붕을 보면 어미기둥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기둥에 도리를 바로 올리고 들보 크기가 전부

 

일정하기 때문에 천두식계 지붕 입니다 l

 

 


그니까 건물의 몸통 부분과

 

지붕 부분이, 다른 건축술로

 

구성된 건축물은...

 

 

 

의외이지만...!!

 

 

 

삼국시대때 흔한건 아닌데 그래도

 

나름 사용되었던 건축 방식으로

 

추정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삼국시대 천두식 추정

 

건물들은, 하나같이 그 추정안이

 

꺾음 팔작지붕 계통 입니다.

 

 

 

애초에 천두식 건축물이 맞배지붕에

 

친화적인, 맞배지붕 특성이 강한

 

건축술이라서...

 

 

 

천두식 건축에 4면 차양을 설치한 경우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꺾음 팔작지붕이 구성됩니다.

 

 

중국의 꺾음 팔작지붕 천두식 민가 건축물

 

 

천두식 건축물을 꺾음팔작지붕으로

 

구성한 예는, 현대의 중국 남부 지역의

 

사례에서도 보이므로...

 

 

 

주장성 신라 창고 건축물 또한

 

기둥 의심흔적 자리가 전부 기둥이

 

맞다면, 꺾음지붕 건축물이 맞았을 거라는...

 

 

 

여러가지 자료들을 통해서 이러한

 

추정이 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기 떄문에

 

주장성 신라 창고 건축물은

 

기둥흔적 의심 자리가,

 

 

전부 실제 기둥이 맞다면

 

아주 높은 확률도 꺾음 팔작지붕

 

건축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꺾음 팔작지붕으로

 

지붕을 구성할 경우, 의외의 것이

 

하나가 해결 되는데요! 그 의외의 것은 !

 

 

 

바로 창문 설치방식의 해결 입니다!

 

 

 

주장성 창고 건축물은 2m 수준의 너무나도

 

두꺼운, 성벽같은 판축벽 떄문에 아무래도...

 

환기용 창문을 어디다 설치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벽이 너무 두꺼워서 창문이 있을수가 없는 수준이죠.

 

그래서 창문이 아예 없거나, 혹은 판문을 자주 열거나

 

그러지 않았을까!? 라고 추정만 했는데요...

 

 

 

 

꺾음팔작지붕으로 지붕이 구성되면

 

합각 박공 안쪽 측면벽에 창문을

 

설치할 수 있게 되므로,

 

 

창문과 환기 문제가 손쉽게 해결됩니다.

 

창문이 있는 위치는 기둥 사이라서

 

 

 

2m 판축벽을 저 위에까지

 

만들기에는 호율도 안좋고 그닥

 

효율적이지도 않으므로,

 

 

 

오로지 저기 지붕 옆면이!

 

창문이 있을만한 , 일반적인 수준의

 

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떄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꺾음 팔작지붕 보다는 그냥 일반 팔작지붕

 

가능성도 있는거 아니냐!?

 

 

 

라고요.

 

 

 

그런데 일반적인 팔작지붕은

 

아니었을 확율이 많이 높아요.

 

이유는 하중문제 때문이에요.

 

 

 

 

근정전을 예로 들어보면

근정전은 정면 30m 측면 21m 입니다.



주장성 건물이 정면 53.5m 측면 17.5m 인데요,

주장성 건물이, 의외로 측면 길이가

 

근정전이랑 비슷한 수준이죠.

 

 

( 딱 건물 한칸 정도 차이만 나죠. )

 

 

 

 

근정전은 정면 30m 측면 21m 이다. 팔작지붕 건축물인데 지붕이 너무 무거워서 수리를 한번 대대적으로 한적이 있다.

 



근데 일반 팔작지붕인 근정전은 하중 문제 때문에

지붕이 터질뻔한 상황이라 지붕을 대규모로

 

수리를 한 전적이 있습니다.

 

 

 

지붕 무게 때문에 건물 수리를

 

한번 대규모로 했었다는 것이죠.

 




주장성 건물은 측면 크기가 근정전과 맞먹는데

정면은 훨씬 길어요. 만일 일반 팔작지붕이라면

근정전보다 훨씬 하중 부담이 심할게 당연하겠죠!?

 

 

 

 

그러므로 주장성 신라 건축물은

 

일반 팔작지붕 보다는,

 

 

 

하중분산에 훨씬 유리한 지붕인

 

꺾음 팔작지붕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번에 사용한 포작은,

 

 

건축의 브라켓 시스템은 위에서

 

한번 다뤘던 ,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되는

 

창방이 없는 주심포식 포작이 아니라...

 

 

소첨차 없이 초제공만 사용하는

 

삼국시대식 단순 포작을 적용해봤습니다.

 

 

통일신라 건축물은 이렇게, 초제공만 사용하는 주심포식 포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런 모양은 뭔가 조선시대 건축에서

 

쉽게 볼 수 있을거 같아 보이죠!?

 

 

실제로 조선시대 건축에서 아 ~~~ 주

 

간헐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양식인데요,

 

 

이런 초제공만 사용하는 양식은

 

삼국시대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북위 6세기 건축양식

 

 

 

이런 초제공만 나오는 건축 양식은

 

북위 시절 건물을 따라한 저러한

 

집모양 여러가지 제품들 중에서

 

 

간헐적으로 발견되며, 보통 대부분

 

5 ~ 6세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합니다.

 

 

불국사 가구식 석축의 첨차석 - 주두에 초제공 하나만 사용한 듯한 모양이다

 

 

 

불국사 가구식 석축기단을 보면

 

첨차석이라고 , 목조 건축물의 브라켓을 닮은

 

튀어나온 돌을 사용한 석축이 있는데요,

 

 

불국사 가구식 석축의 초제공 모양 첨차석이 있어서

 

통일신라 시절 건물 또한, 6세기 북위 궁궐 양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도리방향으로 소첨차가 없이 그저

 

초제공만 사용하는 건축양식이 있었을

 

거라는 추정 정도는 해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 북위 영운대 양풍각 - 북위 궁궐 건축물을 중국에서는 전부 꺾음지붕으로 판단한듯 하다

 

 

 

위에서도 다룬 자료이지만

 

북위시절 궁궐 건축물을 중국에서

 

추정 재현한 건물을 보면,

 

 

삽공이라는 제공을 잔뜩 사용한

 

건물로 그려놨는데, 북위 토기 그리고

 

불국사 석축의 첨차석 양식이랑 비슷해 보입니다.

 

 

호류지 옥충주자 7세기 추정 하앙및 포작

 

 

들보 방향으로 첨차없이

 

제공만 나오는 건축 양식은

 

호류지 옥충주자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자하문 아랫쪽 가구식 석축기단의 초제공처럼 설치한 첨차모양 석재와 사각기둥



그래서 꺾음 팔작지붕을 구성하면서

 

기존에 사용했던 창방없는 간단한

 

주심포식 포작이 아니라,

 

 

북위시절 건축물 부터 통일신라 사찰

 

불국사 가구식 석축기단의 첨차석 초제공

 

사용법까지 고려하여 포작을 구성했어요.

 

 

도리방향 소첨차나 대첨차가 없고 익공이 제공역할을 하는 건축양식. 삼국시대부터 유래된 건축양식인듯 하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 건축물에서 조차 간혹

 

관찰되기는 합니다!

 

 

근데 발견이 쉽지 않은데요,

 

도리 방향이라는 가로방향 첨차없이...

 

 

제공이나 익공만 나오는

 

경우가 많이 드물기 때문이에요.

 

 

삼척 영은사 팔상전 - 도리 방향에 소첨차나 대첨차가 없고 익공만 제공처럼 있다.

 

 

그래도 지방 사찰 곳곳에

 

정말 어쩌다가 한번씩은 발견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삼국시대 건축양식이

 

조선시대까지 전승된 경우, 그러니까

 

 

 

삼국시대 ~ 조선시대간 건축 문화적 연속성을

 

알 수 있는게 바로 첨차없는 초제공 건축양식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고구려 각저총. 흰벽에 주토단청을 칠했으며 창방이 없다.

 


물론 우진각 지붕에서 다루었던

 

첨차없는 간단한 주심포식 건축물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주향교 신삼문의 전후퇴칸 창방없는 주심포 - 고구려 각저총 건축양식하고 매우매우매우 유사하다!
소첨차 없는 초제공 건축양식도 / 창방없이 소첨차만 있는 고구려식 포작도, 모두 가능성이 있는게 주장성 건축물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에게, 의외로

 

삼국시대 건축 양식이 조선시대 까지

 

남아있는 경우를 알려드리고 싶어서,

 

 

여러가지 건축 양식을 적용하여

 

재미나게 볼 수 있도록 하려고, 다양한

 

건축양식을 적용했다고 생각해 주세요!

 

 



주장성 건축물은 기둥만으로는 브라켓 시스템

 

포작을 완벽하게 추정하기 힘드므로, 무엇이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주장성 신라 창고 건축물은, 지금까지는 사각기둥에 일반적인 우진각 지붕으로 추정했다.

 

 

결론은!

 

2025년 11월 중순까지는

 

주장성 신라 건축물을...

 

 

공식적으로

 

우진각 지붕 일체형에

 

사각 기둥으로 추정했습니다.

 

 

주장성 신라 건축물은 꺾음팔작지붕 천두식 건축양식일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다고 개인적으로 추정한다.

 

 

 

 

2025년 11월 이후

 

신라 주장성 창고 건축물을

 

꺾음 팔작지붕으로 추정했으며,

 

 

 

필자 개인적인 추정입니다.

 

 

2008년 발굴 당시 신라 주장성 창고건물터 / 기둥의심 흔적은 일정한 법칙에 맞춰 배치되어 있으므로, 기둥자리로 추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정한 이유는 , 발굴당시

 

드론사진을 관찰하다가 알아낸 !

 

 

기둥흔적의심 표시들이

 

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배치되어 있으며

 

 

기둥흔적의심 표시 일부분이

 

2008년 공식 도면에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짧은 논문 수준의 너무나도 길고 긴

 

교차검증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받으세요...!!

 

 

 

*참고사항 *

 

 

이  내용은 25년 12월 5까지

 

연구된 내용으로 작성했습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변화 /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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