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국대학교 석주선 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녹유치미 입니다.
고려시대 녹유 치미라고 설명만 되어있고
어디서 출토되었는지는 밝혀진게 없네요.

겉면에 초록색이 보이고
날개면에 카키색, 황토색
유약층이 보이므로
확실한 녹유 치미가 맞습니다.
시대를 고려시대 치미로
추정하는 이유는 그나마 비슷한
치미가 고려초기 치미라서 입니다.

석주선 박물관 소장
녹유치미하고 비슷한 치미가
바로 흥복사지 출토 치미 입니다.
흥복사에서 출토된 치미하고
석주선 박물관 치미하고
비슷한 점이 하나 있어요.
핵심 포인트가 뭐냐면
치미 날개랑 몸통 접합부분
끈 장식이 2줄 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발견된
통일신라 시절 치미들 대부분은
날개부분과 몸통 접합 부분에
보통 끈장식이 1줄 입니다.
혹은 끈에 동그란 무늬로
장식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석주선 박물관 소장 녹유 치미는
전체적인 디자인 자체는 사실
통일신라 치미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날개와 몸통 접합부분
끈장식이 2줄이고, 뿔 옆쪽
선도 툭 튀어나온 모습인데요,
이 2개가 통일신라 치미하고
가장 확실하게 다른점 입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통일신라
치미하고 비슷한데, 몇몇 포인트는
통일신라 치미에서 일진보 한 디자인이므로,
통일신라 극후반 or 후삼국시대 or
고려 극초반 치미로 추정이 가능한거죠.

제가 복원해본 석주선 박물관
녹유 치미 사진 입니다.
정확한 모습은
확실하게는 몰라도
치미가 사실 많이 단순하게 생겨서
사라진 부분은 어떻게 생겼는지
추정하기가 매우 쉬운 편 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보셨지만
대다수의 통일신라 ~ 고려시대
치미는 이런식으로 생겼어요.

정말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생겨서
추정하기는 사실 되게 쉬운 편 입니다.
뭐 그렇다고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요.

석주선 박물관 치미를 적용한
통일신라 극후반 ~ 후삼국시대 혹은
고려시대 삼문을 만들어 봤습니다.

건축물은 통일신라 사찰
남리사 ( 신라시대 = 염불사지 )
회랑과 남문을 사이즈 그대로 복원했습니다.

녹유 치미와 녹유전돌을
사용하면 이런 모습 입니다.
신라사찰 남리사 중문과
회랑은, 발굴되었던 자료에
맞춰 크기 그대로 재현했는데요,
다만 남리사에서 녹유 전돌이나
녹유 치미가 발견된적은 없습니다!

녹유치미를 중문에 적용하다가
녹유전돌도 생각나서, 녹유전돌까지
보려고 제가 임의로 만든 것 입니다...!


일반적인 건물에 녹유 치미와
녹유 전돌을 사용하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만들어 본 것이니 , 꼭 알아두세요!
- 후삼국시대 ~ 고려초기 단청 추정 재현 -
이번에는, 남리사지
중문에 사용한 단청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청중에서,
머리초는 봉정사 대웅전 출토
통일신라 극후반 or 후삼국시대
or 고려시대 극초반 머리초 단청을
제 나름대로
추정 상상 재현으로
대략적으로 그려서 사용했어요.
이번 봉정사 대웅전 머리초
단청은 정확하게 복원한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사진이 저거 한장인데 ,
그마저도 단청무늬 식별이 몇개는
보이기는 하는데,
단청 무늬 대부분이...
육안으로 식별이 안되어서
일단 보이는 것들만 그리고,
나머지는 적당히 추정하여...
최대한 보이는걸 기반으로,
적당히 믹스하고 약간의 상상력을
섞어서 단청을 재현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단청 자료고,
손에 꼽는 고려시대 단청이고,
통일신라 극후기 단청일
가능성도 있는 매우 귀중한
단청 자료인데...
국가에서 조차, 사진 한장
떨렁 찍고 그냥 방치하는
이 현실이 참 아쉽습니다.
복원이나 따라그릴 수 있도록
참조할수 있는 자료가 있었다면
좋았을탠데 참 아쉽네요..... 허허


머리초의 기본 외형은
일단 보이는데로 길쭉하게
그리고, 나머지 전체 모습은
시대가 가장 비슷한
거란 고분에서 발견되었던
머리초 단청의 디자인을 참조했습니다.
의외로 고려가 거란하고 건축관련해서
많은 교류가 있었는지, 비슷한 점이 생각 이상으로
많아서 , 거란 고분의 단청을 참조해서 그렸습니다.

단청이 초록색과
붉은색이 많이 섞여있죠?
이런 단청은 당나라 후기
벽화에서 많이 보이는데요,
일단 단청 배경색은
실제 통일신라 출토
단청을 기반으로 하되...
소로와 주두 단청은
고려시대 후기 ~ 조선시대 초기 건물
부석사 조사당 내부 단청을 사용했습니다.

어째서 조선시대 초기 단청을
후삼국시대 ~ 고려시대 초기
건물에 적용했을까요!?
부석사 조사당에 남아있는 단청중에서
특히 대량 ~ 종량 부분에 그려진 단청이
통일신라적 요소가 매우 강합니다.
눈여겨 봐야할게 이겁니다.
소로와 주두를 분선 , 그러니까
하얀색으로만 긋기 단청을 시공했으며
주두와 소로를 2단으로 나누어 그렸습니다.


857년 당나라 후기 건축물인
불광사 대전 내부에 그려져있는
당나라 후기 긋기단청 입니다.
색만 다르지 부석사 조사당 소로하고
단청 그리는 방식이 아예 똑같죠!?

그런데 님들 이것좀 보세요!!!
중국의 유저가 그래픽 복원한
당나라 중후기 건축물!
남선사 대전 단청을 보시면
소로 부분이 초록색 입니다.
그리고 흰색 줄로 분선긋기 단청을
시공하여 소로와 주두를 2단 긋기로
단청을 시공했습니다.

님들 뭐......
더 설명할 필요가 있나요?
부석사 조사당의 소로와 주두
그리고 긋기 단청은, 당나라 후기 단청하고
그 방식이 90% 똑같습니다.
이래도..... 통일신라 단청이
아예 확인이 안되는 걸까요!?!?!?!?

그래서 저는 부석사 조사당에서
확인 가능한 , 당나라 시절 단청과
매우 똑같은...
소로와 주두 2단 분선긋기 단청을
사용하였으며, 머리초는 그나마
후삼국시대 ~ 고려시대 극초반
단청으로 추정 가능하지만, 도안은
알수 없어서 저 나름대로 적당히 재현해본
봉정사 대웅전 머리초 단청을
사용해서 건물을 꾸민 것 입니다!

참고로 봉정사 대웅전 고려시대
머리초를 통일신라 극후반 단청
혹은
후삼국시대 단청으로도 추정이
가능한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볼까요?

위에서 소개한
857년 불광사 대전 단청 입니다.
눈여겨 볼거는 흰색 긋기선 입니다.
봉정사 대웅전 고려시대 단청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흰색 긋기선을
한중간에 일자로 쭈욱 그려놨습니다.


그리고 봉정사 대웅전 단청의
바탕색은 무려 붉은색 입니다!!!
당나라 불광사 대전이랑 색상 구성이
거의 한 90% 똑같다는게 핵심 포인트!

그리고
통일신라 후기 단청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안압지 출토
실제 통일신라 부연 첨차에 채색된
단청 색상은, 실제로 붉은색 입니다!

그니까 봉정사 대웅전 단청은
바탕색부터 붉은색 입니다...!!!
통일신라 + 당나라 단청에서 확인되는
붉은색 바탕의 단청이라는게 핵심 포인트!
게다가 857년 당나라 불광사
내부 단청 패턴에서 확인 가능한!
하얀색 분선 긋기단청까지 사용했어요!
이런 모든 요소가 의외로,
봉정사 대웅전 단청이, 통일신라 시절 또는
당나라 단청 요소가 진하게 보인다는 증거 입니다!


이게 당나라 857년
불광사 내부 단청중에 일부분을
모사해서 그린 그림 인데요,
흰색 분선 긋기 + 붉은색 단청 배경색 입니다.
단청 기초가 봉정사 대웅전이랑 똒같죠!?
그렇기 때문에 봉정사 대웅전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단청은, 의외로 통일신라 극후기
또는 후삼국시대 단청으로 추정이 가능한 것 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통일신라나 고려시절 단청으로
생각했으면 생각했지,
어째서 후삼국시대로
추정을 하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봉정사 대웅전에
남아있는 기록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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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 -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
[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
- 해석 -
1435년 8월 초알에 씀.
신라시대로 부터 500여년
흐르고...
1435년 8월 , 을묘년
지금에 이르러서 법당을 중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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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실제 기록에 적혀있는게
봉정사 대웅전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시작했다는 기록이 확실히 발견되었고,
신라시대로 부터 500년이 흐른
1435년 수리했다는 기록이니까
기록상 시간대를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해보면
1435 - 500 = 935년 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 경우는, 시간대가 고려 초기 입니다!

그런데 500년이 흘렀다는데
이게 정확히 500년이 딱 맞춰
시간이 흘렀다! 라는건 아니고...
대략 500여년이 흘렀다라고
이해하는게 맞겠죠...!?
그니까 이제 기록에 의하면
1 - 봉정사 대웅전은 신라시대부터 출발
2 - 기록에 의거한 단순 날짜 계산 결과 : 935년 고려초기
실제 기록이랑, 기록에 의거한
날짜 계산이랑 시대가 안맞기는
하는데...묘하게 거의 비슷한 시기입니다!

게다가 봉정사 대웅전 내부에는
고려시대 고식 건축 부자재!
고려시대 첨차가 섞여 있어서
기록에 대한 신빙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니까 기록상 봉정사 대웅전은
통일신라 부터 있던 건물이고,
857년 당나라 건축의 단청하고
특징이 비슷하며, 고려초기 단청
요소도 보이는 건물 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통일신라 단청은
아니고, 머리초 단청이므로...
당나라 시절 단청보다는 좀 더
발전한 형태의 단청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단청이라기엔
당나라적 특징이 분명히 눈에 띄는데,
통일신라 그 시절 단청이라기엔
한단계 더 발전한 형태라는 점,
마침 기록에 의거한 날짜 계산은
935년 고려초기로 볼 수 있으니까

이 모든 정황상 ...!!
통일신라 극후반이나
후삼국시절 단청으로 보는게
타당하지 않나...라고
개인적으로 추정합니다. 하여튼
후삼국시대 단청이 아니더라도
통일신라 후기 ~ 고려초기 단청은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될듯 합니다.

- 이번 건물에 사용한 비단 장식에 대하여 -

그런데 제가 만든 남리사지 중문을
보면, 뭔가 굉장히 일본틱한,
뭔가 굉장히 왜색이 미칠듯이
짙은 비단 장식을 걸어놨죠!?
사실 문앞에 걸어두는 저런
비단 장식, 전혀 왜색이 짙은
무언가가 절대 아니랍니다!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
고려초기까지는 , 저런 뭔가
왜색이 짙은 비단을
문앞에다가 장식했었던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한 것 입니다.

일단, 왜색이 짙게 생긴
레이어가 잔뜩 나뉘어있는 비단은
조선시대 , 특히 사찰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법주사 능인보전 이라는 곳인데
보통 저렇게 탁자위에 깔아놓는
비단에 한해서는 탁의라고 합니다.

여튼 탁의라는,
조선시대 탁자 비단이
마치 일본 사찰 문 입구 위에
걸어두는 비단하고 비슷하죠!?

이 사진은 구한말 화엄사 각황전
내부를 촬영한 사진 입니다.
불단 아래를 비단으로 장식했는데
일본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디자인이죠!?
바로 그 디자인은! 사실
당나라 시절 장식으로부터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보통 당나라 둔황석굴
건물 그림을 관찰해보면
문위에 보통 주렴, 그니까
대나무발을 걸어놓은게
대부분 인데요,
의외로 대나무발이 아니라
비단 장식으로 추정해볼만한
벽화들도 발견됩니다.

당나라 여인들이
들고다니는 비단 도안이
일본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포렴같은 비단 휘장 하고
거의 똑같은 패턴 입니다.

당나라 유림굴 25굴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탁자위에 비단을
올려놨습니다. 탁의죠!
그 탁의가 대놓고 일본 사찰
문위에 걸어놓는 비단하고
생긴게 거의 똑같습니다 !

그래서 사찰 문위에
걸어놓는 비단 장식은
정확하게는 왜색이 아닙니다.

엄밀하게는
당나라풍 이라고
부르는게 맞겠죠...??

그리고 비단을 여러폭의
레이어로 나눈 듯한 모습의
문위에 걸어놓는 비단 장식은
고려시대 초기까지는
사용했던것으로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절 , 문 위에 레이어를 잔뜩 나눈
비단 장식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그림은 바로!
1011 ~ 1087년 고려초기 목판화 그림,
고려 초조대장경 어제불부 입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회화중에서
고려초기 건축과 전각을 가장
많이 , 확실하게, 다양하게 그린
정말 몇 안되는 고려시대 건축 그림이며,
1011년에 제작을 시작하여
1087년에 제작한게 확인되었기 때문에
정말 몇 없는 고려시대 초기 작품입니다.

그냥 그림을 보면 그냥
한방에 이해가 되실겁니다.
문 위에 일본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비단 같은걸
사용한게 한눈에 보이죠?

1011 ~ 1087년 고려초기 목판화 그림 자료
고려 초조대장경 어제불부 그림에
그려진 문위에 걸어둔 장식은
아마 이런식으로 생긴 비단 장식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일본거하고 다르게
비단 장식이 2단 이지만,
레이어를 잔뜩 나눈 비단 장식을
문 위에 걸어두는 문화가 고려에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일단 현재로써는 유일한
그림 자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고려초기 목판화 그림
1011 ~ 1087년 어제불부 그림 대부분은
일본의 비단 장식처럼 짧지 않고
대부분이 엄청 길다란 커튼같은
모습입니다.

사실 저게 비단 장식이 아니라
대나무 발, 그니까 주렴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식 비단 장식하고
대나무 발 포렴은, 생긴게 거의
똑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나무발 주렴을 만드는
방식이랑 , 일본식 비단휘장은
몸통이 대나무냐 , 비단이냐 딱 그거만
다르고... 얆은 비단을 세로로 덧붙혀서
몇 폭으로 나눈 모습이 동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목판화 라는
그림 장르의 한계로 인하여...
저게 대나무발인지
비단 휘장인지 구별은
사실 맨눈으로는 힘듭니다.

그래서 고려 어제불부 그림의
장식은 이렇게 대나무발일
가능성도 높긴 합니다만...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나무발 보다는 비단 장식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를 볼까요!?

어제불부 그림을 분석해보면
문 입구에 걸어두는 장식중에
포렴 마냥 짧은 장식들이 문에 걸려있어요.
저 짧은 장식들을 보면 , 동그랗지 않고
평평하고 납작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불부 그림의 짧은 문장식이
대나무 발이라면, 돌돌 말아올린
상태라 둥그런 모양이어야 겠죠!?
그런데 어제불부 그림의 문장식은
전혀 둥그런 모양새가 아닙니다.

게다가 고려 어제불부에 등장하는
문입구에 설치하는 비단휘장 장식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애용하였습니다...!!
조선후기, 서울 종로 육상궁 솟을삼문
문 입구 앞에 걸어놓은 비단휘장 장식이...
1087년 고려 어제불부에서
관찰 가능한, 문 입구위에 걸어놓은
비단 장식하고 거의 비슷한 모양입니다 ...!!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고려 1087년 어제불부에 그려진 문 장식은
대나무발이 아니라, 비단 장식이 맞다고 생각해요.
목판화라서 사실 분간을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 일본식 비단휘장 포렴하고
대나무발 주렴하고 섞여있는 그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확실하진 않아요.

그걸 증명해주는게 9 ~ 10세기
중국 회화속, 여인이 들고 있는
비단 장식을 보면...
길이가 많이 깁니다. 비단 도안이
고려 어제불부랑 많이 비슷하게 생겼죠!

그래서 아마도...
그래서 고려 어제불부 문위에 걸어두는게
무작정 대나무발 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무조건 비단이라고 하기도 뭣한데, 비단일
가능성이 좀 더 많이 높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일본 사찰식
문위에 거는 비단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똑같이 생긴걸 실제로
사용했습니다.
안동시립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전통가마인 보교 / 그리고 보교에
사용하는 보교 휘장 비단 장식을 보면

그냥 대놓고 일본 사찰에서
사용하는 문위에 걸어두는
비단이랑 거의 비슷합니다!

이거도 안동시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있는 보교 휘장 비단인데요,
레이어를 3단 폭으로 나누고 , 비단폭
사이에 길다란 비단으로 가린 모습이
일본 사찰 비단하고 거의 비슷하죠!

아무튼 의외로 일본 사찰의 문위에
거는 비단 장식은 , 일단은 적어도...
고려초기 까지는 사용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조선시대때는 비록 문위에 걸어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가마용으로
사용하던 우리나라 전통 비단양식 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만든 건물에
다양한 형태의 포렴, 그리고
비단 휘장을 사용한 것 입니다.


또한 이번 건물은 후삼국시대 ~
고려 초기 건물로 상정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고려에 발해 유민들이 대거 들어왔던
실제 역사에 입각하여, 발해 삼릉둔 2호분
단청을 , 비단 장식 무늬로 사용했습니다.
고려에 발해 문화가 들어왔었으므로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사용해본 것 입니다!
그럼 이만 긴 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大福 받으세요...!!

*참고사항 *
이 내용은 25년 12월 20까지
연구된 내용으로 작성했습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변화 /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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