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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고있는 봉정사!



그 봉정사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있어요.

 


그 봉정사 극락전은 어쩌면

"통일신라 후기 건물"

 

" 혹은 후삼국시대 건축물 "

 



일수도 있는 상황이랍니다.

 



실존하는 통일신라시대 건축물,

 

혹은 후삼국시대 건축물!

매력있지 않나요?

 

 



그런데 이상하죠?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건물일탠데...

 

 

 

왜? 어째서 ?

 

어쩌면은 통일신라 건물일수도,

 

후삼국시대 건축물일수도 있을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어쩌면은 통일신라 건물일수도 있는지...

 

 

 

 

여러가지 자료들을 토대로

 

의심받는지 하나씩 알아봅시다.

 

 

봉정사 극락전 - 출저: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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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극락전은 약간 작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주심포" 건물 이랍니다.

 

 

 

건축 양식과 내부에 출토된 단청으로

 

인하여, 1200년도 고려중기 건축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제대로 알고보면,

 

많은 면에서 통일신라 시대의

 

건축양식과 요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극락전에 적용해봤다.

 

 

 

그럼 지금부터 봉정사의 연혁과

 

봉정사에서 발굴된 기록들을 보며,

 

 

 

어째서 봉정사 극락전이 통일신라

 

건축물로 의심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봉정사의 연혁 *

 

 

 

 

일단 연혁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사료들을 필두로

 

창건 시대를 유추 하자면,

 

 

창건자: 의상대사 or 능인대덕

 

창건 시대 :통일신라 초기

 

가장 유력합니다.

 

 

 

 

이번에는 각종 고서와 묵서들

 

좀더 자세히 기록을 보겠습니다.

 

출저 - 문화재청

 

 

 

봉정사 대웅전 우측불단 상판 하부 묵서,

"여지도서"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정(亭)자를 써서

봉정사(鳳亭寺)라하며...

신라시대 고찰이다. 라고 적혀있다.



########################################################


"영가지"라는 책의 기록에서

봉정사-신라위명찰 이라 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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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극락전 중수기"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봉정즉복주거찰, 신라문무왕창건야 ]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이 창건 하였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무대왕이 직접

창건 했다고 보기는 좀 그렇고...

 

 

봉정사 극락전 건물에 / 12세기 고려시대 단청 + 청자기와 + 흰벽을 적용해 보았다.

 

 

실제로는 고승들이 창건했을걸로

 

예상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문무왕이 아닌 고승들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더 많아서 입니다.

 

 

 

그래서 문무왕이 직접 창건한건 아니고

 

문무왕 시절 활동했던 유명한 고승들이,

 

 

문무왕의 도움을 받아

 

창건한걸로 예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두 고승의 기록은 이렇게

 

두가지로 보시면 됩니다.

 

 

########################################################

 

첫번째 기록

 

- 능인대덕 창건 기록 -

 

 

 

봉정사 기문장처에서

 

발견관 상량문에 써있길,

 

 

능인대덕 (680년쯤 활동)

 

이분이 창건하였다고 적혀 있답니다.

 

########################################################

 

 

12세기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 조선시대 단청하고 미묘하게 비슷한듯 다르다.

 

 

 

 

########################################################

 

두번째 기록

 

- 의상대사 창건설 -

 

 

 

 

봉정사 극락전 관련 기록에서

 

신라 의상조사 소점축지

 

라는 창건 기록이 발견 되었다네요.

 

 

 

신라의 의상조사가 봉정사를

 

창건했다는 내용 이랍니다.

 

########################################################

 

 

########################################################

 

세번째 기록

 

- 의상대사 창건설 2 -

 

 

 

의상대사 창건설의 또 다른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기록은 안동향토지에 적혀있는

 

봉정사 관련 기록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의상조사가 영주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여기 머물렀다"

 

 

 

 

이렇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분들의

 

활동시기를 주목해야 합니다.

 

 

의상대사/ 능인대덕/ 신라 문무왕

 

세분 모두 7세기 후반(680년쯤?)

 

에 주로 활동하신 분들이랍니다.

 

 

뭔가 퍼즐이 딱딱 맞죠?

 

문무왕-의상대사-능인대덕

 

모두 똑같은 시절 (통일신라 초기 + 680년 전후 활동 )

 

 

 

이때 즈음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조상님들 이십니다..!

 

 

 

창건기록이 모두 7세기 후반인

 

문무왕때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 초기가 가장 유력하겠죠..!?

 

 

 

 

 

그러나 창건의 핵심 인물은

 

능인대덕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예상합니다.

 

 

 

능인대덕은 두분의 도움을 받는다.

 

문무왕의 도움 / 인상대사의 도움 /

 

 

 

능인대덕이 이 두분의 도움과 비호 아래서

 

주도적으로 봉정사를 창건했지 않았을까?

 

라고 예상한다네요.

 

 

봉정사 극락전의 화반 / 이런 모습의 화반은 복화반 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의상대사는 사찰 창건을 실제로

 

엄청 많이 하셨습니다.

 

 

 

현재의 많은 대찰들의 시초이시며,

 

굉장히 열심히 / 주도적으로 하셨습니다.

 

 

 

의상대사는 화엄대찰을 전하기 위해

 

전국에 열곳이 넘는 사찰을 만들었다.

 

부석사, 미리사, 화엄사, 해인사,

 

갑사, 화산사, 범어사, 옥천사, 국신사 등등

 

국내 대찰을 창건하신 분이다.

 

 

 

(아직까지도 유명한 사찰들 대부분을 의상대사가 창건했음!)

 

 

12세기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 복화반의 단청이 2종류가 발견 되었다.

 

 

 

또한 의상대사는 능인대덕의

 

스승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상에게는 10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능인(能仁)으로,

 

 

 

문무왕 10년(670)에 동료 표훈과 함께

 

금강산에 표운사를 건립한 스님입니다.

 

 

 

실제로 능인대덕 의상대사에게 많은걸

 

배워서 사찰을 직접 창건을 하십니다.

 

 

4공화국 시절 그려진 단청. 자료가 부족한 그 시절, 할수있는만큼 예쁘게 조선시대 양식으로 잘 그렸다.

 

 

 

 

또한 1728년 작성된 천등산 봉정사

 

이 기록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신라때 의상과 능인 두 사람이

 

고승들의 도를 닦을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능인대사님이 스승 의상대사를

 

도와 절을 창 건하였거나, 혹은 합작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예상 가능하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 청자기와를 설치하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지금의 모습하고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러한 이유들로 봉정사 자체는

 

통일신라 초기, 680년대 즈음?

 

 

 

여튼 7세기 후반 쯤에는 확실하게

 

봉정사가 탄생했다는 뜻 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록이 그때를

 

가르키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 봉정사 극락전의 12세기 건축물설 알아보기 *

 

 

 

 


저는 어쩌면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 후기 건물일수도 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사실


일반적으로 알려진대로라면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이죠.

 



그리고 사실 12세기 건물설이

 

고증에는 가장 적합하고 타당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인

봉정사 극락전 12세기 건축물 추정

이 주장에 대한 내용부터 알아봅시다.




4공화국 시절 실시했었던

보수공사때 발굴된 자료들에 의하면,



1363년에 2차에 걸쳐서 지붕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는 묵서가 나왔다네요.

 

 

 

 

봉정사 극락전 상량문에서는

 

1363년에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고 했어요.

 

 

 

두번째는 1625년 조선시대때 수리합니다.

 

1363년에서 262년 걸렸습니다.

 



세번째는 1809년에 한번 더 수리합니다.

 

1625년에서 347년이 걸렸습니다.

 

( 봉정사 양법당 중수기 기록 )

 

 


수리 기록을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건물 수리 주기가 250년 이상씩 됩니다.

 

 

 

 

지붕은 일반적으로 만들고나서

 

100~150년 가량 지난 후에 지붕을 수리하지만,

 

 

 

봉정사 극락전은 실제 기록만 보면 보통

 

250년이 넘어서야 대대적인 수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냥 막장 계산을 해봅시다!

 

가장 처음 기록인 1363년 기록을 기준합니다.

 

 

 

1363년 - 250년 = 1113년

 

 

그냥 평균값으로 시간을 계산하면

 

봉정사 극락전은 1113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출토된 12세기 고려 단청들

 

 

 

 

두번째는 347년으로 계산하겠습니다.

 

1363 - 347년 = 1063년

 

 

 

1625년 ~ 1809년 수리까지 347년 걸렸죠.

 

 

 

1363년에서 3번째 수리기간인

 

1363년 - 347년으로 계산하면

 

결과값은 1063년.

 

 

 

막장 계산법을 통하여 !!

 

봉정사 극락전은 오히려 11세기쯤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축물이다! 라고 예상이 가능해요.

 

 

 

또한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그것은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 입니다.

 

 

 

이 단청 무늬들은 실제로 12세기

단청으로 예상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실제 고려시대때 사용된

각종 12세기 그릇이나 실생활에서

사용된 무늬들하고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청자기와 암막새. 윗쪽 그림의 솟을합창 단청하고 완전히 같다.

 

 

 

이런식으로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은, 실제로...

 

 

 

12세기 각종 생활용품들의

 

무늬하고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은

 

12세기 단청 양식으로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송나라 영조법식의 초화문, 윗쪽 고려시대 풀무늬하고 비교해보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단청이 송나라 영조법식의

단청하고 무늬가 매우 비슷합니다.

( 영조법식 : 1097년에서 1100년에 만든 건축양식 기술서 )



 

그런데 영조법식은 1100년쯤에

 

완성된 책 입니다. 그 완성시기가

 

1100년대 초반인데.....

 

 

 

이 책에서 나오는 단청무늬하고

 

매우 비슷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만 봐도.....

 

12세기 건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 그 와중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발전한 단청 무늬들도 보인답니다 )

 

 

 

 

 

 

이런식으로

 

1100년대 송나라 단청하고

 

매우 비슷한 단청 무늬들,

 

 

 

12세기 고려시대 유물들의 무늬가

 

봉정사 고려단청에서 그대로 발견

 

되었다는 점,

 

 

 

너무나도 오래되 보이는 건축양식들,

 

봉정사 극락전의 수리 주기를 모두 따져보면

 

 

 

12세기쯤에는 이미 극락전이 존재했을

 

확률이 많이 높은 상황 이랍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을 12세기 건물로

 

예상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봉정사 극락전의

 

[ 통일신라 후기 건축물설 ] 이것을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통일신라 시대 건물로 생각하는 이유 - 건축 양식 파해쳐보기 ***

 

 

 

봉정사 극락전은 각종 자료및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인하여...

 

 

 

못해도 한 1100년쯤? 이때부터는

 

이미 있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만,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신라건물!

 

이라는걸 가슴깊이 느끼게 해주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 건축양식 ] 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건축 양식을 고증 해보겠습니다.

 

 

 

 

 

 

일단 학자분들과 전문가분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확실한 특징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특징들이 통일신라 후기나

 

후삼국시대 건물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징들 입니다. 이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 설명을 전부 읽어 보시면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 나말여초 )

 

건축물이 맞을수도!!!??? 싶으실 겁니다.

 

 

주두와 소로, 건축 결구가 통일신라 후기 양식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

 

1. 기록으로 후삼국 시대로 유추 할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하고 관련된 기록은

 

이렇게 3가지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1728년에 쓰여진 [ 천등산 봉정사 ]-

 

[ 有變遷九幾廢而幾興也 ] : 봉정사를 9번 중창했다.

 

 

 

 

- 1809년의 [ 양법당중수기 ] -

 

[ 而累八兵 輒有修繕 ]: 양법당을 8번 수리 하였다.

 

 

 

 

- 1435년 8월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 -

 

[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

 


뜻: 신라대 500여년에 이르러,

을묘년 중 법당을 중창하다.

 

 

 

내용이 워낙 짧아서

 

자세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기록을 하나씩 살펴보고 기록들을

 

나름대로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1번 : 1728년 [ 천등산 봉정사]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有變遷九幾廢而幾興也」라고 하여


9번의 중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걸...

 

 

 

그냥 막장 계산을 해보면 대략

 

이런 결과값이 나오게 됩니다.

 

 

 

1728년 - 900년 = 828년

 

 

 

1728년 수리까지 총 9번 수리했고,

 

지붕 수리를 통상 100년 ~ 150년마다 하므로...

 

 

 

 

1회 수리를 100년으로 잡아서 계산했습니다.

 

이러면 828년이고, 통일신라 후기 입니다.

 

 

봉정사 출토 12세기 예상, 고려시대 단청은 이런 느낌이다.

 

 

 

 

########################################################

 

- 2번 : 1809년의 [ 양법당중수기 ]

 

「而累八兵 輒有修繕」이라 하여....

 

 

 

대웅전 / 극락전을 창건하고

 

8번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내용이

 

봉정사 대웅전  / 극락전을

 

창건부터 1809년까지 8번 수리했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3번째 항목이랑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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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 -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

 

[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

 

 

 

1435년 8월 초알에 씀.

신라대 500여년에 이르러,

 

을묘년 중 법당을 중창하다.

 

########################################################

 

 

 

이 기록은 봉정사 대웅전 지붕의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됬습니다.

 

 

 

이걸 그냥 간단하게 계산해보면,

 

1435 - 500 = 935년

 

대략 후삼국시대 즈음 입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바로 이

 

조선시대 기록으로 인하여

 

나말여초때 만들었다고 예상 가능해요.

 

 

봉정사 대웅전은 상량문의 내용으로 인하여, 935년에 중수된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2번째 기록 기억 나시죠?

 

분명히 [ 양법당 중수기 ]

 

라는 기록입니다.

 

 

 

 

[ 대웅전과 극락전의 중수기 ]

 

라는 내용이고, 1809년까지 두 건물을

 

8번의 수리를 했다라는 내용입니다.

 

 

 

 

근데?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에 적혀있죠?

 

 

 

 

1435년 8월 초알에 씀.

신라대 500여년에 이르러,

 

을묘년 중 법당을 중창하다.

 

 

 

이 내용 때문에 봉정사 대웅전은

 

단순 계산만 해봐도 935년 정도쯤에

 

이미 있었다... 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잘 보세요! 제 가설은 이겁니다.

일단 935년을 기준으로 계산을 해볼꼐요.




수리 한번당 100년이라고

 

가정하고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1809년 기록은 분명히 8번 수리라고 적혀있어요.

 

8회 수리를 800년으로 잡겠습니다.


935년 + 800년 = 1735년




결과값이 1735년 입니다. 

 

 

 

 

어라...? 1735년...?

어디서 본거 같지 않으세요?

네. 분명히 우리는 봤습니다.

 

 

 


그것은 가장 첫번째 기록입니다.

[ 천등산 봉정사 ] 바로 이 기록에

 

분명히 적혀있습니다.

 

 


1728년에 9번을 수리했다.

 

라는 기록이요.


 

.....1809년 양법당 중수기 기록을

 

935년을 기준으로 설정한 후,

 

 

 

지붕 교체 시기인 100년으로

 

적당히 계산하니까 1735년이 나왔어요.

 



신기하게 1728년 기록하고 비슷한

 

연도가 계산되는 것 입니다...!

 

 




1번 기록 - 천등산 봉정사에 적힌 기록인 1728년.

3번 기록 - 봉정사 대웅전 상량문을 토대로 예측한 건축물의 존재시기 : 935년 ( 추정 )

2번 기록 - 양법당 중수기의 8번 수리를 800년으로 잡고, 935년이랑 합치면 1735년.




뭐 적당히 계산한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무튼

 

3개 기록 모두 얼추 비슷하게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1809년 양법당 중수기는 그냥

 

개인적인 뇌피셜 입니다만....

 

 

 

아마도.....

1728년까지 8번의 중수를 했다. 라는 뜻 같아요.

 

 


1728년까지 8번의 중수를 했고

 

1809년에 다시 한번 수리했다.

라는 기록이라고 ...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1728년 기록은 9번 중수 했다고 하고

1809년 기록은 8번 수리 했다고 하고,

기록이 좀 다르기 때문에 이게...

 

 


두 기록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저의 계산은 사실 정확하지 않습니다.

뇌피셜이 잔뜩 들어간 내용입니다만.....



하여튼 두 기록을 모두 935년에 맞추면

나름 기록에 맞는 시기가 산출된다는

 

신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봉정사 대웅전의 첨차와 귓포들

 

 


여러분!!! 그리고 이걸 주목하세요!!!

[ 1809년 = 양법당 중수기 ] 입니다.

 

 


법당 2개를 중수 했다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봉정사 극락전도 935년쯤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봉정사 극락전의 매우 오래된

 

건축 양식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의견이면서

 

지극히 뇌피셜적인 결론입니다만,

 

935년에 봉정사 대웅전은 물론 ...

 



봉정사 극락전도 935년 즈음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랫쪽의 건축양식 분석을 보시면

 

더더욱 그럴수도 있겠다 싶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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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로 ( 목조 받침대 )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소로는 첨차위에 얹어서 도리들을

 

받치는 사각형 부자재 인데요,

 

( 브라켓 위에 올라간 사각형 받침대 )

 

 

 

 

이 소로라는 부자재의 모습이

 

굉장히 오래된 양식이라는 겁니다.

 

 

 

고려시대 하고는 약간 다릅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브라켓 윗쪽의 약간 작은 네모나미 부자재가 소로다.

 

 

그 양식은 이겁니다.

 

소로 밑둥이 곡선이다. 그런데

 

소로에 소로굽이 없다. 입니다.

 

 

 

고려시대 소로는 일반적으로

 

소로 아랫쪽에 곡선이 있으며

 

소로굽이 있는데요,

 

 

 

봉정사 극락전의 소로는

 

고려시대 건물인데 굽이 없습니다.

 

 

 

소로 밑쪽이 직각이고 굽이 없으면

가장 일반적인 조선시대 소로입니다.

 

 

소로굽 밑쪽이 곡선이며 굽이 없으면

 

완벽한 통일신라의 소로 입니다.

 

 

 

곡선의 유무로 인하여 조선시대

 

소로하고 구별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더욱 확실하게

 

사진으로 비교하겠습니다.

 

 

 

 

 

이런식으로 실제로

 

발견된 통일신라 소로들,

 

 

 

또한 일본에 실존하고 있는...

 

통일신라 즈음의 일본 건물들은,

 

 

 

소로 밑쪽이 곡선이면서도

 

고려시대 특유의 소로굽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소로. 소로굽도 없고, 곡선도 아니다. 직각으로 만든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처럼

 

직각으로 되어있는 모습도 아닙니다.

 

 

 

이래서 봉정사 극락전의 소로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입니다.

 

 

 

이러한 자잘한 양식들이 예상외로

 

통일신라 / 당나라 시절 건축양식

 

하고 교차검증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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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두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주두는 기둥위에 얹어서 브라켓이나

빔자재를 받치는 사각형 부자재 인데요,

( 기둥 바로 위에 올라간 사각형 받침대 )

 

 

 

 

이 주두의 모양도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두 모양이 아니라, 통일신라 특유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은 소로와 같습니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런식으로 봉정사 극락전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두 모양도,

 

전형적인 조선시대 주두 모양도 아닙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상황 이랍니다.

 

 

 

조선시대 주두및 소로하고 비교하면

 

더 확실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굽도 없고 이렇게

 

매우 직선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더 보기 쉽게

 

비교사진으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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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반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화반은 건물의 주심포

 

중간에 설치하는 조각 입니다.

 

 

 

예쁜 조각모양 받침대로써

 

빔자재를 받쳐주는 부자재를 말합니다.

 

 

( 기둥윗쪽 건물 브라켓 시스템 사이에 설치하는 화려한 모양의 조각 )

 

 

문과 창문 윗쪽의 불꽃 조각이 화반이다. 특별히 봉정사 화반은 복화반 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화반으로 부르지만

 

봉정사 극락전의 화반은 모양이

 

특이해서 복화반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봉정사에서

 

발견된 화반들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꽤나 여러종류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다양한 모양의 복화반과 대공들

 

 

 

 

실제로 이렇게 다양한 모양의

화반들이, 한곳에서 전부 발견되었어요.

 

 


이런 화반의 모양은 대략적으로

700년대 ~ 900년대 양식 입니다.



딱 이 시절에 유행하던 화반하고 

굉장히 닮아있는 모습이랍니다. 



비교스샷을 보시면, 극락전 화반은

 

의외로 통일신라 양식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봉정사 극락전 화반은 일본 / 중국 화반과 닮아있다. 수덕사나 임영관 삼문같은 고려후기 화반하고 전혀 다르다.

 

 

 

 

비교 사진을 보셨으면 아마도

 

확실하게 느끼셨을겁니다.

 

 

 

극락전의 화반은 전혀 고려시대

 

화반같이 않습니다. 많이 다르죠.

 

 

 

극락전의 복화반의 모양새는

 

수덕사 or 임영관 삼문 화반같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화반하고 정말 다릅니다.

 

 

 

오히려 나라시절 일본건물이나

 

오대십국 중국의 화반하고 닮아있죠.

 

 

 

 

758년에 당나라 사람이 만든 일본의 사찰,

 

중일우호 사찰로 불리우는 당초제사.

 

 

 

그 당초제사 단청을 복원한 자료인데요,

 

퇴량쪽 화반인 봉정사 화반하고 완전히

 

비슷합니다.

 

 

 

이런 통일신라 화반의 모습을 보여주는

 

봉정사 극락전. 935년 설이 어째서 나름

 

타당성이 있는지.....이제 이해가 되시죠?

 

 

흰벽에 옻주칠 / 청자기와를 적용해본 봉정사 극락전. 우리나라 건축도 이런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고려시대때는 그냥 주칠이 아니라,

 

 

 

옻을 섞은 옻주칠 기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있어요!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고려시대 옻주칠 기둥이 있었을

 

가능성에 알고 싶으시다면 아랫쪽

 

링크를 눌러서 내용을 확인해보세요!

 

 

[ 고려 ] 주칠/옻칠 기둥이 있었다!? 고려시대 옻주칠 건축에 대하여 - with. 숭례문 단청 기둥색 고

안녕 얘들아? 너네들 고려시대 건축물에 주칠이나 붉은 옻주칠 적용해도 크게 문제 없다라는 사실 알고 있니? 그리고 실물로도 나름대로 검증되어서, 되게 긍정적인 상황이야. 이게 왜 이런지

vpb192kh.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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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작 시스템이 통일신라 시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포작은 브라켓으로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 시스템을 말한답니다.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들을 복잡하게

 

얽어서 설치하는 그런것 입니다.

 

 

 

그 지붕을 받쳐주는 포작이라는

 

브라켓 시스템이 굉장히 오래된

 

양식으로 추측이 가능하답니다.

 

 

고려시대 단청은 석간주 (적갈색) / 주칠 ( 새빨간 빨강색 ) = 두개를 철저히 구분해서 사용하는것을 알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의 브라켓 시스템은

 

사실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 인데요,

 

 

 

이 주심포 양식이 언제부터 이런

 

모양을 했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적어도 통일신라 초~중반기 부터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일본 해룡왕사 오중소탑. 해룡왕사 나라시대의 천평시대(729년~74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소형 목탑은 일본의 나라시대때

 

조성한 해룡왕사 오층목탑 입니다.

 

 

 

건물안에 있는 소형 목탑인데

 

700년대 포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세히 사진을 보세요.

 

어쩐지 봉정사 극락전하고 포작이 닮았죠?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 시스템을 관찰해보면 매우 비슷하다는게 보인다.

 

 

 

자세히 관찰해 보시면 굉장히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해룡왕사 목탑 사진이 너무 작죠?

 

이제 조금 더 큰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해룡왕사 5층목탑 / 당초제사 금당의 포작을 충실히 따라한 일본의 건축물

 

 

 

해룡왕사 5층목탑 포작을 확대해보면

 

이런 느낌 입니다. 뭐 완전 같지는 않지만...

 

 

 

편하게 비교해보시라고

 

비슷한 사진을 올렸습니다.

 

 

 

봉정사 극락전하고 비교해보세요.

 

어쩐지 굉장히 닮아있는 모습이지요?

 

 

 

근데

 

사실 아랫쪽 주칠 전각은 해룡왕사 보다는

 

일본의 당초제사의 포작을 더 닮아있어요.

 

758년 나라시대 창건 일본 당초제사 금당

 

 

 

이 사진을 윗쪽 해룡왕사 목탑하고

 

비교해보시면, 딱 느낌이 오실겁니다.

 

 

 

아.....

 

통일신라 / 당나라 시절 브라켓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이런 모습이겠구나!

 

 

 

이런 느낌을 받으실겁니다. 그래서

 

해룡왕사 하고 당초제사의 포작이

 

모습이 거의 같습니다.

 

 

 

그래도 잘 모르시겠다면,

 

또 한번 비교샷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유심히 보시면, 봉정사 극락전의

 

포작이...일본의 나라시대 포작에서 딱!

 

 

 

진짜 딱 한단계 정도만 발전했다라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근데 좀 햇갈리죠?

 

 

 

그럼 저 2건물의 포작을 최대한

 

간소화 시킨 모델링으로, 더욱

 

쉽게 보겠습니다.

 

 

 

 

최대한 간소화 하면 이런 느낌입니다.

 

대충 뭐가 변했는지 느낌이 오시죠?

 

 

 

한국에서 현존하는

 

목조 건물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주심포 건물 입니다. 그래서 의외로...

 

 

 

이래저래 당나라 / 통일신라 / 나라

 

이 시절의 건축 양식이 엿보이는게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신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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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건물을 조립하는 방식이 통일신라 양식으로 추정가능하다.

 

 

 

봉정사 극락전의 측면을 보면

 

왜 이게 통일신라 기술로 만들었는지

 

대략 유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당나라 건물하고

 

건물을 만드는 방식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건물 구성이 거의 같은

 

그 중국 건축물은 바로 여기 입니다.

 

 

 

"중국 남선사 대전"

(782년 건립)

 

 

 

이 건축물의 내부를 보면,

 

봉정사 극락전하고 굉장히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남선사 대전 내부의 모습 ( 782년 건립 )

 

 

 

내부를 측면에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극락전하고 뭐가 비슷한지 잘

 

이해가 안갈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비교하시라고

 

극락전 측면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내부 측면 / 남선사 대전하고 매우 비슷하지만, 극락전쪽이 한단계 발전한 모습이 보인다.

 

 

 

최대한 쉽게 이해하시라고

 

종단면도로 최대한 보기쉽게

 

수정을 해봤습니다.

 

 

 

이 둘은 포작조차도 꽤 비슷합니다.

정면에서 보면 다른데, 측면에서 보면

생각보다 많이 비슷하답니다.



남선사와 극락전의 포작을 최대한

단순하게 처리해봤습니다.

 

 

 

 

이렇게 비교하면 뭐랄까...

남선사 대전의 업그레이 버전이

봉정사 극락전 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이 두개가 대체 뭐가 다른겨?

라고 느끼신다면,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만큼 두 건물은 서로간에

많은 차이점이 있지 않습니다.



하여튼 두개의 건물의 공통점을

짦게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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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사 대전과 / 봉정사 극락전의 닮은 점 -

 

 

 

 

1. 들보위에 복화반이 올라갔으며, 복화반이 브라켓을 잡아준다.

 

2. 포대공이 ( 가장 윗쪽 화반 ) 복화반의 모양새다.

 

3. 들보의 결구 방식및, 외부 포작 ( 브라켓시스템) 방식이 매우 유사함.

 

4. 맨윗쪽 들보는 사람인人 모양의 세로 부자재가 ( 솟을합장 ), 추가로 지붕을 받쳐주고 있다.

 

5. 상하 들보 사이를, 내려오는 수직부재 ( 솟을합장 )이 잡아주고 있다.

 

 

 

* 보간 사이의 솟을합장 - 조선시대는 우미량으로 발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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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 다른 당나라 건축물하고 매우 닮아있다.

 

 

 

 

이 내용은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내용이라서 한번 올려봅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의외로

 

[ 실제 당나라 건축물 ] 하고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소로, 주두의 굽이 없는거하며

 

여러모로 정말 비슷한 건물입니다.


그 건물은 바로 이 건물 입니다.

 

 

 

이 건물의 이름은 광인왕묘 정전 입니다.

831년에 창건된 건물입니다. 831년이라면

 


완벽하게 당나라 / 통일신라 시대의 건물인데요.

이 건물도 봉정사 극락전하고 비슷한점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럼 하나씩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일단 처마의 모습부터 보겠습니다.

 

 

 

 

광인왕묘 정전은 이런 포작입니다.

매우 전형적인 당나라 포작을 보여주며

단장혀가 출목도리를 잡아주고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포작 입니다.

( 포작 = 지붕을 받쳐주는 브라켓 시스템 )



광인왕묘 정전하고 비교해보세요.

거의.....비슷하지 않습니까?



단순한 포작에 단장혀가 출목도리를

지지해주는 모습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글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비슷하죠.

 

 

그리고 이 두 건물의 비슷한점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 내용도 꽤나 흥미로울겁니다.

 

 

 

동그라미를 그린곳을 자세히 봐주세요.

저 부분은 [ 보머리 or 보뺄목 ] 이라고 부릅니다.



대들보의 끝 부분이고,

 

저런식으로 조각을 합니다.

 



들보의 끝 부분을 이렇게 조각하는 양식은

려말선초 건물에서 가끔씩 발견됩니다.




그런데 저런 조각 양식을 가르키는

이름은 아직은 특별히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저 조각한 부분은 마치

메뚜기의 머리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저 모습을 가르키는 이름은 없지만

그냥 메뚜기 머리 같으니까 그냥...



그래서 이 게시물에 한해서만 저 부분을

[ 메뚜기 머리모양 보머리 ] 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니까 분간이 잘 안가죠?

그래서 모델링으로 준비해봤습니다.



여튼 봉정사 극락전의 메뚜기 보머리는

의외로 831년 창건된 광인왕묘 정전에서

거의 똑같은 모습이 발견됩니다.

 

 

소로, 주두의 모습과 브라켓 시스템을 비교해보라. 진짜 엄청 비슷하다는걸 알 수 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죠?

광인왕묘 정전은 831년에 만든 건물.



그런데 봉정사 극락전 또한

사실상 거의 같은 모습의 보머리를

사용하고 있는겁니다. 신기하죠!?



그리고 광인왕묘는 내부 사진이고

극락전은 외부 사진 입니다만,



어쩐지 브라켓 시스템이 엄청나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것도 눈에 띕니다.



 

 

 

 

물론 봉정사 극락전에서도 내부에서

메뚜기 모양의 보머리가 발견되었습니다.



다만 보머리는 아니고...

계랑을 받쳐주는 첨차의 조각 입니다.



광인왕묘가 내부에서

 

메뚜기 머리모양 조각을

사용했듯이, 봉정사 극락전도

 

 

 

메뚜기 머리모양 조각을

내부에서 사용합니다.



두 건물이 모두 내부에서 이것을 사용한다라는

공통점이 있다는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이죠.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식인 화반,주두,소로의 모습을 보인다.

 

 

 

 

다만 봉정사의 경우, 

 

외부까지 사용을 합니다.

저런 메뚜기 보양 보머리를 외부에서 사용하는건



불광사 대전 ( 857년 )

진사 성모전 ( 1100년 즈음 )

봉국사 대전 ( 1013년 )



이렇게 800년대 중반부 부터 사용하므로

봉정사 극락전의 경우는 800~1000년대의

기술이 적용된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11세기쯤에는 애용된 기술이

봉정사 극락전의 건물 구성요소로 사용된 것 입니다.

 

 

 

 

이런식으로 비교해보면 아시겠죠?

일반적으로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통일신라 후기 or 후삼국시대 건축물로

예상 가능한 이유는, 이러한 증거들 때문입니다.



그냥 7~800년대 중국 일본 건물들하고

비슷한점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런식으로 당나라 건물의 구성하고 

많이 비슷한게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국내에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축물들 보다는

중국/일본의 당나라 시절 건물들하고

훨씬 더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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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 뵤도인 호오도와 봉정사 극락전 단청의 닮은점

 

 

 

 

여러분, 일본의 뵤도인을 아시죠?

 

뵤도인의 메인 건물 호오도

 

( 평등원 봉황당 )

 

 

 

이 건물 내부의 단청하고

 

봉정사 극락전 내부단청하고

 

유사성이 있다는 점을 아십니까!?

 

 

 

 

 

일본 뵤도인 호오도의 헤이안시대 단청하고

 

고려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하고

 

이런 유사성과 닮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단청하고 고려시대 단청하고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대 단청을 연구할때는 싫든 좋든

 

일본의 자료들하고 비교분석을 반드시 해야되요.

 

 

 

고대 건축을 복원 / 재현 / 연구하는데

 

일본과 중국 자료를 참조하는것을 그다지

 

마땅치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이런식으로 닮은점이 너무 많아서 일본과

 

중국 자료하고 비교는 사실상 필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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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봉정사 대웅전의 부자재하고 비교해도, 더 오래된 양식이다.




앞에서 꽤 길게 다루었습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기록에 의거하여

 

단순하게 계산만 해봐도...



935년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조선시대 양식으로 개조되었지만, 의외로...



봉정사 대웅전 안쪽에서는

 

935년 즈음의 양식으로 보이는

 

건축 부자재가 있답니다.




바로 종도리 ( 가장 윗쪽의 보같은거 )

이걸 받쳐주는 받침대인데요. 딱 봐도

봉정사 극락전의 첨차하고 똑같이 생겼죠?


봉정사 대웅전의 첨차와 주두. 전형적인 조선초 양식이다.

 

 

 


보시다시피 봉정사 대웅전의 현재 첨차는 이런 모양.

전형적인 조선초기 양식 입니다만, 내부에서 이렇게

굉장히 고식 부자재가 발견된겁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935년에 만든것으로

예측 가능한 봉정사 대웅전. 그 속에서

나온 고식 부자재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것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첨차와 주두, 소로가

935년에 만든걸로 예측 가능한 봉정사 대웅전의

고식 부자재들보다 훨씬 더 오래된 양식 입니다.







이 사진만 봐도 아시겠죠?

봉정사 극락전쪽이 더 오래된 양식이에요.

 


지금까지 소로/주두/화반 비교한걸

잘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단번에

 

이해하실 겁니다.



이런것들도 발견이 되었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도 935년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이 생각보다 매우 큽니다.

 

 

복화반, 주두, 소로, 포작 등등 여러모로 통일신라의 요소를 담고있다.

 



아니 되려, 봉정사 극락전은 935년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는거죠.



935년 봉정사 대웅전의 양식이

조금 더 진보된 양식이라...



봉정사 대웅전이 오히려

 

극락전의 건축양식을 보고 따라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 입니다.

 

 

일본 해룡왕사 오층소탑 ( 730년 +- ) / 나라시대

 

일본 당초제시 금당 ( 758년 ) / 나라시대

 

봉정사 극락전 ( 935 ~ 1200년 예측 ) / 후삼국시대 or 고려시대

 

 

 

800년대 일본 건물들하고도

 

봉정사 극락전은 기술적으로는

꽤 다를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전면부 포작 구성의 단순함과

포작 구성의 외형 정도는 이 정도까지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은 10세기 건물로도

예상을 할 수 있는 상황 이랍니다.

 


(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의 유일한 건물일 가능성 높음 )

 

 

 

 

 

마... 그리하여...

전문가들과 학자분들은



무조건 고려시대 건물이 아니라

통일신라 후기~후삼국시대 건물이다!

​라고도... 예측을 합니다.

 



물증이나 심증이나


이렇게까지 증거가 많습니다.

 

 


통일신라에 가까운 모습이 자주

 

그리고 많이 보입니다. 의심이

 

안갈래야 안갈수가 없는 상황이죠.

 

 

 

이런 다양한 이유들이 있어서

 

나말여초쯤 건물로 예상이 가능하죠.

 

 

많은 부분에서~

 

 

중국, 일본의 8~900년대 즈음의

 

건축물들과 상당히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중수 기록+역사 사료들,

 

고대 단청과 건물 부자재들,

 

건물을 만든 스타일과 사찰

 

경내 조성 양식..

 

 

 

이런 이유들로 못해도 1200년대

 

건물은 확실한 수준이고,

 

 

 

많은 분들이 통일신라대에

 

극락전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대한 중수와 함께 북송시절 양식으로

 

엄청나게 개조한 것으로도 예상합니다.

 

 

 

 

 

또한 이런 각종 기록들+ 세부 양식떄문에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거의 무조건!!!

 

먼저 만들어진 건물이다!

 

 

 

라고 예측을 하시는 거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통일신라 or 후삼국시대 건물이

 

아닐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중요한점은,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제대로 계승한 건물이라는 것이다.

 

 

 

그 계승된 양식만으로도

 

통일신라 후기 건축 양식을

 

자세하게 예측할수 있게 해주는,

 

 

 

정말 고마운 존재이자 멋진

 

후삼국시대로도 예측 가능한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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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줄 요약 -

 

 

1. 봉정사 극락전은 1363년 지붕 수리 했음.

 

2. 그 수리 이력과 / 단청때문에 12세기 건물로 볼수있음.

 

3. 극락전이 아닌 대웅전에 기록이 하나 더 있음.

 

4. 1435년 8월에 쓴건데, 신라때 만들어서 500년 이후에 수리했다는 내용.

 

5. [ 1809년 양법당 중수기 ] 에서 2개의 법당을 총 8번 수리했다고 함.

 

6. 대웅전은 935년에 있었던 것으로 계산 가능한데, 양법당을 수리했다고 함

 

7. 봉정사 대웅전과 극락전은 부자재 양식의 유사성이 보여서, 서로 비슷한 연배일 가능성 존재.

 

8. 극락전은 실제 당나라/일본 나라시대/ 통일신라 건축 부자재들이랑 똑같이 생김

 

9. 건축양식 / 건축기록 모두 [ 935년 +- ]쯤을 가르키고 있다.

 

10. 그래서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건물로 예상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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