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게시물에서는...
당파풍 이라는 특이한 곡선지붕
건축물에 대한 내용을 약간이나마
아주 약간이나마 다뤄봤습니다.
그리고...
쌍하앙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
정도를 알아보고록 하겠습니다.
먼저 쌍하앙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아무튼간에 이번에 어쩌다보니
고려시대 쌍하앙 건축 양식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과 나름대로
자료들을 확인하면서 나름 결론을
내게 되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추정하건데,
고려시대 쌍하앙 건축물 중에서
이런 포작의 형태를 하고 있는...
고려 쌍하앙 건축물은 분명히,
아니 거의 무조건 있었을 거라
약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려시대 쌍하앙 건축물이
현재까지 실제로 남아 있지는 않으며...
고려시대는 건축양식은 문화적인
성장과 발전 덕택에 , 외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다양한 모습 / 다양한 형태 / 다양한 양식의
쌍하앙 혹은 하앙 건축물들이 있었을 겁니다.
( 각종 자료들로 추정하건데 )
( 고려는 하앙 양식이 꽤 다양했을걸로 추정됨 )
그래도 그 와중에 , 이런 모습의 하앙은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 개인적으로 거의
확신하게 되었어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이제부터 제 나름의 생각과
제 나름의 교차검증 / 자료들을
토대로 , 최대한 쉽게 풀이해보겠습니다.
- 들어가기에 앞서 -
일단 하앙이란게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게시물 입니다.
그래서 아주아주 짧게
하앙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림의 설명처럼 하앙은
처마를 늘리기 위한 기술에 사용된
지렛대 시스템의 핵심 부품 입니다.
저 지렛대 시스템 부품이 한개면
그냥 하앙, 두개면 쌍하앙 입니다!
- 고려시대 쌍하앙 건축양식, 개인추정 모습및 고증해보기 -
이제부터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최대한 전문용어
사용안하면서...
최대한 쉽게 풀어보도록 할게요.
일단 고려시대 건물에는 하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중에서,
일단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하앙 건축 자료중에선 가장 오래된
자료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삼존불감 그리고 하앙
제가 고려시대 하앙 건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하앙을 추정할 수 있는 건축 자료며...
제가 몇년간 복원 / 재현해왔던
모든 고려시대 건축의 시작점인...
바로 간송미술관 소장
고려 금동삼존불감 전각 입니다.
금동삼존불감은 11세기 추정
자료로써, 고려와 거란의 문화적
고류를 추정해볼 수 있게 해주는
뭐 그런 자료 입니다.
게다가 사치호코 닮은 물고기 치미,
청자지붕을 표현한듯한 푸른 지붕,
배흘림 기둥및 지붕마루 잡상 등등
11세기 즈음 고려의 건축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료 입니다.
그리고 이 금동삼존불감은
하앙이 표현된 건축물자료도
추정해볼 수 있답니다. 어째서일까요?
이유는 그림의 설명대로 입니다.
건축물 45도 모서리 각도에 있는
포작...
그니까 45도 귀한대 라는 포작이
좌우 옆면에 비해 아래로 내려간
모습입니다!
건물 중간에 있는 첨차와 포작은
내려간 모습이 아닙니다. 멀쩡하죠.
그러니까 저 모서리 포작과 첨차가
아랫쪽으로 내려간 표현이 바로
하앙을 표현했다고 추정됩니다.
그니까 멀쩡한 가운데 포작과 다르게
하필 모서리만..... 무언가 받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위치에서 저 정도로 무언가를
받쳐야만 한다면 , 고려시대떄는
하앙밖에 없어요.
게다가 하앙은 지렛대 시스템이라
아래를 향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다보니...
건물 모서리 포작이 저렇게 아래를 향하는
표현을 했다는 것 때문에, 하앙이 있었던
건물로 추정이 가능한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거 !
이게 ... 좀 표현이 이상하긴 한데요...
하앙이 있었다는 표현은 있는데요,
하앙의 모습을 생략했읍니다.
좀....이상하죠!?
하앙 시스템은 표현했으면서
정작 하앙자체는 아예 생략했어요...
제가 몇년간 고려시대 쌍하앙을
이런 모습으로 만든것을 바로 이
금동삼존불감이 시작점 입니다.
하앙이 있었다라는걸 표현했지만
하앙 자체는 아예 생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가운데 부분 포작도, 하앙이
있었는데 그냥 생략한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금동삼존불감의 포작 모습을
나름대로 분석해봤습니다.
금존삼존불감이 만일 하앙을
생략한게 확실하다면, 전체적으로...
건축물 외형과 시스템이 충분히
쌍하앙에 걸맞는 시스템, 그니까...
금동삼존불감은 쌍하앙 지렛대
시스템이 생략만 되었지, 일단...
쌍하앙이 충분히 구성된 모습이다!!!
라고 추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몇년전에 고려또한
쌍하앙 건축물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 내용의 시작점과 동시에
이 내용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고려시대 건물을 재현및 복원을 했던
.... 이론적인 시작점 입니다.
2. 고려 쌍하앙은 조선시대 / 일본 / 중국 건축으로 추정 가능하다.
그리고 최근에 이런 저런
자료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고려시대때 쌍하앙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있기는 있었겠구나 라고...
나름대로 확신하기 시작했어요.
그 확신을 하게 해주는 자료들을
보겠습니다.
이 사찰은 사찰 선암사
부속 암자, 참당암 입니다.
건물은 대웅전 입니다.
여러분!
이 참당암 대웅전에 고려시대
쌍하앙을 추정하게 해주는 재미난
장치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인터넷에 그나마 알려진
참당암 대웅전 배후면 포작
시스템은 이렇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 참당암 대웅전 배후면은 ]
[ 고려시대 소로와 첨차가 발견된다 ]
[ 배흘림및 포작 시스템이 ]
[ 고려시대 후기 양식이다 ]
[ 그래서 참당암 대웅전 배후면은 ]
[ 고려시대 건축 자재를 재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참당암 대웅전
뒷면 소로 / 첨차 모습이라던가...
배흘림 기둥으로 인하여 분명히
고려시대 건물을 재사용한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저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니까...
참당암 대웅전 배면 포작은
현재까지는 고려후기, 그니까
13 ~ 14세기로 추정하는데요,
이번에 저 개인적으로는
12세기 극초반, 고려 최전성기 시절
건축양식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튼 참당암 대웅전 뒷면은
고려시대 쌍하앙을 추정이라도
하게 해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자.... 잘 보세요!
제가 재현한 고려 쌍하앙 입니다.
포작을 잘 관찰 하셔야 합니다!
참당암 대웅전 뒷면 포작!
제가 재현 / 복원한 쌍하앙
건축과 비슷한게 느껴지시나요!?
이 시뻘건 건물은 일본의 건축물!
16세기에 재건한 일본의 삼층목탑!
1632년 목탑. 일본 기요미즈데라
산쥬노토 ( 三重の塔 )입니다.
[ 한국명 : 청수사 삼중탑 , 혹은 삼층목탑 ]
이 건물은 1102년, 송나라 건축이
확실한 중국 송나라 쌍하앙 건축물
진사 성모전 입니다.
제가 올린 사진들을 보시면
쉽게 이해되시죠!?!?
1330년 고려 추정 참당암
1120년 중국 진사 성모전
1632년 일본 청수사 삼중탑
이 3가지 역사적인 건물들의
포작 시스템의 기본틀이 사실상
똑같은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설명사진을 보시면 아주 그냥
단박에 이해가 가실겁니다. 그쵸!?
한중일 3나라 건축물의
포작 시스템의 기본틀이
98% 똑같습니다.
한국은 가장 기초 모양
일본은 거기서 하앙 1개 추가
중국은 거기서 하앙2개 + 익형공 추가
기초틀에서 건축부재가 약간씩
추가되는 모습입니다. 신기하죠!?
* 참고사항 *
익형공 : 그냥 별 기능없는 장식용 첨차입니다. 소로가 없는게 특징!
그니까 선암사 부속암자 참당암
대웅전 건물뒷편 포작은,
중국 / 일본 건축물 예를 봤을때
하앙계 건축에서 사용하는 포작계통
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려시대 하앙 계통
건물들은... 참당암 대웅전 포작이 기반
아니었을까!? 하고 추정할 수 있죠.
근데 좀 아쉬운게... 12세기 포작하고
다른점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참당암 대웅전 포작은
고려시대 1330년대 포작을
조선시대 건축에 맞게 수리하느라...
디테일이 조금은 다르게 변했습니다.
( 1출목 소첨은 2제공에 올라가야 하지만 )
( 그러나 참당암 대웅전 1출목 소첨은 위치가 다르다. )
그러나 1출목 소첨 위치만 다를뿐
1출목을 1출목 첨차가 잡아주는 모습,
그리고 살미제공이 3개까지 사용된 모습
등등... 1출목 소첨차 위치만 제외하면...
고려시대 포작의 특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축물 입니다!
그럼 님들...!!!!!
이거 보면 이해가 팍 가시죠!?
금동삼존불감은 10 ~ 11세기 고려시대
최전성기 시절 자료 입니다. 그리고...
하앙을 표현한 흔적이 있어서
하앙 건축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참당암 포작은 12세기 즈음
유행한 하앙계 포작 계통의
특징을 보여주는 포작 입니다.
중국은 물론 , 일본의 하앙 건축물 조차
실제로 참당암 포작하고 같은 방식으로
하앙 포작을 사용한게 확인 됩니다.
또한 참당암은 여러번 수리했지만
1330년 고려시대때 한번 재건한
기록이 확실한 건물 입니다.
건축 부속 자재들 그리고
상량문에서 발견된 기록 이 두가지 모두
1330년 고려후기에 정확하게 부합 합니다.
그러므로..... 금동삼존불감을 통하여
고려시대때는 하앙이 있던 것으로
추정 가능한 상황이고,
암자 참당암 대웅전은
중국 / 일본 건물과 교차검증으로
하앙건축에서 사용하는 포작계통이 확인됩니다!
그럼 뭐 당연히 고려시대때
이런 쌍하앙 건축이 있었을
거라는 추정.....
너무나도 타당하지 않습니까!?
실제 자료 / 교차검증 모든면에서
이런 모습의 고려 쌍하앙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뾰족한
칼날 모양의 하항 건축물?
그냥 지금도 존재합니다.
너무나도 유명하죠?
화암사 극락전은 현재 남아있는
한국 전통 건축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앙이 남이있는 건축물 입니다...!!
그니까 그냥 남아있는 실제
건물 자료들을 총 종합해보면,
고려는 하앙 건축물은 거의 무조건
있었고, 특히 쌍하앙 건축물의 경우...
중국 / 일본의 하앙 건축물하고
모습이나 양식이 거의 같았을것
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앙의 모습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하앙의 모습이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 참고사항 *
1. 제가 재현 / 복원하여 만든
고려시대 쌍하앙 건물은 일본과
중국 건축물과 다르게...
가로로 설치한 빔이 하나 더
있는데요 , 포작을 가로지르는
빔은 통주목 이라고 한답니다.
통주목은 12세기 즈음의
건축양식으로 추정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나름 발견되었고
금동삼존불감에 통주목이 설치되어
있어서 하앙에 적용한 것 입니다...!!
통주목은 일본과 중국에서 조차
그다지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일본과 중국의 12세기 건축물 같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에서 대부분
발견이 되는 양식이랍니다.
이 통주목이라는 양식을 신기하게도
간송미술관 고려 금동삼존불감에서도
확인됩니다. 한번 확인해볼까요?
금동삼존불감 외부 가구를 최대한
보기쉽게 나눠 보려고 노력해봤습니다...
아무튼 통주목이라고 제가 표시해놓은곳
제공들 자세히 보시면, 통주목이 2제공을
정확하게 결구하고 있는게 확인 됩니다.
그래서 통주목은 고려시대 12세기 즈음에
사용은 했을것으로 추정은 해볼 수 있답니다.
그리고 내림마루 양식은
각종 고려시대 회화부터
감실 , 석탑에서도 확인 가능한...
내림마루를 2단으로 나눠서
쌓는 내림마루를 적용했습니다.
2. 참당암 대웅전 포작은
다포계 포작 입니다 .
그래서...
진사 성모전, 청수사 산쥬노토 같은
실제 하앙건축하고 내부 구조가 건축양식
시스템상 많이 다릅니다 . 꼭 알아두세요!
하여튼.....
그래서 저는 최근에 이러한
모습의 고려 쌍하앙 건축물은
거의 무조건 있었을 거라고...
최근에 약간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쌍하앙이 거의 무조건
있었을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는지.,..
고려시대 불교 회화
조선시대 건축자료
이 자료들을 토대로 추정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3. 고려시대 불교 회화에 남아있는 추정 쌍하앙 건축물들
고려시대 불교회화 중에서
그나마..... 진짜 겨우 그나마.....
쌍하앙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회화가 2점 정도 있습니다.
예전엔 딱 한장만 있는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연구로 2장까지 늘어났어요.
그럼 고려 쌍하앙을 추정이라도
가능하게 해주는 회화 2점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이 고려시대 불교회화!
일본 오타카지 소장 고려후기
14세기 추정 회화에 남아있습니다.
그럼 이 회화에서 어느 부분 떄문에
쌍하앙으로 추정되는지 알아볼게요.
3-1. 일본 오타카지 관경16관도 쌍하앙 추정해보기
이 회화에서 쌍하앙을 추정 해
볼 수 있는 전각은 바로 이 전각
이랍니다.
회화 가장 한중간에 있는 전각
포작을 보면 , 쌍하앙 건축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이 고려시대 불교회화
그림하고 거의 똑같은 모양의
포작을 가진 전각이 있기 떄문입니다.
그 전각은 바로 중국 송나라 건물
융흥사 마니전 입니다 . ( 1052년 건물 )
융흥사 마니전은 쌍하앙 전각입니다.
그럼 융흥사 마니전 쌍하앙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송나라 융흥사 마니전
쌍하앙 부분입니다. 모습이 꽤 특이하죠?
보면 정면 소첨 , 대첨차를 45도 꺾어서
설치하고, 좌우 양쪽 첨차 사이에 하앙이
각층마다 상하 1개씩 , 쌍하앙이 적용되었습니다.
고려 14세기 추정 건축물
확대모습 입니다.
첨차를 45에 가깝게 대각선으로
설치했고, 그 45도 2개 첨차 사이에
하앙이 2개가 나온 모습입니다.
송나라 마니전이랑 똑같죠!? 이래서
이 회화를 쌍하앙 전각으로 추정이 가능한겁니다.
융흥사 마니전은 2층이
쌍하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게 사진확보가 힘들어서...
그냥 도면으로 보겠습니다.
마니전 도면을 보면
아랫쪽 1번 하앙은 내부
대들보를 받쳐주고 있고,
2번 하앙은 그냥 장식용이자
첨차 고정용으로 사용했으며
그냥 장식용 하앙입니다.
2번 상단 하앙이 장식화된
가앙이지만, 여튼 하앙 모습인데 뭐
여튼 도면으로 쌍하앙 건축인게 확인 됩니다.
그리고 융흥사 마니전 건물
모서리를 보면 하앙이 3개가
나옵니다.
건물 모서리는 보통 귀한대라고
부르는데요, 명칭이 복잡하니까
그냥 모서리 포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여튼 마니전 모서리 포작은
하앙이 뾰족한게 3개 나옵니다.
님들 또 사진 잘보셈!
관경십육관도 전각도를 보면
건물 모서리 포작에 하앙으로
추정되는게 3개가 튀어나왔습니다.
그니까 45도 포작 사이에 하앙이
1개씩 쌍하앙이 구성되어있고,
모서리 포작에 뾰족한게 3개가
튀어나옵니다. 고려 불교회화
포작은...
여러모로 융흥사 마니전하고
거의 똑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일본 오타카지 소장 고려
14세기 추정 관경십육관도 고려
불교회화 전각은 ...
송나라 영향을 받은 건축물로
쌍하앙 전각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포작을 45도로 꺾어서
그 사이에 뭐가 튀어나오는데,
쌍하앙이 아니라 그냥
다포계 건축물인 경우도
분명이 있긴 있습니다.
그 건축은 바로 안국사
대웅보전 이라는 건물 입니다.
북한의 안국사 대웅전 이라는
건축물이 있기 떄문에... 뭐랄까요.
오타카지 관경16관 회화의 건물도
안국사마냥 하앙이 아닐수도 있는거 아님!?
이렇게 의심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고려 불교회화
포작은 충분히 쌍하앙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저건 그냥 그림이라서
자세하게 알 수 없을탠데!?
라는게 합리적인 생각입니다만
이제부터 보시는 자료를 보시면!
고려 불교회화 건축물도 충분히
쌍하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실겁니다...!!
3-2 다포계 건물로 보이는 불교회화 건물, 충분히 쌍하앙으로 추정 가능하다.
일단 들어가기에 앞서
다포계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도 분명 계시므로...
가장 기본적인 건축양식!
다포계와 주심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전통건축의 가구,
그러니까 지붕을 받쳐주는 시스템은...
윗쪽의 그림과 같이 배치되는게
가장 일반적인 방식 이랍니다.
기둥 - 창방 ( + 평방 ) - 주두 - 첨차
이 순서로 배치되는게 가장 전형적인
한국 전통건축 프레임 입니다.
주심포계 건축물은
이런 시스템이 기본 입니다.
기둥 - 창방 - 주두 - 포작층
이렇게 나오는게 가장 일반적인
우리나라 전통건축 시스템 입니다.
* 참고사항 *
주심포계 : 기둥 위에만 포작이 있다.
포작 사이에는 포작이 없다.
다포계 : 기둥 위에는 물론 , 창방 위에까지 포작이 있는 경우.
기둥 윗쪽 포작 사이에 1개 ~2개 추가로 포작이 더 있다.
그럼 여기서 쌍하앙과
다포계는 그럼 뭐가 다르냐!?
라는 궁금증이 생길겁니다.
쌍하앙 건축과 다포계 건축은
지붕을 지탱하는 시스템 자체가
많이 다릅니다! 특징은 이렇습니다.
하앙계 포작 :
지붕무게를 지렛대 원리로 지탱함
하앙이라는 길다란 막대기가 받는...
지붕의 하중 에너지로 대들보나 도리를
지붕의 무게로 들어올리듯이 받쳐준다.
그렇게 때문에 하앙 위치나 부속구 선정등 매우
까다롭고 목수의 높은 계산력 / 기술력이 매우 요구됨
다포계 포작 :
브라켓을 엄청많이 사용해서 양으로 승부
받침목을 많이 사용해서 하앙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함
처마길이를 늘리는데 하앙만큼 길다란 처마 구성이 가능,
하앙에 비해서 그냥 단순히 쌓기만하면 되서 편하기까지 함.
걍 최대한 쉽게 써봤습니다.
서로 다른점은 이 정도이고...
하여튼 다포계 포작이란
에....... 잘 모르시는 분들은
걍 이렇게 외우시면 됩니다!
- 다포계 포작 -
레고블럭 같은 브라켓 받침대가
처마 아래에 한 100개 있고 거기에
혀바닥이 한 50개 내밀고 있는거
이렇게 외우시면 됩니다.
이 사진처럼 혀바닥 이빠이 내밀고
있으면 다포계 포작 건축물 입니다!
하여튼 그럼 이제
다포계와 하앙계를
구분하실 수 있으시죠!?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고려시대 회화 중에서, 다포계 포작으로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회화를 보겠습니다.
이 그림은 일본 묘만지 소장
1294년 고려시대 회화
미륵하생경도 입니다.
이 미륵하생경도 지붕처마 보면
혀바닥 처럼 튀어나온것들 있죠!?
그걸 포샵으로 더 쉽게 보이도록
처리해서 보면 이런 모습이 보입니다.
묘만지 미륵하생경도 처마를
보면 하앙처럼 칼날같은 뾰족한
모습이 아닙니다. 쇠서같은 모양이죠.
그래서 다포계 건물로
보는게 당연한 모습이죠.
그러나 이런 모습의 건물 조차도
하앙계 건축물로 해석할 수 있는
자료를 이제 보도록 할까요!?
이 건물은 원나라 시절
건축물인 연복사 대전 입니다.
( 1317년 창건 )
외형만 보면 그냥 대놓고
다포계 건축물처럼 보입니다.
근데 원나라 연복사 대전은
100% 쌍하앙 건물 입니다.
이게 연복사 대전 도면인데요,
걍 도면보면 대충 이해 되시죠?
상하단 하앙2개를 사용하며
지렛대 원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순도 100% 하앙 건축물 입니다.
연복사 내부 사진을 보더라도
지렛대로 받쳐주고 있는 모습이
확인 됩니다.
원나라 1317년대 건물이고,
외형도 걍 다포계 포작인데
실제론 쌍하앙 건축물 입니다.
우리나라 사찰과 연복사를
비교해보면, 외형만 놓고봤을때는...
둘다 그냥 영락없는 다포계 포작 건물이죠.
그러나 내용물을 보면
개심사 대웅전은 전형적인 다포계 건축,
원나라 연복사 대전은 전형적인
쌍하앙 건축물 입니다. 그래서...
서로 외형만 거의 비슷하지,
사실 저 두 건물은 쌍하앙 / 다포계로
건축양식이 다른 건물들 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전면부 외형은 다포계 포작인데
내부는 하앙까지는 아니지만, 하앙 양식으로
추정할만한 기술을 사용한...
걷모습과 속이 다른 그러한
건축물이 한국 또한 있었습니다!
그 건축물은 바로 이 사찰 입니다.
이 사찰은 북한 평안남도 평원에
있던 법흥사 입니다. 건물 이름은
극락전 입니다.
강한 배흘림 기둥하며 포작이
고려후기 ~ 조선초기 건물로
보이는 이 건물은,
겉면만 보면 혀바닥이 잔뜩 보여서
그냥 다포작계 건축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내부 전퇴칸을 보면
사뭇, 일반적인 퇴칸이랑
다른 모습 입니다!
퇴량이 없고 하앙 처럼 생긴
대각선 초각 부자재가 있는데요,
천장에 붙은게 아니라 실제로
하앙처럼 제공들하고 이어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생긴거도 하앙같고, 연결하는
방식도 제공 살미들에 걸치는
모습을 봤을때,
그니까 외부는 혀바닥이 많은 다포계인데
내부는 하앙 기술을 응용해서 만든
하이브리드 건물인듯 합니다.
외형만으로 포작을 추정하는건
이렇게 실제 예로써도 알 수 있지만
이게 그냥 막 추정하는게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쇠서라는
혀바닥 모양 장식을
칼날모양으로 사용할 경우,
다포계 포작 건축물인데도
하앙 건축물이랑 외형적으로
별 차이가 거의... 없게 느껴집니다.
님들 그럼 제가 주장하는게
무슨말인지 이제가 될겁니다
실제 건물 예시만 보더라도
외형은 다포계 쇠서 건축물인데...
실제 내용물은 쌍하앙 건물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고려시대 건축 그림은
무작정 그림만으로 판단할수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포계 쇠서 포작처럼 보여도
실제론 하앙 건물일수도 있기 때문이죠.
.포작이 하앙인지, 다포계인지...
그림만으로 구분은 힘들다는거죠.
걍 보는사람에 따라 해석을
자기맘대로 할 수 있다는 뜻 입니다!
왜냐!?
불교회화는 건물 내부 구조가
안보여서 분간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오타카지 고려회화속 건물이
가장 쌍하앙에 근접한 건축회화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타카지 소장 관경16관 회화는
실제 쌍하앙 건물하고 그 특성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회화속 건축양식하고 매우 비슷한
실제 건물이 있어서, 신빙성이 생긴것이죠.
그래서 이 그림 만큼은 충분히 쌍하앙
건축물을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제가 고려시대 건축에
쌍하앙을 적용하여 만든 이유는
이런 자료들을 참조해서 만든 것 입니다!
일단 고려시대 회화 그림으로
추정 해 볼 수 있는 쌍하앙 건축물.
그리고 실제 조선시대 칼날모양
하앙 건축물을 참조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 중국 / 일본
실제 건축들이 신기하게도,
비록 외부 포작에 한정되지만
포작 구성법이 거의 대동소이한,
디테일만 조금 다르지 구성법이
사실상 아예 같은 수준인게 확인됩니다.
그러므로, 각종 고서화및
실제 건축 자료들을 토대로,
고려시대에는 이러한 모양의
쌍하앙 건축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럼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福받으세요!
- 당파풍 지붕에 대해서 -
당파풍 지붕은 솔직히... 제가 여태껏
정말 수많은 자료들을 접하면서도...
정말 손에 꼽는 몇가지 자료로만
겨우 확인했을 뿐일 정도로...
뭐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확인하기
어려운 특이한 지붕양식 입니다.
정말 극소수 자료만 확인이되요.
이번 문단에서는 당파풍 지붕에 대해서
최대한 ... 제가 모은 자료들을 탈탈 털어서...
조금이라도 당파풍 지붕이 실제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으로
모은 자료들을 이번에 올려봅니다.
그럼 일단 당파풍 지붕에
대하서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실태니...
당파풍 지붕에 대해서
매우 짧게 알아봅시다!
* 당파풍 이란?
일본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곡선형 지붕 + 박공의 한 종류 입니다.
송나라 ~ 원나라 시절 유행한 양식으로 추정되며
설명하기 좀 어려운..... 좀 기묘한 곡선을 보여주는
지붕양식 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옴 모양 ... 그니까
Ω <- 옴 모양하고 가장 비슷합니다.
당파풍 지붕은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양식입니다.
일본어 명칭으로는 카라하후 라고 하며
일본 전역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어요.
특징이라면 Ω 모양이랑 비슷해요.
가운데만 볼록 튀어나온듯한
그런 곡선 지붕이며,
그래서 서까래까지 Ω 모양 곡선으로
만들기 때문에, 생각보다 만들기 까다로운 건물이죠.
중국의 경우 송나라 / 원나라 회화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사실 한국 제외하고는
솔직히 되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지붕입니다.
아무튼...
이런 특이한 지붕을 우리나라에서도
일단은 사용은 한 것으로 추정은 됩니다.
현재 한국에서 , 유일하다면 유일하게
당파풍 지붕을 사용하고 있는곳은 바로
이 장소 입니다...!!
제가 몇년간 각종 자료를 찾아 보면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당파풍
지붕을 실제로 사용한 예는...
일단 제가 알기로는 청덕궁 비원
규장각 / 주합루 어수문 좌우에 있는
협문 ( 혹은 쪽문이라고함 )
정확하게 여기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협문들은 일제시대때
만든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의외로 이 당파풍 협문들, 일제가 나름 조선시대
양식을 참조해서 만든 조선시대 양식일 가능성이 존재 합니다.
왜냐하면 일제시대 이전
조미 수호 통상조약을 체결할
당시인 1884년 사진을 보시면...
이때도 이미 당파풍 지붕이 있는게 보입니다.
물론 1884년이라면 일본에게 어느정도
영향을 받고 있던 시기입니다만...
아무리 일본에 영향을 받은 시기라도
일본에 합병당했던 상황도 아니라서...
일본이 궁궐 왕실 건축까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주합루 어수문 당파풍 협문은
일제가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
우리나라 전통 양식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그림 회화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1776년 규장각
그리고 창덕궁 비원 일대를 그린
조선시대 정조대왕 시절 회화 입니다.
회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어수문 좌우
협문이 이미 이때부터 지붕이 곡선으로
표현했습니다.
특징이라면 1776년 회화또한
물담장 취병까지 아치모양 ( 홍예 )
모습으로 그렸다는 것 입니다...!!
그니까 1776년 회화에서도 아치모양
취병 담장이 확인이 되는 상황이며,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치모양의
지붕이 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아치모양 구조물이 확인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추정해보면,
아치모양 혹은 당파풍 모양 지붕이
있긴 있었는데 식물에 가려져서...
그림으로 표현하기 힘드니까 그냥
적당히 생략해서 그린것이며,
그나마 가장 우측 협문에는 조금이나마
튀어나온 지붕을 그린것으로 추정이라도
해볼 수 있는 상황이랍니다.
왜냐하면 1884년 사진에서 조차
덩쿨식물들 땜에 지붕이 가려져서
잘 안보이는게 확인되니까...
1776년 회화도 충분히 저런 특징을
살려서 그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튼 근데 1884년 어수문 협문은
머름도 생기고 궁형 창문을 더욱
화려하게 꾸민 모양 등등...
아마도 1776년 이후에 한번 정도
다 뜯어내서 , 전체수리를 한 듯 하네요.
그렇지만 1776년 원본에서 그렇게
크게 바뀌지는 않은 모습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일제가 최종적으로 바꾼 모습은
지붕도 팔작지붕에서 우진각 지붕으로
바뀌고 , 양성바름도 없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당파풍 지붕도 1884년 기존에는 합각 박공이
없었으나, 합각 박공을 추가하여 좀더
일본식으로 변해있습니다.
하여튼
1884년 사진에 여튼 당파풍 지붕이 있던걸로
볼 수 있지만, 현재 모습은 일본이 기존의 것을
좀 더 일본식으로 살짝 더 수정하여 만든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번에는 고려시대 자료로
넘어가보겠습니다. 고려시대때
당파풍 지붕을 사용한 예 로써는...
고려시대라도 당파풍 지붕은 정말
찾을래야 찾을수가 없는 수준인데요.
오로지 극소수의 회화에서만 확인 됩니다.
그 몇안되는 극소수 회화중에서 가장 확실한
자료가 바로...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누각도 라는 회화가 있습니다.
공민왕이 그린 누각도를 보면
원나라에 영향받은 듯한...
엄청 화려한 3층 누각 그리고
2층 누각의 모습이 보입니다.
특징이라면 앞쪽과 뒷쪽의
당파풍 지붕 모습이 서로 다릅니다.
뒷편 복도는 일반적인 Ω 모양
당파풍 지붕인데요, 앞면 복도는
그냥 아치형태 입니다.
참고로 당파풍으로 생각해볼만한
일반 아치형태 지붕은 조선시대
회화에서 발견됩니다.
조선시대 아치형태 지붕이
설치된 건축물은 ,
1826~1829년 사이 만들어진
동궐도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예전부터 왕들이 은밀하게
조용히 뭔가 처리할떄 사용한걸로
추정되는, 성균관 바로옆 권역인데요,
저기 보면 초가지붕 건물이 하나 있는데
저 건물이 아치형 지붕 건물로 추정됩니다.
저 건물이 되게 특이한게
우리나라 한옥의 지붕 측면,
그니까 관자놀이 부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그 부분을 보통
합각 or 박공이라고 부르는데요,
한옥의 합각 / 박공은 그냥 조건없이
ㅅ자 모양입니다. ㅅ자 모양이면서...
직선 or 안으로 들어가는 ㅅ
시옷모양이 되어야 하는데, 특이하게
저 초가지붕 건물은 ∩ 이 모양 입니다!
이게 예시가 어려워서...
창덕궁 창순루로 예를 들어보자면,
초가지붕은 대체적으로 좀 둥그스름하고
약간 곡선 처리를 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만,
창순루 처럼 저 정도로 심하게 아치형으로
처리하는 일은 정말 극소중 사례 일겁니다.
그래서 포천에서 동궐도에 나오는
창순루를 재현하여 복원했는데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 한옥이랑
전혀 다른, 아치형태의 지붕입니다.
그래서 성균관 권역 초가지붕도
창순루 처럼 저정도로 강한 아치형
지붕이 아닐까!? 라고 추정가능 합니다.
근데...
아치형태 복도를 당파풍으로
봐야하는가!? 라고 한다면 흠...
이건 뭐 그 아무도 언급한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하기 조금
미묘하긴 하네여...;;
좀 미묘하긴 합니다만 그러나 이번에
당파풍 지붕에서 다룬 이유는 아무래도...
공민왕 누각에서 복도로 사용하는
2개의 지붕 셋트중에 하나가 당파풍
지붕이다 보니까...
아치형 지붕도 관련이 있을수도 있어서
이번에 한꺼번에 다뤄보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에여...
그리고 일본에서 발견된 회화
공민왕 기위도를 보겠습니다.
이 그림은 당파풍 지붕 자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자료 입니다.
오른쪽 상단에 당파풍 지붕이 확인 됩니다.
공민왕 기위도는 현재 일본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서 초고화질 사진 확보가 안되기 때문에...
이렇게 저화질로 추정만 할 수 있는 게 아쉽네요.
그래도 여튼 곡선 모양인가 얼추 확인되고 있으며,
이 회화가 고려시대 당파풍 지붕 자료 중에서는
가장 확실한 당파풍 지붕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공민왕 기위도 당파풍 지붕은
송나라 누각에 그려진 타입하고
거의 똑같아서...
당파풍 지으로 사실상 확정이며
아마 ... 그래서 고려 중반기부터는
당파풍 지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민왕 기위도에서 확인되는
당파풍 지붕처럼, 건축물 측면에
눈썹지붕 처럼 설치하여...
차양마냥 사용하는 방식은 조선시대
건축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눈썹지붕 계열 양식이 고려시절
부터 내려오는 건축 양식이지 않을까 싶네요.
특이한건 전각 2층, 그리고 3층
건물 정면 앞뒤로 당파풍 지붕이
확인되는데요,
주목할만한 점은 다만 중국 / 일본과 다르게
단독 구조 건물에 단일 지붕으로 사용하진 않았고
누각에 붙어있는 차양 모습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니까... 고려 2가지 회화자료를 보면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고, 전각에 종속되어 있는
부속건물 개념으로 사용하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공민왕이 그린 누각도에서 관찰되는
당파풍 복도들하고 외형부터 설치
방식까지 가장 비슷한 건물로는,...
바로 창경궁 명정전이 있습니다.
창경궁 명정전 후복도는 비록
당파풍 지붕은 아닙니다...만!
건축물의 앞, 뒤로 차양처럼
길쭉한 복도를 설치한다는 점이
명정전 후복도하고 완전히 같다고 봅니다.
일제시절 명정전 뒷면 복도 건물인
천랑을 약간 남겨놓았는데요,
그 모습이 고려시대 동경에 나오는
복도 추정 건물하고 너무 닮았습니다.
그래서...
동경이나 건축 그림에 그려진 양식이
무작정 상상으로 그린건 아니라는걸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민왕이 그린 회화 등장하는
고려후기 14세기 시절 사용되던 실제
당파풍 차양 건축양식일 가능성이 있는거죠.
개인적으로는 당파풍 지붕을 차양처럼
사용한 양식이 조선시대로 확실하게
전승된 경우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민왕 기위도, 그리고 공민왕 누각도
당파풍 차양식 그림이 마냥 상상으로 그린게 아니라,
실제 양식을 그대로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 입니다.
비록 당파풍 지붕은 아니지만 창경궁 명정전이
고려회화에서 보이는 건축양식이라고 생각할만한
건축양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회화가 무작정 상상으로 그린게
아니고 , 실제 건축양식하고도 나름대로
교차검증및 추정이 되는 상황이므로...!!
당파풍 지붕도 실제로
사용되던 지붕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셔도 된답니다...!!
아무튼간 제가 확인한 자료 중에서는
위에 자료들이 전부 입니다. 저 자료들이
그나마 가장 확실한 당파풍 지붕 자료들 입니다.
위에 자료들 이상 더 확실한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글 쓰면서 문뜩
생각이 든게... 아무래도 당파풍 지붕은...
아무래도 한국인 취향이 아니었나 봅니다;
지붕 양식은 조금 바뀌더라도. 나름 오랫동안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는데요.
당파풍은 위에 자료들 제외하면 이 이상
일말에 비슷한거 하나 조차 발견이 안됩니다;;;
공민왕 시절 건축회화에서만 잠깐 보이고
더 이상 확인이 안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14세기때 잠깐 유행했는데, 한국인 입맛에
안맞는 모양이라 그냥 유행때 잠깐 사용하다
잊혀진 양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확히 14세기때만 잠깐 등장하고 그 이후
수많은 조선시대 자료에서는 아예 발견이
안되는걸 보면...
고대 한반도인들 취향이 아니었나봐요.
아무튼 이번에는 2차 간접 자료를 보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당파풍
지붕은 가마에 남아있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마 뚜껑들을 보면 둥그런 지붕에
용마루 장식도 없고, 합각 박공도
둥그스름한데다가...
약간 미묘한데 현어무늬 같은
각종 무늬들을 초각 하였습니다.
가마 뚜껑을 보고 있자면 이게
바로 당파풍 그 자체 아닌가 싶네요.
그니까 건축물 지붕으로써는 사실상
조선시대때는 한국인 취향이 아니라서...
사실상 건물 지붕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가마로써는 사용하기에는 괜찮은 양식이라서
당파풍 지붕이 가마에 가장 많은 흔적은
남긴거라고..... 개인적으로 추정해봅니다.
그도 그럴께 송나라 회화 중에서
조선시대 가마하고 비슷한 당파풍
지붕도 있어서 이런 생각이 드네요.
저 개인적으로 이런 지붕 모양은
당파풍 지붕에 영향받아서 흔적으로
남은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이유는 원나라 당파풍 지붕
전각 지붕 모습하고 전반적으로 꽤나
닮아있는것 같다고 느껴져서 입니다...
원나라 당파풍 지붕 회화는 팔작지붕인데...
조선시대 가마랑 지붕 양식이 미묘하게
닮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제가 이렇게 가마를 보고 당파풍 지붕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볼까요?
제가 가마를 보고 당파풍 지붕의
흔적 혹은, 가마 자체가 당파풍 지붕을
사용한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일본 / 중국 송나라 그림자료들을 보다보면
당파풍 지붕으로 가마를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가마는 실제 건축물을 모티브로
제작을 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마 지붕이 당파풍 지붕에
영향받은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거랍니다!
통영 충열사 가마라던가,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하는 향정자 라는 가마도 기와지붕 모양
으로 만들기 때문에 ...
가마가 당파풍 지붕을 알 수 있는 꽤나
강력한 자료라고 저는 생각하는거랍니다...!
- 공민왕 기위도 건축양식 교차검증 -
공민왕 기위도 전각의 당파풍 지붕이
실제로 있었던 건축 양식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있는데요,
공민왕 기위도 중심 전각이
매우 중요한 증거 그 자체 입니다!
왜냐하면 기위도 중심 건물은
실제 고려시대 건물을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매우 큰 건축물 이랍니다!
일단 고려시대 그림이자
당파풍 지붕 최강의 자료로 알려진
공민왕 기위도 그림을 분석해보면,
이렇게 전부 다 실제로 발견되는 것들
위주로만 건축을 그린게 확인 됩니다.
14세기 공민왕 기위도 전각의 특징을 보자면
옻칠기둥 / 주토칠 차양기둥 / 상록하단 단청 /
추정 녹색 테두리 + 붉은색 대나무발 /
일반 흑색기와 / 일반 흑색용두 /
통자척 황금 용마루 /
전각에서 보이는것 90%가
실제로 발견된 건축 양식들이
대부분이라 신빙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공민왕 기위도 전각의
메인 기둥은 짙은 갈색 혹은
짙은 흑칠 기둥인데요,
이렇게 짙은 흑색 기둥은 조선시대
15 ~ 16세기 그림 회화 자료에서
심심하면 발견되는 양식 입니다.
게다가 상록하단 단청이야 뭐
더 설명이 필요한가요?
상록하단이 고려시대 후기부터
아주 제대로 본격적으로 사용된것으로
추정하므로, 공민왕 회화 상록하단은...
더 설명이 필요없이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단청색상 이란거죠!
그러니까 공민왕 기위도 채색만
보더라도 16세기 조선시대 회화에서
아주 간단히 확인되는 것이며,
상록하단 단청과 조선시대 기둥색도
발견되므로 기둥채색법 그리고 단청
색상 전부 교차검증 100% 발견되며...
고증문제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채색법만 봐도 절대로
상상화가 아니란 뜻 입니다!
상록하단 단청 + 짙은 흑색 옻칠기둥 전각
이거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 전각은 바로
청평사 극락보전 입니다.
청평사 극락보전은 - 1555년경에 지었고
상량문에서 1772년에 중수, 1889년에 다시 보수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는 꽤 역사가 깊은 전각 이랍니다.
비록 컬러사진은 하나도 없지만, 일제가 한번
대대적으로 수리하며 남긴 기록에 남아있기를,
기둥에 옻칠을 했다고 기록을 작성했습니다.
< >
그리고 고려시대 기록인 고려사 기록에
공민왕이 궁궐을 중건하는데 , 옻칠을 위한
옻을 서민들에게 내도록 강요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기록에 의거해보면 , 아마 공민왕 시절
고려궁궐 건물에 옻칠을 진하게 칠했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 >
그렇기 때문에 공민왕 기위도
건축물 기둥이 짙은 흑색인게
나름 고려사 기록이랑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전각 용마루에 설치한 용두도
생긴게 회암사 출토 용두하고 매우
닮아있습니다.
이게 양주 회암사 이력을 보자면
공민왕 기위도 전각 용두하고 닮은
이유가 한눈에 보입니다!
####################################################
- 회암사 이력 -
1328년에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스님이...
인도의 아라난타사(阿羅難陀寺)를
본떠서 창건한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었다.
그후 1374년 / 1376년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중건,
조선시대 1472년에 세조비 정희 왕후가
정현조 선생에게 다시 중건케 하였다.
####################################################
그니까 회암사 자체가 고려시대
사찰이고, 고려시대 후기 수리하고
조선 초기에 한번더 수리했던 사찰입니다.
고려시대 문화가 진하게 남아있던 사찰이라
공민왕 전각 용두하고 닮아있는게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 이랍니다!
그리고 고려후기 그림회화및
조선시대 회화에서 바닥 기와인
전돌을 간혹 체크무늬로 그리는데요,
그게 실제 전돌이 오래되서 변색되면
체크무늬 처럼 변하기도 합니다.
전돌기와 한장한장 컨디션이 다르므로
전돌기와 노화시 , 변색 상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 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림을 그릴때 이러한
자잘한 디테일까지 신경쓰며 그림을
그리셨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중앙 전각의 흑색기둥
왼쪽을 자세하게 봐 주세요.
초록색으로 된 세로 스트라이프 2줄
그리고 붉은색 벽체같은게 확인됩니다.
초록색 스트라이프 + 붉은색 몸통
이 조합은 조선시대 회화에서 주구장창
발견되는 주칠 외주렴 표현이 똑같습니다.
초록색 테두리 + 붉은색 몸통 조합은
조선시대 외주렴은 물론이거니와...
고려 후기 ~ 전기 조선으로 추정하는
비단에서도 그 패턴이 확인된답니다.
사찰 장곡사에서 출토된 비단 모직물은
고려시대 후기 ~ 조선시대 초기 직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비단 직물을 확인해보면 초록색
테두리를 6각형으로 그리고 몸통은
주칠같은 붉은색 비단을 사용했습니다.
공민왕 기위도 흑칠기둥 옆쪽에 있는
초록 스트라이프 + 붉은 벽체하고 완전 똑같죠?
그래서 공민왕 중앙전각 내부 초록테두리
붉은 벽체는 개인적으론 외주렴으로 추정합니다.
용마루는, 지금까지는 그냥 상상으로
그런걸로 생각되고 있었는데...
최근 몇년전 출토되어 밝혀진
경복궁 자미당 통자척 기와로 인하여...
공민왕 기위도 황금 용마루는 일단
어느정도 실제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생각이상으로 높아진 상황이랍니다...!!
자미당 출토 용마루는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통자척 지붕마루 라고 부른다네요.
물론 공민왕 기위도 통자척 용마루는
금빛이라.... 아직 고려시대 기록에...
용마루를 금칠했다 혹은, 금빛의
황칠안료로 금색나는 도색을 했다!
라는 기록이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통자척 용마루가 실제로 , 조선초기
궁궐 경복궁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양식 면에서는 교차검증 성공했기 때문이죠!
이렇듯 공민왕 기위도 중앙전각은
거의 모든면에서 조선시대 실제 건축하고
95% 가깝게 교차검증 되는 그림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 전각은 실제
고려시대 14세기 건축물을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죠.
여기서 중요한 거!
그렇다면 공민왕 중앙전각 오른쪽에
설치된 당파풍 지붕도, 실제로 있었지 않았을까요?
위에서 이미 한번 다루었지만
공민왕 기위도에서 발견되는
당파풍 지붕 설치방식은...
건물의 측면에 차양마냥 작게
설치하는데요, 이런 부섭지붕
혹은 눈썹지붕 계열도...
조선시대 건축물에서 당파풍 모양만
아닐뿐 , 아주 쉽게 발견되는 양식입니다.
이렇게 공민왕 기위도 중앙전각은 각종
조선시대 건축양식하고 거의 모든면에서
교차검증이 가능한 건물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상상으로만 그린 건물이 아니라서
당파풍 지붕도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어마어마
하게 높다고 추정이 가능한 것 입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에 황금
통자척 용마루를 사용해봤던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황칠에 옻칠을 두껍게 바른
황칠 통자척 용마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점!
공민왕 기위도 전각은 실제 건축양식들하고
교차검증 해봤을때, 딱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린 그림으로 보이지는 않다는 것 입니다.
거릐 모든면에서 실제로 사용한 양식들이
교차검증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공민왕 기위도에 등장하는 당파풍 지붕 또한
실제 고려에서 사용했던 당파풍 양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
저만의 개인적인 주장 입니다!
그럼 매우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당파풍 지붕은 개인 연구가 진행 되는데로 )
( 꾸준히 내용을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
*참고사항 *
이 게시물의 내용은 25년 3월 31까지
연구된 내용을 기재한 것 입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변화 /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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