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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려시대는 건축물에 주칠이 아닌!

 

붉은 옻주칠을 사용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고려시대는 그냥 주칠이 아니라

 

의외로 옻을 바른 옻주칠 기둥을

 

사용했을것으로 추정되는...

 

 

 

기록들이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2차 자료들하고도 나름대로

 

교차검증이 된다고 하네요.

 

 

 

고려시대때 옻주칠을 사용했을것으로

 

짐작되는 기록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고려시대 건물의 붉은 옻주칠에 대해서 *

 

 

 

 

 

고려시대 옻주칠 기둥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은 이렇게

 

3가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1 - 동국이상전집 : 최승제 십자각기

 

2 - 고려도경 : 회경전 편

 

3 - 고려사 : 신청 편

 

 

 

 

각 기록마다 어째서 옻주칠을

 

건물에 사용했을것으로 짐작되는지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 동국이상전집 : 최승제 십자각기

 

 

 

 

 

고려시대의 이규보(李奎報)

 

선생이 남기신 기록에 무려!

 

 

 

상록하단 단청에 붉은 옺주칠

 

기둥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문구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규보 선생께서 작성하셨던

 

동국이상국전집 제24권 / 기(記).

 

최 승제(崔承制)의 십자각기(十字閣記)

 

 

 

 

이 기록에 상록하단 단청 + 옻주칠 기둥

 

이것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요,

 

그 내용은 이렇다고 합니다.

 

 

 

 

 

### 이규보(李奎報) - 동국이상국전집 - 최승제 십자각기 ###

 

 

 

십자각의 형상과 괴이한 제도가

 

모두 제각기 다르게 보이니,

 

 

비록 예수(隸首)가

 

계산하더라도 아득하고...

 

 

멍하니 산가지[籌]를

 

버리고 세지 못할 것이다.

 

 

 

그 검붉고 붉으며, 검고 푸르고,

 

아로새기고 채색을 한 꾸밈이 환하게 붉고,

 

 

 

눈이 부시게 고와서, 노을처럼 알록달록하고

 

구름처럼 피어올라 명월이 빛을 흘리는 것 같고... (중략 )

 

 

최승제 십자각기 기록을 풀이하면, 고려시대는 상록하단 단청 + 옻주질 기둥 문화가 있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저 구절이 바로 상록하단에

 

옻주칠 기둥을 칠했다고 예상이

 

가능한 기록이랍니다.

 

 

 

그런데 어째서...

 

 

 

문구만 보고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라고 하면.. 그것은 바로 한문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문을 보겠습니다.

 

 

 

 

그 검붉고 붉으며, 검고 푸르고,

 

아로새기고 채색을 한 꾸밈이 환하게 붉고

 

 

 

이 대목의 한문은 이렇습니다.

 

 

 

其髹彤漆綠雕綵之飾 = 기휴동칠록조채지식

 

한문을 어떤것을 사용했는지 자세히 보겠습니다!

 

 

 

  = 그 기


= 옻칠할 휴


  = 붉을 동


= 옻칠 칠


  = 푸를 록


  = 독수리 or 새길 조


  = 비단 채


  = 갈 지


  = 꾸밀 식

 

 

 

 

한문을 보면 그냥 감이 오시죠!?

 

무려 옻칠에 관련된 한문을 2개나!

 

사용을 한 겁니다!

 

 

 

 

= 옻칠할 휴 /  = 옻칠 칠

 

 

 

 

한문을 2개씩이나 일부러 옻칠을

 

했다는것을 아주 정확하게 표기한 겁니다!!!

 

 

 

게다가...

 

 

 

  = 붉을 동 /   = 푸를 록 /   = 비단 채 /   = 꾸밀 식

 

 

 

 

이 한문을 보면 또 감이 오시죠?

 

붉고 푸르게 , 비단처럼 꾸몄다는데...

 

이 말만 보면 상록하단 단청을 의미하죠.

 

 

최승제의 십자각은 이런식으로, 상록하단 단청에 기둥을 옺주칠로 칠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한문들 때문에

 

옻칠 기둥의 존재를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입니다.

 

 

 

또한 최승제의 고려 십자각은

 

상록하단 단청인데, 강렬한 붉은색의

 

옻주칠 기둥을 사용한 건물이란걸 알 수 있습니다.

 

 

 

건축물 중에서 붉은색 + 옻칠을 잔뜩 칠하는

 

부분은 거의 기둥이나 난간이 대표적이므로...

 

 

 

 

한문을 보면, 유리마냥 광택이 나는 옻주칠 기둥이

 

있었겠구나! 라는 판단이 가능한 것 입니다.

 

게다가 옻칠에 관련된 한문을 일부러 2개나 사용!!

 

 

 

 

이러한 상황 때문에 옻주칠 기둥 + 상록하단 단청

 

콤비가 실제로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옻주칠 까지는 아닙니다만

 

상록하단에 주칠기둥 같은 경우는

 

조선시대 조차 사용하던 단청 입니다.

 

 

 

조선시대 주칠기둥 상록하단 정자의

 

기록은 바로 이 기록이라고 합니다!

 

 

 

 

 

중종실록 26권, 중종 11년 11월 15일 임진 1번째기사 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 조강에서 《예기》의 제통편을 강하다 -

 

* 어떤 신하가 중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신하 -

 

두모포 정자를 제안 대군(齊安大君)에게

 

주었으니 이 또한 불가합니다.

 

 

 

그 정자의 기둥을 모두 주홍(朱紅)칠을 했으니,

 

어찌 신하된 사람이 거처할 데 이겠습니까?

 

 

부산 두모포에 이런식으로 새빨간 주칠을 칠한, 주칠기둥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중종실록 26권, 중종 11년 11월 15일 임진 4번째기사 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 두모포 정자의 주홍칠을 벗기라고 전교하다 -

 

 

 

* 위에서 저렇게 의견을 말하자

 

결국 중종이 이렇게 답해줍니다.

 

 

 

 

-  중종 -

 

두모포 정자는 기둥에 주홍칠을 하여

 

과연 참람할 듯하니, 제안대군의 종들을

 

시켜 주홍칠을 긁어내도록 하라.

 

 

 

 

* 참고사항 :  이 시절의 주홍 = 진사 [ 경면주사, 주칠의 원료 ]

 

 

########################################################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에

 

부산 두모포쪽에, 기둥에 주칠한

 

정자가 있었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두무포의 조선시대 정자는

 

상록하단에 당주홍을 바른 주칠기둥

 

정자였을 탠데요, 이게 왜 중요하느냐!?

 

 

 

이 모습은 최승제 십자각기의

 

其髹彤漆綠雕綵之飾 = 기휴동칠록조채지식

 

이 기록하고 사실상 같은 양식이라서 그렇습니다!

 

 

 

 

두모포 정자는 옻칠은 아니지만...

 

 

 

고려시대 기록 / 조선시대 기록에서

 

둘다 주칠안료 진사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같다는 겁니다!

 

 

 

게다가...

 

 

 

고려시대 최승제 십자각 단청양식

 

조선시대 부산 두모포 정자 단청양식

 

둘다 주칠기둥에 녹색 단청인게 같죠.

 

 

 

다만 주칠안료에다가

 

옻칠까지 바르는건 아쉽게도,

 

조선시대에선 사용되지 않은 듯 합니다. 여튼

 

 

 

 

고려와 조선의 단청 문화가

 

충분히 연속성을 지니고 있고,

 

 

 

고려의 주칠기둥 단청 양식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을

 

굉장히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고려시절 문화가 내려온건지

 

혹은 왜관쪽이라 그런건지 잘 모르지만,

 

 

 

여튼 초록단청에 시뻘건 주칠기둥

 

건물이 실존했다! 라는 가장 신뢰성

 

높은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2 - 고려도경 : 회경전 편

 

 

 

 

 

고려도경 - 궁전 - 회경전 편

 

 

 

 

여기서도 건물에 광택나는 옺주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기록이 있어요.

 

그 기록은 이렇습니다.

 

 

 

 

 

회경전(會慶殿)

 

 

회경전은 창합문(閶闔門) 안에 있는데

 

전문(殿門)이 별도로 설치되어있다.

 

 

 

동서(東西)로 양쪽에 계단이 있으며

 

난간을 붉게 옻칠한데다 구리 꽃[銅花]으로

 

꾸미고 웅장해서 여러 전각 가운데 최고이다. 

 

 

 

 

저기서 중요한 대목은 바로 이 문장이고

이거 때문에 옻칠을 한 것으로 예상 가능합니다.

 

 

 

 

회경전은 난간에 붉은 옻칠을 했고

 

구리로 만든 꽃으로 장식했다.

 

바로 이 기록 때문입니다.

 

 

 

 

고려도경 회경전 기록에

 

한문으로 이렇게 적혀있어요.

 

[ 丹漆欄檻 : 단칠난간 ]

 

 

 

丹 : 붉은 단

漆 : 옻칠 칠

 

 

한문을 보면 옻칠 한문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니까 붉은색을 칠했는데

 

옻칠까지 했다고 한문에 정말

 

제대로 나와있는 것이죠. 물론...

 

 

 

[ 옻칠 칠 = 漆 ]

 

 

 

이 한문은 옻칠이 아니라, 그냥 뭐든지

 

물감이나 건물에 뭐 칠했을때 그냥...

 

 

 

옻칠 여부와 상관없이 가끔씩

 

사용하는 한문이라고 보시면 되요.

 

 

 

그래서 사실은 완벽한 옻칠 표현이

 

아닐수도 있고, 신빙성이 쬐끔 낮긴 합니다만...

 

 

 

 

여튼 한문이 옻칠에 관련된 한문이고,

 

또 다른 기록에서도 옻칠에 관련된

 

기록이 있으므로... 좀 애매하지만!

 

 

 

 

여튼 붉은 옻칠을 바른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3 - 고려사 : 신청 편

 

 

 

 

 

이 기록에서도

 

붉은 옻주칠 기둥에 대한 기록이 있어요.

 

기록에 대한 내용을 한번 보자면 이렇습니다.

 

 

 

 

 

 

고려사 > 권124 > 열전 권제37 > 폐행(嬖幸) > 신청

 

 

신청의 폐행 일곱번째는 이런것이다.

 

집에 커다란 누각을 만들었다.

 

그 누각의 벽에다 금을 칠했다.

 

 

 

기둥에 붉은 옻칠을 하는 등등,

 

사치하고 분수에 맞지 않게 행동했다.

 

 

 

 

고려의 신청이란 사람이

 

건물 벽에 금칠하고 기둥에 주칠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제 또 감이 오시죠!?

 

 

옻찰하지 않은 주칠기둥의 광택은 이 정도다. 유리같은 광택이 아니다.

 

 

 

우리 또 한문을 파해쳐볼까요!?

 

저 기록의 한문에서 기록된 기둥에

 

붉은 옻칠했다! 이 기록의 한문은 이겁니다.

 

 

 

 

[ 朱髹其楹 : 주휴기영 ]

 

 


朱  : 붉을 주


髹  : 옻칠할 휴


其  : 그 기


楹  : 기둥 영

 

 

 

그냥 한문 보시면 한방에

 

이해가 되실꺼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옻칠을 표현한 한문을

 

[ 확실하게 사용 ] 했다는 겁니다!!!

 

 

 

 

 


朱  : 붉을 주

 

髹  : 옻칠할 휴 [ 굳이 꼭 옻칠했다는 표현함 ]

 

其  : 그 기

 

楹  : 기둥 영

 

 

 

진짜 말 그대로 기둥에 붉은 옻칠했다,

 

그니까 옻주칠 기둥단청을 사용했다!

 

라고 적혀있는 것이죠.

 

 

게다가 좀 애매한 한문인

 

[ 옻칠 칠 = 漆 ] 이 한문이 아닙니다!

 

 

 

완벽하게 옻칠 표현을 뜻하는

 

[ 옻칠할 휴 : 髹 ] 한문을 사용했어요.

 

 

 

 

그래서 이 기록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고려시대 옻주칠 기둥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고려시대는 그냥 주칠이 아니다. 무려 유리마냥 광택나는 옻주칠 기둥이 있었을 확률이 매우높다.

 

 

 

 

그런데 사실 아쉽게도 완벽한

 

고려시대 옻주칠 단청 흔적이나

 

완벽한 자료는, 아직까진 아예 없습니다.

 

 

 

그 어떤 고려시대 실제 건축물에서

 

실제 옻주칠을 도포시킨 단청

 

자료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

 

 

 

그런데 그거 아세요!?

 

실제 건축물은 아니지만...

 

 

 

건물모양의 2차 간접 자료에

 

딱 하나 남아있다고 보셔도 된답니다!

 

그러면 이제 그 2차 간접 자료를 보겠습니다.

 

 

 

 

 

* 고려시대 검붉은 옻주칠 2차 간접자료 *

 

 

 

 

건물은 아니지만, 의외로 건물하고

 

매우 비슷하게 생긴 물건에서...

 

 

 

이게 그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건데 여튼

 

옻주칠이라고 생각되는 단청이 발견됬어요.

 

 

 

그 자료는 바로 이것 입니다.

 

[ 봉정사 극락전 닫집 ]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옻주칠로 예상되는

 

단청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누구도 단청 성분 분석을 하지 않아서...

 

이게 완벽한 옻주칠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색깔을 보면 이게... 그냥 옻칠이 아닌

 

검붉은 옻주칠로 예상할 수 밖에 없는

 

색감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럼 볼까요?

 

 

사진 출저 - https://blog.naver.com/jadan58/

 

 

 

외부는 색이 다 바래버렸는데, 이렇게

 

극락전 닫집 내부는 붉은칠이 남아있어요.

 

 

 

색깔을 보세요! 그냥 초고추장 색이 아니라

 

뭔가 좀 검붉은 색상으로 보이는게 확인되죠!?

 

 

 

 

 

되게 새빨간 주칠색인데

 

약간 톤이 어둡고 진하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바로 저.....

 

살짝 검붉은 톤이 옻칠을 한 증거 같아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님들 위에 기록중에 이거 있죠?

 

이규보 - 최승제 십자각기 이거요.

 

 

 

거기 한문을 자세히 보면, 사실은

 

이러한 내용이 숨겨져 있습니다.

 

 

 

 

한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其髹彤漆綠雕綵之飾 = 기휴동칠록조채지식

 

 

 

여기에 트릭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그 트릭이 뭘까요!? 바로 이것 입니다.

 

 

 

 

  = 그 기


= 옷칠할 휴 OR  [ 검붉은빛 휴 ]


  = 붉을 동


 = 옻칠 칠


  = 푸를 록


  = 독수리 or 새길 조


  = 비단 채


  = 갈 지


  = 꾸밀 식

 

 

 

최승제 십자각기의 옻칠 기둥은

 

정확하게 옻칠 했다는 한문을 사용했는데,

 

 

 

옻칠하다 라는 뜻도 있지만

 

검붉은빛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닫집의 외부도 순각판같은곳에 붉은칠이 남아있따.

 

 

 

 

저 한문 때문에, 고려시대 옻칠기둥은

 

검붉은빛이라는걸 알 수도 있는 상황.

 

 

 

 = 옷칠할 휴 OR   [ 검붉은빛 휴 ]

 

 

 

옻칠을 했기 때문에, 주칠색이 검붉게

 

변해서 저런 뜻을 얻지 않았을까...?

 

 

 

라며 저는 혼자

 

생각해보고 있는데요...

 

 

 

이렇게 뜻이 2개나 있는 상황에서

 

봉정사 닫집의 주칠색상은...

 

 

 

일반적인 주칠 색상이 아니라 되려

 

검붉은빛 색상을 띄고 있는 상황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출토 12세기 단청. 적갈색과 주칠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우측 대첨차 주칠색을 보세요.

 

실제 주칠색은 저렇게 경쾌한듯한데

 

톤이 꽤 밝고 강렬한 붉은색 입니다.

 

 

 

저 색상은 옻칠을 하지 않은, 순수한

 

주칠색상의 기본이 되는 색상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닫집의 주칠색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색이 바랬지만

 

여튼 주칠의 색상을 띄고 있는데...

 

 

 

조금 다르게 검붉은 색을 띄고 있는 것이죠.

 

 

 

봉정사 극락전 닫집의 주칠 색상은

 

최승제 십자각기 한문의 검붉은 옻칠!

 

 

 

한문 하고 완벽하게 교차검증 되는게...

 

봉정사 극락전 닫집의 주칠색 입니다.

 

 

고려시대 단청. 다채로운 색상을 단청 바탕색으로 사용한다.

 

 

 

 

 

근데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죠.

 

 

 

[ 근데 저건 닫집에 주칠 한거잖아 ]

 

[ 옻주칠 단청을 건물에 실제 했다는 증거 있음? ]

 

[ 고려 단청이 온통 붉은색만 칠했다는 증거 있음? ]

 

 

 

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예.

 

건물에 옻주칠을 한 자료는 없습니다.

 

적어도 국내 자료에서는 0 입니다.

 

 

 

 

만약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게 지롷염병

 

하면서!!! 사서 기록을 번역을 고증하는

 

이;런 힘든 짓은.... 하고 있지 않겠죠!? ㅠㅜ

 

 

 

 

 

그러나!!!

 

대신에 이런 자료 정도는 있습니다.

 

[ 건물 단청에 실제로 주칠을 했다 ]

 

 

 

[ 또한 주칠은 아닌데, 붉은색 안료만 바른 ]

 

[ 흰벽에 붉은단청 건축물! 자료 정도는 있다. ]

 

 

 

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자료들을 한번 보겠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출토 12세기 단청. 적갈색과 주칠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봉정사 극락전 내부 단청은

 

실제로 발견된 고려시대 단청입니다.

 

 

 

파랑꽃의 대량 / 대첨차 / 뜬장혀

 

이 단청들 배경색을 보시면 알 수 있죠??

 

 

 

옻주칠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건축물 단청에 실제 주칠을 사용했습니다.

 

 

 

 

주칠이 아닌 붉은흙이나

 

주황색 위주로 사용을 하는

 

조선시대 단청하고 다르게,

 

 

 

고려시대때는 실제로 단청 배경색을

 

주칠을 칠했고, 건축물에 주칠을 직접

 

사용하는 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단청하고 다르게, 고려시대 단청은 주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었다.

 

 

 

또 다른 자료는 교려 불교회화 입니다.

 

고려시대 불교회화는 전부 주칠이긴 한데요...

 

 

 

그 중에서도 실제 고려시대때는

 

건축 기둥에 주칠을 칠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나름 신뢰도가 매우 높은

 

불교회화가 하나 있습니다!

 

이 고려시대 불교회화는 이것 입니다.

 

 

1312년 그림.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주칠 기둥이 인상적이다.

 

 

 

이 고려시대 회화는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라고 합니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죠.

 

보면 딱 보이잖아요?

 

 

 

기둥과 브라켓에 주칠했음. 그리고 흰벽임.

 

전형적인 주칠 기둥으로 단청한 회화입니다.

 

 

 

근데 저게 회화인데 어째서 주칠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요? 사진을 더 봅시다.

 

 

난간은 옅은 적갈색, 브라켓과 탁자는 새빨간 주칠로 정확하게 구분해서 채색했다.

 

 

 

이 그림도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에

 

그려진 그림의 일부분 입니다.

 

 

 

뭐... 설명없이 그림만 봐도

 

한번에 이해가 되시죠...??

 

 

 

만약 건물들 단청이 무지성으로

 

전부 빨강색만 칠한거라면, 아마도

 

저 난간도 그냥 주칠색 칠했겠죠???

 

 

 

 

그런데 저 건물은 유일하게

 

[ 옅은 적갈색 ] 이걸로 일부러 채색했음.

 

 

 

주칠이 아니란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그렸다는 것임.

 

 

 

그래서 이 관경서분도는 주칠/석간주를

 

나눠서 채색한다는 문화가 있었다는걸

 

자세하게 보여주는 회화자료며,

 

 

 

붉은색을 철저하고, 확실하게 가려서

 

사용한다는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 입니다.

 

 

고려 불교 회화의 난간색은, 조선시대 궁궐에서 가끔 보인다.

 

 

 

그 증거로써 조선시대

 

궁궐 기둥색을 들겠습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아직도

 

이런색의 기둥이 가끔씩 보이는데요,

 

 

 

약간 희멀건듯한 적갈색......

 

고려시대 회화에 그대로 있죠!?

 

 

 

 조선시대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옅은 적갈색 안료를... 고려시대

 

불교 회화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사용한겁니다.

 

 

 

 

이 말의 뜻은 이겁니다.

 

적갈색과 / 주칠색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한게 고려 입니다.

 

 

 

실제 건물은 적갈색인데

 

불교회화라서 그냥 주칠한거 아님??

 

이런 주장이 먹히지 않는다는 뜻 입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조선시대 적갈색은 아예

 

확실하게 인지해서, 따로 사용했으니까요.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에 나오는 전체 주칠 단청을 / 궁궐의 상록하단과 비교해보았다.

 

 

 

 

그래서 오른쪽 그림의 주칠 기둥은

 

확실하게 주칠로 인지해서 칠했다는걸

 

알 수 있는 상황인 것이고..

 

 

 

실제 고려시대 기록에 남아있는

 

기둥에 옻주칠을 했다! 라거나...

 

난간에 붉은 옻주칠을 했다!

 

 

 

라는 기록하고 정확하게 서로 교차검증

 

되고 있는, 현재까지는 유일한 회화자료 입니다.

 

 

 

고려사 신청 기록의... 붉은 주칠기둥 기록과

 

1312년 일본 대은사 관경서분도의 주칠 기둥이 서로...

 

 

 

회화 <-> 사서기록

 

동일하게 교차검증 된다는 뜻이죠/

 

 

상록하단은 물론, 전체 주칠 단청도 의외로 한국의 전통단청이다. 고려회화및 봉정사 닫집에서 확인가능하다.

 

 

 

그래서 이제 흰벽에 붉은칠을 하는

 

흰벽에 붉은색 가칠단청은 일단...

 

 

 

고려시대 회화로써 알 수 있는

 

상황입니다만, 실제론 어땟는지

 

잘 모르는게 사실이기는 합니다.

 

 

 

 

근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일단 실제 자료가 없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건물들 단청 대부분이

 

흰벽에 붉은색만 칠한 건물들이

 

없어서 그렇다!!!

 

 

 

라고 생각해서 일겁니다. 보통

 

조선시대 단청은 상록하단이라

 

붉은색만 칠한 건물은 거의 없죠.

 

 

옻주칠 건물 / 그냥단청 건물 / 단청하지않은 건물을 비교하면 이런 느낌이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의외로!!!!!! 조선시대 단청도 실제로는!!!!!

 

 

 

주칠은 아닙니다만,

 

 

 

흰벽 + 붉은칠만 한 단청이라던가,

 

색벽 + 온리 붉은색만 칠한 단청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합니다.

 

 

중묘의 단청은 가칠단청 이다.

 

 

 

그런 붉은칠만 한 단청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바로 종묘 입니다.



종묘는 이런식으로 붉은칠만 하고

일부분만 초록색 / 벽체는 붉은색을

칠한 건축물 입니다.



이렇게 붉은색만 전체적으로 칠하고,

첨차배나 서까래 얼굴면 같이 일부분만

하얀색 or 초록색으로 칠한 단청을 이렇게 불러요.

 

 

종묘의 붉은색만 칠한 단청은

 

[ 가칠단청 ] 이라고 부릅니다.

 

강진 여택정. 흰벽에 붉은칠만 칠했다. 이런 단청을 [ 가칠단청 ] 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가지색으로만 칠하는 단청을

통틀어서 그냥 가칠 단청이라고 부르는데요,

이제부터는 [ 주토단청 ]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사실 [ 주토단청 ] 이 용어는

전문용어가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만든 용어 입니다.

 

 

 

 

가칠단청이지만, 일부러 주토단청

이라고 이제부터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렇습니다.

고려사 신청편에 기록된 붉은 옻주칠 기둥과 부계( 4면 퇴칸 차양 )을 적용한 고려시대 우진각 겹지붕 전각

 

 

 


보통 이렇게

 

일본 / 중국식으로 주칠을 칠한

단청을 주칠 단청이라고 부르죠? 

 



예 맞습니다.

 

주칠단청이 맞긴 한데요.

 

 

 

한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광주향교의 가칠단청. [ 안료가 주칠이 아니다 .] 그래서 엄밀하게 주칠단청이 아니다.

 

 

 

 

광주향교의 단청은

 

주토 or 석간주 라는 흙이나

 

산화철 계열 안료를 사용합니다.

 

 

 

 

주칠 안료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주칠단청 안료 : 황화수은 = 진사 = 경면주사 ]

 

[ 광주향교 안료 : 주토 or 석간주 or 산화철 ]

 

 

 

 

광주향교같은 단청은 사실은 정확하게는

 

가칠단청 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만,

 

 

 

 

그냥 흰벽에 붉은색 이니까 무작정

 

주칠단청 ! 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다수죠.

 

 

주토와 주칠은 이만큼 다르다. 그러나 주토단청은 정식명칭이 없어서, 간혹 주칠단청이라고도 부른다.

 

 

 

주칠이 아닌 주토계열 단청만 바른

 

단청 이름은 특별히 없다니보니까...

 

 

 

 

걍 보기에 비슷한 주칠단청

 

이라고 하는 상황입니다만...

 

 

 

그러나 주칠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냥 비슷한 붉은흙 안료인 주토를

 

사용했으므로...

 

 

 

광주향교 같은 단청은 정확하게는

 

가칠단청 이라고 하는게 정확합니다만...

 

 

김산향교 대성전. 이런 상록하단식의 단청도 가칠단청이다.

 

 

 

근데 또 문제는 이런 초록색이

 

들어간 단청도 가칠단청 입니다. 

 

 

 

색 배합이 어떻든

 

무늬없이 단순하게 색칠하면

 

전부 다 가칠단청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용어로 인하여 건축 이미지의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전주향교 대성전. 전형적인 상록하단인데 아무런 무늬없는 단청도 그냥 가칠단청 이라고 한다.

 

 

 

이런 여러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용어로 인한 이미지 혼동을 줄일겸!

 

 

 

 

주칠과 주토는 색상및 안료부터 다르다!

 

라는 팩트를 알리기 위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쉽게 이해하실겸!!!

조금 더 알기쉽고, 직관적이고, 사실관계가

확실한 단어라고 생각되는...



[ 주토단청 ]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 입니다. 제가만든 용어니까

이 게시물에서만 사용하겠습니다!

 

 

종묘의 단청도 공식적으로 가칠단청이다. 용어 하나에 색상 타입이 많아서 혼란스러울 수 있다.

 

 

 

조선시대 종묘.

 

전부 붉은색의 주토단청 입니다.

 

 

 

조선시대때 붉은색만 칠한 단청은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에요.

 

 

 

이쪽 분야의 최고봉인 종묘가 있습니다.

 

비록 뭐 초록색을 조금 사용했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되게 쉽습니다.

 

[ 고려건물에서 흰색 사용한 부분들을 ]

 

[ 조선에서는 초록색으로 대처만 했음 ]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게 쉽습니다.

 

그냥 더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진으로 보면서 비교하겠습니다!

 

 

1312년 그림.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서까래를 자세히 봐 주세요.

 

 

 

고려시대 회화의 서까래를 자세히 봐 주세요.

 

서까래 끝부분을 하얗게 칠한게 보이죠?

 

 

 

이 회화에서 알 수 있는것은 고려시대는

 

고려시대는 서까래 끝부분을 하얀색으로

 

칠하는 문화도 있었다는걸 알 수 있죠.

 

 

 

그럼 이제 종묘 건물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불교 회화가 서까래쪽을

 

하얀색으로 칠하고 대부분은

 

붉은색으로 칠했는데..

 

 

 

종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색이 초록색인거만 뺴면, 고려시대의

 

불교회화하고 채색법이 거의 똑같습니다.

 

 

 

근데 벽색상이 흰색이 아니죠?

 

그럼 흰벽에 붉은색 건물들도 우리한번 볼까요?

 

 

 

 

여기도 광주 향교 인데요.

 

이런식으로 지방 향교같은 경우는...

 

 

 

알게 모르게 붉은칠에 흰벽으로 꾸미는

 

건축 단청양식이 전승되고 있는 상황이죠.

 

 

 

재밌는건, 서까래 끝부분이 하얀색인거 마져

 

고려시대 불교회화하고 매우 비슷한 상황이죠!

 

 

 

 

이건 임실쪽의 토속 신앙이었나..?

 

아무튼 전혀 알려져있지 않은

 

그런 사당같은 전각인데요...!

 

 

 

이런식으로 대중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지방쪽

건물들 보면...

 

 

 

알게 모르게 붉은칠+흰벽 단청을

 

생각보다도 자주 사용 한답니다.

 

 

 

흰벽에 붉은칠 단청은 진짜 조용히,

 

소리소문없이 내려오고 있는중이죠.

 

 

청간정. 흰벽에 주토단청을 바른 정자다.

 

 

 

수많은 지방의 정자들은 이런식으로

 

온통 붉은색 + 흰벽조합 단청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이런 단청이 조용히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죠.

 

 

 

 

근데 그럼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죠.

 

 



[ 지방 정자들이 주토단청 이건 이해하겠다 ]

[ 근데 자세한 기록이 없지 않은가? ]

 



[ 지방에 내려오는 건물들이 실제로 ]

[ 흰벽에 붉은안료를 바른 단청이]

 

[ 확실한 고증이라는 증거있음 ? ]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런 모습이 고증이 맞습니다!

 

1748년 김희겸 선생의 그림 = 전일상한유도

 

 

 

이 그림은 경상좌병사 전일상 조상님이

 

지방의 한 정자에 계셨을때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한유도 입니다.

 

 

 

그림만 보셔도 아시겠죠?

 

단청이 주토단청 입니다.

 

또한 외벽은 흰색 입니다.

 

 

 

흰벽에 붉은칠만 칠한 주토단청을

 

표현한 건물이며, 실존인물을 그린 작품!

 

기록화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화에 가까운 고서화에

 

흰벽에 주토단청이 그려진 것 입니다.

 

 

 

기록화에 주토단청이 남아있으므로

 

고증 / 신빙성 모두 높은 상황 입니다.

 

 

 

 

그럼 봉정사 극락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보통 닫집보면

 

이런 말을 자주 하기는 합니다.

 

 

 

[ 닫집은 실제 건물하고 비슷하기는 한데 ]

 

[ 실제 건물보다 오버해서 꾸며서 믿을수가 없다 ]

 

 

 

라고 말을 합니다. 일리있는 말 입니다.

 

보통 닫집이 훨씬 화려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봉정사 극락전 닫집은 좀

 

많이 다르게 봐야되지 않을까요?

 

 

종묘 칠사당 내부.
종묘 공신당 내부. 흰벽에 주토단청을 바른 흰색 회벽의 붉은단청이다.

 

 

 

봉정사 닫집의 옻주칠 단청같이

 

붉은칠만 칠한 건축물들은 확실히...

 

 

 

종묘/ 고서화 / 지방건축 등등

 

꽤 여러군데에서 발견됩니다.

 

 

 

비록 조선시대는 사치를 금하여

 

옻칠이나 주칠안료는 아니지만,

 

 

 

붉은흙 안료인 주토를 건물 전체에 칠하는

 

문화가 아무튼 내려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1312년 그림.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그리고 그런 단청은 고려시대

 

회화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며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 확인이

 

가능한 붉은칠 + 흰벽 조합은...

 

종묘의 건물 단청하고 같습니다!

 

 

 

 

 

고려의 그림 자료 -> 조선의 실제 건축물

 

이런식으로 교차검증 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여러가지 자료들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고려 -> 조선으로

 

건축양식은 전승이 잘 됬다는 것!

 

 

 

고려에서 조선으로 건축양식과 문화가

 

전승이 잘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거죠.

 

 

봉정사 극락전 출토 12세기 단청. 적갈색과 주칠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실제 고려시대 단청도 주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게 밝혀졌고,

 

 

 

이규보 선생의 최승제 십자각기에

 

상록하단에 붉은 옻주칠을 했을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자료들이 단청에 실제

 

주칠을 사용했다는 점 / 온통 붉은색만

 

칠한 단청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알려주고 있죠.

 

 

 

그렇다면...!

 

 

사진 출저 - https://blog.naver.com/jadan58/

 

 

 

봉정사 극락전 닫집의

 

온통 붉은빛의 옻주칠 예상 단청은,

 

 

 

고려시대때  실제 건축물에 사용했던

 

주칠 단청을 그대로 가져온게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온통 붉은색으로 꾸민

 

불교회화가 마냥 허구가 아니다!

 

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상황!

 

 

불교회화의 붉은칠 단청이 마냥

허구가 아니라는 뜻 입니다. 그럼

다른 자료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두번째 자료는 고려 후기 비로자나불도 입니다.

3층 목탑 건물인데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는

전각 타입의 목탑인듯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기둥과 보, 쇠서같은

건축 프레임들을 전부 붉은칠만 칠했는데,



1층쪽 기둥과 도리 사이를 자세히 보시면

나름 흰색벽이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흰색벽이 너무 일부분만 존재하기 때문에

조금 부족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 회화도

 

몇없는 고려시대 흰벽에 주토단청 자료에요!

 

 

지붕의 흰색 전통시멘트로 칠한 부분을 양성바름이라 한다. 고려 불교회화하고 교차검증 된다.

 

 

 

게다가 청자기와 + 하얀 양성바름

 

자료라서 더더욱 귀중한 자료에요...

 



조선시대 용마루가 하얀색이죠? 

 

이걸 양성바름 혹은 양상도회라고 하는데요.

 

 

윗쪽 고려시대 회화 지붕을 자세히 보세요.

 

그럼 조선시대 양성바름같이 하얀색 칠을

 

해놓은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성바름 or 양상도회. 둘다 맞는 단어니까 아무거나 사용해도 좋다.

 

 

 

바로 이 하얀색 양성바름의 가장 이른

시대의 회화 자료라고 보셔도 된답니다!

 

 



하얀 용마루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는걸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표현해주고

있는 그러한 그림 입니다.

 

 

 

아 참고로 재밌는거

 

하나 알려드릴꼐요.

 

 

 

고려 사서 / 고려 불교회화

 

이 두가지가 어디까지 교차검증

 

제대로 되는지 알 수 있는 자료 입니다.

 

 

 

 

 

고려사 >  지 권제26 > 여복1(輿服 一) > 여로(輿輅)


의종이 상정하기를

 

상로(象輅)에 대해서 말했다.

 

 

주칠(朱漆) / 금도금[金塗] /은 銀

 

장식을 달고 상아 장식은 이 끝에 단다.

 

 

 

 

 

그리고 초요련을 꾸밀때는 반드시

 

주칠·금도금·구리로 된 용과 봉황으로 장식을 한다.

 

 

 

[ 상로(象輅) : 왕이 타던 수레 ]

 

[ 초요련(軺𨍳輦) : 왕이타던 가마 ]

 

 

 

 초요련 한문 : 軺𨍳輦, 以椶梠爲屋 [ 朱漆 ]

 

 

고려 불교회화에 나온 수레와 가마. 왼쪽 상단이 상로(수레) / 왼쪽하단이 초요련(가마)

 

 

 

그림을 자세하게 봐 주세요.

 

고려사 기록에 나오는 수례와 가마

 

기록에 적혀있는 내용하고 정확하게 일치하죠?

 

 

 

 

황금봉황 장식 / 붉은주칠 / 금도금 장식 / 상아장식

 

 

 

 

고려 의종께서 말씀하신

 

수레 / 가마 모습 그대로 입니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일치 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진짜로

 

생각보다 발견 진짜 많이되요.

 

 

 

 

고려 사서기록과 고려 불교회화는 이런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꽤 확실하게 검증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려 불교회화가 생각보다

 

무작정 상상이 아닌, 검증된 모습을

 

그린 정황이 꽤나 많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검증력을 너무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사서하고 엄청 교차검증 잘 되니까요...!

 

 

 

그래서 고려시대 건축물에는 실제로

 

붉은 옻주칠 사용해서 되게 빨갛고

 

반짝반짝 유리마냥 광택나는 멋진!

 

 

 

옻 주칠 기둥을 사용했을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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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

 

 

이 게시물의 내용은 23년 12월 15까지

 

연구된 내용을 기재한 것 입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변화/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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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줄 요약 -


고려도경 기록 = 난간에 옻주칠 했다 함.

고려사 기록 = 기둥에 옻주칠 완벽하게 표기.

이규보 최승제 십자각기 = 옻주칠 한문을 완벽하게 표기.

 



고려시대는 기둥에 옻주칠 한 걸로 예측 가능

 

봉정사 극락전 닫집이 옻주칠 한걸로 예상됨.

 

 

 

고려회화 관경서분도는 주칠/석간주 분리하여 건물에 칠했음.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도 옻칠까진 아니어도, 실제로 건물에 주칠했다.

 

 

 

 

 

2. 숭례문 기둥색을 고려시대 상록하단 단청하고 보기

 

 

 

 

고려시대 단청은 이렇게 상록하단 스타일도 있었을 것이다.

 

 

 

얘들아! 너네들 숭례문 단청 새로 칠한거

 

알고 있지? 이런저런 이슈가 있었는데...

 

 

혹시 이거 아니?

 

숭례문 기둥색이 많이 주황색이라는거?

 

 

숭례문의 기둥은 본 사람들도 사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데,

 

거의 주황색에 가까워.

 

 

 

우리의 생각으로는 조선시대

 

건물은 기둥색이 적갈색 이잖아?

 

 

 

좀 붉은빛 나는 갈색 말이지.

 

이런식으로 말이야.

 

 

우리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궁궐의 기둥색이야.

 

 

이렇게 비교해보면 숭례문의 기둥은

 

확실하게 주황색으로 보이지?

 

 

 

근데 궁궐 기둥색은 저런 붉은 적갈색,

 

팥알색깔 같은 붉은색인데...

 

 

 

왜 숭례문의 기둥은 지금 현재

 

주황색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이거야.

 

실제로 존재하는 울릉도 석간주 안료 - 출저:https://blog.naver.com/gongod5537/

 

 

 

왜냐하면 이유는 이래.

 

숭례문 단청 복원을 할때,

 

전통 단청 개발을 하기로 했어.

 

 

 

그 중에서 기둥색은 울릉도에서 직접

 

채취할 수 있는 [ 울릉도 석간주 ]

 

 

 

이 재료로 전통 안료를 만들어

 

기둥에 색칠해서 그런거야.

 

 

 

이 울릉도 석간주는 뭐 언제부터

 

울릉도껄로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기둥색을 관찰해보면, 울릉도 석간주하고 색이 거의 같은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석간주 안료라면은 의외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쉽게 확인되.

 

 

 

고구려에서는 철저하게 사용을

 

하고 있었던 그런 색상이지.

 

 

 

고구려는 울릉도 말고도 석간주 안료를

 

얻을수 있었나...주황색 기둥색을 엄청

 

많이 사용했음.

 

 

 

아무튼 저 주황색빛 울릉도 석간주 안료는

 

의외로 고구려부터 사용한 안료야.

 

 

 

진짜 역사깊은 근본중에 근본

 

그 자체지. 신기하지 않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모를거야.

 

숭례문의 주황색에 가까운 기둥 색상이

 

우리의 근본 전통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을...

 

 

울릉도 석간주로 만든 안료는 이렇게 톤이 꽤 강하고 주황색에 가깝다.

 

 

 

아무튼 전통안료 복원을 위한

 

첫 프로젝트로써 숭례문 복원이

 

선택된거야.

 

 

 

그래서 저기다가

 

전통 석간주 안료를 만들어서 바른거지.

 

 

 

그래서 숭례문을 가까이 가서 직접 보면

 

붉은빛이 꽤 진하게 감도는, 생각보다...

 

 

 

톤이 꽤 밝은 주황색 기둥을 실제로

 

확인 할 수 있어. 바로 이렇게 말이지!

 

숭례문 단청과 기둥색상. 의외로 주황색 기둥이다.

 

 

 

그런데 숭례문 가까이서 보려고

 

성문이나 누각을 올라갈수는 없잖아?

 

 

 

그래서 멀리서만 봐야하니까

 

숭례문의 단청 색상을 감상하기가

 

사실 좀 어려운 면이 있지. 게다가...

 

 

 

가까이에서 보면 생각보다 높아서

 

고개들고 봐야되서 꽤 지치기도 하지.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본거야!

 

숭례문 기둥 / 고구려 고분

 

 

여기서 볼 수 있는 주황색 기둥을

 

고려시대 건축에 적용하면 어떨까?

 

 

 

이게 너무 궁금해서

 

만들어본거임.

 

 

 

그리고 단청을 상록하단화 시켜서

 

숭례문과 비슷하게 만들어봤음.

 

 

 

어때!? 훨씬 잘 보이지?

 

이렇게 보니까 훨씬 더

 

눈에 팍팍 들어오지!?

 

봉정사 종도리 출토 단청을 2제공 뜬장혀에 접목시키니 불광사의 익형공과 똑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고려시대 단청인데 너무

 

초록초록한게 조선시대 단청같잖아...??

 

 

 

사실 이 단청은 봉정사 극락전에서

 

출토된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말이지.

 

철저하게 상록하단화 한거야.

 

 

 

고증에 틀리지 않게 진짜

 

초록색만 일부러 골라서 만들었어.

 

 

 

숭례문 느낌 최대한 많이 나라고

 

일부로 초록색으로 만들었음.

 

근데 실제로는 이러함.

 

봉정사 출토 12세기 고려단청. 초록색이 많긴하지만 의외로 초록색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단청은 이런 색감이야.

 

 

솔직하게 초록색을 되게 많이 사용해서

 

거의 상록하단 비슷한 느낌이기는 함.

 

 

 

근데...

 

자세히 보면 무작정 초록색만 사용한 단청은

 

사실 아니야. 그럼 더 자세하게 볼까나!?

 

 

내가 봉정사 단청 복원할때 이게

 

뒷쪽에 가려진 부분이나 사진에

 

제대로 안나와서...

 

 

거의 비슷한 위치에 나름대로

 

비교하라고 복붙에서 올려봄.

 

10~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적용한, 봉정사 극락전 ( 봉정사 극락전에서 출토된 단청 )

 

 

근데 위에 올린 3개의

 

사진들 자세히 보면 알겠지?

 

 

자세히 보면

 

단청색이 의외로 붉은색을 많이

 

사용했고, 파랑색도 꽤 많이 사용함.

 

봉정사 극락전 출토 단청을, 초록색 위주로 활용하면 상록하단 단청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사실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을 활용한다면,

 

 

이런 온리 초록색만 잔뜩 사용한

 

상록하단 스타일의 단청 단청은

 

고증에 틀린것임...

 

 

이렇게 붉고 / 파랗고 / 초록색이고

 

이 3가지 색깔이 조화롭게 들어가야

 

진짜 고려시대 단청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겠지?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가 숭례문을

 

실제로 보기는 좀 불편한게 많아서

 

자세히 보기 힘드니까...

 

 

숭례문 느낌으로 한번 보자는 차원에서

 

고려시대 단청을 상록하단화 시킨거야.

 

 

 

그러니 그냥 상록하단 단청과

 

주황색 기둥 보며 그냥 즐기라구!

 

 

상록하단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옥색깔의 상록하단이

 

나름대로 청자기와 색깔이랑 잘 어울리는 듯...?

 

 

 

상록하단 단청이 전국 조선팔도

 

아무대서나 막 보이니까 좀 지루할 뿐이지...

 

 

 

그래도 고려시대 무늬로 상록하단화

 

시키니까 꽤 볼만하지 않니? 아닌...감....?

 

 

이런식으로 상록하단에 주황색

 

기둥을 설치하면 뭔가 좀 당근같은

 

느낌도나고 재밌음.

 

 

 

전통 석간주 기둥색상 많이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뭔가 덩쿨무늬가 너무 많은데

 

기둥이 주황색이라서 그런가...

 

만든 내가 봐도 당근 같구마이...

 

 

 

이런 상록하단 당근 단청이

 

생각보다 훨씬 더 청자기와하고

 

금장식들하고 궁합이 되게 좋은 듯...?

 

 

 

청자기와에 엄청 화려한 금동장식을

 

미친듯이 설치했는데도 왜인지.....

 

 

 

실제론 미칠듯이 사치부렸는데,

 

전혀...

 

 

 

사치부린 느낌은 하나도 안 드는듯.

 

이게 검이불루 화이불치 뭐 그런건가...?

 

 

그래서 이 게시물에서만 써보는건데...

 

솔직히 상록하단 단청도 나름대로

 

활용했음 좋겠어.

 

 

 

고려시대 단청도 말이야...

 

이게 나는 꽤나 예쁘다고 생각함.

 

 

 

게다가

 

전통 석간주 기둥색상도 말이야.

 

주황색 기둥색 꽤 멋지지 않니??

 

 

 

그래서 전통 석간주 안료는

 

이제부터라도 많이 이용했음 좋겠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온갖 금장식에

 

값비싼 구리장식 , 청자 기와로

 

도배를 했어도..

 

 

 

단청이 상록하단이라 그런가

 

막 되게 화려하지는 않게 느껴지잖아?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절제미,

 

화려하지 보이기엔 화려하지 않은...

 

 

 

검이불루 화이불치 그 자체같음.

 

고려시대 단청과 건축 양식을

 

이런식으로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다.

 

 

고려시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쌍하앙 양식을 설치하면 뭔가 되게...

 

 

 

지붕 처마에 가시가 돋힌거처럼 보임.

 

이런 뾰족한 처마의 모습도 앞으로

 

많이 봤으면 좋겠음.

 

 

아무튼 이런 주황색 기둥을

 

여기저기서 더 많이 / 쉽게

 

보면 좋을거 같지 않니?

 

 

나는 숭례문을 시작으로, 이러한

 

전통 안료로 단청을 그린...

 

 

 

멋진 전통건축물들을 더 많이,

 

일생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우리나라는 일상에서 한국의

 

전통적인걸 보고, 느끼기가

 

너무 쉽지가 안잖아...?

 

 

 

우리나라도 일상에서 다양하고

 

멋진 전통을 쉽고 편하게 즐기는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구나!

 

 

 

그럼 재밌게 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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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게시물에서 어째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어째서 모조리 상록하단 획일적


단청을 하는가에 대해 알아봤죠?

 

 

이번 게시물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 주의사항 ###################################

 

이 게시물은 100% 정확한 답을

 

드리는 게시물은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추론하여


작성한 게시물 입니다.

 

 

 

그러니 모든 내용이 100% 정답인

 

게시물은 아니므로, 그 점을 염두해

 

두시고 읽으시면 , 도움이 될 겁니다.

 

 

##############################################################################

 

 

 

앞쪽 게시물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1. 고증 관련

 

2. 현실적인 문제

 

3. 상록하단이 아닌걸 알면서도 왜 실제로 계속 사용하는가에 대한 고찰

 

 

 

 

이게 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이유를 3가지 입니다. 문단별로

 

글을 적어보겠습니다.

 

 

 

 

3. 우리나라 모든 고대 건축물을 상록하단 단청으로만 복원 하는 이유 - 현실적인 이유

 

 

 

 

어째서 단청을 연구한데로

 

복원하지 않고 상록하단으로

 

채색하는가? 라는게...

 

 

 

우리들이 항상 궁금해하는 점

 

입니다. 대충 왜 이런지 현실적

 

관점에서 적어보겠습니다.

 

 


1. 고증 관련

 

 

* 꽤나 긴 내용 입니다. 꽈자 먹으면서 보세요!

 

 

 

-고대 건축은 고구려 벽화나 고분/

 

봉정사 극락전과 안압지 출토품 등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 정확하게 말하면 단청은 완전 다르다.

 

 

 

-단청은


- 고구려만 완벽하게 남았다.

 

- 고려만 완벽에 가깝게 남았다.

 

 

- 고려 / 고구려를 제외한 나라들은

 

사실상 실제 단청 자료가 없다.

 

 

고구려 강서대묘 7세기 고분
고구려 강서중묘 모사도 / 7세기 초반 추정
강서중묘 / 강서대묘 / 진파리고분 단청을 적용한 고구려 단청 모습

 

 

 

- 고구려의 경우에는 이런식으로

 

- 고분벽화가 워낙 많이 남아있다.

 

- 단청의 정확한 색감과 무늬까지 알 수 있다.

 

 

 

- 고구려는 건축양식 부터 단청까지

 

- 최소한으로, 진짜 그 시절 단청으로

 

단청을 구성할수 있다.

 

 

- 이렇게 완벽에 가깝게 구현 가능한건

 

- 고려까지는 가능한 상황이다.

 

봉정사 극락전 출토 1100년대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단청

 

 

- 고려시대 단청의 경우에는

 

- 봉정사 극락전에서 1100년대 추정

 

고려 초 ~ 중반기 단청이 출토 되었다.

 

 

 

- 적어도 1100년대 단청이 어떤 모습

 

이었는지 거의 정확히 알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에 고려시대 단청 적용한 모습

 

 

 

 

- 그러므로 고구려 / 고려는 정확한

 

단청 도안을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 고구려 / 고려 제외하고는

 

정확한 단청 모습을 알 수 없다.

 

 

 

- 학술적으로 고려 / 고구려를 제외하면

 

사실상 추측에 의존해야 된다는 뜻이다.

 

 

실제 통일신라 단청은 봉정사 단청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서 추측이 어느정도 가능하다.

 

 

- 그래도 남아있는 고구려 / 고려 단청을

 

기반으로 일본 / 중국 자료들과 검증하거나

 

 

 

- 동아시아에 남아있는 각종 석제품 / 기와 /

 

비단 무늬 / 각종 기록을 통해서 단청을

 

유추할 수 있는 수준은 된다.

 

 

 

 

- 중국의 당나라 / 송나라

 

일본의 나라시대 / 헤이안시대

 

수출품과 교차검증 자료들이 실제로 꽤 된다.

 

 

당나라 고분에서 발견된 / 당나라 단청

 

 

 

실제로 당나라 단청 하고

 

봉정사 대웅전 단청은 공통점이 있다.

 

 

배경이 붉은색인 점 / 풀무늬 위주/

 

하얀 테두리 등등 서로 거의 비슷하다.

 

 

그 예로써 봉정사 대웅전에 남아있는

 

후삼국 / 고려시대 단청을 들 수 있다.

 

붉은 바탕 / 풀무늬 / 흰색 테두리 등등 고려시대 단청에서 당나라 단청양식의 특징이 확인된다.

 

 

 

이런식으로 외국 자료하고 교차검증

 

하면 비슷한 점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100% 완벽한 단청 도안은 알 수 없지만

 

고증에 많이 가깝게 추측할 정도는 된다.

 

 

 

이렇게 외국 자료부터 시작해서

 

국내에 남아있는 각종 석제류,

 

기와 / 비단류 등등,

 

 

최대한 비교분석 해보면

 

나름의 결과가 도출된다.

 

 

 

결론은, 이렇게 추측 가능하다.

 

우리나라 단청은 상록하단이 아니었다.

 

 

300년대 고구려 ~ 1100년대 고려시대 까지.

 

대략 1100년대 까지는 상록하단이 아니다.

 

 

자료가 하나도 없는거 같아도 의외로

 

여지껏 발굴된 자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개인연구로 추정복원 / 재현해본 통일신라 단청

 

 

- 통일신라는 붉은색과 흰색 위주로

 

단청을 칠하지만, 부분 적으로

 

 

 

- 초록 / 파랑 / 주황색 배경을

 

간헐적으로 사용한, 발전된 형태의

 

다채로운 단청으로 추정되고 있다.

 

 

 

- 고구려는 붉은색과 흰색 위주의

 

오채색 위주로 꾸민 단청이 대부분이다.

 

백제 / 삼국시대 신라도 비슷한 거라 추측된다.

5세기 수산리고분 단청 재현 / 복원한 고구려 건축물 모습

 

 

- 윗쪽의 모든 사진을 보면 알 것이다.

 

- 300년 ~ 1100년 사이의 단청은 

 

상록하단이 아니다.

 

 

 

- 다만 봉정사 극락전의 1100년 단청

 

부터는 서서히 상록하단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봉정사 극락전 단청 1100년대 추정 고려시대 단청

 

봉정사 극락전 고려단청 / 청자기와를 적용한 고려시대 건축물 - 청풍루가 모티브다.



 

- 그러나 풀무늬를 많이 사용해서 그렇지

 

단청 배경색은 빨강 / 초록 / 파랑 등등

 

오방색을 다채롭게 사용하는 단청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상록하단이

 

아닌게 고려 1100년대 단청이다.

 

 

 

그러나 풀을 많이 그렸고, 초록색

 

사용량이 많이 늘어서 상록하단

 

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다.

 

 

고구려 건축은 간혹 오로지 주칠 / 붉은기와만 사용하여 전혀 한국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위에 모든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삼국시대 / 고려시대는 상록하단이 아니다.

 

 

 

조선시대랑 전혀 다른게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시대 건축의 모습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무조건 생소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국인에게는

 

상록하단 / 조선시대 건축 말고는

 

다른 이미지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백제 궁남지 포룡정 출저: 문화재청

 

 


-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에서 대부분


평생 상록하단 조선 건축만 보고 산다.

 

 

 

- 이유는 하나다. 조선팔도 전국토에

 

있는 문화재들이 전부 상록하단이다.

 

 

 

-그 만큼 상록하단 외에 다른 국가의/

 

다른모습의 건물과 단청을 아직

 

접해본적이 국내에서는 없다.

 

 

왼쪽부터 고구려 쌍영총단청 / 만보정 1368단청 / 용강대총 단청 순이다.

 

 

 

- 그러므로 고대 시절 건축물은

 

한국인들에게 꽤나 생소할 것이다.

 

 

 

- 그래서 예쁘게 만들지 않으면 괴상하다,


혹은 니혼과 중궈 같다는 소리 듣기 딱 좋다.

 

 

 

- 고증에 맞춰서 제대로 만들어도

 

현실은 전혀 다를 것이다.

 

 

 

- 일반 시민들에겐 삼국 / 고려 건축은

 

이질감이 많이 느껴질게 확실하다.

 

 

고구려 용강대총 단청 - 5세기 중반

 

용강대총 / 덕화리 고분 단청을 적용해본 고구려 팔작지붕 건축물

 

 

 

- 그렇기 때문에, 온갖 교차검증을 통한


단청 복원을 하여도, 받아들이는 일반


시민들의 반응을 예측하기 쉽지 않음.

 

 

 

- 이런 불확실성이 조금만 잘못해도

 

욕먹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다.

 

 


- 건축 고증, 단청 고증 자체가 몇십억


들어가는 세금먹는 하마고 다 돈이다.

 

 


- 결국 워낙 돈많이 들어서,. 정치적으로

 

엮이기 쉬운 재료가 고대 건축 복원이다.

 

 

이상해 보일지는 몰라도, 단청부터 건축양식까지 고증된 양식으로 만든 고려 건축

 

 

 

- 건축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시대상


별에 별말 다 나오고 정치공방 오가고


개난장판 되는건 뻔하다.

 

 

 

- 여튼 건물이 조금만 이상하거나

 

조금만 일본 비슷하거나

 

조금만 기괴할 경우

 

 

 

- 민원폭탄은 예정되어있다.


- 한국에는 한국의 현실이란게 있다!

 

 

 

고증문제는 크게 없는데 괜히 왜색이라며 욕 처먹고 다 뜯어고친 전주 우림교.

 

 

 

- 고증이 아무리 잘 되어도 조금이라도

 

일본같거나, 중국같으면 민원폭탄

 

먹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일반 시민들에게 부정적인 여론이


조금이라도 형성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 시공사가 미쳤다고

 

모험을 할리가 만무하지 않겠나?

 

 

윗쪽 강서중묘 단청을 고구려 붉은기와하고 적용한 건물의 모습이다.

 



- 그리고 고구려 고분 딱 한 장소에

 

나무를 그린것으로 예상을 하지만

 

여튼 초록색을 잔뜩 칠한곳도 잇다.

 

 

 

- 고구려 고분에 건축물을 표현한

 

부분에 상록하단으로 칠한곳은

 

단 한군데도 없지만,

 

 

 

- 여튼 초록색으로 단청을 칠해서

 

틀려도 우길만한 자료는 있는것이다!

 

 

716년 ~ 758년 사이에 만든걸로 추정되는 당나라 건축모양 토기, 중보촌 명기 / 상청하단 이라고 부를만한 파란단청이다.

 

 

 

- 그런데 통일신라 후기 부터는 충분히


상록하단+파란색 단청을 적용할만한


유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초록색 안료도 출토 되었다.

 

 

- 게다가 당나라 건축 / 일본건축 / 조선건축

 

등등 초록색 단청을 칠한게 발견되기도 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안료. 중앙에 있는 에메랄드빛 안료가 초록색 안료다.



 

안압지에서

 

분명하게 초록색 안료가

 

출토가 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동시기 외국의 단청은 의외로

 

초록색을 많이 사용한 단청도 발견 되었다.

 

 

당나라 사람이 일본까지 가서 만들어준 건물 , 일본의 당초제사 금당. 758년 최초 창건

 

 

 

758년 건립한 나라시대

 

건축물인 일본 당초제사 금당.

 

 

758년 일본건물 내부

 

단청은 파랑 / 초록/ 빨강색

 

3색이 교차하는 단청이지만

 

 

하여튼간에 초록색 안료를

 

단청에 사용한건 확실하다.

 

 

 

 

게다가 당나라 또한 부분적으로

 

초록색 안료를 칠하기도 하며,

 

 

 

설명에 있는 복화반을 잘 보시라!

 

 

 

복화반을 초록색으로 칠했는데

 

한/중/일 모두 복화반은 초록색으로

 

칠했고, 모습마져 비슷한 상황이다.

 

 

조선시대 건축에 통일신라적 요소가 남아있는데, 하필이면 초록색이다.

 

 

 

- 고증적으로 상록하단은 맞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우길수있는 자료들이 있다. 

 

 

- 생각보다 상록하단이 있었을 수도 있다!

 

라고 우길만한 자료들이 꽤 많은것도 사실이다.

 

 

건축양식 / 단청무늬는 나무랄게 없지만 , 어째서인지 벽은 살색이고 단청은 초록색으로만 칠한 백제문화단지.

 

 

 

당연히 정부와 시공사는 고증 문제부터


민원문제, 시민 여론 다따져 봤을때...

 

 

 

정육점 등불 벽색깔 + 상록하단은


고증에는 분명한 무리가 있지만

 

 

 

현재로써는 가장 안전하고

 

리스크가 적은 것이다.

 

 


-고증을 아주 잘 지켜도 , 고증대로


만들어도 현실은 또 다른 것이다.

 

 


##############################################################################

 


이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한국의 현실이

 

좀 지랄맞기도 하고,

 

 

의외로 상록하단이라고

 

우길만한 최소한의 자료들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인것 같네요.

 

 

백제 꺾음지붕 건축물

 

 

 

 

그러나 제가 윗쪽에 올린

 

개인적인 연구 내용들을

 

보시면 이해하셨을 겁니다!

 

 

300년 ~ 1100년도 사이에

 

단청은 상록하단이 아닙니다.

 

 

 

만일 상록하단 단청이 있어도

 

절대다수는 오채색을 기반으로

 

하얗고 붉은 배경의 단청이 주류 입니다.

 

 

그나마 1100년도 고려시대

 

부터는 초록색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붉은색을 더 많이

 

사용했고, 파랑색도 자주 사용하는 합니다.

 

 


초록색 초록색 초록색

 

일변도가 아닙니다. 오방색을

 

조화롭고 골고루 사용한게 고려단청이죠.

 

 

봉정사 극락전 1100년단청 / 송나라 수입비단 / 고려후기 옻칠기둥을 적용해본 고려건축 - 청풍루 모티브

 

 

 

근데 현실은 연구된 단청을 연구된


방식으로 칠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백제 / 삼국시대 신라는 진짜

 

단청을 추정하기도 힘들 정도로

 

자료가 없으니 사실 어쩔수가 없습니다만...

아차산 고구려 정자 출저:위키피디아



그러나 고구려까지 상록하단?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거 아닙니까!?

 

 

고구려는 상록하단 아니라는게 가장

 

완벽하게 확인되는 삼국시대 유일의

 

우리나라 국가 입니다!

 

 

고구려 강서중묘 7세기 초반 추정 / 아차산 고구려 정자는 진파리 / 강서중묘 무늬를 많이 사용했다.

 

실제로는 이런식으로 단청을 칠해야한다.

 

 

 

 

아니 고구려는 자료조차 확실한데

 

이건 좀 너무한거 아닙니까 여러분!?

 

 

 

......................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 입니다.

 

단청이 실제로 있어도 그냥

 

상록하단 칠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죠!!???

 

 

 

자료가 있어도 상록하단으로

 

칠하는건 당췌 무슨 이유일까요!?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송현광장. 그곳에 고구려 건축을 설치해봤다. 한국 전통의 건축물 처럼 느껴지는가?

 

 

위에서 언급했습니다만,

 

그 이유는 바로 이거 같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추측 입니다.

 

 


고대 단청을 적용한 건축물 실제로

 

사람들이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시공사가 여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 현실적인 문제야 말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 합니다.

 

 


......................

 

 


제가 생각을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2.현실적인 문제

 

 

 

 

* 내용이 상당히 깁니다. 천천히~숭늉이라도 드시면서 보세요!! *

 

 

 

 

-앞서 보여준 자료들을

 

보시면 이해하실 것이다.

 

 

- 단청자료가 0%가 아니다.

 

의외로 자료가 꽤 있다.

 

 

고구려 / 고려는 100%에 가깝게

 

복원이 가능한 수준이다. 100%

 

까지는 아니겠지만.....

 

 

고구려 쌍영총 고분 내부의 단청 / 5세기 후반
쌍영총 단청을 적용한 고구려 2층 누각

 

 

 

- 현실에서 많은 분들이

 

문화재는 100% 오리지널로 복원 안하면 안돼!!!

 

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나 많다.

 

 

 

-이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고,

 

되도록 이렇게 하는게 맞다.

 

 

 

 

-그런데 단청 같은 경우는 100%가 절대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복원하든 온갖 소리 다 나온다.

 

 

 

 

-그래서 붉은칠 / 흰벽으로 고증하는 방안이 있다.

 

고구려 / 조선시대까지 발견되는 가장 고증에 가까운 단청이다.

 

일제시대 일본에서 모사한 쌍영총 주칠단청 부분 모사도
쌍영총및 각종 고구려 고분에서 볼 수 있는 흰벽에 주칠단청. 고증을 거쳤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면 높은 확률로 일본것과 비슷하다.

 

 

-그럼 시민 여론이 어떨지 안봐도 이해가 갈 것이다.

 

 

- 민원폭탄이 예정된게 현실이 아니던가???

 

 

주칠은 아니지만, 흰벽에 주토( 붉은안료 ) 단청은 조선시대 종묘에서, 지금도 볼 수 있다.

 

 

 

- 고대 건축 시행의 주체는

 

정부와 각 시도 지자체다.

 

 

 

- 기본적으로 공무원 집단에서 발주하며

 

국민 세금으로 복원 작업을 하는 것이다.

 

 

 

- 근데 고증을 거치면 일본 중국꺼 같다는


소리 나올 확률이 생각보다 높다.

 

 

 

- 정부에서 복원하는건데 국민들이

 

왜색이 어쩌구 , 중국이 어쩌구 하며

 

여론이 개지랄 나는걸 과연 정부가 원할까...??

 

 

기록에 의거해서 재현해본 고려시대 전각.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중국건물로 오해할 것이다.

 

 

 

- 고증을 거친 고대 건축 일수록

 

국민들 감정이 조금만 삔또 상해도

 

여론 개지랄 나기 딱 좋은 사업이다!

 

 

 

-여론을 고려해야하는 정부로써는


당연히 안전빵으로 갈 수 밖에 없다.

 

 

 

 

 

- 게다가 전통 건축 고증복원 작업은

 

기본이 몇십억~몇백억, 많게는 몇천억원.

 

세금 폭탄으로 이루어지는게 고대 건축 복원.

 

 

 

- 가뜩이나 인구 소멸에 경제는 어려워지는데

 

-여론이 들끓기에 매우 좋은 재료 아니던가?

 

 

이 건물은 이렇게 실제 출토된 고려건축 양식들을 적용했다.



 

-근데 여론이 들끓으면 크게

 

정치 정쟁화 될 수 있는거다.

 

 

 

- 그 어떤 지자체장이 자기 직업과 앞날을 걸고

 

이런 모험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여론평가가 가장 중요한 공무원 집단,

 

투표제로 당선 되야하는 정치인들에게


여러모로 좋을게 하나도 없다.

 

 

고려시대 건축양식은 기록 / 회화에 남아있으며, 실물은 특이하게 일본에 그대로 남아있다.

 

 

 

- 공무원쪽 여론이 흔들리면 과연

 

그 화살이 어디로 가겠는가...??

 

 

 

- 당연히 건축 시공업체들한테 갈꺼다.

 

시공사들도 좋을거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된다.

 

 

 

-근데 조선시대 방식으로 복원하면


클레임도 별로 없고 실적 좋은게 현실이다.

 

-그걸 백제 문화 단지가 명확하게 증명했다.

 

 

백제 문화단지 백제 목탑. 상록하단이지만 크게 별말은 없는 상황이다.



- 삼국시대 건축물을 상록하단으로

 

전부 칠한 백제문화단지.

 

 

 

- 초반에 잠깐 여론이 살짝 안좋았지

 

지금은 부여 여행단골 코스중에 하나다.

 

 

 

- 역사 매니아들의 약간의 클레임 말곤

 

특별히 여론이 나쁘지도 않은게 사실이다.

 

 

 

- 현실이 이런데 누가 미쳤다고

 

주칠에 흰벽 단청을 단청하고 싶어하겠나?

 

 

백제 문화단지는 사실 처음부터 흰벽/붉은칠 단청하는게 가장 무난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현실적인 내용을 다 뚫고

 

그나마 80%에 가깝게라도


고대단청 적용이 가능하려면,

 

 

 

정부가 도보자료로 일반 시민들에게


여태까지 연구된 내용을 충분히 교육시켜야


커버가 가능한데,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은 없다.

 

 

 

충분히 교육이 되어있을때 사람들도

 

주칠에 흰벽 / 혹은 이질감 드는 외형에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4~5세기 고구려 2층 건축물과 인면조 벽화

 

 

 

- 그러나 정부에서 그 정도까지

 

의욕을 보이며 자료 배포를 하지도 않고

 

 

 

- 기본 교양 교육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교육을 진행하는...이런 최소한의 움직임 조차 없다.

 

 

삼국시대 건물을 상록하단으로 칠했지만, 여론은 별 말이 없는 백제문화단지의 백제건축들

 

 

 

-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도전보다는 그냥 초록색으로!

 

 

 

- 조선시대 처럼 보이게 하는게

 

지금으로써는 모두에게 이득이다.

 

 

 

- 앞서 말했듯이 실제 삼국시대를

 

표방한 백제문화단지 / 아차산 고구려 정자

 

이 건물들 모두 상록하단인데 별말 없고 평가가 좋다.

 

 

아차산 고구려 정자 출저:위키피디아

 

######################################################################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적은 모든 내용들은

 

한국 사회를 조금만 알고있다면

 

누구나 예측 가능한 사항들 입니다.

 

 

 

어째서 백제문화단지의 단청과

 

아차산 고구려 정자 단청을...

 

 

 

조선시대 마냥 초록으로 보이게


해놨는지 이해가 좀 되시나요?

 

 

무늬는 엄청나게 고증했는데, 왜인지 배경은 초록색인 백제문화단지 단청



그냥 상록하단 하는게


모두에게 이득인것이


현 상황 입니다.

 

 

 

상록하단 하면 그때 잠깐

 

역사매니아들 중심으로 불만이 나올뿐,

 

시간 지나면 잠잠해지고 , 여론이 좋아집니다.

 

 

 

그냥 상록하단으로 단청하면

 

모두가 행복한게 사실입니다.

 

 

삼국시대 백제문화단지의 단청. 살색벽과 상록하단으로 재현했다.

 

 

여지껏 동북아시아

 

모든 나라와 교차검증으로...

 

 

논리적이고 도전해볼만한

 

단청 자료들이 있지만,

 

 

그 어떤 건축물에 단 한번도

 

시험 단청조차 안하는 이유...

 

 

그 이유는 이러한 복잡한

 

현실적인 문제, 정치사회와

 

이해관계적 문제도 많아서 일겁니다.

 

 

아차산 고구려 정자

 

 

정부와 시공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생각해야할 사항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생각해야할 상황은 너무나 많은데

 

고구려와 고려를 제외하면...

 

 

 

백제나 신라는 아직까지는

 

단청이 사실 100%가 아니라서

 

이걸 해명하는것도 쉽지 않습니다.

상록하단으로 복원되어 별탈없이 잘 사용되고 있는 통일신라 정자 금장대, 출저: 계림 택시

 

 

 

정부나 공무원 사회에서는 당연히


이게 해명한다고 해명이 쉬운거도 아니고...

 

 

 

게다가 어짜피 상록하단 이라고

 

우길만한 자료들은 생각보다 꽤

 

많은것도 사실 입니다.

 

 

황룡사 9층목탑 / 선림원지 금동입상 / 황룡사 담장 / 고증된 통일신라 단청을 적용해본 통일신라 건축.

 

 

 

솔직하게 말하자면

 

흰색과 붉은색 배경보다는

 

 

 

그냥 초록색 안료로 도배하는게

 

시공사 입장에서는 돈도 훨씬 더

 

많이 법니다. 왜냐고요?

 

 

 

그거야 간단하죠! 초록색 안료가

 

더 비싸서 돈이 더 되니까요.

 

( 흰색 / 적갈색에 비하면...)

 

 

758년 일본 당초제사 천장 대각선 수직으로 설치한 막대기들은 전부 초록색이다. 잘 보시라!

 

통일신라때 초록 안료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증거다.

 

 

 

그려면 이제 쉽게 이해되시죠!?

 

정부 입장에선 골치아픈 해명 안해도 되고

 

초록색 단청이었다! 라고 우길 자료 꽤 있습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더 비싼 안료로

 

돈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게다가 시공사 입장에서 시민여론

 

신경 안써도 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정부도 / 시공사도 !

 

 


개발도 조금 해도 되~~~


돈도 더 받아~~~


걱정거리도 적어~~~


일도 하던데로 하면 되~~~


숙련공들의 능력으로 시간 단축 뽀나쓰 찌꺼긔 남기기 가능해~~~


그냥 중간은 갈 수 있는~~~~~~~

 

상록하단 시공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 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과연 어떤 사람이 자기 직업과


자리를 걸고 쉽사리 도전 하것읍니까!?

 

 

주칠에 흰벽단청을 적용해본 백제 건축물



 

또한 조금만 일본꺼 같으면

 

아무리 고증 열심히 잘했어도...

 

 

 

왜 일본꺼 배꼈냐!?

 

왜 이렇게 왜색이 짙냐면서

 

욕처먹는게 한국 상황입니다..!

 

 


아시죠?

 

 

 

조금만 이상하거나 괴기하면

 

이상하니까 치우라고 민원

 

처먹는게 한국입니다!

 

 

 

우리 한번 그 사례를 볼까요!?

 

요 몇년간 건축왜색 논란에서 제일

 

황당했던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 드리겠읍니다!

 

전주 우림교. 최근 몇년간 건축 왜색논란중에서 가장 황당한 사례중에 하나다.

 

 

 

이거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2021년에 전주에 우림교라고

 

백제 건축을 모티브로..

 

 

교량을 하나 만든적 있습니다.

 

근데 이거보거 왜색이 어쩌구

 

별별 소리 다 나왔습니다...;;

 

 

우림교는 백제 회랑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 조선건물로 봐도 된다.

 

 

 

이 교량은 단청 칠한거도 아니고

 

그냥 나무로 만든 건물입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주 단순하게 만든 조선시대

 

건물로 봐도 되는 뭐... 그다지...

 

 

 

굳이 백제 기술로 만든 그런

 

건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색으로 지목된게 몇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가

 

이런 이유들 이었습니다.

 

 

 

[ 벽에 세로로 막대기 끼운건 일본양식 이잖아! ]

 

[ 난간대가 너무 촘촘해. 이런건 일본건물 이잫아! ]

 

[ 나무지붕도 일본 건물꺼 따라한거 같은데? ]

 

 

 

라는 이유를 제가 많이 봤읍니다.

 

이거 이외에 몇가지 더 있었는데...

 

기억나는게 대표적으로 이 3가지 입니다.

 

 

 

근데 저런 수직부재는 굳이 일본만의

 

양식도 아니고, 백제만 사용한 양식도

 

아닙니다.

 

 

그냥 한국 근본의 건축양식 입니다!

 

 

고구려 무용총 가옥. 수직 막대기로 건물벽을 구성한 양식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초근본 건축양식이다!

 

 

 

이유는 저런 막대기로 벽을 대신한

 

건축양식은 고구려 고분에서 확인됩니다.

 

 

 

고구려 무용총 고분벽화에 그려진

 

가옥을 보시면, 수직 막대기를 판문

 

옆쪽에 잔뜩 설치한게 보입니다.

 

 

 

우림교 양식이랑 사실 똑같죠!?

 

이런 수직부재를 건축벽으로 대신

 

사용하는 건축양식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집니다.

 

 

구한말 무위사 극락전. 왼쪽 수직부재들이 마치 전주 우림교같은 양식이다.

 

 

구한말 무위사만 봐도 저거

 

그냥 한국 양식 맞습니다.

 

 

 

그러므로 전주!

 

우림교 건축양식은 하등 문제가 될게

 

솔직히 하나도 없었던 것 입니다.



 

풍기향교 대성전 옆쪽에 서무..였나 자세히 기억은 안나는데 저런 양식이 실제 존재한다.

 

 

풍기향교 옆에 있는 건물

 

보면 그냥..... 뭐 이해 되시죠?

 

 

 

저게 서무였나 뭐였나 기억이

 

잘은 안나는데 , 하여튼 건물벽에

 

세로로 막대기 끼우는건 걍 조선양식 이에요.

 

 

남원 몽심재

 

 

이런식으로 세로로 막대기를

 

끼워서 벽을 구성하는건 고택부터

 

사찰까지 두루두루 발견되는 양식 입니다.

 

 

해인사 서사간판전

 

 

 

그리고 팔만대장경을 보유한

 

사찰 해인사 서사간판전 또한 거의

 

비슷한 건축양식 입니다.

 

 

 

너무 당연하게도...

 

팔만대장경을 소유한 해인사 입니다.

 

아주 전통적인 한국 건축양식 입니다.

 

 

해인사 장경판전 측면 수직부재. 지붕을 받치는 양식은 우림교랑 크게 다르지도 않고, 따지고보면 이 건물이 훨씬 일본식에 가깝다. (사람人 모양 받침을 잘 보세요. )

 

 

 

이 사진은 해인사 장경판전의 측면에

 

있는 통풍구 역할을 하는 부분인데요,

 

 

 

아무튼간에 이런식으로 수직 막대기를

 

벽에다 잔뜩 설치한 양식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양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재밌는 사실은, 해인사 장경판전의

 

지붕을 받치는 모양새가 우림교보다 훨씬

 

일본하고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

 

 

일본 호류지 회랑. 지붕의 사람人 설치법이 해인사 장경판전하고 거의 똑같다. 우림교보다 해인사 건물이 되려 진짜 일본건물인 호류지랑 더 많이 닮았다.

 

 

 

되려 해인사 장경판전 측면은

 

우림교보다 훨씬 더 일본 건물하고

 

비슷한 모양세 입니다. 그런데...

 

 

 

해인사 장경판전을 보고 일본을

 

따라한 일본 왜색 건물이다! 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건축양식이 서로 매우 닮은 이유는

 

해인사 / 호류지 모두 동아시아 유행양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서로 저렇게까지 닮은 것 입니다.

 

 

우림교 내부. 특별히 일본 건축양식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우림교 건축 양식은 사실

 

우기려고 하면 뭐 일본양식이다!

 

라고 우길수도 있겠지만.... 우림교는...

 

 

 

동아시아 기본 건축 양식인

 

아주 기초적인 가구식 건축이라 굳이...

 

일본을 들먹일 이유가 없는 건물입니다.

 

 

 

 

우림교 수직 막대기 벽 사이사이에

 

난간을 설치했는데, 난간대가 매우

 

촘촘합니다. 그래서 이거보고.....

 

 

 

일본건축 양식이다! 라고...

 

 

 

자주 오해를 받는 건축 양식입니다만...

 

사실 이것도 굳이 따지자면,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충청도 보성 이진래 고택

 

 

보성 이진래 고택 입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촘촘한

 

난간대 설치 한거부터...

 

 

기둥과 기둥 사이에 난간하고

 

수직막대기로 벽을 만든 양식 등등,

 

우림교하고 매우 비슷한 모습입니다!



청안향교 대성전

 

 

이 건물은 청안향교 대성전 인데요,

 

오른쪽 창문을 봐 주세요. 뭐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매우 촘촘한 난간대 같은걸

 

잔뜩 설치한 수직창문 입니다.

 

우림교 난간이랑 비슷하죠?

 

 

조선후기 종로 석고단 광선문. 매우 얆은 살대로 문을 만들었다.

 

 

 

매우 촘촘한 나무살대로

 

난간이나 문을 만드는건,

 

 

조선시대 건축양식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됩니다.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를 보면 굉장히 촘촘한

 

세로 난간대를 사용해서 난간을 만든게

 

확인됩니다.

 

 

김제관아 만화루. 난간대를 수직으로 설치했다.

 

 

 

실제로 조선시대때 주구장창

 

사용하는게 수직 난간대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증하면 하나도 문제가 없는게

 

전주 우림교 였습니다. 다만...

 

그냥 백제 건물로 만들었다!

 

 

 

라고

 

언플좀 했다고 왜색이 어쩌구 저쩌구

 

욕처먹고 결국 건물 다 뜯어 고쳤습니다.

 

 

나무막대기를 세로로 끼우는게 일본같다고 지랄을 해대서 , 결국 가로로 막대기 두줄 더 끼워서 수리했다. 이게 뭔 뻘짓인가...!?

 

 

 

우리나라 상황....

 

이제 이해 가시죠!?

 

 

 

얼마나 고증을 제대로 했냐

 

그리고 얼마나 벽화나 고서화대로

 

건축물을 복원했느냐! 이런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건물을 보는 사람들의 기분이 어떤지가

 

훨씬 중요한게 지금의 대한민국 입니다!!!

 

 

 

 

향교나 서원에서 비석들

 

보호하는 비각 같은 경우도 보면

 

우림교하고 거의 비슷한 양식이죠?

 

 

 

심지어 건물 전체를 붉은색으로

 

단청을 칠했는데, 이런 건물 또한

 

왜색으로 봐야하는거 아닙니까!?

 

 

 

근데 이런 건물에는 아무말 안하는걸

 

보면 ... 건물이 왜색이 짙다! 라는...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보통 건축

 

양식에 의거해서 왜색이 짙다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순전히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

 

또 그냥 자기가 보기에 이상할 경우

 

왜색이라고 주장한다는게 눈에 보이는 겁니다!

 

 

북한 금강산 장안사에서 발견된 판장. 보통 이런 나무판 담장을 판장이라고 부른다.

 

창덕궁 판장. 나무지붕으로 만들었다.

 

 

 

지붕같은 경우도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되는 [판장] 이라는

 

일종의 가림막에서 사용되는...

 

 

기다란 나무판 지붕을 차용했을 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양식 입니다.

 

지붕조차도 나름 조선시대 양식 인겁니다!

 

 

 

우림교는 조선시대 양식이 아닌게 하나도 없을정도로 고증이 잘됬지만, 기가막히가 일본처럼 보이는 양식들만 골라 사용해서 일본 느낌이 나기는 한다.

 

 

 

자기가 보기에!

 

 

 

왜색 느낌이 나니까 ㅅㅂ 일본꺼 따라햇네??

 

라고 생각하며 다짜고짜 민원때려서

 

ㅈㄹ하는게 이 나라 현실 입니다!!!

 

 

 

이렇게 조금만 자기가 보기에 일본같으면

 

다짜고짜 민원 때리는데 ... 솔직히 누가

 

상록하단 단청을 벗어나려고 할까요!?

 

 

 

 

게다가 요즘에는 법이 바뀌어서

 

주민소환제도 <- 이거 운영합니다.

 

 

 

그니까.....

 

 

상록하단 말고 고증대로 단청해볼까!?

 

하고 주칠에 흰벽 단청 칠했다가 여론

 

개판나면...

 

 

 

주민들한테 끌려 나와서 온갖 설명및

 

온갖 해명 다 해야되고, 다음 선거때

 

부정적 여론만 생길수 있는 상황이란 겁니다!

 

 

통일신라 건축물은 이렇게 흰벽에 주칠만 칠한 건물로 복원하는게 사실 맞다. 이유는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뉴스나 온갖

 

매체로 이런 말도 합니다.

 

 

 

[ ~~~ 건물, 왜색 논란 불거져 ]

 

[ ~~~ 시대 건물 졸속 복원, 원형을 상실한 복원 ]

 

[ ~~~ 건물 고증 엉터리, 졸속복원 책임은 누가지나 ]

 

 

 

고증을 지켜서 윗쪽에 통일신라 건물처럼

 

붉은 주칠에 흰색벽으로 건축물을 만든다

 

할지라도........

 

 

 

왜색논란 한번 터지면 온갖 매체에서


졸속복원이 어쩌고~~~~~ 왜색이 어쩌고~~~~~

 

고증이 어쩌고 ~~~~~ 세금이 어쩌고~~~~~ 횡령이 어쩌고~~~~~~

 

 

 

별별 트집 다 잡습니다.조금만 논란 생겨도

 

이런 꼬리표가 따라붙으니 누구도 책임을

 

안지려고 한다는 거죠.

 

 

 

 

 

통일신라 궁궐인 월성에서

 

흰벽이 출토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통일신라 건물 벽색깔은 흰색이 타당합니다.

 

 

 

또한,

 

 

 

통일신라 최고 인기 여행명소인

 

동궁과 월지 , 그니까 안압지에서

 

발견된 실제 통일신라 건축물 부자재들.

 

 

 

통일신라 건물 부재에 붉은색 안료가

 

채색된 단청이 실제로 출토되었으므로

 

통일신라 건물은 흰벽에 붉은단청이 타당합니다.

 

 

자료가 발굴되었어도 상록하단으로 칠한 신라대종 건축물.



 

근데 실제 결과는 어떻다!?

 

또다시 상록하단 단청이다!!

 

 

 

왜 상록하단일까요!? 간단하죠!

 

그 누구도 부정적 여론을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 인겁니다...!!!

 

 

흰벽에 붉은색 위주로 단청한 통일신라 건축물. 흰색 회칠벽에 붉은색 위주로 사용하는게 고증에 부합한다.

 

 

 

제가 위에서 말했죠!?

 

고증은 그다지 상관없습니다.

 

 

 

건물을 보는 사람들의 기분이 중요하지

 

고증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는 뒷얘기 입니다.

 

 

 

전주 우림교같이 조금만 핀트에 어긋나면

 

뉴스에 뜨고 졸속복원이 어쩌구 하면서 여론

 

개판납니다. 이걸 누가 감당하고 싶을까요...??

 

 

고증에 하나도 문제없는 전주 우림교는 왜색논란이 지속된다고 할 정도였다.

 

 

 

우림교만 봐도 이런데

 

과연 어떤 공무원이 이런 민원 폭탄을...

 

책임지고 무시하며 고증에 맞게.....

 

 

 

상록하단이 아닌, 주칠단청에 흰벽

 

건축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아무튼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 상록하단이 아닌걸 알면서도 왜 실제로 계속 사용하는가에 대한 고찰

 

 

 


우리들이 고대 건축을

 

복원한다고 한다면 언제나

 

생각하는것이 하나 있읍니다.

 

 


" 짜잘한거 하나라도!

 

만드는 방식을 하나하나

 

100%로 고증을 해야만!

 

 


그게 진짜고 무조건 이렇게 해야된다! "

 

라고 생각 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죠?


솔직히 이게 정답이 맞긴 합니다.

 

 

벡제 능사 5층 목탑

 

 


근데 여지껏 사진 자료로

 

보여드렸죠!? 이제 아시겠죠!?

 

현실에서 이것은 거의 판타지 입니다.

 

 


많은 분들꼐서~

 

고대 건축은 1부터 10까지 모조리

 

그때 그 방식으로 복원 해야만 한다.

 

 

 

라고 말하고 주장합니다.

 

근데 한국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 니 말이 맞아.

 

그렇게 복원해야해.

 

 

그럴수도 있는데 근데 아직은

 

잘 모르니까 일단 상록하단 ㄱㄱ 

 

ㅋㅋㅈㅅㅎㅎ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백제문화단지 / 아차산 고구려정자 / 월정교

 

이 모든 실제 건축 유적들이

 

이 사실을 증명해줍니다.

 

 

 

지금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1부터 10까지 모든걸 그 시절 그대로

 

완벽하게 똑같이 건물 복원!

 

 

 

어찌보면 당연한 이 주제가 사실상

 

판타지 공상과학 수준인 상황입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일단 우림교가 1예시 입니다.

 

 

 

우림교는 제가 재현한 건물들 하고

 

다르게 조선양식을 참조해서 만든,

 

단청도 안한 건물인데 저랬었읍니다;;;

 

 

 

2번째로는 아무래도 공무원 사회

 

분위기도 한몫 한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합니다.

 

 

백제 단청도 상록하단 보다는, 이렇게 흰색과 붉은색이 섞인 단청이 더욱 고증에 맞을 것 입니다.

 

 

 

 

공무원과 거래하시는

 

분들 혹은 그쪽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저도 저의 친구가 공무원 쪽과

 

가끔씩 거래를 한다고 하는데~


항상 하는말이 있읍니다.

 

 

 

" 엄청나게 보수적이다 "

 

 

 

.........

 

 


시 주관 음악단 공연광고

 

포스터 하나 만들어도,

 

 


항상 최고로 무난한것,

 

튀지도 허접하지도 않는


중간을 항상 원한다고 합니다.

 

 

녹유와를 잔뜩 사용해본 백제 사찰

 

 

 

좋은 아이디어를 알려줘도

 

" 어 그냥 평범하게 하셈 "

 

거의 매번 이런다고 해요.

 

 

 

..................

 

 


공무원 사회는 시민여론


평가가 엄청난 평가 기준이라...

 

 

 

괜히 튀게 하려다가


여론 이상해져서 민원 들어오고


부정평가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뭘 하든지 평범하고 절대

 

튀지 않기 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네요.

 

 

와기단을 적용해본 백제 맞배지붕 건축물



 

단청 복원의 문제가 이겁니다.


고대 단청 시공 발주자 = [정부] 입니다.

 

 

 

여론 안좋을 짓은 아예

 

안하려고 하는게 보통이겠죠!?

 

정부의 고대 건축 복원 사업은!

 

 

 

정치인+지자체장

 

업적 쌓기 or 시민들에게 환원및


우리나라 문화 찾기 이런쪽이죠?!

 

 

퇴색된 목재 색상의 꺾음지붕 백제 건축물

 

 

사업 목표가 애초에

 

돈 보다는 시민 여론에


좌지우지 되는 사업입니다.

 

 

 

이쪽은 시민 여론이 슈퍼갑이라

 

반발 심하면 뭐 하다가도 싹다

 

뒤집어 버리고 안하는게 보통입니다;

 

 

 

시민 여론이 얼마나 엄청난지는


그냥 한국에서 살고 계시는 분들


이라면 모두들 동감하실 겁니다~!

 

 

 

4~5세기 고구려

 

 

결국... 이런겁니다.

 

 

 

- 민간 여론을 신경써야하는 정부

 

- 고대 건축에 대한 이미지가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 국민들

 

- 조금만 중국 일본 같으면 온갖 소리 + 민원폭탄 받는 현재 상황!

 

 

 

이 3가지 삼합 조합이

 

자료가 아주 확실히 있는

 

고구려 건축물 조차도......

 

 

 

상록하단 단청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원동력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창덕궁

 

 


그래서 중앙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지금 한국인들에겐 상록하단

 

외에는 전통 건축물 이미지,

 

사실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일본, 중국

 

비슷하면 온갖말 다 나오고

 

민원 걸고 그러는 상황입니다...;;

 

 

황화수은 진사 = 주칠로만 복원한 신라 건축물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힘 주어서

 

추진해야 되는 것 입니다.

 

 

 

한국에는 조선시대 상록하단

 

건물만 남아서, 뭘 보고 느낄

 

상황이 아닙니다.

 

 

 

실물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정부주도하에 미리 교육을

 

시키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통일신라 사모정 정자.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장식을 전부 적용해봤다.

 

 

 

나름 긴 시간 연구된 만큼

 

자료가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이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언론 보도자료로 풀고 또~

 

교과서나 인터넷에  풀어서...

 

 

 

근본적인 인식을 개선시키는


것 부터 하는것이 좋을거 같아요.

 

 

보는 사람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고구려 건축 입니다

 

 

 

저는 이런식으로 교육 내용을

 

만들어 교육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실제 고대건축을 고증대로 복원하면 "


" 지금 한옥과 아주 다르고 이질적이다 "


" 간혹 어떤 건물은 일본, 중국과 비슷하다 "


" 그러나 이게 고증된 모습이 맞다 "


" 중국과 일본과 아주 비슷한데, 이 모습은 "


" 동아시아 건축 양식 흐름과 발전사를 건축 외형으로 "


"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주칠과 붉은 기와를 적용해본 고구려 정자

 

 

 

이런 내용을 널리 , 그리고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퍼트렸을때,

 

그때부터는 시민들의 의식이 바뀔껍니다.

 

 

또한 시민의식이 바뀌었을때, 우림교와 같은

 

민원폭탄이 걸리는 일도 사라질 것 입니다.

 

 

 

 

정부의 노력으로

 

시민의식이 이런식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


아 삼국시대 건물이라던데

 

생긴게 중국 일본꺼 같구나!

 

 

근데 옛날엔 한중일 건물들이

 

다 똑같았데! 약간 일본 중국건물

 

같은게 이게 제대로 고증해서 복원한거래!

 

#########################################

 

 

이 정도 생각을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게될 정도가 된다면!

 

 

 

각잡고 고증한 고대 단청 건축물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젠가는 서울안에서도 이렇게 고구려 건축물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 10줄 요약 ###################################

 

 

- 고대 건축은 일본 / 중국건물 같다.

 

 

- 익숙하지 않고 이질적/ 간혹 기괴하다.

 

 

- 좀만 잘못하면 민원 처먹기 딱 좋다.

 

 

- 고대건축 복원은 돈보다 여론이 더 중요.

 

 

- 이 전통 건축 복원 발주자는 정부다.

 

 

- 정부와 공무원 사회는 부정적 여론에 민감.

 

 

- 시공사 또한 정부와 엮여있으니 마찬가지.

 

 

- 또한 상록하단이 시공사 입장에서 남는게 많다.

 

 

- 상록하단 시공하면 욕안먹는거 각종 유적지들이 증명중

 

 

 

 

- 번외편 : 실제로 복원되는 고대 건축들에 상록하단만 적용하는 이유 추정 최종편 -

 

 

 

 

- 공무원 계열은 보수적이다.

 

- 왜냐하면 여론이 굉장한 평가 기준이라서

 

- 고대 건축 복원 사업 자체는 시장성보다는 시민들과


여론에 영향 받는 사업이란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 이 작업의 발주자는 정부. 공무원 그 자체.

 

- 당연히 시민 여론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 근데 실제 삼국시대 양식을 복원하면


이질감이 느껴지고, 괴상한 느낌을 줄 수 있다

 

 

 

 

 

 

- 특히 백제같은 경우, 고증 논란을 피하기 위해


오로지 주칠만 칠하게 된다면 영락없는

 

일본 건물의 모습이 될 수 밖에 없다.

 

 

주칠 적용 백제 건축물



 

- 일본하고는 근 백몇십년간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 고증 100% 가장 근접한 저 방식이


어떤 여론 평가를 낳을지 누구나


예측이 가능 하다.

 

 

 

- 그리하여 삼국중에 최초로 복원및

 

재현된 백제문화단지 건축물은

 

 

 

상록하단뿐만 아니라

 

 

 

오로지 주칠 or 단칠만을 채색한

 

건물이 정말로 단 한채도 없다.

 

 

실제로 백제문화단지 안에 건립된 백제건물들은 흰벽에 붉은칠 건물이 하나도 없다.



 

- 그러나 2천억 넘게 들인 백제 문화단지는


부여 여행의 큰 중심축의 하나가 되었다.

 

 

 

 

- 정육점 불빛 벽색상, 초록빛으로 물든

 

단청으로 모조리 칠해도, 지금까지

 

큰 무리없고 딱히 별말 없었다.

 

 

 

- 되려 꽤나 칭찬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아직까지도.

 

 

 

- 조선시대 방식으로 칠하면 어떤

 

건물이던 간에 그때 잠깐 뭐라고 말이 나와도

 

 

 

-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별 말 없이 그냥


좋은 평가 받으며 좋은 실적 올릴 수 있다.

 

 

17세기 조선의 단청



 

- 그리고 그 업적으로 지 자체장의

 

다음 당선 가능성도 더 높고, 자신의

 

치적으로도 굉장한 선전 효과가 있다.

 

 

 

 

- 일반 시민들은 단청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삼국시대 건축물에

 

상록하단 칠해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 그래서 상록하단으로 만들어도

 

딱히 별말 없이 실적 팍팍! 뽀나쓰 팡팡팡!

 

 

 

- 리스크가 이렇게나 적으니까

 

상록하단을 하는것 뿐이다. 효율이 엄청나다.

 

 

 

 

 

 

 

 

- 이 사실을 증명하는게 경주의

 

월정교와 안압지같은 유적지다.

 

 


- 안압지 보고 뭐라 하는 사람들,


신라대종 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


월정교 보고 민원거는 사람? 사실상 거의 없다.

 

 

 

 

- 상록하단으로 칠하면 엄청난


실적 달성이 보장된다.

 

 

 

- 이 내용은 안압지 / 월성교

 

이 유적지가 철저하게 증명 중!

 


- 실적 달성 / 좋은 여론 / 돈벌기 등등

 

장점이 너무많아서 당연하게 상록하단을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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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이 게시물은 100% 정확한 답을

 

드리는 게시물은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추론하여


작성한 게시물 입니다.

 

 

 

그러니 모든 내용이 100% 정답인

 

게시물은 아니므로, 그 점을 염두해

 

두시고 읽으시면 , 도움이 될 겁니다.

 

 

##############################################################################

 

 

 

 

2. 우리나라 모든 고대 건축물을 상록하단 단청으로만 복원 하는 이유 - 삼국시대

 

 

 

이번에는 "현실적인 내용"

 

이것을 다뤄 보겠습니다.

 

 

일단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삼국시대 단청이 조선시대

 

단청하고 얼마나 다른지 볼까요?

 

 

7세기 고구려 단청을 적용한 우진각 지붕 건축물
고구려 고분군에 나오는 흰벽에 주칠 고구려 건축물
창덕궁 희정당 상록하단 단청

 

 

 

이번 게시물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

 

사진을 보면 한번에 이해하실 겁니다.

 

 

 

삼국시대 건물 복원할때

 

상록하단 단청으로 칠하는 이유!

 

 

 

여러분들이 느끼는 바로

 

그 느낌이 정답입니다.

 

 


"이질감이 너무 심하다"

 

"주칠만 사용하면, 대놓고 일본건물 같다 "

 

 

주칠 / 석간주 / 주토 / 연단칠로 단청한 고구려 건축물. 전부 실제 고구려가 사용했던 색상들이라 고증에 문제없다.

 

 


딱 보면 아시겠지만...

 

삼국시대 단청을 칠한 건물은

 

 

그냥 대놓고 일본 건물처럼 변하거나

 

뭔가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외관입니다.

 

 

가야 출토 수막새를 적용해본, 삼국시대 가야 출토 가형토기 재현 건축물

 

조선시대 양반집 한옥

 

 

저는 개인적으로 삼국시대 건축물을

 

복원, 혹은 재현을 한다면 반드시...

 

 

최소 주칠 단청이라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냥 사진만 보시면

 

아실겁니다. 단청 안하면 사실

 

조선시대랑 다를바 없습니다..;;;

 

 

가야 출토 삼국시대 가형토기. 이거 보이는대로 복원한게 윗쪽의 모델링이다.

 

 

 

분명히 삼국시대 가형토기를

 

진짜 그냥 보이는대로 만들었어요.

 

 

 

근데 단청 안하고 그냥 만들면

 

그야말로 조선시대 건물과 다를게 없죠!?

 

 

가야 가형토기 + 가야출토 기와로 만든 가야건물. 그냥 조선시대 건물같다.

 

 

 

그래서 저는 삼국시대

 

건물을 복원 / 재현 할거라면...

 

 

 

무조건 최소 주칠이라도

 

칠해서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오로지 주칠만 할 경우, 삼국시대 건물들은 이러한 느낌이 듭니다.

 

 

 

고구려 건물에 주칠 하면 이런

 

느낌이고, 조선하고 확실히 다르죠.

 

그러나 흰벽에 주칠 단청만 있는게 아닙니다!

 

 

 

 

이런식으로 어두운 갈색에

 

고사리 무늬를 그린 단청도

 

고구려의 전통 단청 입니다.

 

 

 

4~5세기 건물을 고구려 고분벽화


단청을 적용하여 복원 한다면,

 

 


지금의 한국 건물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나라 건물 입니다!

 

 

4~5 세기 고구려 단청 적용 2층 건축물
창덕궁 인정전

 

 

 

이거 보면 드는 생각이 있으시죠?

 

그게 바로 정답입니다.

 

 

 

삼국시대 건축물을 전부 상록하단

 

단청 칠하는 가장 큰 이유 일겁니다.

 

 

 

삼국시대 / 조선시대 건물의

 

외형적 격차가 너무너무 큽니다.

 

 

도저히 같은 나라 건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수준 입니다...!!!

 

 

 

 

우리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독자님들의 친구분들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통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 친구들...!!

 

 

 

그 친구들에게 제가 만든 고구려 건축

 

사진을 보여주면 과연 어떤 반응일까요...?

 

 

 

 

아마 예상을 해보자면

 

[ 이게 한국 건물임 ? 동남아 건물같은데 ? ]

 

 

 

아니면 이런 답변도 듣겠죠.

 

[ 한국 전통 건물은 초록색 상록하단인데 ? 이건 왜 다름? 구라아님? ]

 

 

 

 

혹은 이런말도 들을 수 있을겁니다.

 

[ 색이 좀 이상해서 기괴한데 이게 고구려라고? 기괴하고 이상함;;; ]

 

 

 

 

혹은 진짜 관심없는 사람이라면...

 

[ 이건 뭐 중국 건물이냐 집어쳐 ㅅㅂ ]

 

라는 답변도 하지말라는 보장이 없읍니다...;;

 

 

이 게시물의 고사리 단청은 실제 고구려 덕화리 고분과 용강대총 무늬를 모티브로 그렸다.

 

 


이런 이질감,

 

혹은 일본꺼 같은 느낌이...

 

 

지금의 삼국시대 단청을


죄다 초록색으로 도배한


이유중 하나 아닐까요!?

 

 

4세기 후반 ~ 5세기 초반 덕흥리고분 벽화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모든 국가 단청 자료가 있는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고구려는 분명하고 너무나도

 

명확한 단청 자료가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상록하단을

 

고집하는 이유는 역시...

 

 

완벽한 단청 고증은 아니지만, 고분군 채색 방식을 적용하면 이러한 건물도 만들 수 있습니다.

 

 

 

각잡고 고증해서 복원하면 상상

 

이상으로 이질적인 느낌입니다.

 

 

정부에서 추구하는 한국적인 미

 

이거랑 완벽하게 다른게 삼국시대.

 

 

정부나 시공사 모두 이런걸

 

이미 알고 있을것 입니다.

 

 

그래서 고증대로 선뜻 만들

 

생각이 아직은 없을겁니다.

 

 

 

 

특히 흰벽에 주칠 단청이 가장

도전하기 힘든 건축물 일껍니다.

 

솔직히 말이 더 필요없죠!

 

 

 

독자님들의..... 전통건축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친구분들에게......

 

 

 

제가 만든 주칠 고구려 건축물을

 

보여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분명히 이런 소리 나올겁니다!

 

 

 

 

[ 지붕 주황색에 빨강 건물은 ]

 

[ 딱 중국 자금성 양식이구만 어디서 개수작임? ]

 

 

 

 

아니면 이런 소리를

 

들을수도 있읍니다...

 

 

 

[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

 

[ 일본 건물을 따라 만든거냐!? ㅅㅂ놈이 미쳤음 ? ]

 

 

 

흰벽에 주칠 단청을 보여준다면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들을겁니다.....

 

 

 

 

 

진짜 웃긴게 흰벽에 주칠건물은

 

고구려 각종 고분에서 나옵니다.

 

 

팔청리 고분의 솟을합장 대공이 보이는 주칠건물

 

 

이렇게 팔청리 고분에는 대놓고

 

흰벽에 주칠만 칠한 건물 그림이

 

있습니다.

 

 

무용총. 내부 건물을 붉은색으로 칠했고 벽은 흰색이다.

 

 

고구려 무용총과 각저총 등등

 

내부에 건물 대들보와 기둥하고

 

브라켓을 그려넣었는데...

 

 

벽은 흰색벽에 붉은칠 입니다.

 

대놓고 주칠에 흰벽을 표현했어요.

 

 

 

 

진짜 웃긴게 흰벽에 붉은색

 

단청은 종묘에서도, 그냥 종로

 

왔다갔다 하다보면 볼 수 있는건데도...

 

 

 

이런걸 왜색으로 몰아가는 분들에게는

 

종묘 외대문은 없는 건물인가 봅니다.....

 

 

무용총에 흰벽과 붉은색으로 칠한 기둥/대들보는 조선시대 종묘에서도 확인가능한 전통양식이다.

 

 

 

 

참고로 삼국시대 건축 단청은

 

백제 , 신라 할거없이 무조건

 

고구려 단청을 참조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고구려를 제외하면 그냥 단청자료

 

자체가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백제나 신라 고분에 그림이 있는데

 

무늬 몇가지만 알 수 있지, 건축에

 

사용된 완벽한 단청 도안이 아닙니다.

 

 

삼국시대 단청중에서도 아주 빽빽한 단청을 자랑하는 고구려 수산리 고분벽화 단청

 

 

 

삼국시대 백제 , 신라는 사실상

 

건축 단청이 하나도 발견된게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일단 이런 이유도 있구요.

 

어떤분꼐서 말씀하신 꽤나

 

인상깊은 표현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건축 단청이 무슨

 

테란, 저그, 프로토스 처럼


단청이 나눠져 있는게 아니다!

 

 

 

이게 정말 저는 완벽한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7세기 초반 고구려 강서대묘 단청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간단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단청 무늬들이...

 

 

백제 / 신라 생활유물들 에서

 

거의 똑같은 무늬가 발견되기 때문이죠.

 

 

그 증거로 고구려 강서대묘 단청과

 

무령왕릉 출토 금제 머리장식을 들겠습니다.

 

 

 

 

이 금동 장식은 무령왕비

 

머리장식 인데요. 이 무늬를

 

흑백으로 자세하게 보면 이렇습니다.

 

백제 금동장식



이런 모습인데요, 이제 고구려

 

강서대묘 무늬를 보겠습니다.

 

고구려 강서대묘 단청. 덩쿨무늬 가장 오른쪽을 무령왕비 머리장식과 비교해보면 답이 나온다.

 

 

설명에 적었듯이 가장 오른쪽 무늬하고

 

무령왕비 머리장식 무늬를 보면 아시겠죠?

 

 

 

걍 거의 똑같습니다.

 

삼국시대는 나라마다 개성이야


조금씩 다르기는 할 것 입니다만...

 

 

 

제가 올린 자료만 봐도 아시겠죠?

 

고구려 고분 단청무늬를 백제에서

 

장식용으로 직접 사용하고 있습니다.

 

 

6세기 중국 둔황석굴 북위, 내부 단청. 중국 둔황석굴 조차 단청패턴이 거의 비슷하다.

 

 

 

이런 식으로 고구려 단청이

 

삼국시대 신라 / 백제 생활용품

 

무늬로 발견되는게 한두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단청 무늬는 결국 삼국모두

 

대동소이 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다만 채색 방식이나 약간의

 

표현 방식이 다를뿐, 대체적으로

 

단청 색감이나 무늬는 거의 똑같다!

 

 

 

라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예상합니다.

 

이래서 삼국시대 건축 만들때는 반드시

 

고구려 고분벽화 단청을 참조해야 합니다.

 

 

필자가 자료가 거의없는 백제 단청을 복원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고구려고분 + 백제와 양나라 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만들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삼국시대 건물을 만든다면

 

흰벽에 주칠 or 약간 기괴한 무늬

 

이런 단청을 적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삼국시대 어느 나라의 건물을


고증 제대로 하면서 만든다 할지라도,

 

 

 

특유의 이질감, 혹은 왜색이 짙다!


왜 일본꺼 배꼈냐!? 라고 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아니...

 

 

그냥 무조건 왜 일본꺼 따라했니 부터

 

기괴하고 이질감 들고 이상하다 라는

 

의견은 그냥 무조건 나올겁니다...

 

 

왼쪽부터 고구려 쌍영총 / 만보정 1368 / 용강대총 단청을 적용했다. 전혀 한국같은 느낌이 아니다.

 

 

 

그래서 삼국시대 건축을 복원하면

 

제가 올린 사진처럼 복원해야 합니다.

 

 

근데 이렇게 복원하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런 의견이 나오겠죠!?

 

 

 

 

"헐 이거뭐임 왜 이래 생김??"


혹은


"뭐가 이렇게 빨개요? 일본임?"

 

이라는 말이 미친듯이 언제든지 나올겁니다.

 

 

3세기 고구려

 

 

여기서부터가 가장 중요한!

 

가장 현실적인 이유가 이겁니다.

 

 


한국적인것,

 

한국적인 미를


만들고 싶어하고,

 

 

수수하고 담백한 소박의 미,

 

이런 한국의 미를 잘 이어가고 있고

 

게다가 평가가 나쁘지도 않습니다.

 

 

5세기 후반 고구려 단청 누각건물

 



지금의 한국적인것,

 

한국적인 초록색 상록하단,

 

청아하고 푸르고 소박한 한국건축...

 

 

 

이것과 완전히 다른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데 또~


잘 모를 경우 약간 기괴하게


느껴지는 고대의 것을...

 

 

 

솔직히 욕 안먹고

 

지금도 엄청 잘 나가고 있는데

 

과연 누가 도전하고 싶을까요?

 

 

5세기 중반무렵의 용강대총 & 덕화리 고분 단청을 참조한 전각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과연 어떤 단체장이 자신의


단체장 자리를 걸고 쉽사리


도전을 하것읍니까!?

 

 

 

위에 사진처럼 고구려 건축물

 

만들면, 고증 제대로 했어도

 

욕처먹는 상황 나옵니다.

 

 

 

아시죠?

 

 

조금만 이상하거나 괴기하면

 

이상하니까 치우라고 민원

 

처먹는게 한국입니다!

 

 

6세기 백제

 

 

또한 조금만 일본꺼 같으면

 

아무리 고증 열심히 잘했어도...

 

 

왜 일본꺼 배꼈냐!?

 

왜 이렇게 왜색이 짙냐면서

 

욕처먹는게 한국 상황입니다..!

 

 

요 몇년간 건축왜색 논란에서

 

제일 황당했던 예시를 소개해 드리겠읍니다!

 

 

전주 도심에 만들어진 우림교

 

 

이거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2021년에 전주에 우림교라고

 

백제 건축을 모티브로..

 

 

교량을 하나 만든적 있습니다.

 

근데 이거보거 왜색이 어쩌구

 

별에별 소리 다 나온적이 있죠!

 

우림교는 백제 회랑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 조선건물로 봐도 된다.

 

 

 

이 교량은 단청 한거도 아니고

 

그냥 나무로 만든 건물입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주 단순하게 만든 조선시대

 

건물로 봐도 되는 뭐... 그다지...

 

 

 

굳이 일본 기술로 만든 그런

 

건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왼쪽 벽쪽을 보면 수직막대기를 잔뜩 끼웠는데, 이거땜에 일본느낌이 나긴한다.

 

 

아무래도 벽이랑 난간쪽을

 

수직 부재를 사용해서 만들어서

 

일본건물 처럼 보이는게 있긴 있습니다.

 

 

 

근데 저런 수직부재는 의외로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건물중

 

하나!

 

 

무위사 극락전에서도 발견되는

 

한국 건축양식 이랍니다. 볼까요?

 

 

구한말 무위사 극락전. 왼쪽 수직부재들이 마치 전주 우림교같은 양식이다.

 

 

구한말 무위사만 봐도 저거

 

그냥 한국 양식 맞습니다.

 

 

 

그러므로 전주!

 

우림교 건축양식은 하등 문제가 될게

 

솔직히 하나도 없었던 것 입니다.

 

 

 

##########################################################


중요한건 이것 입니다.

 

 

 

어? 이거 내가보니까 왜색이 넘 심한데?

 

어 내가 보니까 그거 일본꺼 따라한거 같은데?

 

뭐 고증? 내가 보니까 이거 중국꺼 따라햇구만 뭘...!

 

 

 

이 소리 하면서 민원 때립니다.

 

우리나라 상황이 이렇습니다.

 


##########################################################

 

 

고증이 아무리 잘됬어도

 

그딴 고증!? 상관없습니다!

 

 

그냥 지금 자기가 봤을때 왜색이

 

짙거나 일본거 같으면 다짜고짜

 

민원넣는게 한국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주칠에 흰벽 건물을 만든다...?

 

 


솔직히 제가 몇년간 전통건축에

 

관심을 가져왔으나.....2024년 현재

 

솔직한 심정은 이겁니다.

 

 

솔직히 어지간한 강심장 지자체장 아니면

 

고증 건축 복원은 솔직히 엄두도 못낼꺼에요.....

 

 

 

 

제가 만든 흰벽에 주칠 건물은

 

확실하게 팔청리 고분의 색감을

 

기준으로, 보이는 데로 만들었습니다.

 

 

윗쪽 필자가 복원한 주칠 맞배지붕 건축은 쌍영총 모사도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주칠과 건축 가구는 쌍영총

 

가구와 주칠안료 그대로 재현및

 

복원하여 적용한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황....이제 아시죠!?

 

 

 

얼마나 고증을 제대로 했냐

 

그리고 얼마나 벽화나 고서화대로

 

건축물을 복원했느냐! 이런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 계성사 삼문. 수직부재를 잔뜩 설치한 특이한 삼문이다. 우림교는 이런 양식도 참조한거다.

 

 

 

전주 우림교 건만 봐도 알겁니다.

 

무위사 / 성균관 계성사 / 발해건물터

 

건축 양식을 적용했기에 고증문제 없습니다!

 

 

 

근데!

 

자기가 보기에!

 

 

 

왜색 느낌이 나니까 ㅅㅂ 일본꺼 따라햇네??

 

라고 생각하며 다짜고짜 민원때려서

 

ㅈㄹ하는게 이 나라 현실 입니다!!!

 

 

7세기 고구려 강서중묘 / 강서대묘 / 진파리 4호분 단청을 그대로 적용한 고구려 건축물

 

 

이런 현실속에서...

 

제가 만든 건물처럼.....

 

 

자기가 보기에 전혀 우리나라

 

조선시대 스럽저 않은 건물을...

 

 

과연 어느누가 함부러 도전할 수 있을까요...?

 

그 누가 상록하단에서 벗어나려고 할까요...??

 

 

아차산 고구려 정자. 상록하단이다.

 

 

그저.....

 

잘나가는 상록하단으로 적당히 만들면

 

잠깐 역사매니아 들한테 살짝 욕만먹고...

 

 

 

왠만해선 평가도 엄청 좋고

 

그 지역 명소가 되기도 합니다.

 

 

 

아차산 고구려 정자를 보십시오!

 

그 누가 아차산 고구려 정자 보고 욕합니까 지금!?

5세기후반 수산리 고분 단청. 윗쪽 아차산 고구려 정자가 얼마나 잘못된 단청인지 한방에 알 수 있다.

 

 


아차산 고구려 정자야 그냥

 

조선 정자로 만들던 도중에

 

뜬금 고구려 건물로...

 

 

 

바꾼거라 정상참작은 가능하지만

 

여튼 , 고구려 건물을 표방했는데

 

그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식으로 그냥 상록하단 칠하면

 

솔직히 아무일도 안생깁니다.

 

슈퍼 안전빵 그자체 입니다!

 

 

8세기 통일신라

 

 

 

괜히 붉고 하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추정 단청을 도색하면...

 

 

 

가만히 있어도 욕처먹거나

 

민원 처먹을 수 있어요.

 

 

이런식으로 지자체장에게

 

부정적 여론 만들어지면


투표 결과 장담할수 없는데!

 

 

 

어느 지자체장이 큰맘먹고

 

도전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12세기 고려

 


그리고 별것아닌 20평쯤 되는

 

간단한 단청바른 기와집 한채도...

 

 

 

못해도 억단위 입니다.

 

 

 

그럼 고대쪽은 어떨까요!?

 

고대쪽은 최소 수십억 단위며

 

수백억까지도 우습게 찍습니다...

 

 

16세기 조선

 


단군이래 가장 잘 산다는 대한민국


지금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죠.

 

수십억은 진짜 애들 장난이 아니니...

 

 


이런 엄청난 금액이 투입되는


고대 건축 복원 사업은


조금만 잡소리 나와도...

 

 


투표결과에 많이 영향줄 정도로


세금 팍팍 쓰는 초거대 프로젝트 입니다.

 

(그 몇백억~몇천억원은 모두 국민의 피땀눈물 세금 그 자체 입니다)

 

 

통일신라 건물은 주칠만 할경우, 왜케 빨개요?일본임? 소리 듣기 딱 좋은 모습이 됩니다.

 

 

 

전통건축은 기본적으로

 

수익성이 수천억원 나오는

 

엄청난 수익형 사업도 아니고...

 

 


오로지 문화유지 복원및

 

대민지원형 문화서비스 사업입니다.

 

시민 여론이 갑중에 갑 입니다.

 

 

 

고증이 아무리 잘되어도 우림교같이

 

민원 먹으면 다 뜯어고쳐야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꺼 같다거나


익숙하지 않은 색감이나, 단청떔에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거나...

 

 

 

이럴수도 있는게 삼국시대 건축.

 

말 안해도 감이 오시죠!?

 

 

제 눈에는 예뻐보이는데...일반 시민분들에겐 어떻게 보일까요?? 저도 참 궁금합니다.

 

 

 

그래서 필자

 

개인적인 의견은 이렇습니다.

 

 

 

시공업체들 사실 삼국시대


단청은 녹색 만땅 색칠 아닌거


아주 잘 알겁니다. 교수들 하고도...

 

 

 

시행전에 일단 자문받는게 기본인데

 

이런 쉬운걸 모를리가 없습니다.

 

 

시공업체는 사실 다 아는데


상록하단을 "일부러" 강행할겁니다.

 

 

 

와기단과 녹유와를 적용해본 백제 맞배지붕 건축물

 


가장 화려할걸로 예상이 되기는 하는데


도무지 실제로 어떻게 그렸는지


감이 안잡히는 백제

 

 


재미있게도 가장 자료가 없어서


복원하기 가장 애매한...

 

 

백제가 가장 크고 거대하게 가장먼저


고대 모습으로 복원 되었읍니다.

 

 

백제문화단지 정자, 출저: 구글

 

 

 

제가 시공 보고서를 자세하게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건축적 내용이라고 합니다.

 

 


단청은 약간 짧게 언급된

 

것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요.

 

 

 

백제 문화단지 단청 무늬 자체는

 

제가 어느정도 보장 할 수 있습니다.

 

 

 

무늬 자체는 백제에서 나온 모든

 

무늬를 고구려 고분과 교차검증해서

 

그린거 맞습니다.

 

 

오히려 개빡세게 고증해서 꽤나

 

제대로 그린게 백제문화단지 단청입니다.

 

 

백제 문화단지 단청, 출저: www.Shutterstock.com

 

 

제가 이거 단청 보면서 별별

 

숨어있는 단청무늬 다 그린거 보고


진짜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고구려 고분부터 해서 백제 고분및

 

온갖 무늬 제대로 하나하나 다 그려놓고,

 

 

 

어쨰서 상록하단으로 칠했을까요?

 

그 누구보다 상록하단 아닌걸 아주

 

제대로 알고 있을탠데 말입니다.

 

 

 

 

아마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이렇게 초록색으로 칠했을 겁니다.

 

 


시공사의 입장과


한국의 현실을 보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실겁니다.

 

 


#############################시공사 입장에서 생각해볼것들##########################

 

 


* 꽤 긴 내용이므로 간식 드시면서 읽어보세요!! *

 

 


-사실 삼국시대 고분에초록색 단청 떡칠은 없다.

 

- 이 정도는 시공사도 이미 알고 있다.

 

 

 

-그나마 고구려 고분중에 한개 정도 초록색 떡칠한 벽화가 있지만,

 

그 마저도 나무를 표현한 그림이다. 상록하단은 일단 없다.

 

 

- 상록하단이 아닌 , 붉은색 계열 단청으로표현한 그림은 몇십배로


더 많기 때문에, 상록하단 근거로 아주 빈약하다.

 

 

 

- 고구려 고분을 참조하여 삼국시대 양식으로

 

단청과 건물을 복원하면 매우 이질적이다.

 

 



 

- 자칫 일본꺼 따라 만들었다는 소리 나올수도 있다.

 

 

 

- 왜냐면 "일본은 중세시대 양식이 아직도 현역인 희안한 나라"

 

 

 

- 일본같다는 말은 피해갈수 없는 수준임. 왜냐면 일본이 저래서

 

 

연단 안료 + 쌍영총 + 천왕지신총 포작을 적용한 고구려 누각. 매우 일본건축같다.

 

 

 

 

- 한국인들은 단청 채색한 한옥 자체를 일상에서 접하기가 쉽지 않다.

 

 

- 그래서 보통 단청이나 한옥에 대해서 잘 모른다.

 

 

 

- 전국 어디서든 조선시대 건물말고 다른 타입의 한옥을 "쉽게" 접할수가 없다.

 

 

- 삼국시대 건축물들은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이질적이게 느껴질 것이다.

 

 

 

 

 

 

 

- 삼국시대 건축 고증 복원 자체가 "정부 주도의 한국적인 미" 하고 완전히 정반대.

 

 

- 삼국시대 건축물들은 고증대로 복원하면


한국적인 미, 다시 써야 됨. 완전히 다름.

 

 

 

- 근데 상록하단+ 정육점 불빛 벽색으로 하면


모든게 중화된다!! 모든게 조선시대 같아진다!

 

 

 

- 분명히 시공사에서 시뮬레이션 해봤을것이다.

 

 

 

- 건물 잘 만들고 무늬 빡세게 고증해서 만들어도

 

조선시대 같아 보이는걸 확인 했을 것이다!

 

 

 

출저:백제문화단지

 


- 이질적인게 왜 문제가 되냐면, 민원 걸리기 딱좋다.

 

- 정부와 시공사는 부정적 여론을 당연히 싫어한다.

 

 

 

- 게다가 여지껏 삼국시대 건물들을 상록하단으로

 

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사실 불만이 거의 없다.

 

 

 

 

- 그리고 몇천억원급 복원 사업에 "일본거 같다" 라던가


"이질적이고 이상하다" 라는 여론 평가가 나오면


지자체장이 정치 공격받기 딱 좋다.

 

 

 

- 그런 부정적인 여론은, 정부나 시에서 당연히


시공사 재평가로 이어질 확률이 생긴다.

 

 

 

 

- 정부 사업 수주가 가장 큰 먹거리인


시공사 입장에서는 시민 여론이 당연히 매우 부담됨.

 

 

 

- 상록하단으로 복원해도 어짜피 민원도 잘 안들어온다.

 

 

 

- 결론은 상록하단으로 하면 돈도 아끼고 현상유지 되고


한국적인 미를 지킬수 있고, 여론도 그냥 저냥


묻어가고 하는데 굳이 모험할 이유가 없다.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회 환경을 좀


깊게 보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좀만 일본 / 중국 같거나 혹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니면

 

무조건 민원부터 걸고 봅니다.

 

 

 

심심하면 왜색 논란이 일어나는게

 

사실 역사쪽에서는 되게 흔한 일입니다.

 

 

고구려 고분군에서 보이는 고구려 배흘림기둥과 벽화들을 적용해봤습니다.

 

 


이거 보시는 읽어보시는

 

님들꼐서 시장이나 시의원이

 

되셨다고 생각 해보십시요...!!

 

 

 

근데 1년뒤에 선거가


기다리고 있읍니다!

 

 

 

근데 뜬금 문화재를 흰벽에

 

주칠로 복원한다고 하는데

 

그 예상안을 본 상황입니다.

 

 

.......

 

 

 

님들 같으면 솔직히 간담이

 

안 서릴 자신 있으십니까!??

 

 

 

선거가 코앞인데!?

 

이글 쓰는 저 조차

 

간담이 서늘합니당.....;;

 

 

 

 

그냥 한국 현실이 그렇습니다.

 

솔직히 너무나도 당연히 단청은!

 

 

상록하단으로 하게 되어있읍니다.

 

왜냐!? 욕안처먹고 중간은 가니까요.

 

 

게다가 명소까지 되면 되려 여론도 좋아집니다.

 

고증이건 뭐건 상록하단이 모두가 행복한 길 입니다.

 

 

종묘 칠사당 겉면은 붉은색 목조가구와 핑크색 외벽으로 되어있다.

 

 

 

고증? 고증도 사실 현실에서는

 

고증가지고 따지는 사람 거의 없거든여...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때,

 

 


괴상하면 괴상하다 하고


이쁘지도 않고 븅신같다고


저딴거 왜 만들었냐는 소리 나올거고,

 

 

 

고증 제대로 하면 이런 소리까지

 

들을 각오를 해야할 수 도 있습니다.

 

 

 

저딴거 왜 만들었냐! 왜색이 심하잖아!

 

ㅅㅂ 정치인 이놈 잘못뽑았네 매국노 섺!

 

 

 

고증한번 제대로 했다가 이런소리 처먹을수

 

있는게 한국 상황입니다. 이해 되시죠???

 

 

흰벽에 붉은칠 단청은 종묘 칠사당 내부에 남아있다.

 

 

자기가 보기에 이상하면

 

일단 민원부터 넣습니다!

 

 

 

그래서 또 혹시 몰라서

 

고증에 무리 안가게 흰벽에

 

주칠 건물로 복원할 경우는...

 

 

 

!ㅅㅂ! 일본꺼 왜 따라함??? ㅄ들

 

왜색이 그리좋니 매국노야!?


이런 소리 막 나올겁니다!

 

 

일본은 흰색에 붉은칠을 많이 사용한다.그런데 흰벽에 붉은칠은 조선시대 건물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별에 별 소리 다 나올탠데...

 

 

 

그냥 아몰랑 상록하단이 최고라는것은


정부와 시공업체 모두 최고로 잘 알고 있을겁니다.

 

 

두산정 이라는 사당. 주토와 흰벽으로 단청했다. 이런 단청은 일본식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 단청이다!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 건축물이나


통일신라 건축물을 그 시대에 맞게


만든 모습을 실물로 보려면...

 

 

 

저는 이게 해결책이고,


시간을 줄이는 최고의


길 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

 

 

백제 맞배지붕 건축물

 

 

 

보도자료 뿌려서 여지것 연구된 자료들을...


일반 시민들에게 가볍게라도 교육 시켜

 

여론부터 만들어야 가능하리라 봅니다.

 

 

오로지 주칠로만 복원한 신라시대 수상 사모정

 

 

삼국시대와 통일신라는

 

빨강, 하얀색이 주된 단청 색이었다.

 

 

전부 빨강색만

 

사용한 건물들도 많았다.

 

 

 

그리고 단청 무늬의 단순함으로


지금의 한옥과 거리가 많이 멀다.

 

간혹 일본 건축과 매우 비슷할 수 있다.

 

 

일본 헤이조쿄 스자쿠몬 / 평성궁 주작문 . 흰벽에 주칠단청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까지 고대 건축 양식을


가끔씩 사용하고 있는 특이한 나라.

 

 

 

흰벽에 주칠 단청은 한국 / 일본 /중국

 

모든 나라에서 사용된 단청이다.

 

 

이러한 건축 외형적 특징은


동아시아 건축의 흐름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다"

 

 

무용총 내부는 흰벽이고 붉은색으로 기둥과 브라켓 , 대들보를 칠해서 일본건물과 다를바 없다.

 

 

 

뭐 이런식의 논리로... 자료를 뿌려서

 

일단 시민들에게 삼국시대 단청의

 

이미지를 주입해주고,

 

 

 

흰벽에 주칠단청이 전혀 일본식

 

단청이 아니란걸 교육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론을 만들어야

 

앞으로 삼국시대 건축을

 

실제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담양 송강정. 고구려 / 일본 / 중국 전부 사용한 흰벽에 붉은칠 단청이다.

 

 

 

이렇게 해서 여론이 형성된다면,

 

주칠에 흰벽 단청 선물을 만들어도...

 

 

아 그래 그럴수도 있겠네.

 

그래도 괜찮으니까 복원하셈~~"

 

 

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해나가고, 이렇게 만드는게,

 

 

 

시공사나 정부 입장에서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

 

 

결국 지금까지도 발생하는 왜색 논란은

 

국가에서 의지를 가지고 교육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도 볼 수 있습니다.

 


######################################################

 

흰벽에 붉은 단청을 칠한 광주향교. 왜색이 짙다는 이 채색법은 의외로 흔하다.

 

 


당연히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제 나름대로 한국 사회와 요모조모


사회 분위기를 추려봤을때...

 

 

 

이럴 확률이 많다는걸 요 몇년간


확실하게 깨닫게 되다 보니까

 

이렇게 글을 수정해봅니다.

 

 

 

 

분명히 저의 글이

 

100% 답은 아니지만,

 

 

 

삼국시대및 통일신라 건축에


상록하단 채색을 반대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새롭고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게시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엄청나게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12줄 요약 ###################################

 


- 한국은 삼국시대 건축을 전부 상록하단화 한다

 

 

- 고대 건축을 각잡고 복원하면, 매우 이질적이다.

 

 

- 거기서 빨간색만 칠한 건물을 만들면, 일본과 비슷

 

 

- 왜냐하면 일본은 고대 양식을 아직도 사용중

 

 

- 고대 & 전통 건축 복원 사업 자체가 몇백~몇천억원 급

 

 

 

 

 

- 그래서 조금만 이상하거나, 일본같으면 바로 여론 들끓음

 

 

- 당연히 지자체장, 정부는 공격당하기 매우 딱 좋다.

 

 

- 당연히 그 화살은 시공업체들한테 돌아가게 될것임

 

 

- 특히 고대 단청쪽이 그럴 가능성이 제일 크다.

 

 

- 정부 사업이 가장 큰 파이인데, 시공업체가 모험 할 리가 없다.

 

 

 

 

 

 

- 결국 정부가 국민 사전 교육으로,

 

시공업체의 리스크를 막아줘야 더---욱


빠른 시간안에 붉고 하얀 단청을 실제로 보게 될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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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이 게시물은 100% 정확한 답을

 

드리는 게시물은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추론하여


작성한 게시물 입니다.

 

 

 

그러니 모든 내용이 100% 정답인

 

게시물은 아니므로, 그 점을 염두해

 

두시고 읽으시면 , 도움이 될 겁니다.

 

 

##############################################################################

 

 

요즘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건물을

 

열심히 복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복원된 건물들을 보면~

 

간혹 이런 생각이 들죠?

 

 

제주도 토종 목련과 통일신라 월성 연못으로 조성해본 전통정원



도대체 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통일신라 건물을

 

전부 조선시대 같이 상록하단 복원함?

 

 

통일신라 정자 금장대, 출저: 경주 계림 택시관광 http://sbtaxi.co.kr/bbs/board.php?bo_table=photo&wr_id=50

 

 

한국도 몇십년간 연구로


수많은 논문들이 나와있는데,

 

 

 

왜 삼국시대~고려시대까지


전부 초록색으로 색칠 할까요?

 

 

황룡사 9층목탑 / 황룡사 중금당 / 황룡사 담장 / 양양 선림원지 금동불입상을 적용한 통일신라 정원

 

 

제가 단청업체 직원은 아니기


때문에 100%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이 글을 읽어보시면 아마 어느정도

 

어째서 아직까지도 상록하단 단청을...

 

 

삼국 / 신라 건축에 칠하는지

 

어느정도는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주칠에 흰벽 통일신라 건축물을 소래포구 식당건물로 활용해보았다. 주칠에 흰벽 건축물은 분명히 고증된 양식이다.

 

 

 

광복 이래로 우리나라는

 

황룡사를 중심으로 통일신라

 

건축을 깊게 연구하고 있으며,

 

 

 

동궁과 월지 ( 안압지 )

 

이곳에서 출토된 수많은 건축

 

자료들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외 각종 사찰터와 건물지를

 

발굴하여 많은 자료들을 확보했어요.

 

 

 

그래서 우리 생각보는 실제로

 

데이터가 훨씬 많이 쌓여있습니다.

 

 

신도시 공원에 박물관을 만들때, 여지껏 연구된 단청과 건축양식을 실제로 적용해보는것도 좋을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신라 건축관련

 

연구도 진행이 엄청 많이 되었기에...

 

 

 

우리나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 결과물들이


엄청나게 쌓여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합리적으로


추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가


쌓이고 있습니다.

 

 

월지 출토 각종 건축물 장식을 잔뜩 적용해본 신라시대 수상 전각

 

 

 

그런데...!!

 

사실 건물 본체는 고대 기술

 

적용해가며 잘 복원하고 있는데,

 

 

 

왜 단청만큼은 조선시대를


"안" 벗어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경복궁 근정전터에 적용해본 황룡사 중금당. 정면 52m 크기다. 체육시간 50m 달리기를 여기서 해도 될만큼 엄청크다.



 

통일신라 단청의 경우에는

 

흰벽에 붉은색 위주의 단청이

 

일단 첫번째로 고증에 맞긴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통일신라 단청중에

 

상록하단 단청도 있었을 것이다. 라는

 

주장도 가능한 상황 입니다.

 

 

최근 조성되는 신규 아파트에는 맘스스테이션이 있는데, 전통정자를 활용해보는것도 좋을것이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인터넷에서 통일신라 단청은

 

흰벽에 붉은색이랬는데......

 

 

 

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 많죠!?

 

네 이게 정답이 맞는데요, 하지만.....

 

 

 

통일신라 단청은 상록하단 타입의

 

단청도 있었을 확률이 생각보다는

 

꽤나 크다는 뜻 입니다.

 

 

통일신라는 오방색으로 꾸민 금단청 / 초록색위주 상록하단 / 주칠에 흰벽단청 등등 여러가지 도안이 공존하고 있던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100% 완벽한 통일신라 상록하단

 

단청이 발굴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주장은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각종 기록과 실제 출토된 통일신라 각종 자료들을 총 집합한 통일신라 하우스 인너 데코레이션

 

 

 

그래서 통일신라 

 

시절에는 흰벽에 주칠단청과 함꼐

 

상록하단 단청 / 오방색 단청 등등!

 

 

 

다채로운 단청이 공존하고 있었던게

 

통일신라 단청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왜색논란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아파트단지에 통일신라 정원을 조성하여 익숙해진다면 왜색논란은 사라질 것이다.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내용인

 

통일신라 단청은 무조건 주칠에

 

흰벽이다! 하고 전혀 다른 주장!

 

 

 

통일신라 단청은 주칠에 흰벽단청

 

오방색을 이용한 금단청,

 

상록하단 타입 단청

 

 

 

이렇게 3가지 이상의 단청패턴이

 

공존하고 있었다! 라는 주장에 대해서

 

이제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송도 워터프론트에 합성해본 황룡사 9층목탑과 황룡사 중금당. 이런식으로 신도시 공원을 활용하여 문화공원을 조성하면 좋을듯 하다.



 

 

 

 

 

 

1. 우리나라 모든 고대 건축물을 상록하단 단청으로만 복원 하는 이유 - 통일신라 편

 

 

 

 

많은 분들이 가장 상록하단


적용을 바라지 않는 통일신라!

 

 

 

가장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에 먼저 다뤄봅니다!

 

 

2019년 단청한 신라대종. 2019년인데 완전 조선시대 스타일로 칠했습니다.

 

 

 

통일신라를 표방한 건축물에

 

최근 건물까지 상록하단만

 

적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생각보다는 간단합니다.

 

 

송도 센트럴파크에 합성해본 통일신라 금장식 정자. 안압지 출토 금동장식과 각종 자료로 추정가능한 단청을 복원/재현하여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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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유물 모두 조선시대 단청과 매우 비슷한 자료들이 있다"

 

 

" 또한 초록색 안료도 출토 되었습니다 "

 

 

" 그래서 조선방식 상록하단, 정상참작은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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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돋이공원 정상부에 합성해서 만들어본 통일신라 공원



 

상록하단을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논리와 유물이


아주 많이 뒷받침 하고 있습니다.

 

 

 

초록색 떡칠 단청으로 만들어도


고증에 문제 되지 않게 해주는


해주는 유물을 먼저 봅시다!

 

 

안압지 출토 금동 구리꽃 투조금구 장식

 

 

송나라 단청 ( 영조법식 연옥장 )

 

 


바로 이 "금동장식"


그리고 "송나라 단청"

 

 

 

이 두개 때문이 가장 첫번째


이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압지 출토 금동장식...


아이러니하게 이 엄청나게


화려한 물건이 굉장히 큰 이유.

 

 

 

 

자~~!

 

 

 

그럼 저 금동 띠쇠가 왜


상록하단을 하게끔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인지 볼까요!?

 

 

안압지 출토 금동 구리꽃 투조금구 장식 ( 9세기 후기 ~ 10세기초 추정 )

 

봉정사 극락전 출토 고려시대 머리초 단청 (10~12세기쯤)

 

송나라 단청 ( 영조법식 연옥장, 11세기쯤 )

 

송나라 단청 영조법식 연옥장 ( 11세기 쯤 )

 

조선시대 (17세기 이후 )

 

 

 

사진만 보시면 아실겁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봐도 저 모든게


하나같이 비스무리하죠!?

 

 

 

다들 모양도 비슷하고 전체적인

 

색감도 비슷하고, 실제로 단청 발전이


저 사진들 처럼 발전하는게 포인트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에 봉정사 극락전 출토 12세기 단청을 적용해봤다.

 

 

 

그래서 이런 논리가

 

성립 가능합니다.

 

 

 

##############################################################

 

 

통일신라 유적지인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장식.

 

그 특성이 머리초 단청하고 거의 같다. 

 

봉정사 극락전 출토 고려시대 머리초 단청 (10~12세기쯤)



 

왜냐하면 봉정사 극락전

 

머리초 단청하고 거의 똑같다!

 

 

 

통일신라때 머리초 단청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약간 구석 치우친

 

꽃의 위치나, 매우 화려한

 

덩쿨이 서로 너무 닮았다.

 

 

봉정사 극락전 머리초 단청하고 쏙빼닮은 통일신라 추정 금동금구

 

 

 

머리초 단청은 보통 초록색이고

 

봉정사 고려시대 단청에서도

 

창방 계풍은 초록색이다.

 

 

 

머리초 단청이 초록색인건

 

통일신라 하고 가까운 북송

 

단청 마저도 초록색이다.



송나라 단청 상록하단에 가까운 초록색 단청 ( 영조법식 연옥장, 11세기쯤 )

 

 

 

완벽하게 밝혀진 통일신라

 

단청이 아직까지는 없는 상황에서,

 

 

 

고려시대 봉정사 극락전 단청과

 

안압지 출토 금동금구를 참조하여,

 

 

 

현재 우리 실정에 맞는


초록색 전체 적용 단청을

 

사용하는게 무난하다.

 

 

황룡사 담장으로 통일신라 정원을 꾸며봤다. 아마도 신라의 달밤은 이런모습 이었을 것이다.



 

##############################################################

 

이런 논리가

 

성립될 것 입니다.

 

 


이게 다 자료를 바탕으로 말하는


거라 나름 이유에 타당성이 있죠.

 

자료를 하나씩 좀 더 보겠습니다.

 

 

일반적인 조선시대 머리초

 

 

이 단청 양식은 [ 머리초 ] 라고 합니다.

 

목부재 시작과 끝부분에 그리는

 

패턴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안압지 출토 금동 띠쇠가

 

봉정사 출토 머리초하고

 

 


금동 띠쇠가 거의 흡사한


패턴을 보여준건 위에서 보셨죠?

 

 

동궁과 월지 (구 안압지 ) 출토 안료그릇. 정중앙 가운데 에메랄드빛 안료가 뇌록이라는 초록안료다.

 

 

 

이런 상황에서 동궁과 월지!

 

안압지에서 초록 안료가 발견됬습니다!

 

그니까 단청용 전통 페인트가 발견된거죠.

 

 

 

이렇게 심증적으로 초록색 단청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상황에서

 

초록색 안료까지 딱 나온거죠!

 

 

실제로 조선시대 건축하고 고증된 통일신라 건축물을 비교하면 이런느낌으로 다를것이다.



 

그리고 그 외 중국, 일본의

 

당나라 / 일본 나라시대 실제 단청들!

 

전부 실제로 초록색, 파랑색이 확인 됩니다.

 

 

일본 당초제사 금당 내부 단청 - 758년 추정

 

중국 당나라 중보촌 명기 단청 713년 ~ 765년 사이

 

 

758년 일본 당초제사,

 

700년대 당나라 건축 유물.

 

 

 

중국 일본 양쪽 두 나라 단청

 

모두 초록색을 잔뜩 사용하거나

 

파란색만 사용한 푸른 단청 입니다.

 

 

중보촌 명기 당나라 단청을 자세히 봐 주세요

 

 

 

두 나라의 단청은 특이하게

 

운간 채색법 ( 그라데이션의 한 종류 )

 

단청이라고 한답니다.

 

 

 

신기한건 두 나라 단청 모두

 

푸른색을 겹겹히 한줄씩 채색

 

하는데요, 혹시 그거 아시나요!?

 

 

 

 

조선시대 단청에 중보촌 명기 단청과

 

일본 당초제사 금당 단청하고 채색은

 

조금 다릅니다만,

 

 

 

그리는 방식이 매우 비슷한 단청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북한 박천 심원사 1368년 창건 . 단청은 16세기 재도색 단청 도채

 

 

 

북한 박천 심원사 보광전

 

이라는 건물 내부 단청 일부분에서

 

색상부터 그리는 방식까지...!!!

 

 

 

당나라 단청하고 매우 비슷한

 

단청 양식이 발견된 것 입니다!

 

 

함흥남도 영흥 선원전 1500~1600년도 추정

 

 

 

함흥남도 영흥에 있는 궁궐관련

 

건축물인 선원전 입니다.

 

 

 

조선시대 궁궐관련 건축인데요.

 

713년 ~ 765년 추정 당나라 단청하고

 

매우 비슷한 방식의 단청이 발견된 겁니다.

 

 

 

게다가 아시죠? 이 단청들의 색상은

 

모조리 초록색 상록하단 입니다...!!

 

 

758년 창건 일본 당초제사 금당 내부단청 복원도. 초록색을 엄청 많이 사용했다.



 

또한 당초제사 내부의 8세기 단청!

 

이게 조선시대 단청하고 여러 부분에서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왼쪽, 오른쪽의 노랑 - 초록 - 먹선 - 초록 - 노랑 패턴을 기억해주세요!

 

 


이 건축 부자재는

 

천장의~ 서까래를 막아주는!

 

 

빗반자 라는 천장 가림막 입니다.

 

색상 구성을 자세히 보셔야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노랑색 - 초록색 - 검은색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저 단청 패턴이 조선시대 단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조선시대 기둥단청.노랑 - 초록 - 먹선 - 초록 - 노랑 패턴 확인완료!

 

758년 당초제사 빗반자 색배합 = 노랑 - 초록 - 먹선 - 초록 - 노랑 / 조선 단청하고 완전히 똑같다.

 



색 조합이 완벽하게 똑같죠?

 

어째서 일본 나라시대 건물에서...

 

조선시대 채색법이 발견되고 있는 걸까요!?!?!?

 

 

 


너무나도 재미있지 않나요?

 

서로 다른 부위이긴 하지만,

 

 

 


1600년 이후 조선시대 단청에

 

758년 단청 패턴이 신기하게도

 

그대로 전승중인 상황 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죠.

 

 

 

노랑 - 초록 패턴은

 

명나라 or 청나라에서 배운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100년대 단청으로

 

예상되는 고려시대 단청!

 

 

 

봉정사 극락전 단청에서도

 

어느정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봉정사 극락전 단청에서

 

조차 비록 두꺼운 먹선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노랑색, 초록색을 배합해

 

사용하는 방식이 발견됬어요.

 

 

 

 

노랑색 - 초록색

 

그라데이션 방식은 이미!

 

 

 

1100년대 고려시대 부터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초록색 파랑색을 섞어쓰는 단청의 느낌을 제대로 보여주는 당초제사의 단청

 

 

 

윗쪽 사례하고 비슷한 경우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758년 당초제사 금당의 내부 천장은

의외로 초록색 + 파란색 위주로 채색

해가지고, 마치 상록하단 느낌이 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조선시대 단청하고

굉장히 비슷한 부자재가 하나 있습니다.

 

 

 

 

758년 당초제사 복화반 단청하고

조선시대 성불사 복화반 단청은 채색및

디자인까지 매우 비슷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복화반이

초록색인 경우가 한건 더 있습니다!

 

 

 


이 회화는 둔황석굴 9세기 당나라

건축물을 그린 회화인데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복화반이 초록색 입니다.

 

 


일본의 758년 건축하고

 

중국의 800년대 건축하고

조선의 1530년 건축하고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단청을

 

채색한 겁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그렇기 때문이 통일신라 건축물

 

단청에 초록색을 섞는것은 분명히

 

고증에 부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서

 

초록색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추정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황해도 심원사 보광전 - 1374년에 창건 / 단청은 1500년대 추정




이 건물의 이름은

 

황해도 심원사 보광전 입니다.

( 1374년 고려후기 창건 / 단청수리 1500년대 추정 )

 



이 건물은 신라 / 고려적 단청 흔적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는 사찰 인데요.

 

 

 

1500년, 조선시대때 단청을 수리했는데

통일신라 단청 요소가 조금 남아있습니다.



황해도 심원사 보광전 천장반자 긋기단청



 

건물 전체는 조선시대 단청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기 윗쪽에 동그라미로 그려놓은 부분!

 



특별히 명칭이 없어서 그냥 순각반자 정도로

말하겠습니다. 저 순각반자 부분의 채색을

자세히 봐 주세요.

 

 

당초제사 금당 - 758년 창건

 

 

그리고

 

일본 당초제사 금당의 천장 대각선

 

부분을 보시면, 이해 되실겁니다.

 

 

 

일본 당초제사 / 황해도 심원사

 

천장 대각선의 빗반자 단청이

 

긋기단청으로 구성되었으며!

 

 

 

수직으로 설치된 살대를 둘다

 

초록색 + 가운데 먹선으로 그렸습니다.

 

 

황해도 심원사 빗반자에 채색된 초록 / 빨강 색교차 긋기 단청.

 

 

 

또한 수직 살대를 받쳐주는 일자 빔자재들도

 

당초제사 / 심원사 보광전 둘다 긋기로 채색했고,

 

 

 

둘다 2가지색 이상으로 색을 교차하여

 

채색했습니다. 되게 비슷하지 않나요!?

 

 

당초제사 금당 - 758년 창건 / 황해도 심원사 천장반자 단청하고 비교하면 꽤 비슷하다.

 

 

 

황해도 심원사 보광전은

 

비록 천장 일부분 이지만!

 

 

나름 통일신라적 단청 요소가

 

아주 일부분에 남아있는 것이죠!

 

 

색 조합도 당초제사랑 비슷하고

 

수직 살대가 초록색 + 먹선긋기까지...!

 

 

살대에 초록+먹선 채색인데 당초제사 빗반자 살대랑 색조합이 거의 똑같다.

 

 

 

아주 제한적으로 천장 반자에

 

국한하여 조금 남아있지만,

 

 

 

이렇게 나름 통일신라적

 

단청 요소가 남아있는 겁니다!

 

 

송도 미르공원에 사모정 / 황룡사 중금당 / 불국사 석가탑 / 분황사 모전석탑을 적용해봤다.



 

 

이렇듯! 이외로!

 

조선시대 단청이나 각종

 

조선시대 물건의 채색 방식이.....

 

 

 

통일신라 단청 채색 방식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모습이 정말

 

정말 간헐적으로 발견됩니다.

 

 

위에서 설명한 여러가지 자료들을 통해서, 통일신라 단청은 이런 운간채색 방식의 단청이 있었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또는 강력하게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아주 간헐적으로 발견됩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상록하단

 

이라는 점 때문에 아마도...

 

 

 

상록하단 그라데이션 단청은

 

거의 무조건 있었을거라 생각됩니다.

 

 

 

 

이런식으로, 통일신라에서

 

유래된것으로 예상되는...

 

 

그라데이션 운간 채색 방식은

대부분이 초록색 그라데이션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조선시대 북

 

758년 일본 당초제사 내부단청

 

 

 

또한 758년 당초제사 단청에는

초록색만 잔뜩 칠한 부분도 있고

 조선시대 단청하고 비슷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면...

 

 

 

초록색 상록하단 단청은 무조건

있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게...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요!? 그래서 상록하단 계열

 

단청은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

 

 

봉정사 극락전 머리초 단청하고 쏙빼닮은 통일신라 추정 금동금구



 

이러한 의심이 마구 드는 상황에서

 

통일신라 건축 부자재로 출토된...

 

 

이 금동 장식은 머리초 단청하고

 

굉장히 비슷한 상황인데요

 

 

 

그 머리초 계열 단청들이 하나같이

 

초록색 위주로 그려진다는 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머리초 단청 ( 15~16세기 )
송나라 단청 영조법식 연옥장 ( 11세기 쯤 )
송나라 단청 ( 영조법식 연옥장, 11세기 쯤 )

 

 

 

거기다 재미있는것은

 

조선시대 / 북송시대 단청들...

 

 

하나같이 모양부터 색 , 패턴까지

 

매우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북송시대 단청이 조선까지

 

전승되어 왔다! 라는 추측이

 

가능한 상황 이라는 겁니다.

 

 

 

송나라 단청 영조법식 연옥장 ( 11세기 쯤 )



 

 

그래서 통일신라때 머리초 단청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금동 장식으로

 

인하여 조금 생긴 상황입니다.

 

 

 

그런데 머리초는 대체적으로

 

초록색을 사용하는 단청 입니다.

 

 

당나라 716 ~ 765년 사이 중보촌 명기 단청

 

 

일본 나라시대 758년 창건 당초제사 금당 내부 단청

 

 

 

이런 상황에서 실제 당나라시절,

 

그니까 통일신라 시절 단청들이

 

의외로...

 

 

 

중국 / 일본의 단청인데도 초록색을

 

많이 사용했다던가, 혹은 파란색만

 

사용한 푸른색 단청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머리초 단청하고 쏙빼닮은 통일신라 추정 금동금구 ( 9세기후반 ~ 10세기 초 추정 )

 

봉정사 극락전 출토 고려시대 머리초 단청 (10~12세기쯤)

 

 

 

안압지 금동 띠쇠는


저 두개의 방식과 매우


흡사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패턴들이 일목요연 비슷하고

 

꽃 위치도 거의 똑같죠!?

 

 

 

그래서 안압지 금동투조 장식을 보고

 

머리초 단청으로 예상이 가능한 겁니다.

 

 

당나라 돈황석굴 322굴. 거의 유일한 하늘색 배경색! 통일신라 단청을 초록색으로 도배하는 큰 이유중 하나 입니다!

 

 

 

그리고 둔황석굴에 이렇게

 

전체를 하늘색으로 칠한 단청

 

또한 발견됬어요.

 

 

송나라 단청 ( 영조법식 연옥장, 11세기 쯤 )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송나라

 

단청 머리초 단청도 초록색과

 

파란색 위주로 그립니다.

 

 

 

슬슬 통일신라때 상록하단

 

초록색 단청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이 되기 시작하는것이죠.

 

 

 

통일신라 시절 상록하단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주장은 의외로

 

신뢰성이 꽤 높은 주장 입니다.

 

 

전체 녹유와, 붉고 하얀 단청을 적용해서 만들어본 통일 신라시대 7층 목탑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현실적으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로 통일신라 단청은

 

붉은색, 흰색 단청이 가장 주류!

 

 

 

그러나 초록, 파랑

 

단청도 공존했었을 것 입니다.

 

 

 

이것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건물이 바로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 단청을 최대한 그 틀 안에서 활용하여 만들어본, 고려시대 오채편장형 단청

 

 

봉정사 극락전 단청은

 

최상위 레벌 단청 입니다.

 

 

그래서

 

배경 색상은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모두 발견됬습니다.

 

 

송나라 영조법식 오채편장. 보시듯이 붉은색, 푸른색 전부 사용합니다. 출저: 구글

 

 

 

고려시대 최고레벨 단청은

 

기둥 단청과 함께,

 

 


적갈색, 주칠색, 초록, 파랑

 

모든 색상을 배경색으로

 

전부 사용하는데요~!

 

 

 

저기서 초록, 파랑색을

 

하양색으로 바꿔 생각하면,

 

 


통일신라 단청 특유의

 

붉은색 배경, 하얀 배경하고

 

완벽히 일상 통맥 합니다.

 

 

고려단청을 적용한 봉정사 극락전. 붉은색을 매우 많이 사용! 초록색 단청배경색을 하얀색으로 생각하면, 통일신라 스타일과 거의 같아요.

 

 

게다가 봉정사 극락전

 

단청은, 초록색과 파랑색을

 

교차하여 사용하는 모습도 보여요.

 

 


봉정사 극락전만 봐도

 

초록색 , 파랑색 교차

 

단청이 있었을 가능성!

 

 

 

봉정사 극락전 단청만으로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초록색, 파랑색 첨차가 동시 발견되었습니다. 초록,파랑 교차 단청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올린

 

모든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대략 느낌이 오실 겁니다!

 

 


통일신라 단청은 이렇게

 

복원하는게 고증에 훨씬

 

부합합니다.

 

현어와 통줄눈 전축기단을 적용해본 신라시대 2층 건축물

 

 

 

단청 배경색이 붉은색, 흰색인

 

금단청 계열은 분명히 있었던

 

단청으로 추정됩니다.

 

 

각종 자료로 유추 가능한, 푸른빛 위주의 통일신라 긋기 단청.



단청 배경색이 초록, 파랑색인

 

운간채색 단청 계열도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은 단청 입니다.

 

 

 

그래서 

 

이 둘중 하나로 복원하는게

 

조금더 고증에 맞을 거에요.

 

 

통일신라 금단청! 하얀 단청배경색 위주 버전

 

 

하양색 단청배경,

 

붉은색 단청배경이 섞인 단청!

 

 


이런 방식이 통일신라

 

금단청 중에서는 가장

 

많이 사용된 단청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자료에서

 

단청 배경색은 하양, 붉은색이

 

거의 대부분이라서 그렇습니다.

 

 

750년 이후 발견되는, 당나라 - 일본 나라시대 -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푸른색 위주의 긋기단청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각종 당나라, 나라시대 자료!

 

 

 

통일신라 자료및 조선시대

 

자료들을 3차 트리플 검증을

 

시도하여 유추 가능한 단청!

 

 

북한 박천 심원사 1368년 창건 . 단청은 16세기 재도색 단청 도채




완벽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이 너무나도 많아서...

 

 

사실상 있었을 확률이 매우 큰!

 

통일신라 긋기 단청 입니다!

 

 

 

통일신라 단청을

 

상록하단으로 칠하려면,

 

 

 

조선시대 방식보다는 이렇게

 

파랑색, 초록색 교차 긋기 단청으로

 

칠하는게 고증에 그나마 가까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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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출토품을 최대한 적용해서 만들어본 신라시대 수상 전각

 

 

* 종합 고찰 *

 

 

 

자세하고 완벽한 통일신라 단청


자료가 없는 현시점에서...

 

 


녹색 파란색 교차하는

 

운간채색 단청이나,

 

 

 

붉은 단청으로 전체를 칠하는


오방색 단청은 어느정도 무리가 있다.

 

 

실제 통일신라에서 발견된 붉은 안료. 석간주다.



 

 

하지만...

 

 

 

동궁과 월지, 안압지에서 실제

 

통일신라 목부재 중에서 서까래,

 

기와 연함에서 붉은 칠이 발견되었고

 

 

 


봉정사 극락전 단청의 대부분이


붉은색이고 발해 또한 비슷하므로,

 

 

발해 삼령둔 2호. 오채색 보상화 무늬와 흰벽이 확인된다.



 

고증및 검증면에서

 

흰색, 붉은색 단청은


많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통일신라 건축

 

단청 도안이 발견된 적은 없다.

 

 



지금 현시점에서는 현실적인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해볼때...

 

 

 

통일신라 시대 초록색 안료 적용


또한 여러모로 합리적인 상황이다.

 

 

가장 일반적인 통일신라 금단청. 붉고 푸르고 하얗습니다.



#####################################################################

 

 

또한 국내 유물과 해외 유물


모두 초록색이 사용되었다.

 

 

 

실제론 붉은색과 흰색 배경이


좀더 사실에 근접하다고는 해도,

 

 

 

초록색 위주의 단청이 딱히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북한 박천 심원사 1368년 창건 . 단청은 16세기 재도색 단청 도채 / 파랑색은 당나라 중보촌 명기



 

게다가 조선시대 단청중에는

 

당나라 단청하고 비슷한

 

도안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시공사의 사정에 따라


상록하단 적용은 충분히


가능하고 설득력도 있는 상태다.

 

 

##################################################################

 

 

 

이러한 논리를 만들수 있죠.


보면 상당히 합당하지요?

 

 

 

통일신라는 붉은색


단청을 사용한 것이 맞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일부분 입니다만,


실제로 나왔으니까요.

 

 

 

실제 통일신라 건물 단청은

 

붉은색 칠한게 확인은 이미 됬습니다.

 



 

게다가 실제

 

통일신라 후기 단청의


흔적마저 강하게 보여주는~

 

 

 

봉정사 극락 단청조차!

 

붉은색 계열 배경색이

 

녹색보다 훨씬 많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건축부재들을 자헤시 보면, 대부분 배경색이 붉은색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나라 단청의

 

대부분은 붉은색or 흰색 배경

 

입니다.

 

 

당나라 단청도 의외로 이렇게

 

붉은색 위주로 채색 한 단청도 발견 됩니다.

 

 

당나라 단청



 

 

이런저런 이유로 통일신라 단청 배경색은


붉은색이 아주 많이 합리적 입니다만...

 

 

 

그러나 조선시대


단청 양식과 많은면에서


부합되는 유물도 등장한 것!

 

 

동궁과 월지 ( 구 안압지 ) 출토 건축장식용 통일신라 금동금구

 

 

 

그외 여러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통일신라 단청은 상록하단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니까 상록하단 단청을 신라 건물에 채색해도

 

되는것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논리가 형성

 

될 수 있습니다~!

 

 

 

###################################################

 

 

" 조선시대 단청은 송나라 11세기 단청과 매우 비슷하다 "

 

"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 결국 연옥장 타입 단청이 살아남았음 "

 

 

 

북한 박천 심원사 1368년 창건 . 단청은 16세기 재도색 단청 도채

 

 

 

 

 

" 또한 조선시대 궁궐 단청이 연옥장과 교차검증이 잘 되는 편 "

 

" 봉정사 머리초와 아주 비슷한 머리초 모양의 금동장식도 발굴됬다 "

 

" 그러므로 이미 11세기 이전에 머리초가 있는 조선시대식 단청이 있었을것 "

 

 

 

 

봉정사 극락전 머리초 단청하고 쏙빼닮은 통일신라 추정 금동금구 ( 9세기후반 ~ 10세기 초 추정 )

 

봉정사 극락전 출토 고려시대 머리초 단청 (10~12세기쯤)

 

 

 

 

 

" 그리고 중국, 일본에서 당나라 시절 이미 연옥장 방식의 채색이 있었음 "

 

"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영조법식 연옥장에 해당하는 단청이 있었을수도 있다 "

 

" 또한 돈황석굴에 당나라시절 하늘색 단청 또한 존재한다 "

 

 

 

 

당나라 716 ~ 765년 사이 중보촌 명기 단청

 

 

일본 나라시대 758년 창건 당초제사 금당 내부 단청

 

 

 

 

 

통일신라 시대때 상록하단 스타일이 있었을 "가능성 " 정도는 존재 한다 

 

" 송나라 시절 연옥장 중에서는 전부 초록색만 떡칠한 것들이 존재 "

 

 

 

" 신라시대 단청을 자세히 알 수 없으므로 "

 

" 이런 이유에서 초록색 만땅 단청을 시공해도 무리없다 "

 

 

 

조선시대 머리초 단청 ( 15~16세기 )
송나라 단청 영조법식 연옥장 ( 11세기 쯤 )
송나라 단청 ( 영조법식 연옥장, 11세기 쯤 )

 

 

 

상록하단을 칠할 수 있는

 

이런 논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하여튼 통일신라 건물에 주구장창

 

조선시대 머리초! 조선시대 방식의

 

초록색만 잔뜩 칠하는 단청!

 

 

 

이유가 어떻든! 생각보다

 

자료가 매우 풍성하답니다.

 

 

 

정상참작 하면 얼마든지

 

상록하단 칠하고, 우길 수

 

있는 상황이 지금의 상황이에요.

 

 

##################################################

 

 

 

뭐...유물이 이런데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리 학자들이 연구하고,

 

서까래에서 붉은색이 나왔어도...

 

 

 

아무리 붉은색, 흰색이 가장

 

많이 사용된 단청으로 예상되도...

 

 

동궁과 월지 출토! 건물 장식들을 잔뜩 적용한 신라시대 수상 전각

 

 


초록색 채색이 신라시대 목부재에서

 

나온적 아직까지 단한번도 없더라도....

 

 

이런 이유들이 존재하기에 상록하단

 

단청 시공은 충분히 무리 없다는 것이죠.

 

 


아무튼 이렇게 많은 자료를

 

토대로, 여태까지 통일신라

 

건물들에 상록하단을 칠했다!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의외로 정상참작 할 수 있는 여러

 

자료들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붉고 하얀 단청및 통줄눈 전축기단을 적용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전각

 

 

 

그러나 상록하단 타입의 운간채색

 

단청만 있던건 절대 아니랍니다!

 

 

 

붉은색과 흰색이 적절히 조합된

 

단청도 분명히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신라 건축물을 재현및

 

복원할때는 이렇게 만드는게 맞습니다...!!

 

 

흰벽에 주토안료 적용한 모습. 흰벽과 붉은안료 실제로 모두 출토되어서 고증으로는 전혀 문제없는 양식이다.

 

통일신라 종루에 주칠 ( 주칠안료 = 황화수은or주보사or진사or경면주사 ) 전체 적용한 모습

 

그러나 봉정사 극락전 / 당나라/ 나라시대 일본의 건축양식과 통일신라 각종 자료를 종합해보면, 이런 오채색 단청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높다.

 

가장 안정적인 단청 복원방식인 "건물 레벨에 따라 붉은색 전부 칠하기"

 

안압지 출토 금동장식, 녹유와를 조화롭게 조합해서 만들어본 통일신라 2층 누각. 안압지 정전 크기 그대로 만들어봤다.

 

 

통일신라 건축은 귀솟음과 안쏠림 공법이 있었을 확률이 꽤 높다.

 

물론 통일신라는 흰벽에 주칠 건축물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자료로써 나름 입증된다.

 

 

 

이렇게 그냥 흰벽 + 붉은칠만 칠한

 

통일신라 건축물 복원도 고증에

 

매우 부합합니다.

 

 

황룡사 담장에 주칠과 흰벽을 적용해봤으며, 통일신라 복령사에서 15m 대불을 모셨다는 기록에 의거하여 금동대불을 적용해봤다.

 

 

 

단청을 모르거나 작은 사찰, 건물을

 

복원 할때는 이렇게 건물 전체를

 

붉게 칠하는게 고증에 맞고!

 

 

 

가장 안전한 단청 방식이에요!

 

왜 건물 전체에 붉은색을

 

칠하는게 고증에 맞을까요!?

 

 

 

그것이 궁금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셔서!

 

 

 

흰벽에 붉은칠 단청이

 

왜 고증에 부합하는가!

 

에 대하여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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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국민적 합의가

 

더더욱 확실하게 이루어 질때,

 

 

 

제가 개인적으로 복원 / 재현한

 

통일신라 단청하고 비슷한 그런

 

건물들을 실제로 보게 될 것 입니다...!!

 

 

 

 

*참고사항 *

 

 

 

이 게시물의 내용은 24년 7월 10까지

 

연구된 내용을 기재한 것 입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변화 /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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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1. 성랑에 대하여

2. 성랑의 외형 유추해보기

3. 흑유와 건축물

4. 개성 나성의 성랑규모
5. 성랑 실제 적용한 모습

########################################################################

 

 

 

 

1. 성랑에 대하여

 

 

 

고려시대에는 성벽에 설치하는

 

성랑이라는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산성 성벽 윗쪽에 설치하거나, 혹은

 

성벽 뒷쪽에 설치하는 건물로 알려져 있어요.

 

 

 

지금은 그 아무도, 어디에서도 재현및

 

복원을 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고,

 

 

 

우리의 전통 문화인데도

 

굉장히 낮선 그런 성곽시설 입니다.

 

 

 

 

고려시대 성랑의 모습은 대략

 

이런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네요.

 

 


성랑은 기본적으로 성벽에

 

설치한 방어건물 / 혹은 회랑같은

 

방어 건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산성 성벽을 강화하는 건물로써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됩니다.

 

이 성랑의 기록은 귀주 산성의

 

 

 

고려시대 귀주전투

 

(귀주대첩 아님!)

 

 

 

그리고 고려의 수도 개성의 산성인

 

개경 나성 또한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높이의 건물이 산 위에

 

2km 길이로 이어져 있는게 성랑!

 

 

2km로 이어진 이런 모습...

 

굉장히 멋질거 같지 않나요?

 

 

 

 

비록 건축물 자체는 방어용이라

 

창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자세히 모르고...

 

 

 

건물 자체도 단순하게 생겼기야 했겠지만

 

방어 때문에 여튼 기와도 설치 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성랑은 어느정도의 스펙인지

 

어느정도 축약해서 알아 볼게요.

 

 

 

먼저 고려시대때 남아있는 기록이 있어요.

 

 

- 귀주산성 성벽 윗쪽에 건물을 올렸다-

- 그 건물들은 250여채 정도 있었다 -

 

 

그리고 또 다른 고려산성 기록입니다.

 

- 몽라골령(현 함경북도 길주) 산성에 -

- 성랑 950여칸을 설치했다 -

 

 

 

 

 

더 엄청난 기록도 존재합니다.

 

고려의 성랑은 생각 이상으로

 

어마무시한 규모를 보여줍니다.

 

 


- 고려사 기록 : 개성 나성에는 나각이 13000칸 있다 -

 

 

 

성랑으로 추정되는 나각이란게

 

무려 13000칸이 있다는 기록인데요,

 

 

 

이걸 대략 계산해보면 2000여채의 건물이

 

산성에 쭈욱 설치되어 있었다는거죠.

 

 

 

고려시대때는 이렇게 성랑에 대한

 

기록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출저: printest.com

 

 

 

그리고 의외로 가까운곳!

 

 

 

서울 북한산 북한산성에서

 

발굴된 성랑터도 있습니다.

 

북한산 성랑터는 기와가 발견됬어요.

 

 

 

 

그래서 성랑은 기와를 올린 건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한양도성 사진에 남아있는

 

성랑으로 예상되는 건물 사진군,

 

 

 

기타 조선 실록 등등 의외로 기록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랑 건축물의 높이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최대 6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 고려시대 성랑의

 

높이는 자세히는 모릅니다...

 

 

 

 

성랑 기록이 있는

 

유적군이 대부분 북한이라, 연구하기 힘든

 

상황이라 연구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기록으로 어느정도

 

성랑 건물의 높이 유추가 가능하다고 하네요.

 

 

남산의 서울도성 성벽. 이 근처에 실제로 성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1600년대쯤 기록에 성벽위에

 

대략 2길 ( 대략 6m )로 성랑을

 

만들수 있겠니!?

 

 

 

뭐 이런 의견을 냈던~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성랑 보고

 

어찌 2길로 만들수 있겠냐 라고

 

말한걸로 보아 6m 이상일수도,

 

 

 

혹은 5m내외일수도 있을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려시대도 그쯤되지

 

않을까? 라는 예상을 한다네요.

 

그래서 이 게시물의 성랑은 6m로 만들었습니다.

 

 

 

 

현재로써는 성랑 높이는 6m 정도!

 

라는 기록밖에는 없는 실정이고,

 

 

 

그 마저도 조선시대 기록으로

 

유추를 해야만하는 상황입니다.

 

 

 

고려 수도 개경을 지키는

 

개경성 나성 성벽 최대 구간이

 

8.1m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성랑은 스샷이랑 비슷한

 

느낌의 높이였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2. 성랑의 외형 유추해보기

 

 

 

 

고려시대 산성 성랑의

 

외형은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림자료 하나 없고, 그리고

 

실물자료도 사실상 없어서 입니다.

 

그러나 외형을 유추 정도는 가능합니다.

 

 

 

이유는 외형 유추 정도는 가능한 기록도 있고,

 

남한에서 실제 고려 성랑터가 발굴됬으며!

 

 

 

조선시대 후기 성랑의 모습으로

 

어느정도 유추는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성랑은 회랑타입 / 개별 건물타입 이렇게 2가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랑의 외형은 2가지 정도로

 

예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 회랑 타입의 성랑 -

 

- 개별건물 타입의 성랑 -

 

 

 

필요에 따라서, 성벽의 모습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거라 합니다.

 

 

 

일단 처음에는 회랑 타입

 

성랑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회랑같은 모습의 낭무타입 성랑

 

 

 

////////////////////////////// 회랑타입 성랑 알아보기 ///////////////////////////

 

 

보통 성랑이라하고 하면 뜨문뜨문

 

개별 가건물형 성랑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진짜 의외인데요,

 

 

 

의외로 성벽위에 회랑같은 모습으로

 

설치된 모습일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고려시대 기록 때문이고,

 

조선시대 기록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단 고려시대 기록을 보겠습니다.

 

 

고려사 기록에 [성랑무] 라는 기록이 있어서, 회랑형 성랑의 존재를 예측할 수 있다.

 

 

 

 

###########################################################

고려사 > 권53 > 지 권제7 > 오행1(五行 一) 

 

성랑무(城廊廡)가 소실되었다.

###########################################################

 

 

 

고려사 권53에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내용은 성벽의 낭무가 소실되었다.

 

라는 내용입니다.

 

 

 

한글 번역으로는 성랑이 소실됬다.

 

라고 되어있는데 한문으로는 사실

 

낭무라고 적혀있습니다.

 

 

 

城廊廡 = 성 낭무

 

 

 

바로 이 한문 때문에 성랑의 모습을

 

회랑의 형태로 예측할 수 있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고려시대때 [ 낭무 ] 이 단어는

 

지금의 회랑이나 행랑채를 말한다네요.

 

그럼 고려시대 회랑에 대한 기록을 보겠습니다.

 

 

고려시대 성랑은, 성벽에 회랑처럼 일자로 쭈욱 설치된 모습도 존재했을것이다.

 

 

 

 

###########################################################

 

고려사 > 권22 > 세가 권제22 1225년 10월 20일(음) 정미(丁未)

 


궁성의 저상전(儲祥殿) / 봉원전(奉元殿) / 목친전(睦親殿) /함원전(舍元殿)

/ 그리고 궁궐의 낭무(廊廡) 137칸이 소실되었다.

 

###########################################################

 

 

궁궐에서 전각과 함께 낭무가

 

소실되었다는 기록 입니다.

 

 

 

눈여겨 볼점은 바로 이 것 입니다.

 

궁궐 전각과 함께 낭무가 137칸이

 

소실 되었다고 기록에 적혀있습니다.

 

 

 

이 기록 때문에 [ 낭무 ]

 

 

 

이 단어가 회랑이나 행랑채같은 길쭉하게

 

만들어진 건물로써 예측이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고려시대의 [낭무] 는 이런식의

 

회랑 or 행랑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고려시대 낭무는 이런 회랑이나 행랑채였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궁궐에서 전각이 소실되면서

 

같이 137칸이 소실 되었는데요,

 

 

 

137칸이 소실 될 만큼의

 

방대한 규모를 보여주는건

 

행랑채 or 회랑 둘중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전각들과 함께 소실되었죠?

 

궁궐에서 전각이랑 같이 소실될만한건...

 

 

 

 

진짜 무조건!

 

 

 

전각을 둘러쌓듯이 만든

 

회랑이나 행랑체 둘중에 하나라서

 

이러한 예상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궁궐의 전각 주변에 설치되는건

 

행랑이나 회랑뿐이라서... 당연히...

 

 

 

고려사 기록의 [ 낭무 ] 는 당연히

 

행랑이나 회랑으로 예측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중요한것은 이겁니다!

 

한문을 주목해 주세요!

 

 

 

 

고려사 기록의 성랑 기록 = 성랑무( 城廊廡 )

 

고려사 기록의 궁궐 회랑 or 행랑채 기록 = 낭무( 廊廡 )

 

 

성벽에 사용된 한문도 낭무 (廊廡)

 

궁궐 회랑에 사용된 한문도 낭무 (廊廡)

 

 

낭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일자정렬

 

쭈욱 늘어선 건물을 가르키고 있어요.

 

 

광화문은 높이가 18.93m 정도다.

 

 

 

이런 한문의 사용 때문에

 

고려시대 성랑은 의외로...

 

 

회랑마냥 일자정렬 쭈욱 늘어선

 

모습으로 예상이 가능합니다.

 

 

왜냐면 한문을 그렇게 사용했으니까요.

 

성벽의 회랑 = 성랑무( 城廊廡 )

 

 

성랑의 최대구간 높이는 광화문에 필적한다. 이런높이의 성랑이 산성에 설치된 것이다!

 

 

 

그리고 고려도경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

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바깥쪽은 해자가 없고

 

여장도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낭무(廊廡)처럼 나란히 건물들을 두었고

 

그 모습은 높게 쌓은 적루[敵樓]하고 비슷함


###################################################



고려도경에서 말하기를 마치 낭무처럼,

 

그러니까 성랑의 모습은 마치 행랑같이

 

나란히 건물들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풀이해보자면

 

서긍은 이렇게 말한거 같아요.


[ 개성 나성 성벽위에 방어누각 닮은 건물을 ]

 

[ 회랑 마냥 일렬로 쭈욱 설치했다 ]

 

라고 해석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서긍이 적어놨습니다.

 

성벽위에 건물을 회랑처럼 올려놨다고요.

 

 

 

 

물론 4~5km가 넘는 성벽 모든구간을

 

회랑처럼 올리지는 못했을 것 입니다.

 

 

 

산성 모든 구간을 스샷마냥

 

전부 저렇게 설치하는것은 사실 좀 힘들죠.

 



5km 구간을 전부다 회랑처럼 설치하면

 

관리비가 어마어마하게 들긴 할거에요.

 

 

 

 

그러나 적어도 서긍이 본 구역이라거나

 

강력한 방어가 필요한 옹성 근처만큼은...

 


아마도 회랑이나 시전행랑처럼 건물들을

 

따닥따닥 붙여서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겠죠?

 

 

 

옹성쪽은 강력한 방어가 필요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건물을 촘촘한 설치를 해야지 방어에

 

유리하겠죠?

 

 

 

화공 방어에 유리한 기와지붕은 덤이구요.

 

그래서 서긍이 본 성랑은 아마 옹성쪽

 

성랑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옹성 부근 정도만을 한정하자면

 

저 정도로 촘촘하게 성랑들을

 

설치하는건 별 문제 없을거에요.

 

 

 

고려시대 기록에 나성 안쪽 길가에

 

행랑채 몇백개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왕도의 성문쪽에 성랑 몇백개쯤 못올리겠습니까!?

 

 

 

 

 

또한 실제 고려시대 성벽인

 

강화중성지의 성랑 추정지의 기둥홈도

 

회랑마냥 일렬로 이어져있는 모습이에요.

 

 

 

( 길다란 세로로 그린 선이 기둥홈 )

 

 

 

기둥열이 일정간격으로

 

설치된 모습을 확인 가능한데요,

 

 

 

이런 기둥 배치는 회랑같이

 

기둥이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는

 

건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고려시대 성벽의 기둥홈. 이런식으로 성랑의 기초를 설치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옹성쪽이나 강력한

 

방어가 필요한 위치 정도라면,

 

 

회랑같은 모습으로 촘촘하게

 

설치했을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기장읍성 / 김해읍성의 고려시대 성벽층 입니다.


기장 / 김해읍성의 고려시대 성벽층 쪽에서

성랑으로 추정되는 기둥홈들과 함께...



성랑에 사용된걸로 추정되는

기와더미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저는

성랑에 기와를 적용한 것 입니다!

 

 

당나라 벽화에서, 성랑의 형태를 유추해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이 벽화는 당나라의 둔황석굴의 그림인데요,

당나라의 전돌 성벽위에 행랑같은게 보이죠?



전돌 성벽 윗쪽에 마치 회랑같은 건축물을

올렸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성랑의 시초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려도경에서 성랑을 보고 회랑같이

건물을 올렸는데, 그 모습이 적루같다!

라는 대목이 있는데요,



그 적루가 둔황석굴 당나라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저런 모습의 형태가 아니었나 싶네요.



이렇듯 중국쪽 당나라 벽화로 인하여 성랑은

이미 통일신라 시절부터 있었을걸로 짐작됩니다.

 

 

 

 

 

또한 중국쪽에서 낭무라고 하면

 

이런식의 회랑들을 지칭합니다.

 

 

 

전통 회랑부터 최신식 복도까지

 

이런 복도같이 생긴 회랑들을

 

전부 낭무라고 합니다.

 

 

廊廡 (낭무 ) 이 단어로 검색해 보시면

 

온갖 회랑 복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려도경의 제작자 서긍이

 

성랑을 보고 낭무라고 했다는점만 봐도,

 

성랑은 회랑하고 비슷한 모습이었을 겁니다.

 

 

 

또한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회랑 형태의

 

성랑을 나름대로 유추 가능하다고 합니다.

 

 

 

###########################################################

* 조선왕조실록 - 인조 6년 무진 ( 1628년 ) 8월 16일 *

 


정충신의 말을 듣건대, 

 

성랑이 섬돌위의 행랑과 같아서

 

 

 

적이 쳐들어와 공격할 경우,

 

방어하기가 어려울것이다.

 

 

 

 

###########################################################

* 승정원일기 - 인조10년 임신(1632년) 4월 5일 맑음 *

 


인조가 성랑이 초막 같은거냐?

 

하고 물어보니까 관리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말하기를...

 

 


성랑이 높고 크지 않은 것이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 성랑은 긴 행랑이라, 사람이 들어가서

 

서 있기도 힘들며 사용하기도 힘들다. 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기록에서 조차도

 

성랑이 행랑채 같다고 말합니다.

 

 

 

그 기록을 어느정도 보여주는게

 

구한말 북한의 평안북도 창성읍

 

산성에 설치된 성랑 추정 건물입니다.

 

 

성랑 추정 건물을 확대해본 사진. 벽체가 없는 모습이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벽

 

바로 옆쪽에 성랑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성벽쪽에 설치 되었습니다.

 

 

 

또한 인천 강화부에서 조차 벽체가 없는듯한

 

맞배지붕 형식의 성랑 추정 건물이 발견되었어요.

 

 

 

1칸이 아닌 3칸 정도의 모습이고, 기와지붕을

 

올린 모습이며, 벽체가 없는 모습 입니다.

 

 

고적도보에서 발견된 인천강화부의 성랑모습. 벽체가 없는 회랑형태의 성랑이다.

 

 

 

그래서!

 

 

성랑 문화가 퇴락한 조선시대 조차도

 

정말 최소한의 회랑 형태는 맞습니다.

 

못해도 3칸 정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랑이 1칸일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방어가 널널한 장소일 경우에 한해서

 

1칸일 가능성이 크고,

 

 

 

실제 성랑의 외형은 거의 대부분의 자료들이

 

최소 3칸 정도의 건물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 조선시대 성벽에 설치하는

 

성랑은 회랑 타입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라는 유추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 개별건물형 성랑 알아보기 ///////////////////////////

 

 

 

그렇지만 성랑은 산성의 성벽 방어시설.

 

무작정 모든 구간이 회랑같은순 없겠죠?

 

 

 

그래서 성랑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개별 건물형 모습도 존재했을겁니다.

 

 

 

이런 개별적인 형태의 성랑이 존재했다는

 

고려시대 기록은 특별히 없기는 합니다만,

 

 

 

의외로 이런류의 개별 건물형 성랑은

 

실제로 터가 발굴이 되었습니다.

 

 

 

그 고려시대 성랑터는 충북의

 

추선산성 이라고 한답니다.

 

 

 

 

충북 증평 추성산성에서

 

온돌건물지 3개 동이

 

발굴 되었는데요,

 

 

이 건물터를 성랑으로 본다고 합니다.

 

 

 

추성산성은 토성인데 고려시대때

 

한번 개축되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발굴하면서 고려시대 성문터는 물론

 

각종 고려시대 물건들이 발굴되어서

 

고려시대때 개축 했다고 밝혀냈습니다.

 

 

 

 

특히 온돌 건물지는 이렇게 토성벽하고

 

가까운 위치에서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랑으로 예측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발굴된 모습은 회랑형 모습이 아닌

 

개별 건물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개별형태 건물의 성랑모습은

 

조선시대 자료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북한산 서암사터 회화. 성랑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그려져있다.

 

 

 

북한산 서암사가 그려진 조선후기 회화.

 

회화의 왼쪽을 보시면 성벽뒤에 성랑을

 

그린게 보입니다.

 

 

 

심지어 우측 하단의 남문쪽의 성벽도

 

성랑이 띄엄띄엄 설치되어 있습니다.

 

 

 

 

근데 어째서 이런 건물들을

 

그림만 보고서 성랑일 것이다!!!

 

라고 생각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선왕조 실록에 실제로

 

북한산성 성랑 기록이 계속 나옵니다.

 

 

 

###########################################################

* 조선왕조실록 - 숙종 38년 5월 12일 *


북한산성의 큰 공사는 거의 다 끝났고

 

아직 못 마친건 중성 / 성랑 공사인데,

 


예네들은 시급하게 끝내야할

 

공역까지는 아닙니다. 라는 기록되어 있다.

 

 

 

 

###########################################################

* 조선왕조실록 - 정조 9년 1785년 6월 17일 기록 *

 


성랑, 체성, 여성, 문루의 수리해야할 부분을


별단에 기록하였다. 라는 기록이 존재한다.

 

 

함북부령 읍성 북벽. 성랑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고서화처럼 성벽 근처에 건물을 올렸다.

 

 

조선시대때 이런 기록들이 있어서

 

북한산성에 성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게다가 실제로 북한산성 성랑터가

 

발견 되면서, 조선시대 기록들이

 

사실인게 확인 되었습니다.

 

 

출저: printest.com

 

 

이런식으로 실제로 북한산성에서

 

성랑터가 발굴이 되었습니다.

 

 

 

성랑 정면은 창문없이 그냥

 

벽만 있었다고 추측합니다.

 

 

 

또한 기와까지 다량 발굴 되면서

 

조선시대 성랑은 무조건 기와를

 

올린 건물로 밝혀졌습니다.

 

 

 

 

북한산성에서 발굴된 성랑

 

북한산성 회화에 그려진 성랑

 

여기서 발굴된 건물크기와 기와들

 

 

 

이런걸 조합해보면...

 

 

 

고려시대 성랑도 창문이 없고

 

기와가 올려진 건물이었음을

 

짐작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별건물형 성랑같은 경우는

 

의외로 아주 가까운곳에 있었습니다.

 

[ 바로 숭례문과 한양도성 입니다 ]

 

 

서울 한양도성하고 숭례문에

 

성랑이 있었다는 기록은 진짜

 

너무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한 기록을

 

딱 3개만 확인하면 이렇습니다.

 

 

성랑인지 아닌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성랑추정 건물들이 실제 존재는 했다.

 

 

###########################################################
* 조선왕조 실록 - 영조 23년 1747년 2월 5일 *

 


어영 대장 구성임이 끊임없이

한양도성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결국 받아드려졌다.

 

결국 한강쪽의 모든 창고를 싹다

성안으로 옮기고, 성벽을 돌아가며

성랑을 쌓았다. 라는 기록이 존재한다.

 

 

 


###########################################################
* 훈련도감 1745년 기록 *


돈의문에서 숙정문까지는 4850보이며

 

성랑 24개소가 있다. 라는 기록이 존재함.

 

 

 

###########################################################

* 조선왕조 기록 1894년 10월 13일 기록 *


숭례문 동쪽 제1성랑 / 제2성랑

근처의 개축된 성가퀴하고 성벽을

다시 수리했다 라는 기록이 존재함.

 

 

수원의 근대사진. 성랑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성랑하고 비슷한 기능을 했을것이다.

 

 

 

이런식으로 조선시대 후기까지

 

성랑은 실제로 존재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훌륭한 문화죠.

 

 

 

참고로 개성 나성에는 성랑이

 

4910칸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록에 개성 성벽은 8미터쯤 되고

 

성랑이 13000칸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개별성랑을 정면3칸 / 측면1칸

 

건물로 단순하게 계산해서 보면!

 

 

 

개성 나성 성벽에는 성랑 건물만 거의

 

2000여채가 있었던 걸로도 예측 됩니다.

 

 

 

 

정말 엄청난 규모 아닌가요?

 

조선시대 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물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 규모로 따진다면은...

 

 

 

평균 3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길이 4~5m 정도의 건물들이

 

가깝게 붙어 2km 내외로 설치된 형태겠죠...?

 

 

개성의 나성에서는 이런 성랑이 900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랑은 조선시대 모습은 앞면은

 

가려져 있고 뒷면은 열려있다고 하고,

 

 

 

나름대로 사진이 남아서 외형유추가

 

가능합니다만, 고려시대 같은 경우는

 

 

 

규모가 엄청난건 알겠는데, 성랑의

 

모습은 아예 모르는 상황 입니다.

 

 

 

고려 귀주전투 (몽골과의 방어전 성공한 전투)

 

쯔음엔 대포를 사용한 시기라서

 

창문이 있을수도, 없을수도...!?

 

 

 

 

그래서 고려의 성랑 모습은 자세하게

 

모르니까, 이번 게시물에서는...

 

 

 

창문 있는 버전

 

창문 없는 버전

 

길쭉한 회랑 버전 ( 낭무버전 )

 

한칸 한칸 개별설치 버전 ( 개별건물 버전 )

 

 

 

있는대로 전부 다 만들어 봤습니다.

 

뭐라도 좋으니까 고려시대 성랑의

 

자세한 모습을 알았으면 좋겠네요...ㅜㅠ

 

 

저기 네모난게 성가퀴 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조선 성벽의

 

성가퀴는, 성랑을 묘사한 거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성가퀴 윗쪽 경사진 부분이 마치

 

지붕 처럼 생겼다는 점이 뭐랄까

 

왠지...

 

 

목조 건축이었던 성랑을 대신해서

 

돌로 훨씬 견고하게 쌓은 성가퀴가...

 

 

 

기능, 성능, 심지어 모습까지 성랑을

 

전부 대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성벽쪽에 설치한 성랑. 어쩐지 성가퀴가 연상되는 모습이다.

 

 

 

 

비슷한 구도로 보면 목조 건축물인

 

성랑을 성벽에 설치한 모습하고,

 

 

 

조선시대 성가퀴 모습하고 굉장히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고는 합니다.

 

 

 

아무튼 목조 성랑의 위압감 넘치는

 

모습과, 흑유와 건축물을 설치한

 

건물을 언젠간 실제로 보고 싶네요.

 

 

 

 

성랑은 성 축성 방식에 따라

 

성벽 위에 올렸을 수도 있고...

 

성벽 뒤에 서있을 수도 있고...

 

 

 

성벽 방식에 따라 조금씩은

 

다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방어 강화 건축물이라 환경에 맞게

 

유동적인 모양이었을 수 있다는거죠.

 

 

 

 

저는 당나라 벽화및, 조선시대 성가퀴가

 

고려시대 성랑의 모습이 왠만큼

 

외형이 닮은점을 고려해서...

 

 

 

창문 버전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고려시대 성랑의 자세한 모습이

 

최대한 빨리 밝혀졌으면 좋겠네요.

 

 

################################# 5줄 요약 ###############################

 

 

 

- 고려시대때는 성랑이라는게 있었다.

 

- 성벽 위에다가 설치하는 방어용 가건물 이었다.

 

- 보통 3칸 / 너비5m 내외 / 높이 6m 내외로 예상 가능.

 

- 산성에 설치될때 몇십개의 건물이 2km씩 설치되서 규모가  엄청나다.

 

- 지금 한국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

 

 

*참고사항 *

 

 

이 게시물의 내용은 23년 12월 31까지

 

연구된 내용을 기재한 것 입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변화/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

 

 

 

3. 고려시대 특수기와, 흑유와

 

 

 

흑유와 라는 기와를 아시나요?

 

이 기와는 어지간히 전통건축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아무도 있는지 조차

 

모르는 그런 기와 입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소개해 봅니다.

 

 

지온인 미륵하생경도의 흑유와는 실제로 발굴 되었다.
출저: 국립중앙박물관

 

 

 

흑유와는... 말 그대로 기와에

 

흑칠을 한 다음에, 유약을 발라

 

만든 흑칠 유약기와를 말합니다.

 

 

 

고려시대때 잠깐 반짝 유행했다가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는지, 조선때는

 

거의 완벽하게 멸종하게 되는 기와 입니다.

 

 

 

이 흑유와의 사용법은 의외로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 꾸준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1312년 작품,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내림마루에 흑칠 잡상과 용두가 있다.

 

 

 

고려시대 불교회화


일본 대은사 소장 관경서분도

 

 

여기에서 흑유와가 어떻게

 

사용이 되는지 자세히 나옵니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죠?

 

흑유와는 엄청 많이! 잔뜩!

 

사용하지는 않고...

 

 

일반적으로 용마루나 내림마루,

 

혹은 잡상에 소량으로만 사용합니다.

 

 

흑유와 추정 잡상 - 대은사 관경서분도의 흑칠 잡상은 실존한다.

 

 

 

 

참고로 윗쪽 불교 회화의 흑색 기와를

 

흑유와로 예상하는 이유는 간단 합니다.

 

 

 

실제로 고려시대 흑유와 잡상이 발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불교회화

 

기와색상이 매우 검정색이라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아주 미묘한 푸른 색상이 첨가되있습니다. 그래서 회청색으로 분류 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불교회화에서

 

일반 기와를 채색할때는 생각의외로!

 

완전 검정색으로 채색 안합니다.

 

 

 

불교회화에서 완전한 검정색으로 칠한 기와는

 

흑유와로 보는것이 굉장히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전통기와 색상은

 

윗쪽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검정색 보다는 오히려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빛이 입니다.

 

 

 

불교회화에서는 흑유와 / 일반 기와를 철저하게 분리해서 채색한다.

 

 

 

일반적으론 기와색을

 

검정색! 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 회청색 ]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 불교회화에서는

 

일반기와를 회색이나 푸른색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지온인소장,

 

1294년 작품인 미륵하생경도 또한!

 

흑유와가 발견 됩니다. 그리고...

 

 

 

미륵하생경도 또한 흑유와는 용마루에

 

아주 약간만 사용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듯 흑유와는, 대량으로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은 특정부위에 한정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흑유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불교회화는 생각보다

 

무조건적 상상력으로만 건축 그림을

 

그린게 아닙니다. 그 시절 실제 건축양식을...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적용시켜 그린게

 

고려시대 불교회화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짧은 지식: 잡상이란?

지붕 마루에 장식하는 좋은 기운과 뜻을 가진 모형들.
비교적 여러 모양이고 많게는 10개 넘게 설치해서 그냥 전부
퉁쳐서 "잡상"이라 부른답니다! (모형마다 실제 이름이 있어요!)

 

 

 

 

불교회화에 나오는 흑유와가 이렇게

 

실제로 출토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무작정 상상화가 아니라는것을......

 

 


"생각보다는" 고려 불교회화가

 

실제 건물 고증이 괜찮습니다.

 

(딱히 사서에 언급도 없는 흑유와까지 표현)

 

 

 

 

 

그런데 불교회화에서는 너무

특정부위에 소량으로만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흑유와를 지붕 전체에다가 적용하면

과연 어떤느낌일까? 이게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흑유와라는 알려지지않은

기와도 소개해볼겸, 직접 지붕 기와를 전부

모조리 흑유와로 설치해서 건물을 만들어 봤습니다.

 

 

흑유와는 좌우의 회청색 기와하고 다르게, 가장 완벽한 검정색을 보여주는 기와다.

 

 

 

어떤가요? 생각보다 되게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 좋지 않나요?

 

 

 

흑유와는 유약을 발라 구운 기와라서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일반 기와하고

 

다르게 완벽한 검정색 입니다.

 

 

 

그래서 흑유와는 건물에 무게감을

 

느껴지게 해주며, 의외로 굉장히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랑에는 일반기와를 설치했고

 

문루에는 흑유와를 설치한 모습.

 

 

 

일반 기와하고 흑유와의 색감은

 

이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흑유와도 실제로 사용하면 일반

 

기와하고 느낌이 많이 다를꺼라...

 

 

 

굉장히 이쁠거 같은데 아무도

 

활용을 하지 않아서 아쉽네요.

 

그럼 이번엔 청자기와하고 비교해볼게요.

 

 

 

 

고려시대 청자 기와 2층

 

우진각 지붕 건축물 입니다.

 

 

 

옻주칠로 도색한 고려시대 2층 누각에

청자기와 / 고려사 기록에 존재하는...

 


금과 은으로 만든 지붕마루 용모양 장식인

치미 ( 혹은 취두 )를 적용하면 이런 모습입니다!

 

 

 

 

이번에는 흑유와를 적용한

 

고려시대 누각을 다시 보겠습니다.

 

 

같은 디자인의 건물이 색감과

 

기와 때문에 꽤나 다르게 보입니다.

 

 

 

신기하죠? 건물이 순식간에

 

화려함이 가라앉고, 깔끔하고

 

무게감 있는 건물로 변했습니다.

 

 

 

청자기와 / 일반기와하고 다르게

 

흑유와는 이런류의 다른 매력이 있는

 

멋진 아이템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나요?

 

 

 

 

흰벽에 옻주칠 기둥/ 청자기와/ 금동장식

 

전부 적용하니까 꽤나 멋지게 보이죠??

 

 

 

깔끔하면서도 잘 정돈된 느낌이 있으며

 

분명히 엄청 화려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차분한 느낌이 딱 검이불루 화이불치.

 

 

 

이 말하고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항상 보면서 생각을 한답니다.

 

 

 

그런데 저는 어째서

 

옻주칠 기둥을 적용했을까요?

 

 

그냥 주칠도 아니고?

 

옻주칠 기둥? 궁금하지 않으세요?

 

 

[ 고려 ] 주칠/옻칠 기둥이 있었다!? 고려시대 옻주칠 건축에 대하여 - with. 숭례문 단청 기둥색 고

안녕 얘들아? 너네들 고려시대 건축물에 주칠이나 붉은 옻주칠 적용해도 크게 문제 없다라는 사실 알고 있니? 그리고 실물로도 나름대로 검증되어서, 되게 긍정적인 상황이야. 이게 왜 이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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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주칠기둥이 아니라 옻을 바른

 

옻주칠 기둥에 알고 싶으시다면...

 

 

 

윗쪽 링크를 눌러서 옻주칠 기둥에 대한

 

고증및 검증에 대한 글을 읽어봐 주세요.

 

 

 

생각외로 옻주칠 기둥이 우리의 전통양식

 

이라는 것을 약간이나마 알게 되실 겁니다!

 

 

 

 

 

이번에는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

자주보이는 황금 기둥단청 적용및...

 

 

 

11세기부터는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는 노랑 벽체를

 

사용했습니다.

 

 

 

이 정도로 꾸미면 이제야

 

우리가 상상하는 고려건축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가 만든 이 건물은 이렇게...

 

 

 

여지껏 출토된 것들,

 

2차 사료와 외국 자료의

 

교차검증으로 추측 적용 가능한 양식들,

 

 

 

그리고 발굴된 것을 그 양식의

 

틀에 한해서 약간 활용한 것들 등등~

 

 

 

대부분 실제 출토된 것들과

 

기록에 존재하는 양식을 매우

 

공격적으로 적용한 것 입니다.

 

 

 

 

단청은 이렇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되었던

 

12세기 추정 실제 고려시대 단청을

 

거의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아랫쪽은 실제로 발굴된 단청들

 

모습입니다.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이런식으로 실제 고려시대 단청을

 

사용했고 고증에 맞춰서 적용하려

 

노력해봤습니다.

 

 

아랫쪽이나 윗쪽 사진하고 비교하면

 

윗쪽 단청들을 사용한게 보일겁니다!

 

 

 

 

그런데 기둥단청은

 

금박을 입힌 주칠 기둥이죠?

 

 

 

어째서 이런 금칠을 바른 화려한

 

금박 주칠 기둥을 적용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름대로 저 기둥은 실제로 있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적용해봤습니다.

 

 

 

[ 고려 ] 고려후기 다층 누각 양식에 대하여 /각종 고려 건축양식 고증및 적용해보기 with 송도 센

예들아 안녕? 여지껏 만든 고려시대 건물을 활용해서 고려시대 2층 누각을 만들어봤어. 보는 사람 돈 들어오라고 배산임수로 만들어봤어! 고려시대는 건물 조차도 돈이 들어오는 모습을 하고 있

vpb192kh.tistory.com

 

 

동그라미 금박을 그린 주칠기둥에 대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윗쪽의 링크를

 

누르셔서...

 

 

 

동그라미 금박 단청이 생각보다 고증에

 

맞다! 라는 사실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매우 긴 게시물 입니다! )

 

( 위에서 35%쯤 위치에 기둥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

 

 

신선원전 들보는 동그라미로 그린 단청이 존재한다 - 출저:문화재청 트위터

 

 

 

이번에는 조선시대 단청하고

 

고려시대 단청을 비교해볼게요.

 

 

확실히 조선시대 단청하고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는걸

 

느끼실 겁니다.

 

 

 

 

지금의 한국 단청은 일명

 

"상록하단"

 

 

아래는 붉고 위는 초록

 

뭐 이런거죠?

 

 

그러나 저의 작품을 보시면

 

조금 다른것을 느끼실 겁니다.

 

 

 

고려시대 단청은

 

상록하단 같은데 상록하단은

 

아닌 뭐 그런 느낌이지 않나요?

 

 

 

 

상록하단은 분명 아닌데 초록색을

 

너무 많이 사용하다 보니까는...

 

 

상록하단은 아니지만

 

상록하단 처럼 보이는것이...

 

 

 

봉정사 극락전의 12세기

 

고려시대 단청 이랍니다.

 

 

 

고려시대 사서를 보면

 

이런 말이 가끔씩 나온답니다.

 

" 금벽이 붉고 푸른게 건물이 간지나는구나!!! "

 

 

( 금벽은 고려시대 최고 수준의 단청을 뜻한다고 합니다. )

 

 

 

 

 

 

 

이 문장은 조선시대 시각으로 보면

 

그냥 상록하단 표현한것 이지만...

 

 

 

고려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실제로 금색 안료를 칠하고,

 

 

 

초록색과 붉은빛이 뒤섞여서

 

금빛으로 빛나는 단청을 보고

 

저런말을 한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서부터는 조선시대 단청하고

 

고려시대 봉정사 12세기 단청을

 

사진으로 보면서! 비교해 봅시다.

 

 

성랑 게시물이고 흑유와를

 

소개하는 파트인데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고 있는데...

 

 

ㅋㅋ 그냥 이왕 이렇게 된거

 

재미나게 한번 비교해 봅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전통 건축의 모습입니다.

 

 

일반 기와에 창호문,

 

상록하단 단청 건축물.

 

 

윗쪽의 사진들과

 

천천히 비교해보세요.

 

 

단청 / 기와 등등 여러가지

 

비교를 하시면 재밌을 겁니다.

 

 

 

 

 

 

 

고려시대 단청은 비록 시간이

 

갈수록 초록색 범벅이 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붉은색도 많이 쓰고

 

조선시대 보다 더 자세하고

 

누구나 알기쉬운 무늬로 인하여,

 

 

 

누구든 쉽게 알아볼수 있는!

 

쉬운 단청 가독성이 장점인

 

건물을 보여주었을 겁니다.

 

 

 

 

조선시대 금단청 입니다.

 

사실 조선시대 사찰 금단청이

 

고려시대 단청보다 훨씬 화려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있죠.

 

 

 

[ 조선시대 금단청 ]

 

[ 무지하게 화려하긴 하지만 ]

 

[ 일반인은...당췌 뭘 그린건지 분간이 안간다 ]

 

 

조선시대 단청은 알아보기 힘든 기하학무늬, 디지털 이미지 같은 패턴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단청은 지금 봐도 현란한"


"기하학 무늬를 엄청나게 사용합니다"

 

 


게다가 기하학과 함께

 

사물을 특징만을 잡아

 

굉장히 단순하게 축약, 축소 표현하여...

 

 

 

도대체 뭔 그림인지 모를

 

뭔가 그래픽적인 그림이 많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조선시대


단청은 사이버 펑크풍의 느낌이

 

생각보다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 단청은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 단청하고 굉장히 다릅니다.

 

 

 

 

사진을 보면 아실겁니다.

 

더 설명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고려시대는 무슨 그림인지 분간이

 

굉장히 쉽습니다. 그냥 풀과 꽃이에요.

 

 

 

누가 봐도 풀과 꽃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슴에 훨씬 더 쉽게

 

와닫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출저: 방방콕콕 bbkk.com

 

 

 

이런 무늬의 차이점이

 

조선시대하고 고려시대 단청의

 

가장 큰 다른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는 풀꽃이기는 한데

 

뭔지 모를 그래픽적이고 이해가

 

쉽지 않은 무늬들이 주류.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매우 힘들지만

 

자세히 보면 매우 화려한 그런 단청이죠.

 

 

 

근데 분간이 잘 안가니까 보통은

가슴에 잘 와닫지가 않습니다. 뭐가

뭔지 잘 보이지가 않으니까요.....

 

 

 

 

 

하지만 고려시대 봉정사 출토

 

10~12세기 단청 같은 경우는~!

 

 

 

남녀노소 누가 봐도 그냥

 

... 풀밭 꽃밭 입니다.

 

 

 

이게 고려시대 단청의 매력 같습니다.

 

알기쉽고 단순한 매력이랄까요?

 

 

 

 남녀노소 알기 쉬워서

남녀노소 모두 예쁘다고 느낄만한

요소가 많은게 고려단청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참고로 봉정사 극락전의

 

12세기 고려시대 단청도...

 

 

솔직히 맘만 먹는다면

 

상록하단화 시킬 수 있습니다.

 

 

 

상록하단화 시킨 고려시대 단청을

 

조선시대 상록하단 단청하고 뭐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 보세요!

 

 

 

 

사진을 보면서

 

비교하니까 비교하기 쉽죠?

 

 

 

둘 다 상록하단 단청이지만

 

고려시대 단청은 멀리서 봐도 꽃과풀

 

조선시대 단청은 멀리서 보면 뭔지 모르겠음;

 

 

 

이 두가지가 잘 구별됩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훨씬 더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사진을 봅시다.

 

 

 

파랑색 디지털 무늬 / 사각형 형광 레이저 빔 무늬 / 엄청난 기하학 창호문 /

오색 컬러 레이저포/ 형광 사이버 에너지 브라켓/ 온통 형광 초록색... 진정한 사이버 펑크. 조선단청.

 

 

 

조선시대 궁궐의 단청 입니다.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죠??

 

 

전문가는 되야 뭐가뭔지

 

구분되고 알 수 있습니다만,

 

 

대신 오방색을 강력하게

 

사용해서...그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멋지다는게

 

느껴질거라고 생각합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12세기 고려단청 또한, 상록하단처럼 보이게 만들수 있다.

 

 

 

윗쪽의 조선시대 궁궐 단청하고

 

아랫쪽 고려시대 건축 단청하고

 

보기만 해도 알 수 있겠죠?

 

 

 

고려시대 단청은 풀과 꽃 위주,

 

조선시대 단청은 풀과 꽃이 맞음.

 

근데 뭔가 간략화 되어서 알아보기 힘든 그런 단청...

 

 

 

둘다 각자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하여튼간에

 

이러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처럼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은

 

의외로 조선시대 단청하고 비교해보면,

 

 

 

다른것처럼 보여도 사실 단청의

주제와 내용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보셨듯이,

똑같은 상록하단이더라도...



이 정도로 시각적 구분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것이 바로!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단청입니다.

그러나 서로 각장 다른 매력이 있기에...

 



두가지 단청 모두 더 많이! 더 널리!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정. 상록하단 단청을 적용했다. 단청 고증에는 문제가 없다.

 

 

 

참고로 청자기와의 색감은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정의

 

기와색상을 기준으로 색감을 잡았어요.

 

 

 

사진이 아닌 실제 눈으로 봤을때의

 

색감을 기준으로 만들었답니다.

 

 

 

날이 맑을때 청자정을 한번 가보세요!

 

제가 만든 건물들의 기와색상하고 거의

 

같은 색상을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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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성 나성의 성랑규모

 

더 엄청난 기록도 존재합니다.

 

너무 엄청나서 믿기도 힘든 기록인데요;


- 지봉유설 : 개성 나성에는 ( 나각 - 성랑 추정 )이 1만3천칸 늘어서 있다 -

 

 

개성 성벽인 나성에는 이런류의

 

성벽 방어건물이 13000칸이 있었다

 

라는 기록이 분명하게 전해지고 있어요.


경복궁 = 7225.5칸
자금성 = 8704 칸
개성나성 = 13000 칸


개성 성벽에는 전성기 경복궁과

 

자금성보다 훨씬 많은 건물들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죠!

 

 


1만3천칸을 건물로 환산하자면

 

대략 건물 2000여동 정도.

 

정말 엄청난 규모 아닙니까!?

 

 

개성 나성은 거란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이런 성벽 방어 시설들을

 

2천동 쯤 만들었다는 뜻이죠!

 

 


물론 2천개가 아닐수도 있고,

 

건물 전부에다가 기와를

 

올리지는 못했겠죠.

 

 

 

또한 4~5km넘는 성벽 구간

 

전부를 회랑처럼 건물을 전부

 

따닥따닥 붙여서 올리진 못했겠죠...

 

 

그러나 여튼 성랑 건물이

 

거의 2천여개 있었다라는

 

기록은 확실하게 존재하며...

 

 

 

개성 나성은 성랑만으로도 정말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개성의 옹성 부근은 방어가 엄청나게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모습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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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랑 실제 적용한 모습

 

 

서울 최고의 관광명소중 하나!

 

청계천과 1:1 사이즈로 합성을

 

해봤습니다!

 

 

 

많은분들이 청계천으로

 

비유하면 쉽게 알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봤습니다~!

 

 

 

청계천 산책 도보~

 

청계천 상층 도로까지의

 

높이는 대략 3.8m 정도 입니다.

 

 

 

성랑이 14.1m 내외로 예상 가능하니

 

성랑이 3.5배 정도 더 높답니다~!

 

청계천에 회랑버전 성랑 ( 낭무버전 )을 적용해 보았다.

 

 

 

그러므로 성랑은!!

 

청계천 산책도보~ 청계천 상층도로 가로수 끝까지

 

 

 

대략 이 정도의 높이라고

 

예상및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사이즈를 토대로

 

청계천에 성랑을 설치되면

 

이런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만약 청계천에 이런식으로

 

일렬로 쫙 있을경우......그 얼마나...

 

위압감이 느껴지고 위용 넘칠까요!?

 

청계천에 개별건물 타입의 성랑을 적용해보았다.

 

 

성랑의 길이를 청계천으로 보자면~!

 

성랑은 대충 이 정도 거리였을 겁니다.

 

 

서울시청 근처 소라탑 청계천 시작점~

 

청계천 동대문 입구까지의 길이였을 겁니다!

 

 

만약 이런게 실제로 서울도성

 

혹은 개성에 아직도 있었다면,

 

 

아마 새로운 한국의 떠오르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요?

 

 

 

아마 고려도경에 나왔던, 개성의 성랑은

대충 이 정도 높이였지 않았을까? 라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고려도경 기록에 성벽이

 

대략 8m 라고 적혀있고...

 



조선시대 기록에 성랑의 높이가 대략

 

6m쯤 이라고 적혀있으니까, 실제로

 

이 정도의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파트하고 비교해보면 대충

이 정도 높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략 아파트 8 ~ 9 층 높이 정도 입니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이런식으로

새로운 신도시에 공원형식으로.....



성랑이나 성벽 문화를 재현하여

사람들이 일상에서 우리나라의 잊혀진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활용했으면 좋겠읍니다...

 

 

 

경기도 시흥시 월곶포구에 성랑 합성!

성랑이 이런식으로 있으면 진짜 멋있는

성벽 도시가 탄생하지 않을까요...!?

 

 

 

5천칸의 성랑을 쫙

 

이어붙이면 얼마나 길까요!?

 

 

 

합정역 메세나 폴리스 입구부터


홍대 입구쪽 연트럴 파크 시작점부터 끝까지.

 

 

 

이 정도 였을겁니다. 저기서 연트럴파크

 

끝까지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죠? 아무튼!

 

 

 

이런 엄청난것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게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실 제가 복원한 성랑및 건물들은

 

어느정도 오류가 있고... 나름

 

오버한것도 있습니다.

 


성벽 성문 둘다 완벽한

 

100% 고증도 아니고...

 

 

 

고려시대가 아닌~

 

조선시대때 기록인 6m를

 

성랑 건물 높이로 사용했죠...!!

 

(고려시대 자료는 기록이건 연구건 뭐가 없어서...;;)

 

 

 

그러나.....

 

사람들이 성랑에 대한 관심을

 

쬐~~~~~끔이라도 가져주시고!!

 

 

대중의 약간의 관심이 씨앗이 되어

 

학계에서도 많은 연구가 되어서...

 

 

 

실제로 어땠는지 연구가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아무튼 재미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5줄 요약 ##############################

 

- 우리나라는 성랑이라는 성벽 위나

뒤에 설치하는 건물이 있었음.

 

 

- 개성 나성에 13000칸, 대략 2천개동

수준으로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 성랑은 조선시대 기록상 6m (대략적인 추정)

 

 

- 고려시대 개성 나성의 최대구간 성벽높이는 8.1m까지는 밝혀짐.

 

 

- 그래서 예상되는 성랑+성벽 높이는 14.1m 내외~그 이상

 

 

####################################################

 

 

*참고사항 *

 

 

이 게시물의 내용은 23년 12월 31까지

 

연구된 내용을 기재한 것 입니다.

 

 

 

만일 추가적인 연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기존 가설의 변화  /  변화된 연구 결과로 인한

 

이론 변화가 발생할 경우,

 

 

 

이 내용은 언제든지 변화/ 수정 될 것 입니다.

 

연구결과 변화로 인한 내용 수정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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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 삼국시대 가야 ( 가락국 )! 가야 건축물은 기와를 사용했을까요? Feat - 가야 가형토기



일반적으로

가야 (가락국) 건축물

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무로 만든

귀틀집 고상가옥이나~



볏짚으로 만든

움집을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기와집이 아예 없는것

처럼 느껴지는 가락국...




그러나 가야 또한 기와를

사용한 기와집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제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1 - 삼국시대 가야, 기와를 올린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다!?



< 스샷 1>



여러가지 자료를 모와

제가 직접 복원해본~!

가야 맞배지붕 건축물! 입니다!



가야는 이 스샷과 같은

모양의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통은 고상 가옥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다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또한 기단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창문도 일자창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볼까요~?



< 가형 토기 >



가야 가형토기 사진 입니다.

이 가형 토기는 어디어디 지역

에서 출토된 가야의 집모양 토기!



이 토기는 그냥............

딱 봐도 ........  뭐 말이 필요없죠!

딱 봐도 ........  기와지붕 건물이지요?



지붕에 기왓골이

확실히 포개져 있는

모습을 아~~~~~~~~주 그냥!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류의 토기는 실제로

있었던 건물을 토대로 ~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 집모양 토기만 봐도.........



변한 이후..........

어떤 일정시점 부터는~!

기와지붕 건축물이 수입되었다고!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입니다.



< 스샷 2 >


그리고 집모양 토기를

자세히 보시면 ~



삼국시대 ~ 통일신라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일자창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집모양 토기로 인하여.......

삼국시대때! 일자창문을

사용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 신라 송공사 >
삼국시대 신라 or 고구려를 그린것으로 추측되는 신라 송공사 & 고려 왕사. 일자창문이 보이네요!



일자창문은 ~~ 정확히

삼국시대 꺼다! 라고

할만한 완벽한 국내 자료는~



이 가락국 집모양 토기가

거의 유일하다고 보시면 되요.



미륵사 출토 일자 창문은

완벽한 삼국시대 창문!



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습니다.



< 스샷 3 >


그런데 제가 복원한

문 손잡이는 뭔가

좀 특이하지요?



가야는 대문 손잡이 같은건

아예~ 발견되지는 않아서!



가야 파형동기로

만들어 봤어요.

네. 창작 이지요.



파형동기는 비록

건축물 하고는~~~

별 상관이 없지만..........



가야의 문 손잡이 모양은

자세히 모르니까~!


파형동기를

이런식으로~~

활용하는것도~!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용해 봤습니다!


< 스샷 4 >


제가 만든 건축물을

보면 기단이 흙기단 이지요?



가락국은 제대로 된 기단이

아직은 발굴되지 않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돌로 기단을 쌓는 방식은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어요.



다만 기록으로써 기단의

유무 정도는 확인

할 수 있습니다!



< 스샷 5 >



삼국유사 기록에

기단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 삼국유사 가락국기 >



김수로왕이

궁궐을 만들었는데

지붕은 짚을 이엉으로 만들고,


기단은 흙으로 만들었는데

고작 3척에 불과했다.



< 스샷 6 >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흙기단이 3척 정도다!

라고 정확히 적혀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있어서

기단 문화가 있었던 것은

확인 할 수 있지요!



김수로왕은

검소하고 현명하셔서!



몸소 검소함을 실천하며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신겁니다!



그러니까 궁궐 지붕을

이엉으로 잇고, 기단을

그냥 흙기단으로 한 것이지요!



여튼 기단이 3척이라고

되어 있지요~?



그 시절 척으로 보면

대충 75cm~ 1m 사이

정도 입니다.



제가 만든 복원 건축물

흙기단 높이는 그래서~!

1m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만든 건물을 보면

기둥이 땅속에 묻혀 있지요?



가야는 기둥 받침돌 ( 초석 )

이게 발견된 적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 기둥을 땅속에

일정량 묻어 설치하는

굴립주만 발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땅속에 기둥과 초석을

심어서 설치하는 방식은!

백제, 일본에서 볼 수 있어요.



삼국시대 백제나 일본은

땅속에 초석을 묻어서,



그 위에 기둥을 설치한...

기둥 하부를 일정량 땅속에

묻어서 설치하는...........



굴립주 초석 방식이

실제로 발견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실제 가야 건물터

대부분이 굴립주 입니다.



이 자료들을 정상참작

하여 굴립주 기둥으로

적용했습니다.



< 스샷 7 >


여튼 건물은

기와지붕 건물로

만들어봤습니다.



그러나.................삼국유사

기록은, 이엉으로 지붕을

엮었다고 나오죠!?



그리고 이거 외에~

가야 기와지붕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왜! 저는!

기와지붕으로 건축물을

복원했을까요?



사실..........

가야는 실제로 기와가

발견이 되었답니다.


< 수막새 >


일본놈들이 임나가야 어쩌구

지럴떨려고 악착같이 발굴해....



드디어 get 또다제!

라고 전해지는......껄껄 [ 먼산 ]



가야의 연화문 수막새 입니다.

출토지는 고령 대가야 왕궁터

이곳에서 출토되었다네요.



시기는 대략 6세기 ( 500년대 )

정도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실제 수막새가

출토되었습니다.



< 평기와 사진 >


또한 ~

가야 부원동 유적지에서

평기와로 추정되는~



수많은 기와 파편들이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 평기와 = 암키와 )



< 집모양 토기 다시 >



수막새가 출토 되었고!

평기와도 출토 됬습니다!

가야 출토 집모양 토기는!



기왓골을 형성하고 있는

기와지붕 건축물 입니다!



이 3가지만 봐도 알 수 있죠!?

가야 또한 거의 무조건..........

기와집이 있었을 겁니다!



< 스샷 8 >


제가 만든 건축물은

이 모든걸 기초로

만든겁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기단 기록

대가야 왕궁터 수막새

부원동 유적지 평기와

기둥은 전부 굴립주만 발견

가야 집모양 토기




이 모든것을 합치면

이런 맞배지붕 건축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연꽃 전돌 >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가야에서 이렇게 연꽃무늬

전돌까지 발견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돌은

자세한 사용처를 몰라서.....



제가 복원한 건축물에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렇습니다!

가야 유적지에서!



실제 기와 파편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시대는 대략

500년대로 추정 합니다.



왜냐하면 백제의 500년대

수막새하고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 스샷 9 >



신기하지요?

보통은 가야라고 하면

억새나 볏짚으로 만든 움집이나~



나무로 만든 고상 가옥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기와지붕도 있었습니다.



여지것 발견된 것들만

싸그리 싹다 모으면!



무려 고증논란 거의 없이!

기와지붕 건물을 예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지요!



마치 제가 만든

그래픽 복원 건물 같은것을~

고증 논란 최소로 만들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락국 연합이

기와지붕 건축물을 사용했다는

최고의 증거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 뉴스 링크 >


김해 금관가야 건물터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

되었는데요!



재미있게도! 무려!

목탑터 입니다!



예상으론 20m 정도 되는

목탑이라고 하네요!!!!!



20m 수준의 목탑이라면

사실상......거의 무조건

기와를 사용했을 겁니다.



20m 수준의 목탑은

반드시 수준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술력에 맞는 지붕은

당연히 기와지붕 일 것 입니다!



참고로 20m는

법주사 팔상전 목탑

정도의 높이를 보여줍니다.



( 법주사 팔상전이 20m )



김해 금관가야 목탑터야 말로

진정한! 가야의 기와지붕 건물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되네요!



참고로 김해 금관가야

목탑 유적지는!!!!!!!



황룡사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진......진짜 고대 목탑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금관가야 목탑터는

삼국시대 기록에 나오는~



450년에 만든 왕후사

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황룡사 목탑이 654년 쯤 )



< 스샷 10 >



이렇듯 가야는 기와지붕

자료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수두룩하게!



출토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가야 건축의

이미지를 바꿀때가 된 것이지요.



가야는 무조건!

고상가옥 & 움집이 대표!

라는 고정 관념에서..........



20m급 목탑을 만들

정도의 건축 기술력을

가진 국가이며!



기와 지붕은

가야 후반기부터 분명히 있었다!

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변한시절

움집 이미지만 생각해서는

안될 정도로~!



가야 관련 기와지붕

자료는, 서서히~ 더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2 - 왜 우리는 가야 건물하면, 고상가옥이나 초가지붕만 생각할까요 ?



이렇게 실제 기와가

출토되고 있는 가야.



그런데 왜 우리는 가야라고

하면, 무조건 초가지붕이나

고상가옥만 생각할까요!?



이것은 이런

이유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1. 전부 볏짚, 억새로 만든 이엉지붕 기록만 남아있다.



중국 후한서 - 동이열전

여기에 가야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변한 = 가야 입니다!



변한은 움집에 살거나

나무를 가로로 쌓아 만든

귀틀집에 살았다.  마치 개미굴 같았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근데 이건 후한서.....즉,




마한, 변한, 진한 시절

기록이지요.



< 고상가옥 1 >



그래도 뭐 여튼.....볏짚 같은

짚으로 만든 건물밖에 없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삼국유사

가락국기 조차......



김수로왕이 궁궐을 짓는데

지붕을 이엉으로 엮었다.

라고만 합니다.



이거 외에는 지붕에 관련된

기록 자체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며!



기와는 기록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변한 시절 기록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가야는 무조건

이엉집 건축물!



이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것 입니다!


< 고상가옥 2 렌더링 >


2. 건물 관련 유물 & 유적이 하나같이 고상가옥이나 움집들



이렇게 기와에 관련된

기록도 하나 없는데.....



실제 가야 건축물의 80~90%는

움집 or 고상가옥 건물터만

발견이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소국의 왕이

사용하던 건물조차 이런

성향이 보입니다....



이런 건물터는

당연히 500년대

이전 건물들이 대다수 입니다!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가야는 500년대 이전 건물터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고.......



건물터 대부분

움집 or 고상가옥을

유추할만한 평면도라서......



실제 건물 복원이 고상가옥

위주로 되어버렸습니다.



< 집모양 토기 2 사진 >



또한!



집모양 토기 대부분이

움집 or 고상 가옥처럼

생긴 집이 대다수~!



이러다보니 가야 건축물은

200~300년 이때 위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실제 기와조각이나

가장 확실한 기와지붕 건물인!



금관가야 목탑터 같은건

정말 최~~~~~~~~근에

발견된 수준이라서.....



가야 기와지붕 건물에 관한

이미지가 뭐 심어지고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야 (가락국) 건축물

이라고 하면~!









대부분 나무로 만든

귀틀집 고상가옥이나~


볏짚으로 만든

움집을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기와집이 아예 없는것

처럼 느껴지는 가락국...


그러나 가야 또한 기와를

사용한 기와집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이제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1 - 삼국시대 가야, 기와를 올린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다!?











가야 출토 집모양 토기를 모티브로 만든, 삼국시대 가야의 맞배지붕 건축물

여러가지 자료를 모와

제가 직접 복원해본~!

가야 맞배지붕 건축물! 입니다!

가야는 이 스샷과 같은

모양의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통은 고상 가옥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와지붕 건축물이

있었다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또한 기단도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창문도 살창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볼까요~?


가야 맞배지붕 집모양 토기 ( 가형토기 )
가야 가형토기 사진 입니다.

이 가형 토기는 어디어디 지역

에서 출토된 가야의 집모양 토기!

이 토기는 그냥............

딱 봐도 ........  뭐 말이 필요없죠!

딱 봐도 ........  기와지붕 건물이지요?

지붕에 기왓골이

확실히 포개져 있는 모습을~ 아~~~~~~~~주 그냥!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류의 토기는 실제로

있었던 건물을 토대로 ~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 집모양 토기만 봐도.........


변한 이후..........
어떤 일정시점 부터는~!

기와지붕 건축물이 수입되었다고!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입니다.

그리고 집모양 토기를

자세히 보시면 ~


삼국시대 ~ 통일신라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집모양 토기로 인하여.......

삼국시대때! 살창을

사용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삼국시대 신라 or 고구려를 그린것으로 추측되는 신라 송공사 & 고려 왕사. 살창 ( 일자 창문 )이 보이네요!


일자창문 ( 살창 ) 은 정확히~

삼국시대 꺼다! 라고

할만한 완벽한 국내 자료는~

이 가락국 집모양 토기가

거의 유일하다고 보시면 되요.

미륵사 출토 일자 창문 ( 살창 )은

완벽한 삼국시대 창문!

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원한

문 손잡이는 뭔가

좀 특이하지요?


가야는 대문 손잡이 같은건

아예~ 발견되지는 않아서!


가야 파형동기로

만들어 봤어요.

네. 창작 이지요.

가야 출토 파형동기
파형동기는 비록

건축물 하고는~~~

별 상관이 없지만..........


가야의 문 손잡이 모양은

자세히 모르니까~!

파형동기를

이런식으로~~

활용하는것도~!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용해 봤습니다!

제가 만든 건축물을

보면 기단이 흙기단 이지요?

가락국은 제대로 된 기단이

아직은 발굴되지 않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돌로 기단을 쌓는 방식은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어요.

다만 기록으로써 기단의

유무 정도는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기록에

기단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 삼국유사 가락국기 >


김수로왕이

궁궐을 만들었는데

지붕은 짚을 이엉으로 만들고,

기단은 흙으로 만들었는데

고작 3척에 불과했다.

***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흙기단이 3척 정도다!

라고 정확히 적혀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있어서

기단 문화가 있었던 것은

확인 할 수 있지요!


김수로왕은

검소하고 현명하셔서!


몸소 검소함을 실천하며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신겁니다!

그러니까 궁궐 지붕을

이엉으로 잇고, 기단을

그냥 흙기단으로 한 것이지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3척 흙기단을 적용한 가야 건축물 모습!
여튼 기단이 3척이라고

되어 있지요~?


그 시절 척으로 보면

대충 75cm~ 1m 사이

정도 입니다.

제가 만든 복원 건축물

흙기단 높이는 그래서~!

1m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만든 건물을 보면

기둥이 땅속에 묻혀 있지요?

가야는 기둥 받침돌 ( 초석 )

이게 발견된 적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 기둥을 땅속에

일정량 묻어 설치하는

굴립주만 발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땅속에 기둥과 초석을
심어서 설치하는 방식은! 삼국시대 백제 건물터, 아스카 시대 일본에서 볼 수 있어요.

삼국시대 백제나 일본은

땅속에 초석을 묻어서,

그 위에 기둥을 설치한...

기둥 하부를 일정량 땅속에

묻어서 설치하는...........


굴립주 초석 방식이

실제로 발견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실제 가야 건물터

대부분이 굴립주 입니다.


이 자료들을 정상참작

하여 굴립주 기둥으로

적용했습니다.

여튼 건물은

기와지붕 건물로

만들어봤습니다.

그러나.................삼국유사

기록은, 이엉으로 지붕을

엮었다고 나오죠!?


그리고 이거 외에~

가야 기와지붕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왜! 저는!

기와지붕으로 건축물을

복원했을까요?


사실..........

가야는 실제로 기와가

발견이 되었답니다.

일본놈들이 임나가야 어쩌구

지럴떨려고 악착같이 발굴해....


드디어 get 또다제!

라고 전해지는......껄껄 [ 먼산 ]

가야의 연화문 수막새 입니다.

출토지는 고령 대가야 왕궁터

이곳에서 출토되었다네요.

시기는 대략 6세기 ( 500년대 )

정도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실제 수막새가

출토되었습니다.



가야에서 출토된 각종 기와들! 암키와 까지 출토가 되었습니다!

또한 ~

가야 부원동 유적지에서

평기와로 추정되는~

수많은 기와 파편들이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 평기와 = 암키와 )

딱 봐도 기왓골이 마구 보이는, 기와지붕 건축물 입니다!
수막새가 출토 되었고!

평기와도 출토 됬습니다!

가야 출토 집모양 토기는!

기왓골을 형성하고 있는

기와지붕 건축물 입니다!

이 3가지만 봐도 알 수 있죠!?

가야 또한 거의 무조건..........

기와집이 있었을 겁니다!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만든 건축물은

이 모든걸 기초로

만든겁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기단 기록

대가야 왕궁터 수막새

부원동 유적지 평기와

기둥은 전부 굴립주만 발견

가야 집모양 토기


이 모든것을 합치면

이런 맞배지붕 건축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야 유적지 출토 연화문 전돌!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가야에서 이렇게 연꽃무늬

전돌까지 발견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돌은

자세한 사용처를 몰라서.....


제가 복원한 건축물에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렇습니다!

가야 유적지에서!

실제 기와 파편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시대는 대략

500년대로 추정 합니다.

왜냐하면 백제의 500년대

수막새하고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신기하지요?

보통은 가야라고 하면

억새나 볏짚으로 만든 움집이나~

나무로 만든 고상 가옥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기와지붕도 있었습니다.


여지것 발견된 것들만

싸그리 싹다 모으면!


무려 고증논란 거의 없이!

기와지붕 건물을 예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지요!


마치 제가 만든

그래픽 복원 건물 같은것을~

고증 논란 최소로 만들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락국 연합이

기와지붕 건축물을 사용했다는

최고의 증거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90826_0000750904 이 링크에 들어가시면! 가야 목탑터 뉴스로 이동합니다!

김해 금관가야 건물터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

되었는데요!


재미있게도! 무려!

목탑터 입니다!


예상으론 20m 정도 되는

목탑이라고 하네요!!!!!


20m 수준의 목탑이라면

사실상......거의 무조건

기와를 사용했을 겁니다.


20m 수준의 목탑은

반드시 수준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술력에 맞는 지붕은

당연히 기와지붕 일 것 입니다!


참고로 20m는

법주사 팔상전 목탑

정도의 높이를 보여줍니다.


( 법주사 팔상전이 ) ( 상륜부 [ 지붕 윗쪽 금속 ] 까지 22.7m )

김해 금관가야 목탑터야 말로

진정한! 가야의 기와지붕 건물의!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되네요!


참고로 김해 금관가야

목탑 유적지는!!!!!!!

황룡사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진......진짜 고대 목탑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금관가야 목탑터는

삼국시대 기록에 나오는~

450년에 만든 왕후사

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황룡사 목탑이 654년 쯤 )

가야는 이렇게 움집, 고상가옥만 있던게 아니었습니다! 출저 : www.heritage.go.kr


이렇듯 가야는 기와지붕

자료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수두룩하게!

출토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가야 건축의

이미지를 바꿀때가 된 것이지요.

가야는 무조건!

고상가옥 & 움집이 대표!

라는 고정 관념에서..........

20m급 목탑을 만들

정도의 건축 기술력을

가진 국가이며!

기와 지붕은 가야 후반기 부터 분명히 있었다!

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변한시절

움집 이미지만 생각해서는

안될 정도로~!


가야 관련 기와지붕

자료는, 서서히~ 더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2 - 왜 우리는 가야 건물하면, 고상가옥이나 초가지붕만 생각할까요 ?

이렇게 실제 기와가

출토되고 있는 가야.


그런데 왜 우리는 가야라고

하면, 무조건 초가지붕이나

고상가옥만 생각할까요!?

이것은 이런

이유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1. 전부 볏짚, 억새로 만든 이엉지붕 기록만 남아있다.

중국 후한서 - 동이열전

여기에 가야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변한 = 가야 입니다!


변한은 움집에 살거나

나무를 가로로 쌓아 만든

귀틀집에 살았다.  마치 개미굴 같았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근데 이건 후한서.....즉,


마한, 변한, 진한 시절

기록이지요.







김해 봉황동 움집 출저 : www.heritage.go.kr


그래도 뭐 여튼.....볏짚 같은

짚으로 만든 건물밖에 없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삼국유사

가락국기 조차......

김수로왕이 궁궐을 짓는데

지붕을 이엉으로 엮었다.

라고만 합니다.


이거 외에는 지붕에 관련된

기록 자체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며!


기와는 기록조차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변한 시절 기록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가야는 무조건

이엉집 건축물!

이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것 입니다!


출저 : 트랩 어드바이저

2. 건물 관련 유물 & 유적이 하나같이 고상가옥이나 움집들

이렇게 기와에 관련된

기록도 하나 없는데.....

실제 가야 건축물의 80~90%는

움집 or 고상가옥 건물터만

발견이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소국의 왕이

사용하던 건물조차 이런

성향이 보입니다....


이런 건물터는

당연히 500년대

이전 건물들이 대다수 입니다!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가야는 500년대 이전 건물터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고.......

건물터 대부분

움집 or 고상가옥을

유추할만한 평면도라서......


실제 건물 복원이 고상가옥

위주로 되어버렸습니다.


가야출토 고상가옥 집모양 토기 출저: 한겨레
또한!

집모양 토기 대부분이

움집 or 고상 가옥처럼

생긴 집이 대다수~!

이러다보니 가야 건축물은

200~300년 이때 위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실제 기와조각이나

가장 확실한 기와지붕 건물인!

금관가야 목탑터 같은건

정말 최~~~~~~~~근에

발견된 수준이라서.....

가야 기와지붕 건물에 관한

이미지가 뭐 심어지고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가야 건축물

복원도 고상가옥이나

움집 위주로만 실제 복원 되었고,

보도자료 조차 고상가옥

위주로 보도가 되어서.....

사람들은 여러모로

고상가옥 or 움집만

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눈으로 쉽게!

찾을수 있고! 쉽게!

눈에 보이는 모든게!

고상가옥 or 움집이다 보니......


우리는 가야 건물!

이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

고상 가옥 or 움집만

생각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기와조각및 확실한

기와지붕 건물터가

너무 늦게 발견됬고,

건물터 대부분이

고상가옥 위주로 발견되서~

실제 복원마저

고상가옥 위주로

복원한 결과.....라고 생각되네요.


3. 가야는 언제부터 기와지붕을 사용했을까요?


가야 출토 집모양 토기,

김해 부원동 유적지 평기와,

고령 대가야 왕궁터 수막새,

김해 금관가야 목탑터

이 유적지들 하고~

출토 기와들, 유물 덕분에

기와지붕 건물이 있었던 것은!

사실상 확정 됬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인지

궁금하시죠!?

답은! 잘 모른다! 입니다.

허허. ㅈㅅㅈㅅ


근데 유추는 가능해요.

유추를 볼까요?

김해 봉황동 고상가옥 ! 출저 : www.heritage.go.kr

수막새를 봤을때 500년대

백제 수막새하고 매우 흡사

하므로,

6세기인 500년대 쯔음엔

이미 기와 문화가 들어

왔을겁니다만!

< 백제 8엽문 수막새 출저 : 국립중앙박물관 >



언제 들여와서~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허허~~~


다만!

삼국시대 기록에!

가야가 왕후사를 만들었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 왕후사는 450년경에

만든 사찰 입니다. ( 5세기 )

김해 금관가야 목탑이

왕후사 가능성이

꽤나 있거든요?

만일 금관가야 목탑터가

왕후사로 확정된다면..........!!


450년 쯤엔 기와 문화가

들어와서 사용되었다고

생각해도 될 듯 합니다!

출저 : https://korean.visitkorea.or.kr/


고상가옥! 출저 : https://korean.visitkorea.or.kr/


고구려나 백제는

이미 4세기부터는

기와를 널리 사용한게 확인되고...........

고구려가 가야를

침공했다는 사실,

가야는 주구장창

백제, 신라하고 경쟁하고.........

가야가 왕후사를 건립하고.....등등.......


이런 사실들을

전부 유추해 봤을때........


가야 & 가락국 연합 또한

5세기 ( 400년대 )........ 이쯤에는~

기와지붕 문화가

들어왔을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유추만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


##########################################

- 20줄 요약 -

- 가야는 기와지붕 건물이 있었다

- 대가야 궁터, 부원동 유적에서 수막새, 평기와 출토

- 금관가야 목탑터도 발견됨

- 가야 집모양 토기는, 대놓고 기와지붕 맞배지붕.

- 이런 모든걸 보면 기와지붕 건물은 확실히 있었다.



- 근데 실제 가야 건물터는 고상가옥 or 움집이 가장 많이 발견됨

- 집모양 토기조차 고상가옥 계열이 가장 많이 발견

- 그래서 실제 건물 복원을 고상가옥 or 움집만 복원함.

- 보도자료및 교육자료도 고상가옥 위주로 배포됨

- 사서 기록도 이엉 지붕만 기록되어 있음

- 기와 파편및 기와지붕 자료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견됨.

  늦게 발견된 편

- 또한 기와지붕 건물 자료는 수량도 적음

- 눈으로 보이는 실제 건물

- 눈으로 보이는 사서 기록

- 눈으로 보이는 보도 자료

- 전부 고상가옥 or 움집 위주

- 가야에서 기와지붕 자료가 실제 발굴 되었지만

광고도 한번씩만 눌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일반인들은 이런 자료, 접하기 쉽지 않다. 


- 국민들에겐 고상가옥 or 움집만 눈에 쉽게보임

- 그래서 우리는 가야건물 이라고 하면 고상가옥 or 움집만 생각남

- 그러나 앞으로 가야도 기와지붕 있었다!

  이 내용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스샷 10장, 고상가옥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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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고있는 봉정사!



그 봉정사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있어요.

 


그 봉정사 극락전은 어쩌면

"통일신라 후기 건물"

 

" 혹은 후삼국시대 건축물 "

 



일수도 있는 상황이랍니다.

 



실존하는 통일신라시대 건축물,

 

혹은 후삼국시대 건축물!

매력있지 않나요?

 

 



그런데 이상하죠?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건물일탠데...

 

 

 

왜? 어째서 ?

 

어쩌면은 통일신라 건물일수도,

 

후삼국시대 건축물일수도 있을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어쩌면은 통일신라 건물일수도 있는지...

 

 

 

 

여러가지 자료들을 토대로

 

의심받는지 하나씩 알아봅시다.

 

 

봉정사 극락전 - 출저:문화재청

 

 

 

###################################################################################

 

 

 

봉정사 극락전은 약간 작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주심포" 건물 이랍니다.

 

 

 

건축 양식과 내부에 출토된 단청으로

 

인하여, 1200년도 고려중기 건축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제대로 알고보면,

 

많은 면에서 통일신라 시대의

 

건축양식과 요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극락전에 적용해봤다.

 

 

 

그럼 지금부터 봉정사의 연혁과

 

봉정사에서 발굴된 기록들을 보며,

 

 

 

어째서 봉정사 극락전이 통일신라

 

건축물로 의심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봉정사의 연혁 *

 

 

 

 

일단 연혁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사료들을 필두로

 

창건 시대를 유추 하자면,

 

 

창건자: 의상대사 or 능인대덕

 

창건 시대 :통일신라 초기

 

가장 유력합니다.

 

 

 

 

이번에는 각종 고서와 묵서들

 

좀더 자세히 기록을 보겠습니다.

 

출저 - 문화재청

 

 

 

봉정사 대웅전 우측불단 상판 하부 묵서,

"여지도서"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정(亭)자를 써서

봉정사(鳳亭寺)라하며...

신라시대 고찰이다. 라고 적혀있다.



########################################################


"영가지"라는 책의 기록에서

봉정사-신라위명찰 이라 한다네요.



 ######################################################## 




"봉정사 극락전 중수기"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신라문무왕창건야 ]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이 창건 하였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무대왕이 직접

창건 했다고 보기는 좀 그렇고...

 

 

봉정사 극락전 건물에 / 12세기 고려시대 단청 + 청자기와 + 흰벽을 적용해 보았다.

 

 

실제로는 고승들이 창건했을걸로

 

예상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문무왕이 아닌 고승들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더 많아서 입니다.

 

 

 

그래서 문무왕이 직접 창건한건 아니고

 

문무왕 시절 활동했던 유명한 고승들이,

 

 

문무왕의 도움을 받아

 

창건한걸로 예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두 고승의 기록은 이렇게

 

두가지로 보시면 됩니다.

 

 

########################################################

 

첫번째 기록

 

- 능인대덕 창건 기록 -

 

 

 

봉정사 기문장처에서

 

발견관 상량문에 써있길,

 

 

능인대덕 (680년쯤 활동)

 

이분이 창건하였다고 적혀 있답니다.

 

########################################################

 

 

12세기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 조선시대 단청하고 미묘하게 비슷한듯 다르다.

 

 

 

 

########################################################

 

두번째 기록

 

- 의상대사 창건설 -

 

 

 

 

봉정사 극락전 관련 기록에서

 

신라 의상조사 소점축지

 

라는 창건 기록이 발견 되었다네요.

 

 

 

신라의 의상조사가 봉정사를

 

창건했다는 내용 이랍니다.

 

########################################################

 

 

########################################################

 

세번째 기록

 

- 의상대사 창건설 2 -

 

 

 

의상대사 창건설의 또 다른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기록은 안동향토지에 적혀있는

 

봉정사 관련 기록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의상조사가 영주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여기 머물렀다"

 

 

 

 

이렇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분들의

 

활동시기를 주목해야 합니다.

 

 

의상대사/ 능인대덕/ 신라 문무왕

 

세분 모두 7세기 후반(680년쯤?)

 

에 주로 활동하신 분들이랍니다.

 

 

뭔가 퍼즐이 딱딱 맞죠?

 

문무왕-의상대사-능인대덕

 

모두 똑같은 시절 (통일신라 초기 + 680년 전후 활동 )

 

 

 

이때 즈음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조상님들 이십니다..!

 

 

 

창건기록이 모두 7세기 후반인

 

문무왕때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 초기가 가장 유력하겠죠..!?

 

 

 

 

 

그러나 창건의 핵심 인물은

 

능인대덕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예상합니다.

 

 

 

능인대덕은 두분의 도움을 받는다.

 

문무왕의 도움 / 인상대사의 도움 /

 

 

 

능인대덕이 이 두분의 도움과 비호 아래서

 

주도적으로 봉정사를 창건했지 않았을까?

 

라고 예상한다네요.

 

 

봉정사 극락전의 화반 / 이런 모습의 화반은 복화반 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의상대사는 사찰 창건을 실제로

 

엄청 많이 하셨습니다.

 

 

 

현재의 많은 대찰들의 시초이시며,

 

굉장히 열심히 / 주도적으로 하셨습니다.

 

 

 

의상대사는 화엄대찰을 전하기 위해

 

전국에 열곳이 넘는 사찰을 만들었다.

 

부석사, 미리사, 화엄사, 해인사,

 

갑사, 화산사, 범어사, 옥천사, 국신사 등등

 

국내 대찰을 창건하신 분이다.

 

 

 

(아직까지도 유명한 사찰들 대부분을 의상대사가 창건했음!)

 

 

12세기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 복화반의 단청이 2종류가 발견 되었다.

 

 

 

또한 의상대사는 능인대덕의

 

스승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상에게는 10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능인(能仁)으로,

 

 

 

문무왕 10년(670)에 동료 표훈과 함께

 

금강산에 표운사를 건립한 스님입니다.

 

 

 

실제로 능인대덕 의상대사에게 많은걸

 

배워서 사찰을 직접 창건을 하십니다.

 

 

4공화국 시절 그려진 단청. 자료가 부족한 그 시절, 할수있는만큼 예쁘게 조선시대 양식으로 잘 그렸다.

 

 

 

 

또한 1728년 작성된 천등산 봉정사

 

이 기록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신라때 의상과 능인 두 사람이

 

고승들의 도를 닦을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능인대사님이 스승 의상대사를

 

도와 절을 창 건하였거나, 혹은 합작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예상 가능하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 청자기와를 설치하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지금의 모습하고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러한 이유들로 봉정사 자체는

 

통일신라 초기, 680년대 즈음?

 

 

 

여튼 7세기 후반 쯤에는 확실하게

 

봉정사가 탄생했다는 뜻 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록이 그때를

 

가르키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 봉정사 극락전의 12세기 건축물설 알아보기 *

 

 

 

 


저는 어쩌면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 후기 건물일수도 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사실


일반적으로 알려진대로라면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이죠.

 



그리고 사실 12세기 건물설이

 

고증에는 가장 적합하고 타당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인

봉정사 극락전 12세기 건축물 추정

이 주장에 대한 내용부터 알아봅시다.




4공화국 시절 실시했었던

보수공사때 발굴된 자료들에 의하면,



1363년에 2차에 걸쳐서 지붕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는 묵서가 나왔다네요.

 

 

 

 

봉정사 극락전 상량문에서는

 

1363년에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고 했어요.

 

 

 

두번째는 1625년 조선시대때 수리합니다.

 

1363년에서 262년 걸렸습니다.

 



세번째는 1809년에 한번 더 수리합니다.

 

1625년에서 347년이 걸렸습니다.

 

( 봉정사 양법당 중수기 기록 )

 

 


수리 기록을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건물 수리 주기가 250년 이상씩 됩니다.

 

 

 

 

지붕은 일반적으로 만들고나서

 

100~150년 가량 지난 후에 지붕을 수리하지만,

 

 

 

봉정사 극락전은 실제 기록만 보면 보통

 

250년이 넘어서야 대대적인 수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냥 막장 계산을 해봅시다!

 

가장 처음 기록인 1363년 기록을 기준합니다.

 

 

 

1363년 - 250년 = 1113년

 

 

그냥 평균값으로 시간을 계산하면

 

봉정사 극락전은 1113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출토된 12세기 고려 단청들

 

 

 

 

두번째는 347년으로 계산하겠습니다.

 

1363 - 347년 = 1063년

 

 

 

1625년 ~ 1809년 수리까지 347년 걸렸죠.

 

 

 

1363년에서 3번째 수리기간인

 

1363년 - 347년으로 계산하면

 

결과값은 1063년.

 

 

 

막장 계산법을 통하여 !!

 

봉정사 극락전은 오히려 11세기쯤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축물이다! 라고 예상이 가능해요.

 

 

 

또한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그것은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 입니다.

 

 

 

이 단청 무늬들은 실제로 12세기

단청으로 예상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실제 고려시대때 사용된

각종 12세기 그릇이나 실생활에서

사용된 무늬들하고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청자기와 암막새. 윗쪽 그림의 솟을합창 단청하고 완전히 같다.

 

 

 

이런식으로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은, 실제로...

 

 

 

12세기 각종 생활용품들의

 

무늬하고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은

 

12세기 단청 양식으로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송나라 영조법식의 초화문, 윗쪽 고려시대 풀무늬하고 비교해보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단청이 송나라 영조법식의

단청하고 무늬가 매우 비슷합니다.

( 영조법식 : 1097년에서 1100년에 만든 건축양식 기술서 )



 

그런데 영조법식은 1100년쯤에

 

완성된 책 입니다. 그 완성시기가

 

1100년대 초반인데.....

 

 

 

이 책에서 나오는 단청무늬하고

 

매우 비슷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만 봐도.....

 

12세기 건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 그 와중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발전한 단청 무늬들도 보인답니다 )

 

 

 

 

 

 

이런식으로

 

1100년대 송나라 단청하고

 

매우 비슷한 단청 무늬들,

 

 

 

12세기 고려시대 유물들의 무늬가

 

봉정사 고려단청에서 그대로 발견

 

되었다는 점,

 

 

 

너무나도 오래되 보이는 건축양식들,

 

봉정사 극락전의 수리 주기를 모두 따져보면

 

 

 

12세기쯤에는 이미 극락전이 존재했을

 

확률이 많이 높은 상황 이랍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을 12세기 건물로

 

예상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봉정사 극락전의

 

[ 통일신라 후기 건축물설 ] 이것을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통일신라 시대 건물로 생각하는 이유 - 건축 양식 파해쳐보기 ***

 

 

 

봉정사 극락전은 각종 자료및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인하여...

 

 

 

못해도 한 1100년쯤? 이때부터는

 

이미 있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만,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신라건물!

 

이라는걸 가슴깊이 느끼게 해주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 건축양식 ] 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건축 양식을 고증 해보겠습니다.

 

 

 

 

 

 

일단 학자분들과 전문가분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확실한 특징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특징들이 통일신라 후기나

 

후삼국시대 건물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징들 입니다. 이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 설명을 전부 읽어 보시면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 나말여초 )

 

건축물이 맞을수도!!!??? 싶으실 겁니다.

 

 

주두와 소로, 건축 결구가 통일신라 후기 양식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

 

1. 기록으로 후삼국 시대로 유추 할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하고 관련된 기록은

 

이렇게 3가지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1728년에 쓰여진 [ 천등산 봉정사 ]-

 

[ 有變遷九幾廢而幾興也 ] : 봉정사를 9번 중창했다.

 

 

 

 

- 1809년의 [ 양법당중수기 ] -

 

[ 而累八兵 輒有修繕 ]: 양법당을 8번 수리 하였다.

 

 

 

 

- 1435년 8월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 -

 

[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

 


뜻: 신라대 500여년에 이르러,

을묘년 중 법당을 중창하다.

 

 

 

내용이 워낙 짧아서

 

자세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기록을 하나씩 살펴보고 기록들을

 

나름대로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1번 : 1728년 [ 천등산 봉정사]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有變遷九幾廢而幾興也」라고 하여


9번의 중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걸...

 

 

 

그냥 막장 계산을 해보면 대략

 

이런 결과값이 나오게 됩니다.

 

 

 

1728년 - 900년 = 828년

 

 

 

1728년 수리까지 총 9번 수리했고,

 

지붕 수리를 통상 100년 ~ 150년마다 하므로...

 

 

 

 

1회 수리를 100년으로 잡아서 계산했습니다.

 

이러면 828년이고, 통일신라 후기 입니다.

 

 

봉정사 출토 12세기 예상, 고려시대 단청은 이런 느낌이다.

 

 

 

 

########################################################

 

- 2번 : 1809년의 [ 양법당중수기 ]

 

「而累八兵 輒有修繕」이라 하여....

 

 

 

대웅전 / 극락전을 창건하고

 

8번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내용이

 

봉정사 대웅전  / 극락전을

 

창건부터 1809년까지 8번 수리했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3번째 항목이랑 이어집니다.

 

 

 

 

########################################################

 

3번​

 

-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 -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

 

[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

 

 

 

1435년 8월 초알에 씀.

신라대 500여년에 이르러,

 

을묘년 중 법당을 중창하다.

 

########################################################

 

 

 

이 기록은 봉정사 대웅전 지붕의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됬습니다.

 

 

 

이걸 그냥 간단하게 계산해보면,

 

1435 - 500 = 935년

 

대략 후삼국시대 즈음 입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바로 이

 

조선시대 기록으로 인하여

 

나말여초때 만들었다고 예상 가능해요.

 

 

봉정사 대웅전은 상량문의 내용으로 인하여, 935년에 중수된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2번째 기록 기억 나시죠?

 

분명히 [ 양법당 중수기 ]

 

라는 기록입니다.

 

 

 

 

[ 대웅전과 극락전의 중수기 ]

 

라는 내용이고, 1809년까지 두 건물을

 

8번의 수리를 했다라는 내용입니다.

 

 

 

 

근데?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에 적혀있죠?

 

 

 

 

1435년 8월 초알에 씀.

신라대 500여년에 이르러,

 

을묘년 중 법당을 중창하다.

 

 

 

이 내용 때문에 봉정사 대웅전은

 

단순 계산만 해봐도 935년 정도쯤에

 

이미 있었다... 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잘 보세요! 제 가설은 이겁니다.

일단 935년을 기준으로 계산을 해볼꼐요.




수리 한번당 100년이라고

 

가정하고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1809년 기록은 분명히 8번 수리라고 적혀있어요.

 

8회 수리를 800년으로 잡겠습니다.


935년 + 800년 = 1735년




결과값이 1735년 입니다. 

 

 

 

 

어라...? 1735년...?

어디서 본거 같지 않으세요?

네. 분명히 우리는 봤습니다.

 

 

 


그것은 가장 첫번째 기록입니다.

[ 천등산 봉정사 ] 바로 이 기록에

 

분명히 적혀있습니다.

 

 


1728년에 9번을 수리했다.

 

라는 기록이요.


 

.....1809년 양법당 중수기 기록을

 

935년을 기준으로 설정한 후,

 

 

 

지붕 교체 시기인 100년으로

 

적당히 계산하니까 1735년이 나왔어요.

 



신기하게 1728년 기록하고 비슷한

 

연도가 계산되는 것 입니다...!

 

 




1번 기록 - 천등산 봉정사에 적힌 기록인 1728년.

3번 기록 - 봉정사 대웅전 상량문을 토대로 예측한 건축물의 존재시기 : 935년 ( 추정 )

2번 기록 - 양법당 중수기의 8번 수리를 800년으로 잡고, 935년이랑 합치면 1735년.




뭐 적당히 계산한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무튼

 

3개 기록 모두 얼추 비슷하게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1809년 양법당 중수기는 그냥

 

개인적인 뇌피셜 입니다만....

 

 

 

아마도.....

1728년까지 8번의 중수를 했다. 라는 뜻 같아요.

 

 


1728년까지 8번의 중수를 했고

 

1809년에 다시 한번 수리했다.

라는 기록이라고 ...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1728년 기록은 9번 중수 했다고 하고

1809년 기록은 8번 수리 했다고 하고,

기록이 좀 다르기 때문에 이게...

 

 


두 기록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저의 계산은 사실 정확하지 않습니다.

뇌피셜이 잔뜩 들어간 내용입니다만.....



하여튼 두 기록을 모두 935년에 맞추면

나름 기록에 맞는 시기가 산출된다는

 

신기한 사실이 있습니다.


봉정사 대웅전의 첨차와 귓포들

 

 


여러분!!! 그리고 이걸 주목하세요!!!

[ 1809년 = 양법당 중수기 ] 입니다.

 

 


법당 2개를 중수 했다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봉정사 극락전도 935년쯤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봉정사 극락전의 매우 오래된

 

건축 양식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의견이면서

 

지극히 뇌피셜적인 결론입니다만,

 

935년에 봉정사 대웅전은 물론 ...

 



봉정사 극락전도 935년 즈음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랫쪽의 건축양식 분석을 보시면

 

더더욱 그럴수도 있겠다 싶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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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로 ( 목조 받침대 )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소로는 첨차위에 얹어서 도리들을

 

받치는 사각형 부자재 인데요,

 

( 브라켓 위에 올라간 사각형 받침대 )

 

 

 

 

이 소로라는 부자재의 모습이

 

굉장히 오래된 양식이라는 겁니다.

 

 

 

고려시대 하고는 약간 다릅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브라켓 윗쪽의 약간 작은 네모나미 부자재가 소로다.

 

 

그 양식은 이겁니다.

 

소로 밑둥이 곡선이다. 그런데

 

소로에 소로굽이 없다. 입니다.

 

 

 

고려시대 소로는 일반적으로

 

소로 아랫쪽에 곡선이 있으며

 

소로굽이 있는데요,

 

 

 

봉정사 극락전의 소로는

 

고려시대 건물인데 굽이 없습니다.

 

 

 

소로 밑쪽이 직각이고 굽이 없으면

가장 일반적인 조선시대 소로입니다.

 

 

소로굽 밑쪽이 곡선이며 굽이 없으면

 

완벽한 통일신라의 소로 입니다.

 

 

 

곡선의 유무로 인하여 조선시대

 

소로하고 구별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더욱 확실하게

 

사진으로 비교하겠습니다.

 

 

 

 

 

이런식으로 실제로

 

발견된 통일신라 소로들,

 

 

 

또한 일본에 실존하고 있는...

 

통일신라 즈음의 일본 건물들은,

 

 

 

소로 밑쪽이 곡선이면서도

 

고려시대 특유의 소로굽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소로. 소로굽도 없고, 곡선도 아니다. 직각으로 만든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처럼

 

직각으로 되어있는 모습도 아닙니다.

 

 

 

이래서 봉정사 극락전의 소로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입니다.

 

 

 

이러한 자잘한 양식들이 예상외로

 

통일신라 / 당나라 시절 건축양식

 

하고 교차검증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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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두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주두는 기둥위에 얹어서 브라켓이나

빔자재를 받치는 사각형 부자재 인데요,

( 기둥 바로 위에 올라간 사각형 받침대 )

 

 

 

 

이 주두의 모양도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두 모양이 아니라, 통일신라 특유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은 소로와 같습니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런식으로 봉정사 극락전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두 모양도,

 

전형적인 조선시대 주두 모양도 아닙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상황 이랍니다.

 

 

 

조선시대 주두및 소로하고 비교하면

 

더 확실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굽도 없고 이렇게

 

매우 직선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더 보기 쉽게

 

비교사진으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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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반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화반은 건물의 주심포

 

중간에 설치하는 조각 입니다.

 

 

 

예쁜 조각모양 받침대로써

 

빔자재를 받쳐주는 부자재를 말합니다.

 

 

( 기둥윗쪽 건물 브라켓 시스템 사이에 설치하는 화려한 모양의 조각 )

 

 

문과 창문 윗쪽의 불꽃 조각이 화반이다. 특별히 봉정사 화반은 복화반 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화반으로 부르지만

 

봉정사 극락전의 화반은 모양이

 

특이해서 복화반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봉정사에서

 

발견된 화반들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꽤나 여러종류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다양한 모양의 복화반과 대공들

 

 

 

 

실제로 이렇게 다양한 모양의

화반들이, 한곳에서 전부 발견되었어요.

 

 


이런 화반의 모양은 대략적으로

700년대 ~ 900년대 양식 입니다.



딱 이 시절에 유행하던 화반하고 

굉장히 닮아있는 모습이랍니다. 



비교스샷을 보시면, 극락전 화반은

 

의외로 통일신라 양식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봉정사 극락전 화반은 일본 / 중국 화반과 닮아있다. 수덕사나 임영관 삼문같은 고려후기 화반하고 전혀 다르다.

 

 

 

 

비교 사진을 보셨으면 아마도

 

확실하게 느끼셨을겁니다.

 

 

 

극락전의 화반은 전혀 고려시대

 

화반같이 않습니다. 많이 다르죠.

 

 

 

극락전의 복화반의 모양새는

 

수덕사 or 임영관 삼문 화반같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화반하고 정말 다릅니다.

 

 

 

오히려 나라시절 일본건물이나

 

오대십국 중국의 화반하고 닮아있죠.

 

 

 

 

758년에 당나라 사람이 만든 일본의 사찰,

 

중일우호 사찰로 불리우는 당초제사.

 

 

 

그 당초제사 단청을 복원한 자료인데요,

 

퇴량쪽 화반인 봉정사 화반하고 완전히

 

비슷합니다.

 

 

 

이런 통일신라 화반의 모습을 보여주는

 

봉정사 극락전. 935년 설이 어째서 나름

 

타당성이 있는지.....이제 이해가 되시죠?

 

 

흰벽에 옻주칠 / 청자기와를 적용해본 봉정사 극락전. 우리나라 건축도 이런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고려시대때는 그냥 주칠이 아니라,

 

 

 

옻을 섞은 옻주칠 기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있어요!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고려시대 옻주칠 기둥이 있었을

 

가능성에 알고 싶으시다면 아랫쪽

 

링크를 눌러서 내용을 확인해보세요!

 

 

[ 고려 ] 주칠/옻칠 기둥이 있었다!? 고려시대 옻주칠 건축에 대하여 - with. 숭례문 단청 기둥색 고

안녕 얘들아? 너네들 고려시대 건축물에 주칠이나 붉은 옻주칠 적용해도 크게 문제 없다라는 사실 알고 있니? 그리고 실물로도 나름대로 검증되어서, 되게 긍정적인 상황이야. 이게 왜 이런지

vpb192kh.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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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작 시스템이 통일신라 시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포작은 브라켓으로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 시스템을 말한답니다.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들을 복잡하게

 

얽어서 설치하는 그런것 입니다.

 

 

 

그 지붕을 받쳐주는 포작이라는

 

브라켓 시스템이 굉장히 오래된

 

양식으로 추측이 가능하답니다.

 

 

고려시대 단청은 석간주 (적갈색) / 주칠 ( 새빨간 빨강색 ) = 두개를 철저히 구분해서 사용하는것을 알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의 브라켓 시스템은

 

사실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 인데요,

 

 

 

이 주심포 양식이 언제부터 이런

 

모양을 했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적어도 통일신라 초~중반기 부터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일본 해룡왕사 오중소탑. 해룡왕사 나라시대의 천평시대(729년~74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소형 목탑은 일본의 나라시대때

 

조성한 해룡왕사 오층목탑 입니다.

 

 

 

건물안에 있는 소형 목탑인데

 

700년대 포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세히 사진을 보세요.

 

어쩐지 봉정사 극락전하고 포작이 닮았죠?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 시스템을 관찰해보면 매우 비슷하다는게 보인다.

 

 

 

자세히 관찰해 보시면 굉장히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해룡왕사 목탑 사진이 너무 작죠?

 

이제 조금 더 큰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해룡왕사 5층목탑 / 당초제사 금당의 포작을 충실히 따라한 일본의 건축물

 

 

 

해룡왕사 5층목탑 포작을 확대해보면

 

이런 느낌 입니다. 뭐 완전 같지는 않지만...

 

 

 

편하게 비교해보시라고

 

비슷한 사진을 올렸습니다.

 

 

 

봉정사 극락전하고 비교해보세요.

 

어쩐지 굉장히 닮아있는 모습이지요?

 

 

 

근데

 

사실 아랫쪽 주칠 전각은 해룡왕사 보다는

 

일본의 당초제사의 포작을 더 닮아있어요.

 

758년 나라시대 창건 일본 당초제사 금당

 

 

 

이 사진을 윗쪽 해룡왕사 목탑하고

 

비교해보시면, 딱 느낌이 오실겁니다.

 

 

 

아.....

 

통일신라 / 당나라 시절 브라켓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이런 모습이겠구나!

 

 

 

이런 느낌을 받으실겁니다. 그래서

 

해룡왕사 하고 당초제사의 포작이

 

모습이 거의 같습니다.

 

 

 

그래도 잘 모르시겠다면,

 

또 한번 비교샷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유심히 보시면, 봉정사 극락전의

 

포작이...일본의 나라시대 포작에서 딱!

 

 

 

진짜 딱 한단계 정도만 발전했다라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근데 좀 햇갈리죠?

 

 

 

그럼 저 2건물의 포작을 최대한

 

간소화 시킨 모델링으로, 더욱

 

쉽게 보겠습니다.

 

 

 

 

최대한 간소화 하면 이런 느낌입니다.

 

대충 뭐가 변했는지 느낌이 오시죠?

 

 

 

한국에서 현존하는

 

목조 건물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주심포 건물 입니다. 그래서 의외로...

 

 

 

이래저래 당나라 / 통일신라 / 나라

 

이 시절의 건축 양식이 엿보이는게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신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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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건물을 조립하는 방식이 통일신라 양식으로 추정가능하다.

 

 

 

봉정사 극락전의 측면을 보면

 

왜 이게 통일신라 기술로 만들었는지

 

대략 유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당나라 건물하고

 

건물을 만드는 방식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건물 구성이 거의 같은

 

그 중국 건축물은 바로 여기 입니다.

 

 

 

"중국 남선사 대전"

(782년 건립)

 

 

 

이 건축물의 내부를 보면,

 

봉정사 극락전하고 굉장히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남선사 대전 내부의 모습 ( 782년 건립 )

 

 

 

내부를 측면에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극락전하고 뭐가 비슷한지 잘

 

이해가 안갈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비교하시라고

 

극락전 측면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내부 측면 / 남선사 대전하고 매우 비슷하지만, 극락전쪽이 한단계 발전한 모습이 보인다.

 

 

 

최대한 쉽게 이해하시라고

 

종단면도로 최대한 보기쉽게

 

수정을 해봤습니다.

 

 

 

이 둘은 포작조차도 꽤 비슷합니다.

정면에서 보면 다른데, 측면에서 보면

생각보다 많이 비슷하답니다.



남선사와 극락전의 포작을 최대한

단순하게 처리해봤습니다.

 

 

 

 

이렇게 비교하면 뭐랄까...

남선사 대전의 업그레이 버전이

봉정사 극락전 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이 두개가 대체 뭐가 다른겨?

라고 느끼신다면,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만큼 두 건물은 서로간에

많은 차이점이 있지 않습니다.



하여튼 두개의 건물의 공통점을

짦게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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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사 대전과 / 봉정사 극락전의 닮은 점 -

 

 

 

 

1. 들보위에 복화반이 올라갔으며, 복화반이 브라켓을 잡아준다.

 

2. 포대공이 ( 가장 윗쪽 화반 ) 복화반의 모양새다.

 

3. 들보의 결구 방식및, 외부 포작 ( 브라켓시스템) 방식이 매우 유사함.

 

4. 맨윗쪽 들보는 사람인人 모양의 세로 부자재가 ( 솟을합장 ), 추가로 지붕을 받쳐주고 있다.

 

5. 상하 들보 사이를, 내려오는 수직부재 ( 솟을합장 )이 잡아주고 있다.

 

 

 

* 보간 사이의 솟을합장 - 조선시대는 우미량으로 발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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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 다른 당나라 건축물하고 매우 닮아있다.

 

 

 

 

이 내용은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내용이라서 한번 올려봅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의외로

 

[ 실제 당나라 건축물 ] 하고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소로, 주두의 굽이 없는거하며

 

여러모로 정말 비슷한 건물입니다.


그 건물은 바로 이 건물 입니다.

 

 

 

이 건물의 이름은 광인왕묘 정전 입니다.

831년에 창건된 건물입니다. 831년이라면

 


완벽하게 당나라 / 통일신라 시대의 건물인데요.

이 건물도 봉정사 극락전하고 비슷한점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럼 하나씩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일단 처마의 모습부터 보겠습니다.

 

 

 

 

광인왕묘 정전은 이런 포작입니다.

매우 전형적인 당나라 포작을 보여주며

단장혀가 출목도리를 잡아주고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포작 입니다.

( 포작 = 지붕을 받쳐주는 브라켓 시스템 )



광인왕묘 정전하고 비교해보세요.

거의.....비슷하지 않습니까?



단순한 포작에 단장혀가 출목도리를

지지해주는 모습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글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비슷하죠.

 

 

그리고 이 두 건물의 비슷한점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 내용도 꽤나 흥미로울겁니다.

 

 

 

동그라미를 그린곳을 자세히 봐주세요.

저 부분은 [ 보머리 or 보뺄목 ] 이라고 부릅니다.



대들보의 끝 부분이고,

 

저런식으로 조각을 합니다.

 



들보의 끝 부분을 이렇게 조각하는 양식은

려말선초 건물에서 가끔씩 발견됩니다.




그런데 저런 조각 양식을 가르키는

이름은 아직은 특별히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저 조각한 부분은 마치

메뚜기의 머리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저 모습을 가르키는 이름은 없지만

그냥 메뚜기 머리 같으니까 그냥...



그래서 이 게시물에 한해서만 저 부분을

[ 메뚜기 머리모양 보머리 ] 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니까 분간이 잘 안가죠?

그래서 모델링으로 준비해봤습니다.



여튼 봉정사 극락전의 메뚜기 보머리는

의외로 831년 창건된 광인왕묘 정전에서

거의 똑같은 모습이 발견됩니다.

 

 

소로, 주두의 모습과 브라켓 시스템을 비교해보라. 진짜 엄청 비슷하다는걸 알 수 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죠?

광인왕묘 정전은 831년에 만든 건물.



그런데 봉정사 극락전 또한

사실상 거의 같은 모습의 보머리를

사용하고 있는겁니다. 신기하죠!?



그리고 광인왕묘는 내부 사진이고

극락전은 외부 사진 입니다만,



어쩐지 브라켓 시스템이 엄청나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것도 눈에 띕니다.



 

 

 

 

물론 봉정사 극락전에서도 내부에서

메뚜기 모양의 보머리가 발견되었습니다.



다만 보머리는 아니고...

계랑을 받쳐주는 첨차의 조각 입니다.



광인왕묘가 내부에서

 

메뚜기 머리모양 조각을

사용했듯이, 봉정사 극락전도

 

 

 

메뚜기 머리모양 조각을

내부에서 사용합니다.



두 건물이 모두 내부에서 이것을 사용한다라는

공통점이 있다는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이죠.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식인 화반,주두,소로의 모습을 보인다.

 

 

 

 

다만 봉정사의 경우, 

 

외부까지 사용을 합니다.

저런 메뚜기 보양 보머리를 외부에서 사용하는건



불광사 대전 ( 857년 )

진사 성모전 ( 1100년 즈음 )

봉국사 대전 ( 1013년 )



이렇게 800년대 중반부 부터 사용하므로

봉정사 극락전의 경우는 800~1000년대의

기술이 적용된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11세기쯤에는 애용된 기술이

봉정사 극락전의 건물 구성요소로 사용된 것 입니다.

 

 

 

 

이런식으로 비교해보면 아시겠죠?

일반적으로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통일신라 후기 or 후삼국시대 건축물로

예상 가능한 이유는, 이러한 증거들 때문입니다.



그냥 7~800년대 중국 일본 건물들하고

비슷한점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런식으로 당나라 건물의 구성하고 

많이 비슷한게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국내에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축물들 보다는

중국/일본의 당나라 시절 건물들하고

훨씬 더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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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 뵤도인 호오도와 봉정사 극락전 단청의 닮은점

 

 

 

 

여러분, 일본의 뵤도인을 아시죠?

 

뵤도인의 메인 건물 호오도

 

( 평등원 봉황당 )

 

 

 

이 건물 내부의 단청하고

 

봉정사 극락전 내부단청하고

 

유사성이 있다는 점을 아십니까!?

 

 

 

 

 

일본 뵤도인 호오도의 헤이안시대 단청하고

 

고려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하고

 

이런 유사성과 닮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단청하고 고려시대 단청하고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대 단청을 연구할때는 싫든 좋든

 

일본의 자료들하고 비교분석을 반드시 해야되요.

 

 

 

고대 건축을 복원 / 재현 / 연구하는데

 

일본과 중국 자료를 참조하는것을 그다지

 

마땅치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이런식으로 닮은점이 너무 많아서 일본과

 

중국 자료하고 비교는 사실상 필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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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봉정사 대웅전의 부자재하고 비교해도, 더 오래된 양식이다.




앞에서 꽤 길게 다루었습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기록에 의거하여

 

단순하게 계산만 해봐도...



935년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조선시대 양식으로 개조되었지만, 의외로...



봉정사 대웅전 안쪽에서는

 

935년 즈음의 양식으로 보이는

 

건축 부자재가 있답니다.




바로 종도리 ( 가장 윗쪽의 보같은거 )

이걸 받쳐주는 받침대인데요. 딱 봐도

봉정사 극락전의 첨차하고 똑같이 생겼죠?


봉정사 대웅전의 첨차와 주두. 전형적인 조선초 양식이다.

 

 

 


보시다시피 봉정사 대웅전의 현재 첨차는 이런 모양.

전형적인 조선초기 양식 입니다만, 내부에서 이렇게

굉장히 고식 부자재가 발견된겁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935년에 만든것으로

예측 가능한 봉정사 대웅전. 그 속에서

나온 고식 부자재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것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첨차와 주두, 소로가

935년에 만든걸로 예측 가능한 봉정사 대웅전의

고식 부자재들보다 훨씬 더 오래된 양식 입니다.







이 사진만 봐도 아시겠죠?

봉정사 극락전쪽이 더 오래된 양식이에요.

 


지금까지 소로/주두/화반 비교한걸

잘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단번에

 

이해하실 겁니다.



이런것들도 발견이 되었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도 935년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이 생각보다 매우 큽니다.

 

 

복화반, 주두, 소로, 포작 등등 여러모로 통일신라의 요소를 담고있다.

 



아니 되려, 봉정사 극락전은 935년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는거죠.



935년 봉정사 대웅전의 양식이

조금 더 진보된 양식이라...



봉정사 대웅전이 오히려

 

극락전의 건축양식을 보고 따라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 입니다.

 

 

일본 해룡왕사 오층소탑 ( 730년 +- ) / 나라시대

 

일본 당초제시 금당 ( 758년 ) / 나라시대

 

봉정사 극락전 ( 935 ~ 1200년 예측 ) / 후삼국시대 or 고려시대

 

 

 

800년대 일본 건물들하고도

 

봉정사 극락전은 기술적으로는

꽤 다를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전면부 포작 구성의 단순함과

포작 구성의 외형 정도는 이 정도까지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은 10세기 건물로도

예상을 할 수 있는 상황 이랍니다.

 


(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의 유일한 건물일 가능성 높음 )

 

 

 

 

 

마... 그리하여...

전문가들과 학자분들은



무조건 고려시대 건물이 아니라

통일신라 후기~후삼국시대 건물이다!

​라고도... 예측을 합니다.

 



물증이나 심증이나


이렇게까지 증거가 많습니다.

 

 


통일신라에 가까운 모습이 자주

 

그리고 많이 보입니다. 의심이

 

안갈래야 안갈수가 없는 상황이죠.

 

 

 

이런 다양한 이유들이 있어서

 

나말여초쯤 건물로 예상이 가능하죠.

 

 

많은 부분에서~

 

 

중국, 일본의 8~900년대 즈음의

 

건축물들과 상당히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중수 기록+역사 사료들,

 

고대 단청과 건물 부자재들,

 

건물을 만든 스타일과 사찰

 

경내 조성 양식..

 

 

 

이런 이유들로 못해도 1200년대

 

건물은 확실한 수준이고,

 

 

 

많은 분들이 통일신라대에

 

극락전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대한 중수와 함께 북송시절 양식으로

 

엄청나게 개조한 것으로도 예상합니다.

 

 

 

 

 

또한 이런 각종 기록들+ 세부 양식떄문에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거의 무조건!!!

 

먼저 만들어진 건물이다!

 

 

 

라고 예측을 하시는 거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통일신라 or 후삼국시대 건물이

 

아닐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중요한점은,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제대로 계승한 건물이라는 것이다.

 

 

 

그 계승된 양식만으로도

 

통일신라 후기 건축 양식을

 

자세하게 예측할수 있게 해주는,

 

 

 

정말 고마운 존재이자 멋진

 

후삼국시대로도 예측 가능한 건물입니다!

 

 

 

 

########################################################

 

 

- 10줄 요약 -

 

 

1. 봉정사 극락전은 1363년 지붕 수리 했음.

 

2. 그 수리 이력과 / 단청때문에 12세기 건물로 볼수있음.

 

3. 극락전이 아닌 대웅전에 기록이 하나 더 있음.

 

4. 1435년 8월에 쓴건데, 신라때 만들어서 500년 이후에 수리했다는 내용.

 

5. [ 1809년 양법당 중수기 ] 에서 2개의 법당을 총 8번 수리했다고 함.

 

6. 대웅전은 935년에 있었던 것으로 계산 가능한데, 양법당을 수리했다고 함

 

7. 봉정사 대웅전과 극락전은 부자재 양식의 유사성이 보여서, 서로 비슷한 연배일 가능성 존재.

 

8. 극락전은 실제 당나라/일본 나라시대/ 통일신라 건축 부자재들이랑 똑같이 생김

 

9. 건축양식 / 건축기록 모두 [ 935년 +- ]쯤을 가르키고 있다.

 

10. 그래서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건물로 예상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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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의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딱 2개 뿐인

중요한 유물중 하나.


백제 청동소탑



이것을 볼때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서, 이 소탑을

기본으로 백제의 목탑을

복원 해봤습니다.


재현, 복원에 앞서

대략 어떨것이다를

생각을 해보자면~!



목탑의 여러가지 것들과

지붕과 서까래를 보면~


저는 3층~5층 정도의

목탑으로, 작은 사이즈의

목탑이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부자재들 면면을 보면~



기둥은 사각 기둥이고, 주두와 평방

설치를 하지 않은, 하앙 건물 입니다.


하앙을 잘 보면 조선시대 방식인

화두아식 방식의 살미 모양이며,


삼국시대 후기에 나타나는 지붕의

자비 없는 곡선과 사각 기둥~


곱새 기와 뒤에 저 무언가 특별한

연꽃 모양 같은 장식품 등등~

이런것들 총 집합하면...





삼국시대 거의 끝날때쯤

만들어진 듯 합니다!


만...


개인적으론 아무리봐도

라말여초에 만들어진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보면서 골똘히 생각하며

이리저리 생각해낸 결론은...



***



하앙이라는 특수 부자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주두와 창방, 평방을

그냥 과감하게 생략시킨

작은 소형 청동탑 이라 생각됩니다.


실제론 옥충주자와 같이,

꽤나 멋진 모습이었을 겁니다.



아무튼 백제 복원 건축은

이미 백제 재현단지가 있어서

실물을 볼 수 있긴 하지요~!


바로 능사 5층 목탑!


지붕과 각종 부자재는

저 청동소탑을 보고 만든

꽤나 잘 만든 목탑이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하고 싶었답니다.


한국 고건축 복원중에서

가장 사람들이 안하는 방식. 


그냥 보이는대로 복원하기!


청동탑을 보고 있으면

호류지 목탑 1층과

거의 똑같죠?


호류지 1층 그것은

삼국시대 한참뒤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청동 소탑도 뭐

백제의 가장 후기,


혹은 라말여초에

만들어진 가능성이 있고,


호류지 차양 양식 또한

한국에 있었을 가능성

정도는 존재 하므로~


(매우 단순한 양식이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생각한 백제 단청+

걍 보이는 대로 만들었습니다.



대신 하앙은 청동소탑에서

그냥 보이는 그대로 만들었어요.


이유는...



옥충주자 하앙과 일치하긴 하지만,

하앙 정면은 또 조선시대 모양이

보이기도 하거니와~


마루 장식및 토수같이 보이는 것들

등등... 시대 구분이 좀 애매모호해서,


그냥 긴 생각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하는걸로 결정 했습니다!




그리고 지붕 각도 또한 조금

다르게 만들어 봤습니다.



지붕은 이미 백제 문화단지

능사 5층 목탑에서 이미

사용을 한것도 있고~


저도,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지붕각도는 고식으로 만들었어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500년~600년대 사이의

백제 목탑 모습 입니다!


꽤 멋지지

않나요?

ㅎㅎ


그리고 백제 청동소탑의

모습일수도 있읍니다.


사실 이걸 만들때 3층으로

제작하다가, 간지도 별로고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급하게 걍 복사 붙여넣기

해서 5층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목탑 비율과 부자재

배치가 좀 이상하니...

이해해 주세요!


ㅋㅋ


아무튼,


제가 한 복원 방식은

일단 이렇습니다.


백제에서 출토된 제가 아는

거의 대다수의 부자재들을

대부분 사용했구요,


지붕은 중국쪽의 500~600

년대 유물들에서 보여지는

각도를 최대한 비교해서

사용 했습니다.


그리고 단청은 관심있는

분들은 대부분 예상하는,

빨강 배경으로 했습니다.


참고로~


상록하단은 이 시기로부터

150년 뒤쯤에나 나온답니다.



그런데,

기와를 보면, 녹색이죠?



저 녹색 기와를 보고

"녹유와" 라고 하는데요,


구리와 납 성분과 유약으로

만든, 녹색과 카키색이 섞인

유리 기와 입니다!


백제 사비 쯔음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예측되며,


녹유와는 제대로 구우면

초록색이나 짙은 카키색

비스무리해 지는데...


일단 백제 관련 출토 유리기와

색상은 연두색+노랑색+회색등

연색들이 출토가 되었던지라, 


일단은 옅은 카키색으로

만들어 봤어요.



백제 토기 같은데에서

짙은 카키색이 출토가

되긴 했지만,


대량으로 만드는 기와랑은

사정이 조금 다르고~


또한 토기가 아닌 출토된

기와의 색상을 적용하는게

맞기 때문에,


일단 밝은 카키색부터

먼저 적용을 했어요.



아무튼 이런 지붕 꾸밈 양식을

백제 또한 사용 했을겁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에 유리기와...

이런 양식 멋지지 않습니까!?


제가 이렇게 만든 이유는,

백제의 녹유와 수키와가

출토 되었답니다.


(그것도 꽤나 옛날에요...)


녹유와가 대량 발견이

되지는 않았으므로,


저런 지붕은 백제를 통틀어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을 겁니다만,


출토퇸 녹유와, 그리고 그 시대의

녹유와 사용 방식을 생각해보면

저런 모습이 됩니다.


아 참고로~


그리고 금동 풍경을 매우

오바스럽게 설치 했는데요~!


풍탁 같은 경우는 실제 크기로

하니까, 있는듯 없는듯 저절로

위장색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실제보다 크고~길고~간지나게~~

설치 했습니다. 이해해주세요!



3층으로 만들었다면

이런 모습이었겠죠?

ㅋㅋ


그리고 추녀마루 기와

위에 올리는 장식품은

그 유명한~


백제 금동대향로를

약식으로 만들어서

올려봤습니다~!


백제에서 사용한

둥그런 연꽃 모양의

장식품들이 따로 없어서...


그냥 금동대향로를

만들어서 올렸어요.



그리고 추녀 기와는 동으로

만든 기와를 표현 했습니다.


백제에서 "청동 귀면와 기와"

가 발견 되었는데요,


말그대로 청동(구리)

으로 만들었데요.



시대상 분명 살짝

금색이 나는 청동이거나,


실제로 금도금을 한 "금기와"

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유물로도 종종 출토되고,

현 시대에 자주 사용하는

동기와 색으로 했습니다.


놋그릇 색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거든요.ㅋㅋ



그리고 암막새, 수막새는

석간주 채색 기와 입니다.

( 기와 시작부분의 꽃모양 기와)


붉은 암막새 라던가,

수막새에 붉은 석간주를

바른 것들이 출토 됬습니다.



그런고로,


백제 시대에는

아래 서까래에는 녹색 녹유와를,

암수막새는 붉은 기와를 사용해,


지붕을 칸을 나눈마냥 표현 했습니다.


꽤나 멋지죠!?


이미 그 시절부터 유리기와를

사용하고 있었답니다!



이렇듯,


별별 위치에 저런

채색을 한 기와를

사용했고,


조선 시대 기둥색의 원료인

"석간주"또한 사용 했습니다.




이 광물의 발견은 곧,

기둥색을 오로지 주칠만

사용한건 아니란 겁니다.



최고 위상의 건물엔

전부다 빨강 주칠,


그 다음 위상은

기둥엔 적갈색,


지붕 받치는

부자재엔 주칠~ 



그 외의 보통 건물엔

지금도 볼 수 있는...


전체 색칠을 적갈색 혹은

갈색에 가까운 색, 혹은

주황색을 건물 전체에

칠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저렇게 최상위의

단청을 했을땐, 그냥 주칠로

쫙 색칠 했을 것 입니다.



중국 남조와 교류도 많이 했고,


밑에 왜나라는 아스카 시대부터

주칠 원료인 진사를 채굴하여

사용했다고 하거던요.


이 나라들과 교류로 인하여

비록 중국과 일본보다는

붉은색 만땅으로 칠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최상위급 단청을

칠할때에는, 저렇게 전체를

주칠 했을겁니다.


그 외 노란색 혹은 주황색을

사용했을것 입니다~!



그리고 삼국시대때는

기둥 전체에 단청을

시공 했습니다.


기둥에 아주 꽉꽉

그림을 채워 넣었습니다!


물론 단청을 안한

건물도 있겠지만,


위상이 높고 중요한 건물엔

그냥 빼박 단청 꽉꽉 채워넣어서...


오히려 지금보다 더 화려하게

보이는 건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백제 단청은 아마 이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단청 문양은 지금보다 훨씬

알기가 쉽고 알아보기 쉬운

단순한 편에 속하긴 하지만,


눈에 쉽게 보이고, 알록달록,

오밀조밀 해서 시각적으로

많이 화려해 보였을 겁니다~!



제가 사용한 기둥 단청은,

중국 쪽에서 확인 가능한

단청이며...


중국 쪽의 사료를 볼때

사실 대부분 출입문에

사용한 단청 이랍니다.


그런데, 저런 비슷한 문양을

사각 기둥 같은 곳들에

꾸준히 사용 하더군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론

출입문에 대부분 사용하지만,


규모는 작지만 의미와

위상이 높디 높은 전각들

(3~5층 목탑, 혹은 작은

사당 같은 전각)


이런 전각들에, 사각 기둥을

사용했다면, 저 기둥 단청을

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으로 만들어봤어요.


만일 실제로 사용했어도

그릴께 굉장히 많기 때문에,


꽤나 극소수의 기둥

단청이었을 겁니다.


무튼 저 기둥단청은

한국의 삼국 대부분의

나라의 금동 신발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제가 사용한 단청은

모두 백제에서 사용하거나,


온갖나라에서 교차 검증을

통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단청들을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이번엔 녹유와 색깔을

카키색에서, 초록빛이 약간은

짙은 색상으로 적용 해봤어요.


위에선 카키색인데

왜 초록색으로 했냐면,


이유는 이런데요~!


녹유 기와는 제대로 만들면

재료나 염료, 온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것 같던데...


보통~


살짝 노란색, 연두색,

카키색이 섞인 초록색이 되거나,


색이 짙은 카키색+초록색+연두색

혼합형 이런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라데이션 마냥 노랑부터 녹색까지)



완벽한 녹유와 혹은 녹유 도자기는

쌔초록한 풀잎색의 녹색이 됩니다!

(6월 초의 나뭇잎 색상 정도...?)


그래서 잘 만들어진 초록색의

녹유와로도 표현을 해봤습니다.


백제에서 발견된 녹유와는


연두색, 노랑색,

옅은 카키색

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토기에선 짙은

카키색도 나왔고,


다른 나라에서는

웅진 백제 이전 시대의

초록색 녹유 토기가...


발굴이 되더군요~!




왜 이렇게 색상이

조금씩 다른걸까요!?




이 시대는 기와를 굽는게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온도를 항상 일정하게,


가마 전체 구석구석까지

같은 동일한 온도를 맞춰

만들기가 쉽지 않았죠.


그래서 기와들이 일정하지 않고

지멋대로 구워지게 됩니다!


덜 구워져 색이 좀 옅거나

회색인 기와도 있고,


아주 제대로 만들어진

기와들도 있고 그랬다네요.


게다가 원재료 성분의

농도 차이 등등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녹유와 색상은 "녹유신장벽전"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기와들을

보시면 아실 수 있답니다~!


아무튼 백제 시대의 녹유와가

아직은 대량 발견이 안됬지만~


그 시대에 나온 각종 녹유관련

물건들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지역이나 만든 사람마다

녹유 색상이 조금씩 다를

가능성이 꽤 크므로~!


좀더 짙은 색으로

바꿔봤습니다.ㅋㅋ




전체적인 비율과 모양은

정림사지 5층 석탑

보고 그대로 해봤습니다!


3층으로 만들던거라

비율이 좀 이상하지만....!


나름 어떻게든 비율과

크기를 맞춰서~~~


각도나 이런건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봤어요.


나름 비슷하지...않나요?ㅋㅋ


고식 지붕 각도로

만들다가 보니까,


지붕과 전체 모양이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상당히 흡사한걸 느꼈어요.


실제 목탑의 지붕 각도와

석탑의 지붕 각도가 거의

차이가 안 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탑을 만들면서

여러 일본 목탑들도 비교하고,

우리나라 국내 목탑도 비교하고,


백제 석탑들도 하나하나

다 보면서 만들었는데...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은~!


정림사 석탑의 비율은

상당히 일반 목탑과

똑같은 수준입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그냥 봤을때는 엄청나게

약식으로 만든거 같은데...


비율이나 지붕 각도는,


실제 목탑의 것을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옮겨놓은

상당히 중요한 석탑 입니다!


다른건 다 약식으로 해도,


비율이나 각도 하나는 정말

완벽하게 만든것 이지요!



첨에 3층으로 만들다가 5층으로

바꾼 이유가 사실 이겁니다!

ㅋㅋ



고식 지붕 각도로 만들다보니

정림사지 5층 석탑 지붕 각도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왔기 때문이죠!



아무튼 백제 목탑을

만들어 봤습니다.


사실 목탑엔 저렇게 녹유와를

왕창 설치한 목탑은 거의 뭐..

없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복원된 백제 건축들중

실제 출토된 건축 부자재들을

전부 적용한 건축이 하나도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도 좀 아쉽고 해서

출토된 것들과 그 시대에 사용한

양식들을 사용해서 만들어 봤어요.


조선시대 건축과 완전 딴판 아닙니까!?


여러모로 조선시대 보다는

훨씬 단순한 편이긴 하지만,

다른 느낌으로 화려 하지요!


건물 자체는 일본껄

보는걸 같은데,


그냥 그때 사용된 각도나 예상

가능한 단청, 각종 부자재들...


그리고 청동 소탑에서 보인

양식들을 보고 만들었더니

저렇게 나오네요~!


그래서 백제 문화단지의 단청

문양이 얼마나 잘 됬는지

실감됬습니다.








백제 문화단지 단청은

보면 걍 막한거 같지만~!!

실제로 하나하나 뜯어보면,



백제에서 실제로 사용한 문양들

+

그 문양을 필두로

약간의 상상으로 만든 문양

+

대부분 국내에서 출토된 문양들



이렇게 사용했더라구요.


게다가 색칠 방식까지 상당히

고식으로 일자 정렬 통일 해서

채색 했답니다.




이거 하면서 든 개인적인 추측은,


백제 사비궁 단청의 상록하단은

일부러 조선시대처럼 보이게

채색했을 가능성이 큰듯해요.


우리나라 공무원들과 일할때

깐깐하게 구는거, 아는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또 게다가 엄청나게 보수적인

직업 집단이 공무원이죠~!



그런데 백제 시대 건물을 그냥

그대로 복원하면,


필시 일본건물 혹은 중국 건물과

매우 흡사+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이 이후로 나오는 사진들을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전통건축은 조건없이

한국적이어야 하고, 보수적

이어야 하는데...


이 시대의 모습 그대로 복원한

모습을 본다면, 과연 정부에선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리고 공무원들과 관계자들은

일반인들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지요!


이런 복원 사업을 할때는

일반 시민들 반응을 무조건

예측해야 되는 겁니다!


근데 실제 그 시대 양식을

모두 반영하여 만든 건물은

보통 한국인에겐 이질적이겠죠!?


그럴 경우, 시민들의 반응이 어떨지

나름대로 예상이 되기 때문에...


백제 문화단지의 그 단청은

이런 국내 정서+정부에서

추구하는 한국적인 미


이 현실적인 두가지로 인해

그렇게 상록하단으로 한듯해요.


뭐 개인적인 추측 입니다~!

ㅋㅋ





아무튼~



이렇게 먹음직스런 목탑을 만들다보니,

그냥 거대한 건물에다가 청동탑 양식과

단청을 적용하면 어떨려나?


좀 더 다를려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짜잔~!


청동탑 양식+목탑에 적용한

단청 약간 변형하여 적용+

실제 그 당시 사용한 하앙 모양+

백제에서 실제로 사용한 꺾임 지붕...


이것들을 조합해서 만들어봤어요.


꽤 화려하게 보이지요?


이 모든게 합쳐지면,

전혀 한국적이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삼국시대,

중세시대 그 자체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봐도봐도

일본것 같지도 않고,

중국꺼 같지도 않고...


꽤 색다른 모습으로

보이는듯 해요~!


목탑은 그냥 보이는대로

건물을 만들었지만~


이 백제 건물은,

청동탑의 실제 모델은

저런 지붕 받침 구조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라는 예상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좀더 복잡하게 보이죠~!


녹유와는 조금 연두색으로 했는데,

삼국시대때 발견되는 녹유 도자기들


중에서 연두색이 있기도 하고...


좀 덜 구워지거나 재료를 많이 안

바른 녹유는 연두색으로 나오기도

해서 한번 해봤습니다~!



조금더 근접샷~~~


꺾임지붕은 백제 전돌에

그려진 그림에도 있고~


왕흥리사의 건축물 터를

연구한 자료를 보면,


꺾임지붕이라는 2단

지붕이 될 수 밖에 없는

기둥 설치를 사용했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왕흥리사지 건물 연습겸

백제 전돌에 그려져있는 사이즈

정도로 복원해 봤습니다. 멋지죠!?



그리고 윗 글에는 단청 배경을

빨강색 혹은 노란색, 주황색으로

많이 했을거라 썼는데요~!


사실 하얀색도 생각보다

많이 사용 했을거에요~!


왜냐하면 이 시절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시던 단청

배경색 대부분은 빨강 아니면

흰색이기 때문입니다!


백제도 부여의 한 뿌리에서

나왔고, 하얀 배경색 자체가

그 시절의 전통이기도

하니까요...!



허나 그렇긴 하지만~



백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빨간색, 노란색을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사용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서들 기록과 그 시절

중국, 일본에 남아있는

양식들을 보고 있으면...


심증적으로 매우 그럴꺼란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 여러가지 사서들에 적힌

내용을 보면, 대략 이렇죠!



***


삼국의 생활상이 거의

똑같고 차이가 별로 없는데

의복및 기타 외형의 간지는 백제가 짱!


***




이런 기록도 있고, 중국과의 교류,

그리고 왜나라와의 교류도 있고~


중국쪽이나 아스카 시대...

그쪽의 채색한 자료들을 보다보면

백제는 빨강, 노랑, 주황색을 많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답니다~!


그래서,


다른 삼한의 나라들보다

더 화려하게 보였을겁니다만...!!


여튼 백제도 부여에서 나왔고,

또 하얀색이 생각보다 빨강색과 잘

어울리고 꺠끗하고 이쁘기도 해서~


하얀색도 꽤나 사용했을 겁니다!



옆에서 본 모습~!


백제와 연관이 있는 일본의

옥충주자를 보면, 건물 지붕의

합각과 가구들에 모두 단청을 했고,


실제로 단청을 하기에 뭐 그렇게

어려운 부위도 아니기 때문에

단청을 적용해 봤어요.


지붕은 그 당시에 쓰던 각도

그대로~ 사용 했습니다~!


그리고 풍탁도 달았어요.

저절로 위장색을 만들어

내는 이유를 아시겠죠!?


ㅋㅋ



그래서 목탑에선

크게 한겁니다!

ㅋㅋ


아무튼~


옆모습을 보면 정말 일본도

중국도 아닌, 삼국시대와

중세시대 특유의 느낌과

특징이 보이죠~!


한눈에 알기 쉬우면서,

알고보면 단순하지만...


그냥 보고 있으면

우와~화려하네!?

라는 느낌이 잘 느껴지죠~!



그리고 이번에는~


윗쪽의 목탑 양식을 사용하면서,

실제 고증과 가장 맞는 방식을

혼합해서 만들어봤습니다.


생각보다 단순한데요~!


청동탑의 건축양식 + 석간주 바르기

로 백제 건물을 만들어 봤습니다.


주칠(붉은색)도 맞지만,

조선시대 갈색인 석간주가

사실 더 고증에 적합하기 떄문에...

ㅎㅎ


그리고 유리기와 또한 조금 더

제대로 만들어진, 훨씬 고증에

맞는 짙은 녹유로 했어요!



이런 모습이네요.


여러분은 보기에

어떻게 보이십니까?


저는 이것을 다 만들고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 조선시대 건물 같은데..?"


분명 그 시대에 사용한

양식들을 대거 활용해서

만들었는데,


색칠만 조선시대 갈색인

적갈색으로 칠했을 뿐인데...!!


뭔가 미묘하게 조선시대 건축물

같지 않습니까!?


저만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만 뭐...

미묘한 조선시대 같은 뉘앙스가

분명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치 뭐랄까...


동네에 있는 향교 건물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러지 않나요?


조선시대 건물 같아 보이는

이유가, 색상및 생각보다 꽤

단순한 지붕 받침 구조도가

이유일 수 있지만...


향교나 서원 건물 같은

색깔 배합, 건물 모양이라

그런것도 있는것 같네요.

ㅋㅋ


아무튼 이걸 보면 알수 있듯,


삼국시대 건물 복원을 하는데

주칠과 단청이 정말 생각보다

상당히 중요합니다.


삼국시대의 느낌을 내주는

중요한 요소랍니다!


실제 복원에 가장 맞는

고증 채색은 저 색상이지만,


만일 단순한 건물 복원에 사용

한다면, 영락없는 조선시대

건물이 될 수도 있는거죠.


그렇다고 주칠을 안쓴게

아니므로, 주칠(붉은색)

을 자주 사용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시대구분 하기에 주칠이

좋기도 하거든요.


건물에 주칠만해도 생각보다

꽤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걸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봐주세요~!



배경만 빼고 모든게 똑같은

상태에서, 건축물의 색깔만

주칠로 바꿔봤습니다.


어떤가요!?


이제야 비로소 여러사람들이

생각하던 바로 그....


일본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윗쪽 사진은 분명 일본꺼나

중국꺼 같아도 뭔가 미묘하게

조선시대 건물 같은데,


이번 사진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색깔만 강렬하게 바꿔도 생각보다

느낌이 확 달라지는걸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적마저 달라집니다!


그리고 일본이 얼마나 중세시대

건축 양식을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쓰고있는지 알 수 있는것이죠..!



날씨땜에 그런진 몰라도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욱

많이 볼 수 있는,


짙은 갈변화된 색상으로

색깔을 바꿔봤습니다.


이정도 되면 완전

일본 건물 같죠!?


아무튼~

이걸 보면

아실수 있듯이...


색깔만 바꿔도, 뭔가 국적이

바뀌는 마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채색은 생각보다

상당히 중요하답니다!


근데 지금 복원되는

삼국시대 건물들의

단청은들.....


아직까지 삼국시대 건물엔

그 유명한 상록하단!!


이 상록하단은 삼국시대

모든 동아시아 나라에서

딱히 사용을 안하던 시기

였죠.


분명 지금 복원되는 건물들에

저렇게 배경을 흰색, 주칠색만

써도 완전 느낌이 다를 것 입니다.


또 아래 사진을 봅시다!



근접 모습도 주칠로 바꾸니까

더욱 일본및 중국꺼같은..

모습이 생겨납니다!


삼국시대 건물을 복원하는데

단청과 색상 선택이 이렇게나

생각보다 꽤나 중요한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과는

느낌이 꽤나 다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이 모습들도,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전통 그 자체이며, 고대의

우리 한옥의 모습 입니다!


조선시대 모습만

전통 한옥이 아니고,


삼국 시대의 모습 또한

한옥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이렇게 생각보다

꽤 다양한 모습의 전통들을

가지고 있고,


맘먹고 개발하면, 조선시대랑

다른 느낌의 전통 문화들을

개발 할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와 차별화 된 이런

전통들을 잘 복원하고,


복원에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 실용적 개발까지

해서 대대손손 잘 물려주면...


이 한반도 땅과 우리

고토에서 훨씬 다양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멋진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이렇듯 백제는 단청부터

시작해서 건물 양식까지

상당히...


문양이나 양식이나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눈으로 보이기에는

나 화려하지!? 라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복원한 것들은 약간

오버해서 복원한 측면도

있긴하지만,


그래도 나름 고증 선에서

한거랍니다...!!


이런식으로, 출토된 유물들과

당시 사용된 색상들을 총동원

하여,


백제 건축물을 복원 했으면

참 좋을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도 나름 잘 사는

나라고 삼국시대 단청들과

건물도 꽤나 연구가 전진

된 상황인데도...


건물과 단청, 그리고 부자재

들도 아직까지 조선시대 느낌

으로 하는것은 좀 아쉽죠!?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멋진

삼국시대, 그리고 백제의

건축물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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