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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 삼국시대 가야 ( 가락국 )! 가야 건축물은 기와를 사용했을까요? Feat - 가야 가형토기



일반적으로

가야 (가락국) 건축물

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무로 만든

귀틀집 고상가옥이나~



볏짚으로 만든

움집을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기와집이 아예 없는것

처럼 느껴지는 가락국...




그러나 가야 또한 기와를

사용한 기와집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제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1 - 삼국시대 가야, 기와를 올린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다!?



< 스샷 1>



여러가지 자료를 모와

제가 직접 복원해본~!

가야 맞배지붕 건축물! 입니다!



가야는 이 스샷과 같은

모양의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통은 고상 가옥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다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또한 기단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창문도 일자창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볼까요~?



< 가형 토기 >



가야 가형토기 사진 입니다.

이 가형 토기는 어디어디 지역

에서 출토된 가야의 집모양 토기!



이 토기는 그냥............

딱 봐도 ........  뭐 말이 필요없죠!

딱 봐도 ........  기와지붕 건물이지요?



지붕에 기왓골이

확실히 포개져 있는

모습을 아~~~~~~~~주 그냥!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류의 토기는 실제로

있었던 건물을 토대로 ~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 집모양 토기만 봐도.........



변한 이후..........

어떤 일정시점 부터는~!

기와지붕 건축물이 수입되었다고!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입니다.



< 스샷 2 >


그리고 집모양 토기를

자세히 보시면 ~



삼국시대 ~ 통일신라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일자창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집모양 토기로 인하여.......

삼국시대때! 일자창문을

사용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 신라 송공사 >
삼국시대 신라 or 고구려를 그린것으로 추측되는 신라 송공사 & 고려 왕사. 일자창문이 보이네요!



일자창문은 ~~ 정확히

삼국시대 꺼다! 라고

할만한 완벽한 국내 자료는~



이 가락국 집모양 토기가

거의 유일하다고 보시면 되요.



미륵사 출토 일자 창문은

완벽한 삼국시대 창문!



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습니다.



< 스샷 3 >


그런데 제가 복원한

문 손잡이는 뭔가

좀 특이하지요?



가야는 대문 손잡이 같은건

아예~ 발견되지는 않아서!



가야 파형동기로

만들어 봤어요.

네. 창작 이지요.



파형동기는 비록

건축물 하고는~~~

별 상관이 없지만..........



가야의 문 손잡이 모양은

자세히 모르니까~!


파형동기를

이런식으로~~

활용하는것도~!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용해 봤습니다!


< 스샷 4 >


제가 만든 건축물을

보면 기단이 흙기단 이지요?



가락국은 제대로 된 기단이

아직은 발굴되지 않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돌로 기단을 쌓는 방식은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어요.



다만 기록으로써 기단의

유무 정도는 확인

할 수 있습니다!



< 스샷 5 >



삼국유사 기록에

기단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 삼국유사 가락국기 >



김수로왕이

궁궐을 만들었는데

지붕은 짚을 이엉으로 만들고,


기단은 흙으로 만들었는데

고작 3척에 불과했다.



< 스샷 6 >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흙기단이 3척 정도다!

라고 정확히 적혀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있어서

기단 문화가 있었던 것은

확인 할 수 있지요!



김수로왕은

검소하고 현명하셔서!



몸소 검소함을 실천하며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신겁니다!



그러니까 궁궐 지붕을

이엉으로 잇고, 기단을

그냥 흙기단으로 한 것이지요!



여튼 기단이 3척이라고

되어 있지요~?



그 시절 척으로 보면

대충 75cm~ 1m 사이

정도 입니다.



제가 만든 복원 건축물

흙기단 높이는 그래서~!

1m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만든 건물을 보면

기둥이 땅속에 묻혀 있지요?



가야는 기둥 받침돌 ( 초석 )

이게 발견된 적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 기둥을 땅속에

일정량 묻어 설치하는

굴립주만 발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땅속에 기둥과 초석을

심어서 설치하는 방식은!

백제, 일본에서 볼 수 있어요.



삼국시대 백제나 일본은

땅속에 초석을 묻어서,



그 위에 기둥을 설치한...

기둥 하부를 일정량 땅속에

묻어서 설치하는...........



굴립주 초석 방식이

실제로 발견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실제 가야 건물터

대부분이 굴립주 입니다.



이 자료들을 정상참작

하여 굴립주 기둥으로

적용했습니다.



< 스샷 7 >


여튼 건물은

기와지붕 건물로

만들어봤습니다.



그러나.................삼국유사

기록은, 이엉으로 지붕을

엮었다고 나오죠!?



그리고 이거 외에~

가야 기와지붕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왜! 저는!

기와지붕으로 건축물을

복원했을까요?



사실..........

가야는 실제로 기와가

발견이 되었답니다.


< 수막새 >


일본놈들이 임나가야 어쩌구

지럴떨려고 악착같이 발굴해....



드디어 get 또다제!

라고 전해지는......껄껄 [ 먼산 ]



가야의 연화문 수막새 입니다.

출토지는 고령 대가야 왕궁터

이곳에서 출토되었다네요.



시기는 대략 6세기 ( 500년대 )

정도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실제 수막새가

출토되었습니다.



< 평기와 사진 >


또한 ~

가야 부원동 유적지에서

평기와로 추정되는~



수많은 기와 파편들이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 평기와 = 암키와 )



< 집모양 토기 다시 >



수막새가 출토 되었고!

평기와도 출토 됬습니다!

가야 출토 집모양 토기는!



기왓골을 형성하고 있는

기와지붕 건축물 입니다!



이 3가지만 봐도 알 수 있죠!?

가야 또한 거의 무조건..........

기와집이 있었을 겁니다!



< 스샷 8 >


제가 만든 건축물은

이 모든걸 기초로

만든겁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기단 기록

대가야 왕궁터 수막새

부원동 유적지 평기와

기둥은 전부 굴립주만 발견

가야 집모양 토기




이 모든것을 합치면

이런 맞배지붕 건축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연꽃 전돌 >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가야에서 이렇게 연꽃무늬

전돌까지 발견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돌은

자세한 사용처를 몰라서.....



제가 복원한 건축물에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렇습니다!

가야 유적지에서!



실제 기와 파편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시대는 대략

500년대로 추정 합니다.



왜냐하면 백제의 500년대

수막새하고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 스샷 9 >



신기하지요?

보통은 가야라고 하면

억새나 볏짚으로 만든 움집이나~



나무로 만든 고상 가옥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기와지붕도 있었습니다.



여지것 발견된 것들만

싸그리 싹다 모으면!



무려 고증논란 거의 없이!

기와지붕 건물을 예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지요!



마치 제가 만든

그래픽 복원 건물 같은것을~

고증 논란 최소로 만들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락국 연합이

기와지붕 건축물을 사용했다는

최고의 증거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 뉴스 링크 >


김해 금관가야 건물터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

되었는데요!



재미있게도! 무려!

목탑터 입니다!



예상으론 20m 정도 되는

목탑이라고 하네요!!!!!



20m 수준의 목탑이라면

사실상......거의 무조건

기와를 사용했을 겁니다.



20m 수준의 목탑은

반드시 수준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술력에 맞는 지붕은

당연히 기와지붕 일 것 입니다!



참고로 20m는

법주사 팔상전 목탑

정도의 높이를 보여줍니다.



( 법주사 팔상전이 20m )



김해 금관가야 목탑터야 말로

진정한! 가야의 기와지붕 건물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되네요!



참고로 김해 금관가야

목탑 유적지는!!!!!!!



황룡사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진......진짜 고대 목탑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금관가야 목탑터는

삼국시대 기록에 나오는~



450년에 만든 왕후사

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황룡사 목탑이 654년 쯤 )



< 스샷 10 >



이렇듯 가야는 기와지붕

자료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수두룩하게!



출토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가야 건축의

이미지를 바꿀때가 된 것이지요.



가야는 무조건!

고상가옥 & 움집이 대표!

라는 고정 관념에서..........



20m급 목탑을 만들

정도의 건축 기술력을

가진 국가이며!



기와 지붕은

가야 후반기부터 분명히 있었다!

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변한시절

움집 이미지만 생각해서는

안될 정도로~!



가야 관련 기와지붕

자료는, 서서히~ 더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2 - 왜 우리는 가야 건물하면, 고상가옥이나 초가지붕만 생각할까요 ?



이렇게 실제 기와가

출토되고 있는 가야.



그런데 왜 우리는 가야라고

하면, 무조건 초가지붕이나

고상가옥만 생각할까요!?



이것은 이런

이유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1. 전부 볏짚, 억새로 만든 이엉지붕 기록만 남아있다.



중국 후한서 - 동이열전

여기에 가야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변한 = 가야 입니다!



변한은 움집에 살거나

나무를 가로로 쌓아 만든

귀틀집에 살았다.  마치 개미굴 같았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근데 이건 후한서.....즉,




마한, 변한, 진한 시절

기록이지요.



< 고상가옥 1 >



그래도 뭐 여튼.....볏짚 같은

짚으로 만든 건물밖에 없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삼국유사

가락국기 조차......



김수로왕이 궁궐을 짓는데

지붕을 이엉으로 엮었다.

라고만 합니다.



이거 외에는 지붕에 관련된

기록 자체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며!



기와는 기록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변한 시절 기록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가야는 무조건

이엉집 건축물!



이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것 입니다!


< 고상가옥 2 렌더링 >


2. 건물 관련 유물 & 유적이 하나같이 고상가옥이나 움집들



이렇게 기와에 관련된

기록도 하나 없는데.....



실제 가야 건축물의 80~90%는

움집 or 고상가옥 건물터만

발견이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소국의 왕이

사용하던 건물조차 이런

성향이 보입니다....



이런 건물터는

당연히 500년대

이전 건물들이 대다수 입니다!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가야는 500년대 이전 건물터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고.......



건물터 대부분

움집 or 고상가옥을

유추할만한 평면도라서......



실제 건물 복원이 고상가옥

위주로 되어버렸습니다.



< 집모양 토기 2 사진 >



또한!



집모양 토기 대부분이

움집 or 고상 가옥처럼

생긴 집이 대다수~!



이러다보니 가야 건축물은

200~300년 이때 위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실제 기와조각이나

가장 확실한 기와지붕 건물인!



금관가야 목탑터 같은건

정말 최~~~~~~~~근에

발견된 수준이라서.....



가야 기와지붕 건물에 관한

이미지가 뭐 심어지고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야 (가락국) 건축물

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무로 만든

귀틀집 고상가옥이나~


볏짚으로 만든

움집을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기와집이 아예 없는것

처럼 느껴지는 가락국...


그러나 가야 또한 기와를

사용한 기와집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제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1 - 삼국시대 가야, 기와를 올린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다!?











가야 출토 집모양 토기를 모티브로 만든, 삼국시대 가야의 맞배지붕 건축물

여러가지 자료를 모와

제가 직접 복원해본~!

가야 맞배지붕 건축물! 입니다!

가야는 이 스샷과 같은

모양의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통은 고상 가옥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다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또한 기단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창문도 살창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볼까요~?


가야 맞배지붕 집모양 토기 ( 가형토기 )
가야 가형토기 사진 입니다.

이 가형 토기는 어디어디 지역

에서 출토된 가야의 집모양 토기!

이 토기는 그냥............

딱 봐도 ........  뭐 말이 필요없죠!

딱 봐도 ........  기와지붕 건물이지요?

지붕에 기왓골이

확실히 포개져 있는 모습을~ 아~~~~~~~~주 그냥!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류의 토기는 실제로

있었던 건물을 토대로 ~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 집모양 토기만 봐도.........


변한 이후..........
어떤 일정시점 부터는~!

기와지붕 건축물이 수입되었다고!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입니다.

그리고 집모양 토기를

자세히 보시면 ~


삼국시대 ~ 통일신라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집모양 토기로 인하여.......

삼국시대때! 살창을

사용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삼국시대 신라 or 고구려를 그린것으로 추측되는 신라 송공사 & 고려 왕사. 살창 ( 일자 창문 )이 보이네요!


일자창문 ( 살창 ) 은 정확히~

삼국시대 꺼다! 라고

할만한 완벽한 국내 자료는~

이 가락국 집모양 토기가

거의 유일하다고 보시면 되요.

미륵사 출토 일자 창문 ( 살창 )은

완벽한 삼국시대 창문!

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원한

문 손잡이는 뭔가

좀 특이하지요?


가야는 대문 손잡이 같은건

아예~ 발견되지는 않아서!


가야 파형동기로

만들어 봤어요.

네. 창작 이지요.

가야 출토 파형동기
파형동기는 비록

건축물 하고는~~~

별 상관이 없지만..........


가야의 문 손잡이 모양은

자세히 모르니까~!

파형동기를

이런식으로~~

활용하는것도~!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용해 봤습니다!

제가 만든 건축물을

보면 기단이 흙기단 이지요?

가락국은 제대로 된 기단이

아직은 발굴되지 않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돌로 기단을 쌓는 방식은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어요.

다만 기록으로써 기단의

유무 정도는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기록에

기단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 삼국유사 가락국기 >


김수로왕이

궁궐을 만들었는데

지붕은 짚을 이엉으로 만들고,

기단은 흙으로 만들었는데

고작 3척에 불과했다.

***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흙기단이 3척 정도다!

라고 정확히 적혀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있어서

기단 문화가 있었던 것은

확인 할 수 있지요!


김수로왕은

검소하고 현명하셔서!


몸소 검소함을 실천하며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신겁니다!

그러니까 궁궐 지붕을

이엉으로 잇고, 기단을

그냥 흙기단으로 한 것이지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3척 흙기단을 적용한 가야 건축물 모습!
여튼 기단이 3척이라고

되어 있지요~?


그 시절 척으로 보면

대충 75cm~ 1m 사이

정도 입니다.

제가 만든 복원 건축물

흙기단 높이는 그래서~!

1m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만든 건물을 보면

기둥이 땅속에 묻혀 있지요?

가야는 기둥 받침돌 ( 초석 )

이게 발견된 적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 기둥을 땅속에

일정량 묻어 설치하는

굴립주만 발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땅속에 기둥과 초석을
심어서 설치하는 방식은! 삼국시대 백제 건물터, 아스카 시대 일본에서 볼 수 있어요.

삼국시대 백제나 일본은

땅속에 초석을 묻어서,

그 위에 기둥을 설치한...

기둥 하부를 일정량 땅속에

묻어서 설치하는...........


굴립주 초석 방식이

실제로 발견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실제 가야 건물터

대부분이 굴립주 입니다.


이 자료들을 정상참작

하여 굴립주 기둥으로

적용했습니다.

여튼 건물은

기와지붕 건물로

만들어봤습니다.

그러나.................삼국유사

기록은, 이엉으로 지붕을

엮었다고 나오죠!?


그리고 이거 외에~

가야 기와지붕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왜! 저는!

기와지붕으로 건축물을

복원했을까요?


사실..........

가야는 실제로 기와가

발견이 되었답니다.

일본놈들이 임나가야 어쩌구

지럴떨려고 악착같이 발굴해....


드디어 get 또다제!

라고 전해지는......껄껄 [ 먼산 ]

가야의 연화문 수막새 입니다.

출토지는 고령 대가야 왕궁터

이곳에서 출토되었다네요.

시기는 대략 6세기 ( 500년대 )

정도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실제 수막새가

출토되었습니다.



가야에서 출토된 각종 기와들! 암키와 까지 출토가 되었습니다!

또한 ~

가야 부원동 유적지에서

평기와로 추정되는~

수많은 기와 파편들이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 평기와 = 암키와 )

딱 봐도 기왓골이 마구 보이는, 기와지붕 건축물 입니다!
수막새가 출토 되었고!

평기와도 출토 됬습니다!

가야 출토 집모양 토기는!

기왓골을 형성하고 있는

기와지붕 건축물 입니다!

이 3가지만 봐도 알 수 있죠!?

가야 또한 거의 무조건..........

기와집이 있었을 겁니다!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만든 건축물은

이 모든걸 기초로

만든겁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기단 기록

대가야 왕궁터 수막새

부원동 유적지 평기와

기둥은 전부 굴립주만 발견

가야 집모양 토기


이 모든것을 합치면

이런 맞배지붕 건축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야 유적지 출토 연화문 전돌!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가야에서 이렇게 연꽃무늬

전돌까지 발견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돌은

자세한 사용처를 몰라서.....


제가 복원한 건축물에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렇습니다!

가야 유적지에서!

실제 기와 파편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시대는 대략

500년대로 추정 합니다.

왜냐하면 백제의 500년대

수막새하고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신기하지요?

보통은 가야라고 하면

억새나 볏짚으로 만든 움집이나~

나무로 만든 고상 가옥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기와지붕도 있었습니다.


여지것 발견된 것들만

싸그리 싹다 모으면!


무려 고증논란 거의 없이!

기와지붕 건물을 예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지요!


마치 제가 만든

그래픽 복원 건물 같은것을~

고증 논란 최소로 만들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락국 연합이

기와지붕 건축물을 사용했다는

최고의 증거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90826_0000750904 이 링크에 들어가시면! 가야 목탑터 뉴스로 이동합니다!

김해 금관가야 건물터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

되었는데요!


재미있게도! 무려!

목탑터 입니다!


예상으론 20m 정도 되는

목탑이라고 하네요!!!!!


20m 수준의 목탑이라면

사실상......거의 무조건

기와를 사용했을 겁니다.


20m 수준의 목탑은

반드시 수준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술력에 맞는 지붕은

당연히 기와지붕 일 것 입니다!


참고로 20m는

법주사 팔상전 목탑

정도의 높이를 보여줍니다.


( 법주사 팔상전이 ) ( 상륜부 [ 지붕 윗쪽 금속 ] 까지 22.7m )

김해 금관가야 목탑터야 말로

진정한! 가야의 기와지붕 건물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되네요!


참고로 김해 금관가야

목탑 유적지는!!!!!!!

황룡사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진......진짜 고대 목탑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금관가야 목탑터는

삼국시대 기록에 나오는~

450년에 만든 왕후사

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황룡사 목탑이 654년 쯤 )

가야는 이렇게 움집, 고상가옥만 있던게 아니었습니다! 출저 : www.heritage.go.kr


이렇듯 가야는 기와지붕

자료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수두룩하게!

출토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가야 건축의

이미지를 바꿀때가 된 것이지요.

가야는 무조건!

고상가옥 & 움집이 대표!

라는 고정 관념에서..........

20m급 목탑을 만들

정도의 건축 기술력을

가진 국가이며!

기와 지붕은 가야 후반기 부터 분명히 있었다!

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변한시절

움집 이미지만 생각해서는

안될 정도로~!


가야 관련 기와지붕

자료는, 서서히~ 더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2 - 왜 우리는 가야 건물하면, 고상가옥이나 초가지붕만 생각할까요 ?

이렇게 실제 기와가

출토되고 있는 가야.


그런데 왜 우리는 가야라고

하면, 무조건 초가지붕이나

고상가옥만 생각할까요!?

이것은 이런

이유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1. 전부 볏짚, 억새로 만든 이엉지붕 기록만 남아있다.

중국 후한서 - 동이열전

여기에 가야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변한 = 가야 입니다!


변한은 움집에 살거나

나무를 가로로 쌓아 만든

귀틀집에 살았다.  마치 개미굴 같았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근데 이건 후한서.....즉,


마한, 변한, 진한 시절

기록이지요.







김해 봉황동 움집 출저 : www.heritage.go.kr


그래도 뭐 여튼.....볏짚 같은

짚으로 만든 건물밖에 없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삼국유사

가락국기 조차......

김수로왕이 궁궐을 짓는데

지붕을 이엉으로 엮었다.

라고만 합니다.


이거 외에는 지붕에 관련된

기록 자체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며!


기와는 기록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변한 시절 기록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가야는 무조건

이엉집 건축물!

이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것 입니다!


출저 : 트랩 어드바이저

2. 건물 관련 유물 & 유적이 하나같이 고상가옥이나 움집들

이렇게 기와에 관련된

기록도 하나 없는데.....

실제 가야 건축물의 80~90%는

움집 or 고상가옥 건물터만

발견이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소국의 왕이

사용하던 건물조차 이런

성향이 보입니다....


이런 건물터는

당연히 500년대

이전 건물들이 대다수 입니다!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가야는 500년대 이전 건물터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고.......

건물터 대부분

움집 or 고상가옥을

유추할만한 평면도라서......


실제 건물 복원이 고상가옥

위주로 되어버렸습니다.


가야출토 고상가옥 집모양 토기 출저: 한겨레
또한!

집모양 토기 대부분이

움집 or 고상 가옥처럼

생긴 집이 대다수~!

이러다보니 가야 건축물은

200~300년 이때 위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실제 기와조각이나

가장 확실한 기와지붕 건물인!

금관가야 목탑터 같은건

정말 최~~~~~~~~근에

발견된 수준이라서.....

가야 기와지붕 건물에 관한

이미지가 뭐 심어지고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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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야 건축물

복원도 고상가옥이나

움집 위주로만 실제 복원 되었고,

보도자료 조차 고상가옥

위주로 보도가 되어서.....

사람들은 여러모로

고상가옥 or 움집만

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눈으로 쉽게!

찾을수 있고! 쉽게!

눈에 보이는 모든게!

고상가옥 or 움집이다 보니......


우리는 가야 건물!

이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

고상 가옥 or 움집만

생각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기와조각및 확실한

기와지붕 건물터가

너무 늦게 발견됬고,

건물터 대부분이

고상가옥 위주로 발견되서~

실제 복원마저

고상가옥 위주로

복원한 결과.....라고 생각되네요.


3. 가야는 언제부터 기와지붕을 사용했을까요?


가야 출토 집모양 토기,

김해 부원동 유적지 평기와,

고령 대가야 왕궁터 수막새,

김해 금관가야 목탑터

이 유적지들 하고~

출토 기와들, 유물 덕분에

기와지붕 건물이 있었던 것은!

사실상 확정 됬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인지

궁금하시죠!?

답은! 잘 모른다! 입니다.

허허. ㅈㅅㅈㅅ


근데 유추는 가능해요.

유추를 볼까요?

김해 봉황동 고상가옥 ! 출저 : www.heritage.go.kr

수막새를 봤을때 500년대

백제 수막새하고 매우 흡사

하므로,

6세기인 500년대 쯔음엔

이미 기와 문화가 들어

왔을겁니다만!

< 백제 8엽문 수막새 출저 : 국립중앙박물관 >



언제 들여와서~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허허~~~


다만!

삼국시대 기록에!

가야가 왕후사를 만들었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 왕후사는 450년경에

만든 사찰 입니다. ( 5세기 )

김해 금관가야 목탑이

왕후사 가능성이

꽤나 있거든요?

만일 금관가야 목탑터가

왕후사로 확정된다면..........!!


450년 쯤엔 기와 문화가

들어와서 사용되었다고

생각해도 될 듯 합니다!

출저 : https://korean.visitkorea.or.kr/


고상가옥! 출저 : https://korean.visitkorea.or.kr/


고구려나 백제는

이미 4세기부터는

기와를 널리 사용한게 확인되고...........

고구려가 가야를

침공했다는 사실,

가야는 주구장창

백제, 신라하고 경쟁하고.........

가야가 왕후사를 건립하고.....등등.......


이런 사실들을

전부 유추해 봤을때........


가야 & 가락국 연합 또한

5세기 ( 400년대 )........ 이쯤에는~

기와지붕 문화가

들어왔을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유추만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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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줄 요약 -

- 가야는 기와지붕 건물이 있었다

- 대가야 궁터, 부원동 유적에서 수막새, 평기와 출토

- 금관가야 목탑터도 발견됨

- 가야 집모양 토기는, 대놓고 기와지붕 맞배지붕.

- 이런 모든걸 보면 기와지붕 건물은 확실히 있었다.



- 근데 실제 가야 건물터는 고상가옥 or 움집이 가장 많이 발견됨

- 집모양 토기조차 고상가옥 계열이 가장 많이 발견

- 그래서 실제 건물 복원을 고상가옥 or 움집만 복원함.

- 보도자료및 교육자료도 고상가옥 위주로 배포됨

- 사서 기록도 이엉 지붕만 기록되어 있음

- 기와 파편및 기와지붕 자료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견됨.

  늦게 발견된 편

- 또한 기와지붕 건물 자료는 수량도 적음

- 눈으로 보이는 실제 건물

- 눈으로 보이는 사서 기록

- 눈으로 보이는 보도 자료

- 전부 고상가옥 or 움집 위주

- 가야에서 기와지붕 자료가 실제 발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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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은 이런 자료, 접하기 쉽지 않다. 


- 국민들에겐 고상가옥 or 움집만 눈에 쉽게보임

- 그래서 우리는 가야건물 이라고 하면 고상가옥 or 움집만 생각남

- 그러나 앞으로 가야도 기와지붕 있었다!

  이 내용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스샷 10장, 고상가옥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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