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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통일신라 단청이나

삼국시대 단청은 이런 모습 입니다.



삼국시대는 이런 모습이 고증에

맞다고 보면 됩니다. 근데 통일신라는

 

단청자료가 아예 없는 수준인데요...

 

 

 

그래도 미칠듯한 교차검증과 예측을 통해서

 

이런 모습의 단청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 정도는 가능합니다.

 

 

신라건물을 표방해 만든, 신라대종 종각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 건축물을 복원을 하던

재현을 하던...실제로 칠해지는 단청은,

 


사진의 신라대종하고 같은 상록하단만

칠하고 있는게 현실 입니다. 참 아쉽죠.

 

.....통일신라 건물인데.....상록하단....???;;

 

 

 

물론 통일신라는 이상할 정도로
 
단청자료가 진짜 너무 없긴합니다.
 

 


단청자료가 눈꼽만큼밖에 없어서...

미칠듯한 교차검증과 예측을 통해서
 
단청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 입니다만...
 

 

금장대. 통일신라 건물인데 상록하단으로 복원했다. 출저: 경주 계림 택시관광

 

 

 

아무리 자료가 적어도

그렇다고 이렇게 상록하단으로

 

복원하는건 말이 안되는 상황.....!!!

 

 

 

이렇게 삼국시대 / 통일신라마저

 

고증이 틀렸다고 볼 수 있는...

 

 

 

상록하단만을 고집하며 단청을

그리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분들이

 

통일신라 단청은 이렇게 칠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통일신라 건축에 칠해야

 

한다는 단청은 바로 이런 단청이라고 합니다.

 

통일신라 건축물은, 상록하단 보다는 이런 주토단청을 시공하는게 훨씬 고증에 부합한다.

 

 

 

그것은 바로 붉은색만 칠하는

 

[ 가칠단청 ]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붉은색만 칠하는 단청을

 

[ 가칠단청 ] 이라고 부르는데요,

 

 

 

예. 이런 붉은색만 칠하는 가칠단청이

 

통일신라 혹은 삼국시대 건축물을 만들때,

 

 

 

굳이 단청을 잘 모르겠다!!!!!!!!

 

라고 판단될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단청시공 입니다.

 

 

통일신라 건축물에 적용한, 가장 안전한 단청인 붉은칠만 칠하는 단청!

 

 


실제 단청 채색 자료는 거의 없고,

 

90%는 유추로 인해서 그려야

 

하는 통일신라 건축물.

 

 

 

이런 상황에서 그냥 붉은색만 칠하고

 

벽을 흰색으로 칠하는 단청이...

 

 

 

가장 고증에 가장~ 근접하고 또한

 

가장 확실한 단청채색 방식인데요!

 

 

 

 

근데 제가 인터넷을 쭈욱

 

보다보니까 느낀게 하나 있습니다.

 

 

 

이 방식이 어째서 고증에 맞는지

 

자세하게는 모르는구나...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 관심있는 분들이

 

흰벽에 붉은칠만 하는 단청이 고증이다!

 

라는 기본적인 팩트는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이 주장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대부분이 잘 모른다고 느꼈어요.

 

 

 

 

팩트를 알고 있기는 한데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느낌...??

 

 

 

그래서 이 게시물에서는

 

많은 분들이 주장하시는...

 

 

 

고대 건축물을 복원할때

 

단청을 모를 경우에 한해서는...

 

 

 

흰벽에 붉은칠 단청을 해야하는지

 

나름 자세하게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칠단청으로 복원해본 통일신라 사찰. 남리사지 중문 재현복원.

 

 

 

- 들어가기에 앞서 색상에 대해서 -

 

 


붉은색만 칠하는 단청의 명칭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 가칠단청 ] 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붉은색 색상만 칠하는 가칠단청은...


붉은색의 종류가 최소 3가지는 됩니다.

 

 

이 게시물에서는 가칠단청이라는

 

단순하게 통합된 단순한 이름이 아닌,

 

안료마다 단청 이름을 다르게 부를 것 입니다.


왼쪽부터 주칠단청, 주토단청, 석간주단청. 물론 정식명칭은 아니다.

 

 


새빨간 색상 - 주칠단청

[ 원료명 : 진사 or 경면주사 ]

황화수은 계열

 


적갈색 색상 - 주토단청

[ 원료명 : 주토 ]

붉은 적갈색 흙

 


주황색 or 캬라멜 색상 - 석간주단청

[ 원료명 : 석간주 암석 - ]

주황 ~ 적색 산화철 암석


 

 


주칠단청, 주토단청, 석간주단청

모두 정식 명칭은 아닙니다.

 

임의로 만든 명칭 입니다.

 

 

 

윗쪽의 3가지 명칭 모두

 

한국에서는 정식명칭은 아닙니다만,

 

 



이 게시물에 한해서 명칭과 외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임의로 만든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원료별 색상의 다른점을 알아두시면

 

이 게시물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1. 통일신라 건물에 흰벽에 붉은 가칠단청을 칠해도 되는 이유 ( 검증 편 )

 

 

 

 

 

 

1 - 1. 같은 시기 외국자료들로 검증된다.

 

 

 

 

 

사실 대부분의 많은 분들이

통일신라, 혹은 삼국시대 건축은

흰벽에 붉은칠을 해야한다!!!



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들 중에는

 

외국의 건축물들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요,  굉장히 합리적인 주장 입니다!

 

 

 

 


신라는 물론이거니와

일본 마저도 당나라의 복식 문화와

건축 문화를 배웠다는 기록이 있고,

 

 

 

실제로 이러한 모습이 여러가지

한국 / 일본의 문화재에서 꾸준히

 

발견 될 정도로...

 

당나라 고분의 건축 벽화 그림. 주칠단청에 흰색벽이다.

 



동아시아 건축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당나라. 그런 당나라 시절의 건축

벽화들을 보면, 그냥 딱 알 수 있습니다!



단청이 그냥 붉은 주칠에 흰색벽을

미친듯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붉은색으로 칠한 목자재들과

초록색 창문, 흰색벽은 당나라

건축의 트레이드 마크 입니다.

 

 

이렇게 붉은색으로 가칠단청을 하고

초록색으로 창문을 만든 문화는 사실

당나라부터 시작한것은 아닙니다만...

 

당나라 건축벽화및 실제로 발견된, 당나라의 건축모형. 주칠단청이다.

 



워낙에 당나라 시절 자료가 많고

사실상 당나라 건축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렸죠. 아무튼 이러한 건축 문화는...

 

 

 

삼국시대 후기 - 통일신라 즈음의

동아시아 전체에서 유행하던 양식

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초록색 창문과

 

붉은 목자재 단청방식,

하얀색 회칠벽 문화는...

 

 

실제 일본 건축물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호류지의 남대문 / 금당의 내부 단청 - 692년쯔음 재건

 

 

 

삼국시대 건축 양식이 남아 있다고

 

평가를 받는 호류지. 비록 692년 즈음에

다시 재건되었다고는 합니다만, 그래도...



삼국시대및 통일신라 시대의 건축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692년, 남북국시대 신라 초기및

 

아스카 시대에 건립된 호류지 내부

단청도 흰벽에 붉은칠 단청 입니다.

 

 

 

 

게다가 옛 호류지의 회화를 봐도

 

붉은칠에 초록색 창문, 흰벽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일본 나라시대 궁궐인 평성궁

 

 

나라시대 ( 710년 ~ 794년 ) 이때쯤에

건립되었던 일본 평성궁 ( 헤이안쿄 )



나라시대 건물로써 붉은 주칠에

흰색벽으로 건축물들을 복원했습니다.

 

 

 

 

평성궁 주작문 또한 붉은색 안료로

건물을 전부 단청했으며, 흰색 회칠벽

마무리로 만들었고, 초록색 창문 입니다.

 



일본에서 몇십년간 연구해서 복원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즈음의 건축물도...



흰벽에 붉은칠, 초록색 창문 단청으로

복원한 것 입니다. 이게 이 시절의

 

단청 양식이란 것이죠.

 

 

 

일본 뵤도인 호오도 1053년 최초창건

 

 

998년에 창건했으며

 

헤이안시대 1053년에 중건한

뵤도인 호오도 ( 평등원 봉황당 )

 



흰벽에 붉은칠 단청 입니다.

 


게다가 초록색 창문까지 완벽하게

당나라 시절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거란의 주칠단청과 흰색벽.

 

 

 

당나라 고분과

 

거란의 고분의 내부모습!

 

 

 

북쪽의 거란마저도 주칠과

 

흰색 회칠벽을 사용했습니다.



당나라는 물론, 일본과 거란마저

붉은 단청에 흰벽을 사용했던 것 입니다.

 

 

중국 남송 회화 오백나한도

 

 

중국 남송시절의 회화

오백나한도 라는 회화 입니다.


송나라 시절 회화이지만 건물은

주칠에 흰색벽으로 그렸답니다.

 

 

센소지 호조문. 선명한 노랑 빨강. 인공 주칠이다.

 

 

 

이렇듯, 목조 자재들을 붉은색으로 칠하고

하얀색 회칠벽으로 마감하는 단청 문화는...

 



당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거란과

일본 헤이안시대 끝까지 이어지는 문화입니다.



통일신라 ~ 고려시대 까지 동아시아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건축양식 이었습니다.

 

발해 건축물터에서 발견된 벽화 파편

 

 

 

그리고 발해 건축물터에서 발견된

 

건축물 벽화파편을 보면 회칠벽에

 

풀무늬 그림을 그린게 확인 됩니다.

 

 

 

그래서 발해 또한 건축물을 만들때

 

건물의 벽은 흰색 회벽을 사용한게

 

확인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붉은칠에 초록색 창문,

흰색 회칠벽 문화는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의 일본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양식이

되었고,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양식이 되었죠.

 

 


이런 양식은...

 

 

 

당나라 - 거란 - 나라시대 - 헤이안시대까지...

외국에서는 무려 11세기 초반 까지도 애용했던

건축 단청 양식이란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통일신라 시대쯤의

단청도 이런 모양인게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통일신라 시대의 건축물은 이런식으로, 흰벽에 붉은색을 칠한 단청이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통일신라는 단청자료가

엄청나게 희귀한 수준이라서 확실하게

통일신라 단청은 주칠에 흰벽 / 초록창문!



이라고 단정 지을수는

 

없는 상황입니다만,



각종 국내 자료를 통해서 어느정도

붉은단청에 흰벽 이었다는걸 나름은

유추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국내 자료들을

 

하나씩 보도록 하겠습니다.

 

 

황룡사 서금당의 전축기단과 붉은단청에 회칠벽을 적용하여 복원/재현해본 통일신라 전각

 

 

1 - 2. 국내 자료들로 흰벽에 붉은 가칠단청이 어느정도 입증된다.

 

 

- 삼국시대 자료 -

 

 

 

 

위에서 보셨듯이, 붉은칠에

흰색 회벽 단청은 동아시아에서

굉장히 흔하게 사용했던 단청 입니다.



그런데 저 양식을 보통은 당나라 양식!

으로만 인식하고 있어서 조금 안타깝더라구요.



사실 붉은칠 / 흰색 회칠벽 양식은

5 ~ 6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양식 입니다.

 

안악3호분 부뚜막 회화

 

 

안악3호분 부뚜막 회화.

서까래가 붉은색이고 그의

가구들도 살짝 붉은색 입니다.



그래서 흰벽에 붉은단청을 칠한

건물이란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 무용총 내부 회화

 

 

이 고분은 무용총 입니다.

 

진짜 더 길게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붉은색으로 채색했고, 벽은

흰색 회칠벽으로 꾸몄습니다.

 

무용총 내부. 기둥과 보를 [주토단청] 으로 칠하고 벽은 흰색벽이다.

 

 


주칠에 흰벽은 당나라 양식!!!!!!!

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는데요,



오히려 당나라보다 시대가 훨씬 앞선

고구려 고분에서 생각보다 되게 쉽게

발견되는게 이런 단청 양식 입니다.

 

 

 

당나라의 대표 양식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삼국시대때부터 흔하게 사용한

단청 양식이라는 뜻 입니다!

 

 

무용총과 각저총은 주토단청 이다.

 

 

각저총도 마찬가지 입니다.

 

각저총 고분도 붉은칠에

 

흰색벽 입니다.

 

 

고구려 고분에서 이러한 단청

양식은 생각보다 많이 흔하게

발견되는 편 입니다.

 

 

각저총 내부



그리고 시대가 빠른 5세기 즈음

고분에서 진짜 많이 발견됩니다.

 

 

 

5세기 이후 고분 부터는

화려한 고사리 단청 고분이

더 많이 발견 되는 느낌...??

 

팔청리 고분의 건축물 그림들. 흰벽에 붉은색만 칠했다.

 

 

 

팔청리 고분의 건축 그림입니다.

기와지붕이 의외로 검은색 기와고

붉은칠에 흰색벽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렇게 5~6세기 고분에서 굉장히

흔하게 발견되는게 이런 단청양식 입니다.

 

 

고구려 약수리 고분

 

 

 

고구려 5세기 고분중에 하나인데요

 

부부님을 그린 고분인데 흰벽에 건축

 

가구는 붉은색 주토만 칠했습니다.

 

 

고구려 쌍영총의 주칠과 흰벽 모사도

 

 

 

쌍영총의 경우도 부분부문

단청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흰벽과 주칠이 기본인 단청입니다.

 

 

고구려 쌍영총의 주칠건물 벽화부분 모사도. 일제시대때 남긴 모사도 입니다.

 

 

 

일본이 쌍영총을 발굴하면서

그림으로 남긴 쌍영총 모사도 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로지 주칠만 칠찬

부분이 존재하며, 안료는 이렇습니다.



조선시대 건물 기둥색인 주토가 아니라

중국 / 일본식 주칠 안료를 사용했습니다.



쌍영총은 고구려 고분중에서는 가장 확실한

새빨간 초고추장색 주칠 / 흰벽 고분벽화 입니다.

 

 

 


쌍영총은 다른 고구려 고분하고 다르게

이런식으로 삼국시대부터 이미 주토가 아닌!



주칠 안료를 건물에 사용했음을

 

어느정도는 확인이 된 듯 합니다.

 

 

 

쌍영총은 다른 고구려 고분들과 다르게

 

주칠까지 사용한 엄청 수준높고 격식있는

 

특별한 고분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안악 1호분의 기둥과 첨차도 붉은칠, 벽은 흰색이다.

 

 

 

안악 1호분 또한 흰벽에 건물의

 

브라켓과 기둥을 그린 부분은

 

붉은색 입니다.

 

 

 

흰벽에 붉은색 단청 건물 그림은

 

이렇게 고구려 고분에서 정말로

자주 발견되는 양식입니다.

 

 

 

그리고 안료는 예전에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고분의 대부분은 주토라고 합니다.

 

[ 주칠이 아니라, 적갈색 붉은흙 안료가 대부분! ]

 

 

고구려 고분의 기둥색상은, 경복궁 기둥하고 똑같은 안료다. 색도 똑같다.

 

 

 

고구려의 붉은색은 실제로는

조선시대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적갈색 주토단청 입니다...!

 

 

주토단청과 흰벽을 적용한 통일신라 전각

 

 


통일신라 단청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자세히는 모르는 상황입니다만,

 



여러가지 고구려 건축기술하고

 

비슷한점이 많아서, 고구려 기술을

 

꽤나 배워서 사용한걸로 추정 가능합니다.

 

 

 

그래서 단청을 정 모르겠다면 고구려

 

흰벽에 주칠단청을 참조해서 단청을

 

칠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고구려 건축 양식하고

 

거의 비슷한 신라 건물터가 꽤나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 입니다...

 

 

 

참으로 아쉽게도, 통일신라 시절은

거의 모든 단청자료가 부실합니다.

 

100% 확신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어여...



그래서 고구려 말고도 그 이후의

고려 / 조선시대 자료까지 봐야하는

상황인데요.



이제부터는 고려시대 / 조선시대

자료들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 2. 국내 자료들로 흰벽에 붉은 가칠단청이 어느정도 입증된다.

 

- 고려시대 / 조선시대 자료 -

 

 

 

 

일단 고려시대 자료부터

 

하나씩 보도록 하겠습니다.

 

 

 

흰색 회벽에 붉은색 단청을

 

칠한 불교회화 가운데...

 

 

 

신뢰도가 매우 높은

 

불교회화가 하나 있습니다!

 

이 고려시대 불교회화는 이것 입니다.

 

 

1312년 그림.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주칠 기둥이 인상적이다.

 

 

 

이 고려시대 회화는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라고 합니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죠.

 

보면 딱 보이잖아요?

 

 

 

기둥과 브라켓에 주칠했음. 그리고 흰벽임.

 

전형적인 주칠 기둥으로 단청한 회화입니다.

 

 

 

 

당나라 / 나라시대 / 헤이안 시대

특유의 흰벽과 [ 주칠단청 ]을 표현한

가장 확실한 고려시대 회화 입니다.

 

 

 

 

근데 저게 회화인데 어째서 주칠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사진을 더 봅시다.

 

 

난간은 옅은 적갈색, 난간색은 주토단청이다.

 

 

 

이 그림도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에

 

그려진 그림의 일부분 입니다.

 

 

 

뭐... 설명없이 그림만 봐도

 

한번에 이해가 되시죠...??

 

 

 

이 그림에서 난간색은 의외로

[ 주토단청 ] 색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난간 브라켓들은 [ 주칠단청 ] 색상인데

난간 자체는 [ 주토단청 ] 입니다.

 

 

 

 

고려시대는 흰벽에 붉은 가칠단청

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주칠단청과 주토단청을 철저하게

구분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회화라고 보셔도 된답니다.

 

 

 

 

그런데 저 건물은 유일하게

 

[ 옅은 적갈색 ] 이걸로 일부러 채색했음.

 

 

 

주칠이 아니란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그렸다는 것임.

 

 

 

그래서 이 관경서분도는 주칠/석간주를

 

나눠서 채색한다는 문화가 있었다는걸

 

자세하게 보여주는 회화자료며,

 

 

 

붉은색을 철저하고, 확실하게 가려서

 

사용한다는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 입니다.

 

 

고려 불교 회화의 난간색 주토단청인 이유. 조선시대 궁궐 기둥색하고 똑같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써 조선시대

 

궁궐 기둥색을 들겠습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아직도

 

이런색의 기둥이 가끔씩 보이는데요,

 

 

 

약간 희멀건듯한 적갈색......

 

고려시대 회화에 그대로 있죠!?

 

 

 

 조선시대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옅은 적갈색 [주토 안료]를... 고려시대

 

불교 회화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사용한겁니다.

 

 

 

 

두번째 자료는 고려 후기 비로자나불도 입니다.

3층 목탑 건물인데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는

전각 타입의 목탑인듯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기둥과 보, 쇠서같은

건축 프레임들을 전부 붉은칠만 칠했는데,



1층쪽 기둥과 도리 사이를 자세히 보시면

나름 흰색벽이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일부분 이지만, 여튼 흰벽에 붉은단청이죠.

 

 

 

 

 

참고로 지붕마루에 하얀색 양성바름을

설치하고, 건물을 붉은색으로만 단청한

건축물은 의외로 조선시대 건물에 있습니다.



종로5가에 있는 종묘에 가시면 고려시대

비로자나불도에서 보이는 하얀 양성바름에

붉은단청 건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답니다~!

 

 

 

사진 출저 - https://blog.naver.com/jadan58/
봉정사 극락전 닫집은, 검붉은 옻주칠색을 띈다.

 

 

 

세번째로 봉정사 극락전의 닫집 단청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닫집은, 내부가 주칠도 아니라!



옻주칠로 채색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단청자료 입니다.



또한 고려시대의 몇 안되는 완벽하고

 

확실한 주칠단청 자료 입니다.

 

 

 

담양 송강정. 이렇듯 생각보다 흔한게 주토단청 + 흰벽 입니다.

 

 

 

그런데 닫집은 일반적으론 실제 건물보다

월등히 화려하게 꾸미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 닫집이 아무리 주칠단청만

칠했다고 해서, 이게 실제건축 단청자료가

맞냐!? 라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일단 아랫쪽의 조선시대 자료들을

한번 쫙 ~ 봐 주세요. 그리고나서...



봉정사 닫집을 다시한번 보시면 

제가 어떤 이유로 닫집을 증거로

제시했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종묘의 단청은 가칠단청이다.

 

 

 

이제부터는 조선시대 자료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류의 조선시대 단청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특징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자료처럼 주칠단청은 아닙니다.

 

조선시대는 대체적으로 주토단청을 사용합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도

 

이런식의 단청들이 발견됩니다.

 

 

 

흰벽 + 붉은칠만 한 단청이나,

 

색벽 + 붉은색만 칠한 단청이

 

실제로 꽤 많이 존재한답니다.

 

 

강진 여택정. 흰벽에 붉은칠만 칠했다. 이런 단청을 [ 가칠단청 ] 이라고 한다.

 

 

 

그런 붉은칠만 한 단청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바로 종묘 입니다.



종묘는 이런식으로 붉은칠만 하고

일부분만 초록색 / 벽체는 붉은색을

칠한 건축물 입니다.



이렇게 붉은색만 전체적으로 칠하고,

첨차배나 서까래 얼굴면 같이 일부분만

하얀색 or 초록색으로 칠한 단청을 이렇게 불러요.

 

 

종묘의 붉은색만 칠한 단청은

 

[ 가칠단청 ] 이라고 부릅니다.

 

 

광주향교의 가칠단청. [ 안료가 주칠이 아니다 .] 그래서 엄밀하게 주칠단청이 아니다.

 

 

 

이렇게 한가지색으로만 칠하는 단청을

통틀어서 그냥 가칠 단청이라고 부르는데요,

이제부터는 [ 주토단청 ]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사실 [ 주토단청 ] 이 용어는

전문용어가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만든 용어 입니다.

 

 

 

 

가칠단청이지만, 일부러 주토단청

이라고 없는 명칭을 만들어서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윗쪽의 광주향교의 단청은

 

주토 or 석간주 라는 흙이나

 

산화철 계열 안료를 사용합니다.

 

 

 

 

주칠 안료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주칠 안료 : 황화수은 = 진사 = 경면주사 ]

 

[ 광주향교 안료 : 주토 or 석간주 or 산화철 ]

 

 

전문가들은 이렇게 새빨간 중국/ 일본식 주칠안료를 사용한 건물만 주칠단청 이라고 부른다.

 

 

 

광주향교같은 단청은 사실은 정확하게는

 

가칠단청 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만,

 

 

 

그냥 흰벽에 붉은색 이니까 무작정

 

주칠단청 ! 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다수죠.

 

 

 

주칠이 아닌 주토계열 단청만 바른

 

단청 이름은 특별히 없다니보니까...

 

 

 

걍 보기에 비슷한 주칠단청

 

이라고 하는 상황입니다만...

 

 

 

그러나 주칠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냥 비슷한 붉은흙 안료인 주토를

 

사용했으므로...

 

 

 

광주향교 같은 단청은 정확하게는

 

가칠단청 이라고 하는게 정확합니다만...

 

 

이런 상록하단식의 단청도 가칠단청이다 - 김산향교 대성전

 

 

 

 

근데 또 문제는 이런 초록색이

 

들어간 단청도 가칠단청 입니다. 

 

 

 

색 배합이 어떻든

 

무늬없이 단순하게 색칠하면

 

전부 다 가칠단청이라 부릅니다.

 

 

종묘처럼 주토만 바른 단청은 공식적으론 가칠단청 이라고 한다.

 

 

 

붉은색 한가지만 사용해도 가칠단청.

초록색 상록하단 단청마저 가칠단청.



이름은 같은 가칠단청인데 패턴이

 

꽤나 여러가지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혼동이 생기지 않을까요?

 

 

 

전형적인 상록하단인데 , 아무런 무늬없는 단청도 그냥 가칠단청 이라고 한다 - 전주향교 대성전

 

 

 

그래서 용어로 인하여 건축 이미지의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이런 여러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용어로 인한 이미지 혼동을 줄일겸!

 

 

 

주칠과 주토는

 

색상및 안료부터 다르다!

 

라는 팩트를 알리기 위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쉽게 이해하실겸!!!

조금 더 알기쉽고, 직관적이고, 사실관계가

확실한 단어라고 생각되는...



[ 주토단청 ]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 입니다. 제가만든 용어니까

이 게시물에서만 사용하겠습니다!

 

 

종묘의 주토 가칠단청. 온통 붉은색이다.

 

 

 

조선시대 종묘.

 

전부 붉은색의 주토단청 입니다.

 

 

 

조선시대때 붉은색만 칠한 단청은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에요.

 

 

 

이쪽 분야의 최고봉인 종묘가 있습니다.

 

비록 뭐 초록색을 조금 사용했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되게 쉽습니다.

 

[ 고려건물에서 흰색 사용한 부분들을 ]

 

[ 조선에서는 초록색으로 대처만 했음 ]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게 쉽습니다.

 

그냥 더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진으로 보면서 비교하겠습니다!

 

 

1312년 그림.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서까래를 자세히 봐 주세요.

 

 

 

고려시대 회화의 서까래를 자세히

 

봐 주세요. 하얀색 동그라미들이

 

쉽게 보일 껍니다.

 

 

 

고려는 서까래의 끝 부분을 하얀색으로

 

칠했음을 회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종묘 건축물을 한번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불교 회화가 서까래쪽을

 

하얀색으로 칠하고 대부분은

 

붉은색으로 칠했는데..

 

 

 

종묘의 대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색이 초록색인거만 뺴면, 고려시대의

 

불교회화하고 채색법이 거의 똑같습니다.

 

 

 

근데 벽색상이 흰색이 아니죠?

 

그럼 흰벽에 붉은색 건물들도

 

우리한번 볼까요?

 

 

 

 

여기도 광주 향교 인데요.

 

이런식으로 지방 향교같은 경우는...

 

 

 

알게 모르게 붉은칠에 흰벽으로 꾸미는

 

건축 단청양식이 전승되고 있는 상황이죠.

 

 

 

재밌는건, 서까래 끝부분이 하얀색인거 마져

 

고려시대 불교회화하고 매우 비슷한 상황이죠!

 

 

 

 

이건 임실쪽의 토속 신앙이었나..?

 

아무튼 전혀 알려져있지 않은

 

그런 사당같은 전각인데요...!

 

 

 

이런식으로 대중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지방쪽

건물들 보면...

 

 

 

알게 모르게 붉은칠+흰벽 단청을

 

생각보다도 자주 사용 한답니다.

 

 

 

흰벽에 붉은칠 단청은 진짜 조용히,

 

소리소문없이 내려오고 있는중이죠.

 

 

청간정. 흰벽에 주토단청을 바른 정자다.

 

 

 

수많은 지방의 정자들은 이런식으로

 

온통 붉은색 + 흰벽조합 단청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이런 단청이 조용히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죠.

 

 

 

 

근데 그럼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죠.

 

 



[ 지방 정자들이 주토단청 이건 이해하겠다 ]

[ 근데 자세한 기록이 없지 않은가? ]

 



[ 지방에 내려오는 건물들이 실제로 ]

[ 흰벽에 붉은안료를 바른 단청이]

 

[ 확실한 고증이라는 증거있음 ? ]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런 모습이 고증이 맞습니다!

 

1748년 김희겸 선생의 그림 = 전일상한유도

 

 

이 그림은 경상좌병사 전일상 조상님이

 

지방의 한 정자에 계셨을때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한유도 입니다.

 

 

 

그림만 보셔도 아시겠죠?

 

단청이 주토단청 입니다.

 

또한 외벽은 흰색 입니다.

 

 

 

흰벽에 붉은칠만 칠한 주토단청을

 

표현한 건물이며, 실존인물을 그린 작품!

 

기록화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화에 가까운 고서화에

 

흰벽에 주토단청이 그려진 것 입니다.

 

 

 

기록화에 주토단청이 남아있으므로

 

고증 / 신빙성 모두 높은 상황 입니다.

 

 

 

 

종로5가 지나다니면 그냥 아무때나

볼 수 있는 종묘의 외대문 입니다.

 



그냥 길가에서 아무때나 볼 수 있는

문이라 대부분 모르고 지나칩니다만,



종로 외대문은 흰벽에 붉은칠 단청을

사용한, 매우 고려시대 스러운 단청을

사용한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봉정사 극락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보통 닫집보면

 

이런 말을 자주 하기는 합니다.

 

 

 

[ 닫집은 실제 건물하고 비슷하기는 한데 ]

 

[ 실제 건물보다 오버해서 꾸며서 믿을수가 없다 ]

 

 

 

라고 말을 합니다. 일리있는 말 입니다.

 

보통 닫집이 훨씬 화려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봉정사 극락전 닫집은 좀

 

많이 다르게 봐야되지 않을까요?

 

 

1312년 지온인 소장 관경서분도. 봉정사 극락전 닫집하고 같은 주칠단청을 사용하고 있다.

 

 

 

봉정사 닫집의 채색 방식인

 

온통 빨강색만 칠하는 단청은!

 

 

 

종묘/ 고서화 / 지방건축

 

꽤나 여러군데에서 발견됩니다.

 

 

 

비록 조선시대는 사치를 금하여,

 

건물 전체를 주칠하지는 않았지만,

 

 

 

주토단청과 흰벽을 조합하는 문화가

 

고구려부터 내려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종묘 칠사당 내부 단청,
종묘 공신당 내부. 흰벽에 주토단청을 바른 붉은색 단청이다.

 

 

 

종묘 칠사당 / 공신당의 단청 기법은

고려시대 회화하고도 거의 같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닫집 / 고려불교 회화 / 종묘 공신당

 

이 세가지 자료들의 단청 양식이

교차검증되고 있는 상황이랍니다!

 

 

 

 

닫집 -> 회화자료 -> 실제 건축 자료에서

같은 양식의 단청 기법이 확인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 닫집은 비록

 

값비싼 주칠단청 이지만, 나름대로...

 

 

 

충분히 실제 건물에 사용된

 

단청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상황 입니다.

 

 

청계서원 . 주토단청과 흰벽을 칠한 정자다 - 출저: 브런치 - 건축가의 주유천하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

 

 

 

그리고

 

조선시대때 건물 전체에

 

주칠을 한건 아닌데,

 

 

분명히 기둥에 주토가 아닌

새빨간 일본 / 중국식 주칠을

 

칠한 기록도 있습니다.

 

 

 

 

중종실록 26권, 중종 11년 11월 15일 임진 4번째기사 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 두모포 정자의 주홍칠을 벗기라고 전교하다 -

 

 

 

 

-  중종 -

 

두모포 정자는 기둥에 주홍칠을 하여

 

과연 참람할 듯하니, 제안대군의 종들을

 

시켜 주홍칠을 긁어내도록 하라.

 

 

 

 

* 참고사항 :  이 시절의 주홍 = 진사 [ 경면주사, 주칠의 원료 ]

 

 

########################################################

 

 

조선시대 두모포에 이런식으로 기둥에 주칠안료를 칠한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에

 

부산 두모포쪽에, 기둥에 주칠한

 

정자가 있었음을 기록했습니다!

 

 

 

조선시대때는 그냥 적갈색 주토만

사용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은...



의외로 중국과 일본하고 같은 주칠!

진사 안료를 정자에 칠하는 문화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주칠단청과 주토단청은 공존했을 것이다.

 

 

 

이렇듯, 왜색이 더럽게 짙다는

 

흰벽에 붉은칠 단청 채색법은...

 

 

 

진짜 의외인데요, 통일신라 시기

제외하면 거의 모든시기에서 발견

되는 단청 양식입니다.

 

 

 

게다가 고구려 / 고려 / 조선

 

모든 시대에서, 중국일본식 새빨간

 

주칠을 사용한거 까지 확인됩니다.

 



또한! 조선시대 조차 꾸준히

 

사용된 전통중에 전통 입니다.

 

이게 왜색이면, 종묘도 왜색임???

 

 

초록 창문에 흰벽에 붉은칠 단청은, 교차 검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고증에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전부 축약하면 이래요.

 

 

 

####################################

 


고구려 -> 흰벽 + 주토단청 많이 발견됨

 

통일신라 -> 확인 안됨

 

고려 -> 닫집 / 회화에서 흰벽 + 주칠단청 확인됨

 

조선 or 대한민국 -> 흰벽 + 주토단청 매우 많음

 

 

####################################

 

 

 

 

사실상 통일신라 빼고는

 

모든 시대에서 확인되는게

 

붉은 가칠 단청들 입니다.

 

 

 

그것도 건물벽이 흰색인거 까지

 

전부다 동일하게 확인되는 중.

 

 

 


왜색이 짙다는 흰벽에 붉은칠 건물.

 

한반도 모든 시대에서 발견됩니다.

 

 

 

 

조선시대 건물에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청 잘 모를때는 흰벽에 붉은단청!

 

너무나도 타당하지 않습니까!?

 

 

주토단청을 칠한 1533년 담양 면앙정 창문이 푸른색이다 - 출저: 전라남도 공식 블로그

 

 

 

상록하단 보다는, 증거가 확실하고

통일신라 시절 유행했던 붉은칠에

흰벽 단청!



주토단청이나 주칠단청으로 건축물을

복원하는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타당한

상황이랍니다.

 

 

완전 천연 주칠안료를 사용한 일본의 가스가타이샤. 천연 주칠안료는 의외로 엄청 빨간색은 아니다.

 

 


...................

 

 

 

고려 회화 = 중국 / 일본 건물들하고 주칠단청 교차 검증됬음.

 

조선시대 건물 = 주칠은 아니지만, 흰벽에 주토단청 자주사용함.

 

 

 

 

 

상황이 이런데....?

 

통일신라 건물에

 

조선 방식 상록하단?

 

 

 


이건 진짜!

 

 

 

교차검증및 학술적인 것만 봐도

 

사실 나올수가 없는 단청 입니다.

 

 

통일신라 단청은 이렇게 단순한 가칠로 복원하는게 훨씬 나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통일신라 건축물에

 

최대한 교차검증을 통해서

 

단청 복원할꺼 아니면,

 

 

 

 

그냥 붉은 가칠 단청이

 

훨~~~~~~~~~~~~~씬 안전하며~!

 

 


학문적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고증에 부합합니다.

 

 

최근의 사찰들의 수입산 안료. 기둥이 주토단청인데 마치 주칠같은 발색을 보여준다.

 

 

 

 

참고로 지금 통일신라 건축물에

 

상록하단을 바르는 이유는


짧게 적어 보자면!

 

 

 

 

1. 안압지에서 녹색 안료그릇 나옴

 

2. 통일신라는 단청 자료 거~의 없음

 

3. 그니까 잘 모르니, 조선시대 상록하단 ㄱㄱ

 

 

 

 

대략 이렇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아직까지도

상록하단을 고수하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통일신라 사찰은 이런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 - 3 . 실제 출토된 통일신라 벽체 / 안료 색상을 봐도 추측가능.

 

 

 

위에서 고증이 어쩌구 저쩌구 했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출토된 통일신라 건축

자료들을 보겠습니다.



사실 실제 출토된 건축 자료들만 조합해도

주토단청에 흰색 회칠벽 건물로 만드는게

너무나도 합당합니다.

 

 

 


그냥 실제 출토물을 봅시다.

 

통일신라 반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회벽 파편 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얀색 회벽 입니다.

 

 

 

 

그냥 실제로 신라 왕궁 유적에서

 

흰색 벽이 출토 되었습니다.

 

 

 

흰색 외에는 여타 다른 색은

 

출토되지 않았습니다.

 

 

출저 : 한겨레 모바일

 

 

미륵사 벽화 파편. 성분 분석 결과

 

진흙벽에 회칠 발라서 그 위에다가

 

그림을 그린 흰색벽 이랍니다.

 

 

 

그외 백제의 사찰들!

 

부소산사, 서복사, 인강사

 

 

 

이 사찰들에서 발굴된 벽체 색상은

 

하얀 바탕에 그림이 그려진 모습으로

 

발굴되었답니다.

 

 


이런거만 봐도 별 말이 필요없죠.

 

그냥 흰색벽이 타당합니다.

 

 

 

 

 

게다가 실제 통일신라 유적지

동궁과 월지 ( 구 안압지 )



이곳을 발굴할때 실제 통일신라

건축물 부자재들이 발견 되었는데요,



특이하게 하나같이 주칠 혹은 주토같은

붉은색 안료가 칠해진 건축자재들만

발견되었습니다.

 

 


그니까 대놓고 통일신라 건축물에

 

붉은색 안료를 칠한게 발견된겁니다.

 

 

 

다만 일부분만 발견 되었기 때문에...

 

건물전체에 붉은색을 칠했을까? 라는거 까지는...

 

 

 

아직 확정지을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만...

 

여튼 붉은안료 사용한건 확정 됬습니다.

 

 

 

 

동궁과 월지 ( 옛 안압지 )

 

에서 출토 되었던. 암키와.

 

 

 

이 안료는 옛저녁에

 

성분 분석 끝냈습니다.

 

 


성분은 산화철만 나왔습니다.

 

석간주 or 주토 입니다.

 

 

 

( 산화철은 석간주 or 주토안료 )

(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 보고서2권 504쪽에 나와있음 )

 

 

동궁과 월지 ( 옛 안압지 ) 출토 기와의 안료는, 오른쪽의 주토로 확인 되었다.

 

 

 

보통 검붉은 짙은 적갈색 안료는

대부분 주토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안료가 발견된거도 주토단청의 안료고,

벽체도 흰색이라서... 이렇게 실제 발굴이 된

자료들만 사용해서 건물을 올리면,



당연하게도 이런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외국자료 / 국내 모든 자료 / 통일신라 자료



이 모든자료들을 놓고 봐도, 주토단청에

흰벽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타당합니다.

 

 

참고로 주칠단청과 주토단청의 색깔은

이런 느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칠단청 : 초고추창 or 케첩

주토단청 : 붉은 황토색 or 팥알색



주칠단청은 대체적으로 캐찹이나 초고추장 색깔이고

주토단청은 황토중에서, 붉은색 황토색에 가깝습니다!



간혹 주토단청은 산화하면 마룬코트 색깔로

변하기도 한답니다. 색상이 꽤나 다양합니다.

 



그리고 약간 아쉬운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통일신라 건축물에

주칠을 엄청나게 적용했지만.....



통일신라는 단청 자료가 아예 없는

수준이라서, 사실 주칠단청이 있었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너무 아쉬운 상황이죠...

 

 

흰벽에 붉은단청은, 실제론 이런 적갈색 주토단청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실제론 통일신라 붉은 단청의 90%는

주토단청 이었을 겁니다. 이유는!

 

 

 

주토단청 안료는 국내 생산이 가능하지만,

 

주칠단청 안료는 사실상 전량 수입 했답니다.

 

 


주칠 안료가 한국에서는 저품질 제품만 생산되어서

 

국산 주칠안료는 단청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을 정도.

 

 

 

단청용 주칠안료는

 

조선후기까지 중국 /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와서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비쌌어요.

 

 

그래서 주칠 단청은 진짜 비싼 단청이라,

 

고위 계층만이 사용 가능했을 겁니다.

 

 

천연 주칠안료를 적용한 통일신라 누문 건축물.

 

 


다만 고구려도 주칠단청이 있다는 점,

신라가 고구려의 건축및 생활양식을

여러모로 배웠다는 추측이 가능하다는 점,



고려도 주칠단청을 사용했을걸로 짐작되는

자료가 있다는 점, 그리고 신라하고 고려하고

건축및 여러문화가 연속성을 보인다는 점...



이런 점들을 정상참작하여 이번 작품에서는

통일신라 건축물에 주칠을 미친듯이 적용했습니다!



아무튼 통일신라에 주칠 단청이 있었다!


라고 확정을 지을수는 없는 상황 입니다.


 

 

이 게시물에서는 계속해서 흰벽에 주칠

단청을 다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을

하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그럴줄 알았다! ]

[ 역시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단청은 ]

 

[ 주칠에 흰벽 단청밖에 없구나~~!!! ]



라고 생각하실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틀린 생각 입니다!

 



실제론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 고려시대

전부 금단청 계열의 단청이 있었습니다!

 

 

고구려 수산리 고분, 각종 고사리 무늬와 연꽃으로 화려하게 단청을 그렸다.

 

 

잘 아실태지만 고구려는 이런식으로

고구려 고분에 단청을 그렸습니다.


덩쿨무늬나 나뭇잎 무늬 등등 여러가지

무늬를 넣은 다채로운 무늬의 단청 입니다.


고구려는 주토단청 / 주칠단청 / 오방색 단청

전부 다 있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발해 삼릉. 오채색 보상화 무늬와 흰벽이 확인된다.

 

 

발해 고분에서는 주칠단청

 

혹은 주토단청이 아니라...

 

 

되려 무늬가 그려진 오채색 단청과

 

단청 배경색을 붉은빛과 하얀색으로

 

칠한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발해 삼릉2호분 단청을 건축물에 적용하면 이런 모습이다. 발해 건축터에서 벽화까지 발견되었기에 건물에 이런 단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수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해는 이렇게

 

둥그런 풀무늬와 꽃무늬를 사용한

 

단청을 건물에 사용했을것으로 추정됩니다.

 

 


12세기 고려시대 봉정사 내부에서

 

고려시대 12세기 단청이 발견되었습니다!

 

 

고려시대때 주토단청이나 주칠단청만이

 

아니라, 오채색 계열의 단청도 발견된 것이죠.

 

 

봉정사 극락전의 실제 12세기 고려시대 단청. 오방색 단청이다.

 

 

그러므로 삼국시대 / 통일신라 / 고려시대

 

모두 주토단청 / 주칠단청 / 오채색 단청

 

이렇게 다양한 단청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청은 한가지 양식만 있던게 아니라

 

다양한 양식이 공존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통일신라 단청은 주칠단청도 있지만 , 오채색 금단청도 존재했을걸로 예상된다.

 

 

####################################################

 

 

*참고사항 *

 

 

이 게시물의 내용은 24년 10월 1까지

 

연구된 내용을 기재한 것 입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변화/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

 

 

2. 각종 안료와, 그에 맞는 색상을 통일신라 건축물로 봅시다.

 

 

 

 

 

주칠.

 

 

전체를 붉게 칠하는 단청은

 

일반적으로 붉은칠한 건물을

 

보면 그냥 뭉뚱그려 전부 주칠했다.

 

 

 

 

라고 합니다만.....

 

 

 


여러분! 이거 아시나요!?

 

우리나라도 이런저런 상황을 따져보면,

 

 


전체 붉은칠 단청은 무려 3가지 버전이

 

있었을 것으로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에요!

 

 

 

이제부터 안료별 색감을

 

통일신라 건물로 봅시다!

 

 

 

 

1. 주토 ( or 석간주 ) 가칠 단청

 

 

 

 

주토를 전체에 바른 가칠 단청.

 

이건 뭐 100% 있었습니다.

 

 

 

윗쪽의 사료들을 보시면 아시겠죠?

고구려부터 - 조선시대까지 두루두루

사용된 스테디 타입 그 자체.

 

 

 

한국의 토지가 철광석 질이 굉장히 좋아서

 

그런가? 붉은흙 주토 안료는 전국 각지에서

 

안료가 생산됩니다.

 

 

 

참고로 주토 or 석간주는 안료 상태에

 

따라서 색이 조금씩 다릅니다!

 

 

창덕궁 취규정. 주토는 이런느낌의 색상도 있다. 철성분 함유량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다르다.

 

 

 

 

안료가 얼마나 부식되었는가,

 

흙에 철성분이 얼마나 들었나,

 

 

 

광물성 안료로 만들었는가,

 

흙을 사용하여 만들었는가, 등등!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하여

 

다양한 색상들이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색상들이

 

가장 자주 보인다고 생각되네요.

 

 

 

어둡고 진하고 꽤나 붉은 적갈색 ( 궁궐 위주 )

 

주황빛 감도는 옅은 갈색 ( 신축 정자 위주 )

 

희여멀건 마룬코트색 ( 신축 전통건축 위주 )

 

 

 


세가지 색상이 가장

 

많이 보이는거 같네요.

 

 

통일신라 지붕도 곡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주토라는 단어는 전문가

 

집단에서만 사용하는 단어!

 

 

 

제가 주토라고 열심히 사용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안료는 [석간주]로 부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석간주라고 부르는게

 

틀린건 아니니 착오 없으시길~~!

 

 

 

실제 통일신라 기와에 칠해진 주칠이라 말해지던 안료는 주토다.

 

 

 

월지에서 주칠이 칠해진

 

기와가 발견되었 읍니다!

 

라는 말 가끔 보셨을탠데요.

 

 

 

 

이 붉은칠 성분 분석은 일전에

 

완료 되었는데, 이 안료는 주토 입니다.

 

( 보고서에는 석간주라고 표기 )

 

 

 

 

산화철 성분만 나왔다네요.

 

이런 통일신라 실제 건축물

 

자료 조차..... 주토가 나옵니다.

 

 



위에서도 기술해 놓았지만

 

안압지에서 실제 통일신라 건축

 

부자재들이 발견 되었는데요,

 

 

 

성분 분석중에서는 가장 확실한건

 

주토 ( 혹은 석간주 ) 안료만 확정되어서...

 

 

 

건축물 전체에 주토를 칠하는게 가장

 

정답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참고사항 *

 

 

 

 

주토 / 석간주

 

이 두가지 안료의 성분은 산화철.

 

 

 

주토와 석간주는 안료 성분이 아예 똑같아서

 

성분 분석과 함께 색상까지 판단하여 구별해야 합니다.

 

 

통일신라의 1동 2실 건축물. 주토단청을 적용해봤다.

 

 

주토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토 = 석탄

 

 

 

석탄은 우리나라에서 캘 수 있어서

 

광산 유지해 놓으면 언제나 채취해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주토가 그렇습니다. 전국 각지에 널려서,

 

필요할때 그냥 퍼서 사용하면 되는 수준!

 

 

 

조선시대 기록에 남아있는 전국의

주토 생산지를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채취되는 지역은 이렇습니다.

 

################################

 

주토 채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기록

 

황해도 황주목

 

경기도 양주 적성현

 

충청도 충주목

 

충청도 청주목

 

경상도 안동 청송군

 

강원도 회양 인천현

 

강원도 회양 평강현

 

강원도 원주 횡성

 

경상도 진주 하동현

 

 

 

남쪽부터 북쪽까지

 

고루 출토 되는게 주토.

 

################################

 

 

 

근데 보통 궁궐 기둥색을

 

석간주라고 하는데........

 

 

각종 기록에서는 어째서 이걸보고

 

주토라고 하고 있을까요??

 

 

 

 

 

기록상 주토와 석간주는

 

18세기 이전엔 따로따로 구분하다가...

 

 

 

단청 안료를 전량 수입하기 시작하는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사실상 안료의

성분이 똑같은 주토와 석간주는...



발색부터 가격까지 착한 수입한 석간주

안료가 모조리 장악하면서, 주토는 사실상

석간주 안료에 포함되게 됩니다.



주토는 대다수는 아예 모르는 안료가 되는데

이게 둘다 성분이 똑같아서 이런일이 생긴거에요...

 

 

석간주라는 이름아래 색상이 적어도 3개 이상이다. 단청을 잘 모른다면 무조건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석간주 = 주토 이런... 요상한 상황.

 

 

 

석간주라는 이름 아래에 색상 타입만

 

주황색, 갈색, 적갈색 , 주토색 등등...


4가지가 넘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석간주하고 주토의 색상은 철저하게 나눠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석간주와 주토의 색깔 구별은

 

이렇게 하셔도 좋을듯 합니다.



주황색 or 어두운갈색 : 석간주

검붉은 적갈색 or 마룬색 : 주토

 

 

 

 


2. 진사 ( or 주사 ) 가칠 단청

 

 

 

 

 

우리가 주칠 건물!

 

하면 익히 떠오르는 그 색상!

 

실질적인 주칠의 대표주자! 진사 가칠 단청!

 

 

 

진사로 만든 주칠안료 또한

 

상황마다 색상이 조금씩 달라요.

 

 

 

진사 색상은 그냥 이렇게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중국, 일본식 시뻘건 진사안료 = 초고추장 색

 

의외로 초고추장 하고 뉘앙스가 거의 같아요!

 

 

이 채색 방식 건물은 있었을 확률

 

사실 98% 정도로 생각합니다.

 

 

 

고구려 ~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유행하던 양식인데

신라만 없는거도 이상하고.....



고구려의 쌍영총의 주칠기둥 이라던가,

통일신라 이후인 고려시대의 불교회화나

각종 사서기록에 주칠기둥 기록이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분명히 있을것 같기는 한데...

아쉽게도 통일신라 자료에서 직접 주칠을

칠했다는 기록은 아예 없는 상황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단청은 단청배경을 주칠로 칠한다.

 

 

그리고 봉정사 극락전에서

 

실제 진사 안료가 확인 됬어요.

 

 


봉정사 극락전은 건물의 외형,

 

건축 방식, 단청의 모양과 색감 등등...

 

 

 

약간이지만 통일신라의

 

건축 수법이 남아 있는데요.

 

 

 

실제로 단청 바탕색을 진사

 

주칠을 칠한것이 실제 확인됬습니다.

 

 

 

그래서 일단 후삼국~ 고려시절은

 

실제 주칠을 칠하는 문화가 있음이

 

완벽하게 확인 되었습니다.

 

 

 

진사만 칠한 시뻘건

 

중국, 일본 건물 같은 건물은...

 

 

 

통일신라 전국토 다 합쳐도

 

굉~~~~~~~~~~장히 드물거나,

 

 

 

있어도 몇채 없었을 것 입니다.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이겁니다.

 

진사 광물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진사 ( 경면주사 ) = 석유

 

 

 

#################################

 


석유 = 동해에서 나는걸로 예상되는데

 

경제적 이득이 적어 그냥 방치중.

 

수량도 쬐끔. 전량 수입품에 의존.

 

 

 

 

 

진사 = 기록상 전라도 용담, 황해도 평산에서 생산은 됨.

 

근데 발색이 약해서, 회화 그릴때나 가끔 사용함.

 

별로 사용도 안함. 수량도 쬐끔. 90% 수입품에 의존.

 

 


국산 진사 - 번주홍 으로 만들어짐

 

진사하고 석유는 많이 비슷합니다!

 


############################################

 

국내에서는 이렇게 발색력이 낮은 주칠안료만 발견되었다 ( 번주홍 )

 

 

 

 

 

 

 

당나라 시절 무역량 생각해보시면,

 

진사가 아무리 많아도 그리 많이

 

수입되지는 못했겠지요?

 

 

 

조선시대 기록도 중국, 일본산 주칠

 

매우 비싸....! 라고 적혀 있습니다.

 

 

 

진사는 전량 수입이라 비싸서...

 

통일신라 전국토의 모든 사찰과

 

왕실과 정부 건축물이!

 

 


전부 진사만

 

사용했을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일부 선택받은

 

사찰 or 궁궐에서 극소수로 사용되던게...

 

진사 주칠 건물 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이유도 있는데요.

 

주칠만 칠한 단청은 가칠단청 계열.

 

오방색 단청 보다 레벨이 당연히 낮습니다.

 

 


왜냐면...간단합니다.

 

주칠단청은 그냥 한가지 색만

 

사용하는 단순 채색이니까요!

 

 


근데 그 와중에 전국적으로

 

주토는 산출이 쉽게! 잔뜩!

 

 

 

그럼 비싼 주칠안료인 진사보다는

당연히 싸고좋은 주토를 더 많이

 

사용 하지 않았을까요...?

 

 

가스가 타이샤. 본전이 천연 왜주홍이다. 주변의 주황색은 수은으로 만든 인공주홍이다.

 

 

굉장히 짙고 붉은 빨강색!

 

이 안료 또한 이름이 꽤나 많습니다.

 

경면주사, 주보사, 진사, 주사, 당주홍 등등......

 

 

 

기본적으로 수은과 황이

 

합쳐진 황화 수은 안료 인데요.

 

 

 

기록에 있는 이름들이 중구난방에

 

지멋대로지만, 건물 단청용 명칭만 보자면

 

일단 조선시대때는 [ 당주홍 ] 입니다.

 

 

국내산 주칠안료 번주홍은 발색력이 낮아서 이렇게 주토에 가깝다고도 한다.

 

 

여튼 안료의 상태, 부식 상태 등등

 

의외로 안료 상태에 따라 색감이

 

조금씩 다른 듯 합니다.

 


무려 조선시대 기록에서 조차

 

이거와 관련된 기록이 있어요.

 

 

 

##############################

 

듕귁 건물은 기둥이 시뻘건 빨강색인데

 

건물마다 빨강색이 다르다.

 

 

 

어떤건 예쁜데 어떤건 개판.

 

조잡조잡. 이런 이유는 안료의

 

상태가 제각각 이라서 그렇단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

 

 

한마디로 실제로 건축물에 진사만

 

칠한다고 해도, 안료 상태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 입니다.

 

 

 

질 나쁜 진사는 최상급 주토하고

 

색상이 거의 동급일 겁니다.

 

 

 

 

3. 울릉도 석간주 가칠 단청

 

 

 


있었을 확률 대략 3% 정도

 

신기하죠? 주황색 건물!

 

 

 

고구려 까지는 석간주를 적극적으로

 

사용 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조선시대 후기쯤은 되서야 다시

 

석간주를 단청에 활용하기 시작해서...

 

 

 

한국 모든시대의 대부분은 적갈색

 

주토 건물들이 주를 이루었을것이라...

 

 

 

이런 주황색 건물은 사실 없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되지만,

 

 

 

있었을 가능성이 한...

 

3% 정도는 있습니다. 볼까요!?

 

 

 

 

안압지 출토 안료 항아리들.

 

저기서 주황색이 석간주 라고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을 기준으로는

 

석간주 = 붉은 적갈색 or 와인색

 

이어야 하는데... 주황색에 가깝죠??

 

 

 

 

저렇게 많은 양의 석간주가

 

월지에서 실제로 출토가 됬고,

 

 

 

게다가 통일신라때는 울릉도 우산국에서

 

통일신라에게 특산물들을 바쳤다는 기록도 있어서...

 

 

 

기둥이나, 건물 전체에 주황색

 

석간주칠 단청이 있었을 거라는

 

의심 정도는 해볼 만 합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대문에 울릉도 석간주가 칠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기록 때문에

 

이런 단청이 있었을수도 있다!

 

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17세기 까진

 

주토와 석간주를 따로

 

구분해서 기록하는데,

 

 

 

그 이후는 석간주와 주토가

 

혼용되며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예로는 이게 있죠!

 

18~19세기 기록! 오주연문장전산고

 

 

 

여기 기록에 이렇게 써있어요.

 

울릉도에서 주토가 나는데 매우 고와서

 

주칠 같다! 라는 기록이 있어요.

 

 

 

 

주황색 석간주를 보고 분명히

 

주토라고 부르는게 기록됩니다.

 

 

 

그렇다면.....?

 

 

 

성종 5년엔 분명 주토를 궁궐에

 

단청으로 발렀어~! 라는 기록이 있는데......

 

 

 


어.......? 궁궐은 죄다 팥색 기둥인데...흠

 

19세기 기록엔 주황색 석간주가....주토?

 

 

 

그럼? 성종때 주토는

 

설마 울릉도 석간주!??!?!?!

 

라는 의심을 할 수 있게 됩니다!

 

 

19세기 수입산 석간주. 토종 석간주하고 다르게 붉은캬라멜 색상이다.

 

 

 

그러나 울릉도 석간주는, 사용한

 

예가 굉장히 드문 상태 입니다.

 

 

 

19세기 이전에는 오로지...

 

선암사 말사 , 참당암에서만

 

사용한게 확인되었을 뿐,

 

 

 

그다지 사용된 경우가

 

없는 안료라고 합니다.

 

 

 

통일신라 기와에서는 분명히

 

붉은 적갈색 주토가 발견되었고,

 

 


실제 고려시대 건물들 단청에서는

 

전부 적갈색의 주토가 출토 되었고,

 

조선후기 암자 참당암에서 사용했긴 했으므로...

 

 

 

울릉도 석간주만 칠한 붉은색 단청이

 

있을 가능성은 3% 정도는 있을거 같네요.

 

 

 

#################################


17줄 요약

 

 

- 통일신라나 삼국시대 건물에

 

- 붉은색만 칠해도 된다

 

- 통일신라 빼고, 모든 시대에서

 

붉은칠만 건물 사료 확인됨.

 

- 동시대 중국, 일본의 건물도 붉은색

 

- 동시대 중국, 일본의 벽화 대부분이 붉은색

 

 

 

 

- 국내자료, 외국자료 모두 교차검증됨

 

- 통일신라쯤에는 건물 전체에 붉은칠 한 건물이

 

- 3가지 타입이 있었을 가능성 존재

 

- 우리나라는 주토가 가장 많이 생산

 

- 주칠은 전라도 용담, 황해도 평산에서만 생산

 

 

 

 

- 근데 발색이 좋지 않아서

 

건물용은 전량 수입산 의존

 

 

 

- 그래서 주토만 칠한

 

건물은 모조건 있었고

 

 

- 주칠만 칠한 건물은

 

극소수로 예상됨. 너무 비싸서

 

 

-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주황색 건물이 있었을 확률 존재

 

 

 

- 현재 주칠이란 단어는 중구난방 사용됨

 

- 주토,주황색,주칠 건물에 전부 사용가능. 혼란 야기

 

 

 

- 한국은 붉은색 칠한 단청의 단어를 정리및

 

확립을 못해서, 논의를 통한 정확한

 

개념 확립이 필요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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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러나 왜 배흘림 기둥을

 

사용하는지 궁금하지요?

 

 

 

 

어떤 기능 때문에

 

사용하는 것 일까요?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 배흘림 기둥 ( 엔타시스 기둥 )! 왜 사용하나요? 어떤 기능이 있나요?

 

 

 

 

첫째!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

 

배흘림 기둥은

 

 

" 시각효과 개선기능 "

 

때문에 사용을 합니다.

 

 

 

 

 

예를 봅시다.

 

건물 기둥이 5m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게 직선 기둥 입니다.

 

 

 

 

 

근데 이게 몇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람이 가까이에서 보면

 

기둥 가운데가 얇아 보이고,

 

배가 들어간거 마냥 보입니다.

 

 

 

 

 

 

 

 

 

 

 

직선 기둥은 근접해서 보면

 

기둥 가운데가 휘어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깁니다.

 

왼쪽 기둥을 자세히 보시면, 이상하게 휘어보이는 것이 확인되지요!

 

 

 

게다가 사람의 시선으로는

 

아래에서 위로 보지요?

 

 

 

 

그래서 기둥 배가 팍

 

들어가 보이는 착시효과가

 

몇배로 증가 됩니다.

 

 

 

 

배흘림 기둥은 이런

 

이상해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완벽하게 개선합니다!

 

뱃쪽이 정상으로 보이고, 여유롭게 뻗어나가는 시각 효과가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배흘림 기둥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기둥 윗쪽 : 가장 얇음

 

 

 

기둥 가운데 : 가장 두꺼워짐

 

 

 

기둥 밑단 : 기둥 중간쪽 대략 1/7 부터 서서히 얇아짐.

 

기둥 맷 윗쪽보단 두껍고

 

기둥 중간보다 얇아짐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래에서 위를 보는게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

 

위치를 고려했고,

 

 

 

 

그 위치로 인한 착시 현상을

 

보정하려고 이렇게 만든것으로

 

예측 가능하다고 하네요~!

 

 

 

 

게다가 사람의 시각에 따라

 

인위적 원근법을 만드는데...

 

 

 

배흘림 기둥이

 

좋다고 합니다!

 

 

2번째 이유로써는~!

 

 

 

배흘림 기둥

 

(엔타시스 기둥 )은

 

 

 

적은 목재로

 

직선 기둥하고 최대한

 

같은 성능을 가진,

 

 

 

 

효율적인 기둥을 만들기

 

위해서 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 주장은 아래의

 

선생님들이 하셨습니다.

 

 

 

 

#################################

 

 

더 작은 초석으로

 

직선 기둥하고 성능이

 

거의 같은 수준의~~~

 

 

 

 

기둥을 받치기 위해

 

고안 되었다는 설

 

 

 

- 서현 선생님 -

 

 

 

################################

 

 

 

적은 나무 목재로

 

튼튼한 기둥을 만들려면~

 

 

 

가운데 배가 볼록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네요!

 

 

 

 

- T.M Atanakovic 저서 : j comoput appl. math -

 

- S.J cox 저서 : the mathematical interllihencer -

 

 

################################

 

 

 

 

 

2. 배흘림기둥 ( 엔타시스 기둥 )의 장점

 

 

 

 

위에서 언급했듯이

 

시각 효과 기능!!!

 

 

 

 

그리고 더 적은 목재로

 

튼튼한 기둥을 만드는게 가능!

 

 

 

 

이 정도가

 

배흘림 기둥의

 

장점 인데요~!

 

 

 

 

기둥 내구성및 하중 받치는

 

능력은 깊게 연구된 적이...

 

 

 

아직까지는 그다지

 

없는듯 하네요...!!

 

 

 

 

그래서 지금으로써는

 

착시 보정 효과가~

 

대표적인 장점인듯!

 

 

 

 

휘어 보이는 기둥을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부드러운 곡선으로

 

보이게 해 주지요.

 

 

 

 

또한 일반 기둥하고

 

밑단 부분의 지름이

 

똑같을 경우!

 

 

 

 

 

날렵하고 얇아진

 

배흘림 기둥의 모양 때문에~

 

 

 

 

건축물과 기둥이 훨씬

 

날렵하고, 적당히 가벼워

 

보이는 효과도 생깁니다.

 

 

 

 

또한

 

배흘림 기둥 특유의

 

곡선 모양 때문에,

 

 

 

일반 기둥보다 훨씬

 

높아 보이는 시각효과

 

또한 생겨난다고 하네요!

 

기둥을 잘 보이게 하려고~ 고증에 안맞지만 다자색으로 기둥을 칠했습니다.

 

 

 

 

 

직선 기둥은 이런 느낌!

 

 

 

 뭐랄까 이상하게

 

살짝 휘어 보이죠?

 

 

 

곧고 힘차 보이는

 

느낌이 좋습니다만!

 

 

 

단단하고 약간 무거운

 

느낌이 연출 됩니다.

 

안압지에서 나온 각종 건축자재를 적용해 만들어본, 통일신라 2층 건축물

 

 

직선기둥은 이런

 

느낌입니다.

 

 

 

멀리서는 기둥이 그리 휘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미~~~~~묘 하게

 

휘어 보이는 느낌이 나죠?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보시면 아실껍니다!

 

배흘림 기둥은 다릅니다!

 

붉은색만 칠한 건축물! 실제로 통일신라는 이러한 건축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습니다!

 

 

직선 기둥하고 기둥

 

밑단 지름이 같을 경우,

 

 

 

배흘림 기둥이 당연히

 

좀 더 얇고 가늡니다.

 

 

 

물론 기둥 중간을

 

기점으로 윗쪽만

 

한해서요~! 

 

 

 

 

그래서 그런가

 

건물이 살짝 가볍고

 

살짝 편안한 느낌이 들지요?

 

 

 

 

곡선 효과와

 

살짝 얇아진 기둥!

 

 

 

곡선으로 인해서

 

약간 더 생기는 빈공간!

 

 

 

 

이런 장점들 때문에

 

유려한 기둥곡선이

 

건물을 시각적으로~

 

 

 

무게감을 덜어주고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참고로 배흘림 기둥 또한

 

기둥 지름을 처음부터

 

매우 두껍게 잡거나,

 

 

 

 

배흘림 곡선률을 낮춰서

 

곡선이 약하거나....이러면!

 

 

 

 

당연히 가볍고 정돈된

 

모습은 덜 하던가,

 

사라집니다.

 

 

 

 

이럴땐 착시현상

 

보정 효과만 기대할 수 있겠죠!

 

 

###############################

 

 

배흘림 기둥도 처음부터 굵고, 짧고, 배흘림을 약하게 만들면~ 이렇게 둔탁해 보입니다.

 

 

 

기둥 아랫쪽 두께는 일반

 

직선 기둥하고 같은

 

상황 일 경우!

 

 

or

 

 

배흘림 기둥을 그 당시

 

자주 사용하는 평균적인

 

기둥 두께로 만들 경우~!

 

 

 

 

목재의 특성상

 

기능적 으로는~

 

 

 

직선 기둥하고

 

별 차이점이 없다는데요~!

 

 

 

 

윗쪽으로 갈수록

 

얇아지기 때문에~

 

 

 

 

기능은 일반 기둥하고

 

거의 똑같으면서!

 

시각적으로는~

 

 

 

 

지붕이 건물을 가볍게

 

누르고 있는 듯한,

 

 

 

 

부드럽고 편하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연출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직선 기둥으로 인하여

 

건물이 둔탁하고 단단하고,

 

무거우면서,

 

 

 

단순하면서 살짝 투박해

 

보이는 모습이 연출이

 

됩니다만~!

 

직선 기둥하고 가장 밑단의 지름은 똑같지만! 이런 모습이 연출되는게 배흘림 기둥

 

 

배흘림 기둥을 적용하면,

 

전체적으로 안정적이고,

 

 

 

 

둔탁하지 않고!

 

곡선으로 인하여

 

부드럽고 고급스러우며~

 

 

 

적당히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지붕이 가볍게

 

누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시각적 안정감이

 

생겨나는 기둥 이랍니다~!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3. 배흘림 기둥은 언제부터 사용했나요?

 

 

 

 

 

 

기원전 4세기부터

 

엔타시스 기둥을

 

사용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실존하는 배흘림 기둥을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배흘림 기둥은!

 

 

 

 

408년에 지어진

 

덕흥리 고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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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단청과 조선시대 단청을

 

스샷으로 보기 쉽게 추려서~

 

 

 

많은 분들이 한번쯤 재밌게

 

비교해 보시라고 써봅니다~!

 

 

 

또한 시대별 고려시대

 

단청 사진을들 나열해서,

 

 

 

고려 - 조선시대 까지

 

단청 발전 역사를 볼 수 있게

 

간략하게 꾸며 봤습니다.

 

 

 

 

 

 

 

 

 

 

 

 

 

 

 

 

 

 

 

 

 

 

 

 

 

 

 

 

 

 

 

 

 

 

 

 

 

 

 

 

 

 

 

 

 

 

 

 

붉은현판, 옻주칠 난간, 난간 구리꽃을 적용한 회경전. 3개 모두 실제 기록으로 존재한다.

 

 

 

 

 

조선시대 단청과 고려단청을

 

보기 편하게 정리한 게시물이...

 

 

 

하나쯤 있어도 좋을것 같아서

 

이렇게 만들어 봤답니다.

 

 

 

여러분들이 스샷으로 보면서

 

눈으로 직접 비교해 보세요!

 

재밌게 비교해 보시길~!

 

 

 

 

#########################################

 

- 목차 -

 

PART - 1 - 단청을 보면서 직접 비교 해보세요~!

 

PART - 2 - 고려시대 시대별 단청 변화

 

PART - 3 - 들기름 바르면 바뀌는 단청 색상

 

 

#########################################

 

 

 

PART - 1 - 고려시대 단청과 조선시대 단청을 보면서 직접 비교 해보세요~!

 

 

 

탑골공원 단청 (19~20세기쯤)
고려시대 12세기 단청을 적용한 봉정사 극락전

 

 

 

전형적인 상록하단 단청하고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단청버전!

 

 

 

화반이 있는 건물끼리 단청

 

비교해 보시라고 이렇게 올립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려시대 건축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므로...

 

 

 

조선시대 단청하고

 

어디가 얼만큼 바뀌었는지

 

찾아보셔도 재미있을듯 합니다.

 

 

봉정사 대웅전 측면 출저: 문화재청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적용한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모습

 

 

 

봉정사 극락전 측면과

 

제가 복원해본 봉정사 극락전.

 

 

 

제가 복원한 봉정사 극락전 단청은

 

봉정사 극락전 수리보고서에 나온대로...

 

 

 

단청 색을 적용하려고

 

최대한 보정하지 않고~

 

 

 

수리보고서에 나온

 

그대로의 색감을 사용했고,

 

 

 

단청 위치도 [ 할 수 있는 만큼 ]

 

수리보고서에 있는데로 복원 했어요.

 

봉정사 출토 12세기 고려시대 단청들

 

 

 

- 그러므로 제가 복원한 봉정사 극락전은 -

 

- 들기름 ( 명유 )를 바른 것으로 생각해주세요 -

 

- 들기름은 아랫쪽에서 다룹니다 -

 

 

 

 

근데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

 

몇군데는 완벽히 복원하지는 못했어요.

 

이점은 조금만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진만 봐도 뭔가 확실히 다른

 

느낌을 받으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른 단청하고도 비교해봅시다.

 

 

북한산 삼각산 삼천사 일주문 ( 일반적인 조선시대 모로단청)
진관사 범종각 ( 조선시대 사찰 금단청 )

 

 

 

이번에는 불교 단청하고

 

고려단청하고 비교 해 보세요~!

 

 

 

사실 조선시대 단청은

 

고려시대 부터 꽤나 잘

 

이어져 내려왔는데요,

 

 

( 실제로 고려단청과 조선단청은 매우 비슷함 )

 

 

12세기 고려시대 단청 주칠기둥 버전

 

 

그러나 봉정사 극락전 출토

 

고려시대 단청은 약간 다른

 

모습을 모여줍니다.

 

 

 

조선시대로 이어진

 

무늬들 보다는, 그 시절

 

국제적으로 유행하던 무늬들이 주류!

 

 

 

 

그래서 고려 초기~중기의

 

단청 스타일을 알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단청 자료라고 합니다..!

 

 

16세기 전기 조선의 성불사 응진전 단청. 굉장히 상록하단이다.

 

 

 

봉정사 극락전 단청하고

 

조선초기 성불사 응진전의

 

단청하고도 비교해보세요.

 

 

 

12세기 단청하고 16세기 즈음의

 

단청은 확실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봉정사 극락전 출토 12세기 예상 고려시대 단청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은

 

여말선초 단청하고도 꽤나

 

많이 다른 모습 이랍니다.

 

 

 

조선시대 단청하고 거의

 

똑같은 여말선초 단청과

 

다르게, 풀꽃무늬가 주류 입니다.

 

 

1308년 수덕사 대웅전의 고려후기 단청. 실제로 대웅전에 남아있는 단청을 복원해봤다.

 

 

 

그러나 고려시대 단청은...

 

14세기가 되면 조선시대 단청하고

 

거의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수덕사에서 출토된 1308년 추정

 

수덕사 개창시기 고려후기 단청은

 

대략 이런 모습 입니다.

 

 

 


12세기 봉정사 단청하고는

 

모양과 패턴이 많이 다르게

 

변한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머리초 패턴이 사실상

 

정형화 된것을 알 수 있는데요.

 

 


머리초라는 건물 부자재의 양끝에

그리는 풀꽃무늬 베이스의 패턴형

단청 도안이 강세를 보이는데요,



사실상 조선시대 단청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비슷한 단청 모양으로

변한게 14세기 고려후기 단청 입니다.

 

 

18~19세기 조선시대 궁궐 단청.

 

 

 

가장 전형적인 궁궐 단청하고

 

비교해 보세요. 궁궐의 단청하고...

 

 

14세기 고려시대 단청하고는 나름

 

비슷한 면모가 보이고 있습니다만,

 

 

12세기 단청은 저 2가지 단청하고

 

굉장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윗쪽에 올린 불교 단청들과

 

조선시대 궁궐및 정부 기관 단청과

 

단청의 발전 과정 사진들을 비교해보세요.

 

 

창덕궁 주합루 어수문 ( 일반적인 궁궐 단청 )

 

 

 

12세기 봉정사 극락전 출토 고려시대 단청

 

 

 

 

14세기 수덕사 대웅전 출토 고려시대 후기 단청

 

 

16세기 수덕사 조선시대 초기 단청. 초록색보다는 하늘색과 약간 누런빛의 하양색 위주로 채색했다.

 

 

16세기 성불사 응진전의 전기조선 단청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려시대

 

단청도 조선시대 단청처럼

 

변하는게 눈에 보입니다!

 

 

 

다만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은 이렇게

 

풀과 꽃을 마구마구 그리고,

 

 

 

단청 배경색을 붉은색 / 파랑색/ 초록색

 

골고루 사용하는 진짜배기 오방색 단청.

 

 

 

 

조선시대 단청하고 비교하면

 

단청 무늬 전개가 확실하게 다르답니다.

 

 

 

 

심지어 14세기 고려후기 단청하고

 

15세기 조선시대 초기 단청인

 

수덕사 대웅전 단청하고도 차이가 납니다!

 

 

창덕궁 선정전

 

 

 

 

 

 

 

 

고려시대 청자기와 우진각지붕 건축

 

 

 

 

궁궐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

 

청기와를 사용하고 있으며~

 

 

 

건축물 레벨과 단청도

 

레벨이 높은 선정전 입니다.

 

 

 

선정전의 청기와 + 상록하단과

 

고려건물의 청자기와 + 고려 상록하단

 

 

 

청자기와 하고 청기와의 느낌도

 

한번쯤 비교해 보시면 재밌을 겁니다!

 

 

창덕궁 선정전

 

 

들기름을 칠하지 않은, 고려시대 상록하단형 단청

 

 

 

청자 기와, 청기와의 색감및

 

건물의 전체적인 느낌이 뭔가

 

비슷한데 조금 다르죠?

 

 

 

색감과 전체 모양은

 

비슷한것처럼 보이는데,

 

 

 

조선시대 단청은 기하학 무늬,

 

고려시대 단청은 풀과꽃 무늬가 강세!!

 

 

 

 

두개의 단청들을 찬찬히 관찰해 보세요!

 

다른듯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PART - 2 - 고려시대 시대별 단청 변화

 

 

 

 

 

 

* 고려초 단청은 유추는 가능합니다 *

 

* 그러나 완벽하지 않아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

 

 

 

 

 

 

1. 고려 중반기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으로 예상되는!

 

봉정사 극락전 출토 단청으로 인하여...

 

 

 

적어도... 고려 중기의 최소한의

 

단청 특징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상황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12세기 추정 고려시대 단청



 

그 외에 고려시대 각종 자료를

 

토대로 예측해보면 대략적으로...

 

 

 

고려시대 중반기 단청은

 

2가지 단청양식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두가지 단청은 이렇습니다.

 

오채편장 계열 단청 ( 지금의 금단청 )

 

연옥장 계열 단청 ( 지금의 상록하단 )

 

 

 

 

 

 

- 오채편장 계열 단청 -

 

12세기 고려시대 금단청 ( 오채편장형 단청 )

 

 

 

오채편장 계열 단청의 특징!

 

 

 

 

조선시대 상록하단은

 

위에는 초록색, 아래는 붉은색

 

이래서 상록하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오채편장 계열 단청은..

 

 

 

붉은색, 초록색이 전체적으로

 

뒤섞여서, 조화롭게 섞여있습니다.

 

 

 

" 사서 기록에 나오는 "

 

" 금벽이 붉고 푸르구나 ! "

 

청자기와및 주칠 기둥, 난간에 구리꽃을 적용한 만월대 회경전

 

 

 

 

이 기록은 상록하단이 아니라

 

붉고 푸른색이 적절히 뒤섞인~

 

오채편장 단청일 가능성이 큽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려시대 단청은 붉은색, 초록색이

 

위치관계없이 마구 뒤섞여있죠.

 

 

오채편장형 단청은 초록 / 붉은색을 마구 섞어 사용한다.

 

송나라 설명에 따르면, 1등급 오채편장형 단청은 ""금분칠 ( 황칠 )"" 을 했다고 하며, 조선초 자료로 증명된다.

 

 

 

 

* 오채편장형 단청 특징 *

 

 

- 고려시대 1등급 단청

 

( 봉정사 출토 단청은 1.5등급 정도 예상 )

 

 

 

- 초록색 붉은색이 위치 상관없이 뒤섞여 있음

 

- 진사 (주칠원료 )를, 첨차에 직접 배경으로 사용

 

- 다양한 색구성과 통일신라적 면모가 보임

 

 

- 단청에 황칠 사용했을 가능성 매우 큼

 

( 여러가지 자료에서 가능성 매우 큼 )

 

 

#########################################

 

 

 

 

- 연옥장 계열 단청 ( 고려 상록하단 ) -

 

 

12세기 고려시대 상록하단 단청 ( 연옥장 계열 단청 )

 

 

 

고려시대부터 이미 상록하단

 

계열 단청은 있었을 것 입니다.

 

 

 

이 단청은 영조법식에 의거하면

 

대략적으로 2등급 단청 입니다.

 

 

들기름을 바르지 않은 고려시대 상록하단

 

 

 

고려시대 각종 자료및

 

봉정사 극락전 단청 패턴만 봐도,

 

 

 

 

상록하단 단청은 고려초기부터

 

무조건 있었을 것 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없기 때문에

 

연옥장 계열 단청이라고 적었습니다.

 

 

들기름을 색칠하여 더욱 진해진 녹색과 단청들!

 

 

우리들이 착각하는게 있습니다.

 

 

 

 

초록색 단청이 발견되면

 

초록색 단청만 있는걸로

 

생각하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고려는 다릅니다.

 

건물 자제에 직접적으로

 

붉은색을 아주 많이 사용합니다.

 

고려 단청은 빨강색을 아주 직접적으로 사용한다.

 

 

 

 

고려시대는 과도기적인 시대.

 

여러 타입의 단청이 존재하던

 

시대라고 생각해야 한답니다.

 

 

 

전반적으로 붉은 느낌이

 

강렬한 오채편장형 단청,

 

 

 

초록색만 보이는 상록하단

 

단청이 공존하는 시대 였습니다.

 

 

이런 붉고 푸른색이 섞여있는 오채편장형 금단청이 있었다면
이렇게 초록색이 훨씬 부각된 단청도 있었을 것 입니다. 둘다 공존했다고 생각해주세요.

 

 

 

고려시대 초~중반기는

 

한반도 사상 최고로~

 

 

 

다양한 단청들이 공존하던

 

시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 고려 중반기 상록하단 계열 단청 특징 *

 

 

 

-  2등급 단청 입니다.

 

- 현재 완벽한 실물은 없음

 

- 그러나 사실상 무조건 있었을 단청

 

- 조선시대와 매우 비슷했을듯함

 

- 꽃, 풀, 덩쿨 무늬가 주된 무늬

 

 

20세기 대한민국 조계사 일주문 단청. 초록색 위주 + 일반인은 알아볼 수 없는 무늬로 구성되어 있어요.

 

풀과 꽃이 많이 사용된 12세기 고려시대 단청

 

 

 

무슨 무늬인지 알아보기 힘든

 

조선시대 단청하고 비교해보면,

 

 

 

고려시대 연옥장 계열 단청은

 

풀과 꽃이 난무하는 ~~~~~!!!!

 

 

 

진정한 플랜테리어 스타일의

 

단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단청쪽이

 

알아보기가 훨씬 쉽고,

 

 

 

꽤나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기 좋은 단청 입니다.

 

 

 

 

 

 

*  플랜테리어 *

 

집의 인테리어를 풀과 꽃으로

 

도배하는 인테리어 방식 입니다.

 

 

 

 

 

 

###########################################################

 

2. 고려 후기 단청

 

 

 

14세기 수덕사 대웅전에서

 

2가지의 고려 단청이 나왔습니다.

 

 

 

1개는 완벽한 고려시대 단청

 

1개는 조선시대 단청 입니다.

 

 

 

그 중에서 실제 고려시대

 

후기 단청을 알아보겠습니다.

 

 

 

 

수덕사 대웅전 출토

 

1308년대 추정, 수덕사 개창시기

 

실제 고려시대 단청의 모습.

 

 

 

조선시대 단청하고

 

매우 흡사한 모습 입니다.

 

 

창경궁 문정전

 

 

 

창경궁 문정전 하고 모습과

 

색감이 꽤 비슷하게 보이죠?

 

 

 

수덕사 대웅전 단청으로

 

알 수 있는 고려 후기 단청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

 

- 휘가 많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단순함.

 

( 휘 : 뚱글뚱글하게 생긴 오방색 끈들 )

 

 

 

- 조선시대 하고 다르게 파란색이 강하다.

 

- 전반적으로 초록색이 아니라

 

- 파란색에 가까운 푸른색

 

 

 

-[ 중요 ] 고려시대는 무조건적 초록색이 아닌!

 

- 파랑색에 가까운 청색 계열 단청이 있었다.

 

( 조선초 단청 중에 청색 계열 단청 꽤 있음 )

 

 

수덕사 1300년대 고려시대 단청

 

 

창덕궁 문정전 청아한 단청 ( 조선시대 초~중반기 즈음)

 

 

 

근접해서 비교해 보시면

 

더더욱 체감하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정전 또한

 

조선시대 초~중반 단청으로

 

꽤나 고식에 속합니다만, 그래도...

 

 

 

수덕사 출토 고려시대 단청이

 

훨씬 파랑색이 강렬합니다.

 

 

경복궁 사정전 ( 19세기 조선시대 후기 ) - 오색빛깔 끈들이 "휘" 입니다. 굉장히 발달했죠?
14세기 고려시대 후기 단청. 이때까지는 휘가 단순합니다.

 

 

 

경복궁 안에서도 가장

 

화려한 단청에 속하는

 

사정전과 비교하면,

 

 

 

조선시대 단청이 얼마나

 

휘가 발달했는지 보입니다.

 

 



참고로 휘는 초록 풀덩이 앞에

 

휘황찬란 총천연색 5색끈 <--이게 휘!

 

 

 

아무튼 고려후기 단청은

 

조선시대 단청에 비하면은

 

꽤나 수수한 편 이랍니다.

 

 

위 전각은, 이렇게 실제 출토된 녹슨 강철기와를 적용해서 기와가 붉은색이다.

 

 

 

근데 기와가 붉은색이죠?

 

고려시대는 철기와가 가끔

 

발견되어서 적용해봤습니다.

 

 

 

아무튼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원나라부터 상록하단이 도입되서

 

단청이 푸르게 변했다! 라는 사실을...

 

 

 

다들 왠만해선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금 다른 양상 입니다.

 

 

 

15세기 즈음의 명나라 단청

 

 

 

수덕사 고려 단청은

 

여러면에서 명나라 단청하고

 

색감부터 모양까지 비슷합니다.

 

 

3번째 단청을 자세히 보면 명나라단청하고 비슷한 모습이란걸 알 수 있다.



 

단청을 구성하는 색감이

명나라 단청하고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수덕사 1308년 단청의 경우는

명나라 단청보다 좀 더 붉은색을 더욱

직접적으로 사용해서 살짝 느낌이 다릅니다.



그리고 3번째 단청 패턴을 자세히 보시면

명나라 단청하고 생긴거 자체가 꽤나 비슷합니다.

 

 

14세기 수덕사 대웅전의 고려후기 단청. 사실상 조선시대 단청하고 다를게 없다.

 

 

 

 

 

임천 선생의 모사도가 완벽한

 

색감을 재현했다! 라고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모사도를 통해서 대략적으로

 

어떤 색상들을 사용했는지 짐작할수

 

있는 상황입니다.

 

 

 

수덕사 단청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원나라 시절 단청은

 

무작정 초록색이 아닙니다.

 

 

수덕사에서 발견된 14세기 고려시대 단청에 명유을 바른 모습. ( 명유 : 밀타승을 베이스로 만든 목재 보호용 기름 )

 

 

 

무작정 초록색 단청도 있었겠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색감이었습니다.

 

 

 

하늘색과 파랑 / 초록이 혼합된

 

푸른색 / 청색 타입의 단청

 

 

 

하얀색과 파랑색 / 누렁빛깔 초록색을

 

베이스로하는 하늘+누렁색 단청도

 

있었다고 예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3. 조선초기 단청 - ( 고려후기 예상가능 )

 

 

샘플로 만들어본 수덕사 단청 적용 건축물. 샘플이라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이 단청이 수덕사에서 발견된

 

2번째 단청이며, 조선초 단청 입니다.

 

 

 

이 단청을 어째서 고려시대

 

단청 예상 가능! 이라고 설명했느냐~!

 

 

 

왜냐하면 의외로 이런 희뿌연

 

단청은, 원나라 단청하고 매우

 

비슷하기 때문 입니다.

 

 

이게 수덕사에서 발견된

 

하늘색 + 누렁색 + 흰색과

 

연보라 + 파랑색이 조합된...

 

 

 

전혀 조선시대 스럽지 않은

 

16세기 조선시대 단청입니다.

 

 

 

이런 특이한 색감의 단청은

 

원나라 단청이 꽤나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3세기 원나라, 1298년 원대묘

 

 

 

원나라 단청은 흰색과 하늘색

 

혹은 흰색과 옅은 초록색 조합

 

등등...

 

 

흰색과 조합이 되는

 

단청을 꽤나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 입니다.

 

 

1200년대 원나라 고분벽화 복원도

 

 

 

흰색과 옅은 초록색의 색감이

 

수덕사 16세기 조선시대 단청

 

하고 꽤나 뉘앙스가 비슷합니다.

 

 

실제로 수덕사 단청을 적용한

 

사진하고 비교해보시면, 무슨

 

느낌일건지 아시게 될겁니다.

 

 

1528년 추정 수덕사 대웅전의 조선시대 초기 단청.

 

 

원나라 단청하고 사용한 색감이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조선초기 단청인데 그 모습이

 

14세기 원나라하고 비슷한 상황이죠.

 

 

 

수덕사 출토 16세기 단청은

 

이런 사실을 유추하게 해줍니다.

 

 

 

- 수덕사 16세기 조선초 단청은

 

- 13세기 원나라 단청하고 색감이 거의 같다

 

- 고려때 이런 희뿌연 단청이 들어왔을 가능성 100%

 

 

수덕사 1528년대 단청은 이미 고려시대때 원나라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시대 단청은

 

풀과 꽃이 난무하는

 

플렌테리아 스타일의...

 

 

 

원색적이면서도 알아보기 쉽고

 

풀과 꽃무늬가 현란한 단청에서...

 

 

 

원나라 간섭기 시절을 거치면서

 

무늬가 확 바뀝니다. 아마도.....

 

이런식으로 변했을 겁니다.

 

 

12세기 고려단청 - 풀과 꽃이 난무하는 붉고 푸른 금벽단청

 

 

 

이런 단청에서.....

 

 

원간섭기 고려 단청 - 일반인은 알아보기 힘든 기하학 무늬가 강세인, 청아한 단청으로 변화

 

 

 

이런식으로 단청이

 

바뀌었을 것 입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사실!

 

또한 유추할 수 있는 사실!

 

바로 이것 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고려금동토수, 1528년 수덕사 조선초단청, 1308년 추정 수덕사 고려연화대좌를 적용한 고려청자 건물



 

- 세간에 알려진 사실 -

 

 

원나라 부터 기하학 + 초록색

 

도배 상록하단 단청 널리 퍼짐

 

 

 

 

 

- 수덕사 단청들로 알 수 있는 사실 -

 

 

 

파랑색 + 하늘색 위주의 단청이나

 

흰색 + 회색 + 하늘색 계열 순백의 청아한 단청 존재.

 



 

이런 사실을 유추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초기 단청은...

 

 

 

의외로 마구잡이로 초록색만 칠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색이나 하양색에 가까운

 

누렁색 등등 색감이 생각보다는 다양했습니다.

 

 

원나라 간섭기는, 이런 모습의 단청 또한 있었을 것 입니다!

 

 

 

대한민국은 발굴된 자료

 

그리고 유추 가능 사실만

 

조합하면~

 

 

 

충분히 고증 내에서

 

멋지고 독특한 느낌의

 

2층 건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번외편 - 고려시대 단청 발전 -> 조선 단청 발전과정

 

 

 

 

 

고려시대 단청부터

 

조선시대 단청들은

 

이런식으로 진화합니다.

 

발해 단청에서 볼 수 있듯이

 

나말여초 ~ 후삼국시대 쯤의

 

단청은 이런색상 이었습니다.

 

 

단청의 배경색이 지금과는 다르게

 

하양색 / 붉은색이었을 것이었을 것 입니다.

 

 

 

 

이런식으로 붉은배경 / 하얀배경 색상을

 

단청에 사용하던게 후삼국시대 즈음.

 

 

 

발해 유민들과 그들의 영토

 

일부분을 흡수한 고려도

 

 

 

이러한 단청색상 양상을

 

보였을 거라고 예측이 가능합니다.

 

 

영조법식 머리초, 하얀단청 또한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10~11세기 고려 ( 하얀단청 있었을 확률 5%~10% )

 

조선시대 단청중에서 하얀색으로 칠하는 경우가 극극극 소수로 있긴하다.

 

 

 

 

이런식으로 하얀색 단청은

 

알게 모르게 조선시대 까지도

 

아주 간헐적으로 사용되었다가...

 

 

 

슬슬 하얀색은 단청 배경색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점점 비중이 늘어나는 초록색!!!!! 그러나 적갈색,적,청,녹 붉고 푸른색을 조화로이 배합한 12세기 고려

 

그러나 13세기쯤 부터는, 점점 초록빛 단청들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14세기 고려시대 후기 단청

 

14세기 고려후기 단청 종류들

 

조선 초기 단청2 ( 사실 조선중기 단청 이지만! 조선초 단청의 청아한 색감및 각종 요소가 있음. )

 

조선 중기 단청 ( 가장 일반적인 상록하단 )

 

조선시대 후기 단청 - 오색빛깔 끈, 휘가 매우 발달합니다.

 

조선시대 후기 단청 - 사찰의 금단청

 

20세기 대한민국 조계사 일주문 단청. 초록색 위주 + 일반인은 알아볼 수 없는 무늬로 구성되어 있어요.

 

 

 

고려시대 부터

 

대한민국 까지,

 

단청은 이런식으로 발전합니다.

 

 

 

 

조금 더 축약적으로

 

쉽게 알아 볼까요?

 

 

 

 

12세기 고려 - 고려 후기 - 조선 초기 - 조선 중기

 

 

 

 

시대적 단청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축약된 사진을

 

올려 봤습니다~!

 

 

12세기 고려 - 풀과 꽃이 난무하는 단청!
14세기 원간섭기 단청부터는..... 점점 패턴화 되는 풀과 꽃들, 기하학 무늬가 대세가 됩니다.

 

 

15세기 조선초 ~ 조선중기 단청 ( 휘 덜 발달함 ) 출저 : 명지대학교 이은희 선생님 논문

 

 

 

12세기 고려 이후로는

 

청아하고 푸른 단청으로

 

완전히 진화하게 됩니다.

 

 

 

 

또한 12세기 고려 이후로는

 

강력한 패턴화 + 기하학 무늬

 

위주로 진행 되면서,

 

 

 

 

일반인들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단청 모습으로 진화합니다.

 

 

 

 

################################################

 

 

- 건축물에 흑칠기둥을 적용한 이유 -



제가 만든 그래픽을 보시면 괜히 이러한

생각이 들거라고 생각합니다.

 



[ 어째서 기둥이 검은색이여...? ]


 


제가 기둥을 검정색으로

 

적용해 본 이유는 이렇답니다.

 



생각보다  레퍼런스들이 많아서

 

한번쯤 흑칠기둥을 적용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1630년대에 그린

임오사마방회첩 이라는 그림 입니다.

 

 


짙은 갈색 옻칠이라기에는

 

너무나 짙은 검정색 기둥입니다.

 



내용은 1582년도에 합격한

1582년 학번 성균관 동기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리고 흑칠 기둥은 나름대로 실제

건축물에서도 확인 할 수가 있답니다.




봉정사 대웅전 불단의 기둥 입니다.

용그림이 그러져 있어서 순수한 흑칠기둥

까지는 아닙니다만 뭐 그래도...



배경색이 그냥 짙은 갈색의 옻칠이 아닌

완벽하게 검정색 흑칠 기둥 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흑칠기둥 그림은 나름대로

실제였을 확률이 그래도 쪼끔 있는 상황이죠.

 

 



그리고 고려시대 그림인

아집도대련 문사관화도(文士觀畵圖) 입니다.



이 작품은 중국 복건(福建, 푸젠)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예상되서...

 



고려시대 문화가 깃든 고려의

 

그림은 아닌걸로 판단되서...



고려시대의 고려그림은 아니다! 라며

사실상 고려 자료로써는 배제되고있어요.




뭐 아무튼 그래도...

시대상 고려시대때 그림이라서 이 그림도

나름대로 참조를 하기도 했었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때 각종 감실을 보면

짙은 옻칠도 있는데, 간헐적으로 이렇게

완전히 흑칠로 칠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이점이라면 창호문이 붉은색 입니다.

제가 만든 작품은 이런 레퍼런스들을

확인하여, 흑칠 기둥으로 만든것 입니다.



그리고 감실의 흑칠+붉은색 창호문

이 양식을 공격적으로 적용하였답니다.



이 모든 자료들이, 제가 만든

이 게시물의 건물들의 단청들이

흑칠기둥 + 붉은창호문 모습인 이유랍니다!

 

 

 

 

 

PART - 3 - 들기름 도채하면 바뀌는 단청 색상

 

 

 

 

 

단청한 건물에 들기름을

 

바른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들기름의 완벽한 기록은

 

여기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극초반 기록 "

 

" 조선왕조 태조 실록 13권 "

 

 

 

 

 

 

- 실록 기록 -

 

 

태조가 궁궐을 꾸미는데

 

명유를 바르게 했다.

 

 

 

############## 명유 ##############

 

 

들기름+밀타승+활석+백반을

 

섞어서, 뭉근한 불로... 끈적하게

 

끓여 만든 독성 들기름

 

 

 

밀타승 : 일산화 납

 

활석 : 무르고 부드러운 규산염

 

백반 : 명반석을 가공해서 만든 가루모양 약재

 

 

########################################

 

창경궁 환경전. 들기름을 바르지 않으면, 단청은 매우 청아합니다.
청아한 색감과 밝은 톤이 예쁜 성정각 단청

 

 

 

일단 들기름을 안 바른

 

궁궐 단청부터 보자면은

 

색감이 대략 이런 느낌 입니다.

 

 

 

밝고 청아한 느낌이 참 보기가

 

좋은 그런 단청인데요, 이러한

 

청아단 단청에다가...

 

 

 

들기름이나 명유같은 기름들을

 

바르면, 대략 이런 느낌으로 색이

 

진하게 변하게 된답니다.

 

 

 

 

 

대충 이런식으로요.

 

색이 꽤 어둡게 변하죠?

 

 

 

딱 물에젖은 색감? 정도로

 

변하는데 기름마다 변하는

 

수준은 조금씩 다릅니다...

 

 

 

여튼! 들기름을 바르는

 

이유는 이거에 있습니다.

 

 

 

 

- 오일 성분으로, 수분 방어 코팅이 생김

 

- 첨가물을 넣어 끓인 들기름은, 접착제같이 나무에 달라붙음.

 

- 빗물로 인하여 퇴락되고 부식되는 단청+목부재를

 

- 더욱 오랫동안, 좋은 상태로 유지 시켜줌

 

- 그래서 궁궐이나 양반가에서 기름을 발랐던 것.

 

 

########################################################

 

 

 

 

이러한 이유가 있구요!

 

들기름을 바르게 되면

 

단청색이 어둡게 변합니다.

 

 

 

또한 고려시대 문화가

 

남아있는 조선 극초반 기록에,

 

 

 

그것도 조선왕조실록에

 

끓인 첨가물 들기름을

 

바르라는 기록이 있죠.

 

 

 

이래서 여러가지 정황을 보면

 

고려시대 부터 이미 기름을

 

단청에 발랐을 것 입니다.

 

 

들기름을 바르지 않은 전통안료 색감은 훨씬 청아하고 밝습니다.
끓인 들기름을 바르면 이런식으로 진하고 어둡게 바뀝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건물과

 

조선초기 건물은~

 

 

 

우리 생각만큼 막 되게

 

초록초록 하고 밝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되려 생각보다 어둡고 무거운

 

단청 색상을 보여주던 고려와

 

조선초 건물들 이었을 겁니다.

 

 

 

 

태조 실록 기록의

 

명유는 성분만 봐도

 

예상이 되시죠!?

 

 

 

명유 들기름은 첨가물이

 

너무 많아서, 단청의 색상

 

변화가 매우 심할 것 입니다.

 

 

 

더더욱 단청 색상은 진하고

 

다크한 느낌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밝고 청아한 느낌의 단청은, 명유를 바르면 아래처럼 변할겁니다.
끓인 들기름인 명유를 바르면, 색은 어두워 지지만! 빗물로 부터~ 단청 보존력과 목자재 방어력이 +2 됩니다.

 

 

 

들기름이라고 다 똑같은

 

수준으로 단청의 색깔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실제로

 

연구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대문 수리 보고서.

 

 

 

 

거기에 적혀있는 기록하고

 

실제 궁궐 단청, 남대문 단청을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게 갑니다.

 

 

 

 

...................

 

 

 

 

여튼 수리 보고서에

 

있는 특성을 적어볼게요.

 

 

 

 

- 일반 생 들기름 : 색상이 변화 하기는 함. 근데 약간 어두워짐

 

- 볶은 들기름 : 화학 약품인 아크릴에멀젼 보다 단청색이 훨씬 심하게 어두워짐

 

우리나라 모든 시대 건물 90%의 색깔을 차지한, 석간주 (적갈색 ) 기둥 적용.
들기름 바른 주칠버전. 볶은 들기름 또한 이만큼 진하고 어두운 색으로 변할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지껏

 

복원한 고려시대 건물들

 

사진들을 보시다 보면,

 

 

 

전통 색상보다 훨씬

 

진한 초록빛 단청으로

 

복원한 것을 보셨을 겁니다.

 

 

 

사진마다 어떤건 밝고,

 

어떤건 어둡게 만들었던 이유는~

 

 

 

 

이런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들기름 단청이라도

 

밝기는 조금씪 다르지요~!?

 

 

 

 

들기름의 종류와 도채 방식에 따라

 

단청의 밝기 변화는 모두 다르므로,

 

 

 

 

뭐를 콕 찝어서 특정해서

 

이게 답이다! 라고 단정을

 

지을수는 없답니다...허허

 

 

14세기 양식을 적용, 샘플로 임시복원한 만월대 회경전. 단청은 실제 있는 밝은색상을 적용

 

 

 

수덕사에서 발견된

 

14세기 고려시대 후기단청.

 

 

 

이러한 하늘색 ~ 회색 사이쯤의

 

색감을 보이는 단청도,

 

 

 

명유 / 들기름 / 아크릴 에멀젼을

 

바른다면 이런 수준까지 색이 바뀔겁니다.

 

 

 

 

 

 

들기름이나 밀타승을 사용한다면

 

색이 이런식으로 무겁게 변합니다.

 

 

생각보다도 더 많이 더 확실하게

 

어둡고 짙은 회색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의외로, 우리나라 단청은

 

마냥 청아한 색감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의외로 건물이 어둡고

 

무거운 색상이었을 겁니다. 왜냐!!

 

 

 

들기름이나 명유같은 기름을 바르는

 

문화가 분명히 존재했었으며, 그래서...

 

 

 

 

단청에 들기름을 바르는 경우에는

 

톤이 되게 어둡고 진하게 변합니다.

 

 

 

의외로 우리나라 과거의 단청 색감은

 

생각보다 무겁고, 진한 색상이었을거란

 

예측이 가능한 겁니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

 


이 게시물은 2023년 12월 3일까지 연구된

내용을 토대로 만든 게시물 입니다.



만일 무언가 새롭게 발견이 되거나,

새로운 연구이론으로 인하여.....


기존의 이론이 바뀌거나

 

이론 변경 / 변화 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이 게시물의 내용은 수정될 것 입니다.

 


################################################

 

원나라 간섭기 ~ 조선초 단청. 실제 단청으로써 매우 드문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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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거대한 발굴을 해서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이 발굴은~!!!

 

 

 

우리나라 단청 역사에

 

엄청난 보탬이 되는 굉장히

 

좋은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제가 직접 발굴한 고려초기 단청을 도채한 건축물, 북한산 진관사 나가원 *

 

 

 

 

 

 

 

몇년전에 진관사를

 

방문 했었습니다.

 

 


그때 사진을 찍으면서

 

굉장히 눈에 들어온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그 건물의 이름은 나가원

 

 

 

 

 

 

이 사진을 찍을 당시에

 

한창 단청 공부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단청을 바라보면서

 

" 어 뭔가 머리초가 좀 특이하네 "

 

 

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이후로 고려시대 단청

 

건축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영조법식의 단청무늬를

 

어느정도 습득한 상태에서~

 

 

 

 

별 생각없이 진관사

 

사진을 다시 보다가!

 

 

 

진짜!

 

깜놀했습니다!!!!!!!

 

 

 

 

제가 보면서 한말은 이거였습니다!

 

 

 

" 어 뭐야 이거 영조법식 머리초네??? 진관사에 고려시대 단청이 있었네!? "

 

 


자......진관사 나가원의

 

단청을 근접해서 보겠습니다!

 

북한산 진관사 나가원 건축물에 도채된 머리초
일반적인 조선시대 궁궐 머리초 단청

 

 

일단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 단청하고는...

 

 

확연하게 다르게 생긴

 

머리초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저 건물을 봤을때부터

 

뭔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 한복판! 안에 있는 사찰에서

 

이렇게!!!!!!! 그것도!!!!!!!!!!!

 

 

 

고려시대 초기!!!!!!!!!

 

1100년대 단청의 모습!!!!!!

 

 

 

그 모습을 거의 90% 이상

 

간직하고 있는 단청을!!!!!!

 

찾았다는게 굉장히 기뻤습니다!!!!!!!!

 

 

* 진관사 나가원에 도채된 "고려시대 초기 단청" 을 진관사 모습 그대로 적용해본 고려시대 흑유 수상전각

 

 

 

네.

 

제가 최초로 찾았다기 보다는...

 

 


제가 최초로 알아봐서

 

최초로 발굴및 공표한 사람!

 

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면~

 

 

 

단청 상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번 다시

 

그린 단청입니다.

 

 

 

 

그래서 최초 발견까진

 

아니죠.....뭐~허허~

 


그러나!!!!!!!!

 

 


다른곳도 아닌 서울안에서,

 

사람도 엄청 많이 다니는 진관사에서!

 

 

 

그 아무도 관심 없어서 방치됬던 무려!!!

 

" 고려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단청 "

 

 


이것을 제가 가장

 

먼저 알아보고!

 

 


민간에 공개, 단청 소개, 단청 활용을

 

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했다고 저는 자부합니다!

 

 

 


그래서 제가 발굴했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진관사 나가원의 연혁을

 

간략하게 알아볼꼐요.

 

 


진관사 나가원은

 

북한산 부황사의

 

건물 이었습니다.

 

 

 

북한산 부황사는

 

서울 강남 삼성동

 

봉은사가 관리하던 사찰.

 

 

 

1717년에 심운 스님이 창건

 

하셨다고 합니다.

 

 

 

이 사찰은 북한산성을

 

수비하는 승군이 주둔하는

 

12개의 사찰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사찰 자체가 북한산성 수비

 

사찰이라 규모가 작은 사찰

 

이었고,

 

 

 

6.25 전쟁때 거의 모든 건물이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진관사 나가원은 건물은

 

어찌저찌해서 살아남은 듯 합니다!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1960년대쯤? 이때쯤에....

 

 

 

부황사 터에 떨렁 하나 남아있는

 

나가원을, 다 뜯어서 진관사로

 

가져와서 재조립 했다고 합니다.

 

 


워낙에 그냥 평범한,

 

그다지 중요한 건물로

 

생각하지를 않아서...

 

 

 

이 이상 정보가 없네요.

 

이 정도 까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북한산 진관사 나가원 단청

 

 

송나라 영조법식 머리초 단청

 

 

 

 

 

 

일단 간단하게 나가원의

 

머리초가, 영조법식과

 

얼마나 똑같은지~

 

 


잠깐만 훑고 가보겠습니다~!

 

 


그냥! 그림만!보셔도!

 

아시겠지요!?!?!?!?!?

 

 

 

 

영조법식에 소개된 머리초

 

단청하고 거의 똑같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컬러마저 80% 정도

 

흡사하게 채색을 했습니다...오호

 

 


그러나~

 

 

 

진관사 나가원에 그려진

 

머리초는, 영조법식에 소개된

 

머리초하고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것이죠.

 

 


90% 정도로 송나라

 

영조법식 단청과 거의 똑같음.

 

 

 

 

하지만 머리초를 구성하는

 

무늬는 고려중~후반의

 

스타일이 녹아있음.

 


.........

 

 

 

사실 나가원의 머리초

 

단청무늬는 무늬 구성이

 

전체적으로~

 

 

 

송나라 영조법식 머리초하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똑같지만,

 

 

 

그림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채색 방식은 고려말 기법들이

 

꽤나 적용된 것 입니다.

 

 

진관사 나가원의

 

머리초 단청같은 경우는~

 


두가지 루트의

가설이 생성됩니다.

 

 

 

 

- 1번 가설 -

 

 

1717년 설립된 부황사는

 

사찰 설립 이전부터 고려시대

 

건축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부황사는 계속 중창을 해서

 

정확한 건립연도는........

 

 


그 아무도! 조사를 아예 안해서!

 

그 어떤 정보도! 아직은 없지만!

 

 


여튼...

 

 

부황사에 나가원이 새로

 

만들어질때까지~

 

 

 

고려시대 초기 단청이!!!!!!

 

남아있었던 건물이~

 

 

 

1717년까지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나가원은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었던 고려시대 건물의 단청을...

 

 

다시 따라 그린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리고 단청 무늬의

 

패턴을 고려를 해볼때,

 

고려초 단청을 보고 그린~

 

 

 

고려중기~고려말 건축물이

 

실제로 남아있었을 확률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아니면 실제 고려초기 건축물이

 

1717년까지 있었을 확률이 있다.

 

고려시대 현어, 고려시대 목조 다리를 적용해봤습니다!

 


- 2번째 가설 -

 

 


1717년 이후 사찰이 중창됬지만,

 

6.25 전쟁이후 떨렁 한채만

 

남게 된 부황사 나가원.

 

 


이걸 1960년도 였나...?

 

( 죄송합니다 언제 나가원을 부황사에서 뜯어왔는지...기억이 잘...허허; )

 

 

 


이때쯤 진관사로 건물을

 

다 뜯어서 가져와 재조립을

 

하였는데,

 

 

 


그때 !

 

 

 

다시 중창된 진관사에서

 

단청 작업을 진행한 단청장이!

 

 


진관사 어딘가에 남아있었던

 

고려시대 단청을, 나가원에

 

적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진관사는 실제로 고려시대때

 

서울에서 나름대로 유명했던

 

사찰이었다.

 

 

 


특히 근처 삼천사는 고려시대때

 

3천명이나 수련을 하던 고려시대

 

남경에서 알아주는 초거대 사찰!!

 

 


진관사는 그런 대찰 삼천사

 

바로옆에 있었던 사찰.

 

 


그래서~

 

 


진관사에 우리가 모르던

 

고려시대 초기 or 고려중~후기 단청이~

 

 


실제로 그려져 있던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산 부황사는 그 아무도

 

연구를 안해서 고려시대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저는!

 

 


서울 북한산 삼천사라는

 

초거대 사찰이 근처에 있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천사는 고려 남경인

 

서울에서 알아주는 3천명

 

이상이 수련하던 고려시대 초거대 가람.

 

 


실제로 고려시대 보물들이

 

발굴되는게 삼천사 입니다.

 

 


서울 삼각산 삼천사의

 

가람 규모와 위치를 볼때,

 

 

 

부황사터에...

 

1717년 부황사 중창 이전!

 

 

 

삼천사에서 관리하던

 

자그마한 소규모 사찰이 이미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혹은~

 

 


나가원의 단청은 진관사의

 

어떤 건물을 보고 그렸을

 

가능성도 있는 것 입니다!

 

 

 

애초에 진관사 자체가 고려시대

 

건축물들이 즐비했던 고려시대

 

사찰이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진관사 나가원의 고려시대

 

초기 추정 단청은,

 

 


실제 고려시대 초기

 

단청을 보고 그린~!

 

 

 

실제로 고려 중기~

 

고려말 단청일 가능성이

 

굉장히~~~~~~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탁드립니다!!!!!!

 

 


제가 발견한 진관사

 

나가원의 고려시대 머리초!!!!!!!

 

 

 

학자님들!

 

한번만 연구해 보십시요!!!!!!!

 

 


우리나라 단청 역사를 알 수 있는

 

발견이자, 연구가치가 높은 그런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 건축의 큰 특징! 처마밑에 삐죽하게 설치한 하앙! 하앙은 고려시대때 널리 사용된 처마 받침대 입니다!

 

여기서 부터는 진관사 나가원의

 

단청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도대체 왜!? 나가원 단청이!?

 

고려시대 초기 추정 단청인가!?

 


이것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송나라 영조법식 머리초 단청

 

진관사 나가원의 기본적인 틀
수덕사 대웅전 출토 고려시대 후기 머리초 단청들
조선시대 머리초

 

진관사 나가원의 머리초는

 

고려시대 초기 단청 or

 

 

 

고려초 단청을 보고 그린

 

고려중기~고려후기 단청

 

 

이라는 주장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전체 모습을 보겠습니다.

 

이건 그냥.....크게 설명 안하겠습니다.

 

 

 

제가 위에 제시한 사진들을

 

영조법식 단청을 기준으로

 

비교해보시면,

 

 


그냥 이해가 되실겁니다.

 

 

 


네. 그냥 딱봐도

 

송나라 영조법식하고

 

가장 똑같이 생겼죠???

 

 


잘 모르시겠다면~

 

 


제가 머리초 틀 이라고

 

표시해 놓은것을 보면서

 

비교해 보세요.

 

 

 

네....겉모습은 그냥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세부적인 무늬를

 

조금 파해쳐보겠습니다.

 

송나라 영조법식 머리초
진관사 나가원 단청

 

그림들에 제가 동그라미

 

표시해 놓은 것들을~

 

 

 

색깔에 맞춰서 비교하며

 

교차검증을 해보세요!

 

재밌지 않나요!?

 

 

 

나가원의 단청은 채색 때문에

 

조선시대 단청 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그림 그리는

 

패턴을 보면.....

 

 

완전히 고려시대 초~중기,

 

송나라 영조법식 단청하고

 

거의 다 똑같고!

 

 


세부 무늬를 그린 방식은

 

고려중기~고려 후기의

 

성향을 보입니다.

 

 

 

단청의 전반적인 색깔 때문에....

 

그냥 보기엔 고려말 단청같지만,

 


단청을 구성하는 모양세는

 

1100년대 고려시대 초기~

 

 


송나라 단청을 거의

 

그대로 적용 했습니다!

 

 

당연히 그림 스타일은

 

송나라 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그 뉘앙스나

 

단청 무늬 전개 방식 자체는

 

1100년대 송나라 단청과 거의 똑같죠.

 

고려시대 후기 석류동과 녹초, 곱팽이
조선시대 석류동, 녹초, 곱팽이
봉정사 극락전 출토 12세기 대량 머리초

 

 


실제 14세기 수덕사의

 

고려시대 단청과~

 

 

조선시대 단청의 사진까지

 

관찰하시면 더더욱 재밌습니다!

 

 

 

나가원의 석류동 하고

 

그외 단청들의 석류동을

 

비교를 해 보세요.

 

 

 

나가원의 단청은

 

고려시대 초기 단청의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부 그림은 고려 후기, 조선시대

 

그림체하고 비교가 가능합니다.

 

 

그 증거는 바로

 

곱팽이 ( or 겹녹초 )~!!

 

 

 

기둥에 그려져 있는

 

하트무늬 속에 그려져있는~

 

 

 

똥글똥글하게 생긴

 

초록색 풀들을~

 

 

 

윗쪽에 올린 머리초 단청들

 

하고 자세히 비교해 보시면!

 

 

 


송나라 영조법식 풀들

 

or

 

봉정사 극락전 출토 단청의~!

 

 

 

 

송나라 or 고려초~중기 타입의

 

녹초 or 겹녹초 보다는...

 

 

 

수덕사 고려말 단청의

 

동글동글한 풀들하고

 

같은 그림체를 보여줍니다.

 

 

 

 

제가 표시한

 

곱팽이나 겹녹초

 

이 풀들을 비교하시면 됩니다!

 

 

 

또한 저 가운데 튀어나온 뭔가

 

꽃같이 생긴 그림!!!!!

 

 

 

저걸 보통 석류동

 

이라고 하는데요.

 

 


여튼 나가원 머리초의 석류동은

 

봉정사 극락전이나...

 

조선시대 석류동이 아닌.....

 

 

 


수덕사 고려시대 후기 단청의

 

석류동하고 훨씬 가까운

 

뉘앙스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나가원의 단청은

 

최소! 아무리 못해도!

 

 

고려 후기에 다시

 

그려진 느낌이 강합니다.

 

봉정사 극락전 출토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적용한 청자기와 누각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이 많아서

 

저 개인적으로는~

 

 

 

나가원 단청을

 

고려시대 초기

 

단청을 보고 그린...

 

 

 

고려시대 중기 or 고려말 단청으로

 

보고 있지만......

 

 


머리초 그림의

 

전체틀 자체는~

 

 

 

송나라 영조법식 머리초의 거의

 

모든 무늬를 차용했으므로.....

 

 

 

 

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단청 발전을 추측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전성기!

 

요나라를 물리친 동북아시아

 

최강의 나라!

 

 


고려 초기~초중기

 

시절 단청들 중에서는!

 

 

 


송나라 영조법식을

 

아주 제대로 수입한

 

단청이 거의 확실히 있었고!

 

 

 

이런 단청이 고려 전국토에

 

퍼져있던게 거의 확정적

 

이라고 생각해요.

 

 

봉정사는 경상도에 있고

 

나가원은 서울에 있고...

 

 


서로 거리가 꽤나 있는데 둘다

 

영조법식 단청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수입된 단청들이

 

조금씩 로컬 타입으로

 

변해갔을 것 입니다!!!

 

 

 

 

고려 중반기쯤 되면~

 

 

 


영조법식의 색감과 모습을

 

약간씩 고려 로컬 타입으로

 

변형시킨 단청들이...

 

 

 

 

서서히 퍼져나가서, 로컬 타입


단청이 많이 퍼지게 됫을것!

 

 

 

이라는게

 

저만의 생각 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진관사 나가원 머리초 단청은~

 

 

 

1100년대 영조법식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나가원의 단청은

 

고려초 단청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림 그리는 그림 방식은

 

고려시대 중기 or 고려말

 

방식인데........

 

 

 

왜! 제가!!!!!!!

 

 

 

고려시대 초기~(1100년대 土 )

 

단청으로 봐도 된다고~

 

주장을 하는지!!!!!!!

 

 

 

조금더~

 

더 세세하게 알아봅시다!

 

봉정사 극락전 12세기 단청 오리지널 버전

 

 

이번에는 우리나라

 

건물에 그려진 실제 단청중에서

 

 


가~~~~~~~~~~~~장

 

오~~~~~~~~~~~~래된 단청인

 

봉정사 극락전 단청!

 

 


봉정사 극락전 단청하고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단청이라서~!

 

 

 

가장 비교하기 좋은

 

상대 입니다!

 

1층은 봉정사 출토 12세기 머리초 단청, 2층은 진관사 나가원 머리초를 적용해봤습니다.

 

 

 

진관사 나가원의 단청들을

 

제가 다시 그려서~~~

 

 

 

2층 창방과 기둥에만

 

적용을 했습니다.

 

 

 

그외 수상 전각의

 

모든 가구들은~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굴된

 

머리초들만 적용시켜서

 

구현을 해봤습니다.

 

 

 

 

파랑색 부분이 나가원 머리초.

 

그 외에는 전부 봉정사 극락전

 

머리초 입니다.

 

 

 

 

뭔가 확실히 다르죠?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은

 

영조법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늬들로 구성된,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실제 건축물에 도채된

 

가장 오래된 단청인데요!

 

 

 


바로 이게

 

중요한 포인트!

 

 


봉정사 극락전 출토 단청은

 

대체적으로 영조법식 무늬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만,

 

 

 

머리초 만큼은 영조법식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패턴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1100년대 영조법식 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단청들이...

 

 

 

이래저래 뒤섞여 있는게

 

봉정사 극락전 단청.

 

 

( 극락전의 단청은, 때때로 통일신라 단청하고도 유사함 )

 

 

 

 

 

그래서~

 

나가원 단청중에서~

 

머리초 단청만 비교하자면,

 

 

 

 

봉정사 극락전 단청은 의외로


나가원의 머리초 보다

 

시대가 약간 앞서있는,

 

 

 


고려 초기 보다는

 

고려 중반기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느낌 입니다.

 

 


초록색을 무지하게 사용

 

했다는 점도 그렇구요.

 

 

 

나가원 단청이 훨씬

 

오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 이죠.

 

 


그것을 더더욱

 

자세하게 봅시다!

 

송나라 영조법식 머리초 단청
북한산 진관사 나가원 건축물에 도채된 머리초

 

 

 

이렇게만 보셔도...

 

 

 

송나라 영조법식에

 

훨씬 가까운게 진관사

 

나가원 머리초 입니다.

 

 

 

신기하지요!?

 

 


서울 한복판에,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이 찾는 북한산에!

 

 

 

거기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삼각산 진관사에......

 

 

 

 

봉정사 극락전보다

 

약간 더 시대가 앞서는 타입의...

 

단청이 존재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근데 그게 그냥 있는거도 아니고

 

남들 다 보라고! 아주 제대로!

 

그려져 있읍니다!

 

 

 

 

...............

 

 

 

 

세세하게 뜯어보면 당연히

 

나가원 단청도 사실 거의

 

비슷한 시대에 그려진 것 같지만,

 

 


나가원의 단청들이

 

봉정사 단청들 보다

 

조금 더 오래되어 보이는게 사실 입니다.

 

 

 

 

 

 

 진관사 나가원의 단청은

 

사실 머리초만 고려시대

 

단청이 아닙니다!

 

 

 

기둥 단청 또한

 

엄청난....................

 

 

 

11세기 단청하고 상당히

 

겹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기둥 맨윗쪽 단청 - 주의초 )

 


자,

 

 


그냥 일단 그림으로

 

한번 봅시다!

 

요나라 고분 ( 10~11세기 )

 

나가원 주의초는 비록 흔하지만, 11세기 거란의 단청하고 상당히 흡사합니다.

 

 

여러분,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보시면 느끼실겁니다.

 


윗쪽의 사진은

 

거란 고분 출토

 

기둥 단청 입니다.

 

 


거란은 송나라의

 

제도를 많이 수입했지요.

 

 

 

그런 거란의 기둥 단청 패턴이...

 

뭐 사실 쪼금 다르기는 하지만,

 

 

 

기둥에 그리는 무늬들이

 

나가원의 기둥 머리초하고~

 

 

 

상당히 비슷한 방식의

 

그림들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거란의 기둥단청을

 

보시면 중간에 띠 같은걸

 

그려넣었지요!?

 

 

 

재미있게도 나가원의

 

기둥단청에 그린 띠 같은것들도....

 

 


비록 꽤나 다르게 생겼지만

 

띠 속에 둥근 무늬들을

 

넣었다거나,

 

 

 

선과 띠가 비슷한 수량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선을 기준으로

 

위, 아래로 무늬들이

 

펼쳐진다는 점!

 

 

 

이렇듯~~~~~~~~~~~

 

 

 

나가원 머리초는

 

고식 머리초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덕사 문 입구의 드림주의초

 

진관사 나가원 기둥 주의초

물론!!!!!!!!!!!

 

 


그림의 패턴, 세부 무늬, 전개

 

등등을 자세히 따져본다면,

 

 

나가원의 단청이 조금더

 

발전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나가원의 기둥 단청은 거란의

 

주의초와 꽤나 흡사합니다만,

 

 

 

봉정사 머리초하고

 

비교를 자세히 해보시면...

 

 

 

단청 무늬 전개는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

 

방식 또한 섞여있습니다.

 

 

 

만.....사실..........

 

 

 

나가원의 머리초 단청만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기둥 윗쪽에

 

그리는 단청은,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둥 윗쪽에

 

그리는 주의초는,

 

 

단청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우리나라 단청중에서

 

가장 오래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단청 입니다.

 

 


특히!!!!!!!!!!!!

 

 


작은 비단을 기둥에

 

두른듯한 기둥 단청은...!!

(드림주의초)

 


900년대

 

기둥 단청하고도

 

굉장히 비슷하죠!

 

900년대 송나라 단청. 기둥 단청을 잘 보세요! 조선시대 드림주의초 하고 매우 비슷하지요?

 

고산사 대웅전! 기둥 단청을 보시면 900년대 송나라 기둥단청과 흡사!

 

 

 

이렇듯,

 

 

조선시대 단청중에

 

가장 옛모습을 지닌것이

 

기둥 맨윗쪽에 그리는 주의초 단청 계열!

 

 

 

나가원의 주의초 단청 타입은

 

비록 꽤나 흔하지만~

 

 


하필이면 고려초기 타입의

 

단청이 그려진 건물에

 

그려진 기둥 단청!!!!!!

 

 

 

근데 이게 거란의 단청하고

 

상당히 닮아있다는 것!

 

 

 

충분히 고려시대 단청을

 

기초로 주의초를 그렸다!

 

라고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입니다!

 

건물 전체에 "들기름"을 바르면, 거의 이러한 색감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또 있습니다!

 


진관사 나가원은 건축물은

 

조선시대 건물이 맞기는

 

합니다.

 

 


확실하게 조선시대때

 

만들어진 건축물이기는 한데....

 

 


꽤~~~~~~~~~~~~~~나

 

미묘하게도!

 

 


나름대로 고려시대의 요소가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려시대 2.5층 청자기와 건축물

 

 

나가원의 측면은 3칸이고,

 

협칸들은 창문이 설치되어 있고

 

출입문은 판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면 판문, 좌우측은 창문.

 

 


이 조합은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

 

이 시절 메인 건물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기본 양식 입니다!

 

남북국 시대 신라 종루

 

그러니까 각종 자료들을

 

토대로 확인할 수 있는~

 

 

 

삼국 or 통일신라 or 고려초

 

건물 양식이 어렴풋이나마

 

나가원에 적용되어 있다는 것!

 

 

 

그 기준을 보자면!

 

고레벨 건축물을 기준!

 

( 민가, 고관대작 가옥이 아닌..... 전각 수준급 건물 기준 )

 

 


우리나라 시대별

 

유행하는 출입문 설치

 

발전은 이런식으로 발전합니다!

 

 

 

삼국,통일신라,고려초반 => 정면: 판문 , 사이드: 창문

 

고려 중반 => 정면: 판문, 사이드: 창호문

 

조선시대 => 정면: 창호문, 사이드: 창호문

 

 


이런식으로

 

발전하는데요!

 

님들!

 

 

 

나가원은!

 

비록 측면이지만!

 

 


무려!

 

삼국, 통일신라, 고려초반

 

가장 많이 사용되었을걸로 추정되는...

 

 

 

정면 판문, 사이드 창문

 

양식을 고스란히 계승중 입니다!

 

 

 

이 모습은 부석사 무량수전

 

하고 그대로 교차검증 됩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뒷면 도면 출저: www.hanokschool.biz

 

실제 부석사 무량수전 뒷면. 판문에 수직창문. 매우 고식입니다! 출저: digerati.aks.ac.kr

 

 

진관사 나가원 건물의 측면 모습

 

 

부석사 무량수전 뒷편은

 

남북국시대 신라 건물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판문에 수직창!

 

 


이게 그대로 남아있는~

 

실존 건물로써 우리나라

 

출입문 양식중에서 가~~~~~~~~장!

 

 


오래된 양식을 보유하고

 

있는게 무량수전 입니다.

 

 


왜냐!? 통일신라 전돌에

 

그려진 통일신라 전각하고

 

양식이 거의 똑같으니까요!

 

신라시대 전각. 판문과 수직창문이 있는 모습 입니다.

 

 

이거보셈!

 

통일신라 건축 전돌이셈!

 

 

 

부석사 무량수전은

 

대놓고 통일신라 모습이셈!

 

 

 

 

여튼 뭐 이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출입문

 

방식을 보유한 부석사 무량수전

 

뒷편 출입문 양식을......

 

 


진관사 나가원은 비록 측면이지만,

 

비록 조선시대때 만들어졌지만...

 

 


틀 자체를 어느정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조선시대 궁궐 건물의 서까래 위에 올리는 판을 자세히 보시면, 대부분이 하얀색 입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서까래 판도 붉은색 입니다!

출저: http://cha.go.kr 

 

봉정사 극락전의 서까래 판 또한 붉은색 입니다!

출저: www.hanokschool.biz/

 

 


그리고!

 

서까래에 올리는 나무 받침판

 

색상 또한 의심을 가게 만듭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선시대때는 서까래에 올리는

 

나무판 색상은 하얀색 입니다.

 

 


그러나!

 

 

실존하는 고려시대 건물들은

 

거의 모두가 서까래에 올리는

 

나무판의 색깔 => 붉은색 계열 입니다!

 

 

 

색이... 이게...뭐라고 표현하기 좀

 

애매해서 그냥 붉은색 이라고

 

하겠습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실제 고려시대 건물들에서

 

보이는 붉은색 계열의...

 

 


서까래 위에 올리는 나무판 색상!

 

진관사 나가원도 똑같습니다!

 

 


사실 저런색은 사찰 건물들에서

 

자주 사용하기는 합니다만...

 

 


조선시대 양식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서까래 판을

 

분명 하얀색으로 칠했을탠데!

 

 

 

진관사 나가원은!

 

수많은 건축 기법이...

 

 

고려시대하고

 

연관이 되어있는데!

 

 

 

서까래 나무판까지

 

실존 고려시대 건축물들 하고

 

색깔이 똑같다는 점!

 

 

나가원...참으로 이상할 정도로

 

고려시대 방식들이 녹아있습니다.

 

 

 

이래서 의심을 안 할수가

 

없는 것 입니다!

 

진관사 나가원 출토 고려시대 머리초와, 봉정사 극락전 출토 고려시대 머리초를 비교해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관사 나가원 단청이 왜

 

고려초 단청으로 생각할 수

 

있느냐!

 

 

이 주장에 대한 증거를

 

또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중국 송나라 고분. 소로와 주두가 색만 다르지 봉정사 극락전 고려단청과 양식이 같습니다.

 

 

여러분!

 


일반적으로는

 

조선시대 단청하면

 

초록색만 생각하지만!

 

 


나가원및 각종 건축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늘색-파랑색의 중간색...

 

중간 파랑색을 사용하는

 

건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근데 ! 님들! 사진보면 아시겠죠!?

 

 


이 중간 파랑색!

 

이게 송나라 고분부터

 

벌써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근데 송나라 고분의 단청이

 

더 짙은 색 이지요?

 

 


네...사실 조금 다릅니다만

 

여튼 같은 계열의 색상을

 

나가원에서 사용하고 있죠!

 

 

 

 

왜 제가 같은 계열의

 

색상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하느냐!!!!!!!!!

 

 

 


왜냐면!!!!!!

 

진관사 나가원 단청에

 

들기름을 바르면......

 

 


훨씬 밝았던 색상이,

 

꽤나 짙게 색이 변합니다.

 

 

단청에 들기름을 바른 고려시대 흑유와 수상 전각

 


단청에 들기름을 바르는 것은

 

고려시대 부터 있었을 것으로

 

예상을 하거든요.

 

 


들기름칠을 하니까

 

더더더더더더욱!!!!!

 

훨훨훨훨훨훨훻ㄹ씬!!!!!!!!!

 

 

 

송나라 색감하고

 

비슷하게 바뀌었죠

!?!
!?!?!?

 

 

 

11세기 송나라 왕족

 

고분에서 사용하던 색상을!

 

 


진관사 나가원은

 

단청의 메인 색상으로~

 

 


사용을 하고 있는것을

 

여러분의 눈으로 확인하고

 

계시는 겁니다!!!!!!!!!!!!

 

 

................

 

 

 

그런데 뭐다!?!?!?!?!?!?!?!?!?!

 


나가원은 단청 모습마저

 

송나라 하고 거의 똑같은데!!!!!!!!

 

 


건물양식 마저 고려초 모습을

 

약간이나마 가지고 있다!!!!!!

 

 


단청 모습도, 색상도...

 

건축 양식 일부분 마저......

 

고려하고 너무 근접합니다.

 

 

 


이런걸 봣을때...

 

 

 


나가원의 단청은 고려시대 초기!

 

단청일 가능성이 굉장히

 

큰 것 입니다!!!!!!!!!

 

 

 

12세기하고 연관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입니다~!

 

 

음영이 지면 송나라 고분하고 색감이 매우 비슷해지는 진관사 나가원!

 

 

이렇듯!!!!!!!

 

진관사 나가원은!!!!!!!!

 

 


고려 후기 단청이라고 하기에는

 

의외로 1100년대 송나라 라던가...

 

 

 

고려 초~중반기 자료들하고 매우

 

많은 면에서 교차검증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마냥 고려 후기에

 

고려초 단청을 따라 그린거다!

 

 

 

라고 쉽게 단정 할 수 없는...

 

그러한 굉장히 중요하디 중요한

 

단청입니다.

 

 

이렇게 서울도심 한복판에서

 

실제 고려시대 단청이 도채된

 

건축물을...

 

 

 

 

실제로 찾아내서 너무나

 

기분이 좋네요!

 

 

 

설령 제가 처음 발견한건

 

아닐지언정,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국내 최초로! 서울에 있는

 

고려시대 단청 건축물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그려서

 

누구나 쉽게 고려시대 단청을~

 

 


그 누구나 언제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건물이라는

 

것도 참으로 좋습니다!

 

 

 

*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

 

 


사실 진관사 나가원 단청은

 

1960년인가? 1990년대인가?

 

 

 

단청을 다시 그린게 맞습니다.

 

근데 이 단청을 다시 그린건지,

 

기존의 단청을 보고 그린건진...

 

 

 

아직 알려진게 없습니다.

 

그래서 단청장이 갑자기......

 

 

 

"킄...ㅋ킄ㅋㅋㅋㅋㅋㅋ 송나라 단청을 한번쯤 그려보고시팓!!!!!!!!!!!! "

 

 


이라면서 미친짓을 했을

 

가능성도 사실 존재합니다.

 

 

 

그러나 단청의 기본 색상이

 

초록색이 아닌 옅은 파랑색!

 

 

 

그리고 그 색상은 송나라

 

고분하고도 교차검증이

 

된다는 점!!!!!!

 

 


이런거까지...단청장이

 

확인했을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푸른색 단청의 송나라 고분

 

자체가 꽤나 최근에 발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단청장 선생님들!

 

그렇게 막 가볍고 막나가는

 

분들이 절대 아니라는 점!

 

 


우리나라는 전통 건축을

 

새로이 만들때도...

 

 

 

최대한 고증및 전통방식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최대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식을 고수하며.....

 

 

 

전통을 미칠듯이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

 

이런점들을 미루어 볼때,

 

 


우리나라의 훌륭하신

 

단청장 선생님들이...

 

 

 

저런 말도안되는

 

장난질을.....했을거

 

같지도 않고!!!!!!!!!

 

 


우리나라 전통건축및

 

사찰 건물 만드는

 

과정만 봐도.....

 

 

 

그냥 별 이유없이!

 

그냥 그리고 싶어서!

 

 

 

무작정 송나라 영조법식을

 

보고 그대로 그렸을 가능성은...

 

 

 

그다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조선 중기까지 물 한가운데 설치한 수상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게다가 나가원 건물

 

자체적으로도...

 

 

 

고려시대 여러가지

 

자료들과 교차검증도

 

되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래서....저는.....!!

 

나가원의 단청은 실제

 

고려시대 단청을 보고 그린!

 

 

 


우리의!

 

고려시대 단청이 맞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 만일 단청장이 그냥 송나라 단청을 그리고 싶어서 그린거면, 이 글은 지우겠습니다!!!!!!!!! )

 

 

 

 

여튼 제가 발굴하여 최초로 소개한

 

진관사 나가원 고려시대 단청이.....!

 

 

 

우리나라 단청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긍정적인

 

사건이 되길 기대합니다!

 

 


석사, 박사, 연구진 분들께서

 

저보다 더더욱 자세한 연구를

 

해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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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 고려시대 버전을

 

만들어 보려고 나름 연구하다보니,

 

 

 

연구진들이 마음먹고 수덕사

 

대웅전 고려시대 단청을 연구하면,

 

 

 

매우 좋은 결과가 있을것 같고

 

진짜 수덕사 대웅전 고려시대

 

색감도 알아낼 수 있을것 같아서,

 

 

 

수덕사 대웅전 고려시대 버전

 

복원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전문 연구진들의 연구가 있을때 까지요 ~! )

 

 

 

그럼 이제 수덕사 대웅전에 남아있는

 

실제 1308년 고려후기 단청을 보겠습니다.

 

 

 

 

 

이 3가지 그림이 실제 수덕사

 

대웅전에 남아있는, 수덕사가

 

처음 만들어진 1308년에...

 

 

 

고려후기때 그려진 고려후기

 

단청으로 추정되는 단청 입니다.

 

 

 

 

 

이 그림들을 기준으로 해서...

 

수덕사 대웅전 고려시대 단청을

 

일단 제가 연구한 만큼 최대한,

 

 

 

수덕사 고려시대 단청을

 

복원하게 된 것 입니다.

 

 

 

단청 복원한 다음에

 

기존에 있던 팔작지붕

 

건물에 적용시켜봤습니다.

 

 

 

 


수덕사 고려시대 단청은

 

거의다 지워진 상태지만,

 

 

색감과 단청의 패턴은

 

명나라 / 원나라 / 조선시대

 

단청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308년 고려후기 단청

 

13세기 원나라단청. 1298년 원대묘

 

 

15세기 즈음의 명나라 단청

 

17세기 조선시대 중기 창경궁 문정전 단청

 

 

 

수덕사 1308년

 

고려후기 단청하고...

 

 

조선, 명나라 , 원나라 단청을

 

그냥 보면서 비교해도 거의 비슷하죠?

 

 

 

이러한 사실을 필두로

 

수덕사 대웅전 1308년 단청을...

 

제 나름대로 연구하며 복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원한 청자기와

 

고려시대 건물은, 외벽이 흰색이죠?

 

 

 

 

 

많은 사람들이 하얀색벽은

 

고려, 조선때는 아예 사용하지

 

않은걸로 많이들 생각하시는데요!

 

 

 

하얀색 벽은 조선시대때

 

정~~~~~~말 주구장창 사용해서

 

전혀 문제될것이 없어서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흑칠 기둥과 그외

 

목부재는 적갈색을 적용했어요.

 

 

 

보통 기둥에 흑칠을 칠한다면

 

건물 전체를 전부다 흑칠이다!

 

이라고 생각하실수도 있지만...

 

 

 

 

그러나 남아있는 거의 모든

 

고려시대 + 조선시대 자료에서...

 

 

 

기둥이 검정색일 경우라도

 

건물 채색을 이렇게 합니다.

 

 

 

 

기둥이 검정색 이더라도

 

나머지 부위들은 적갈색 ,

 

창문같은 경우만 붉은색 or 초록색

 

 

 

 

이게 공식 입니다. 의외로

 

건물전체를 검게 칠하는건

 

우리나라에선 드물었나 봅니다.

 

 

( 건물전체를 검게 칠하는 자료가 고려/조선에선 아예 없어여...)

 

 

1630년대 임오사마방회첩, 기둥이 흑칠인데 창문은 초록색, 문지방은 적갈색이다.

 

 

 

그래서

 

건물기둥이 흑칠이거나

 

짙은 갈색의 기둥일지라도,

 

 

 

나머지 부위는 붉은 적갈색을

 

적용하는게 고증에 부합합니다.

 

 

 

 

 

근접해서 보면 이런 느낌 입니다.

 

뭔가 조선시대 같은데 조선시대

 

같지 않은 느낌이죠?

 

 

 

 

제 느낌상 조선시대 단청보다

 

뭐랄까 훨씬 차분하고

 

고급지다고 해야되나?

 

 

 

적당히 무게감 있고

 

파랑, 붉은색의 포인트를 잘 살려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많이 드는것 같아요.

 

 

18~19세기 조선시대 궁궐 단청.

 

 

 

실제 19세기 조선시대 단청하고

 

직접 보며 비교를 해본다면...

 

 

 

뭔가 굉장히 컬러풀하고

 

초록색인 조선시대 단청하고...

 

 

 

굉장히 비슷한데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일 겁니다. 좀 더 차분한 느낌이랄까요?

 

 

 


이번에는 가장 일반적인

 

노랑색 벽을 사용해봤습니다.

 

노랑색 벽은 이런 느낌입니다.

 

 

 

 

그런데 단청 색상이

 

조선시대와 전~~혀 다른!

 

 

 

짙은 회색빛이죠?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단청 색상은 임천 선생님의

 

모사도 색상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임천 선생님의 모사도는

 

너무 오래됬고, 사진마다

 

단청마다 색상이 다르기 때문에~

 

 

 

보고서 보신 분들 대부분은

 

임천 모사도는 진짜 색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실수도 있습니다만~!

 

 

 

 

임천 선생님 모사본 색감은

 

실제 청경궁 단청에서 보여주는

 

색감하고 거의 같습니다. 충분히...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색감이라

 

색감 판독에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임천 선생님의

 

모사도가 색이 너무나 진하고

 

어두워서...

 

 

이게 진짜 맞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재 창경궁 문정전 근방의 단청은, 임청모사도 색감하고 굉장히 비슷하다.

 

 

 

계속 사진을 보면서

 

나름 연구하다보니...

 

 

 

임천 선생님의 고려시대 단청

 

모사도가 실제와 같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고,

 

 

 

단청 색깔도 아주 정확히

 

표현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수덕사 대웅전 출토 고려시대 단청 - 색상은 임천선생 모사도 그대로 사용했다.
명나라 단청

 

 


이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 두번째!

 

 

명나라 단청의 계풍을 보세요!

 

( 계풍 : 풀무늬 오른쪽 빈공간 )

 

 

 

일반적인 녹색이 아니라

 

뭔가 짙은 회색 입니다.

 

 

 

수덕사 고려시대 단청은

 

수덕사가 개창된 고려후기

 

1308년대 단청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1308년 수덕사 개창시기 추정, 고려후기 단청. 계풍이 짙은 회색에 가까운 녹색이다.

 

 

16세기 즈음의 명나라 단청



 

그런데 비슷한 시기의

 

명나라는 임천 선생님의

 

모사도하고 상당히 비슷한~!

 

 

 

초록색이 아닌 매우 짙은

 

회색계열의 색상을 사용한겁니다!

 

 



 

( 수덕사 단청 재현 보고서 비교샷 )


* 참고로 고려시대 단청 윗쪽에 16세기 조선시대 단청이 덧발라져
서로 겹쳐있습니다. 그래서 색상, 무늬를 제대로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

 

 

 

 

게다가 일반적인 조선시대

 

단청은 2빛을 주로 사용하는데,

 

 

 

수덕사 출토 고려시대 단청은

 

명나라와 같은 3빛을 사용합니다.

 

그라데이션 빛 또한 명나라와 교차검증 성공!

 

 



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로

 

수덕사 내부에 남아있는 단청들이

 

전부 퇴색되서 알기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전부 다 지워지기전에

 

임천 선생님이 그려둔 모사도가...

 

 

 

실제 예상 색감보다는

 

색이 굉장히 어둡고 진해도,

 

 

 

나름 이유들이 많아서

 

저는 나름 신빙성이 높고

 

정확한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반적으로

 

단청 색상이 훨씬 밝은색일

 

가능성도 상당히 큽니다.

 

 

 

모사도가 아니라

 

실제로 목부재에 남아있는

 

고려 단청을 확인하면 그렇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에 실제로

 

아직까지 채색이 약간 남아있는...

 

 

 

1308년 추정 고려시대 단청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의외지만...

 

 

 

임천선생 모사도 하고

 

조금 다른 색감입니다.

 

 

 

되려 하중도리 배경색 부분이

 

매우 밝은 회색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실제 1308년 고려시대

 

수덕사 대웅전 단청같은 경우는,

 

 

 

임천 모사도와는 다르게

 

밝은 하늘색 ~ 회색의 중간쯤?

 

되는 색상이 메인일수도 있습니다.

 

 

14세기 수덕사 대웅전의 고려후기 단청. 실제로는 이렇게 좀 더 밝은색일수도 있다.

 

 

 

근데 이런 색감을 전문 연구기관에서

 

전혀 연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지금은 이렇게 추정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알고 계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조선시대는 마냥 초록색만

 

사용할거라 생각하시지만!

 

 

 

완전한 회색은 아니지만...

 

다른곳도 아닌 창경궁 문정전에

 

이 회색 단청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회색은 아니고...

 

약간 하늘색 뇌록이 색이

 

빠져서 회색으로 보이는데요,

 

 

창경궁 통명전 창호문 또한 살짝 회색빛 초록색을 띄고있다.

 

 

 

특히 창호문은 창경궁에

 

직접가서 확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문정전및 각종 전각들의 창호문은

 

녹색이 아~~~쥬 쬐끔 섞인 옅은

 

회색 입니다. ( 뇌록이지만요 )

 

 

 

 

 

하여튼...

 

일반 조선시대와 다른

 

3빛 그라데이션 기법 이라던가,

 

 

 

일반 조선시대 단청과 다른

 

특이한 방식의 머리초 방식,

 

 

 

색깔 또한 명나라 단청하고

 

일치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1308년대 수덕사 내부 고려후기 단청은

 

저보다 실사자료를 더 확실히 접할 수 있는...

 

 

 

전문 연구진들의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 입니다.

 

 

수덕사 출토 고려시대 단청

 

 

 

또한...

 

 

수덕사 고려시대 단청이 실제로

 

임천 선생님 모사도와 색감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면,

 

 

 

기존 학설을 어느정도는

 

수정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 학설은 바로 이것 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록하단 전통건축물

 

 


고려후기 부터는 상록하단만

 

있었고, 상록하단만 유행했고!

 

건물 대부분이 초록색이었다!!!!!!!!

 

 


라는 기존의 학설을...

 

 


수덕사 고려시대 단청이 확실하게

 

바꿔버릴 수 있는 상황 입니다.

 

 

1308년 수덕사 개창시기 추정, 고려후기 단청. 계풍이 짙은 회색에 가까운 녹색이다.

 

 

 

왜냐하면 임천 모사도에

 

채색된 색깔은 초록색이

 

아니라...

 

 

초록색이 약간섞인 회색으로

 

계풍이 채색되었는데 , 이게

 

조선시대 모습하고 다른겁니다.

 

 

전혀 일반적인 상록하단

 

색감이 아니라는 뜻 입니다!

 

 

 

 

 

이걸 뒷받침 하는 증거가

 

바로 수덕사 대웅전 하중도리 장여!

 

 

 

위에서도 봤지만 1308년 고려후기

 

단청으로 추정되는 이 단청도안의...

 

 

 

배경 색상도 밝은 회색빛을 띄고

 

있기 때문에, 고려후기 단청은 되려...

 

 

 

상록하단이 아니라 밝은 회색빛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선시대 궁궐 단청

 

 

 

고려시대는 초록색만 칠한 단청,

 

당연히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만!

 

 

 

오로지 초록색 범벅 만땅칠 단청만

 

있던게 절~~~~~~~~대 아니라는 것이죠~!!!

 

 

 

그 중요한 사실을

 

수덕사 대웅전으로 인하여

 

확인될 수 있는 상황인 것 입니다.

 

 

 

 

임천 모사도가 만일 답이 아니더라도,

 

제가 만든 작품 색감은 진짜라고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전통 안료 단청에

 

동유 기름을 인두로 지져서

 

기름칠을 한 단청으로 생각해주세요.

 

 

 

동유기름 인두질 해서 칠하면

 

전통 뇌록같은 경우 굉장히

 

어둡고 짙은 회색이 됩니다.

 

 

 

 

숭례문을 가보시면 실제 동유칠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색감이

 

거의 검정색에 가깝습니다.

 

 

숭례문 단청은 가까이에서 보면

 

되게 짙은 초록색을 보여줍니다.

 

 

 

번외편 - 수덕사 대웅전 내부 조선시대 초기 단청

 

 

 

수덕사 출토 16세기 조선시대 단청을 적용하면, 이런 느낌 입니다. 샘플이라 완벽하진 않습니다.

 

 

 

이거 아시나요?

 

 

수덕사 대웅전 내부에 그려진

 

단청은 , 고려시대 단청만이

 

존재했던게 아닙니다!

 

 

 

그 고려후기 단청 위에다가

 

조선시대 단청을 덧발랐는데요,

 

그 단청은 이런 모습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에는 1308년

 

사찰 개창시기 고려후기

 

단청만 있는게 아니라...

 

 

 

1528년 수덕사 대웅전 수리할때

 

같이 채색한걸로 추측되는... 조선

 

단청이 아주 잔뜩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 단청은

 

아예 상백하단~!

 

 

 

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희뿌연 색상들이 주류 입니다.

 

 

임진왜란 이전, 조선초기 단청을 고려시대 건물에 적용했어요.

수덕사 출토 임란이전 단청과, 각종 조선시대 단청을 수덕사 단청색으로 바꿔서 적용하면 이런 모습!

 

 

 

희뿌연 색깔과 하늘색이

 

거의 주된 색상으로써,

 

 


지금의 조선시대하고

 

색상 느낌이 꽤 다른편이죠.

 

 

 

이 단청은 원나라 단청하고

 

나름 색상이 비슷합니다.

 

 

13세기 원나라, 1298년 원대묘

 

 

 

원나라 단청은 흰색과 하늘색

 

혹은 흰색과 옅은 초록색 조합

 

등등...

 

 

흰색과 조합이 되는

 

단청을 꽤나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 입니다.

 

 

1200년대 원나라 고분벽화 복원도

 

 


수덕사 대웅전은

 

실제 고려시대 단청만

 

보유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원나라에서 유입된 백색 위주의

 

단청이 고려시대때 있었을 것이다!

 

라는 추측을 가능케 해주는~

 

 

 

단청 발전사의 한축을 담당하는

 

독특한 색감의 희뿌연 단청같은...

 

연결고리 단청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말선초쯤 우리나라는

 

무조건적 초록색 단청이

 

아닌, 전체적으로는 밝고 푸르지만~

 

 

 

백색, 하늘색, 짙은회색 등등

 

다양한 색감의 단청을 사용했다!


라고 유추를 할 수 있습니다.

 

 

 

고려후기 부터는 무조건 초록색

 

상록하단 단청만 유행했다! 라는

 

주장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이렇듯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 고려후기 단청뿐만 아니라...

 

 

꽤나 특별하게 생긴 1528년 즈음의

 

조선시대 초기 단청도 보유하고 있어요.

 

 

 

1528년 조선시대 초기에

 

그려진 뭔가 희뿌연 누렁빛 단청은...

 

 

 

고려 후기 있었을법한 단청까지 유추

 

가능하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단청입니다.

 

 

1528년 단청을 적용한 고려시대 누각. 이런 단청은 고려때 이미 수입되었을 가능성이 꽤 높다.

 

 

수덕사 고려시대 단청은 거의

 

전부 퇴색된 상태나 다름없어서,

 

 

 

아주 자세한 정밀한 내용까지

 

개인은 사실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이상 자세한 내용은 실사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실제 연구단이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그러니 연구진들의 더욱 심도있는

 

연구가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광고도 한번씩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 드리겠습니다!

 

 

 

 

 

 

 

 

 

###################### 11줄 요약 ######################

 

 

- 수덕사 대웅전 내부에

 

고려시대 단청이 조금 남아있다.

 

 

- 이걸 임천 선생님이 모사했다.

 

 

- 그런데 모사도가 너무 색이 진하고 어둡다.

 

 

- 그래서 모사도 색깔이 틀린것으로 알려져있다.

 

 

- 그러나 외국자료와 색감이 여러모로 교차검증 된다.

 

 

- 단청 방식도 그라데이션을 3컬러로 쓰는데다

 

단청모양 자체가 조선시대와 꽤나 다르다.

 

 

-  이런 사실들로 인하여 임천

 

모사도가 정답일 확률이 있다.

 

 

- 그리고 수덕사 단청은 조선시대

 

단청마저 원나라 시절과 꽤나 흡사하다.

 

 

- 수덕사 단청으로 인해 여말여초 쯤 단청은

 

초록색만 사용했다는 기존의 가설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 연구자들의 깊은 연구로 기존의

 

가설이 바뀔수 있는 상황이다.

 

 

- 기존의 여말선초 단청은

 

거의 대다수가 원나라로 인하여

 

초록색or 푸른색만 사용했다! 에서~

 

 

여말선초 단청은 희뿌연 색, 어두운 짙은색 등등

 

지금보다 월등히 다채로운 색감의 단청이 존재했다!

 

라는 내용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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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지껏 만든 고려시대 건물을

 

활용해서 고려시대 2층 누각을 만들어봤어요.

 

 

 

보시는 분들 돈 많이 버시라고

 

배산임수로 만들어 봤읍니다!!!

 

 

고려시대는 건물 조차도

 

돈이 들어오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왜냐!

 

 

 

청자 : 물

 

황금 어룡: 물고기 잉어 같은거

 

 

 

지붕부터 이미 물에서 물고기가 노니는 형상이라

 

이거야 말로 돈을 부르는 디자인 이에요.

 

이거 보시는 분들 돈 많이 벌기를!

 

 

 

이거 보는 분들 집으로 돈 많이 들어오라고

 

문으로 들어가는 잉어를 만들어 봤어요!

 

 

 

 

2층은 조선 초기까지는 있다가

 

사실상 소멸되고 있는 있는 중인

 

평좌층 받침대 누각 양식을 적용했습니다.

 

 

 

자세히 보세요. 2층 난간 아래에 브라켓들이

 

받쳐주고 있죠? 저기는 비어있는 계단칸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이 양식은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그럭저럭

 

사용됬을 법한 양식인데, 조선 후기쯤되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되는 양식 입니다.

 

 

일본 묘만지 소장 고려 관경십육관도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 이렇게 쉽게

 

발된 되는 양식인데,

 

 

아랫쪽을 포작 (브라켓 )

 

구성해서 잡고 있어요. 그리고 잘 보세요!

 

 

조선시대 회화에서 2층 정자 아랫쪽을 포작과

 

두공층을 만들어서 잡는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있었던 양식으로

 

생각되는데, 아무래도 솔직하게 실용적이지

 

못한 양식이라서.....

 

 

 

목재가 부족한 조선 후기쯤부터는

 

엄청나게 퇴화되어버려서,

 



본래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양식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 계속적으로 나와요.

 

건축 양식이 되게 신기하죠?

 

 

 

고려 정자나 복층 건물 난간마루

 

아랫쪽을 브라켓 ( 첨차 / 두공 )

 

으로 잡는 건축양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을

 

가장 쉽게 구분해주는 건축양식

 

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양식을 실제 조선시대

 

건축에서 본 적 없으시죠!?

 

 

 

이 양식은 조선시대는 너무

 

너무 심하게 퇴화되다 보니까

 

이 모습을 유지하는 경우가 없어서...

 

 

 

우리에게는 그저 일본과 중국의

 

건축양식중 하나로만 느껴질 뿐입니다만,

 

 

 

고려시대 석탑에서 얼추 제대로 된

 

모을 확인할 수 있기는 합니다.

 

 

 

조선초 원각사지 십층석탑

 

고려후기 경천사지 십층석탑!

 

 

 

이 두가지 석탑에서 굉장히

 

쉽게 확인 가능한 양식이에요.

 

그냥 보면 알겠죠?

 

 

 

만든 방식하고 같은

 

난간 아랫쪽을 포작, 두공으로

 

잡는 양식을 아예 석탑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원각사지 10층 석탑. 세로 현판과 난간마루 아랫쪽을 브라켓으로 잡아주는 모습이 보인다.

 

 

 

고려시대 정자 그림이나

 

고려시대 누각 석탑만 봐도...

 

이렇게나 자료가 많거든요...?

 

 

 

근데 우리는 실제로 이런 건물을

 

본적이 없죠? 그래서 실제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래서 이런 우리의 사라진 건축 양식을

 

2층 누각을 만들어 본 거에요. 꽤 신선하죠?

 

 

 

고려시대 2층 건물 난간 아랫쪽의

 

보조층은 이게...  좀 애매모호한데...

 

 

 

사실상 3층이라고 봐도 무방한

 

그러한 2층 건축물 입니다.

 

 

 

저 보조층은 그...

 

 

 

아파트 에서 창문만 있고

 

윗층과 아랫층 중간에 있는

 

창문 있는 거기 있잖아요!

 

 

 

자전거 놓거나 창문열고 담배빵 때리는

 

중간층 있죠!? 딱 거기 위치임 저게.

 

난간 아랫쪽 칸은 0.5층 개념임.

 

 

 

 

실제로 있었고, 있었걸로 예상되는

 

금장식을 아주 과감하게 적용해봤음.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한국의 미 알죠??

 

소박하고 작고 검소하고...

 

 

 

청자기와, 금장식을 공격적으로

 

적용하면... 한국의 미는 완벽하게

 

다르게 변합니다. 아주 요란하고 화려하게.

 

 

 

 

 

고려시대는 초록색 창문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어서 초록 창문을 적용해 봤음다.

 

 

 

고려시대 그림 자료는 대부분

 

창문이 붉은색 이지만...

 

 

 

조선시대 창호문과 창문들

 

대다수가 초록색 이라는 점,

 

 

 

통일신라-헤이안 시대-당나라 시대

 

창문은 벽화나 고서화들만 봐도 대부분

 

초록색 이라는 점도 있어서 적용해봄.

 

 

 

그래서 붉은색과 초록색 창문이

 

고려시대 조차! 공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꽤나 큽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궁궐 창문을 봐도

 

붉은 창문과 초록색 창문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는

 

조선은 무조건 초록색만

 

사용 해야되는데,

 

 

 

의외로 붉은색 창문을 사용하며

 

이 모습은 조선시대 초기 불교회화랑 교차검증 됨.

 

 

조선시대 초기 회화 석가출가도/석가탄생도. 창덕궁 붉은 창문하고 교차검증 되고있다.

 

이건 조선 초기 불교회화인데

 

붉은색 창문이 보이죠?

 

 

 

불교 회화인데 의외로

 

실제 창덕궁 창문하고 교차 검증됨.

 

 

 

그래서 고려는 붉은색 창문이

 

가장 고증에 근접하지겠지만...

 

 

 

초록색 창문도 틀린건 아니야.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상태 입니다.

 

 

 

조선시대도 두가지 창문색을 사용했고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의 문화가

 

그냥 그대로 전승되었잖아요?

 

 

게다가 이미 삼국시대때

 

초록색 창문을 사용했을수도 있거든요...

 

 

이래서 고려시대 창문 색상은 두가지 모두

 

그렇게까지 틀린 상황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여튼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고려시대는 붉은색 창문하고

 

초록색 문이 공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봐요.

 

 

 

 

빗살무늬 난간 교란, 철화청자법수,

 

구리로 만든 꽃장식을 난간에 설치 해봤음.

 

 

 

고려시대 만월대 기록에 이런말이 적혀있어요.

 

" 난간에 구리로 만든 꽃을 장식했다! "

 

 

 

그 기록대로 난간에 구리꽃을

 

실제로 적용하면 이런 모습이었을 듯...?

 

 

청자 색상의 경우에는

 

이 암키와 색상이 햇빛에

 

비추었을때의 색감을 예상하여,

 

 

최대한 비슷하게 햇빛에 반사된

 

색감을 내보려고 지랄발광을 해봤읍니다...!

 

 

 

현판은 부석사 무량수전 현판을 사용해봤어요.

 

현판중에서는 가장 확실한 고려시대 현판이라

 

적용 해본거에요...!

 

 

부석사 무량수전의 현판 - 출저: 영주시청

 

 

그리고 용마루의

 

취두는 황금으로 만든

 

어룡 치미를 적용했봤어요.

 

 

( 치미: 지붕 가장 윗쪽 용 모양의 장식 )

 

 

 

우리나라 모든 시대 다 통틀어서

 

금과 은만 사용해서 만든 치미 or 취두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는...

 

 

 

오로지 고려밖에 없는데,

 

이유는 그림자료도 아주 많고...

 

 

 

고려사 43권 / 세가 권제43

 

여기에 정확한 기록이 있어서 입니다.

 

 

 

황금과 백은으로 취두를 만들었는데

 

황금 650냥과 백은 800냥이 들었다.

 

라는...

 

 

완벽한 사서 기록이 있어서 가능함!

 

황금으로 만든 용모양 취두는 기록에 존재했음다.

 

 

 

 

 

 

단청은 봉정사 극락전 출토

 

10~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적용 했어요.

 

 

 

실제 발굴된 단청 70%

 

발굴된 단청과 고려시대 단청 패턴을

 

이용하여 살짝 어레인지 한 단청 30% 정도.

 

 

 

 

그 시절 단청 전개방식에 맞게

 

색상만 적절히 어레인지 해서

 

고증선을 잘 지켜서 어레인지 했음.

 

 

이렇게 실제로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12세기 추정 고려시대 단청을 최대한

 

원본을 지키면서 적용해봤어요.

 

 

 

다만 단청 종류가 좀 적어서 어쩔수없이

 

어레인지를 좀 했음...그냥 단청 배경색

 

정도만 바꿨는데...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채색법에

 

의거해서 고증에 맞게 색을 바꿨음!

 

 

단청 색상은 전통적인

 

천연 안료색은 아니고,

 

 

 

봉정사 극락전 수리보고서에

 

수록된 색상 그대로를 사용 했음.

 

 

 

그래서 최근 사용되는 현대방식 안료를

 

사용하여 단청을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 거에요...!

 

 

그런데 기둥이 붉은 옻칠에

 

금색 나는 그림을 그린 기둥이죠!?

 

 

내가 왜 이런 기둥을 사용했는지 알려드릴게요.

 

생각보다 긍정인 상황이라서 꽤 재밌을거에요.

 

 

 

이 회화는 고려시대 불교 회화인데

 

일본 오타카지가 소장하고 있는

 

관경십육관도 입니다.

 

 

 

기둥을 보면 붉은 주칠에 금빛 동그란

 

무늬로 기둥단청을 칠했죠? 이거 보고...

 

이거 뭐 상상화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게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저 무늬를 단청으로 사용하긴 했어요.

 

 

여기는 조선궁궐 신선원전. 들보를

 

보면 그냥 한번에 이해 가능하죠?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 보이는

 

기둥단청 패턴이 색부터 모양까지!!!

 

아예 똑같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어요.

 

 

 

그래서 저 불교회화의 기둥 금단청이

 

꽤나 신빙성이 높아서 기둥단청 적용해봤어요.

 

 

 

순각판은 조선시대가 아닌

 

좀 더 그 시절에 맞는 방식으로 꾸며봤어요.

 

 

 

이러한 모양의 순각판은

 

완전한 자료는 없지만....

 

 

 

유추 정도는 할수 있어서

 

충분히 적용할수 있을거라 생각해서에요.

 

 

 

순각판: 서까래를 가려주는 보호막 같은것

 

( 저기 갈색나무 위에 초록,갈색 교차하는 바코드 처럼 생긴거 )

 

 

뾰족하게 튀어나온

 

칼날같은거 있죠?

 

그게 하앙이고.....

 

 

 

||||||| 이 무늬가 순각판 이에요.

 

 

 

그런데 사실은 실제로는

 

이런 모양의 순각판이 발견이 되었어요.

 

 

화암사의 하앙과 순각판. [ 순각판은 일반적으로 수평으로, 가로로 길쭉하게 설치한다. ]

 

 

 

 

일단은 화암사의 순각판과 하앙 모양을

 

베이스로 만들었는데, 어째서 저는 저런

 

그냥 일자 순각판이 아니라...

 

 

 

||||||||| 모양 순각판으로 만들었을까요?

 

이거는 각잡고 글쓰면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까 최대한 압축해서 써볼게요.

 

 

 

송광사 용화당의 세로 순각판. 일반적인 순각판과 다르게 [ 폭이 좁게 세로로 설치 했다. ]

 

 

 

일단 세로로 순각판을 설치하는

 

문화가 있었나? 한다면 이렇게...

 

 

 

송광사 용화당에 세로로 순각판을

 

설치하는 문화가 남아 있음. 송광사

 

말고도 간간히 발견되는 양식이에요.

 

 

 

그래서 일단은 세로로 설치하는게

 

크게 문제가 없는 상황이죠.

 

 

그리고 순각판은 아닌데

 

마치 순각판 같은 모양의

 

고미반자라는 천장 가리개가 있어요.

 

 

 

뭐 순각판은 아닌데 여튼

 

이런 일자 막대기를 천장에

 

설치하는 양식이 일단은 존재하며,

 

 

 

설치 목적도 순각판하고 거의

 

같은 목적이야. 이렇게 이름은 다르지만

 

순각판하고 거의 같은 양식이 남아있기는 해요.

 

 

북한 심원사의 세로 부자재. 하필이면 포작층 위에 있어서 더더욱 의심이 들게 한다.

 

 

 

 

여기는 심원사 보광전. 이 건물은

 

여러모로 고려양식을 유추할 수 있는

 

조선초 건물인데요, 저기 동그라미쪽을 봐 주세요.

 

 

 

한국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간격이 좁은 세로 부자재를...

 

 

 

마치 빗반자 마냥 설치한 모습이에요.

 

그렇다고 저게 빗반자는 아니고...!

 

 

봉정사 극락전 닫집. 포작위로 세로부자재를 설치했다. 심원사 보광전하고 똑같은 양식이다.

 

 

 

보통 저기다가 ||||||||||||| 이거 

 

설치하는건 거의 다 진짜로

 

고려후기 / 조선초기 건물들 이에요.

 

 

 

 

봉정사 대웅전의 닫집하고 그 외

 

고려후기 ~ 조선초 닫집들 극소수가

 

저런 세로 부자재를 설치합니다...

 

 

 

근데 저게 하필이면 브라켓 윗쪽에

 

있는게.... !!! 저 모습이 마치... !!!

 

 

현판 바로 윗쪽의 바코드 무늬가 순각판이다. 송나라 즈음의 양식이다.

 

 

일본건물의 순각판을 연상시키고 있어요.

 

처마 밑에 ||||||||||| 이거 자주 보이죠?

 

 

저게 송나라 양식이고

 

되게 오래된 양식이거든요?

 

 

결국 저게 고려시절 양식이란건데

 

한국에서는 비록 완전히 멸종했지만...

 

 

 

 

순각판을 세로로 설치하는 문화라던가

 

심원사 보광전의 포작층 윗쪽에 설치한

 

|||||||||||| 부자재가 있고....

 

 

 

||||||||||||| 양식은 고려후기 ~ 조선초

 

건물이나 닫집에만 설치하기도 하고...

 

 

 

사찰뿐만 아니라, 일반 한옥에서도

 

퇴칸이나 건물 천장을 이런 식으로...

 

 

 

비록 순각판이 아니지만 여튼

 

일자 모양의 막대기를 천장에

 

설치하는거도 그럭저럭 흔한 편이라...

 

 

 

 

 

그래서 고려시대는

 

충분히 일본/중국 같은

 

|||||||||||| 세로 순각판이 있었거나...

 

 

 

혹은 이런 문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예상 가능해서...

 

 

 

순각판을 이렇게 설치해봤습니다.

 

사진으로 보니까 이해하기 쉽죠??

 

 

 

 

그리고 하앙은 이런 레퍼런스를

 

일단 이용해서 만들었어요.

 

 

 

하앙이란!?

 

 

 

처마밑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칼날같은게 하앙 이랍니다!

 

 

 

 

 

 

비록 쌍하앙은  유추 정도는 불교회화를

 

보면 가능은 합니다. 왼쪽 그림보면 ...

 

 

 

그나마 쌍하앙으로 추정은 해볼수도

 

있는 모습도 보이고 그래서 쌍하앙을

 

적용해봤음. 하앙 모습은 화암사 하앙이에요.

 

 

 

참고로 하앙이라는 건축양식은

이런 방식으로 건물 지붕을 지탱해 줍니다.



하앙은 지랫대 원리를 이용한 건축양식 입니다.

그래서 건축물 만들때 꽤나 까다로운 기술입니다.



좀 불안정한 기술이라서 건축가의 경험과

실력이 매우 중요시되는 기술이라서, 결국

한국에서는 사실상 거의 멸종된 기술이죠.



( 하앙 건축양식은 실제로 내부를 구성하는 방식이 )

( 건물에따라 약간씩 다르게 구성되는걸 확인할수 있어요 )

 

 

 

그러면 우리 이제

 

제가 여태껏 설명한 자료들과

 

어떤 것들을 건물에 적용했는지...

 

 

 

한번 더 정확하게 확인해 볼까요!?

 

일단 한번 보자구요!!

 

 

 

 

제가 무조건 판타지로

 

복원한거 같죠!? 아니에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건축물을 만들때 이 사진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그 후에는 실제로 있는 양식들을

 

최대한 취합해가지고...

 

 

최대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적용을 해서 건물을 만들어요.

 

 

 

완벽한 고증은 아닐지라도, 실제로 있는

 

자료들을 공격적으로 적용해서 만든거라...

 

 

 

실제 고려시대 건축물을

 

제가 만든 건물들로 충분히

 

느낄수 있답니다.

 

 

 

왜냐?

 

실제로 있었을 법한 양식들하고

 

진자로 발굴된 자료들만 사용했으니까요...!

 

 

 

 

이런식으로 고려시대는 의외로

숨어있는 건축 양식들도 많이있고,

 


또 의외로 조선시대 건물에서 꽤 많이

고려시대 건축 양식을 유추가 가능해요.

 

 


그래서 고려시대는 의외로

 

이런저런 건축 기술을 조선시대나

 

각종 자료들로 유추하기 좋은 상황 입니다.

 

 

 

 

대충보면 판타지 건물 같지만

 

실제로 발굴된 자료들을 사용했고,

 

 

 

실물이 없다면 기록에 의거한

 

양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건물을 만들면이런 모습이 나온답니다.

 

 

 

이런식으로 고려시대 건축물을

 

실제로 만들면 얼마나 예쁠까요?

 

되게 기대되지 않나요??

 

일자창문 벽쪽에 난간의 그림자가 빛춘다. 그 모습이 마치 머름같지 않은가?

 

 

머름 아시죠?

 

이 사진보면 한옥의 머름,

 

이게 왜 생겼는지 왠지 느껴지지 않나요?

 

 

 

난간의 그림자가 살창 아랫쪽

 

벽에 딱 비추잖아요? 이게 왠지

 

머름같아 보이지 않나요???

 

 

고려시대 난간은 이렇게 그냥 초록색 네모판으로 막은 방식도 많았던 것으로 예상된다.

 

 

 

매우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어떤 건축가가 딱...노을 질때...

 

 

 

건물 벽에 비추는...

 

난간대 그림자가 ...

 

 

 

너무 멋져가지고 말이야

 

그래서 머름이란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난간하고

 

머름은... 스샷 보면 아시겠죠!?

 

 

 

난간 그림자가 발생하는 위치에 만듬.

 

모습도 고려 초록 난간판하고 아주

 

똑같은 모습으로 말이지에요.

 

 

 

그래서 뇌피셜로 추측해보는데...

 

 

 

한옥의 머름이란게 이렇게

 

간지에서부터 시작된거 아닐까요!?

 

 

 

 

고려시대 건물을 주칠과 옻칠로

 

칠한 이유는 간단해요.

 

 

 

고려도경 - 만월대 회경전 기록에

 

난간에 붉은 옻칠을 했다는 기록,

 

 

 

고려사 / 신청

 

이 기록에 붉은 옻주칠 기둥 기록이 있음.

 

 

 

집에 대루를 짓고

 

그 벽에 금으로 그림고 그리고

 

기둥에 붉은 옻칠을 했다는 기록이 존재해서 입니다.

 

 

 

그래서 한국 모든 시대중에서

 

통일신라도 할 수 없는,

 

 

 

붉은 주칠 / 붉은 옻주칠을

 

건물에다 바를 수 있는건 오로지 고구려 / 고려.

 

 

 

기록 자료가 생각보다 구체적이라서

 

붉은 옻주칠을 사용해도 문제 없는 상황이에요.

 

 

 

붉은 옻주칠을 칠한 고려시대 정자는

 

실제로도 되게 아름다울거 같지 않나요?

 

 

제가 위에서 설명하고

 

그림샷 첨부해서 이제는

 

이해가 잘 되시죠!?

 

 

 

봉정사 출토 단청과

 

실제 고려시대 출토품들,

 

 

 

실제 사용되었던 금&구리 장식들과

 

고려시대 건축 방식을 적용하면,

 

 

 

실제로도 이런 멋진 풍경을

 

진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붉은 옻칠, 황금 치미, 청자기와...

 

전부다 실제했거나, 실제로 확인

 

안됬어도 최소한 기록에는 분명히 존재함.

 

 

 

무조건 있다! 없다!

 

모 아니면 도, 흑백 논리로

 

건축물을 각잡고 복원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창작및 재현을 통해서 공격적인

 

활용만 잘해도 진짜로 이렇게 멋진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어요.

 

 

 

조선시대도 멋지지만 좀 이렇게

 

복원이 아닌, 재현좀 했으면 진자

 

좋겠다. 기록도 실물도 있는데 말이여요...;;

 

 

 

 

 

오대산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이 석탑의 금속들은 도금을 한

 

금동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당시 고려시대 처럼

 

금동버전으로 만들어봤오요...

 

 

 

그리고 고려시대

 

전국에 정확히 딱 하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당간지주도 같이 만들어 봤습니다.

 

 

 

금동으로 만든 석탑과

 

황금 당간지주. 멋지지 않나요?

 

 

 

근데

 

당간지주에 달아놓은

 

현수막이 붉은색이죠?

 

 

 

이거 다 기록에 의거해서 만든거에요.

 

기록에 분명히 이렇게 적혀있거든요!

 

 

 

고려도경 - 흥국사

 

광화문 동남쪽 길가에 있다.

 

 

뜰 가운데 동으로 주조한

 

번간(幡竿)이 서 있다.

 

 

형태가 위쪽이 뾰족하다.

 

마디마다 서로 이어져 있다.

 

황금으로 칠을 했다.

 

 

위는 봉황 머리로 되어 있다.

 

비단을 물고 있다.

 

 

 

이런 기록이 있어서 당간지주를

 

황금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기록대로요.

 

 

다만 당간지주 머리는

 

봉황이라고 했는데 제가

 

만든건 용두, 용머리이죠?

 

 

금동 용두보당 - 당간지주 모습이다.

 

 

 

저는 기록에 있는 봉황말고...

 

실제로 당간지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금동 용두보당을 보고 이걸로

 

당간지주를 만든거임. 나름대로

 

실물보고 만든것 입니당...

 

 

 

이번에는 월정사 팔각석탑에

 

철쇄를 둘러봤는데 사실...

 

 


이건 고증에 맞지 않아요.

 

그냥 판타지로 한번 해봤어요.

 

이쁜거 같아서. ㅋㅋ

 

 

철쇄가 저기 석탑 피뢰침부분을

 

고정시키기 위한 쇠로 만든 사슬 같은건데,

 

 

 

월정사 석탑은 철쇄가 설치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증이 아닙니다.

 

월정사 구층석탑에는 철쇄가 없어서 고증은 아니다. 이 두가지를 보고 멋져보여서 적용해봄.

 

 

 

그냥 단심줄 놀이나 고려시대

 

다른 전탑의 철쇄를 보고 이렇게...

 

 

활용하면 어떨까 싶어서 해봤어요.

 

나름...괜찮...은감??요?

 

 

요즘 세상이 아주 .....

 

경제도, 기후도, 정치도 아주

 

말이 아닌데...

 

 

 

상황좀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어서

 

당간지주 깃발에 좋은 말을 적어봤어요.

 

당간지주에 있던 한문 내용을 알려드릴게요.

 


北陸擬陰盡(북육의음진)

千門淑色新(천문숙색신)

 

 

뜻은 이래요.

 

 

북쪽 땅의 음지가 다해서 녹으니

문마다 맑은 기운이 새롭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여러모로 개지랄나고 있는 요즘인데...

 

 

 

전쟁도, 기후도, 세계 정세도,

 

우리나라 경제도 좀 나아졌으면

 

좋겠읍니다..... 참 세상이 미쳤어요.

 

 

 

아무튼

 

이렇게 우리나라 전통 문화는

 

잠재력이 정말 대단하거든요?

 

 

 

근데 정말 아무도 이걸

 

아~~~~~예 활용을 안하고 있어용...

 

 

 

사실 이렇게...

 

 

 

그냥 발굴된거나 기록에 있는거

 

그냥 적용해서 만들면, 기존의 우리의

 

전통 이미지하고 완전히 다르거든요?

 

 

 

심지어 월정사 팔각 석탑도

 

고증대로 금동으로 복원하면

 

석탑인데 되게 간지나고 이래여...

 

 

 

 

근데 이런걸 아예 활용조차도 안하니까...

 

아예 이미지가 생기지도 않을뿐더러...

 

 

 

아직까지도 전통이라고 하면

 

조선시대 후기의 단순, 소박, 해학

 

뭐 이러한것만 생각하게 되잖아요?

 

 

 

이런게 너무 아쉽지 않나요?

 

우리도 좀 예쁘고 화려한거도 좀...

 

보면 안되는 겁니까!?

 

 

소박한게 나쁜건 아니지만

 

너무 획일적으로 소박한

 

면만 부각시키는게 참...

 

 

 

너무 소박,해학,검소 이런거만

 

부각 시키니까보니... 전통의 다양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 고려시대 건축 송도 여기저기에 적용해보기 -

 

 

 

 

 

 

이렇듯 고려시대 건축은 그냥 실제로

출토된 건축 부재들만 적용해서 만들어도

조선시대하고 전혀 다른 느낌 이랍니다.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고려 건축물을 송도 도심 여기저기에

합성해서, 얼마나 잘 괜찮게 잘 어울리나

한번 눈으로 직접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에 고려시대 건축물을 적용해 보았다.

 

 

 

스샷의 지붕쪽 봉황장식 같은거나

 

그리고 중간에 불교탑 장식물 고증은

 

어느정도 맞아요.

 

 

 

나말여초쯤 기록에 정확하게 있습니다!

 

그 기록은 경주 숭복사 비석 입니다.

 

 

 

경주 숭복사 비석은 온전치는 못하지만

 

모든 파편들을 모아서 해석이 완료됬습니다.

 

 

경주 대 숭복사지 비석, 여기에 2층 누각에 봉황을 마주보게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비석 파편은 제 기억으로는

 

국립경주 박물관에 있는걸로

 

기억이 나는데요...

 

 

 

아무튼 숭덕사 비석 기록에

 

지붕마다 봉황이 마주 본다!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신라 후기 기록이라...

 

고려시대 기록은 아니고,

 

 

 

또한 각종 자료들을 찾아봤을때

 

고려는 봉황장식을 지붕에... 하지는 않았겠지만...

 

나말여초 까지는 봉황 장식이 있었을거라 추정 가능합니다.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잔디밭에 만들어본 고려시대 정자!

 

 

 

인천대학교 송도 캠퍼스 잔디밭에

 

고려시대 건축물을 올려봤어요.

 

 

 

근데 용마루 아래 3단으로 쌓은

 

금기와 보이죠? 저건 사실 판타지에여...

 

 

 

저건 증거를 아무리 찾아도 진짜 안나오는

 

장식이지만... 고증을 제쳐두고 일단 근데

 

저거 되게 멋지고 괜찮지 않나요?

 

 

 

 

이 건물의 지붕을 잘보면 금색 지붕장식을

 

설치했죠? 저걸 보이는데로 만든거에요.

 

 

 

뭐 증거가 없어거 고증은 아니지만

 

여러분!!! 이거 그냥 뭐 불교회화에

 

있어서 만들었을 뿐인데...

 

 

 

되게 괜찮지 않나요? 저는고려시대

 

건축을 복원한다면, 저 지붕 장식은

 

반드시 [ 재현 ] 했으면 좋겠어요.

 

 

 

이거는 송도 솔찬공원에 정자

 

모습으로 적용해 본거에요! 여튼...

 

 

 

중국 / 일본하고도 구별되고

 

삼국시대 / 통일신라 / 조선

 

이 나라들 하고도 완벽하게 구분되죠??

 

 

 

그래서 진짜 활용하기 좋은

 

건축 장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꼭 재현했으면 좋겠어요.

 

 

 

송도 해돋이 공원에 설치한

 

고려시대 3층 누각! 어떠셈?

 

뭔가 되게 중국 건물 같죠?

 

 

 

이 건물도 나름대로

 

증거자료가 있어서 이렇게 만들어봄.

 

 

 

이 건물 양식은 아랫쪽에서

 

다룰태니 계속 아랫쪽까지 봐주셈!

 

 

송도 워터프론트에 고려시대 전각을 합성해보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 이거에요.

 

 

 

고증에는 조금 안맞더라도 좀

 

불교 회화에서 보였으니까 그냥

 

좀 사용해보면 괜찮지 않을까요??

 

 

 

불교 회화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인데... 복원 건물에는 몰라도...

 

 

 

그냥 공원 정자같은곳에 적용하면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는 너무 전통적인거에

 

과감한 선택이나 적용을 안하는거 같아요.

 

그래서 넘 아쉬움...

 

 

 

송도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오피스텔

 

앞쪽만 만들어본 고려시대 정자!

 

 

 

고려시대 건축물은 이렇게

 

기록에 있는대로, 혹은 그냥

 

보이는 대로만 만들어도

 

 

 

이 정도까지 조선시대 건물이랑

 

다르게 보이게 만들수도 있어요.

 

 

 

실제로 일반 한옥이랑 비교하면

 

느낌이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근데 이런 모양의 건축은 실제로

 

한국에는 남아 있는게 없어서 고증이

 

맞는가!?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 고증 오류냐?

 

하면 아니에요. 증거는 없지만 하여튼

 

불교 회화에서 발견되는 거잖아요?

 

 

 

 

조선시대도 참 아름다운데,

 

전국 어디든 다 비슷하게 생겨서

 

다양한 모습을 보기가 어렵죠...

 

 

 

전국 조선팔도가 전부 다 상록하단

 

아니면 1층 건물들이 즐비하고...

 

 

 

그래서 외형도 거의 비슷비슷해서 그런가

 

전국이 다 비슷해서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송도 센트럴파크 국립세계문자 박물관 앞에 고려시대 정자를 만들어봤다.

 

 

 

송도 센트럴파크 문자 박물관

 

앞에다가 설치해본 고려시대 정자!

 

 

 

이렇게...

 

조금만 신경써도 조선시대하고

 

완벽하게 다른 느낌의 건축물을,

 

 

 

스토리와 진정성 모두 잡으면서

 

아름답게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근데 기둥이 짙은 갈색의 옻칠기둥이죠?

 

이 기둥은 실제로 청평사나 여말선초 각종

 

건축과 관련된 자료들에서 가끔 보이고

 

 

 

14세기 고려 회화에서 확인도 가능한

 

짙은 옻칠 기둥을 적용해봤어요. 멋있죠?

 

 

짙은 갈색 옻칠 기둥은

 

완벽한 고증 그 자체 입니다!

 

( 청평사 건물에 실제로 있었음 )

 

 

 

 

청평사에 실제로도 있었고

 

조선시대 회화에서 심심하면

 

발견되는게 검정 / 짙은옻칠 기둥!

 

 

 

여튼!

 

 

 

이렇게 과감한 기술 적용으로 잊혀진

 

과거를 적극적으로 재현하므로써,

 

 

다양한 전통 양식을 확보하고

 

계승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거는 국립중앙 박물관 소장 청기와에요.

 

고려시대 출토품이라는데...

 

 

 

고려시대 청기와는 이 정도까지

 

새파란 짙은 파랑색 청기와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아직 없어요.

 

그래서 수입산 기와로 예상할 수 있다네요.

 

 

 

그래도 뭐... 고려시대 출토품이라고 하고...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그렇게 적어놨으니까

 

뭐 어련히 잘 적어놨겠죠...? 그래서 적용해 봤어요.

 

 

 

고려시대 출토 짙은 파랑색의

 

청기와를 적용하면 이런 느낌일듯?

 

 

우리가 한국에서 보는 색감보다 훨씬

 

짙은 파랑색으로 보여서 신선할 거에요.

 

 

청기와에 구리 기와 / 금동장식

 

섞으니까 더 멋있는거 같지 않나요?

 

 

 

 

- 고려후기 다층 누각 양식에 대하여 -

 

 

 

 

송도 센트럴파크에 합성해본 고려후기 3층같은 다층 누각

 

 

 

송도 센트럴파크 셰계문자 박물관쪽에

 

고려시대 후기 3층 누각 건축물을 올려봤음.

 

 

이 양식이 나름 레퍼런스가 있다고 했죠?

 

어째서 이게 나름은 고증이고 레퍼런스가

 

있는지를 알아볼까요!?

 

 

오른쪽 회화를 봐 주세요.

 

저 고려시대 회화는 관경서품도 입니다.

 

 

 

14세기 회화인데 건물의 외형은 3층을

 

모여주고 있어요. 뭐 실제론 2층이고...

 

 

 

이 건물을 보면 무조건 중국꺼 아녀?

 

라고 하는데...회화 그림의 건축 양식이

 

의외로 창덕궁 존덕정하고 존똑 이에요.

 

 

 

창덕궁의 아랫쪽 돌기둥쪽에 지붕만

 

설치하면 존덕정과 고려회화 건물은...

 

 

 

사실상 똑같은 건축 양식으로 만든거라

 

봐도 될 정도로 매우 닮아있는 모습 입니다.

 

 

이 사진이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3층 누각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재밌는게 있어요. 이게 10층인데...

 

 

3층까지...라고 해야되나?

 

4번째 지붕까지만 보면은,

 

목탑이 아니라 다층 누각 이에요.

 

 

 

그래서 경천사지 석탑은

 

의외로... 고려시대 3층 누각 모습을

 

유추 가능한 유일한 다층누각 석탑 입니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3층의 누각층 / 7층 목탑층이 뒤섞인 재미난 석탑이다.

 

 

 

이렇게 경천사지 십층석탑 또한

 

고려 회화에서 보여주는 겹지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저 고려회화가 나름대로 실제

 

건축 양식을 따라 그렸을 확율이

 

꽤나 높다고 여겨도 될거 같아요.

 

 

이런 모습의 누각은 원나라 시절 수입된 양식으로 예측된다.

 

 

송도 G타워와 트라이보울 사이에 합성해봄.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런모양의 누각들은

원나라에서 수입된 건축 양식이라고 생각됨.

 

 

왜냐면 단순하게 이런 건축 양식은

 

특히 원나라 시절부터 엄청 많이 보임.

 

 

왼쪽은 경천사지 십층석탑 / 오른쪽은 14세기 고려 관경서품도

 

 

 


경천사지 십층석탑도 원나라 시절에

 

만든건데 꼭대기 층이 겹지붕으로 되어있고...



고려회화 14세기 사이후쿠지(西福寺)

고려회화 관경서품도 누각 그림만 봐도

 

꼭대기 층이 2단으로... 겹지붕이고...

 

 

 

이런 2~3층 누각 꼭대기를 겹지붕으로

 

만드는 양식은 원나라 시절에 특히 많이 보여요.

 

 

 

그래서 원나라 몽골에서 수입된

 

기술로 만들어진 건축 양식 같음.....

 

 

 

물론 이런 모습의 건축 양식은 통일신라

 

중 ~ 후기부터도 확인되므로 통일신라나

 

송나라 때 들어온 건축양식일 수 도 있습니다!

 

 

 

 

하여튼 신도시 공원에 이런식으로

고려시대 누각을 시범적으로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색다른 즐길거리를 제공하면

진짜 괜찮을것 같지 않나요? 연구 내용을

묵혀두기 보다는... 이런식으로!



최대한 활용해서 시민들이 직접 느끼게

하는 방법도 정말 좋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제가 만든 고려 3층 누각들은

 

바로 이런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사용해서 만든거에요.

 

 

 

잊혀진 우리의 이질적인 전통을 이렇게

 

과감하게 사용하므로써, 이제부터라도...

 

 

 

한국의 전통문화가 생각 이상으로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요.

 

 

숭덕사가 아니라 숭복사 입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신도시나

 

새로운 공원같은곳에다가...

 

 

 

이런 건축물도 좀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다양한 전통의 모습은

 

선보인다면 정말 좋을거 같아요.

 

 

 

언젠가는 다양한 우리의 잊혀진

 

다양한 전통문화를 실제 눈으로,

 

실제 건물로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재밌게 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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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2023년 12월 3일까지 연구된

내용을 토대로 만든 게시물 입니다.



만일 무언가 새롭게 발견이 되거나,

새로운 연구이론으로 인하여.....


기존의 이론이 바뀌거나

 

이론 변경/변화 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이 게시물의 내용은 수정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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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초기로 추정되는 건축

 

모양의 불감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삼존불감 입니다.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삼존불감 고려시대 11세기 추정

 

 

 

 

 

이 고려 11세기 추정 금동삼존불감은

 

휴대용 불감으로써 들고다닐수 있게

 

만들었고, 건축 모양을 그대로 따로 만든...

 

 

 

고려 초기 건축양식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정말 중요한 고려시대 건축 2차 간접자료에요.

 

 

 

 

간송미술관 소장이었던

 

금동삼존불감을 눈에 보이는데로

 

실제 건축물로 재현 / 복원해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정말 딱 보이는대로 만들었습니다!

 

 

 

배흘림 기둥, 정측면 1칸,

 

지붕위 물고기 어룡치미 , 우진각지붕,

 

한쪽에 딱 2개씩만 있는 추녀마루 잡상

 

 

 

파랑 지붕이라서 청자기와 지붕을 적용했고

 

배흘림 기둥이라서 배흘림 기둥을 적용했어요.

 

 

고려 청자기와 암키와. 금동삼존불감 전기와색에 가장 가까운 기와색이다.

 



제가 재현 / 복원한 고려 금동삼존불감은

 

정말로 보이는데로 만든 것 입니다!

 

 

재밌는건 고려 금동삼존불감의

 

지붕을 꾸미는 양식이 나름 조선시대

 

건물에 비슷한 양식으로 남아있어요.

 

 

개성 남대문 ( 1391 ~ 1394년 건립 추정 ) 용마루 취두 2개 모두 조선시대 초기 취두며, 건축도 고려후기 건축양식이다.

 

 

고려시대 지붕을 꾸미는 건축 양식은

 

사실 조선시대까지 제대로 전승된

 

건축 양식이랍니다.

 

 

 

특별히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시에

 

남아있는 남대문이 이러한 경향이

 

매우 강하답니다.

 

 

 

왜냐하면 추녀마루 잡상이 딱 2개뿐이고

 

양쪽 취두 2개가 조선시대 초기 양식이며

 

어룡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붕을 보이는 데로만 꾸며도

 

고증에 맞는 모습이 되는 겁니다!

 

 

 

왜냐면 조선시대도 사실상

 

똑같이 꾸미기 떄문이죠...

 

그리고...!

 

 

건축물을 지탱해주는 브라켓 시스템!

 

포작같은 경우도 그냥 정말 보이는대로!

 

정말 그냥 보이는대로만 만들어봤습니다.

 

 

 


금동삼존불감의 포작은 이렇게

 

생겼거든요? 이걸 진짜로 보이는데로

 

복원하면 아래와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금동삼존불감 포작을 보이는데로 설치해봤습니다.

 

 

이런 모습입니다.

 

여기서 굉장히 특징적인

 

고려시대 - 송나라 - 일본 헤이안시대

 

 

 

건축양식이 하나 등장 합니다!

 

그 건축 양식을 바로 이것입니다.

 

[ 통주목 ]

 

 

이 통주목 이라는 건축양식은

 

과연 뭘까요!? 통주목이란 바로

 

이런 건축양식을 말한답니다!

 

 

 

 

통주목 이라는 건축용어가

 

생소하죠? 통주목이란 것은 오로지

 

일본에서 현재 가장 활발하게 사용중인,

 

 

 

한국에서는 사실상 멸종한...

 

잊혀진 건축양식 입니다.

 

 

 

조금 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살미첨차를 뜬창방 , 혹은 장혀로

 

결구하는 방식을 말한답니다.

 

 

 

보통 이제공 부분을 장여 혹은

 

뜬창방으로 잡아준답니다!

 

 

 

 

통주목 실사건물 중에서는

 

중국 막고굴에 있는 노군당 자씨탑

 

( 건립년도 : 1000년 추정 )

 

 

이 건물이 실사 건물중에서는

 

가장 이른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에서는 사실상

 

하앙같이 흔적만 남은 건축양식

 

인데요, 그래도 있긴 있습니다.

 

 

장곡사 상대웅전 내부에 가장

 

완벽한 통주목이 남아있어요.

 

 

위로 가기 귀찮으니까 여기서 다시한번 보세요!

 

 

 

그럼 이제 간송미술관 금동삼존불감을

 

다시 봐 주세요. 1출목 뜬장혀라고 적은

 

부분을 자세히 봐주세요.

 

 

 

정확하게 2제공 살미첨차를 장혀로

 

결구하는게 보이죠? 살미 첨차를

 

빔으로 꽉 잡아주고 있습니다.

 

 

 

통주목은 11세기로 추정되는

 

금동삼존불감에서부터 발견되고,

 

 

 

 

중국 막고굴 노군당 자씨전은

 

1000년에 건립한 송나라 건축이고, 

 

 

 

동대사 남대문도 12~13세기 건축양식이고

 

금동삼존불감은 대략 11세기 추정 고려유물.

 

 

 

그래서 통주목은 그 시작이 북송나라부터

 

시작된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 그렇기에

 

고려시대 건축양식으로 추정 가능합니다!

 

 

 

 

고려시대 통주목 건축양식을

 

조금 더 크게 보면 이런 느낌!

 

 

 

고려시대떄는 쌍하앙 건축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쌍하앙이랑 적용시켜봤습니다.

 

조선시대랑 비슷하면서 약간은

 

다른 느낌입니다!

 

 

 

 

하지만 왜 통주목이라고 부를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한민국에선

 

사실 흔적만 남았지,

 

 

건축 양식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멸종한 건축양식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이름이 없어요.

 

통주목은 중국에서 조차도 사실

 

멸종했다고 봐도 되는 수준이라...

 

 

 

현재까지도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일본에서만 정확하게 건축양식 이름이

 

남아있어서,

 

 

그냥 저도 통주목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통주목이 외우기도 쉽고.....뭐 그러니....허허!

 

 



위에서 말했지만 고려시대 때는

 

쌍하앙 양식이 남아있을수도 있다!

 

라고 말했죠?

 

 

 

쌍하앙 양식은 사실 추정만 가능한데

 

그 시절 유행양식이라 있었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이 고려시대 불교회화가 쌍하앙을 유추라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의 회화다.

 

 

 

거의 유일한 회화 자료로써

 

일본 오타카지에서 소장중인

 

관경십육관도 포작에서 그나마...

 

 

 

쌍하앙으로 추정할 수 있는 포작이

 

관찰되기 때문에, 쌍하앙 건축양식이

 

있다고 일단은 예상하고 있답니다.

 

 

 

 

쌍하앙을 근접해서 보면

 

이러한 느낌입니다. 그럼

 

이제...

 

 

짧게나마 하앙이라는 건축

 

양식에 대해 짧게 알아볼까요?

 

 

 

 

###########################################################
### 번외편 - 하앙이란? ### 

 

 

하앙이란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여


지붕을 받쳐주는 건축 자재 입니다.

 

 


브라켓 시스템이 덜 발달된 시대에


애용한 처마를 길게 빼주는 방식 인데요,

 

 


기원전 3세기부터 사용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근본 건축양식 입니다!

 

 

처마를 길게 빼면서 하앙 앞머리쪽에 지붕의

 

하중이 가면서 뒷쪽은 위로 뜨겠지요?

 



그럼 그 위로 뜨는 뒷 부분을


건물의 대들보나 도리들이...

 

(서까래 올리는 가로 자재)

 

 


아래를 받치게 해서

 

힘을 분산시켜 지붕을 더욱


안전하게 받쳐주는 뭐...이런거 입니다.

 

 

처마아래 삐죽하게 튀어나온게 하앙 입니다.

 

 

 

하앙 건축양식에 대해서 이제

 

이해가 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쌍하앙은 아니지만

 

하앙이란 건축 양식은 일단

 

조선시대 까지 남아있긴 했습니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

 

 

완주 화암사 극락전 귓편에

 

하앙양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완전 화암사 극락전은 나름 쌍하앙

 

양식까지 유추할수 있는 하앙 양식입니다.

 

 

 

 

그리고 재밌는 특징이 하나 있다면,

 

하앙은 대체적으로 칼날 모습처럼

 

굉장히 뾰족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중국 당나라 불광사 대전 ( 857년 ) 칼날같은 뾰족한 하앙이다.

 

 

 

중국쪽 당나라 시절 건축물인

 

불광사 대전만 봐도, 칼날 모양의

 

쌍하앙을 관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려시절 쌍하앙의 모습은

 

칼날같이 날카로운 모습이었다고

 

유추가 가능합니다!

 

 

칼날같은 하앙을 비죽앙 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금동 삼존불감의 쌍하앙은

 

칼날처럼 표현해서 적용해봤습니다.

 

조선시대 건축하고 비교해볼까요?

 

 

처마밑에 꼬부랑 알수없는 모습을 하고있는게 하앙을 따라만든 가앙이다. 보통 쇠서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건축도 하앙같은게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하앙은 아니고...

 

 

가앙이라고 합니다.

 

그냥 가짜 하앙이라고 보면되고

 

보통 쇠서나 수서, 앙서로 부릅니다.

 

 

 

 

가앙이라는 가짜 하앙은 쇠서나

수서, 앙서로 부르고 있는데요,

 

가앙이라는 이름부터 대충 감이 오시죠!?

 

 

 

불안정하고 까다로운 건축양식인 하앙.

 

하앙의 기능이 약화되고 퇴화하는 그런

 

과정에서 가앙이 발생한 겁니다!

 

 

 

건축기술이 발전하면서 하앙은 퇴화하고

 

다포계 포작이 발달하게 되는데요, 다포계가

 

훨씬 안정적이고, 의장성도 높고, 멋있다 보니까...

 

 

 

하앙 같이 튀어나온 부자재가 딱히 필요없는

 

다포계 포작에서, 하앙의 멋짐간지 포인트만

 

쏙 빼서 차용한게! 가앙 입니다!

 

 

청도 대비사 대웅전. 쇠서나 앙서같은 가앙이 아예 없다. 다포계 포작은 가앙이 사실 그다지 필요없다.

 

 

쇠서나 수서, 앙서같은 가앙들은

 

없어도 됩니다. 없어도 문제없어요.

 

 

 

사진의 대비사 처럼, 실제로 쇠서 같은

 

가앙 사용안한 건물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건축적으로 그다지 필요없게된

 

하앙은, 간지하나 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에!

 

 

 

하앙의 간지만을 빌린 [ 가앙 ]

 

이라는게 탄생했다고 보셔도 됩니다.

 

 

쇠서같은 가앙과는 다르게, 하앙은 뾰족한 부분이 반드시 튀어나와줘야 한다.

 

 

 

하앙같은 경우는 당연히 뾰족한 칼날같은게

 

튀어나와야 안정적으로 지랫대 역할을 합니다!

 

 

단청은 참고로 봉정사 극락전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12세기 추정 단청을 적용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단청은 이런느낌.

 

 

먼가...

 

 

조선같은데 조선시대가 아니고

 

상록하단 같은데 상록하단하고는

 

미묘하게 다른 그런 단청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단청은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 진정한 오방색 단청이다.

 

 

 

봉정사 극락전 고려시대 단청은

 

사실 상록하단이 아닙니다! 되려!

 

 

 

빨강 / 파랑 / 초록 / 적갈색

 

 

 

이 4가지 색깔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진정한 오방색 단청의 특징이 보입니다.

 

 

 

 

그래서 금동삼존불감에 적용된

 

단청을 보고 아마도 이렇게

 

느끼셨을거라 생각해요.

 

 

 

어..... 어딘가 익숙한거 같은데

 

뭔가 좀 단청이 다르네...?

 

 

 

그것은 고려시대 단청이 조선시대하고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기 떄문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출토 고려시대 단청은

 

그 무늬가 조선시대까지도 발견되는

 

무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단청 전개 방식과 패턴에서

 

약간 다르게 진화하기 떄문에 조금

 

낮선듯, 비슷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 고려단청에서 기하학 무늬 위주 + 초록색 위주로 발전하는게 조선단청 )

 

 

 

지금 이거에서 색만 초록색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조선시대 단청처럼

 

보이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볼까요!?

 

 



어떤가요?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을 진짜 그냥...

 

 

초록색 단청 위주만 모와서

 

적용했습니다. 뭔가 조선시대

 

상록하단이랑 비슷하게 느껴지죠!?

 

 

 

 

진짜 재밌는건, 몇가지 부자재는

 

파랑, 주칠, 적갈색 같은 파랑색과

 

붉은색을 확실하게 사용했는데요,

 

 

 

근데 초록색 비율을 조금 많이

 

높이니까 상록하단 처럼 보입니다.

 

 

 

또한 뉘앙스가 마치 조선시대 단청

 

스러워 지는것도 느껴지게 됩니다.

 

 

 

 

창덕궁 희정당 단청인데요

 

조선시대 후기 단청인데...

 

 

어째 고려시대 단청하고 색감과

 

모양이 조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죠??

 

 

 

 

이유는 위에서도 적었지만!

 

 

 

고려시대 단청 -> 조선시대 단청

 

이 방향으로 올바르게 진화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단청 도안이나 패턴이 나름 비슷합니다!

 

 

 

완전 다른 부분도 존재하지만, 생각보다

 

매우 비슷한면도 많은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은 맘만 먹으면 상록하단처럼

 

보일수 있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아, 참고로 포작이 그냥 다포계 포작이죠?

금동 삼존불감은 고려 초기방식의 단순한

 

다포계가 맞습니다.

 

 

이런 5포작, 2출목 포작 또한

 

의외로 고려시대 포작 이란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만들어봤어요.

 

송나라 영조법식 외2출목 5포작방식. 하앙인데 조선시대 건축과 거의 모습이 같다.

 

 

이 사진은 송나라 영조법식의

 

건축 포작법과 긋기 단청을 설명한

 

사진인데요. 사진만 보셔도 알수있죠!?

 

 

 

외 2출목 5포작 같은 경우는 이미 송나라

 

영조법식에서부터 나오는...의외로 되게

 

고려시대 스러운 다포작 입니다.

 

 

하나 다르다면 쇠서같은 가앙 대신에

 

하앙을 사용했다는 점 정도가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조선시대 다포계 포작 또한

 

그 출발점은 이미 고려시대 부터 ...!

 

시작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다포계 포작으로 바꿔서

 

고려 단청까지 적용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이렇듯 조선과 고려는

 

의외로 건축양식도 비슷하고,

 

 

크게 다른거 같아도 알고보면

 

비슷한 구석이 굉장히 많습니다.

 

 

 

나머지 난간이나 금속장식들

 

기와 고정못인 와정에 대해서는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하겠습니다!

 

 

 

 

 

 

참고로 일본 동대사 대불전 또한

 

통주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기...

 

살미제공을 지탱해주는 장여가 보이죠!?

 

 

 

 

그렇습니다! 일본 동대사에는

 

통주목을 사용하는 역사적인 건물이

 

무려 2개 입니다. 하나는 동대사 남대문.

 

 

사진 네모칸을 보시면, 출목 장혀가 제공들을 잡아주고 있으며, 이런 양식은 아주 드물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동대사 대불전.

 

이렇게 일본은 너무나도 유명한

 

건축물에 통주목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놀러가면 한국에서

 

사라진 재밌는 건축양식들을 실제로

 

보고, 느끼고, 접할 수 있답니다!

 

 

 

우리도 통주목 양식을 좀 더 활용

 

해봤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전통의 다양성을 확보해서, 다양한

 

전통성이 확보된 대한민국이 되길

 

바래 봅니다...!!

 

 

 

금동삼존불감으로 풀이해본 여러가지

 

고려시대 건축양식. 재미있으셨나요!?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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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의사항 ###

 

이 게시물의 건물들은

정확하게 고증해서

만든 건물은 아닙니다.

 

건물의 기초 베이스는

그 시절 양식이 맞습니다만,

 

그 외 세세한 것들은

어느정도 고증 무시하고

최대한 보이는데로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건물의 기둥길이,

건물의 비율만 100%에

가깝게 고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건물 높이와 비율 위주로

작품을 감상하시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글이 약간 길어요.

 

사진만 보고 싶으신 분들이나

가볍게 읽고 싶으신 분들꼐서는,

 

마지막 단의 12줄 요약이나

5줄 요약만 보셔도 됩니다.

 

전체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내용의 큰 줄기는 알 수 있습니다!

 

 

##################################################

 

 

 

우리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 고려시대때는 2층 건물이 많았데! "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려시대때 2층 건물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 2층 건물이 얼마나
높은지는 잘 모르죠???

 

이 게시물을 보시면

고려시대 ~ 조선초기
2층 건물에 대한~

 

높이 개념이 새로이
생겨나게 될 것 입니다.

 

 

 

 

 

############# 참고사항: 2층 누각이란 ? ###########

 

 

지금은 2층 정자 까지
누각이라고 합니다만~!

 

고려~조선 초기 까지는
누각과 정자는 다릅니다!

 

 

누각은

 

"2층or 그 이상 건물인데 벽이 있거나
창문or문으로 빈공간 없이
전체를 덮은 2층이상 건물"

 

이런식으로 사방이 문이나 벽이 있는 건물이 누각 입니다.

 

정자는

 

" 1층이건 2층이건 3층이건
사방이 뻥 뚫린 건물이 정자 "


입니다.

 

이런식으로 사방이 뻥 뚤린 건물이 정자 입니다. 조선시대때는 그냥 2층이면 누각이라거나, 누정이라 불렀습니다.

 

먼저 이 사실을 숙지 하시고
게시물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입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 사서 기록과 불교 회화 건물높이가 실제로 교차검증 된다!? -

 

 

 

 

3가지 파트로 나누어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 목차 ###

 

1. 관경서분도 속의 건물 그림과 고려시대 2층 건물의 비율


2. 기둥별로 보는 대략적인 고려시대 2층 건물의 높이

vs

일반적인 조선시대 기둥높이로 만든 2층 건물


3. 재미로 보는 6.84m 기둥 2층 누각

 

####################################################

 

 

 

 

1. 관경서분도 속의 건물 그림과 고려시대 2층 건물의 비율

 

고려시대 불교회화 중에

일본 서복사 소장 관경십육관도
라는 불교 회화가 있습니다.

 

그 그림에서 우측에 쪼그만하게
그린 건물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 그림들은 3가지 정도
작게 그린 그림들 인데요~!

 

이 건물의 비율을 보시면
지금의 한국인들은,

 

절대로 상상도 못할
건물 비율을 보여줍니다.

 

관경서분도에 그려져있는 건물들. 전체층 지붕인데 1층과 2층의 비율이 똑같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확실히 뭔가 다르죠?


그나마 쪼끔 남아있는
기와 지붕이 1층, 2층 모두 설치된
건물들하고 비율이 조금 다르죠?

 

일반적인 조선시대 2층

건물은 이런 양식이고

이런 비율입니다.

 

 

기와지붕을 모든층에
설치한 건물인데,

 

1층과 2층이 거의 같은
높이의 비율 건물 입니다!

 

저는 이 건물들은

정말 보이는 그대로의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사진을 하나씩 보면서
확인해 봅시다!

 

 

###########################################################

 


역사관심님께서
올려주신 글중에~

 

고려시대 기둥에
관한 글을 보는데,


" 누각 기둥이 6m쯤 되어 보이고...어쩌고 어쩌고 "

 

이런 기록이 있더라구요.

 

 

!!!!!

 

 

그래서 또 한번 해봤습니다!


과연 3칸짜리 건물에
6m 기둥을 적용하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관경서분도에 그려져있는 건물들. 전체층 지붕인데 1층과 2층의 비율이 똑같습니다.
6m 기둥 누각


기둥을 6m로 하고~

 

그 시절 2층 누각 설치 방식을
그대로 이용하여 누각을 만들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신기하죠!?


기록에 써있는 6m쯤
되는 기둥이 어쩌구를~

 

실제 적용하면 불교회화 그림하고
거의 같은 수준의 비율이 나옵니다!

 

제가 만든 건물 2층이

조금 더 짧기는 합니다만~!

 

제가 만든 건물은 모든층의

포작이 그림들보다 복잡하고~

 

1층 지붕이 그림들의 지붕보다

약간 더 높아서 비율이 그림과

완전 같지는 않습니다만...!

 

기둥이 6m 정도 되면

저런 복잡한 포작이라도

그림과 거의 흡사한 비율이 나옵니다!

 

 

건물은 주의사항에 적었지만
양식은 좀 이상합니다.

 

저런 양식은 누문에서
보여주는 방식인데요,

 

누문으로 만들려다가
비율을 좀더 체감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번 게시물은
되도록 비율과 높이에
초점을 맞추어~~

 

그냥 빠르게 건물 올릴려고
이런저런 고증은 사실 조금

무시하며 했읍니다..........!

 

그렇다고 완전 막한건 아니고
이 건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쌍하앙 같은것을~

 

1층2층 분간없이 전층에 마구
적용한 고서화가 있더라구요.

 

 

뭐.... 여튼....

하여.....


뭐가 어찌됬건~~~
완벽한 그 시절 양식은 아니고~~~~~~~~~~~


쪼끔은 이상한 방식의
건물이 되었으니...

이해해주셈!!

 

대표적인 누문 돈화문

 

막간상식: 누문이란!?

 

누각으로 만든 출입구를 뜻해요.
2층이여야 하고, 2층에 올라갈 수 있어야 됩니다.

올라갈 수 있는 2층 누각으로 만든 행정기관or사찰 출입문이 누문 입니다!

 

 


이렇게~


불교회화 & 사서 기록이
실제로 외형으로 교차검증이
되는 엄청난 것을 보여주고 잇씁니다!


그저 기록에 적혀있는 내용을
추론하여 도출해낸 기둥높이로
만들었는데 이럽니다!

 

기와 지붕이 모든층에
적용이 된 건물인데
저런 비율의 건물은,

 

지금으로써는
중국에서 볼 수 있죠.

 

관경서분도의 누각들
6m 기둥 누각
개원사 종루, 오대십국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 입니다 출저: 구글

 

이게 저 비율의
실사 중국 건물입니다.

 

개원사 종루 - 898년 건립.

오대십국쯤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그 유명한 당나라 대안탑 옆에

있는 건물인데, 중국과 일본은

이런 비율의 건물들이 많죠!

 

아무튼~~!

되게 오래된 건물이죠!?

 

그냥 두눈으로 보면
저 3개가 모조리 같은
비율입니다!

 

이것은 


" 중국 실사 건물과 "
" 우리나라 사서 기록과 "
" 회화 그림 기록이 모두 교차검증 되고 있는 상황 입니다 "


,

 

이런 추론이 가능합니다.

 

 

#####################################################

 

실제 고려시대~ 조선초 기록에
기둥 길이는 6m 혹은 6,84m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불교회화 건물은
말도 안되게 길다란 건물
비율을 보여준다.

 

근데 기록대로 건물을 만들면
고려시대 불교회화와 똑같은
비율이 된다.

 

지금 한국은 기와 지붕이
2단으로 설치된 2층 건물이
매우 부족하지만,

 

저 모습과 거의 똑같은
외국 자료가 현전하고 있다.

 

외국 자료와 교차검증이
실제로 되고 있는 상황!

 

##########################################################


그렇다면...
비록 추측이지만,

 

고려시대떄 저렇게 생긴
건물이 진짜로 있었을 확률이
생각보다 매우 높다는 것 아닐까요!?

 


제가 만든 6m 기둥의 최종 높이는
용마루 끝까지 19.715m 이며,

 

치미(or취두)까지 측정한
최종 높이는 20.38m.

20m가 넘어갑니다!!


6m 기둥으로
그시절 비율로 건축물을 만들면!

 

순전히 나무만으로 20m

내외의 건물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왕족or사찰or고위층이
사용했던 2층 누각은!

 

전국토에 다 똑같지는
않았겠지만...

 

성벽까지 다 합친
광화문 보다 크고,

 

정전인 근정전에 거의
필적하는 높이를 보여줍니다.


( 광화문 : 성벽 다합쳐서 높이 18.93m )
( 근정전 : 건물만 높이 22m )

 

왕궁 건물도 아니고 그저
사찰or고관대작or왕족들이
자가에 설치하던 2층 누각인데!


거의 궁궐 정전급

높이를 보여주는게....

 

고려시대는 2층 건물들이
이따만했을것이란 유추가 가능!

 

물론 대형사찰or고위층 고관대작or
왕족들이 사용하던거라~


고려 전국토, 모든 2층 건물이
이런 높이는 아니었겠지만~~

 

뜨문뜨문 이지만 중국과
일본에 젉~~~~~~~~~~~~~~대
안꿀리는 엄청난 높이를 보여준 것!

 

정말 말 그대로 누각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높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이걸 보시다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6m 기둥 기록은 그냥
6m로 보인다고만 적혀있다!


그래서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리고,


일반적인 조선시대
기둥길이로 2층

건물을 만들면,

 

저런식의 불교회화 건물

비율이 나올수도 있는거 아님?

 

6m급 기둥은 궁궐에서나
쓰던건데 고작 사찰이나 고위층,

 

혹은 왕족이 사용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왜냐!?

 

저런 기둥이 아예 없으니까!

 


.........

 


라고 생각하실수도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은 실사
자료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비교사진들을 보시면~!


아.....
기록에 나온 6m 기둥이
진짜일 가능성이 꽤 크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실 겁니다!

 

이제부터
직접 보면서
비교해보겠습니다.

 

 

 

 


3. 기둥별로 보는 대략적인 고려시대 2층 건물의 높이 vs 일반적인 조선시대 기둥높이로 만든 2층 건물

 

 

 

3.874m 기둥 누각
6m 기둥 누각

 


첫번째 사진은 3.874m 길이의
기둥으로 만든 누각 입니다.

 

또한 고려시대 2층 건물 양식
그대로 적용해서 만들었어요.

 

왜 기둥길이를
3.874m로 했냐면!


일반적인 조선시대때 건물

외부 기둥 평균은 3m~3.5m 정도.

 

 

그런데 그 중에서

어느정도 레벨 높은

건물일 경우는

 

기둥이 약간 더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진짜 큰 건물은 아닌데

가끔이지만 외부기둥

높이 3.6m~4m 정도.

 


그러나 시대마다 척도
길이가 다르죠? 그래서~


1척을 당척 (29.8cm)으로
잡아서 작업 했습니다.

 

( 통일신라, 고려초는 여러모로 척도가 똑같습니다. )

 

 


기둥을 그냥

평주 우주 상관없이
13척으로 모두 적용했습니다.

 

레벨 있는 건물 외부 기둥은

3.5~4m 사이 높이들이 꽤 있으므로,


29.8cm를 적용한 13척 기둥이
기준값으로 좋다는 생각하에 적용!

 

 

아무튼,

 

 

조선시대 어느정도 고레벨 건물
기둥 높이로 만든 2층 건물은~!

 

그것도 고려시대 양식에 맞게
만들면 저런 비율이 나옵니다.

 

"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2층 건물 비율인데 "
" 불교 회화하고는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

 

3.874m 기둥 누각 측면
6m 기둥 누각 측면

우리에게는 가장 친숙하고
한민족이 가장 많이 사용한
2층 건물 비율일 것 입니다.

 

그러나~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저런
비율은 안 나오는것 입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누각들

중에서 어지간히 거대한

건물들은~

 

그냥 외형적인것만 봐도

일반적인 3.5~4m 정도의

기둥이 아니라는 것 이겠죠!

 

 

( 말 그대로 떡대좀 있는 누각들 중에서요~! )

 

 

이번에는 더욱 재미있는
기둥길이로 비교를 해봅시다.

 

대략 5.4m 기둥 누각
6m 기둥 누각

 

이번에는 5.364m 기둥 높이와
한번 비교를 해봤습니다.


5.364m 정도면 꽤나 비슷한
비율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불교회화 그림에는 못 미치는
약간은 아쉬운 비율입니다.

 

 

 

아무튼!

1층 난간까지
설치하면 이런비율.


기록상에 대충 보이는대로
적은 기둥 6m는 못믿어 ㅗㅗㅗㅗㅗ !!!

 

하시는 분들 또한 충분히
믿을 수 있고 또 현존하는!!!!!!!!


실제로 통일신라 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엄청나게 거대한
5.4m급 기둥으로 제작하면,

 


이러한 모습입니다.

 

 

이런 실사 유적밎 기록을
토대로 비율 비교 대조를
해보면,


" 고려시대 누각 기둥이 6m쯤 이라고 "
" 적혀있는 기록이 생각보다 굉장히 "
" 사실에 가깝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

 

 

대략 5.4m 기둥 누각 측면
6m 기둥 누각

저런 비율의 실사 건물은
해외에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기록!!

 

보아하니~~
기둥이 6m쯤 되네?

 

이 기록의~~실제 건물은~~~

 

실제로 충분히 기둥이 6m에

필적하는 높이였을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왜냐!

 

기록에 나온대로

기둥 길이를 설정하니까...


그림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니까요...!!

 

개원사 종루 ( 898년, 높이 14m )

 

관경서분도에 그려져있는 건물들. 전체층 지붕인데 1층과 2층의 비율이 똑같습니다.

 


6m, 5.364m, 3.874m를

나란히 비교해보면,

보시는 누구나 아실수 있습니다.

 

지붕이 높은 상태에서는
기둥이 6m는 되야....


고려시대 회화 비율과
같은 비율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교차검증적으로 봐도~


" 외국 실사 건물과 "
" 고려시대 기록과 "
" 고려시대 회화 기록"


이 3가지가 시각적으로
일치하는 결과가 도출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계십니다!

 

 

 

 

################################################

 

 

이로써 알 수 있는 사실은

1층과 2층의 높이가 거의

똑같은 건물은~~!

 

최소 못해도 외부기둥

4.5m, 최종 층고 14m 이며

지붕이 낮을때, 그 모습이 겨우 구현됩니다.

 

 

그런데 실제 조선시대

건물들 중에서 기둥높이

5m의 실사건물들이 존재하죠!

 

그리고 1층과 2층 높이가

같은 그림들 경우는,

 

수많은 고려 회화에

언제나 나오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사서 기록들이

어느정도 이론을 뒷받침 해주고,

 

중국, 일본에 기술적으로

거의 같은 건물들이 실존!

 

다각도 교차검증이 매우

잘 되고 있는 상황 이라는 것!

 

 

 

고려시대는 외부 기둥 5m~6m

층고 최소 17m 이상 건물들이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고려시대 불교회화만 봐도

1층 2층을 똑같은 높이로

그리는데,

 

 

불교회화라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고

되려 검증이 된다는 뜻 입니다!

 

 

 

 

* 재미있는 사실 *

 

이걸 보시면 아마 궁궐에서

18척 기둥을 쓰나? 이 생각을

하시게 될 것 입니다~!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덕수궁 대한문"이 유일하게

18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3. 재미로 보는 6.84m 기둥 2층 누각

 

 

조선초 세종대왕 시대 기록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 왕족의 누각 기둥길이는 6,84m 까지 할것 "

 

 

이게 숫자만 보면 얼마나 큰지
이해가 안가실 겁니다.


사실 조선 전기 기록이라
고려시대 게시물에 뭐...

 

맞는 그런 주제는 아니지만~


고려시대 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던게 조선 초기며~

 

기록으로 남아있는 누각의
기둥 길이를 그래픽 복원하여,

 

실제 모습으로 비율을 보고
고서화에 그려진 건물과
비교해보는 게시물이라~


재미있을것 같아서 적용해봤습니다.

 


6.84m 기둥을 적용한
겉면만 2층 건물은 이러한

비율을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의 건물은
겉면만 2층이고,

 

내부는 그냥 단층으로
되어있는데요~!

 

그래서 딱히 누각으로
분류하지는 않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부가 1층이라!


보통 이 건물은 경복궁 근정전이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정전 처럼 외부는 2층,
내부는 단층으로 이루전 건물을 통층식 건물 이라고 합니다.

 

 

 

비록 누각은 아니지만

아아~~~ 그 시절~~~~~~~~

 

상당히 중요한 건물들은

이렇게 왕관 씌운듯한,

 

간지용으로 2층을 만든

건물들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2층 누각과 비교할겸
겸사겸사 그전 게시물에서
만든것을 재활용해서 올려봤어요!

 

 

제가 만든 건물의
최종 높이는 17,835m.

 

오로지 나무로 만들고
겉면만 복층이고 내부는~


1층인 통층 방식의

그런 건물인데요,


치미 제외 용마루 끝까지만
해서 17.835m의 높이를 보여줍니다.

 

 


참고로
경복궁 광화문이 돌로 쌓은
성벽까지 다 합쳐서 18.93m!

 

 

고려, 조선전기 시절은~~~~~~~~~~~~~

 


궁궐 정전도 아니고 그냥

왕족이나 고위 대신들이
스웩으로 만든 2층 건물이,

 

순수 나무만으로 만든
저따만한 건물이!!!!!

 

생각보다 다수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 입니다!

 

 

 

 

 

 

 

 

이런 엄청난 높이의 건물이
전국토에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겁니다만,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북조선 까지
다합쳐도 지금보다는!

 

이런 비율의 건물들이
꽤나 있었을 거에요~!

 


기본적으로 세종대왕 시절
기록에 분명히 왕족은~
6.84m (18척) 기둥 사용!


굳이 궁궐에서만
사용하는게 아닌~

 

그냥 왕족이라면 제약없이
사용할수 있었던 기둥 길이!

뭐...


이런 내용도 있고~~

 

조선 초기는 고려시대
풍습이 많이 남아있던걸로
예측이 아~주 잘되는 시대이므로...

 

이러한 예측 정도는
어느정도는 가능하다 봅니다.


그럼!

 

 

이번에는 아주 재미있는
조선시대 초기 고서화
자료하고 비교해 볼까요?

 

조선시대 전기 건축물을 알수 있는 고서화

 

이 고서화는 장원급제한
내용을 담은

 

" 완벽한 기록화 "
입니다.

 

 

 

 

그런데 기둥길이가~~~~~~~~


이 그림을 보시면
미친듯이 높죠???


" 지금 우리로써는 상상할수 없는 미친 높이의 "
" 말도 안되는 건물 높이와 비율을 보여줍니다 "


그러나~!!!!!

저는!!!!!!!


이 그림이 단순히
"동양화적 기법"하에 그린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6.84m 기둥을
적용하면 저런 모습이니까요.

 


조선시대 회화들이 보통
이렇게 기둥길이를~

 

엄~~~~~~~~~청

나게 길게 표현 합니다.

 

문제는 조선 후기~임시정부까지
이런 기법을 항상 사용했기 때문에,

 

보통 저런 엄~~~~~~~~~청난
기둥 길이의 고서화를 보고서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기법은 조선시대

회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둥과 내부를 매우

길다랗게 표현하는데,

 

보통 조선시대 실제 건물은

그림보다 훨씬 짧은 편이다.


그러므로 실제와

다를 가능성이 크다.

 

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초기 건물 모습의 근정전. 종묘조서연관사연도

조선 전기 근정전 조차 제가 재현해본

6.84m 기둥 건물과 시각적 비율이 상당히

비슷한 것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 시절
기록에 의거한 기둥 길이로

2층 누각을 만들면,

 

실제로 고서화하고~

 

별로 다른점이
없을 정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는 6.84m 기둥이
실제로 꽤나 사용되었을거라
생각을 한답니다!

 

세종대왕님 시절 완벽한
건축 관련 기록에 분명히!

 

" 왕족은 누각 기둥 6.84m 가능! "

 

이걸 3칸 건물에 적용하면
그냥 그림이랑 똑같은

비율이 나옵니다.


이 정도인데....


의심이 안 갈수가 없죠!?!?!?!?!?!?!?!?!
합리적 의심 맞죠!?!??!!?!?!?!?!?!?!?!?!?!?

 


이런 중국 일본과 거의 같은
건물 비율이 사실일 가능성을
세종대왕님꼐서 남겨주신거에요!!


세종대왕 만세!!!!!!!!!!!!!!!

 

저 미친 기둥 길이!!!

 

미칠듯한 층고의 건물 그림은
조선시대 궁궐에서 자주
사용한 방식으로써,

 

그냥 건물 그리는 기법 정도로
해석할수도 있긴 하는데...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 조선시대의

많은 기록화들이 기둥을

엄청 높게 그립니다만,

 

적어도 조선시대 초기쯤의

건축 관련 그림 작품들은...

 

완벽한 사서 기록이 있고

실제로 18척 기둥 (6.84m)

 

실제 모습은 조선 전기 그림과

외형적으로 아~~~주 비슷하게

보이고 있으므로,

 

 

실제로 저런 기둥일수도 있다!

라는 의심을 가져보는것도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정면 5칸에
고려시대 누각 방식을 채택한
6.84m 기둥 2층 누각을 봅시다!

 

고려시대 기록에 있고, 불교회화에서 보이는 오로지 "붉은옻칠만 채색 "으로 만들어본 고려시대 누각
이 그림들을 최대한 보이는 대로 만들어봤습니다!!


실제 6.84m를 5칸 건물로
적용한 누각의 모습은
이러한 모습 입니다!


무슨 누각 주제에!!!!!
궁궐 정전같지 않나요!?

 

이번에 만든 6,84m 2층 누각은
이런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 불교회화에서 보이는데로 70% "
" 내가 해보고 싶은 방식 15% "
" 그 시절 양식 15 % "


이렇게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되도록이면~

 

저의 모토중 하나인
한번쯤은 보이는데로 만들자!

 

를 최대한 그 시절 양식들과
내가 적용하고 싶은 것들을
최대한 합쳐서 만들어 봤어요.


이번 건물은
그냥 보이는데로~~~~~


그리고~~~~~~


고려시대 그 시절

2층 누각 방식,


그리고 6.84m 기둥을

접목시켜 만든것인데,

 

고려시대 불교회화 그림하고
상당히 비슷한 비율이 나오네요!

 

용마루 같은 경우는 사실
모든 기와가 금은 아닙니다!


수키와, 마루기와 같은 경우는
구리 (동) 기와를 적용하는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기와셋트 중에서
금으로 된건 한번도 발견된적이
없고~~~~~~~

 

금색 구리 ( 동기와) 기와는
1개 실제로 발견이 됬기 때문에~

 

되도록 구리로
복원하는게 맞는데요!

 

"이번에는 그냥 보이는데로 해보자"
를 모토로 만들어서~

 

 

.................

 

그래서 구리보다는

되도록 그냥 보이는데로
모든 금속 제품들을~~~~~


나무에 붙이는

금속장식들 제외하곤...


지붕 마감은 전부 금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100% 정확한
고증복원및 재현은 아니고!

 

보이는데로 재현을
목표로 했습니다.

 

꽤나 멋지죠?

 

특히 용마루 or 내림마루

양성바름을 최대한~~~

 

불교회화에서 보이는데로
만들어 봤습니다.

 

관경서분도를 잘 보시면

청자기와 건물 용마루

양성바름은 이상하게~

 


아~~~~~~~~주

새깜한 색이 아니라,

살짝 회색빛이 나는데......


제 생각에는

네모난 일반 기와를
설치한것으로 판단이 됬습니다!

 

이런 방식은 중국쪽

용마루들이 아~~~주

자주 보여줍니다!

중국은 용마루, 내림마루를 네모난 사각형 전돌같은것을 설치해서 꾸밉니다.

 

중국쪽은 네모난 장식 기와를
용마루나 내림마루에 설치하는데...

 

관경서분도 그림 역시
개인적 추측으론 양성바름은
그냥 접착제 정도로 사용하고,

 

중국같이 저런식으로
네모난 장식 기와를 붙혀
만들어서 설치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하에 만들어봤습니다!

 

고려시대 중~후기 하앙
모습과 순각판을 설치한
모습 입니다!

 

저런 모습의 하앙은
각종 불교회화에서 자주
보이므로 예측이 가능하고,

 

중국, 일본식의 일자선이
들어간 순각판 또한~~

 

사실상 확실하게

사용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각종 고려시대및
조선 초기 건물들의 양식에서...


나름대로 유추및 확인이
가능한 사항이라서 한번

적용 해봤습니다.

 

또한 조선후기나, 고서화로

예측할 수 있는 구리 띠쇠,

 

고려시대의 자랑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고려 청자 기와및 장대석 기단,

창호문을 적용해봤습니다.

 

6.84m 기둥을 적용한 고려시대 누각의 최종높이는 22m, 근정전과 동일한 높이 입니다.

 

이 정도면,


그저 그림 or 회화

기법일 뿐이다!


라기에는 너무나

리얼하지 않습니까!?

 

학자님들께서 꼭 한번
제대로 연구해보셨으면

좋겠고,

 

이거 보시는 분들도
이제부터는...

 

개념을 조금 바꾸셔도
괜찮다고 생각 합니다.


" 고려시대때 2층 건물은 "
" 순전히 나무로만 만들었는데 "

 

" 돌로 쌓은 광화문과 거의 똑같은 높이 "
" 그뿐만이 아니다 "

 

" 조선 전기 고서화 건물 그림 "
" 고려시대 불교회화 그림들이"

 

" 기록에 남아있는 기둥 길이와 "
" 실제 비율로써 나름 교차검증 된다!!"

 

" 고려시대때 대형 누각들은 "

" 중국 일본과 거의 똑같은 크기 "
" 근데 이게 전국토에 한두개가 아니었을것! "


이라는 개념을 다시한번
정립하셔도 될 것 입니다!


########################################################

 

우리는 그저


"고려, 조선초기땐 2층 건물이 많앗데!! "

라고만 알고있지,

 

이 2층 건물이 얼마나 높은지는
학자나 박사, 찐 매니아 아닌이상
아예 체감을 못하고 있어요.

 

저도 몰랐었는데,

 

역사관심의 글을 읽어보다가
엄청나게 높은 기둥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역사관심님의 엄청난
추론으로 연구하신
기둥 높이를!!

 

실제 모습으로
보게 되었을 경우.....

 

고려시대 불교 회화와
이 추론으로 밝혀진
기둥의 높이 그리고~

 

건물의 비율이 엄청나게
교차검증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이제부터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 고려, 조선초의 2층 건물들은 "
" 순수 나무로만 거의 17~22m높이 "
" 경복궁 광화문은 성벽까지 18.93m "


" 조선 이전 누각은

"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 "
" 중국 일본하고 별 차이가 없는 수준 "

 


" 이런 20m급 누각들이"

" 전국토에 꽤나 있었을 것이다 "
" 엄청 많지는 않아도 지금보단 많았을 것 "


" 20m는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 "
" 왕족이나 그저 사찰에서 사용한 건물이 "
" 근정전에 필적하는 높이를 보여준다 "

 

 

그리고 언제나 엄청난

자료들로 추론하고~~


연구하시는 역사관심

님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역사관심님의

고려시대, 조선시대
기둥 관련 글을 보시고 싶으시면,

 

아래의 주소로

들어가셔서 보시면 됩니다!

 

 

http://luckcrow.egloos.com/2528030

 

사라진 건축 (7)- 구체적인 고려시대 '누樓'의 모습 (중층과 벽)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전통건축의 모습은 얼마나 될까요? 과연 한국의 시대별 건축의 다양한 모습을 얼마나 현대한국사회는 가시화해서 보여주고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누각'이라든가 '**루'라는 이름을 이야기하면 어떤 건축이 머리에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겁니다. 이것은 필자가 구글에 '한국의 누각'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본 구글이미지검색의 일부입

luckcrow.egloos.com

 


광고도 한번씩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 12줄 요약 ###

 

- 조선초 기록에 왕족은 누각 만들때
기둥 6.84m 까지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 이것은 18척이다.

 

- 고려시대 기록에 누각 기둥이 6m쯤 보이네?

라는 기록이 있다.

 

- 이 기록은 그냥 눈으로

보고 예측해서 적은 기록.

 

- 이 정도 외부 기둥은 현재는

조선시대 사찰에서 아~주 간혹 사용중.

 

- 근데 이정도 기둥 길이를

가지고 실제 건물을 만들면

 

- 고려시대 불교회화 그림과

아주 똑같은 모습이다.

 

- 그리고 중국에 똑같은

모습의 건물이 실제로 있다.

 

- 고려 불교회화의 건물 높이는
2차 사료들끼리 교차검증 되고 있는 상황

 

- 그래서 고려 불교회화는

실제 건물을 그대로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생각보다

 

매~~~~~~~~~~~~~~~~~~~~~~~~~~우 크다.

 

- 경복궁 광화문 높이는 성벽까지 18.93m.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성문이다.

 

- 이런 광화문이 고려~조선초 거대 건물들과
비교하면 보통 수준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

 

 

########################################################

### 훨씬 짧은 5줄 요약! ###


- 고려시대 사서기록대로 기둥을 실제 복원하면

 

- 고서화 그림하고 똑같은 높이다

 

- 실제 크기는 근정전에 필적한다

 

- 왕족, 대신들, 사찰에서 쓰던 누각이 이 정도

 

- 고려후기 - 조선초 2층건물은 중국, 일본만큼 높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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