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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고있는 봉정사!



그 봉정사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있어요.

 


그 봉정사 극락전은 어쩌면

"통일신라 후기 건물"

 

" 혹은 후삼국시대 건축물 "

 



일수도 있는 상황이랍니다.

 

실존하는 통일신라시대 건축물,

 

혹은 후삼국시대 건축물 이라는거죠.

 

 



그런데 이상하죠?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건물일탠데...

 

 

 

왜? 어째서 ?

 

어쩌면은 통일신라 건물일수도,

 

후삼국시대 건축물일수도 있을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어쩌면은 통일신라 건물일수도 있는지...

 

 

 

 

여러가지 자료들을 토대로

 

의심받는지 하나씩 알아봅시다.

 

 

봉정사 극락전 - 출저: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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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극락전은 약간 작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주심포" 건물 이랍니다.

 

 

 

건축 양식과 내부에 출토된 단청으로

 

인하여, 1200년도 고려중기 건축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제대로 알고보면,

 

많은 면에서 통일신라 시대의

 

건축양식과 요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극락전에 적용해봤다.

 

 

 

그럼 지금부터 봉정사의 연혁과

 

봉정사에서 발굴된 기록들을 보며,

 

 

 

어째서 봉정사 극락전이 통일신라

 

건축물로 의심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봉정사의 연혁 *

 

 

 

 

일단 연혁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사료들을 필두로

 

창건 시대를 유추 하자면,

 

 

창건자: 의상대사 or 능인대덕

 

창건 시대 :통일신라 초기

 

가장 유력합니다.

 

 

 

 

이번에는 각종 고서와 묵서들

 

좀더 자세히 기록을 보겠습니다.

 

출저 - 문화재청

 

 

 

봉정사 대웅전 우측불단 상판 하부 묵서,

"여지도서"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정(亭)자를 써서

봉정사(鳳亭寺)라하며...

신라시대 고찰이다. 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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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지"라는 책의 기록에서

봉정사-신라위명찰 이라 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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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극락전 중수기"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신라문무왕창건야 ]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이 창건 하였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무대왕이 직접

창건 했다고 보기는 좀 그렇고...

 

 

봉정사 극락전 건물에 / 12세기 고려시대 단청 + 청자기와 + 흰벽을 적용해 보았다.

 

 

실제로는 고승들이 창건했을걸로

 

예상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문무왕이 아닌 고승들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더 많아서 입니다.

 

 

 

그래서 문무왕이 직접 창건한건 아니고

 

문무왕 시절 활동했던 유명한 고승들이,

 

 

문무왕의 도움을 받아

 

창건한걸로 예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두 고승의 기록은 이렇게

 

두가지로 보시면 됩니다.

 

 

########################################################

 

첫번째 기록

 

- 능인대덕 창건 기록 -

 

 

 

봉정사 기문장처에서

 

발견관 상량문에 써있길,

 

 

능인대덕 (680년쯤 활동)

 

이분이 창건하였다고 적혀 있답니다.

 

########################################################

 

 

12세기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 조선시대 단청하고 미묘하게 비슷한듯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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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기록

 

- 의상대사 창건설 -

 

 

 

 

봉정사 극락전 관련 기록에서

 

신라 의상조사 소점축지

 

라는 창건 기록이 발견 되었다네요.

 

 

 

신라의 의상조사가 봉정사를

 

창건했다는 내용 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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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기록

 

- 의상대사 창건설 2 -

 

 

 

의상대사 창건설의 또 다른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기록은 안동향토지에 적혀있는

 

봉정사 관련 기록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의상조사가 영주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여기 머물렀다"

 

 

 

 

이렇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분들의

 

활동시기를 주목해야 합니다.

 

 

의상대사/ 능인대덕/ 신라 문무왕

 

세분 모두 7세기 후반(680년쯤?)

 

에 주로 활동하신 분들이랍니다.

 

 

뭔가 퍼즐이 딱딱 맞죠?

 

문무왕-의상대사-능인대덕

 

모두 똑같은 시절 (통일신라 초기 + 680년 전후 활동 )

 

 

 

이때 즈음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조상님들 이십니다..!

 

 

 

창건기록이 모두 7세기 후반인

 

문무왕때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 초기가 가장 유력하겠죠..!?

 

 

 

 

 

그러나 창건의 핵심 인물은

 

능인대덕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예상합니다.

 

 

 

능인대덕은 두분의 도움을 받는다.

 

문무왕의 도움 / 인상대사의 도움 /

 

 

 

능인대덕이 이 두분의 도움과 비호 아래서

 

주도적으로 봉정사를 창건했지 않았을까?

 

라고 예상한다네요.

 

 

봉정사 극락전의 화반 / 이런 모습의 화반은 복화반 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의상대사는 사찰 창건을 실제로

 

엄청 많이 하셨습니다.

 

 

 

현재의 많은 대찰들의 시초이시며,

 

굉장히 열심히 / 주도적으로 하셨습니다.

 

 

 

의상대사는 화엄대찰을 전하기 위해

 

전국에 열곳이 넘는 사찰을 만들었다.

 

부석사, 미리사, 화엄사, 해인사,

 

갑사, 화산사, 범어사, 옥천사, 국신사 등등

 

국내 대찰을 창건하신 분이다.

 

 

 

(아직까지도 유명한 사찰들 대부분을 의상대사가 창건했음!)

 

 

12세기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 복화반의 단청이 2종류가 발견 되었다.

 

 

 

또한 의상대사는 능인대덕의

 

스승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상에게는 10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능인(能仁)으로,

 

 

 

문무왕 10년(670)에 동료 표훈과 함께

 

금강산에 표운사를 건립한 스님입니다.

 

 

 

실제로 능인대덕 의상대사에게 많은걸

 

배워서 사찰을 직접 창건을 하십니다.

 

 

4공화국 시절 그려진 단청. 자료가 부족한 그 시절, 할수있는만큼 예쁘게 조선시대 양식으로 잘 그렸다.

 

 

 

 

또한 1728년 작성된 천등산 봉정사

 

이 기록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신라때 의상과 능인 두 사람이

 

고승들의 도를 닦을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능인대사님이 스승 의상대사를

 

도와 절을 창 건하였거나, 혹은 합작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예상 가능하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 청자기와를 설치하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지금의 모습하고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러한 이유들로 봉정사 자체는

 

통일신라 초기, 680년대 즈음?

 

 

 

여튼 7세기 후반 쯤에는 확실하게

 

봉정사가 탄생했다는 뜻 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록이 그때를

 

가르키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 봉정사 극락전의 12세기 건축물설 알아보기 *

 

 

 

 


저는 어쩌면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 후기 건물일수도 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사실


일반적으로 알려진대로라면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이죠.

 



그리고 사실 12세기 건물설이

 

고증에는 가장 적합하고 타당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인

봉정사 극락전 12세기 건축물 추정

이 주장에 대한 내용부터 알아봅시다.




4공화국 시절 실시했었던

보수공사때 발굴된 자료들에 의하면,



1363년에 2차에 걸쳐서 지붕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는 묵서가 나왔다네요.

 

 

 

 

봉정사 극락전 상량문에서는

 

1363년에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고 했어요.

 

 

 

두번째는 1625년 조선시대때 수리합니다.

 

1363년에서 262년 걸렸습니다.

 



세번째는 1809년에 한번 더 수리합니다.

 

1625년에서 347년이 걸렸습니다.

 

( 봉정사 양법당 중수기 기록 )

 

 


수리 기록을 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건물 수리 주기가 250년 이상씩 됩니다.

 

 

 

 

지붕은 일반적으로 만들고나서

 

100~150년 가량 지난 후에 지붕을 수리하지만,

 

 

 

봉정사 극락전은 실제 기록만 보면 보통

 

250년이 넘어서야 대대적인 수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냥 막장 계산을 해봅시다!

 

가장 처음 기록인 1363년 기록을 기준합니다.

 

 

 

1363년 - 250년 = 1113년

 

 

그냥 평균값으로 시간을 계산하면

 

봉정사 극락전은 1113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출토된 12세기 고려 단청들

 

 

 

 

두번째는 347년으로 계산하겠습니다.

 

1363 - 347년 = 1063년

 

 

 

1625년 ~ 1809년 수리까지 347년 걸렸죠.

 

 

 

1363년에서 3번째 수리기간인

 

1363년 - 347년으로 계산하면

 

결과값은 1063년.

 

 

 

막장 계산법을 통하여 !!

 

봉정사 극락전은 오히려 11세기쯤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축물이다! 라고 예상이 가능해요.

 

 

 

또한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그것은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 입니다.

 

 

 

이 단청 무늬들은 실제로 12세기

단청으로 예상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실제 고려시대때 사용된

각종 12세기 그릇이나 실생활에서

사용된 무늬들하고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청자기와 암막새. 윗쪽 그림의 솟을합창 단청하고 완전히 같다.

 

 

 

이런식으로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은, 실제로...

 

 

 

12세기 각종 생활용품들의

 

무늬하고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은

 

12세기 단청 양식으로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송나라 영조법식의 초화문, 윗쪽 고려시대 풀무늬하고 비교해보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단청이 송나라 영조법식의

단청하고 무늬가 매우 비슷합니다.

( 영조법식 : 1097년에서 1100년에 만든 건축양식 기술서 )



 

그런데 영조법식은 1100년쯤에

 

완성된 책 입니다. 그 완성시기가

 

1100년대 초반인데.....

 

 

 

이 책에서 나오는 단청무늬하고

 

매우 비슷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의 단청만 봐도.....

 

12세기 건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 그 와중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발전한 단청 무늬들도 보인답니다 )

 

 

 

 

 

 

이런식으로

 

1100년대 송나라 단청하고

 

매우 비슷한 단청 무늬들,

 

 

 

12세기 고려시대 유물들의 무늬가

 

봉정사 고려단청에서 그대로 발견

 

되었다는 점,

 

 

 

너무나도 오래되 보이는 건축양식들,

 

봉정사 극락전의 수리 주기를 모두 따져보면

 

 

 

12세기쯤에는 이미 극락전이 존재했을

 

확률이 많이 높은 상황 이랍니다.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을 12세기 건물로

 

예상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봉정사 극락전의

 

[ 통일신라 후기 건축물설 ] 이것을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건물로 생각하는 이유 -

건축 양식 파해쳐보기

 

 

 

봉정사 극락전은 각종 자료및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인하여...

 

 

 

못해도 한 1100년쯤? 이때부터는

 

이미 있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만,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신라건물!

 

이라는걸 가슴깊이 느끼게 해주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 건축양식 ] 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건축 양식을 고증 해보겠습니다.

 

 

 

 

 

 

일단 학자분들과 전문가분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확실한 특징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특징들이 통일신라 후기나

 

후삼국시대 건물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징들 입니다. 이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이 설명을 전부 읽어 보시면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 나말여초 )

 

건축물이 맞을수도!!!??? 싶으실 겁니다.

 

 

주두와 소로, 건축 결구가 통일신라 후기 양식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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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으로 후삼국 시대로 유추 할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하고 관련된 기록은

 

이렇게 3가지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1728년에 쓰여진 [ 천등산 봉정사 ]-

 

[ 有變遷九幾廢而幾興也 ] : 봉정사를 9번 중창했다.

 

 

 

 

- 1809년의 [ 양법당중수기 ] -

 

[ 而累八兵 輒有修繕 ]: 양법당을 8번 수리 하였다.

 

 

 

 

- 1435년 8월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 -

 

[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

 


뜻: 신라대 500여년에 이르러,

을묘년 중 법당을 중창하다.

 

 

 

내용이 워낙 짧아서

 

자세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기록을 하나씩 살펴보고 기록들을

 

나름대로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1번 : 1728년 [ 천등산 봉정사]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有變遷九幾廢而幾興也」라고 하여


9번의 중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걸...

 

 

 

그냥 막장 계산을 해보면 대략

 

이런 결과값이 나오게 됩니다.

 

 

 

1728년 - 900년 = 828년

 

 

 

1728년 수리까지 총 9번 수리했고,

 

지붕 수리를 통상 100년 ~ 150년마다 하므로...

 

 

 

 

1회 수리를 100년으로 잡아서 계산했습니다.

 

이러면 828년이고, 통일신라 후기 입니다.

 

 

봉정사 출토 12세기 예상, 고려시대 단청은 이런 느낌이다.

 

 

 

 

########################################################

 

- 2번 : 1809년의 [ 양법당중수기 ]

 

「而累八兵 輒有修繕」이라 하여....

 

 

 

대웅전 / 극락전을 창건하고

 

8번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내용이

 

봉정사 대웅전  / 극락전을

 

창건부터 1809년까지 8번 수리했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3번째 항목이랑 이어집니다.

 

 

 

 

########################################################

 

- 3번​ :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 -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

 

[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

 

 

 

- 해석 -

 

 

1435년 8월 초알에 씀.

신라시절부터... 500여년이 흐르고...

 

 

1435년 8월 , 을묘년

 

지금에 이르러서 법당을 중창하다.

 

########################################################

 

 

 

이 기록은 봉정사 대웅전 지붕의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됬습니다.

 

 

 

그니까 그냥 대놓고 신라시절 대웅전이

이미 있었다라는 기록이 발견된 겁니다!

 

 

 

 

이걸 그냥 간단하게 계산해보면,

 

1435 - 500 = 935년

 

대략 후삼국시대 즈음 입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바로 이

 

조선시대 기록으로 인하여...

 

 

신라시대 건물인데, 년도가 900년대라

 

후삼국시대 신라시절 건축물로 추정이

 

가능한 겁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상량문의 내용으로 인하여, 935년, 후삼국시대 신라부터 이미 있던것으로 추정된다.

 

 

 

2번째 기록 기억 나시죠?

 

분명히 [ 양법당 중수기 ]

 

라는 기록입니다.

 

 

 

 

[ 대웅전과 극락전의 중수기 ]

 

라는 내용이고, 1809년까지 두 건물을

 

8번의 수리를 했다라는 내용입니다.

 

 

 

 

근데?

 

봉정사 대웅전의 상량문에 적혀있죠?

 

 

 

 

1435년 8월 초알에 씀.

신라대 500여년에 이르러,

 

을묘년 중 법당을 중창하다.

 

 

 

대놓고 신라 시절부터 있던

 

건물이라고 기록한게 바로

 

봉정사 대웅전 입니다.

 

 

 

이 내용 때문에 봉정사 대웅전은

 

단순 막장 계산만 해봐도 935년 정도쯤에

 

이미 있었다... 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잘 보세요! 제 가설은 이겁니다.

일단 935년을 기준으로 계산을 해볼꼐요.




수리 한번당 100년이라고

 

가정하고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1809년 기록은 분명히 8번 수리라고 적혀있어요.

 

8회 수리를 800년으로 잡겠습니다.


935년 + 800년 = 1735년




결과값이 1735년 입니다. 

 

 

 

 

어라...? 1735년...?

어디서 본거 같지 않으세요?

네. 분명히 우리는 봤습니다.

 

 

 


그것은 가장 첫번째 기록입니다.

[ 천등산 봉정사 ] 바로 이 기록에

 

분명히 적혀있습니다.

 

 


1728년에 9번을 수리했다.

 

라는 기록이요.


 

.....1809년 양법당 중수기 기록을

 

935년을 기준으로 설정한 후,

 

 

 

지붕 교체 시기인 100년으로

 

적당히 계산하니까 1735년이 나왔어요.

 



신기하게 1728년 기록하고 비슷한

 

연도가 계산되는 것 입니다...!

 

 




1번 기록 - 천등산 봉정사에 적힌 기록인 1728년.

3번 기록 - 봉정사 대웅전 상량문을 토대로 예측한 건축물의 존재시기 : 935년 ( 추정 )

2번 기록 - 양법당 중수기의 8번 수리를 800년으로 잡고, 935년이랑 합치면 1735년.




뭐 적당히 계산한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무튼

 

3개 기록 모두 얼추 비슷하게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1809년 양법당 중수기는 그냥

 

개인적인 뇌피셜 입니다만....

 

 

 

아마도.....

1728년까지 8번의 중수를 했다. 라는 뜻 같아요.

 

 


1728년까지 8번의 중수를 했고

 

1809년에 다시 한번 수리했다.

라는 기록이라고 ...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1728년 기록은 9번 중수 했다고 하고

1809년 기록은 8번 수리 했다고 하고,

기록이 좀 다르기 때문에 이게...

 

 


두 기록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저의 계산은 사실 정확하지 않습니다.

뇌피셜이 잔뜩 들어간 내용입니다만.....



하여튼 두 기록을 모두 935년에 맞추면

나름 기록에 맞는 시기가 얼추 산출됩니다.



봉정사 대웅전의 첨차와 귓포들

 

 


여러분!!! 그리고 이걸 주목하세요!!!

[ 1809년 = 양법당 중수기 ] 입니다.

 

 


법당 2개를 중수 했다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봉정사 극락전도 935년쯤에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왜냐면 법당 2개 중수 기록이니까요.

 

 

 

봉정사 극락전의 매우 오래된

 

건축 양식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의견이면서

 

지극히 뇌피셜적인 결론입니다만,

 

 

935년에 봉정사 대웅전은 물론 ...

 

봉정사 극락전도 935년 즈음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 이 이후로

 

다루는 ... 건축양식 분석을 보시면

 

더더욱 그럴수도 있겠다 싶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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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로 ( 목조 받침대 )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소로는 첨차위에 얹어서 도리들을

 

받치는 사각형 부자재 인데요,

 

( 브라켓 위에 올라간 사각형 받침대 )

 

 

 

 

이 소로라는 부자재의 모습이

 

굉장히 오래된 양식이라는 겁니다.

 

 

 

고려시대 하고는 약간 다릅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브라켓 윗쪽의 약간 작은 네모나미 부자재가 소로다.

 

 

그 양식은 이겁니다.

 

소로 밑둥이 곡선이다. 그런데

 

소로에 소로굽이 없다. 입니다.

 

 

 

고려시대 소로는 일반적으로

 

소로 아랫쪽에 곡선이 있으며

 

소로굽이 있는데요,

 

 

 

봉정사 극락전의 소로는

 

고려시대 건물인데 굽이 없습니다.

 

 

 

소로 밑쪽이 직각이고 굽이 없으면

가장 일반적인 조선시대 소로입니다.

 

 

소로굽 밑쪽이 곡선이며 굽이 없으면

 

완벽한 통일신라의 소로 입니다.

 

 

 

곡선의 유무로 인하여 조선시대

 

소로하고 구별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더욱 확실하게

 

사진으로 비교하겠습니다.

 

 

 

 

 

이런식으로 실제로

 

발견된 통일신라 소로들,

 

 

 

또한 일본에 실존하고 있는...

 

통일신라 즈음의 일본 건물들은,

 

 

 

소로 밑쪽이 곡선이면서도

 

고려시대 특유의 소로굽이 없습니다.

 

 

1435년 추정 봉정사 대웅전 조선시대 소로. 소로굽도 없고, 곡선도 아니다. 직각으로 만든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처럼

 

직각으로 되어있는 모습도 아닙니다.

 

 

 

이래서 봉정사 극락전의 소로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입니다.

 

 

 

이러한 자잘한 양식들이 예상외로

 

통일신라 / 당나라 시절 건축양식

 

하고 교차검증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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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두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주두는 기둥위에 얹어서 브라켓이나

빔자재를 받치는 사각형 부자재 인데요,

( 기둥 바로 위에 올라간 사각형 받침대 )

 

 

 

 

이 주두의 모양도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두 모양이 아니라, 통일신라 특유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은 소로와 같습니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런식으로 봉정사 극락전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두 모양도,

 

전형적인 조선시대 주두 모양도 아닙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상황 이랍니다.

 

 

 

조선시대 주두및 소로하고 비교하면

 

더 확실하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봉정사 대웅전 1435년 중건시절 조선시대 초기 첨차와 주두

 

 

조선시대는 굽도 없고 이렇게

 

매우 직선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더 보기 쉽게

 

비교사진으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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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반 모양이 매우 고식이다.

 

 

 

화반은 건물의 주심포

 

중간에 설치하는 조각 입니다.

 

 

 

예쁜 조각모양 받침대로써

 

빔자재를 받쳐주는 부자재를 말합니다.

 

 

( 기둥윗쪽 건물 브라켓 시스템 사이에 설치하는 화려한 모양의 조각 )

 

 

문과 창문 윗쪽의 불꽃 조각이 화반이다. 특별히 봉정사 화반은 복화반 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화반으로 부르지만

 

봉정사 극락전의 화반은 모양이

 

특이해서 복화반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봉정사에서

 

발견된 화반들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꽤나 여러종류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다양한 모양의 복화반과 대공들

 

 

 

 

실제로 이렇게 다양한 모양의

화반들이, 한곳에서 전부 발견되었어요.

 

 


이런 화반의 모양은 대략적으로

700년대 ~ 900년대 양식 입니다.



딱 이 시절에 유행하던 화반하고 

굉장히 닮아있는 모습이랍니다. 



비교스샷을 보시면, 극락전 화반은

 

의외로 통일신라 양식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봉정사 극락전 화반은 일본 / 중국 화반과 닮아있다. 수덕사나 임영관 삼문같은 고려후기 화반하고 전혀 다르다.

 

 

 

 

비교 사진을 보셨으면 아마도

 

확실하게 느끼셨을겁니다.

 

 

 

극락전의 화반은 전혀 고려시대

 

화반같이 않습니다. 많이 다르죠.

 

 

 

극락전의 복화반의 모양새는

 

수덕사 or 임영관 삼문 화반같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화반하고 정말 다릅니다.

 

 

 

오히려 나라시절 일본건물이나

 

오대십국 중국의 화반하고 닮아있죠.

 

 

당초제사 금당 복화반 ( 대웅전 ) / 봉정사 극락전 화반하고 매우 비슷하다

 

 

 

758년에 당나라 사람이 만든 일본의 사찰,

 

중일우호 사찰로 불리우는 당초제사.

 

 

 

그 당초제사 단청을 복원한 자료인데요,

 

퇴량쪽 화반인 봉정사 화반하고 완전히

 

비슷합니다.

 

 

 

이런 통일신라 화반의 모습을 보여주는

 

봉정사 극락전. 935년 설이 어째서 나름

 

타당성이 있는지.....이제 이해가 되시죠?

 

 

흰벽에 옻주칠 / 청자기와를 적용해본 봉정사 극락전. 우리나라 건축도 이런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고려시대때는 그냥 주칠이 아니라,

 

 

 

옻을 섞은 옻주칠 기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있어요!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고려시대 옻주칠 기둥이 있었을

 

가능성에 알고 싶으시다면 아랫쪽

 

링크를 눌러서 내용을 확인해보세요!

 

 

[ 고려 ] 주칠/옻칠 기둥이 있었다!? 고려시대 옻주칠 건축에 대하여 - with. 숭례문 단청 기둥색 고

안녕 얘들아? 너네들 고려시대 건축물에 주칠이나 붉은 옻주칠 적용해도 크게 문제 없다라는 사실 알고 있니? 그리고 실물로도 나름대로 검증되어서, 되게 긍정적인 상황이야. 이게 왜 이런지

vpb192kh.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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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작 시스템이 통일신라 시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포작은 브라켓으로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 시스템을 말한답니다.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들을 복잡하게

 

얽어서 설치하는 그런것 입니다.

 

 

 

그 지붕을 받쳐주는 포작이라는

 

브라켓 시스템이 굉장히 오래된

 

양식으로 추측이 가능하답니다.

 

 

고려시대 단청은 석간주 (적갈색) / 주칠 ( 새빨간 빨강색 ) = 두개를 철저히 구분해서 사용하는것을 알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의 브라켓 시스템은

 

사실 전형적인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 인데요,

 

 

 

이 주심포 양식이 언제부터 이런

 

모양을 했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적어도 통일신라 초~중반기 부터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일본 해룡왕사 오중소탑. 해룡왕사 나라시대의 천평시대(729년~74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소형 목탑은 일본의 나라시대때

 

조성한 해룡왕사 오층목탑 입니다.

 

 

 

건물안에 있는 소형 목탑인데

 

700년대 포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세히 사진을 보세요.

 

어쩐지 봉정사 극락전하고 포작이 닮았죠?

 

 

지붕을 받치는 브라켓 시스템을 관찰해보면 매우 비슷하다는게 보인다.

 

 

 

자세히 관찰해 보시면 굉장히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해룡왕사 목탑 사진이 너무 작죠?

 

이제 조금 더 큰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해룡왕사 5층목탑 / 당초제사 금당의 포작을 충실히 따라한 일본의 건축물

 

 

 

해룡왕사 5층목탑 포작을 확대해보면

 

이런 느낌 입니다. 뭐 완전 같지는 않지만...

 

 

 

편하게 비교해보시라고

 

비슷한 사진을 올렸습니다.

 

 

 

봉정사 극락전하고 비교해보세요.

 

어쩐지 굉장히 닮아있는 모습이지요?

 

 

 

근데

 

사실 아랫쪽 주칠 전각은 해룡왕사 보다는

 

일본의 당초제사의 포작을 더 닮아있어요.

 

758년 나라시대 창건 일본 당초제사 금당

 

 

 

이 사진을 윗쪽 해룡왕사 목탑하고

 

비교해보시면, 딱 느낌이 오실겁니다.

 

 

 

아.....

 

통일신라 / 당나라 시절 브라켓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이런 모습이겠구나!

 

 

 

이런 느낌을 받으실겁니다. 그래서

 

해룡왕사 하고 당초제사의 포작이

 

모습이 거의 같습니다.

 

 

 

그래도 잘 모르시겠다면,

 

또 한번 비교샷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유심히 보시면, 봉정사 극락전의

 

포작이...일본의 나라시대 포작에서 딱!

 

 

 

진짜 딱 한단계 정도만 발전했다라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근데 좀 햇갈리죠?

 

 

 

그럼 저 2건물의 포작을 최대한

 

간소화 시킨 모델링으로, 더욱

 

쉽게 보겠습니다.

 

 

 

 

최대한 간소화 하면 이런 느낌입니다.

 

대충 뭐가 변했는지 느낌이 오시죠?

 

 

 

한국에서 현존하는

 

목조 건물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주심포 건물 입니다. 그래서 의외로...

 

 

 

이래저래 당나라 / 통일신라 / 나라

 

이 시절의 건축 양식이 엿보이는게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신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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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체적인 건축의 조성방법이 당나라 건축과 닮아있다.

 

 

 

봉정사 극락전의 측면을 보면

 

왜 이게 통일신라 기술로 만들었는지

 

대략 유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의 당나라 건물하고

 

건물을 만드는 방식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건물 구성이 거의 같은

 

그 중국 건축물은 바로 여기 입니다.

 

 

 

"중국 남선사 대전"

(782년 건립)

 

 

 

이 건축물의 내부를 보면,

 

봉정사 극락전하고 굉장히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남선사 대전 내부의 모습 ( 782년 건립 )

 

 

 

내부를 측면에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극락전하고 뭐가 비슷한지 잘

 

이해가 안갈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비교하시라고

 

극락전 측면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내부 측면 / 남선사 대전하고 매우 비슷하지만, 극락전쪽이 한단계 발전한 모습이 보인다.

 

 

 

최대한 쉽게 이해하시라고

 

종단면도로 최대한 보기쉽게

 

수정을 해봤습니다.

 

 

 

이 둘은 포작조차도 꽤 비슷합니다.

정면에서 보면 다른데, 측면에서 보면

생각보다 많이 비슷하답니다.



남선사와 극락전의 포작을 최대한

단순하게 처리해봤습니다.

 

 

 

 

이렇게 비교하면 뭐랄까...

남선사 대전의 업그레이 버전이

봉정사 극락전 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이 두개가 대체 뭐가 다른겨?

라고 느끼신다면,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만큼 두 건물은 서로간에

많은 차이점이 있지 않습니다.



하여튼 두개의 건물의 공통점을

짦게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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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사 대전과 / 봉정사 극락전의 닮은 점 -

 

 

 

 

1. 들보위에 복화반이 올라갔으며, 복화반이 브라켓을 잡아준다.

 

2. 포대공이 ( 가장 윗쪽 화반 ) 복화반의 모양새다.

 

3. 들보의 결구 방식및, 외부 포작 ( 브라켓시스템) 방식이 매우 유사함.

 

4. 맨윗쪽 들보는 사람인人 모양의 세로 부자재가 ( 솟을합장 ), 추가로 지붕을 받쳐주고 있다.

 

5. 상하 들보 사이를, 내려오는 수직부재 ( 솟을합장 )이 잡아주고 있다.

 

 

 

* 보간 사이의 솟을합장 - 조선시대는 우미량으로 발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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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 다른 당나라 건축물하고 매우 닮아있다.

 

 

 

 

이 내용은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내용이라서 한번 올려봅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의외로

 

[ 실제 당나라 건축물 ] 하고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소로, 주두의 굽이 없는거하며

 

여러모로 정말 비슷한 건물입니다.


그 건물은 바로 이 건물 입니다.

 

 

 

이 건물의 이름은 광인왕묘 정전 입니다.

831년에 창건된 건물입니다. 831년이라면

 


완벽하게 당나라 / 통일신라 시대의 건물인데요.

이 건물도 봉정사 극락전하고 비슷한점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럼 하나씩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일단 처마의 모습부터 보겠습니다.

 

 

 

 

광인왕묘 정전은 이런 포작입니다.

매우 전형적인 당나라 포작을 보여주며

단장혀가 출목도리를 잡아주고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포작 입니다.

( 포작 = 지붕을 받쳐주는 브라켓 시스템 )



광인왕묘 정전하고 비교해보세요.

거의.....비슷하지 않습니까?



단순한 포작에 단장혀가 출목도리를

지지해주는 모습이 굉장히 비슷합니다.

글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비슷하죠.

 

 

그리고 이 두 건물의 비슷한점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 내용도 꽤나 흥미로울겁니다.

 

 

 

동그라미를 그린곳을 자세히 봐주세요.

저 부분은 [ 보머리 or 보뺄목 ] 이라고 부릅니다.



대들보의 끝 부분이고,

 

저런식으로 조각을 합니다.

 



들보의 끝 부분을 이렇게 조각하는 양식은

려말선초 건물에서 가끔씩 발견됩니다.




그런데 저런 조각 양식을 가르키는

이름은 아직은 특별히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저 조각한 부분은 마치

메뚜기의 머리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저 모습을 가르키는 이름은 없지만

그냥 메뚜기 머리 같으니까 그냥...



그래서 이 게시물에 한해서만 저 부분을

[ 메뚜기 머리모양 보머리 ] 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니까 분간이 잘 안가죠?

그래서 모델링으로 준비해봤습니다.



여튼 봉정사 극락전의 메뚜기 보머리는

의외로 831년 창건된 광인왕묘 정전에서

거의 똑같은 모습이 발견됩니다.

 

 

소로, 주두의 모습과 브라켓 시스템을 비교해보라. 진짜 엄청 비슷하다는걸 알 수 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죠?

광인왕묘 정전은 831년에 만든 건물.



그런데 봉정사 극락전 또한

사실상 거의 같은 모습의 보머리를

사용하고 있는겁니다. 신기하죠!?



그리고 광인왕묘는 내부 사진이고

극락전은 외부 사진 입니다만,



어쩐지 브라켓 시스템이 엄청나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것도 눈에 띕니다.



 

 

 

 

물론 봉정사 극락전에서도 내부에서

메뚜기 모양의 보머리가 발견되었습니다.



다만 보머리는 아니고...

계랑을 받쳐주는 첨차의 조각 입니다.



광인왕묘가 내부에서

 

메뚜기 머리모양 조각을

사용했듯이, 봉정사 극락전도

 

 

 

메뚜기 머리모양 조각을

내부에서 사용합니다.



두 건물이 모두 내부에서 이것을 사용한다라는

공통점이 있다는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이죠.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식인 화반,주두,소로의 모습을 보인다.

 

 

 

 

다만 봉정사의 경우, 

 

외부까지 사용을 합니다.

저런 메뚜기 보양 보머리를 외부에서 사용하는건



불광사 대전 ( 857년 )

진사 성모전 ( 1100년 즈음 )

봉국사 대전 ( 1013년 )



이렇게 800년대 중반부 부터 사용하므로

봉정사 극락전의 경우는 800~1000년대의

기술이 적용된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11세기쯤에는 애용된 기술이

봉정사 극락전의 건물 구성요소로 사용된 것 입니다.

 

 

 

 

이런식으로 비교해보면 아시겠죠?

일반적으로 봉정사 극락전은 12세기 건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통일신라 후기 or 후삼국시대 건축물로

예상 가능한 이유는, 이러한 증거들 때문입니다.



그냥 7~800년대 중국 일본 건물들하고

비슷한점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런식으로 당나라 건물의 구성하고 

많이 비슷한게 봉정사 극락전 입니다. 



국내에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축물들 보다는

중국/일본의 당나라 시절 건물들하고

훨씬 더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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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 뵤도인 호오도와 봉정사 극락전 단청의 닮은점

 

 

 

 

여러분, 일본의 뵤도인을 아시죠?

 

뵤도인의 메인 건물 호오도

 

( 평등원 봉황당 )

 

 

 

이 건물 내부의 단청하고

 

봉정사 극락전 내부단청하고

 

유사성이 있다는 점을 아십니까!?

 

 

 

 

 

일본 뵤도인 호오도의 헤이안시대 단청하고

 

고려 봉정사 극락전의 고려시대 단청하고

 

이런 유사성과 닮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단청하고 고려시대 단청하고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대 단청을 연구할때는 싫든 좋든

 

일본의 자료들하고 비교분석을 반드시 해야되요.

 

 

당나라 양식이 진하게 남아있는 일본 평등원 봉황당 내부 단청 복각 ( 뵤도인 호오도 , 1053년 창건 )

 

 

 

고대 건축을 복원 / 재현 / 연구하는데

 

일본과 중국 자료를 참조하는것을 그다지

 

마땅치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이런식으로 닮은점이 너무 많아서 일본과

 

중국 자료하고 비교는 사실상 필수랍니다!

 

 

봉정사 극락전과 뵤도인 단청은 색상 배열이 여러모로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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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봉정사 대웅전의 부자재하고 비교해도, 더 오래된 양식이다.




앞에서 꽤 길게 다루었습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기록에 의거하여

 

단순하게 계산만 해봐도...



935년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조선시대 양식으로 개조되었지만, 의외로...



봉정사 대웅전 안쪽에서는

 

935년 즈음의 양식으로 보이는

 

건축 부자재가 있답니다.

 




바로 종도리 ( 가장 윗쪽의 보같은거 )

이걸 받쳐주는 받침대인데요. 딱 봐도

봉정사 극락전의 첨차하고 똑같이 생겼죠?


봉정사 대웅전의 조선시대 초기 첨차와 주 ( 1435년 추정 )

 

 

 

보시다시피 봉정사 대웅전의

 

현재 첨차는 이런 모양 입니다.



전형적인 조선초기 양식 입니다.

 

그러나 내부에서 이렇게 굉장히

 

고식 부자재가 발견된겁니다.

 

 

봉정사 대웅전에 숨어있는 고식 첨차. 1435년 조선시대 첨차하고 많이 다르게 생겼다.

 

 

 

봉정사 대웅전 고식 첨차는

정말 명확하게 봉정사 극락전

첨차하고 닮아있습니다.



첨차 크기와 두께, 초각 모양새

모든면에서 봉정사 극락전 첨차

모양에 근접한 모양새 입니다.

 

 

실제 봉정사 극락전 내부 첨차 , 소로 모습

 

 

 

하여튼 기록으로 그냥 대놓고 신라시절

 

창건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기록에 의거하여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935년에 만든것으로 추정 가능한 봉정사 대웅전.

 

 

 

그 속에서 나온 고식 부자재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것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의 첨차와 주두, 소로가

935년에 만든걸로 예측 가능한 봉정사 대웅전의

고식 부자재들보다 훨씬 더 오래된 양식 입니다.







이 사진만 봐도 아시겠죠?

 

의외로 봉정사 대웅전 보다도

봉정사 극락전쪽이 더 오래된 양식이에요.

 


지금까지 소로/주두/화반 비교한걸

잘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단번에

 

이해하실 겁니다.

 

 

복화반, 주두, 소로, 포작 등등 여러모로 통일신라의 요소를 담고있다.



935년 봉정사 대웅전의 양식이

조금 더 진보된 양식이라...


되려, 봉정사 극락전은 935년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는거죠.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봉정사 대웅전 초창기 창건할때는

 

극락전을 참조하지 않았을까라고 추정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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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국내에서 천두식에 가장 가까운 건물이다.

 

 


그거아세요? 봉정사 극락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오리지널

천두식에 가장 가까운 건물 입니다!

 

 

 

근데 천두식 건축이란게 뭘까요?

 

 

 

천두식 건축이란, 일반적인 한옥하고

 

조립하는 방식이 많이 다른 건물 입니다.

 

 

 

천두식 건축은, 기둥에 구멍을 뚫어서

 

빔모양 자재를 실처럼 엮어서 결구하는

 

건축 양식 이랍니다. 사진을 볼까요?

 

 

 

일반적인 한옥 / 사찰 건물은

 

대량식 이라고 부릅니다.

 

 

대량식은 두꺼운 기둥 / 두꺼운 대들보 /

 

기둥 구멍은 그냥 홈구멍 정도만 사용

 

하는게 일반적인 그런 건축양식 입니다.

 

 

 

천두식은 기둥에 구멍을 뚫어서

 

엮어서 건물의 흔들림에 매우 강하다보니

 

기둥 위치를 비교적 자유롭게 설정할수있고,

 

 

 

두꺼운 나무가 필요없다보니 얆은 나무

 

위주로 기둥을 구성합니다. 그러다보니

 

기둥도 / 대들보도 대량식보다 많이 얇습니다.

 

 

일본의 1527년 천두식 건축, 군마현 구무목가주택. 천두식은 이렇게 기둥과 빔을 빽빽하게 , 많이 사용한다.

 

 

천두식 건축물은 중국 남부지방

 

그리고 일본에서는 되게 흔한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거의

 

사용을 안하는 건축양식 입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축물

 

중에서는 천두식 건축 양식이 아주 강하게...

 

 

 

거의 천두식으로 봐도 될만한 흔적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봉정사 극락전 이라는 건물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실제 천두식 건축기술과

 

그 나름의 흔적 이렇게 2가지가 남아있습니다.

 

 

12세기 고려시대 단청을 적용한 봉정사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의 실제 천두식 기술은

 

바로 건물 측면의 엄청나게 길다란

 

중간 기둥에 남아있습니다.

 

 

 

앞서 말했죠?

 

 

 

천두식 건축은 기둥에 구멍을

 

완전히 관통하게 뚫은 다음에

 

빔을 걸치듯이 꿰어 삽입합니다.

 

 

 

봉정사 극락전 측면 어미기둥,

 

그니까 외진고주가 아주 정확하게

 

천두식 기술로 건물이 결구되어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수리보고서에

 

실제로 나와있습니다! 바로 이해되시죠?

 

 

 

구멍을 완전히 관통하게 뚫어놓은 모습이

 

아주 적나라하게 보입니다. 저 구멍을 사이로...

 

 

 

측면 창방 / 대들보 / 종보 같은

 

빔들을 실처럼 꿰어 넣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너무 오래전에 수리해서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그래서 설명사진을 대신 만들어봤다.

 


실제로 기둥에 구멍을 뚫은 사진이

 

없어서 제가 이해하기 쉬우시라고

 

사진을 만들어봤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외진 고주에는 3단으로

 

구멍을 완전히 뚫어서, 창방과 대들보, 종보라는

 

빔들을 실처럼 완전히 관통하여 설치했답니다!

 

 

 

 

그러니까 중앙 외진고주를 기준으로

 

창방 / 대들보 / 종보를 2개씩 박은게 아니라,

 

 

 

애초부터 창방 / 대들보 / 종보는 1개 입니다.

 

기둥을 관통하는 1개의 빔 입니다...!!

 

가운데 기둥땜에 2개로 보일뿐...!!

 

 

봉정사 극락전은 , 중앙 기둥과 가구 배치의 모습이 천두식 건축에 영향을 받은 모습이다.

 

 

중요한거 2번째.

 

봉정사 극락전에 남아있는

 

천두식 건축의 흔적이라고 한다면,

 

 


봉정사 극락전의

 

측면 5개의 기둥은 山 모양으로,

 

중앙으로 갈수록 순차적으로 점점 높아집니다.

 

중국의 천두식 건축물. 봉정사 극락전 모습하고 매우 닮아있다.

 

 

그냥 실제로 천두식 건물 사진을

 

보면 그냥 이해가 쉽게 될겁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대량식 건축이고

 

중국의 건물은 천두식 건축인데...

 

서로 외형부터 엄청 닮아있죠!?

 



밖에서부터 안쪽으로 점점 기둥이

 

높아지는 모양새를 보이는데요.

 

 

 

실제 중국의 천두식 건축도

 

기둥이 중앙으로 갈수록 길어집니다.

 

 

 

중요한거 3번째.

 


건물 중앙에 있는 천장까지 닿는 어미고주!

 

이게 그 흔적 입니다. 이건 솔직하게

 

설명이 더 필요없습니다.

 

 

중국 천두식 기둥도 山 모양으로 , 기둥이 중앙으로 갈수록 기둥이 높아진다.

 

 

 

천두식 건축은 , 건물 측면의 정가운데

 

기둥이 천장까지 닿는게 특징 입니다.

 

 

 

모든 천두식이 그런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론

 

건물 측면 정중앙에는 , 천장까지 닿는 길다란

 

기둥을 설치하는게 일반적인 양식입니다.

 

 

 

저렇게 천장까지 닿은 어미기둥은

 

봉정사 극락전이 천두식 건물에...

 

 

 

많이 영향을 받아 조성된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 입니다!

 

( 물론 봉정사 극락전은 대량식 건축 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은

 

천두식 건축에 강하게 영향 받은 건물로

 

추정이 가능한 건물 이랍니다. 신기하죠!?

 

 

삼국시대 고구려 동대자유적 중심건물, 천두식 건축이다.
고구려 동대자유적 천두식 방은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나 신라,

 

고구려 같은 삼국시대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게 천두식 양식!

 

 

 

천두식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시기 자체가

 

삼국시대 입니다. 건축 양식 자체가 매우

 

오래된 양식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중요한거! 천두식 건축은

 

기둥을 많이 , 빽빽하게 설치합니다.

 

 

통일신라 유적, 양양 선림원지 금당터 - 804년 즈음으로 추정하는데, 선림원지 동종이 출토되어서 추정가능하다.

 

 

 

우리나라 천두식 유적 중에서는...

 

 

 

양양 선림원지 금당터가 알려진바로는

 

국내에선 가장 시기가 늦은 천두식 건물

 

유적지 입니다. ( 804년 신라 중후기 즈음의 사찰 )

 

 

 

사진을 자세히 봐 주세요!

 

 

 

금당에 사용된 초석이 양이 엄청 많고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천두식

 

건축의 특성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너무 오래전에 수리해서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그래서 설명사진을 대신 만들어봤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것 입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비록 완벽한

 

100% 천두식은 아니지만,

 

 

 

측면 건물에 부분적으로

 

천두식 기술을 사용한...

 

 

 

대량식 + 천두식 혼합

 

건축물 입니다. 게다가 어미기둥의 존재,

 

전체적인 기둥 배치가 천두식에 가깝습니다!

 

 

11세기 즈음의 건물 , 고려시대 부석사 무량수전
고려후기 건축물, 수덕사 대웅전 1308년 창건

 

 

 

고려 전성기인 12세기 즈음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석사 무량수전,

 

 

 

고려후기 1308년에 창건된

 

수덕사 대웅전 이 두 건물 모두...

 

 

 

부분적으로라도 천두식 공법은

 

발견되진 않습니다. 또한...

 

 

 

고려시대 유적지에서는

 

천두식 건물터가 거의 발견되지 않아서,

 

천두식은 고려부터는 사용을 안한것으로 추정합니다.

 

 

국내 맞배지붕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봉정사 극락전

 

 

그럼 뭐다!?

 

봉정사 극락전의 부분적

 

천두식 기둥 양식 자체가...!!

 

 

통일신라 건축 양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것이죠!

 

 

 

( 다른 고려건물들은 부분적 천두식도 없고..)

 

( 현재 가장 늦은 천두식 유적은 804년 즈음의 신라 선림원지 이므로 )

 

 

 

그래서 봉정사 극락전의 부분적

 

천두식은, 통일신라에 가까운 시절

 

기술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봉정사 극락전에 황금은도금 치미 / 구리암수막새를 적용해봤다.

 

 

아무튼 봉정사 극락전은 정말

 

여러모로 통일신라 건축의

 

특징이 많이 확인됩니다.

 

 

 

게다가 각종 기록으로도...

 

 

 

사찰 봉정사 자체가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때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찰이란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걸 종합해보면,

봉정사 극락전은 10세기 건물로도

예상을 할 수 있는 상황 이랍니다.

 


(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의 유일한 건물일 가능성 높음 )

 

 

봉정사 극락전 ( 935 ~ 1200년 예측 ) / 후삼국시대 or 고려시대



마... 그리하여...

전문가들과 학자분들은



무조건 고려시대 건물이 아니라

통일신라 후기~후삼국시대 건물이다!

​라고도... 예측을 합니다.

 



물증이나 심증이나


이렇게까지 증거가 많습니다.

 

 


통일신라에 가까운 모습이 자주

 

그리고 많이 보입니다. 의심이

 

안갈래야 안갈수가 없는 상황이죠.

 

 

 

중수 기록+역사 사료들,

 

고대 단청과 건물 부자재들,

 

 

건물을 만든 스타일과

 

사찰 경내 조성 양식..

 

 

 

이런 이유들로 못해도 1200년대

 

건물은 확실한 수준이고,

 

 

 

당나라 / 나라시대 건축 양식과

 

어느정도 교차검증 된다는 점 등등,

 

 

 

많은 분들이 통일신라대에

 

극락전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대한 중수와 함께 북송시절 양식으로

 

엄청나게 개조한 것으로도 예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 or 후삼국시대 건물이

 

아닐 가능성도 있긴 있다. 하지만 중요한점은...

 

 

 

어쨋든 통일신라 시대 건축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건물이라는 것이다.

 

 

 

그 계승된 양식만으로도

 

통일신라 후기 건축 양식을

 

자세하게 추정할수 있게 해주는,

 

 

 

유일하게 통일신라 ~ 후삼국시대

 

건축 양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정말

 

귀하고 소중한 국내 유일의 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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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줄 요약 -

 

 

1. 봉정사 극락전 최초 수리 기록은 1363년 고려시대 지붕수리 기록이다.

 

2. 그 수리 이력 / 출토된 단청 때문에 12세기 고려건물로 추정 중.

 

 

 

3. 극락전이 아닌 대웅전에 중요한 기록이 존재함.

 

4. 신라시대 건물을 500년이 흐른 1435년 8월에 수리했다는 대웅전 신라건축물 기록존재

 

 

 

5. [ 1809년 양법당 중수기 ] 에서 2개의 법당을 총 8번 수리했다고 함.

 

6. 대웅전은 935년에 있었던 것으로 계산 가능한데, 법당 2개를 수리했다는 기록임.

 

 

 

7. 봉정사 대웅전과 극락전은 건축자재 양식의 유사성이 보인다. 서로 비슷한 연배일 가능성 매우 큼.

 

8. 극락전은 실제 당나라/일본 나라시대/ 통일신라 건축 양식들이 확인됨.

 

 

 

9. 건축양식 / 건축기록 모두 [ 935년 +- ]쯤을 가르키고 있다.

 

10. 그래서 통일신라 후기 ~ 후삼국시대 건물로 예상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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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의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딱 2개 뿐인

중요한 유물중 하나.


백제 청동소탑



이것을 볼때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서, 이 소탑을

기본으로 백제의 목탑을

복원 해봤습니다.


재현, 복원에 앞서

대략 어떨것이다를

생각을 해보자면~!



목탑의 여러가지 것들과

지붕과 서까래를 보면~


저는 3층~5층 정도의

목탑으로, 작은 사이즈의

목탑이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부자재들 면면을 보면~



기둥은 사각 기둥이고, 주두와 평방

설치를 하지 않은, 하앙 건물 입니다.


하앙을 잘 보면 조선시대 방식인

화두아식 방식의 살미 모양이며,


삼국시대 후기에 나타나는 지붕의

자비 없는 곡선과 사각 기둥~


곱새 기와 뒤에 저 무언가 특별한

연꽃 모양 같은 장식품 등등~

이런것들 총 집합하면...





삼국시대 거의 끝날때쯤

만들어진 듯 합니다!


만...


개인적으론 아무리봐도

라말여초에 만들어진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보면서 골똘히 생각하며

이리저리 생각해낸 결론은...



***



하앙이라는 특수 부자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주두와 창방, 평방을

그냥 과감하게 생략시킨

작은 소형 청동탑 이라 생각됩니다.


실제론 옥충주자와 같이,

꽤나 멋진 모습이었을 겁니다.



아무튼 백제 복원 건축은

이미 백제 재현단지가 있어서

실물을 볼 수 있긴 하지요~!


바로 능사 5층 목탑!


지붕과 각종 부자재는

저 청동소탑을 보고 만든

꽤나 잘 만든 목탑이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하고 싶었답니다.


한국 고건축 복원중에서

가장 사람들이 안하는 방식. 


그냥 보이는대로 복원하기!


청동탑을 보고 있으면

호류지 목탑 1층과

거의 똑같죠?


호류지 1층 그것은

삼국시대 한참뒤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청동 소탑도 뭐

백제의 가장 후기,


혹은 라말여초에

만들어진 가능성이 있고,


호류지 차양 양식 또한

한국에 있었을 가능성

정도는 존재 하므로~


(매우 단순한 양식이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생각한 백제 단청+

걍 보이는 대로 만들었습니다.



대신 하앙은 청동소탑에서

그냥 보이는 그대로 만들었어요.


이유는...



옥충주자 하앙과 일치하긴 하지만,

하앙 정면은 또 조선시대 모양이

보이기도 하거니와~


마루 장식및 토수같이 보이는 것들

등등... 시대 구분이 좀 애매모호해서,


그냥 긴 생각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하는걸로 결정 했습니다!




그리고 지붕 각도 또한 조금

다르게 만들어 봤습니다.



지붕은 이미 백제 문화단지

능사 5층 목탑에서 이미

사용을 한것도 있고~


저도,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지붕각도는 고식으로 만들었어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500년~600년대 사이의

백제 목탑 모습 입니다!


꽤 멋지지

않나요?

ㅎㅎ


그리고 백제 청동소탑의

모습일수도 있읍니다.


사실 이걸 만들때 3층으로

제작하다가, 간지도 별로고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급하게 걍 복사 붙여넣기

해서 5층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목탑 비율과 부자재

배치가 좀 이상하니...

이해해 주세요!


ㅋㅋ


아무튼,


제가 한 복원 방식은

일단 이렇습니다.


백제에서 출토된 제가 아는

거의 대다수의 부자재들을

대부분 사용했구요,


지붕은 중국쪽의 500~600

년대 유물들에서 보여지는

각도를 최대한 비교해서

사용 했습니다.


그리고 단청은 관심있는

분들은 대부분 예상하는,

빨강 배경으로 했습니다.


참고로~


상록하단은 이 시기로부터

150년 뒤쯤에나 나온답니다.



그런데,

기와를 보면, 녹색이죠?



저 녹색 기와를 보고

"녹유와" 라고 하는데요,


구리와 납 성분과 유약으로

만든, 녹색과 카키색이 섞인

유리 기와 입니다!


백제 사비 쯔음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예측되며,


녹유와는 제대로 구우면

초록색이나 짙은 카키색

비스무리해 지는데...


일단 백제 관련 출토 유리기와

색상은 연두색+노랑색+회색등

연색들이 출토가 되었던지라, 


일단은 옅은 카키색으로

만들어 봤어요.



백제 토기 같은데에서

짙은 카키색이 출토가

되긴 했지만,


대량으로 만드는 기와랑은

사정이 조금 다르고~


또한 토기가 아닌 출토된

기와의 색상을 적용하는게

맞기 때문에,


일단 밝은 카키색부터

먼저 적용을 했어요.



아무튼 이런 지붕 꾸밈 양식을

백제 또한 사용 했을겁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에 유리기와...

이런 양식 멋지지 않습니까!?


제가 이렇게 만든 이유는,

백제의 녹유와 수키와가

출토 되었답니다.


(그것도 꽤나 옛날에요...)


녹유와가 대량 발견이

되지는 않았으므로,


저런 지붕은 백제를 통틀어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을 겁니다만,


출토퇸 녹유와, 그리고 그 시대의

녹유와 사용 방식을 생각해보면

저런 모습이 됩니다.


아 참고로~


그리고 금동 풍경을 매우

오바스럽게 설치 했는데요~!


풍탁 같은 경우는 실제 크기로

하니까, 있는듯 없는듯 저절로

위장색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실제보다 크고~길고~간지나게~~

설치 했습니다. 이해해주세요!



3층으로 만들었다면

이런 모습이었겠죠?

ㅋㅋ


그리고 추녀마루 기와

위에 올리는 장식품은

그 유명한~


백제 금동대향로를

약식으로 만들어서

올려봤습니다~!


백제에서 사용한

둥그런 연꽃 모양의

장식품들이 따로 없어서...


그냥 금동대향로를

만들어서 올렸어요.



그리고 추녀 기와는 동으로

만든 기와를 표현 했습니다.


백제에서 "청동 귀면와 기와"

가 발견 되었는데요,


말그대로 청동(구리)

으로 만들었데요.



시대상 분명 살짝

금색이 나는 청동이거나,


실제로 금도금을 한 "금기와"

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유물로도 종종 출토되고,

현 시대에 자주 사용하는

동기와 색으로 했습니다.


놋그릇 색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거든요.ㅋㅋ



그리고 암막새, 수막새는

석간주 채색 기와 입니다.

( 기와 시작부분의 꽃모양 기와)


붉은 암막새 라던가,

수막새에 붉은 석간주를

바른 것들이 출토 됬습니다.



그런고로,


백제 시대에는

아래 서까래에는 녹색 녹유와를,

암수막새는 붉은 기와를 사용해,


지붕을 칸을 나눈마냥 표현 했습니다.


꽤나 멋지죠!?


이미 그 시절부터 유리기와를

사용하고 있었답니다!



이렇듯,


별별 위치에 저런

채색을 한 기와를

사용했고,


조선 시대 기둥색의 원료인

"석간주"또한 사용 했습니다.




이 광물의 발견은 곧,

기둥색을 오로지 주칠만

사용한건 아니란 겁니다.



최고 위상의 건물엔

전부다 빨강 주칠,


그 다음 위상은

기둥엔 적갈색,


지붕 받치는

부자재엔 주칠~ 



그 외의 보통 건물엔

지금도 볼 수 있는...


전체 색칠을 적갈색 혹은

갈색에 가까운 색, 혹은

주황색을 건물 전체에

칠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저렇게 최상위의

단청을 했을땐, 그냥 주칠로

쫙 색칠 했을 것 입니다.



중국 남조와 교류도 많이 했고,


밑에 왜나라는 아스카 시대부터

주칠 원료인 진사를 채굴하여

사용했다고 하거던요.


이 나라들과 교류로 인하여

비록 중국과 일본보다는

붉은색 만땅으로 칠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최상위급 단청을

칠할때에는, 저렇게 전체를

주칠 했을겁니다.


그 외 노란색 혹은 주황색을

사용했을것 입니다~!



그리고 삼국시대때는

기둥 전체에 단청을

시공 했습니다.


기둥에 아주 꽉꽉

그림을 채워 넣었습니다!


물론 단청을 안한

건물도 있겠지만,


위상이 높고 중요한 건물엔

그냥 빼박 단청 꽉꽉 채워넣어서...


오히려 지금보다 더 화려하게

보이는 건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백제 단청은 아마 이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단청 문양은 지금보다 훨씬

알기가 쉽고 알아보기 쉬운

단순한 편에 속하긴 하지만,


눈에 쉽게 보이고, 알록달록,

오밀조밀 해서 시각적으로

많이 화려해 보였을 겁니다~!



제가 사용한 기둥 단청은,

중국 쪽에서 확인 가능한

단청이며...


중국 쪽의 사료를 볼때

사실 대부분 출입문에

사용한 단청 이랍니다.


그런데, 저런 비슷한 문양을

사각 기둥 같은 곳들에

꾸준히 사용 하더군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론

출입문에 대부분 사용하지만,


규모는 작지만 의미와

위상이 높디 높은 전각들

(3~5층 목탑, 혹은 작은

사당 같은 전각)


이런 전각들에, 사각 기둥을

사용했다면, 저 기둥 단청을

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으로 만들어봤어요.


만일 실제로 사용했어도

그릴께 굉장히 많기 때문에,


꽤나 극소수의 기둥

단청이었을 겁니다.


무튼 저 기둥단청은

한국의 삼국 대부분의

나라의 금동 신발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제가 사용한 단청은

모두 백제에서 사용하거나,


온갖나라에서 교차 검증을

통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단청들을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이번엔 녹유와 색깔을

카키색에서, 초록빛이 약간은

짙은 색상으로 적용 해봤어요.


위에선 카키색인데

왜 초록색으로 했냐면,


이유는 이런데요~!


녹유 기와는 제대로 만들면

재료나 염료, 온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것 같던데...


보통~


살짝 노란색, 연두색,

카키색이 섞인 초록색이 되거나,


색이 짙은 카키색+초록색+연두색

혼합형 이런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라데이션 마냥 노랑부터 녹색까지)



완벽한 녹유와 혹은 녹유 도자기는

쌔초록한 풀잎색의 녹색이 됩니다!

(6월 초의 나뭇잎 색상 정도...?)


그래서 잘 만들어진 초록색의

녹유와로도 표현을 해봤습니다.


백제에서 발견된 녹유와는


연두색, 노랑색,

옅은 카키색

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토기에선 짙은

카키색도 나왔고,


다른 나라에서는

웅진 백제 이전 시대의

초록색 녹유 토기가...


발굴이 되더군요~!




왜 이렇게 색상이

조금씩 다른걸까요!?




이 시대는 기와를 굽는게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온도를 항상 일정하게,


가마 전체 구석구석까지

같은 동일한 온도를 맞춰

만들기가 쉽지 않았죠.


그래서 기와들이 일정하지 않고

지멋대로 구워지게 됩니다!


덜 구워져 색이 좀 옅거나

회색인 기와도 있고,


아주 제대로 만들어진

기와들도 있고 그랬다네요.


게다가 원재료 성분의

농도 차이 등등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녹유와 색상은 "녹유신장벽전"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기와들을

보시면 아실 수 있답니다~!


아무튼 백제 시대의 녹유와가

아직은 대량 발견이 안됬지만~


그 시대에 나온 각종 녹유관련

물건들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지역이나 만든 사람마다

녹유 색상이 조금씩 다를

가능성이 꽤 크므로~!


좀더 짙은 색으로

바꿔봤습니다.ㅋㅋ




전체적인 비율과 모양은

정림사지 5층 석탑

보고 그대로 해봤습니다!


3층으로 만들던거라

비율이 좀 이상하지만....!


나름 어떻게든 비율과

크기를 맞춰서~~~


각도나 이런건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봤어요.


나름 비슷하지...않나요?ㅋㅋ


고식 지붕 각도로

만들다가 보니까,


지붕과 전체 모양이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상당히 흡사한걸 느꼈어요.


실제 목탑의 지붕 각도와

석탑의 지붕 각도가 거의

차이가 안 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탑을 만들면서

여러 일본 목탑들도 비교하고,

우리나라 국내 목탑도 비교하고,


백제 석탑들도 하나하나

다 보면서 만들었는데...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은~!


정림사 석탑의 비율은

상당히 일반 목탑과

똑같은 수준입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그냥 봤을때는 엄청나게

약식으로 만든거 같은데...


비율이나 지붕 각도는,


실제 목탑의 것을 거의

똑같은 수준으로 옮겨놓은

상당히 중요한 석탑 입니다!


다른건 다 약식으로 해도,


비율이나 각도 하나는 정말

완벽하게 만든것 이지요!



첨에 3층으로 만들다가 5층으로

바꾼 이유가 사실 이겁니다!

ㅋㅋ



고식 지붕 각도로 만들다보니

정림사지 5층 석탑 지붕 각도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왔기 때문이죠!



아무튼 백제 목탑을

만들어 봤습니다.


사실 목탑엔 저렇게 녹유와를

왕창 설치한 목탑은 거의 뭐..

없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복원된 백제 건축들중

실제 출토된 건축 부자재들을

전부 적용한 건축이 하나도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도 좀 아쉽고 해서

출토된 것들과 그 시대에 사용한

양식들을 사용해서 만들어 봤어요.


조선시대 건축과 완전 딴판 아닙니까!?


여러모로 조선시대 보다는

훨씬 단순한 편이긴 하지만,

다른 느낌으로 화려 하지요!


건물 자체는 일본껄

보는걸 같은데,


그냥 그때 사용된 각도나 예상

가능한 단청, 각종 부자재들...


그리고 청동 소탑에서 보인

양식들을 보고 만들었더니

저렇게 나오네요~!


그래서 백제 문화단지의 단청

문양이 얼마나 잘 됬는지

실감됬습니다.








백제 문화단지 단청은

보면 걍 막한거 같지만~!!

실제로 하나하나 뜯어보면,



백제에서 실제로 사용한 문양들

+

그 문양을 필두로

약간의 상상으로 만든 문양

+

대부분 국내에서 출토된 문양들



이렇게 사용했더라구요.


게다가 색칠 방식까지 상당히

고식으로 일자 정렬 통일 해서

채색 했답니다.




이거 하면서 든 개인적인 추측은,


백제 사비궁 단청의 상록하단은

일부러 조선시대처럼 보이게

채색했을 가능성이 큰듯해요.


우리나라 공무원들과 일할때

깐깐하게 구는거, 아는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또 게다가 엄청나게 보수적인

직업 집단이 공무원이죠~!



그런데 백제 시대 건물을 그냥

그대로 복원하면,


필시 일본건물 혹은 중국 건물과

매우 흡사+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이 이후로 나오는 사진들을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전통건축은 조건없이

한국적이어야 하고, 보수적

이어야 하는데...


이 시대의 모습 그대로 복원한

모습을 본다면, 과연 정부에선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리고 공무원들과 관계자들은

일반인들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지요!


이런 복원 사업을 할때는

일반 시민들 반응을 무조건

예측해야 되는 겁니다!


근데 실제 그 시대 양식을

모두 반영하여 만든 건물은

보통 한국인에겐 이질적이겠죠!?


그럴 경우, 시민들의 반응이 어떨지

나름대로 예상이 되기 때문에...


백제 문화단지의 그 단청은

이런 국내 정서+정부에서

추구하는 한국적인 미


이 현실적인 두가지로 인해

그렇게 상록하단으로 한듯해요.


뭐 개인적인 추측 입니다~!

ㅋㅋ





아무튼~



이렇게 먹음직스런 목탑을 만들다보니,

그냥 거대한 건물에다가 청동탑 양식과

단청을 적용하면 어떨려나?


좀 더 다를려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짜잔~!


청동탑 양식+목탑에 적용한

단청 약간 변형하여 적용+

실제 그 당시 사용한 하앙 모양+

백제에서 실제로 사용한 꺾임 지붕...


이것들을 조합해서 만들어봤어요.


꽤 화려하게 보이지요?


이 모든게 합쳐지면,

전혀 한국적이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삼국시대,

중세시대 그 자체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봐도봐도

일본것 같지도 않고,

중국꺼 같지도 않고...


꽤 색다른 모습으로

보이는듯 해요~!


목탑은 그냥 보이는대로

건물을 만들었지만~


이 백제 건물은,

청동탑의 실제 모델은

저런 지붕 받침 구조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라는 예상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좀더 복잡하게 보이죠~!


녹유와는 조금 연두색으로 했는데,

삼국시대때 발견되는 녹유 도자기들


중에서 연두색이 있기도 하고...


좀 덜 구워지거나 재료를 많이 안

바른 녹유는 연두색으로 나오기도

해서 한번 해봤습니다~!



조금더 근접샷~~~


꺾임지붕은 백제 전돌에

그려진 그림에도 있고~


왕흥리사의 건축물 터를

연구한 자료를 보면,


꺾임지붕이라는 2단

지붕이 될 수 밖에 없는

기둥 설치를 사용했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왕흥리사지 건물 연습겸

백제 전돌에 그려져있는 사이즈

정도로 복원해 봤습니다. 멋지죠!?



그리고 윗 글에는 단청 배경을

빨강색 혹은 노란색, 주황색으로

많이 했을거라 썼는데요~!


사실 하얀색도 생각보다

많이 사용 했을거에요~!


왜냐하면 이 시절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시던 단청

배경색 대부분은 빨강 아니면

흰색이기 때문입니다!


백제도 부여의 한 뿌리에서

나왔고, 하얀 배경색 자체가

그 시절의 전통이기도

하니까요...!



허나 그렇긴 하지만~



백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빨간색, 노란색을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사용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서들 기록과 그 시절

중국, 일본에 남아있는

양식들을 보고 있으면...


심증적으로 매우 그럴꺼란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죠!



그 여러가지 사서들에 적힌

내용을 보면, 대략 이렇죠!



***


삼국의 생활상이 거의

똑같고 차이가 별로 없는데

의복및 기타 외형의 간지는 백제가 짱!


***




이런 기록도 있고, 중국과의 교류,

그리고 왜나라와의 교류도 있고~


중국쪽이나 아스카 시대...

그쪽의 채색한 자료들을 보다보면

백제는 빨강, 노랑, 주황색을 많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답니다~!


그래서,


다른 삼한의 나라들보다

더 화려하게 보였을겁니다만...!!


여튼 백제도 부여에서 나왔고,

또 하얀색이 생각보다 빨강색과 잘

어울리고 꺠끗하고 이쁘기도 해서~


하얀색도 꽤나 사용했을 겁니다!



옆에서 본 모습~!


백제와 연관이 있는 일본의

옥충주자를 보면, 건물 지붕의

합각과 가구들에 모두 단청을 했고,


실제로 단청을 하기에 뭐 그렇게

어려운 부위도 아니기 때문에

단청을 적용해 봤어요.


지붕은 그 당시에 쓰던 각도

그대로~ 사용 했습니다~!


그리고 풍탁도 달았어요.

저절로 위장색을 만들어

내는 이유를 아시겠죠!?


ㅋㅋ



그래서 목탑에선

크게 한겁니다!

ㅋㅋ


아무튼~


옆모습을 보면 정말 일본도

중국도 아닌, 삼국시대와

중세시대 특유의 느낌과

특징이 보이죠~!


한눈에 알기 쉬우면서,

알고보면 단순하지만...


그냥 보고 있으면

우와~화려하네!?

라는 느낌이 잘 느껴지죠~!



그리고 이번에는~


윗쪽의 목탑 양식을 사용하면서,

실제 고증과 가장 맞는 방식을

혼합해서 만들어봤습니다.


생각보다 단순한데요~!


청동탑의 건축양식 + 석간주 바르기

로 백제 건물을 만들어 봤습니다.


주칠(붉은색)도 맞지만,

조선시대 갈색인 석간주가

사실 더 고증에 적합하기 떄문에...

ㅎㅎ


그리고 유리기와 또한 조금 더

제대로 만들어진, 훨씬 고증에

맞는 짙은 녹유로 했어요!



이런 모습이네요.


여러분은 보기에

어떻게 보이십니까?


저는 이것을 다 만들고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 조선시대 건물 같은데..?"


분명 그 시대에 사용한

양식들을 대거 활용해서

만들었는데,


색칠만 조선시대 갈색인

적갈색으로 칠했을 뿐인데...!!


뭔가 미묘하게 조선시대 건축물

같지 않습니까!?


저만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만 뭐...

미묘한 조선시대 같은 뉘앙스가

분명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치 뭐랄까...


동네에 있는 향교 건물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러지 않나요?


조선시대 건물 같아 보이는

이유가, 색상및 생각보다 꽤

단순한 지붕 받침 구조도가

이유일 수 있지만...


향교나 서원 건물 같은

색깔 배합, 건물 모양이라

그런것도 있는것 같네요.

ㅋㅋ


아무튼 이걸 보면 알수 있듯,


삼국시대 건물 복원을 하는데

주칠과 단청이 정말 생각보다

상당히 중요합니다.


삼국시대의 느낌을 내주는

중요한 요소랍니다!


실제 복원에 가장 맞는

고증 채색은 저 색상이지만,


만일 단순한 건물 복원에 사용

한다면, 영락없는 조선시대

건물이 될 수도 있는거죠.


그렇다고 주칠을 안쓴게

아니므로, 주칠(붉은색)

을 자주 사용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시대구분 하기에 주칠이

좋기도 하거든요.


건물에 주칠만해도 생각보다

꽤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걸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봐주세요~!



배경만 빼고 모든게 똑같은

상태에서, 건축물의 색깔만

주칠로 바꿔봤습니다.


어떤가요!?


이제야 비로소 여러사람들이

생각하던 바로 그....


일본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윗쪽 사진은 분명 일본꺼나

중국꺼 같아도 뭔가 미묘하게

조선시대 건물 같은데,


이번 사진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색깔만 강렬하게 바꿔도 생각보다

느낌이 확 달라지는걸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적마저 달라집니다!


그리고 일본이 얼마나 중세시대

건축 양식을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쓰고있는지 알 수 있는것이죠..!



날씨땜에 그런진 몰라도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욱

많이 볼 수 있는,


짙은 갈변화된 색상으로

색깔을 바꿔봤습니다.


이정도 되면 완전

일본 건물 같죠!?


아무튼~

이걸 보면

아실수 있듯이...


색깔만 바꿔도, 뭔가 국적이

바뀌는 마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채색은 생각보다

상당히 중요하답니다!


근데 지금 복원되는

삼국시대 건물들의

단청은들.....


아직까지 삼국시대 건물엔

그 유명한 상록하단!!


이 상록하단은 삼국시대

모든 동아시아 나라에서

딱히 사용을 안하던 시기

였죠.


분명 지금 복원되는 건물들에

저렇게 배경을 흰색, 주칠색만

써도 완전 느낌이 다를 것 입니다.


또 아래 사진을 봅시다!



근접 모습도 주칠로 바꾸니까

더욱 일본및 중국꺼같은..

모습이 생겨납니다!


삼국시대 건물을 복원하는데

단청과 색상 선택이 이렇게나

생각보다 꽤나 중요한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과는

느낌이 꽤나 다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이 모습들도,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전통 그 자체이며, 고대의

우리 한옥의 모습 입니다!


조선시대 모습만

전통 한옥이 아니고,


삼국 시대의 모습 또한

한옥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이렇게 생각보다

꽤 다양한 모습의 전통들을

가지고 있고,


맘먹고 개발하면, 조선시대랑

다른 느낌의 전통 문화들을

개발 할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와 차별화 된 이런

전통들을 잘 복원하고,


복원에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 실용적 개발까지

해서 대대손손 잘 물려주면...


이 한반도 땅과 우리

고토에서 훨씬 다양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멋진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이렇듯 백제는 단청부터

시작해서 건물 양식까지

상당히...


문양이나 양식이나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눈으로 보이기에는

나 화려하지!? 라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복원한 것들은 약간

오버해서 복원한 측면도

있긴하지만,


그래도 나름 고증 선에서

한거랍니다...!!


이런식으로, 출토된 유물들과

당시 사용된 색상들을 총동원

하여,


백제 건축물을 복원 했으면

참 좋을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도 나름 잘 사는

나라고 삼국시대 단청들과

건물도 꽤나 연구가 전진

된 상황인데도...


건물과 단청, 그리고 부자재

들도 아직까지 조선시대 느낌

으로 하는것은 좀 아쉽죠!?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멋진

삼국시대, 그리고 백제의

건축물을 기대합니다!


***퍼가실땐, 출저를 꼭 표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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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구려 건축물을

 

고구려 고분의 단청을 적용해

 

복원해봤어요.

 

 

 

고분의 그림을 중심으로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건축

 

양식 위주로 복원및 재현 했습니다!

 

 

 

그럼 시작헤볼까요!?

 

 

 

 

1. 고구려 건축 복원및 재현 - 고구려 고분벽화 중심으로

 

 

 

 

각종 고구려 고분군에 그려진

 

고구려 단청들과 건축양식,

 

 

그리고...

 

 

실제로 출토된 기와들을

 

중심으로 복원/재현한 건축물을

 

이제부터 하나씩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안악1호분 + 만보정 고분 + 쌍영총 단청 #

 

 

 

고구려 맞배지붕 건축물을

 

만들어봤습니다. 이 건물의

 

단청은 이러한 자료들을 참조했어요.

 

 

안악 1호분의 단청 - 안악1호분은 4세기말 고분으로 추정한다.

 

 

출입구와 창문 윗쪽에 가로로

 

설치된 [ 창방 ] 이라는 부재는

 

안악1호분 단청을 사용했습니다.

 

 

쌍영총 단청

 

 

건축물에서 보이는 사람人 복화반과

 

주심도리는 쌍영총 단청을 사용했어요.

 

 

( 주심도리 : 건물 서까래를 받쳐주는 빔자재 )

 

( 복화반 : 주심포 건물에 사용되는 부자재 )

 

 

 

쌍영총 단청은 사람人 복화반과

 

첨차가 그냥 주칠이라 정말 그대로

 

주칠만 칠해서 단청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붉은색이 되게 톤이 밝죠!?

 

이 붉은색의 안료는 [ 연단 ] 이란

 

안료를 사용했습니다.

 

 

만보정 1368고분. 300년대 매우 이른 시기의 고분이다.

 

 

이 주황색처럼 밝은 붉은빛

 

단청은 만보정 고분이라는

 

4세기 초반 고분에서 ...

 

 

 

사용한 것으로 추정 가능합니다.

 

그래서 연단 이라는 붉은안료도

 

알릴겸 적용해봤어요.

 

 

 

또한 안악3호분에 그려진

 

맞배지붕 건축을 참조하여...

 

 

고구려 또한 맞배지붕 건물을

 

사용했다는걸 알릴겸 맞배지붕

 

건축물로 만들어 봤습니다!

 

 

 

# 쌍영총 단청 #

 

 

두번째는 쌍영총 단청을

 

적용한 2층 건축물 입니다.

 

 

쌍영총에 그려진 단청을 거의

 

그대로 넣어서 만들어 봤습니다!

 

 


쌍영총에 그려진 당초문과

 

포벽 화분및 인자 대공 그리고

 

봉황 등등 최대한 보이는대로 그려봤습니다.

 

고구려 쌍영총 - 5세기 후반 고분으로 추정한다.

 

 

구려 쌍영총은 주칠로 건물을

 

그린 고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둘로 만든 팔각기둥도 있습니다!

 

 

 

쌍영총 팔각돌기둥 단청은

 

주칠바탕에 용을 그린 단청인데요!

 

 

쌍영총 내부에 있는 팔각돌기둥

 

 


쌍영총 내부에 있는 팔각기둥은

 

고분 최중심부 입구에 있습니다.

 

 

쌍영총은 주칠단청을 칠한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최중심부는 팔각

 

기둥을 사용했기 때문에!

 

 

 

제가 만든 고구려 2층 건물은

 

이러한 특징을 전부 반영해

 

만들어봤습니다!

 

 

몇몇 빈공간은 고구려 무늬들을

 

사용하여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 삼족오 그림 같은거요...! )

 

 

 

1층과 2층 모든층에 치미를

 

설치했고, 삼국시대 누각인데

 

난간없게 만든 이유는,

 

 

 

용강대총에 그려져있는

 

고구려 2층 누각을 참조하여

 

건물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수산리 고분 단청 #

 

 

 

세번째 건물은 수산리 고분의

 

단청을 적용한 건물에요.

 

 

수산리 고분은 5세기 후반 추정

 

고분인데요, 수산리 고분부터는

 

단청이 꽤나 복잡하게 변합니다!

 

 

고구려 수산리 고분군 내부 단청 - 5세기 후반 추정

 

 

안악1호분과 안학3호분및

 

쌍영총과는 다르게, 건축의

 

부자재들도 더욱 추가되고...

 

 

단순히 주칠만 칠한 공간이

 

거의 없는, 빽빽한 단청으로

 

발전하는게 5세기 후반인...

 

 

수산리 고분 즈음부터 입니다!

 

무늬는 고사리 무늬 위주이지만

 

매우 빽빽하게 그린게 특징 입니다.

 

 

 

쌍영총과는 다르게 2층 건물에

 

난간을 설치해봤는데요! 이유는...

 

 

 

삼국시대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본의 호류지 금당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호류지 금당 2층에는 난간이 설치되어있다.

 

 

600년대 즈음부터는 2층

 

건물에 난간을 두르는 양식이

 

꽤나 자주 발견되어서 적용해봤습니다.

 

 

 

 

# 수정궁 #

 

 

 

네번째는 수정으로 만든

 

수정궁 건축물 입니다!

 

 

고구려 수정궁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다만 수정궁은 사실 상상에 가까운

 

기록입니다. 정사가 아니라 상상 기록!

 

 

 

정확한 역사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그래서 그냥 수정으로 건물 만들면 무슨 느낌?

 

 

 

이걸 느껴볼겸 그냥 만들어봤어요. 그니까

 

수정 건축물은 재미로만 봐주셈!!

 

 

 

 

# 용강대총 단청 #

 

 

다섯번째는 팔작지붕 건물 입니다.

 

단청은 용강대총 단청을 기준으로...

 

 

덕화리 고분 / 덕흥리 고분의 단청

 

무늬도 어느정도 참조해서 만들어봤어요.

 

 

일본에서 모사한 용강대총 내부 단청

 

 

단청은 조금 아쉽지만 일본에서

 

그린 모사도를 기준으로 그렸습니다.

 

 

용강대총은 조금 아쉬운게

 

단청이 아주 제대로 남아있는

 

그런 멋진 고구려 고분입니다만...

 

 

실제 용강대총 내부 사진

 

 

 

일제때 발굴한 이후로는 제대로

 

연구를 추가로 안해서 그런가??

 

 

제대로 된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단청이 분명 엄청 빽빽하게 남아

 

있는건 확실하거든요?

 

 

실제 용강대총 내부 흑백 모사도. 단청이 엄청 많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관리했으면 더욱 완벽했을탠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아무튼 이렇게나

 

단청이 완벽하게 남아있는 용강대총.

 

 

 

 

약간 어두운 주황색톤인 [ 석간주 ]

 

안료를 기반으로 한 고사리 무늬가

 

인상적인 고분 입니다.

 

 

용강대총은 5세기 중반무렵 축조된 고분으로 추측된다.

 

 

5세기 중엽, 그러니까 400년대

 

중반 우리나라 전통건축은...

 

 

 

조선시대랑 완전히 반대 입니다!

 

조선이 초록색을 잔뜩 칠했다면

 

고구려는 붉은색을 잔뜩 칠했습니다.

 

 

 

그래서 400년대 삼국시대 건축물은

 

지금 우리에게 매우 이질적으로 보일겁니다!

 

 

 

 

# 강서중묘 / 강서대묘 단청 #

 

 

 

이번에는 7세기 단청 보겠습니다.

 

 7세기 단청은 강서중묘 / 강서대묘

 

단청들을 적용해봤습니다.

 

강서중묘 고분 / 6세기 후반 ~ 7세기 초반 추정



 

 

강서중묘 단청 입니다.

 

6세기 후반 ~ 7세기 초반 부터는...

 

 

 

고사리 무늬보다는 , 주로 컬러풀한

 

풀무늬나 덩쿨무늬, 꽃무늬가 결합된

 

영기문이나 보상화문이 주가 됩니다!

 

 

강서대묘 고분 - 7세기 초

 

 

이 단청은 강서대묘 고분 입니다.

 

고구려 고분군 중에서는 가장 후기에

 

축조된 고분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단청의 특징이라면 주칠바탕이 단

 

하나도 없고 꽃무늬, 그러니까 보상화

 

무늬 단청 위주로 그려진 고분 입니다.

 

 

 

 

또한 그 전 시대까지는 고분 내부에

 

실제 건축자재들인 보 / 기둥 / 브라켓

 

등등을 세세하게 그려넣었지만...

 

 

 

아쉽게도 7세기 고분부터는

 

오로지 단청만 그려져 있습니다.

 

 

강서대묘 고분 - 덩쿨무늬 단청 / 7세기 초반 추정

 

 

 

 

그리고 이때부터는 특이하게

 

단청 배경이 붉은색 보다는 보통

 

흰색으로 추정되는게 많습니다.

 

 

진파리 고분을 제외하면 단청

 

배경색은 90% 흰색 입니다...!!

 

 

 

 

 

 

 

 

고분에 있는 모든 단청들을

 

한곳에 모아 넣으면 이런 느낌입니다.

 

 

흰색을 위주로 뭔가 가볍도

 

아기자기한 느낌이 나는 단청입니다!

 

용강대총 / 덕화리 고분의 고사리 무늬단청 / 5세기 즈음의 단청이다.



고사리 무늬가 난무하는

 

5세기 고구려 건물은... 뭔가

 

특이한 고대느낌이 물씬나면서...

 

 

 

거칠고 육중한 느낌마저 드는

 

그런 특이한 느낌의 건물이라면!

 

 

강서중묘 / 강서대묘 / 진파리 고분 단청을 적용한 고구려 건축물

 

 

7세기 고구려 후반 건축물은

 

뭔가 좀 더 아기자기 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게 같은 나라의 건물 맞음!?

 

이라고 느낄 정도로 전반기하고

 

후반기 건축의 느낌이 꽤나 다릅니다.

 

 



이게 단청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건축양식은 거의 변한게 없습니다!

 

 

그러나 5세기 고구려 건축하고

 

그후인 7세기 고구려 건축하고

 

 

단청 패턴만 바뀌었는데 이 만큼이나

 

건축물의 느낌이 다르게 변한겁니다!!!

 

 

마선구 2100호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빛의 찰갑을 적용해본 고구려 개마무사 갑옷



 

앞으로 고구려 건축을 복원할때는

 

이렇게 시대까지 정확하게 구분하여...

 

 

 

다양한 모습과 / 시대마다 다른 고구려

 

건축물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고구려 마선구 2100호 출토 금빛의 찰갑 비늘

 

 

 

- 고구려 건축의 특징 몇가지 확인해보기  -

 

 

 

 

이번에는 우리나라 모든시대를

 

통틀어서 , 꽤나 특이할만하다고

 

생각되는...

 

 

고구려 건축양식을 몇가지만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 고구려 붉은기와 #

 

 

 

고구려는 붉은 기와를

 

주력으로 사용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흑색 기와도

 

분명하게 사용 했었습니다만,

 

 

한반도에선 유일하게 붉은기와를

 

주력으로 사용한 국가 입니다.

 

 

 

 

 

고구려 기와는 일단 붉은색이긴 한데...

 

사실상 주황색이 메인 색상 입니다.

 

 

간헐적으로 적갈색이나 혹은

 

밝은 홍색 기와가 가끔씩은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런 기와는 소수이며 보통

 

주황색 기와가 대다수 입니다!

 

 

 

 

이렇게 대다수가 주황색의 띄고 있어요.

그래서 고구려 기와지붕 색상은 보통

주황색에 가깝다고 보면 된답니다!

 

 

 

 

그래서 기와지붕은 주황색을

 

중심으로, 갈색 ~ 홍색 등등

 

알록달록하게...

 

 

마치 스페인 기와마냥 설치하는게

 

고증에 맞습니다. 살짝 알록달록이

 

포인트!

 

 

 

왜냐하면 간헐적으로 갈색

 

기와도 간간히 발견되어서 그래요.

 

 

왼쪽이 철성분이 많고 제대로 구운 경우, 오른쪽이 철성분이 거의없고 덜 구워진 경우.

 

 

 

갈색기와는 보통 흙에 철성분이

 

거의 없거나 / 기와가마 속에서...

 

 

 

제대로 된 열전도로 구워진게 아닌

 

약간 저온도로 구워진 ... 재질상으론

 

제대로 만들어진 기와는 아닙니다.

 

 

북한 개성국수집. 고구려 기와는 이렇게 약간 알록달록했을 것이다.

 

 

 

전통가마의 시스템 한계상 , 온도가

 

구석까지 전부다 고르게 않다보니까...

 

 

 

이런 색이 고르지 못한 기와는 무조건

 

기와구울때마다 나오던 기와였습니다!

 

 

 

그래서 실제론 북한 개성 국수집 마냥

 

살짝 알록달록한 지붕이었을 것 입니다.

 

 

 

# 고구려 흑회색 일반 기와 #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렇다고

 

회색에 가까운 흑색 기와를

 

사용안한건 아닙니다!

 

 

 

고구려 흑색기와는 의외로

 

고구려 고분부터 실제 건물터에서

 

꾸준하게 발견되는 기와 랍니다...!!

 

 

수산리 고분군의 단청. 가운데 건물의 지붕을 잘 보면. 기와는 검정색 / 지붕마루는 금빛 or 흰색이다.



 

5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중인 고구려 수산리고분.

 

 

벽화에는 거대한 지붕을 얹은

 

건축물 그림이 있는데요. 걍 보이시죠!?

 

 

수산리 고분의 건축물 기와는 의외로

 

그냥 검정색 일반 기와로 그렸습니다.

 

 

고구려 임강총에서 출토된 흑색 일반기와.

 

 

그리고 실제로 고구려

 

임강총 고분에서 , 그냥...

 

 

 

요즘에 흔하에 볼 수 있는

 

짙은 회색의 기와가 발견 됬어요.

 

 

 

그래서 고구려 건물의 절대다수는

 

붉은기와를 사용했긴 합니다만...!!!

 

 

인면조 / 장군총 장대석 기단 / 연단칠 / 임강총 흑회색기와 / 안악1호분과 쌍영총 , 덕화리 고분 단청등등..... 여러가지를 조합한 고구려 건축물



 

특정한 건물...그니까...

 

 

 

건물의 기능과 권위, 레벨이 

 

매우 높은 건물이나 특수한

 

건물 같은 경우는,

 

 

 

의외로 그냥 일반 흑회색

 

기와를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해요.

 

그 이유가 생각보다는 좀 간단한데요!

 

 

치미가 연꽃이고, 지붕 한가운데 불꽃무늬 기와를 설치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그냥 이 시절에는 짙은 회색.....

 

그니까 검정색에 가까운 기와를

 

만들기가 힘들었습니다.

 

 

 

붉은 기와보다 훨씬 고온이 필요해서

 

흑회색 기와가 더 만들기 힘들고 비싸요.

 

 

 

그래서 출토도 많이 안되고, 의외로 이게

 

고구려 고분 위주로 발견되는 기와 입니다.

 

 

수산리 고분의 권위적인 건물의 지붕은 의외로 일반 흑색 기와다.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지는

 

가장 신성한 장소가 바로 고분.

 

 

그런 신성한 장소에서만 실제로

 

발견되는게 흑색 기와입니다...!

 

 

 

 

고구려 팔청리 고분에 그려진

 

주칠에 흰벽 고구려 건축물 또한...

 

 

 

기와지붕을 보면 붉은색이 아닙니다.

 

그냥 일반 흑회색 기와를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고구려는 의외로 흑색 기와를

 

자주 사용했고 , 중요한 건물일수록 되려

 

흑회색 기와를 사용한걸로 예상 할 수 있습니다.

 

 

평양 평천에서 발견된 고구려 암막새

 

 

 

그런 양상은 암막새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 암막새는 생각보다 귀해요. 왜냐면!

 

 

 

고구려는 암막새 자체가 거의 출토가 안됩니다;

 

진짜 드물어요. 그런 귀하고 드문 고구려 암막새.

 

 

 

보시면 아시겠죠!? 일반 흑회색 기와 입니다.

 

고구려는 암막새를 설치한 건물 자체가 나름

 

중요한 건물이라는 뜻인데...

 

 

 

그 중요한 건물에 흑회색 암막새를 설치한겁니다.

 

고구려가 흑회색 기와를 꽤나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거겠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구려 흑회색 일반기와들. 전돌과 지두문암막새, 수막새인데 일반적인 기와색이다.

 

 

 

이렇듯 고구려는 붉은색 기와가 절대 다수지만...

 

고급 기와는 ... 지금과 다르게 되려

 

흑색 기와였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용마루와 내림마루를

 

금빛으로 재현해본 이유는...

 

 

위에 수산리 고분 건물그림을

 

보면 흑회색 기와에 기와 테두리,

 

 

그러니까 용마루와 내림마루를

 

살짝 금빛으로 표현한게 보입니다.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백제 청동 귀면와 ( 백제 동제 귀면와 )

 

 

 

아건 백제 건물터에서 출토된

 

청동으로 만든 금빛의 삼국시대

 

귀면와 입니다.

 

 

삼국시대때 이미 금색 기와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수산리 고분의 지붕 용마루/ 내림마루는 금빛이다.



 

저 용마루가 진짜 금인지 아니면

 

뭐 옻칠을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백제의 금빛의 구리기와 ( 동기와 )

 

이게 발견 되었다 보니까 아마도...

 

 

 

혹시 모르죠 뭐 용마루와

 

내림마루 또한 구리로 만든 기와로

 

꾸몄을수도 있어서 적용해 본겁니다!

 

 

 

# 건축물 창문 #

 

 

 

 

 

 

 

 

 

황해도 안악3호분

 

고분군에 그려진 창문은...

 

정확하게는 붉은 창문

 

 

 

고구려는 건물에 창문을 그린게 진짜

 

손에 꼽는데, 그나마 확인하기 쉬운

 

그림도 일단은 붉은색 창틀 입니다.

 

 

 

그래서 일단 창문은 붉은색이 고증에

 

부합합니다만, 600년대 동아시아 상황을 보면

 

초록색 창문도 정상참작은 상황..... 정도 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궁궐같은 수직으로

 

막대기를 꼽아서 만든,  살대 창문은

 

실제 삼국시대 토기에서 발견됩니다.

 

 

가야 가형토기 - 막대기를 수직으로 설치한 살창이 확인된다.

 

 

 

가야는 고사리 무늬부터 나름

 

고구려의 요소가 가끔 발견되거든요?

 

( 물론 백제에게서 배웠겠지만....요 ! )

 

 

 

그런 고구려 요소가 조금씩 묻어있는

 

가야 가형토기에서 수직 살대 창문을

 

그려넣은게 발견이 된 것이죠.

 

 

 

그래서 삼국시대 부터 이미 저런 모양의

 

창문을 사용했다는게 밝혀졌답니다...!!

 

 

 

 

# 내림마루 기와 장식 #

 

 

 

고구려는 내림마루 / 추녀마루 끝부분

 

장식이 2종류 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보통 삼국시대 건축물의 내림마루 장식은

 

이런 모습의 장식이 일반적인 장식 입니다.

 

 

붉은 안료인 연단을 적용해본 고구려 맞배지붕 건축물

 

 

 

일반적인 고구려 지붕의 내림마루 장식은

 

귀면와 입니다. 왜냐하면 간단하게도

 

실제 출토 된게 귀면와라서 그래요.

 

 

 

고구려 지붕마루 귀면와가 발견된 장소는

 

고구려 청암리사지 ( 전 금강사터 )인데요

 

고구려 후기 사찰 입니다.

 

 

 

제가 만든 고구려 맞배지붕 건물은

 

고구려 안학궁 치미 / 금강사터 귀면와

 

 

 

고구려 안학궁에서 출토됬다고

 

일단은 북한이 열나게 주장중인

 

고구려 치미를 적용한겁니다.

 

 

귀면와하고 함께 곱새기와도 출토 되었다 / 곱새기와 = 바래기기와 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곱새기와라는

 

내림마루 끝부분에 올리는 곡선있는

 

숫마루장 또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태까지 재현 / 복원한

 

고구려 건축물들은 조금 다른 모양이죠?

 

 

 

팔작지붕 내림마루 / 추녀마루에

 

뿔장식 같은걸 저는 만들었습니다.

 

 

분명히 청암리토성에서 발견된건

 

귀면와 지붕마루 장식인데 어쨰서

 

저는 이런 모습으로 재현했을까요?

 

 

 

안학1호분에 그려진 건물 회랑의 문. 내림마루에 뿔장식이 설치되어 있다.

 

 

진짜 재밌는게 7세기 이전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건물들

 

지붕 마루들을 보면, 귀면와가 아닙니다.

 

 

 

귀면 지붕마루 장식하고 전혀 다른

 

뿔장식을 내림마루에 그려놓은겁니다!

 

 

 

 

그리고 이게 안악1호분 한군데서만

 

그린게 아니라 5~6세기 고분 벽화에서

 

꾸준하게 발견되는 양식이랍니다...!!

 

 

 

 

수산리 고분벽화는 지붕부터

 

일반 흑회색 기와지붕에 내림마루

 

장식은 뿔장식같은걸 그렸고, 금빛입니다.

 

 

 

 

수산리 고분의 흑회색 기와지붕과

 

금빛 용마루 / 수산리 고분 단청을

 

적용하면 이런 느낌 입니다...!!

 

 

자세히 보면 흰벽에 붉은색 기둥으로 건물을 그렸다.

 

 

게다가 무용총 고분벽화에

 

그려진 지붕 내림마루 또한...

 

 

뿔장식을 여러개 그렸습니다.

 

이렇게 의외로, 고분 벽화에선

 

귀면와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되려 특이하게 생긴 뿔장식만

 

잔뜩 발견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붕마루 뿔장식은 아쉽지만 실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그림을 토대로 , 내림마루 장식을 귀면와가

 

아니라 뿔장식을 설치 한 것 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물이 단 한개 조차

 

발견되지를 않아서..... 모양은 고분벽화

 

모양만을 참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가 재현 / 복원한 건물에는

 

조선시대 막새 보다는, 고구려 회화 특유의

 

두꺼운 뿔장식 모양으로 만들어 봤답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고구려 건축의 지붕 내림마루 장식은

 

2가지 종류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고구려 안학궁 치미 / 고구려 금강사 터 귀면와 / 주칠 단청을 적용해봤다.

 

귀면와하고 함께 곱새기와

 

 

 

첫번째는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곱새기와 + 귀면와 조합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삼국시대 양식이며,

 

 

 

실제로 출토된 콤비 입니다.

 

그런데 고분벽화 그림 에서는

 

아직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고구려 개마무사와 붉은지붕의 고구려 건축물

 

 

 

두번째는 내림마루 뿔장식 입니다.

 

조선시대 건축에서 그 흔적 정도만

 

아주 약간 남아있는 양식이며,

 

 

고구려 건축터에서 아직까지는

 

단 한점도 발견된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분벽화에서는 꾸준하게

 

발견되는 특이한 지붕양식 입니다!

 

 

 

 

- 고구려의 붉은색 단청! 흰벽에 붉은색 주칠단청에 대해서 -

 

 

 

 

 

 

간혹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합니다.

 

고구려 단청은 흰벽에 붉은색이다!

 

흰벽에 주칠단청으로 건물을 복원해라!

 

 

 

이런거 아마 자주 보셨을겁니다.

 

그런데 과연 이 주장이 사실일까요?

 

 

 

네. 이 주장은 사실이 맞습니다.

 

주칠에 흰벽은 고증 맞습니다.

 

 

쌍영총의 흰벽에 주칠만 칠한 부분 모사도



 

실제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건축물을 따라 그린 부분을 보면

 

꽤나 자주 흰벽 + 붉은칠 조합의...

 

 

단청으로 건물을 꾸민 고분이

 

자주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산리 고분 벽화는 엄청 뺵빽하게 단청을 그려놨다.

 

 

 

그렇다고 무작정 흰벽에 주칠만 칠한

 

건물만이 있던게 아닙니다!

 

 

 

흰벽에 주칠만 칠한 건물과

 

덩쿨무늬 단청 / 오방색 단청

 

등등 꽤나 다양한 단청이 있었습니다.

 

 

 

 

흰벽에 주칠만 칠한 건물 /

 

흰벽에 각종 덩쿨무늬 단청 /

 

 

고구려는 이렇게 다양한 색감의

 

단청 도안과 기술을 가지고 있던

 

국가 입니다.

 

 

그리고 시대가 흐를수록 단청

 

무늬는 더욱 세련되게 변합니다.

 



주칠에 흰벽단청

 

고사리 무늬 단청에서

 

 

다양하고 섬세한 풀무늬

 

그리고 꽃무늬 단청으로 진화합니다.

 

 

 

 

그렇다면...

 

흰벽에 붉은색만 칠한 단순 단청 /

 

 

 

흔히 말하는 흰벽에 주칠 단청은

 

어째서 고증에 맞는지 고구려 고분

 

벽화들을 보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구려 무용총 . 건물의 기둥과 보를 흰벽에 그려놨다.

 

 

무용총 입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죠!

 

흰벽에 붉은단청 입니다.

 

 

 

많은 고구려의 고분들이 이렇게

 

흰색으로 회칠을 해서 벽을 칠하고,

 

 

 

그 위에다가 건축물 기둥, 보같은

 

건축 자재들을 그렸습니다.

 

 

무용총 내부 모습. 흰벽에 붉은색 기둥과 보가 보인다.

 

 

 

이런식으로 기둥과 받침대, 보 모양의

 

프레임들이 엄청 많이, 자주 발견되요.

 

거기다가 하나같이 흰색벽...!

 

 

 

그래서

 

고구려는 붉은색 안료에 흰색벽

 

단청이 고증에 맞기는 맞습니다.

 

 

각저총 고분. 회칠한 벽에 붉은색 주토로 기둥과 보를 표현했다.

 

 

각저총. 더 설명이 필요없죠?

 

그냥 봐도 흰벽에 붉은칠 단청.

 

 

고구려 고분은 이런식으로

 

건물을 표현한 수많은 그림들중에

 

흰벽에 붉은칠만 칠한게 아주 많습니다.

 

 

팔청리 고분의 주칠에 흰벽 건물 그림

 

 

팔청리 고분군의 2개의 건축물.

 

그냥 주칠에 흰벽으로 건물을

 

그렸어요.

 

 

주심지어 두번째 그림은

 

붉은 주황색 지붕까지 표현했어요!

 

 

 

약수리 고분벽화도

 

흰벽에 건축 가구들은

 

주토로 칠했습니다. 매우...!!

 

 

전형적인 흰벽에 주토를 칠한

 

붉은색 건축물을 표현했어요.

 

 



안악 3호분 맞배지붕 건물도

 

서까래 쪽을 보면 붉은색 입니다.

 

 

 

그래서 흰벽에 붉은색만 칠한

 

흰벽에 주칠단청 건물입니다.

 

 

 

이런 일본같은 흰벽 + 주칠 단청은

 

고구려 고분에서 흔하게 발견되는데요.

 

어째서 이렇게 많이 발견되는 걸까요...??

 

 

수나라의 토산을 정복한 인면조 선생!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이게

 

제일 저렴해서 그런겁니다.

 

 


사실 붉은색 안료는 그냥

 

땅파면 나오는 거에요. 국내

 

생산이 가능해서 저렴합니다.

 

 

 

그래서 그나마 가장 저렴한

 

안료이기도 해서..... 어찌보면...

 

흰벽에 붉은칠 단청이 많은건 당연합니다!

 

 

 

 

실제로 이런 흰벽에 붉은칠 단청은

 

조선의 종묘 / 각종 정자 / 향교 건축에서

 

아직까지도 사용되는 저렴단청 입니다...!

 

 

 

그래서 흰벽에 주칠 단청은

 

당나라 / 왜색 이라고 하는거?

 

솔직히 한참 잘못됬습니다!!!!!

 

 

 

 

주칠에 흰벽 단청을 말할떄는

 

[ 당나라 풍 / 왜색 ]

 

이건 맞지 않다구요!!!

 

 

 

 

흰벽에 붉은칠 단청은

 

[ 고구려 풍 단청 ]

 

 

이라고 부르는게 더욱

 

현실에 맞고 정확한 겁니다!!!

 

 

 

 

- 단청의 붉은색을 다양하게 이용하는 고구려 -

 

 

연단 안료를 적용한 고구려 2층 누각

 

 

고구려는 단청에 사용된

 

붉은색은 4종류나 된다는 사실!

 

알고 게신가요!?

 

 

 

그 4종류는

 

주칠 / 주토 / 연단 / 석간주

 

이렇게 붉은색을 나눠 사용했는데요,

 

 

 

이제부터 안료에 따라 색상이

 

어떤지, 어떤 고구려 고분에서

 

사용했는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 주토 ( 산화철 성분의 흙 )-

 

 

주토와 흰벽은 가칠단청의 가장 기본이 되는 콤비다.

 

 

주토는 한국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구하기 쉬운 안료 입니다.

 

 

 

안료의 원료는 흙 입니다.

 

걍 붉은 황토 비슷한 건데요

 

붉은황토보다 더 붉은색 이에요.

 

 

 

하여튼 주토 + 흰벽은

 

가칠 단청중에도 가장 기초 입니다!

 

조선시대 종묘에서 특히 활약중 입니다.

 

 

 

 

 

흙에서 채취가 가능해서

 

고구려가 가장 많이 사용한 안료가

 

아닐까 싶은, 기본중에 기본 안료 입니다.

 

 

 

주칠같은데 엄밀히 말하자면 주토, 붉은흙이다. 조선의 궁궐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색이다.

 

 

 

사실 고구려 고분 대부분의

 

흰벽 + 주칠 채색 건물 그림은

 

실제론 흰벽 + 주토 채색 입니다.

 

 

 

무용총, 각저총, 수산리고분,

 

덕흥리 고분, 안악1호분 등등등...

 

 

 

거의 모든 고분에서 사용되는

 

붉은색 흙으로 만든 안료에요.

 

 

고구려 무용총 . 사실 주칠이 아니라 주토, 붉은흙 이다.



보통 고구려 건물에 주칠했다!

 

라고 하지만..... 몇십년전 연구한

 

보고서를 보면 대체적으로 주토 입니다.

 

 

 

참고로 주토의 성분은 철 입니다.

 

철성분이 산화되어서 붉은색이

 

된 거에요.

 

 

 

한국은 철성분이 좋은 나라라서

 

주칠보다 주토가 구하기 훨씬쉽고

 

국산 주칠보다는 주토가 품질이 더 좋습니다.

 

 

종묘에서는 주토 안료를 주로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주칠안료인

 

수은이 거의 안나오고,

 

그나마도 질이 안좋아요.

 

 

 

대신에 철이 좋아서

 

주토의 질 또한 매우 좋습니다.

 

 

 

또한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라서

 

삼국시대 ~ 구한말까지 가장 널리

 

사용하던 안료 였습니다.

 

 

 

 

- 연단칠 ( 납성분 ) -

 

 

 

 

 

이게 가장 신선하면서도 가장

 

알려지지않은 붉은 안료 입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는 고구려에서만

 

단청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습니다.

 

 

연단은 주황색 ~ 붉은색 그 어디쯤이라, 실제로 보면 매우 예쁜 색상일것이다.

 

 

 

연단의 색깔은 주황색 ~ 혹은

 

붉은색 ~ 주황색 사이의 오묘한 색상.

 

 

연단칠은 실제로 단청에 사용한게

 

발견은 됬고 그 고구려 고분은

 

바로 덕흥리 고분 입니다.

 

 

 

 

분명히 연구보고서에서

 

덕흥리 고분의 붉은칠은 연단!

 

이라고 확실하게 적었기 때문에...

 

 

 

분명하게 발견된건 사실인데요,

 

근데 어느 위치에서 연단이

 

발견되었는지는 안 적어놔서,

 

 

 

어느 위치에 연단을 사용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연구보고서에 덕흥리 고분의 붉은색은 [ 연단 ]을 사용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어디에 연단을 사용했는지 나와있지는 않다.



 

지붕을 받쳐주는 브라켓들 ( 첨차/두공 )

 

여기 단청이 붉은색을 2개로 나눠 사용을

 

했다는 점,

 

 

 

기둥은 어두운 주황빛 갈색이고

기둥과 브라켓 / 사각형 받침대가

 

색깔이 전부 다르다는 점!

 

 

 

이걸 봤을때 브라켓 부분이

 

주황색이니까, 브라켓 ( 첨차 )

 

부분에 연단칠을 한걸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덕흥리 고분의 경우에는

 

연단을 아주 약간만 사용한걸로

 

예상이 되는데요,

 

 

흰벽에 연단을 건물 전체에

 

바른것으로 추측되는 고분

 

하나가 있습니다.

 

 

중국 집안시에 있는 만보정 1368고분. 300년대 매우 이른 시기의 고분이다.

 

 

 

이 고분은 만보정 1368호

 

고구려 고분이라고 합니다.

 

대략 4세기, 300년대 쯤의 고분이에요.

 

 

 

발굴된 고구려 고분 중에서는

 

거의 최상위급으로 오래된 고분 입니다.

 

 

 

도면을 보면 고분에 뭔가 검정색으로

 

뭔가를 그려놓은것이 보이죠??

 

만보정 1368호 고분

 

 

저거 자세하게 보시면

 

꽤나 비슷한 양식으로

 

만든 고분이 있습니다.

 

 

약수리 고분 벽화. 만보정 고분하고 비슷하게 내부를 그렸다.

 

 

약수리 고분을 보시면 기둥과

 

브라켓으로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 있는데요.

 

 

 

만보정 1368호 고분도 똑같아요.

 

만보정은 고분 내부에...

 

 

 

기둥/브라켓/보

 

이걸 표현했다고 나와있고

 

또한 벽은 흰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네이버나 구글에서

 

 만보정 고분에 대해서 한번

 

찾아보면 알게 될겁니다.

 

 

 

거기에 적혀있는 만보정

 

고분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만보정 고분은 내부의 기둥과

 

대들보가 온통 검은색이라 합니다!

 

 

 

근데 이게 연단하고 무슨 관계냐!?

 

이 검은색 기둥과 대들보가 연단의

 

근거 그 자체 입니다!

 

 

덕흥리 고분에서 실제로 연단을 칠했다는게 밝혀졌다.

 

 

 

왜냐, 생각보다 되게 간단해요.

 

연단은 성분이 [ 납 ]

 

납은 산화하면 검은색으로 변해요.

 

 

 

 

이건 바로

 

이걸 뜻합니다.

 

 

 

만보정의 검은색 칠은

 

연단으로 칠해졌는데 산화해서

 

검정색이 되었을 확률이 매우높다는 뜻!

 

 

 

납 성분이 들어간 안료는

 

검정색으로 산화한다! 라는

 

적절한 예시가 윗쪽 사진 입니다.

 

 

 

왼쪽 해인사 건칠희랑대 처럼

 

그 당시 피부색은 납성분이 들어간

 

안료로 살색을 만들어서 사용했어요.

 

 

 

그리고 오른쪽 신라 채색불은

 

유독 손만 새캄한 검정색인데요,

 

 

 

살색 안료를 발랐다가 산화된 겁니다.

 

그래서 오른쪽의 남북국시대 신라의

 

채색불의 손이 검은색인 이유죠.

 

 

만보정 1368 고분. 300년대 매우 이른 시기의 고분이다.

 

 

 

만보정 고분은 내부의 기둥과

 

대들보가 검은색이라고 했죠?

 

그럼 이제 이해가 되시죠!?

 

 

 

만보정 고분의 내부는 대들보와

 

기둥이 표현된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 부분을 바로 붉은색 납성분 안료!

 

연단으로 칠했다가 산화되어 저런

 

검정색으로 변색되었다!

 

 

라는!

 

추측이 가능한겁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만보정은 처음에는 연단을 잔뜩

 

칠한 고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300년대 고구려의

 

수도, 집안시에서는 꽤나 흔했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연단을 칠한 건물들은 산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느낌으로 완전히 검은색으로

 

산화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보정도 처음엔 전체적으로

 

주황색 이었는데, 납성분이라

 

이런식으로 검게 산화된 것!

 

 

 

이라는게 저의 추측 입니다.

 

게다가 이런 추측은 고구려는..!

 

 

연구보고서에 덕흥리 고분의 붉은색은 [ 연단 ]을 사용했다고 적혀있다.




덕흥리 고분에서 실제로 검사를 거쳐서

 

붉은색은 연단을 사용했다는걸 밝혀내서...

 

 

 

붉은 연단칠은 일단 무조건

 

실제로 있었다는건 밝혀졌어요.

 

 

 

그것도 무려 건축물에 칠하는 단청

 

안료로 말이에요. 아무튼 연단을

 

확실하게 사용했기 떄문에,

 

 

 

연단을 전체적으로 칠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게 집안시 만보정 1368호 고분 입니다!

 

 

4세기 고구려는 건물에 흑칠을 했다는 기록/증거가 아예없다. 만보정 고분은 주황색 연단안료가 검게 산화되었을 확률이 매우매우 높다.

 

 

 

그래서 만보정 고분은 사실상

 

흰벽에 주황색 연단칠을 칠한

 

아직까지는 유일한 고분입니다...

 

 

 

아직까지는요......

 

 

 

 

그리고 300년대 고구려에서는 건물을

 

납으로 만든 연단으로 칠하는 문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거의 90% 정도!?

 

 

 

 

라고 생각해도 될꺼같네요.

 

신기한건 400년대 덕흥리 고분을 끝으로

 

건물에 연단칠을 한것은 더 이상 발굴되지 않았습니다.

 

 

연단칠 옆쪽 회랑에는 주토를 칠했다. 색깔 차이가 많이 난다!



 

아마도 400년대 이 시절에 이미 납중독이

 

문제시 되어서 싸그리 사라지지 않았을까....

 

 

 

 

게다가 산화가 심해서 일꺼같아. 검정색으로

 

너무 심하게 색이 변하는... 약한 내구성 때문에

 

기피되지 않았을까...라고 혼자 뇌피셜로 추측해봅니다.

 

 

 

 

 

 

- 주칠 단청 ( 진사/경면주사로도 부름 ) -

 

 

 

 

사실 주칠로만 완전히 모든것을

 

빨갛게 색칠한 고분은 한개도

 

발견된적은 없어요.

 

 

 

그래도 붉은색 주칠로만 건물을

 

칠한 건물은 있었을 것이다! 라고...

 

 

 

강력하게 추측과 예측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됩니다. 우리 자료를 한번 봅시다!

 

 

 

 

일단 팔청리 고분이 있어요.

 

팔청리 고분 건축 그림들...

 

 

매우 붉은색의 주칠로

 

그린듯한 표현을 했습니다.

 

쌍영총의 주칠만 채색된 부분 모사도

 

 

 

그 다음에 가장 확실한 고분은

 

쌍영총 입니다.

 

 

 

고구려 고분 중에서는 아직까진...

 

유일하게 주칠로 기둥과 브라켓

 

등등, 건축물 부자재들을 채색한...

 

 

 

가장 확실한 고구려 고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직까지는요!

 

 

일본이 모사한 쌍영총 내부 그림들

 

 

일본에서 쌍영총을 발굴할때

 

모사도를 그려놨는데요, 이게...

 

 

 

일본이 그린 모사도가 100%

 

전부 정답이 아니긴 합니다만,

 

 

 

쌍영총 내부 기둥과 대들보를

 

주칠로만 칠해서 그린것만 봐도

 

일단 주칠을 칠한게 확실한거 같네요.

 

 

고구려 쌍영총 - 5세기 후반 고분으로 추정한다.



 

몇몇 단청을 칠한 부분만 제외하면

 

흰벽에 주칠 단청에 매우 근접한

 

고분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뭐 거의

 

주칠에 흰벽 문화가 있지 않았을까....

 

 

라고 강하게 긍정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거 같네요.

 

 

 

 

그리고 쌍영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인 묘실 정면에 팔각기둥에

 

용그림을 그렸는데요,

 

 

확실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저거

 

안료가 주칠로 칠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이런식으로 주칠과 흰벽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도 있었을 거라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 석간주 ( 산화철 흙 or 암석 ) -

 

 

 

 

석간주는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하는 안료.....라고 알고계실 겁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궁궐 석간주는

 

이게 설명이 좀 복잡하니까 밑에

 

추가 설명글을 따로 적겠습니다!

 

 

 

이 문단에서 설명하는 고구려 석간주는

 

약간 어두운 주황색 ~ 갈색 사이의

 

천연 석간주를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울릉도에 실존하는 암석형 석간주다 /// 출저:https://blog.naver.com/gongod5537/

 

 



천역 석간주는 안료성분이

 

산화철 성분을 강하게 띄는

 

암석입니다.

 

 

 

물론 이런색의 흙이 있을수도

 

있는데요, 고구려는 어떤 형태의

 

석간주를 채취했는지는 모르므로...

 

 

 

현재는 암석형태 + 약간 어두운 주황색

 

이 두가지 형태가 결합되면 천연 석간주로

 

분류합니다.

 

출저 : https://blog.naver.com/sniper98

 

 

 

국내에서는 일단 남한만

 

생각하면 울릉도에서만

 

생산되고 있습니다.

 

 

울릉도 천연 석간주는

 

조선시대때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천연 석간주 채취장으로...

 

 

 

꽤나 유명했던걸로 기억합니다.

 

( 조선후기 기록인데, 주칠같은 흙이 있다라고 표현했음 )

 

 

윗쪽 제가 올린 울릉도 석간주랑

 

수산리 고분의 석간주 색상을 비교

 

해보세요!

 

 

거의같죠? 그래서 일단 고구려 또한

 

살짝 어두운 주황색을 띄는 천연 석간주

 

안료를 사용한것으로 파악이 되었답니다.

 

 

 

 

일제가 그린 용강대총 모사도만

 

봐도, 살짝 어두운 주황색톤 바탕에

 

고사리 무늬를 그린게 보이는데요.

 

 

 

천연 석간주는 고구려는 확실하게

 

단청 안료로 사용했었던 것 입니다!

 

윗쪽 브라켓과 기둥의 색상이 다르다. 기둥은 전형적인 전통 석간주 색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다시 나오는 이 사진!

 

덕흥리 고분의 기둥을 봐 주세요.

 

윗쪽 브라켓의 주토 / 연단하고 다르게...

 

 

 

기둥은 살짝 어두운 오렌지빛 같은

 

갈색같은...그 어디쯤의 색상을 보여줍니다.

 

 

 
숭례문 기둥은 전통 천연 석간주안료다. 살짝 어두운 주황색이다. 고구려 고분 기둥색이랑 똑같다.


 

 

최근에는 전통안를 개발하고

 

있는데요, 그 일환으로 숭례문에

 

울릉도 석간주를 실제로 채색했답니다.

 

 

 

숭례문이 단청이 어쩌고 말이 많은데

 

기둥은 일단 울릉도 천연 석간주가 맞아요.

 

 

 

생각보다 되게 붉으면서도 진한

 

갈색 ~ 주황색 정도의 색상이죠?

 

 

용강대총 내부 단청을 따라 그려봤다.

 

 

그래서 제가 재현 / 복원한

 

용강대총 단청의 주황색 빛

 

단청은...

 

 

이렇게 고구려 천연 석간주 안료

 

색감을 따라서 만든 것 이랍니다!

 

 

 

 

 

고구려 건축은 고증에 맞춰

 

단청을 채색하여 적용할 경우,

 

 

우리가 알고 있던 한국의 전통건축 색상하고

오나벽하게 반대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초록초록한 조선시대만이

 

우리나라의 전통이 아니에요! 

 

 

 

고구려시절은 되려 붉은색들이

 

우리의 전통건축 색상 입니다!

 

 



고구려는 이렇게 밝은톤의

 

주황색인 연단 안료를 건물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건물에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건축 색감 입니다!

 

 

 

 

연단 뿐이겠습니까!?

 

중국 / 일본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초고추장 색상도 고구려 건축의 색상 입니다!

 

 

안악1호분의 회랑을 구현해봤다. 안악1호분 그림대로 흰벽에 주토, 붉은 기와를 적용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사용하는

 

붉은 적갈색도 자주 사용하던

 

고구려 입니다.

 

 

 

이렇듯이 우리의 잊혀진 전통은

 

초록초록 상록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찬란한 붉은빛이

 

우리 예전의 전통이었습니다!

 

조선만이 우리의 전통이 아닌겁니다!

 

 

고구려는 붉은색을 굉장히 여러개로 나누어서 사용했다.

 

 


이 게시물을 보는 사람들이

 

고구려가 이렇게 다양한 색상을

 

사용했다! 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네요!

 

 

 

 

하여튼 고구려 건축물을 실제로

 

복원 및 재현할때는 반드시...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붉은색들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면 참 좋을거 같아요.

 

언젠가 실제로 보는 날이 오기를...!!!

 

 

 

 

 

 

* 번외편 : 석간주의 종류와 구별법 *

 

 

 

 

 

이 게시물을 보다보면 의문이 생길거다.

 

분명 궁궐 기둥은 석간주 일탠데?

 

 

 

도대체 왜  계속 주토라고 함?

 

이런 의문이 생길것이다.

 

 

 

 

이런거다.

 

 

 

 

요즘은 붉은흙, 주토 안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왜냐하면 수입산 석간주가

 

색깔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취규정에 조선초기 초록빛에 가까운 청기와를 적용해봤다.



 

주토 / 석간주 둘다 산화철이라서

 

색상 뉘앙스가 비슷하다보니,

 

 


요즘에는 궁궐 제외하면 대부분


주토대신 , 값싸고 발색이 강하며

안료 성분도 사실상 똑같은 수입산 석간주를 애용한다.

 


결론은 주토는 거의 잊혀져서

웬만해선 사용하지 않는 안료이다.

 

 

 

 

근데 17세기 까지는 주토가

 

그냥 기본 안료였고, 궁궐에서

 

끊임없이 사용된 안료였다.

 

 

 

 

그래서 지금 조선의 궁궐 어디를 가든

 

내부에는 주토가 아직 조금씩 남아있다.

 

 

 

 

그러나,

 

 

 

 

19세기 쯤에는 궁궐도 수입산

 

석간주를 발랐기 때문에 주토는

 

이때부터 거의 잊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상 원료가 둘다 철성분이라

 

주토나 석간주나 성분이 다를바 없어서,

 

 

 

 

사실상 주토는 거의 잊혀졌고

 

석간주로 편입되다싶이 되어버렸다.

 

 

 

 

재밌는건

 

석간주는 철성분이라서

 

색상의 톤 / 뉘앙스 종류가 꽤 많다.

 

전통건축 매니아라면 한번 눈여겨 보면 재밌을 것이다.

 

 

 

대한문의 석간주.

 

전형적인 산화된 석간주이며

 

붉은 팥알 색상이랑 가장 가깝다.

 

주토하고도 뉘앙스가 거의 똑같음.

 

 

 

이건 구한말 수입된 석간주다.

 

이게 딱 그냥 쉽게 설명하자면

 

 

 

아이스크림 메가톤바 색깔이다.

 

 

 

 

19~20세기 궁궐 재건할때 많이

 

사용된 색상이라 지금 궁궐에서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색상이다.

 

 

 

[ 현대 석간주 ]

 

 

주칠에 필적하는 엄청 새빨강 안료.

 

독일및 유럽산이 주류다.

 

 

 

최신식 사찰 기둥을 보면

 

엄청 새빨게서 주칠했네? 싶을거다.

 

 

 

근데 사실은 석간주다.

 

독일 / 유럽산 석간주는 거의

 

주칠 수준으로 새빨간 발색을 보여준다.

 

 

 

 

그래서 요즘 석간주는 주칠하고 거의

 

비슷해서 눈여겨 보지 않으면 구분도 힘들다.

 

참고로 3개 모두 석간주로 불리우고 있다!

 

 

 

숭례문의 울릉도 채석 석간주.

 

 

 

우리나라 고구려때부터 전통적으로

 

사용된 석간주는 붉은빛의 주황색이며

 

가끔 좀 어두운 갈색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밝은톤인데 꽤 차분하다.

 

 

 

 

 

* 석간주 안료는 지금도 많이 사용되며

 

현대에 와서는 안료를 전량 수입한다.

 

 

 

 

그래서 수입산은 발색이 주칠하고 거의 같다.

 

혹은 살짝 붉은기가 도는 갈색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게시물에서는 주황색을 띄는

 

전통 암석 석간주를 기준으로 게시물을 작성했다.

 

울등로 천연 석간주로 도색한 숭례문. 살짝 어두운 붉은 오렌지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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